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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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무렵 옥수금은 중학동창인 광산병원의사 렴정옥의 전화를 받았다.
압록강에 나가 목욕하지 않겠느냐는것이였다. 그는 귀가 솔깃했으나 한편 몸이 옹송그려지기도 했다. 강기슭이자 곧 운광도로이고 그다음이 또 곧 광산마을이여서 압록강은 처녀들에게 짜장 《위수구역》이 아닐수 없었다. 직장마다 있는 목욕탕을 둬두고 굳이 세상 보란듯이 나서자는것도 수상쩍었다.
《그러다 누구 눈에 들키기라도 하면 어쩔려구?…》
수금이 제김에 목소리를 죽이며 속삭이자 수화기에서는 픽 코웃음이 터져나왔다.
《얘, 별앞에서도 수줍다는거냐? 글쎄 좋은 자리가 있다니까.》
흔히 북방의 날씨가 화제에 오르면 사람들은 먼저 령하 30~40°를 오르내리는 엄혹한 추위부터 련상할것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는 찌는듯 한 여름철염열이 이 고장 사람들을 괴롭힌다면 잘 믿지 않을것이다. 바다와 멀리 떨어진 나라의 최북단오지에만 있는 전형적인 대륙성기후탓이였다. 특히 압록강상류어름에 자리잡은 이곳 연하땅에는 거대한 로천광산이 펼쳐져있어 암석투성이채굴장이며 사방의 버럭산들이 낮동안 화독처럼 달아올라서는 자정까지도 후꾼후꾼한 열기를 뿜어올리군 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중복절기였다.
종일 숨막힐듯 한 더위에 시달린 수금에게는 정옥의 꼬드김이 몹시 유혹적이였다. 제비꽁지같은 머리태를 탈싹거리던 소녀시절이 끝난 후로는 거의 뛰여들 엄두를 못내본 압록강!… 거기에 호기심 또한 수금을 부채질했다. 정옥이야말로 아주 내성적이고 방정하기로 소문난 처녀이건만 어찌하여 이런 돌발적인 용기를 내게 되였을가? 혹시 아버지의 일이 잘되여 그 기쁨을 함께 나누려고?
정옥의 아버지는 이곳 연하광산의 기사장이였다. 얼마전 지배인이 년로보장으로 넘어간터여서 광산지휘권은 사실상 그의 손에 쥐여져있었다. 그 기사장이 며칠전 갑자기 평양으로 불리워올라갔는데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지배인으로 임명될거라고 장담했다. 기술이 능하고 경험도 많으며 손탁까지 드센 일군으로서 광부들의 총애를 받고있으니 달리 될수 없다는것이였다. 물론 개중에는 다른 견해를 피력하는 축도 있었다. 즉 생산이 제대로 안되는 책임을 지고 해임처분을 받기 쉽다는 불길한 추측이였다. 전혀 근거없는 소리도 아니였다. 《고난의 행군》이후 광산운영이 힘겹게 진행되고있었던것이다. 그래서 일부 동요하는 사람들까지 나타나는 형편이였다.
수금이와 함께 일하는 선광실험실의 은별언니가 바로 그러한 부류에 속했다. 그 언니는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수금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난 읍에 시집가기로 결심했어. 광산을 버린다고 사람들이 뒤손가락질 할테지만… 차라리 그 편이 마음편할것 같아.》
기능이 높은 언니였다. 수금이 처음 입직했을 때 오묘한 선광실험공정을 하나하나 배워준것도 그였다. 무엇보다 은별언니는 자기 직업에 대한 깊은 애착을 심어준것으로 하여 수금의 마음속에 감사의 정으로 새겨져있었었다. 그러던 언니가 별안간에 왜?… 처녀가 시집가는것은 당연한 리치이다. 하지만 《차라리 그 편이 마음편하다》는 표현속에는 기울어져가는 광산꼴을 차마 보아낼수 없어 도망친다는 속대사가 진하게 깔려있었다.
수금은 그 언니를 설복해내지 못한것이 슬펐다. 또 설복할만 한 확실한 전망을 내다볼수 없는 일이 억울했다. 그렇다면 우리 광산의 래일이 나자신에게도 암담하다는 느낌밖에 더 없단 말인가? 기사장동지가 지배인으로 임명받고 돌아온다면 필경 좋은 방책을 강구해내련만…
수금이 약속된 강기슭도로에 나갔을 때 사위는 이글거리는 주황빛노을속에 온통 휩싸여있었다. 그 빛갈이 어찌나 진하고 선명한지 넘실거리는 압록강수면은 거대한 용암이 설레고 뒤채고 반짝반짝 불꽃을 튕기는것 같았다. 그 《용암》이 광산마을을 바투 품어안고 우뚝 치솟은 연두봉의 락타등같은 정점에서 폭포처럼 쏟아져내리는듯싶어 더욱 장관이였다. 늘 황홀한 심정으로 쳐다보게 되고 그속에 풍덩 뛰여들어 온몸에 휘감아보고싶어지는 연하땅의 노을이였다. 그러면서도 또 늘 아쉬움을 자아내는 노을이기도 했다. 연하땅을 앞뒤로 꽉 둘러싼 절벽같은 산발때문에 아침이든 저녁이든 노을은 예고없이 급격히 피여올랐다가는 역시 급격히 자신을 짓태워버리고는 스러지군 했던것이다. 그래서 충동적인 광산처녀들은 미역감는 식으로 《노을감기》놀이를 경쟁처럼 벌리기도 했다.
정옥은 시간을 정확히 타산한듯 그 노을이 피빛으로 꺼져가는 순간에 나타났다. 그러고도 미타했는지 수금을 마을에서 근 5리길인 채굴장너머의 어느 으슥한 강변개버들숲속으로 끌어들였다. 어딘가 심각해보이는 표정이였다. 그것이 수금에게는 몹시 우스웠다. 이 애도 남들이 엿볼가봐 속은 켕긴게지?… 수금은 어스름속에서 소리없이 살금살금 웃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경계심에 감염되여 자꾸 사방을 흘끔거리게 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다행히 개버들숲속은 이따금 쩜벙거리는 밤물고기 튀는 소리외엔 인적이란 없었다. 등뒤 로천채굴장쪽에서 광석을 퍼담는 외로운 굴착기소리가 간간이 흘러올뿐이였다. 날도 어느덧 캄캄해졌다.
그제야 용기가 솟은 수금은 제먼저 옷을 벗어던지고 냉큼 물속에 들어섰다. 순간 어쩔수 없는 호들갑스러운 비명이 튀여나왔다.
《앗, 차거워!》
선뜩한 랭기가 머리끝까지 쩡― 누비며 취할듯 한 달콤한 진저리를 불러일으킨것이였다. 역시 산골강물이 달랐다.
《아유― 좋아!》
수금은 다시한번 흐득 느낀 다음 풍덩 물속에 몸을 던졌다. 그러자 수면우에서 흥떡거리던 별들이 잔 수은알갱이들처럼 부서지며 령롱하게 반짝거렸다. 동시에 해빛구경조차 두려워해온 자기의 조약돌같이 단단한 가슴을 렴치없이 어루만지는 물결의 짜릿한 간지럼… 수금은 숨죽여 키득거리며 눈을 꼭 감았다. 흡족해서 죽을 지경이였다. 자기가 처녀인것을, 하여 사내들처럼 대낮에도 구속없이 미역감는 호사를 못 누리는것을 은근히 한탄해온것이 우습고 어리석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바로 이 순간의 형용할수 없는 쾌감을 아꼈다가 기껏 맛보라고 밤이 있어준게 아닐가. 밤이야말로 처녀들의 세계인가봐.
《넌 나빠.》
수금은 물결에 떠실려 흐트러지는 머리칼을 휘감아올리며 짐짓 심술궂게 속삭였다.
《이런 밤목욕재미를 여태 나몰래 혼자 즐겨왔지, 그렇지?》
그 순간이였다. 철썩거리는 밤물결소리를 누르며 난데없는 웅근 노래소리가 구을러왔다.
…
어야 더허야 어야 더허야
압록강 2천리에 노를 저어라
…
기겁한 수금은 미처 비명지를새도 없이 물속에 꼴깍 목을 틀어박았다.
심장이 화닥닥 들뛰였다. 지금껏 누구인가가 몰래 숨어서 자기들을 훔쳐보다가 참지 못하고 희롱해보는거라고 여긴것이였다. 무섬증에 사지까지 가드라들었다.
한동안이 지나서야 그의 눈에 먼 어둠속수면우를 흘러가는 한점의 등불이 비껴들었다. 비로소 수금은 그것이 밤떼목우에 세운 초막의 등불이라는것을 알았다. 노래는 다름아닌 그 떼목우에서 울려오고있었다.
강언덕엔 밭갈이하는 처녀들의 노래
전선으로 좋은 선물 보내주자네
이깔나무 참나무야 너도 가거라…
제법 굴림새 좋은 청청한 목소리였다. 수금은 마침내 가슴이 진정되였으나 감히 몸을 움직일 엄두는 내지 못했다. 대신 노래는 마음속에 깊이 젖어들었다. 압록강 푸른 물결우에 아낌없이 피를 뿌린 《이 나라 빨찌산들》에 대한 경건함과 바로 사연많은 그 압록강가에 태를 묻고 살아오는 자신에 대한 은밀한 긍지를 노래가 되새겨준것이였다.
떼목우의 등불은 이윽고 노래와 함께 여울목굽인돌이너머로 사라져버렸다.
《어쩜!―》
수금은 나직이 탄성을 내뿜었다. 그런데 똑같이 놀라고 똑같이 탄복했을듯싶은 정옥이쪽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놀래여 고개를 튼 그는 그때까지도 버들숲그늘속에 그린듯 앉아있는, 희미한 별빛속에서도 눈이 부실만큼 하이얗고 풍성한 자기 동무의 목과 가슴을 보았다. 시샘이 나도록 아름다운 자태였으나 왜서인지 그 거동은 수상쩍었다.
저 앤 밤떼목의 돌연한 출현앞에서도 몸을 숨기지 않고있었단 말인가?
《왜 그래? 혹시… 평양간 아버지 일이?…》
급히 정옥이앞으로 헤여간 수금은 그가 어둠속에서 시름겹게 고개를 젓는것을 가려보았다. 그다음… 정옥이 불쑥 되물었다.
《너… 련애해본적이 있니?》
수금은 찔끔했다.
《어마, 얜.》
《그래? 나도 없어.》
《설마?…》
수금은 믿어지지 않았다. 이런 멋쟁이처녀의사에게 어떻게 따라다니는 총각이 없을수 있단 말인가?…
늘 정옥이가 부러운 수금이였다. 흔히 《두부집딸같다》는 말로 표현되군 하는 뽀얀 살갗이며 늘씬한 키도, 은근한 부드러움과 지성이 내비치는 억실억실한 눈도, 사려깊은 성품도 다 부러웠다. 오죽했으면 선광실험실장이 《정옥선생은 텔레비죤방송야회같은데 한번 출연하면 온 나라 총각들이 상사병에 걸릴거요!》 하고 장담했겠는가.
하지만 난 어떤가. 감실감실 여윈 볼편에 소녀같이 작은 키는 말할것도 없고 허리마저 개미같아 치마란 치마는 죄다 줄여입지 않으면 안되는, 성미마저 변덕스러운 볼품없는 계집애일뿐이다.
《사실 널 여기로 끌어온건…》 하고 정옥이 긴 침묵끝에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어제 한 총각이 내게 편지를 보내오지 않았겠니.》
《련애편지?!》
《아니, 그 총각은… 그 동문 그저 제 몸에 나의 피가 흐르고있다는걸 잊지 않겠다고 썼을뿐이야. 그래서 고맙다고.》
《?…》
《국경경비대 사관이였어. 지난 겨울… 온통 피범벅이 된 그가 우리 병원에 실려와 구급처치를 받은적이 있었어. 한 어린애가 썰매를 타다가 얼음구멍에 빠진걸 발견했는데 그 동문 그 구멍속에 따라들어가면 물살에 밀려 둘다 되돌아나올수 없다는걸 깨달았대. 도끼를 얻으러 마을로 달려갈 짬은 없고… 그래서 얼음밑으로 떠내려가는 그 애를 따라가며 발로, 주먹으로 정신없이 얼음을 까기 시작했다는거야. 그렇게 까고또 까다나니 발목이 꺾어지고 손마디뼈도 다 부서졌어. 차마 눈뜨고 볼수 없는 그 주먹으로 어떻게 얼음을 까고 애를 건져낼수 있었는지… 무서운 동무였어. 바로 이 버들숲앞이 그 동무가 얼음을 깐 자리란다.》
숨마저 딱 죽이고 귀를 강구던 수금은 새삼스럽게 사위를 둘러보았다. 정옥이가 왜 굳이 이 먼곳으로 자기를 끌고왔는지 이제는 리해되였다. 절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거인같은 병사가 자기 주먹을 도끼마냥 휘둘러 얼음을 짓조긴 곳, 그 모습이 눈물겹게 그려졌다. 터지고 찢기는 손,으깨여져 하얗게 드러나는 뼈, 걷잡을수없이 흘러내려 얼음을 벌겋게 물들이는 피… 정말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무서운 의지력이였다.
《그래서? 그다음은 어떻게 됐니?》
수금은 절로 숨이 가빠올라 초조히 물었다. 어째서인지 정옥은 애매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다음은 군대병원에 후송되고… 후엔 제대되였지. 그뿐이야.》
《그뿐?》
수금은 저으기 약이 올랐다.
《그런 훌륭한 동무를 두고 그뿐? 감동도 안되고?… 그렇다면 뭣때문에 고민하는거냐? 사람들이 말하길 고민은 사랑의 시작이라고 하던데?…》
정옥의 입술이 이지러지는것으로 미루어 쓰거운 웃음을 짓는것 같았다. 그가 동안을 두었다가 쓸쓸히 내뱉았다.
《우리 병원에 입원하는 환자들은… 많은 경우 자기 일터에서 뜻밖의 위급한 정황을 막든가 동지들을 위해 한몸 내대다가 다치는 훌륭한 사람들이야. 그렇다고 그들을 다 사랑할순 없잖니. 그 동무도 같아. 그러면서도… 내 피를 수혈받은 그 동무가 불편한 손으로 일생 살아갈걸 생각하면 괴로와. 그 피가… 날 부르는것 같아 겁이 나!》
갑자기 정옥이 수금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이건 동정이지? 사랑은 아니지?… 대답해줘, 수금이. 난 그걸 알고싶어, 응?》
수금은 맹렬히 생각을 굴려보았으나 머리만 혼란스러울뿐 아무 대답도 짜낼수 없었다. 그 분야의 체험이란 전혀 없는 그였다. 굳이 꼽으라면 채광갱의 멋쟁이책임기사를 때없이 보고싶어하는 이상한 마음이 싹튼것뿐이였다. 그러나 통성은커녕 말 한마디 건네보지 못한 그 관계를 사랑이라는 신비스러운 부름과 결부시킬수는 도저히 없다. 애초에 《피가 부른다》는 말마디조차 그에게는 어리둥절할 정도로 신기했다. 그러니 정옥의 괴로움을 규정지어줄만 한 능력이 어찌 자기에게 있을수 있으랴.
《너 그걸… 아버지에게 털어놔봤니? 아니면 어머니…》
《일밖에 모르시는 우리 아버지?》 정옥이 짜증처럼 뇌까리고나서 몸을 쭉 폈다.
《자, 미역이나 감자. 그 문젠… 내스스로 해명해보겠어.》
자기 몸을 거미줄처럼 칭칭 얽고있는 그 모든 의혹과 고민과 지겨움비슷한 기분을 활 털어버리듯 정옥은 두팔을 쫙 벌려 심호흡하더니 첨벙 물속에 뛰여들었다. 그리고는 곧 몸을 틀어 위혁하듯 한손을 쳐들어보였다.
《그때까진 이 모든걸 비밀에 붙여줘. 우리 부모들께도, 알겠지?》
어느 사이 정옥의 미끈한 몸은 좀전 밤떼가 흘러내려가던 강심으로 철썩거리며 멀어졌다. 수금은 이미 미역감을 생각이 싹 사그라져버렸다. 몸까지 으시시해났다. 그만큼 써늘한 물속에 오래 들어가있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정옥에 대한 야릇한 노여움이 그를 사로잡고있었다. 어쩌면 해임처분을 받고 내려올지도 모르는 기사장동지, 그럼에도 그 딸은 아버지의 신상에 대한 가슴조이는 우려보다, 기울어져가는 광산의 운명에 대한 가슴아픔보다 사랑하지도 않는 한 총각의 편지에 더 신경쓰며 괴로와하고있다. 그것이 리해되지 않았다. 이럴 때 우리 할아버지라면 뭐라고 말할가.
《자고로 이 성스러운 압록강물을 마시고 산 사람은 자기만을 생각지 않았니라. 항차 우리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몸소 찾아오시여 개발해주신 귀한 광산이 아니냐!》…
자기의 할아버지한테서 갖은 귀여움과 함께 늘 엄한 신칙을 받으며 자라난 수금으로서는 결코 다른 대답을 얻을수 없을것 같았다. 그래서 동무의 일로 마음이 슬퍼지는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