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5

 

당비서 전주석은 광산문화회관 2층의 직관실에 있었다. 그앞에는 사람키를 훨씬 넘는 폭에 그의 배나 되는 길이의 대형《연하광산살림집건설전망도》직관판이 세워져있었는데 솜씨있는 오랜 직관원이 갖은 색조화를 다 부려 멋지게 그린 그림임에도 전주석은 무엇이 못마땅한지 연방 잔소리를 해대는중이였다.

《너무 알락달락해. 만화영화에 나오는 짐승동산같단 말이야. 광부들이 코방귀를 뀌지 않나보지, 공상망상이라구.… 살림집벽체들은 하얗게 칠하라구, 푸른 숲에 학무리가 내려앉은것처럼.… 그러자면 연두봉을 잘 살려야지.…》

전주석은 등뒤로 렴진욱이 다가오는것을 보았지만 새라새로운 조언을 계속 주었다. 아마 지배인에게도 전망도를 구체적으로 감상할 시간을 주려고 하는것 같았다. 렴진욱이 보기에는 그림이 좀 알락달락하기는 하지만 실지 꾸려야 할 구상속의 광산마을풍경보다는 훨씬 못하고 빈약한듯이 여겨졌다. 하지만 총체적으로 광부들이 공상이라고 반신반의할만큼 희한한것도 사실이였다.

《흡족해서 벙글거리기는 아직 이릅니다.》하고 전주석이 어느결에 렴진욱곁에 붙어서며 코를 불었다. 《광부들이 믿기나 하는줄 아시오? 뭐 간부들 집이나 몇동 짓다가 줴버릴거라는거요. 하긴 그럴만도 하지. 내가 제구실을 못했지요. 정치사업을 앞세울 대신 부문당들에 건설정형이나 료해하고 총화하고… 거꾸로 일했거던.》

갑자기 그가 렴진욱의 팔을 툭 건드렸다.

《참, 지배인동무가 강연에 한번 출연하는게 어떻습니까? 광부들이 푹 믿도록, 예?》

렴진욱도 살림집에 대한 광부들의 방심을 잘 알고있는터였다. 광맥을 하나 뚜져먹고는 새로운 광구, 새로운 고장으로 옮기군 하는 그런 반복속에 타성으로 굳어진 일종의 뜨내기관습이였다. 이전 화령광산의 경우가 그랬다. 일제때부터 파먹기 시작은 했지만 해방후에 본격적으로 확장되여서는 30년만에 끝장났던것이다. 좀더 길어야 《광부살림 50년》이라는 격언 그대로이기 쉬웠다. 말하자면 자기 한 대만 살고 자식대에 가서는 새 고장에 새집을 짓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것이였다. 나라의 경제적위력이 비할바없이 커진 조건에서 그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대대적인 채굴을 진행함으로써 불가피하게 초래되는 현상이기도 하였다. 연하광산만은 광물매장량이 엄청나서 한 세대에 끝장날 념려란 조금도 없지만 채굴장에서 갈수록 저품위광석만 나오니 혹시 이러다가?… 하는 우려때문에 동요가 없지 않는것이였다. 그러나 렴진욱이 찾아온것은 전혀 다른 목적에서였다. 그는 전주석을 제잡담 복도휴계실로 불러냈다.

《전 오늘 삭도페기에 들어갈 결심입니다.》

전주석의 눈섭이 당장 메뚜기 튀듯 꿈틀했다.

《우의 결론도 아직 없는데? 그거야… 무정부주의적행위가 아닙니까?》

《어제 밤 마광기가 한대 또 선걸 알지요?》 렴진욱은 전주석이 도중에 말을 가로채지 못하도록 재빠르게 강경하게 내뱉기 시작했다. 《성에선 두달이 지나도록 침묵입니다. 담당부국장한테 전화하니까 조금만 더 참아보라는데 그 눈치가 책임이 두려워 선뜻 못 나서는 꼴이더란 말입니다. 난 더 기다릴수 없습니다. 목이 날아나도 해야겠습니다. 광산이 죽고야 이 지배인목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비서동진 모르는체 해주시오. 내가 몰래 다 뜯어낸 다음에야 당위원회에 보고하더라고 둘러치란 말입니다, 책임은 내가 다 질테니. 이게 답니다!》

벌컥 화를 낼것이라고 마음을 도사렸지만 전주석은 웬일인지 복도창문밖에 눈을 준채 잠자코 있었다. 밖에서는 연구실관리원이 시들어가는 꽃밭을 정리하며 조용조용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부지중 전주석이 탄식을 터뜨렸다.

《우리 연두봉엔 진달래가 안 피지. 이상하거던. 뭐 전설의 번개가 다 태워버렸다던지…》

그가 렴진욱을 치떠본것은 그다음이였다. 이번에도 그의 입에서는 뜻밖의 질문이 튀여나왔다.

《지배인동문 왜 기사장후임을 제기하지 않으시오?》

《?…》

《김지택이 대리를 보니까 편해서 그러십니까? 아니면 그를 밀어내기가 딱해서요?》

《뭐 내가 어떤 안을 내놨댔는지 잊었습니까?》

《내 알기엔 지배인동무가 기술부기사장을 점찍고있는것 같던데… 옳지요?》

렴진욱은 저으기 놀랬다. 대체로 뚝하고 예민하지 못한것 같던 전주석이 어느결에 자기의 속내를 말짱 읽어낸것이였다.

《아직은… 기술일면에만 치우치고 전반을 굽어보고 장악하는 통솔력은 약하지만 좀더 키워주면…》

어째서인지 전주석은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

《사실 지배인동무가 기사장을 할 땐 무섭게 내밀었지. 중기계의 고압연료뽐프재생공정을 완성하고 만능곡축연마반을 제작해, 각종 라이나들이며 굴착기바가지들도 척척 부어내, 또 공무직장의 선재압연기, 판압연기, 크랑크프레스며 공기플라즈마절단기… 뭐 갖춰놓지 못한게 없었거던. 오죽했으면 도안의 자동차, 중기계들은 다 우리 광산에 와야 수리된다는 소리가 나돌았겠습니까.…》

찌긋해졌던 렴진욱의 눈꼬리가 점점 신경질적으로 찢어지기 시작했다.

기실 전주석이 렬거한것들은 렴진욱이 기사장시절 광산을 강력한 자력갱생기지로 만들 결심밑에 하나하나 자신의 지혜와 땀, 결단력으로 꾸려놓은것들이였다. 하여 전국자력갱생선구자대회연단에서 토론하는 영예를 지니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리정우부기사장문제를 론할 때 이야기된것으로 하여 어떤 미묘한 비교, 일종의 저울질처럼 불쾌하게 받아들여지는것이였다. 애초에 상대를 맞대놓고 하는 칭찬처럼 거북하고 역스럽기까지 한것은 없다.

전주석도 렴진욱의 숨소리로 편안치 못한 기분을 감촉한듯 했다. 그러면서도 지꿎게 이야기를 계속 끌고나갔다.

《물론 그게 광산운영의 전부는 아닙니다. 한데도 지배인으로 임명되였거던요.》

비로소 렴진욱은 그의 장황한 칭찬이 무엇을 노린것인지를 깨달았다.

얼굴이 붉어졌다.

《그 동물… 사업을 통해 키우겠습니다!》

《됐습니다.》 처음으로 전주석은 흡족해서 손을 썩썩 마주비볐다.

《이젠 삭도문제로 돌아가봅시다.》

렴진욱은 숨이 나갔다. 지금껏 딴전만 부리는 전주석이 짜증나고 초조감도 금할수 없었던 그였다. 그런 엄청난 문제를 당비서가 결코 잊을리 없었다. 그만큼 긴장해지기도 했다.

아닐세라 전주석은 싹 웃음을 거두고 까다롭고도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지배인동문 이 당비서더러… 당앞에 거짓말을 하라고 권고했는데… 그것도 말이라고 하시오?》

《그럼 광산을 아예 죽이잡니까?》

《난 백번 죽어도 거짓말만은 못하겠습니다.》

렴진욱은 목이 바싹 타들었다. 전주석을 더는 돌려세울수 없다는것을 그는 알았다. 그렇다, 거짓말이란 가당치도 않거니와 용서할수 없는 큰 죄악인것이다. 오직 한가지 당비서가 지배인과 함께 책임질 각오를 해주는것이 유일한 방도였다.

그는 어떤 혐오감비슷한 분기를 누르며 전주석을 곧바로 쏘아보았다.

《비서동진 광산이 죽어도… 그 자릴 내놓기 싫습니까?》

《싫소!》

《그렇다?!》

갑자기 전주석이 휴계실탁상을 쾅 쳤다.

《못 내놔! 당이 믿고 맡긴 중임인데 어디라구?… 나도 당신도 내놔선 안된단 말이요!》

벼락치는듯 한 그 소리에 직관실문이 펄쩍 열리며 화판을 잡은 직관원이 뛰여나왔다가 뿔질하는 황소들같이 맞버티고선 두 일군을 발견하고는 황황히 도로 숨어버렸다.

전주석은 그 한마디 고함으로 기력이 싹 연소되여버렸는지 대번에 어깨가 축 늘어져서 한팔로 창턱을 짚고 컹컹 마른기침을 터뜨렸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연구실관리원의 은근한 노래소리가 들려오고있었다.

그래도 먼저 마음을 수습한것은 전주석이였다.

《용서하십시오, 소래기 쳐댄걸…》 그가 나른해진 목소리로 그러나 사뭇 언짢게 입을 열었다. 《난… 지배인동무의 그 목을 내놓는다는 소리가 영 질색이였소. 그렇게 홀홀히 물러설 생각이면 애당초 감당못하겠다고 맡지 않는게 옳지. 목은 왜 내놓고 광산은 왜 죽인단 말입니까?》

그다음 렴진욱의 팔소매를 슬며시 잡아끌었다.

《내 사무실로 갑시다.》

하루사업총화나 부문당, 세포비서모임때를 내놓고는 아예 사무실에 들어앉는것을 딱 질색하는 전주석이여서 렴진욱도 무슨 사업토의건 현장에서 하는데 익숙된터라 좀 미심쩍어졌다.

전주석은 사무실에 들어서자 곧추 한 서류장을 열고 별로 고르지도 않고 두툼한 문건철 하나를 끄집어내여 책상우에 펴놓았다. 렴진욱은 겉표지를 보고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연하광산개발과 운영과정에 주신 무려 수십여차에 달하는 교시와 말씀철이라는것을 알았다. 전주석은 어느 한 페지를 단번에 번지더니 렴진욱앞에 밀어놓았다.

《이 대목을 주의해서 읽어보십시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80년대 중엽 어느 한 경제일군협의회때 연하광산생산실태를 료해하시다가 장거리삭도의 쇠바줄이 부족하여 수송에서 지장을 받는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나라의 금속수요가 급속히 커가는 조건에서 지체없이 쇠바줄을 해결해줄데 대하여 하신 교시였다.

문제는 그 다음대목에 있었다. 수령님께서는 그때 계속하시여 삭도탑을 나무로 세웠다는데 오래 견디지 못할것이라고 그러니 광산으로 가까이 들어가는 철길부설을 빨리 다그치라고 가르치시였다. 삭도를 세울 때 그 투자가 너무 엄청나 준령횡단삭도이지만 철강재대신 통나무를 리용함으로써 자금을 훨씬 줄일수 있은것이였다.

《그래, 어떻습니까?》

전주석이 약간 흥분된 어조로 물었다. 렴진욱은 미처 대꾸할 경황이 없었다. 충격이 너무도 커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 벌써 장거리삭도의 수명을 내다보시고 철도인입선부설을 다그칠데 대한, 즉 삭도가 페기될 후일의 정광수송대책안을 세워주신것이였다.

그럼에도 자기는 삭도가 지금껏 비교적 정상적으로 가동해왔으므로 현실적절박성을 가지고 이 교시의 자자구구를 깊이 새겨보지 못한것이 아닌가.

어버이수령님의 예견대로 나무로 세운 삭도탑들은 지금 썩어가고있었다. 한편 철도는 연남령이 가로막혀있어 그러지 코앞까지 들어온 상태라고 할수 있었다. 그러니 아직까지도 국가적투자의 엄청난 규모가 아까와 숱한 자재설비며 전기를 계속 랑비하며 삭도를 운영하여야 하겠는가? 대답은 명백했다. 수령님의 예견성있는 가르치심이 있지 않는가!… 놀라운것은 좀전까지도 삭도페기를 펄쩍 뛰며 반대하던 전주석이 다름 아닌 이 교시를 깊이 연구하고는 자기더러 다시 음미해보라고 권고한것이였다.

《뭘 그렇게 노려보시오?》 전주석이 코살을 찡긋거리며 따져물었다.

《저 령감의 도깨비속을 모르겠다 그거겠지요? 그래, 옳소. 삭도페기가 우리 수령님의 뜻이였다는건 명백합니다. 하지만… 우에 앉아있는 량반들도 다 그렇게 리해하고 밀어줄것 같습니까? 박치명부국장을 보오. 그는 틀림없이 성에서 삭도건설을 발기하고 투자한만큼 이제 페기하면 성의 립장이 난처해지지 않을가 해서 눈치를 보고있을겁니다. 자그만치라도 책임문제가 돌아오지 않을가 하고 타산하면서.》

《그러니… 어쩌자는겁니까?》

렴진욱이 짜증처럼 내쏘았다. 전주석의 두눈이 떠보듯 가늘게 쪼프려졌다.

《동무 생각은?》

《난 두려울게 없습니다. 수령님의 교시가 있지 않습니까.》

《그건 옳소. 하지만 삭도사업소페기가 그렇게 간단한건 아닙니다. 설비 한대를 페기하재도 숱한 문건놀음에 우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판에 옹근 하나의 공장과 맞먹거던요.》

《그래도 난 페기에 들어가겠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생산을 죽여서 삭도를 살릴순 없습니다.》

《목을 쳐도?》

《못 칩니다!》

느닷없이 전주석이 껄껄 웃었다. 그다음 렴진욱옆의 걸상을 소리나게 끄당겨앉으며 위혁하듯 손가락 하나를 곧추 세워보였다.

《이젠 우리 둘이 다 수령님의 뜻이였음을 확신했으니 됐습니다. 조직적으로 우리의 결심을 상부에 보고하고…》 그가 허리를 쭉 펴며 엄숙히 말을 맺었다. 《페기를 시작합시다!》

렴진욱은 눈뿌리가 화끈해났다. 전주석은 삭도페기를 부정한것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사상을 옳게 리해하고 그 뜻을 관철하는데 두려움없이 한몸 내댈 정신적준비가 되였는가를 재삼 확인하려 한것이였다. 당조직의 지지로 그 결심을 더 굳건히 해주려고 한것이였다.

《고맙습니다, 비서동지. 믿어줘서.》

전주석은 황황히 손을 저었다.

《난 오히려 지배인동무가 고맙습니다. 지배인동무가 삭도탑보수용나무를 가로채지 않았다면 내가 수령님의 이 교시를 다시 연구해볼 궁리나 했겠소. 난… 당일군으로서 면목이 없습니다.》

이제는 지난 일을 두고 가책에나 잠길 때가 아니였다. 렴진욱이 먼저 성큼 일어났다.

《그럼 전 떠나겠습니다.》

전주석도 일어섰다.

《수고해주시오. 나도 곧 도당에 우리의 결심을 보고하겠습니다.》 그 다음 무엇이 미타한지 이마를 문지르더니 슬쩍 보태였다. 《아까 내가 한 부탁을 잊지 마십시오, 광부들앞에서 강연을 해야 한다는걸. 그것도 아주 중요하오. 빠를수록 좋습니다.》

…밤을 꼬박 패여 벌린 긴장한 스물네시간의 해체전투끝에 렴진욱은 마광기에 쓸 전동기와 배전반 등 당장 필요한 설비들을 다 싣고 다음날 점심무렵 광산으로 돌아왔다. 나머지 설비들은 업무부지배인의 지휘하에 계속 해체하도록 하였다.

그길로 곧장 선광장으로 차를 끌고가던 렴진욱의 눈에 살림집기초닦기장전경이 띄였다. 예정대로라면 벌써 반반히 밀었어야겠는데 절반쯤밖에 되여있지 않았고 나머지 땅에는 아직도 두채의 낡은 집이 시커먼 옹이처럼 떡 버티고있었다. 광산에서 흔히 선광장마을이라고 하는 곳이였다. 그곳에 시범적으로 새 살림집 40동을 먼저 짓기로 했던것이다.

《내 뒤따라갈테니 먼저 가서 설비들을 부리시오.》

렴진욱은 차에서 내리자 급한 경사길을 징겅징겅 내달려 기초닦기장에 이르렀다. 마침 그 작업을 책임진 젊은 건설과장이 불도젤곁에 측량기를 뻗쳐놓고 측량공들과 손세를 써가며 무엇인가 토론하고있었다. 불도젤운전수는 열어젖힌 문짝으로 다리를 길게 내뻗치고 누워있는 품이 잠든것 같았다.

눈꼬리가 반쯤 치켜올라간 지배인이 쑥 나타나자 건설과장은 흠칫 어깨를 움츠리더니 발을 걸채이며 달려왔다.

《야단났습니다.》하고 그가 렴진욱의 눈치를 살피며 보고했다. 《저 두 집이 못 나가겠다고 딱 뻗댑니다. 그럭저럭 한 집은 이사짐을 꾸렸는데 다른 집은 주인이 없어놔서… 채광의 김청주를 아시지요?》

렴진욱은 눈꼬리가 더욱 치켜올라갔다. 놀라운 일이였다. 청주야말로 남의 집 웃방살이를 하느라고 살림집의 절박성을 제일 크게 느낄 사람이였다. 어찌보면 그의 집을 돌아보고 새 살림집들을 지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뻗대는 리유는?》

《그건… 간부들 집이나 짓고말겠는데 괜히…》

《추위가 닥치기 전에 끝내야 할게 아닌가!》

끝내 렴진욱의 입에서 노성이 터져나왔다. 불도젤운전수가 화닥닥 뛰쳐일어났다. 그 서슬에 얼굴을 가렸던 모자가 판사슬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건설과를 총동원해서 청주네 이사짐을 꾸리오.》

소동이 일어났다. 대낮에 잔것으로 하여 뒤가 켕겼는지 불도젤운전수도 열심히 들락거리며 이사짐을 날랐다. 그를 욕할 리유는 없었다. 밤에도 잠을 못 자며 집터닦기를 했다는것이 충혈된 그의 눈이 다 말해주고있었다. 류병근네는 이미 짐을 옮겼기때문에 청주모자네의 간단한 살림도구들은 잠간사이에 길옆까지 나갔다. 그때까지도 주인은 나타날줄 몰랐다.

《청주 어머니라도 있겠지?》

당장 철수작업을 시작하고싶었으나 렴진욱은 길섶에 뎅그라니 쌓인 이사짐을 보자 너무 모진것 같아 누구에게라없이 물었다. 건설과장이 나섰다.

《저, 기사장동지네 웃방에 들기로 했으니 아마… 제가 갔다올가요?》

건설과장은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냅다 달려갔다가 잠시후 역시 뽀얗게 달려왔다.

《자긴 그저 새집을 준다면 고맙기만 하다면서… 이사짐걱정은 말라고 눌러앉혀두었습니다.》

《그럼 됐소.》

렴진욱은 제먼저 불도젤운전칸에 뛰여오르자 와르릉― 발동을 걸었다. 한때 기능공학교의 교원도 해본적이 있어 다루지 못하는 기대가 없는 그였다. 무엇보다 멀지 않아 닥쳐올 겨울이 그의 가슴을 옥죄였다. 그때까지 살림집들을 완공 못하면 집을 낸 세대들이 남의 집 웃방살이로 겨울을 보내야 할것이다. 렴진욱은 이제와서야 강연에 출연할것을 권고하던 전주석의 말을 삭도페기를 구실로 스쳐버린것이 후회되였다. 때늦긴 했지만 오늘 밤중으로 무조건 강연을 조직하자. 그러되 지금만은!…

불도젤전면삽날이 벽체를 들이밀기 시작하자 나무로 지은 집은 몇번 움씰움씰하다가 단번에 와르르― 무너져나갔다. 먼지기둥이 뽀얗게 치솟았다.

《지배인동지, 어서 피하십시오. 제가 하겠습니다.》

급해맞은 운전수가 조종간을 빼앗으려고 손을 뻗쳤다.

《저리 치워!》

점심참이 다 되였는지라 어느 사이 구경군들이 하얗게 모여들었다. 조무래기들이 더 성수나서 이쪽저쪽으로 날뛰였다. 렴진욱은 조종간을 틀어쥔 주먹에 더 힘을 주었다. 그래, 다 보라, 이 지배인이 어떤 결심을 했고 어떻게 실천하는가를, 수천세대에 달하는 낡은 집들을 이렇게 다 밀어버리고 새 세기에도 손색없는 희한한 광부도시가 일떠설 때 바로 저 조무래기들처럼 온 광산이 기뻐 춤출것이다.

무너진 집의 재목을 삽날로 말끔히 걷어냈을 때였다. 불도젤의 앞시창에 누군가가 떡 막아섰다. 청주였다. 어디에 갔다 나타났는지 허리춤에 바줄이 데룽거리는 괴이한 차림새였는데 감탄하리만치 미끈하게 잘 생긴 얼굴복판에서 두눈이 불덩어리처럼 이글거리고있었다.

《직권행삽니까?》 입술을 푸들푸들 떨며 청주가 사납게 울부짖었다.

《이젠 나같은건 사람으로도 안 본다는거지요? 좋습니다, 이런 전횡을 난 그냥 놔두지 않을테요. 우에 반영할테란 말이요!―》

마감말은 하늘을 찌르듯 불끈 쳐든 주먹처럼 푸르르 떨리며 메아리쳤다. 청주는 획 돌아섰다. 그다음… 나타날 때처럼 그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렴진욱은 돌처럼 굳어졌다. 《직권행사》!… 청주의 의식속에 비껴든 자기의 모습은 바로 그 네글자로 함축된것이였다. 그렇다면 저 구경군들모두의 눈에는?…

공교롭게도 렴진욱은 사람들속에서 옥준보로인의 시선과 딱 마주쳤다. 포근한 하얀 바지저고리차림인 로인의 손에는 불도젤사슬에 짓이겨진 농구나무가지가 들려있었다. 무엇인가 섬찍한것이 렴진욱의 가슴을 얼구었다.

《농구라는게 뭐 볼품도 없구 맛도 신통친 않지. 허나 이 연하땅에 뿌리내리고 살려는 이 고장사람들의 마음이거던.》

그것은 옥준보로인이 늘 외우는 말이였다. 그것을 자기는 여겨보지도 않고 짓이겨치운것이였다.

옥준보로인이 불도젤앞으로 지척지척 다가왔다. 로인의 눈빛은 추연했다. 그는 말없이 고개숙이는 렴진욱에게 천천히 도리질을 해보였다.

《여보게, 지배인. 좋은 일을 하면서두 이게 뭔가. 사람의 가슴은 한치라두 심장은… 천길깊이에서 뛰는 법이네. 깊이 파보라구, 깊이!》

렴진욱의 고막속에서 무엇이 우뢰치는듯 했다. 그의 눈에 농구나무의 짓이겨진 가지에서 방울방울 슴솟아나오는 맑은 진액이 섬찍하게 안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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