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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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양골터밭의 초막에서 씨륵거리는 풀벌레소리를 벗하며 온밤 책을 뒤적거리거나 달갑지 않은 추억의 갈피를 번져볼 때에는 그래도 담배맛이 쓰지 않았었다. 오히려 그것이 유일한 위안이여서 때로 꿀처럼 달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끄물끄물 피여오르는 담배내굴에 눈이 쓰렸고 가슴도 쓰렸다.

류병근은 쿨렁쿨렁 기침을 깇다말고 그만 담배를 재털이에 비벼껐다. 쓴 담배, 쓴 과거… 그러면서도 그의 손은 어느 사이 또 되초가 가득 담긴 담배통쪽으로 뻗쳐졌다.

《아버지, 이젠 그만 피우세요.》

아들의 측은한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리니 아들은 이불밖에 두눈을 내놓고 아버지쪽을 초롱초롱 바라보고있었다.

《너… 다 들었느냐?》

그랬을줄 번연히 알면서도 류병근은 가슴을 조이며 물었다.

《전 지배인동지가 고마왔어요.》 아들의 목소리가 울먹거려졌다.

《아버지앞에 사죄할게 없으면서도… 잊지 않고 찾아와주었어요. 아버지도 그런 용기를 지니세요. 이까짓 다리야 병신이 되여 절룩거린들 뭐래요. 그저 아버지만 떳떳하면 전… 행복하겠어요!》

괴로움에 심장이 터질듯 하여 류병근은 움쭉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거라… 자거라…》

밖에 나서니 소슬한 가을바람을 타고 마광기소리가 밤공기를 흔들며 가슴에 파고들었다. 눈물겹도록 그리운 류화수소냄새를 반사적으로 상기시켜주는 유혹적인 메아리였다. 흐느낌같은것이 치밀어올랐다. 바로 그 류소냄새를 버린 이 못난 아버지때문에 아들도 저렇게 된것이였다.

그날 회양골에 있다가 아들이 다리뼈를 상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류병근은 천방지축 집으로 달려왔었다. 기신없이 쓰러져있을줄 안 아들은 방에 없었다. 붕대를 감은 다리에 쌍지팽이를 짚고 절룩거리며 작업장에 다시 나갔다는것이였다.

《다 령감탓이우다, 령감탓.》 부엌바닥에 쪼그리고앉아 눈물을 씻던 안해가 지청구를 했다. 《애비때문에 사람들보기가 늘 부끄럽다던 애인데 그냥 누워있을상싶소? 이젠 제발 정신일랑 차리시우.》

류병근은 속이 찔리였으나 짐짓 화를 벌컥 냈다.

《망할 자식같으니. 애비가 어떤 수모를 받았게 그따위 머저리짓을 해?》

그 역시 때늦은 후회로 애간장을 태우고있던 참이였다. 그러나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들어가기는 부끄러웠고 자존심도 상했다. 처음 사표를 낼 때만 해도 과학을 돈아래가치로밖에 쳐주지 않는 광산에 침뱉을 용기를 시위했던 그였다. 이제 와서 그 립장을 철회한다면 그자신이 과학을 모독하는것으로 되기도 할것이다.

이젠 장가도 들어야 할 아들이건만 요즘에는 열이 나면서 잘못 붙은 뼈가 쏘기까지 한다며 누워있다. 그건 그럭저럭 낫는다쳐도 그 아들이 절룩거리며 한생을 갈 때 의지할 지팽이는 무엇이겠는가?…

갑자기 누군지 류병근을 왈칵 떠박질렀다. 술내가 확 풍겼다.

《아― 류아바이시우?》

청주였다. 머리칼이 흐트러져 이마를 덮은 청주는 몸을 가누느라고 손을 허우적거리면서도 제법 미안쩍은 사죄를 했다.

《호―온자 마셔서 정말 아―안됐어요.》

《이 사람, 빨리 들어가 눕게. 그 꼴을 보면 사람들이 뭐라겠나, 응?》

《내 꼬―올이 어드래서요? 지배인―이 만들어준 꼬―올인데.》

《됐다니까, 내 부축해주지.》

《싫―수다!》하고 청주가 손을 홱 휘둘러댔다. 《난 부축받을 필요두 없구― 부축해줄 사람두 없―는 놈이야요, 없―는…》

청주가 휘청거리며 웃방으로 사라지자 류병근은 대중없이 걷기 시작했다. 가슴이 아팠다. 한 젊고 총명한 수재가 그만 타락의 길에 들어서는것만 같았다. 광산을 살리려는 고결한 의도로부터 시작한 방수벽채굴안이 모험으로, 《흉심》으로 락인되여!… 어쩌면 그리도 자기 인생과 비슷해지는것인가?

…송림공업대학 화학학부를 졸업한 류병근은 재학때부터 성적이 뛰여나 교원이 혹간 자리를 비울 때에는 대신 강의를 집행하는 정도였다. 하여 졸업후 1년도 못되여 봉산화학공장의 한 실험실 실장으로 소환되기까지 했다.

류병근은 자기가 몸집도 체소하고 얼굴생김마저 사내싼데 없이 쪼물짝한것을 은근히 한탄할 때가 많았었는데 그 소환이 장래의 큰 성공으로 이어지리라 보았는지 혹은 그저 착실한 인간됨에 평생 마음을 의탁할수 있다고 믿었는지 송림시의 한다하는 미인처녀가 부득부득 봉산에까지 따라와주었다. 분에 넘친 고마운 《은총》이였다.

그 모든것은 류병근으로 하여금 큰 뜻을 세우고 성공해야 하리라는 야심에 가까운 결심을 자래우고 촉발시킨 매개물로 작용했다.

어느날 그는 공장일군들의 도리질도 무시하고 자기의 환상이 무르익힌 아주 모험적인 실험을 벌려놓았다. 그것만 성공하면 우리 나라의 화학공업은 세상에 또 한번 큰소리칠 새로운 경지에 올라설것이였다. 결말은 비극적이였다. 무서운 폭발과 함께 일어난 화재가 실험실은 물론 곁달려있던 원료창고까지 말짱 태워 막대한 물질적손실을 가져왔다. 그것이 안해에게는 어쨌든 타격으로 될것이라고 걱정했는데 그 녀인 역시 아주 대범하게 나와주는것이였다.

《이 못난이때문에 당신을 괴롭혀서… 면목이 없소.…》

《절 잘못 보셨군요. 바로 당신이 사심없는 못난이기때문에 맘이 끌린거예요. 그저 제 주머니 채울 욕심만 내지 마세요.》

그것은 류병근에게 형언할수 없는 큰 고무이고 지지였으며 그만큼 인생의 큰 빚으로 매달리기도 했었다. 그랬던만큼 연하광산의 개발소식은 그를 흥분시켰다. 새로운 재생의 기회였던것이다. 류병근은 주저없이 그곳으로 자진하여갔다. 당조직은 그를 믿고 즉시 선광실험실 실장으로 등용시켜주었다.

그는 힘껏 일하였다. 그것은 인차 성공으로 이어져 연하광산에만 고유한 구조의 광물을 효과적으로 분리해내는 안정된 부선조업체계가 세워졌다. 신심을 얻은 류병근은 련속 새로운 착안을 하고 그 도입을 추진하기 시작했는데 그만 또 사고를 일으키고말았다. 인생을 새롭게 일떠세울 욕망에 조바심친탓이였다.

그때 광산에는 당시 성의 한 처장이였던 박치명이 내려와있었다.

그는 류병근을 불러 경력을 끈끈히 따져묻고나서 씁쓸히 중얼거렸다.

《용케 선광을 배워냈지만 어쨌든 거리가 멀어. 그러니 망태기를 치지.》

후에 들으니 박치명은 자기에 대한 숭배자이고 대학후배인 김현길을 내세우기 위해 류병근의 미숙함을 광산일군들에게 적잖게 과장하여 불어넣었다고 했다. 류병근이 알고있는 김현길은 박치명이 대학졸업론문으로 제출한 선광리론만을 절대시하는 앵무새였다. 즉 대학이라는 글자의 《큰 대》를 《대신할 대》로 바꿔넣어야 할 얼치기기사였다.

만약 그때 기사장이였던 렴진욱이 자기에게 처벌을 주어 광산을 떠나게만 만들지 않았더라면 류병근은 김현길을 현장기사로 돌려치웠을것이다. 실지 광산을 사직한 후에도 그는 매일같이 선광직장 생산실태를 알아보군 했는데 김현길은 종래의 부선조업체계를 그대로 우려먹었을뿐 실수률이나 품위제고를 위한 시약체제개선에는 한번도 손을 대지 못하고있었다.

그것이 안타깝고 분하여 류병근은 몇번이나 광산당위원회에 김현길의 무능을 고발하는 편지를 썼었지만 매번 안해한테 제지당하군 하였다.

《쫓겨난 사람의 말을 누가 믿는다구 그러시우? 앙심품구 험터구 씌운다는 뒤손가락질이나 받지. 정정당당한 길을 택하시라구요.》

《정정당당한 길》이란 협애한 감정을 버리고 다시 입직하라는, 지금껏 지꿎게 보채는 안해의 권고였다. 그건 안될 말이였다. 다만 편지놀음은 포기할수밖에 없었다. 안해의 말처럼 광산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자기는 일종의 배신자였는데 배신자의 상소란 자기 합리화를 위해 그 누구든 걸고늘어져 죄인으로 둔갑시키는 비렬한 요설이상이 아닌것이다.…

불빛이 눈을 찔렀다. 고개를 든 류병근은 자기가 어느 사이 광산분석실앞에까지 왔다는것을 알았다. 오랜 친구인 머리가 희슥한 분석실장이 책상우에 고개를 수그리고 무엇인가 재빨리 쓰고있는것이 창문으로 빤히 들여다보였다.

《흠, 젊었군. 아직도 젊었어.》

류병근은 저도 모르게 심술궂게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곧 자기의 그 심술에 화를 냈다. 남에 대한 부러움이라는것도 자기 처지가 한탄스러울 때는 곧잘 시기심으로 둔갑하는것이다. 그런 감정을 류병근은 몹시 경멸해오고있었다.

따져보면 발길이 여기까지 절로 옮겨진것이 죄였다. 친구에게서 어떤 위안이라도 받고싶었던 애달픈 심리가 빚은것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왔으니 얼핏이라도 들어가봐야 했다. 그럼에도 차마 발이 떼여지지 않았다. 자기 꼴이 몹시 궁상스러워보여서였다. 그렇다고 되돌아갈데도 없었다. 집에는 아들의 절절한 호소의 눈길이 있고 렴진욱이 남긴 위압적인 그림자까지 떠돌고있을것이 아닌가.

끝내 류병근은 체면을 무릅쓰고 슬며시 문을 두드렸다. 분석실장은 무심히 고개를 들었다가 착각했다고 여겼는지 다시 책상우에 눈길을 박았다. 류병근은 자신에게 다시 화를 내며 이번에는 벌컥 문을 열고 방에 들어섰다. 비로소 분석실장이 《허어―》하고 탄식비슷한 소리를 내며 류병근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자네가 어떻게 여길 다?…》

《그저… 소풍을 할겸… 아니, 처를 마중나왔다가 불빛이 보이길래 잠간…》

《처?…》

류병근은 낯이 뜨끈해서 자기의 혀바닥을 저주했다. 사실 안해는 류병근이 회양골에서 내려오자 마침이라며 도소재지에서 대학공부를 하는 둘째이자 막냉이인 아들 면회를 갔다. 아버지를 닮아서 머리는 좋은데 너무 약골이라며 노상 끙끙 앓던 참이라 춤추다싶이 달려간것이였다.

그러나 오늘 돌아오마고 약속한것도 아니였고 광산분석실은 도회지로 통한 큰길과는 왕청같은 방향인 선광장산턱밑에 자리잡고있는것이였다.

《좌우간 이리 와앉게.》

분석실장은 미묘한 웃음을 입가에 그리며 자리를 권했다. 그다음 우선우선하게 말을 붙였다.

《뭐 회양골에서 부자로 소문났다며?》

《?…》

《강냉이터밭농사에선 실농군들 찜쪄먹는대? 그래서 집안창고가 넘쳐난다고 혀들을 차더군.》

《그따위 실없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니…》

류병근이 부끄러움에 못 이겨 짐짓 성을 내자 분석실장은 롱을 집어던지고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여보게 병근이, 난 처음 놀랐네. 너무 늙어서 알아보겠더라구?》

이번에도 류병근은 불끈해났으나 할 말이 없었다. 우선 동갑인 친구의 얼굴이 주름살도 거의 없이 매끈한것이 새삼스럽게 눈에 밟혀와 자신이 더욱 구슬퍼졌다. 그의 말처럼 《실농군 찜쪄먹게》 이악스레 터밭을 가꾼탓만도 아닐것이다. 애초에 일손을 놓고보니 위안거리가 없어 호미를 잡아보았을뿐이지 구복을 채우자는 욕심을 부려보지도 않은 그였다.

《왜 늙는지 아나?》하고 친구가 측은하게 계속했다. 《그건… 락이 없기때문일세. 그 락이란게 뭐겠나. 사랑할게 있구 거기에 사랑을 한껏 쏟는거지.》

친구는 결국 완곡한 말로 류병근더러 광산에 다시 나와야 한다고 설교하는것이였다. 한때 그들은 손을 맞잡고 광산의 첫 부선조업체계를 완성했었다.

친구가 피뜩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더니 량해를 구했다.

《조금만 기다려주게. 내 몇줄만 더 쓰고… 그다음 실컷 회포를 나눕세.》

《쓰라구. 난 가야겠네. 어서 쓰라구.》

위안은커녕 로골적인 동정과 비난만을 더 듣게 될 일이 급했던 류병근은 친구가 만류할 사이도 없이 황황히 분석실을 뛰쳐나왔다. 그리고는 다시 어둠속을 허청허청 걸었다. 이제는 울적한 기분이 뼈에까지 사무쳐들었다. 실패만 거듭해온 인생, 그것이 자신의 숙명일진대 이제 무얼 더 새롭게 사랑한단 말인가?

불쑥 아들의 애원이 귀속을 파고들었다. 《그저 아버지만 떳떳하면 전 행복하겠어요!》… 과연 아버지의 긍지가 아들에게 일생의 지팽이로 되여줄수 있을가?…

이튿날 아침 광산병원에서 구급차가 들이닥쳐 아들을 도병원으로 후송해갔다. 간호원의 부축을 받으며 방을 나갈 때 아들은 아무 말없이 아버지를 한동안 돌아보았는데 그것이 류병근에게는 이런 호소처럼 여겨졌다.

《아버지, 제가 완쾌되여 돌아올 때 아버진 어떤 모습으로 절 맞아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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