제 3 장

1

 

…새 세기는 정보화라는 한 단어로 요약되여 세계를 좁혀놓기 시작했다. 초음속으로 날아서도 반나절, 하루씩 에돌아야 했던 세계가 정보화의 산물인 인터네트망에 의해 순간에 돌아보고 접촉할수 있게 된것이였다. 좁아진 이 세계가 답답하여 사람들은 광활한 우주에로 나가는 한편 미시세계를 파는데 더 극성스럽게 달라붙었다. 생존공간을 어떻게든 넓혀보자는것이였다. 우선 자신부터 작아지자, 분자로, 원자로 작아지면 주위세계는 태양계가 우주의 무한한 은하계들사이를 헤염치는것처럼 넓어보일것이 아닌가!…

 

서방의 어느 한 랑만적인 기자가 썼다는 기사의 번역문이였다. 렴진욱에게는 그것이 아주 형상적이라고 여겨지면서도 모순된다는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분자로, 원자로》 작아지려면 단식이상의 처방도 모자라지만 세계는 오히려 포식에로 넘어간것 같았기때문이였다. 《좁아진 공간》속에서 먹이감이 적어진 승냥이무리가 더더욱 극성스럽게 서로 물고뜯듯이!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은정으로 외국방문길에 오른 렴진욱이였다. 그들이 찾은 곳은 유라시아대륙중심의 무연한 사막속에 일떠선 어느 한 유색금속광산이였다. 씨비리의 정월달혹한이 밀려와 사막은 눈보라와 모래폭풍속에 휘감겨져있었으나 광산만은 여러 자본주의나라 회사들의 치렬한 먹이감쟁탈로 설설 끓었다. 사자가 날카로운 이발로 물소를 뜯어먹듯이 걸탐스레 광석산을 허물어먹는 특대형굴착기들, 련속 경적을 울리며 질풍같이 내닫는 대형수송차행렬, 포식한 짐승의 룡트림같이 꾸역꾸역 내굴을 토하는 제련소굴뚝 그리고 배설물인양 줄줄이 쏟아져나오는 금속괴들… 첫눈에 안겨오는것은 그 모든 생산공정이 최대로 현대화되여 숨도 안 쉬고 맹렬히, 미친듯이 돌아간다는 점이였다. 자원략탈에 급급한 회사들이 아낌없이 투자했다는게 알렸다.

부단장격으로 함께 동행한 박치명부국장의 표정은 두꺼운 도수경속에 가리워져 잘 알수 없었으나 몹시 상심해하는 기색이였다. 입술을 뿌루퉁하니 내민채 꽉 앙다문 입이 그것을 엿볼수 있게 했다.

마침내 생산공정이 콤퓨터화된 제련소까지 돌아보고난 박치명은 승용차에 오르자 긴 한숨끝에 음울하게 뇌였다.

《자금만 있었으면… 저따윈 아무것도 아닌데 우린… 방도는 한가지뿐이요!》

그가 무엇을 념두에 두었는지 렴진욱은 짐작하고있었다. 합영을 주장하는것이였다. 조국을 떠나올 때 성에서도 그러한 방도를 모색해보라고 귀띔했었다. 그러나 렴진욱은 썩 내키지 않았다. 외국의 투자가들이 이 광산을 어떻게 뜯어먹는지 빤히 보았기때문이였다.

새 세기를 맞은 조국에서는 지금 위대한 장군님의 부름따라 인민들이 강성대국건설이라는 거창한 대진군길에 떨쳐나섰다. 대단히 아름차나 휘황한 목표였기에 인민들은 주먹을 부르쥐고 신심드높이 분발해나서고있었다. 자강도사람들이 선참 시작한 중소규모수력발전소건설이 전국으로 확대되여 긴장하던 전기문제가 풀리기 시작했고 성강의 강철이 쏟아지기 시작했으며 락원에서는 유압식굴착기가, 희천에서는 수자식공작기계가 지축을 울리고있었다. 철도의 기적소리도 우렁찬 메아리로 그에 합류해나섰다. 이 모든 동음을 안받침해주는것이야말로 연하광산같이 원료를 대주는 기초공업부문인것이다. 그런데 그 원료가 바로 이 광산에서처럼 외국인들의 손에 뜯기운다면?!…

박치명에게 참관이 까닭모를 역증을 키질해주었다면 렴진욱에게는 매우 유익했다. 우선 생산공정의 현대화나 콤퓨터화가 그렇게 대단한것은 아니라는 신심을 얻은것이였다. 헐치는 않을것이고 할일 또한 많을테지만 이들에게 왜 지겠는가, 왜 압도하지 못하겠는가!

다음소득은 분리부선공정을 돌아보다가 시약교반기에 쏟아지는 물이 덥다는것을 알아낸것이였다. 물론 새로운것은 아니였다. 더운 물을 주입하면 전공정에서 껴묻어온 시약피막이 쉽게 벗겨져 적은 시약으로도 실수률을 더 내는것이다. 다만 전기랑비가 많은데 대신 저열탄보이라를 쓴다면?… 재빨리 속구구를 해본 그는 그 순리득이 매우 엄청난데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그 자금이면 광산의 설비현대화나 살림집건설에 한밑천 단단히 이바지할수 있었던것이다.

이튿날 단장인 내각참사와 합의하고 시작한 박치명의 합영면담은 결과가 참담했다. 그는 제련설비까지 일식으로 끌어들여볼 계획이였지만 대방측은 광산설비만 대주는 값으로도 정광 즉 자원을 엄청난 헐값으로 다량 넘겨줄것을 요구한것이였다.

《더러운것들이요!》 침실로 돌아온 박치명은 악이 북받쳐 상스러운 줄욕을 쏟아놓았다. 《별스레 아첨하며 대접을 잘한다 했더니… 사막독거미한테나 물려죽을 야시꺼운 장사군나부랭이들, 사막귀신이 되지 않나 보지.》

《뭐, 그럴줄 몰랐습니까?》

렴진욱이 진정으로 놀라와 묻자 박치명은 대뜸 풀이 죽어 털썩 침대에 주저앉았다.

《할수 없지. 자본가들이 악착한 거마리라는거야 이 광산만 봐도 빤한걸. 어찌겠소. 그러면서도 모두들 합영으로 나가는건 그것들의 최첨단설비와 선진기술을 받아들이자는게 아니겠소. 뭐 우리야 기술이 딸려서는 아니고… 제련소만 끌어들이면 그걸 돌려 나오는 금속괴를 팔아 돈을 벌자는거지. 그러면 우리 성산하 광산들의 설비현대화는 얼음에 박밀듯 쭉 풀려나갈판이요. 그러니 이번만은 눈을 꾹 감아야 할 가보오.》

온풍기가 쉬임없이 돌고있는 침실은 후끈했다. 그럼에도 렴진욱은 어떤 추위같은것을 느꼈다. 그는 놀랍게 박치명을 건너다보았다.

《정말… 그렇게 계약을 내밀자는겁니까?》

《빈손으로 돌아갈수야 없지 않소.》

《난 찬성 못하겠습니다. 우리라고 못할것도 없는데 제발로 걸어 갑시다.》

박치명의 두눈이 안경알속에서 어이없는듯 흡떠졌다.

《여보, 동문 우리의 이 외국방문이 어떤 신임과 기대속에서 이루어진것인지 몰라서 그런 소리요? 빈손으로 돌아가보오. 당앞에 우리 면목이 어떻게 되나?》

또다시 렴진욱은 추위같은것을 의식했다. 빈손!… 여기에 자기와 박치명간의 너무도 판이한 차이가 있을것이다. 자기가 이 외국방문과정에 얻은 소득은 실로 컸다. 자본가들이 꾸려놓은 번쩍거리는 현대적설비가 따져놓고보면 그렇게 신비한것도, 즉 우리 나라 과학이 이룩한 성과를 초월하는 기적같은것도 아니라는 확신이였고 자기 힘을 믿고 그 힘에 의거하여 대담한 기술혁신을 단행한다면 손쉽게 눌러디딜수 있는것이라는 점이였다. 이것이 위대한 장군님께서 자기를 외국에 보내면서 기대하신것이 아닐가.

그런데 박치명은 반대로 외국의 번쩍거리는 설비에 위압되여 오히려 귀중한 나라의 자원을 섬겨바치는것으로 일시적어려움을 메꾸려 하고있는것이다. 우리 당이 자력갱생의 기치를 높이 든것을 박치명은 어떻게 리해했을가?… 그 점이 렴진욱은 의혹스러웠다.

《모르겠군요.》 하고 렴진욱은 괴롭게 중얼거렸다. 《유무상통이라면 우린 합영이라는 결과물을 부끄럽지 않게 조국으로 가져갈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굴욕적인 조건이라면 그건 그저 빈손이 아니라 나라에 해를 주는 나쁜 〈선물〉꾸레미를 안고가는것으로 될겁니다.》

박치명이 불쑥 심술궂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보니 동문 아주 본위주의적사고를 하누만. 동무네 광산은 그래도 용케 생산설비를 유지해냈으니 우에서 조금만 대줘도 도약할수 있지만 성산하 일부 광산들의 형편은 말이 아니요. 이제 와서 그 책임추궁을 해야겠소? 그들에겐 오늘 자원손실은 좀 보더라도 든든한 자금밑천을 마련해주어 그 손실을 곱절 아니, 열배쯤 보상하도록 해주는게 급선무란 말이요!》

렴진욱은 한순간 말이 막혔다. 론리상으로 박치명의 주장이 그르다고 할 빈틈은 찾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깔끔한 가시가 목에 걸린듯 박치명의 말을 소화해내기 힘들었다.

《그건… 옳습니다. 광부들은 생산과제를 배로 넘쳐할걸 결의해나섰습니다. 그게 쉬운 목표인줄 압니까? 다른 광산들도 광부들의 그 정신력에 불을 건다면…》

《허― 빈주먹뿐인 광부들에게?》

박치명이 성칼스럽게 코를 불었다. 렴진욱은 지그시 그를 쏘아보았다. 침실창문유리를 좌륵좌륵 때리며 사막돌풍이 창밖에서 울부짖고있었다. 그의 가슴속에서도 무엇인가 태질을 시작했다. 《빈주먹뿐인 광부들》!… 얼마나 모독적인 말인가.

렴진욱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자금을 받아안고 온 광산이 환희에 웃고 격정에 울던 그날이 되새겨졌다. 아직도 몹시 어려운 나라사정임에도 아낌없이 국고를 기울여 보내주신 그 자금, 그것은 어버이장군님께서 광산형편을 두고 얼마나 마음쓰시고 도와주기 위해 애쓰셨는가를 그대로 보여주는것이였다.

그날로 궐기모임이 열리고 그 크나큰 신임과 기대에 광물증산으로 보답하자는 불같은 결의가 울렸으며 만장의 우렁찬 박수속에 맹세문이 채택되였다. 광산은 들끓었고 광부들은 분발하였다.

그런데 그 자금리용문제에서 주장들이 몹시 엇갈렸었다. 광산의 전반기대설비들을 보강하는 부속품구입에 그것을 골고루 분배하자는 안이 우세했고 당급한 연유나 시약을 푼푼히 끌어들이자는 주장, 지어 식량을 사오는데도 좀 돌리자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때 렴진욱은 격노하여 꽉 그러쥔 주먹으로 탁상을 쾅 울렸다.

《안돼! 1년을 뚱땅거리고 10년을 굶자는거요? 단 한푼도 허튼덴 못써. 요진통에 집중투자해야 하는거야, 이 주먹처럼!》

결국 채광과 수송, 파쇄계통의 설비들이 일식으로 교체되였다. 모두 현대적인것들이였다. 나머지계통은 광산의 자력갱생기지가 얼마든지 뒤받침해줄수 있었다. 광산은 일약 허리를 쭉 펴고 생산정상화의 길에 들어섰다.

놀라운것은 광산로동계급이 즉시 생산을 일약 배로 끌어올릴것을 제의해나선것이였다. 그뿐아니라 광부들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돌려주신 자금으로 한두해안에 모조리 재생산해냄으로써 성산하 여러 광산들도 설비현대화를 이룩할수 있게 도와주자고 열렬히 호소해나섰다.

말이 쉽지 그것이 얼마나 완강하고 견인불발한 투지와 노력의 대가를 요구하는지를 렴진욱은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하물며 수천세대에 달하는 살림집들과 생산 및 공공건물모두를 새롭게 일떠세워야 할 방대한 건설목표까지 세운 광산임에랴.

렴진욱은 그 제의와 호소를 주저없이 지지해나섰다. 그는 위대한 장군님의 신임과 기대를 심장에 새긴 광부들의 힘을 믿었다. 그뿐아니라 자기 광산 광부들의 호소에 접한 성산하 모든 광산로동계급의 정신력― 열렬한 애국심도 믿었다.

그럼에도 박치명은 그러한 광부들을 《빈주먹》으로만 보고있다. 그것이 렴진욱의 분노를 자아냈다. 위대한 장군님의 강성대국건설구상을 자신들의것으로 받아들인 우리 인민의 그 열의, 그 불같은 지향과 투지를 보는 눈이 없다면 그런 사람을 어찌 이 시대의 일군이라고 할수있으랴!

험해진 렴진욱의 숨소리로 그 기분을 감촉했는지 박치명은 어조를 느슨하게 바꾸었다.

《이보라구, 내 자네 심정을 모르는건 아닐세. 누구나 제발로 걸어가주면 얼마나 좋겠나. 그러나 지금은 새 세기가 아닌가, 정보화의 시대! 자네네 광산이 허리를 좀 폈다고 만족하는 새에 세계는 제꺽 새로운 갱신주기에 넘어가고말아. 그러니 오지랖넓게 굴지 말구 눈을 좀 크게 뜨라구!》

렴진욱은 쓰겁게 웃었다. 느닷없이 아주 어릴적 기억 한토막이 떠올랐다. 하루는 자연시간에 선생님이 잠자리에게 수천쌍의 겹눈이 있기때문에 사방 어디든 동시에 다 볼수 있다는 흥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었었다. 렴진욱에게는 그것이 무척 놀랍고 신기했으며 몹시 부럽기도 했다. 자기에게도 그런 눈이 있다면 늘 등뒤로 살금살금 다가와서는 깜짝 놀래우거나 재미나는 동화책을 탁 채가기 잘하는 장난꾸러기 동팔이녀석이 꼼짝 못할게 아닌가.

이상한것은 사방 어디든 동시에 잘 본다는 잠자리가 꼬리쪽에서 손을 뻗치면 제꺽 붙잡히군 하는것이였다.

《엄마!》 하고 그는 어느날 어머니에게 입을 비쭉해보였다. 《선생님이 거짓말한게 아닐가? 잠자리가 뒤는 못 보잖아?》

그때 어머니는 웃으며 설명했다.

《잘 생각해보렴. 사방 어디나 다 보자니까 어느 한곳도 똑똑히는 못볼게 아니냐. 그러니 넌 헛눈팔지 말아라.》

아주 명쾌한 대답이라 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 기억이 왜 떠올랐는지… 아마 눈을 크게 뜨라는 박치명의 충고가 그런 반사작용을 일으켰을것이다. 그에게는 확실히 세상을 다 휘둘러보려고 눈을 흡뜬 잠자리 비슷한데가 있었다. 그래서 미제를 괴수로 하는 제국주의자들이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를 압살하려고 미쳐날뛰는 엄연한 현실을 바로볼 대신 초점없는 눈에 흐릿하게 안겨오는 등뒤의 이 유혹적인 《미끼》를 덥석 받아물려고 하지 않는가.

무언가 속에 꿍져두고는 마음이 편치 않은 렴진욱이였다. 그는 주저없이 툭 털어놓았다.

《부국장동진 아까 무슨 면목소리를 했는데 전 장군님께서 그런 식의 눈이 트라고 저희들을 외국에 보내주셨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세계를 딛고 일어설 담력과 배짱의 눈을 틔워주시려고 한겁니다. 헌데 그 외국에 대해 무언가 기대를 가지다니요. 따져보면 그것도 일종의 환상과 같은겁니다. 제발 잠자리눈이 되지 마십시오.》

《잠자리눈?…》 박치명은 진짜 잠자리처럼 눈망울을 굴렸으나 얼굴은 그보다 먼저 모욕감으로 검붉게 달아올랐다. 《자네… 이젠 내게 못 씌우는 감투가 없구만, 응?》

소란스럽게 씩씩거리다 말고 그는 한손을 홱 내저었다.

《그래그래, 렴진욱이란 잘난 사내가 옳지 자본가들에게 구걸하는 내가 옳겠나. 그래도 난 성의 고충을 풀어보자고 발이 부르트게 뛰는데 그 안타까운 심정에 랭담한 몽둥이질로 맞서다니… 제련소를 들여오면 나만 먹을 알이 있고 자네네 광산은 덕을 보지 않는다는거지? 좋네. 올해광산계획이 배로 늘어났다는걸 잊지 말게. 이젠 법으로 꽉 눌러진거야. 그걸 못해서 내게 손내밀 생각은 꿈에도 말라구!》

박치명은 노여움을 못이겨 침실에 벗어놓은 외투도 걸치지 않은채 문을 쾅 닫고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비로소 그를 너무 매정하게 타매하지 않았는가 하는 가책이 렴진욱의 가슴을 긁었다. 따져보면 그가 벌린 합영면담은 성의 딱한 사정으로부터 취해진 공식적인 조치가 아니였던가. 그처럼 굴욕적인 요구에 응할생각까지 했을 때에야 그의 안타까움도 자못 컸으련만… 딸 정옥의 혼사문제로 이미 마주보기 어색할 정도로 서먹서먹해진 때에 새롭게 꼬집는 식으로 감정을 덧궂혀놓았으니 그가 폭발할만도 했다. 이것으로 그와의 오랜 우정이 끝나는것은 아닐런지?

하지만 렴진욱은 자기가 달리 하지 못했으리라는것을 똑똑히 느꼈다. 확실히 박치명에게는 정신적측면에서 어떤 탈선 비슷한 관점이 자라고있었다. 우리 로동계급의 힘을 믿지 못하는 그의 발언이 그랬다. 그것이 삭도페기문제를 두고 보여준 그의 표리부동한 자세와 상통하는 점은 아닐가?…

그후의 나머지 체류기간 박치명은 될수록 렴진욱과 마주서기를 피하는듯 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도저히 고까움을 풀수 없는 모양이였다. 대신 그는 많은 시간을 바쳐 신간과학기술자료를 수집하고 탐독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열흘만에 조국으로 귀국하는 비행기안에서 처음으로 낯을 풀며 렴진욱의 손을 친밀하게 툭 건드렸다.

《여보게, 자네 몽둥이찜질이 몹시 아팠네만 그것때문에 새로운 출로도 탐구할수 있게 되였네. 이 외국려행이 결코 무익하진 않았어.》

그 출로가 무엇인지를 박치명은 설명하지 않았다. 두꺼운 도수경속에서 두눈이 흥겹게 반짝거리는것만도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이였다. 결국 박치명은 옹졸한 감정때문에 자기를 피한것이 아니라 심각한 반성때문에, 새로운 출로의 탐색때문에 고민과 고심을 한것이였다.

그런데 잠시후 그가 꺼낸 다음말은 렴진욱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선광실험실장 김현길이를 우리 국에서 써야겠으니 넘겨주게. 당위원회의 평정서랑 잘 만들어서. 그래주지?》

렴진욱의 머리속으로는 대뜸 《낚시질군》이라던 리정우의 표현이 스쳤다. 아무리 좋은 감정을 가져보려고 해도 점점 께름하게 여겨지기 시작하는 김현길, 그의 소환조치에는 자기의 대학후배를 돌보고 내세워주려는 박치명의 단순한 인정적영향력이 행사된것이 아닐가?

《혹시… 그를 잘 파악해보았는지?…》

《아!》

박치명은 알만 하다는듯 픽 웃었다. 렴진욱이 앞서 생각해본 미심쩍음에 미리 대답할 준비가 되여있은것 같았다.

《자네가 념두에 둔걸 나도 다 아네. 까놓고 말해서 김현길이 수재형이야 아니지. 하지만 성실하고 활동적이라는 장점이 그걸 충분히 메꿔거던. 우리 국엔 학구적인 사람보다 산하단위를 꽉 틀어쥐고 정력적으로 일을 내미는 활동가형의 일군이 더 필요하네. 리해되나?》

렴진욱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김현길이 혹시 수단가일수는 있어도 진짜 의미로서의 《활동가》는 아니라는 생각이 뇌리를 집게처럼 문것이였다. 모처럼 마련된 박치명과의 이 화의를 깨고싶지는 않았다. 차라리 미묘한 연고관계때문에 자꾸 두둔해주게 되는 김현길이라는 거북한 짐을 이 기회에 훌 벗어던지면 더 좋지 않을가?

쓰거운 웃음이 절로 그려졌다. 리기적인 타산을 원칙우에 올려세우려는 자신에게 혐오감이 치민것이였다. 렴진욱은 억지로 입을 열었다.

《토론해보지요.》

《토론?… 뭘 토론한단 말인가?》 박치명의 얼굴이 대번에 불쾌하게 이지러졌다. 《자네 정말 별나게 구누만. 우리가 뭐 간부사업을 해서 내리먹일줄 몰라서 이렇게 빌붙는줄 아나, 응?》

《…》

《마음대로 하게. 마음대로!》

박치명의 두눈은 안경알속에서 표표하게 굳어졌다. 렴진욱은 마음이 언짢아졌다. 박치명이 외국에서의 불쾌한 충돌때 기분으로 되돌아간것이였다. 그렇다고 자기 립장을 철회하고싶지는 않았다. 그럴수도 없었다. 또 그의 마음은 이미 전혀 다른데 쏠려있었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어 비행장활주로에 착륙하기 시작한것이였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즉시 렴진욱은 비행장대기실에 뛰여들어 광산에 전화를 걸었다. 마침 새로 기사장으로 임명된 리정우가 나왔다.

《언제 오셨습니까?》

《방금 비행기를 내렸소. 이젠 엉치를 든든히 붙였나? 마광긴 몇대 돌아?》

마광기의 가동이자 곧 광산생산실태였다. 등뒤에서 젊은 남녀가 킥 웃었다. 왜서인지 소리가 멀어 냅다 고함친 《마광기》라는 말이 항공역의 려행자들에게는 몹시 귀설고 그만큼 괴이쩍게 들렸던 모양이였다. 렴진욱은 거기에 신경쓸 경황이 없었다. 아직 경험이 없는 젊은 기사장에게 맡겨놓은 광산일이 외국에서도 노상 걱정스러웠던 그였다.

아닐세라 수화기로 흘러나오는 리정우의 대답은 그의 가슴을 덜컥하게 만들었다.

《채굴장에서 고품위광맥이 끝내 사라지고말았습니다. 그래서 제 지배인동지의 동의없이 청주의 그 방수벽채굴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달리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송수화기를 틀어잡은 렴진욱의 손바닥에 땀이 내돋았다. 이미 각오하였고 그래서 방수벽채굴이라는 비상조치를 검토하기 시작한 《고품위광맥의 끝장》이 현실로 닥친것이였다. 문제는 방수벽채굴을 박치명부국장과의 사전합의를 거치지 않고 단행한것이였다. 이제라도 그에게 알려주어야 하지 않을가?

《알겠소. 내 당장 가겠소!》

렴진욱은 송수화기를 던지듯 내려놓고 대기실을 뛰쳐나갔다. 마지막순간에 먼저 제 눈으로 방수벽의 안전성을 확인한 다음 박치명에게 보고하기로 결심한것이였다. 마음이 급하여 그는 이제 외국방문총화도 있다는것을, 그래서 《당장》은 도저히 갈수 없다는것을 전혀 생각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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