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민족음악발전을 보여주는 명곡들
민중의 감정에 맞는 명곡 그것은 바로 민중이 리해하기 쉬운 통속적인 노래, 우리 민요에 바탕을 두고 부드러우면서도 아름답고 유순한 노래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명언 《명곡이란 들으면 들을수록 좋고 사람들이 누구나 다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여 들을수록 좋고 인상깊은 곡이 명곡입니다.》는 말끝마다 《명곡》, 《명곡》 하면서도 명곡이 무엇인지 모르고있던 작곡가들의 눈을 번쩍 틔워주는 유명한 명제이다.
인민들이 좋아하는 노래가 바로 명곡이며 국보적인 노래라는것이 이 명언의 진수로서 여기에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고 인민의 지향과 요구에 맞는 진정한 예술이란 무엇이며 후세에 길이 남을 국보적인 노래를 창작하기 위한 옳바른 길이 어떤것인가가 폭넓게 집대성되여있다.
이북의 노래에는 자주, 평화, 친선과 통일의 철학이 있다. 그로 하여 북의 예술은 누구나 처음 들어도, 수십년이 지나서 들어도 친근하게 느껴지는, 매력이 있는 진짜 예술이다.
이북에는 명곡으로 사랑받는 심장의 노래들이 수없이 많다. 이러한 노래들은 선률이 좋고 장단이 흥이 나며 화성에서 색갈이 있고 심장을 움직이는 감동이 있으며 랑만에 넘쳐있고 미래에 대한 락관으로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이러한 명곡의 힘은 무궁무진하다. 이북의 근로대중은 자기들의 감정정서에 맞는 명곡들에서 예술의 참다운 향유자로 내세워준 령도자의 위대함을 느끼고있으며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강성부흥의 새시대를 열어나가고있다.
관현악 《그네뛰는 처녀》에 깃든 사연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저서 《음악예술론》에서 《우리는 다른 나라 혁명을 하는것이 아니라 조선땅에서 조선혁명을 하는것만큼 음악을 한곡 연주하여도 우리 인민의 민족적감정에 맞고 우리 나라의 현실생활을 반영한 조선음악을 잘 연주하여야 한다. 우리는 연주를 우리 식으로 하여 우리 음악의 고유한 맛과 독특한 향기를 그대로 살리면서 우리 인민의 감정에 맞게 훌륭히 형상하여야 한다.》라고 지적하며 특별히 우리 식을 강조하시였다.
서양음악이 최고의 진리인줄로 알고 유럽식고전음악만을 경전으로 고집하고 공부해온 나에게 《음악예술론》은 우리 민족이 과연 무슨 음악을 원하고있고 민족을 위한 진정한 예술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아무리 기량이 출중한 연주가라 할지라도 민중이 즐겨듣는 우리의 민족적인 선률과 장단을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다운 예술인이라고 할수 없을것이다.
음악적으로나 기량면으로 볼 때 세계적수준에 있는 북조선의 유능한 예술인들을 우리는 너무도 모르고있었다.
국립교향악단의 지휘자인 김병화는 국립교향악단이 발전해온 지난날을 다음과 같이 감회깊게 회고하였다.《한때 사대와 교조의 흙탕물에 오염되여 인민들로부터 외면당하여오던 우리 교향악이 어떻게 되여 인민의 사랑속에 그토록 자랑차고 긍지높이 울려퍼질수 있었으며 그 터전은 어떻게 마련되였는지 사람들은 모를것입니다.
1970년 1월 2관편성에서 3관편성으로 도약하여 전반적음향형상을 세계적수준으로 끌어올려 우리 인민의 민족적정서와 시대적미감에 맞게 창조한 관현악 <그네뛰는 처녀>의 사상예술적성과는 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인 지도와 천재적인 음악적예지가 안아온 빛나는 결실이였습니다.》
그는 이어 국립교향악단은 해방후 나라사정이 어렵고 복잡하던 시기임에도 김일성주석이 사방에 흩어져있는 음악가들을 한사람한사람씩 불러모아 새 조선의 문화건설에 힘써달라고 조직해준 귀중한 예술단체라고 말한다.
1969년 6월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작곡가들에게 민요풍의 노래 《그네뛰는 처녀》를 관현악으로 연주해볼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과업을 받은 작곡가들은 흥분에 들떠있었으나 서양음악이 몸에 배인터에 막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있었으며 작품창작에서 전혀 진척을 보지 못하고있었다.
한것은 그때까지만 하여도 독립적인 관현악작품이라고 하면 서유럽의 교향곡이나 우리 교향곡이나 다 누구의 교향곡 1번이요, 2번이요 하는것밖에 들어보지 못했기때문에 그밖의 다른것을 창작할수 없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그사이 작곡가들이 써놓은 관현악곡을 하나하나 들어본 후에 다음과 같은 뼈아픈 지적을 해주시였다.
《관현악 〈그네뛰는 처녀〉는 틀렸습니다. 서양식으로 되였습니다. 중간부도 재미없고 종결부도 잘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분께서 서양식이라 하신것은 《그네뛰는 처녀》에 쓸데없이 다른 주제를 끌어들인것과 선률의 각을 떠서 본노래의 모습을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변형시켰기때문에 관현악을 듣고나면 노래의 선률이 자기 모습대로 들려오지 않고 동강나서 감정의 일관성을 주지 못하였기때문이였다.
이날 그분께서 특별히 지적한것은 우리의 예술은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예술이기때문에 인민대중이 쉽게 받아들이고 리해할수 있는 새로운 예술형식을 많이 탐구하여야 한다는것이였다.
이런 지적을 받은 후에 작곡가들은 나름대로 모든 노력과 지혜를 쏟아부었으나 생각처럼 신통한 결실은 나오지 못하였다.
그때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창작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일일이 풀어나가시였다.
그분께서는 약동적이 못되고 흥취가 나지 않는 문제, 조선장단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문제, 악기들의 음색이 통일되지 않고 안삼블수준이 낮은 문제, 조선음악의 색갈이 살지 못한 문제와 참고해야 할 작품까지 가르쳐주면서 문제해결방안에서부터 실현방안에까지 세심하게 지도해주시였다.
연주상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였다. 김병화지휘자는 민족음악의 특성을 살려보려고 민족음악의 대가라는 사람을 찾아가 민요의 특성과 장단에 대해서 배우기도 하고 민족음악의 흥취에 대해서도 의논하였다. 민족음악의 대가라고 자처하는 사람의 의견을 참작하여, 민요는 좀 느리고 편안하게 해야 제맛이 나고 조선장단의 흥취를 돋굴수 있겠다는 조언을 받아들여 그렇게 시험해보았다.
그러나 연주상 신통하게 달라진것은 없었고 흥취도 돋구어주지 못해 고민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렇게 되자 일부 작곡가들은 과연 《그네뛰는 처녀》와 같은 민요를 가지고 교향곡을 만들수 있을가 하고 동요하는데까지 이르렀다.
그런 고충을 헤아려보신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거의 매일과 같이 관현악단에 나와 지도를 주시였다. 1970년 1월 하순 어느날, 그들의 련습장을 찾아 교향곡 《그네뛰는 처녀》를 들어본 후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그네뛰는 처녀》는 관현악으로서 자기 면모를 기본적으로 갖추었다고, 좀더 고치면 훌륭한 작품으로 될수 있다고, 우리 음악에서는 특히 장단이 중요하다고, 그런데 아직 장단을 잘 살리지 못했다고, 장단을 잘 살리려면 관현악곡을 우리 식으로 독특하게 써야 하며 연주형상에서 민족적특성 즉 민요의 특성을 잘 살려써야 한다고, 그런 방향에서 편곡을 좀더 고치고 형상을 무르익혀야 하며 마지막부분이 아직도 처지는데 더 흥취가 나고 약동적으로 끝내도록 하라고 이르시였다.
그리하여 《그네뛰는 처녀》는 극히 짧은 기간에 우리 식 교향악의 표본으로 완성되였으며 또한 같은 기간에 교향곡 《내 고향의 정든 집》도 훌륭하게 완성되게 되였다.
이렇게 해서 훌륭히 태여난 관현악 《그네뛰는 처녀》를 감상한 사람들은 누구나 작품의 핵심과 주제를 분명하게 리해할수 있었고 잘 알고있는 노래의 발랄한 연주에서 나오는 흥겨운 가락과 장단에 감동되여 관현악속으로 푹 빨려들어갔다.
공연실황을 보고받으신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못내 만족해하며 새로 만든 교향악이 인민들에게 합격된셈이라고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이룩한 첫 공연성과를 높이 평가하면서 새로운 작품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를 교향곡으로 편곡할데 대한 과업을 창조집단에 또다시 맡겨주시였다고 한다.
오늘 국립교향악단은 수많은 인민예술가, 공훈예술가, 인민배우, 공훈배우들을 비롯한 이름있는 작곡가, 지휘자, 독주가들을 망라한 대연주가들의 집단으로 자라났으며 수많은 민족관현악의 대가들이 포진해있다.
《피바다》교향곡과 합창과 관현악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가요 《눈이 내린다》를 관현악으로 편곡한 김영규, 관현악 《내 고향의 정든 집》을 편곡한 김린욱, 가요 《그네뛰는 처녀》를 관현악으로 편곡한 김윤붕, 리면상의 《문경고개》를 관현악으로 편곡한 김길학, 관현악 《장군님따라 싸우는 길에》를 편곡한 리정언 그리고 이남과 해외의 동포사회에까지 너무나 유명한 《아리랑》의 대가 최성환 등이 이북의 문예부흥의 시기라고 부르는 1970년대에 이름을 날리던 작곡가들이다.
또 이어서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백두의 말발굽소리》와 현악합주 《비판받은 두 동무》를 편곡한 한광언,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안녕은 우리의 행복》과 관현악 《나는 알았네》를 만든 김정균, 피아노협주곡 《조선은 하나다》와 《결전의 길로》를 편곡한 윤충남, 피아노협주곡 《백두의 말발굽소리》를 작곡한 지휘자 한영상, 첼로협주곡 《축원》을 작곡한 강영걸, 바이올린협주곡 《대를 이어 충성을 다하렵니다》를 작곡한 챠이꼽스끼국제콩클입상자이고 후날 동콩클의 심사위원으로 된 바이올린음악의 대가 백고산 등이 민족관현악의 전통을 이어가며 특색있는 창작활동을 하였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창작활동은 왕성하게 전개되여 현재 국립교향악단 단장으로 있는 김연규의 《말해주리 병사의 사랑을》, 교향곡 《내 나라 제일로 좋아》와 강수기와 공동작곡한 교향곡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네》, 교향곡 《경례를 받으시라》 등 많은 작품들이 창작되였으며 혜성처럼 나타난 천재작곡가 장룡식의 《못 잊을 삼일포의 메아리》는 화려하고 웅장하며 시대적요구에 부합되는 곡이라는 평을 받고있다. 트럼베트와 관현악을 위한 《전사의 념원》을 작곡한 김호남은 작곡과 편곡에서 인정을 받고있는 신인이다.
이렇게 대를 이어서 만들어 내놓은 창작가들의 작품들은 1970년대초에 세워놓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민족음악발전의 천리혜안적인 만년대계를 떠나서는 결코 생각할수 없는 빛나는 결실이다.
우에 소개된 작곡가와 작품들은 앞으로 기회가 있을 때 좀더 자세히 알려드리려고 한다. 여기서는 국립교향악단 김병화지휘자에 대하여 소개한다.
지휘자 김병화는 재일본총련출신으로 1936년 일본 오사까에서 태여났다. 1960년 이북으로 귀국하여 국가의 혜택속에 대학공부를 하였으며 1969년부터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지도를 받으며 국립교향악단에서 지휘자로 활약하게 되였다. 지난 1986년 평양에서 열린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과 뽈스까에서 《와르샤와의 가을》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현대음악축전에 참가한 그는 뛰여난 지휘실력을 발휘하여 국내외에 이름을 날렸다. 특히 《와르샤와의 가을》현대음악축전에서는 윤이상이 작곡한 교향곡 《제1번》, 《무악》 등을 지휘해 큰 호응을 얻었다.
북조선은 관현악발전에 힘쓴 그의 공로를 인정해 지난 1972년에 공훈예술가칭호, 1986년에 인민예술가칭호를 수여했다.
김병화지휘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1997년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참가하는 재미조선인예술단성원중에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첼로연주가 리훈도 있었다. 드보르쟈끄의 첼로협주곡을 준비해온 리훈은 간단한 오디션을 하기 위해 지휘를 맡은 김병화선생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보통 관현악단과 리허설을 하기 전에 지휘자와 사전작업을 하게 된다. 김병화지휘자는 총보를 보며 전주를 치기 시작하였다. 리훈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총보를 보며 반주를 해줄수 있는 지휘자가 뉴욕에도 있었던가를 생각해보며 리훈은 또 한번 북조선의 높은 음악수준에 감동하고있었다.
공연날이 왔다. 김병화선생의 지휘는 정확하고 로련했다. 내가 아는 그 어느 연주때보다 훨씬 편안하고 또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며 전악장을 연주할수 있었다. 리훈은 평양에서 그렇게 큰 박수를 받아보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흡족한 연주였다. 그는 이 이야기를 두고두고 한다.
국립교향악단에서는 국내교향악작품만이 아니라 유럽고전음악을 비롯한 세계의 수많은 교향악작품들, 례를 들면 말러의 교향곡들과 함께 윤이상의 교향시곡 《광주여 영원히》 등 현대교향악작품들도 빈번하게 연주되고있다.
북조선음반사인 광명음악사에서는 2000년부터 북조선창작곡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시리즈의 음반을 제작하고있으며 현재까지 총 18종의 음반이 발매되였다. 15-17집은 《외국음악집》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으며 김호윤이 지휘한 쇼스따꼬비츠의 교향곡 제7번 《레닌그라드》와 챠이꼽스끼, 글린까, 요한 슈트라우스2세 피아노협주곡 《황하》 등의 작품이 수록되여있어 주목된다.
국립교향악단은 다른 나라의 지휘자, 독주가, 성악가들과 합동연주회를 하고있을뿐아니라 중국, 일본, 로므니아, 뽈스까, 벌가리아, 도이췰란드 등 아시아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해외공연도 활발히 진행하였다. 정세로 보아 국립교향악단의 뉴욕공연도 가까운 시일에 꼭 성사될것이라는 믿음이 간다.
관현악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관현악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는 이북에서뿐만이 아니고 남과 해외에 사는 동포들에게서도 사랑을 받고있는 유명한 명곡으로 자리잡고있다. 민중의 감정에 맞는 명곡, 그것은 바로 민중이 리해하기 쉬운 통속적인 노래, 우리 민요에 바탕을 두고 부드러우면서도 아름답고 유순한 노래이다.
이북에서는 1970년대초 악기개량사업에서 빛나는 성과를 거둔 뒤 모든 창작가들과 연주가들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제시하신 주체적인 민족관현악창작사업에 나서게 되였고 여기에서 대혁신을 이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노력한 결과로 주옥같은 관현악, 교향곡, 협주곡들이 쏟아져나오게 되였다.
이 시기에 관현악 《아리랑》, 관현악 《그네뛰는 처녀》, 관현악 《내 고향의 정든 집》, 관현악 《문경고개》, 관현악 《도라지》, 관현악 《눈이 내린다》 그리고 교향곡 《피바다》 등 많은 명곡들이 창작되였고 이 작품들은 모두 음악의 경전과도 같은 《조선음악전집》 전20권중 제8권에 수록되여 나라와 민족의 귀중한 재보로 보존되고있다.
관현악 《아리랑》은 뉴욕필하모니의 평양방문공연에서 앙코르곡으로 연주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곡과 가깝게 되였다. 관현악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는 그 누가 연주를 하든 연주되는 곳이 세계 그 어디든 민중들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있다.
이 창작곡들은 민족악기가 없어서 여건이 편하지가 않은 이남을 포함한 다른 지역에서도 주요공연종목으로 선정되여 연주되고있으며 언제나 청중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고있다.
우륵교향악단이 뉴욕에서 해마다 펼치고있는 6.15공동선언발표기념 경축공연과 통일음악회에서도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는 단골연주종목으로 되여 현지동포들과 타민족애호가들로부터 열렬한 사랑을 받고있으며 이 과정에 그들과의 문화적리해도 높아지고있다.
이북에서는 《관현악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는 사회주의락원에 대한 열렬한 찬가로서 인민들의 류다른 사랑을 받고있다.》고 평가하고있다.
이 관현악은 힘있고 경쾌한 새납의 음색, 양악기들과 예술적조화를 이루며 울리는 꽹과리를 비롯한 민족악기들의 장단과 선률이 멋지게 어우러지면서 흥을 돋구고있으며 교향악적특성도 잘 살려내고있다.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이 관현악곡은 두 주제에 기초한 3부분형식으로 구성되여있다. 처음에 현악기의 조용한 떨림소리와 하프의 부드러운 분산화음을 타고 흘러나오는 호른소리는 이른아침의 농촌풍경을 하나의 화폭같이 그려내고있다. 이슬채이는 논뚝길을 나서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농촌의 풍경을 잘 묘사하였으며 플류트독주의 랑랑하고 류창한 선률로 된 서주부에서는 벼이삭이 바람결에 춤추는 평야를 행복한 눈으로 바라보는 농민들의 훈훈한 정서가 잘 표현되여있다.
제시부에서 관현악 총연주로 울리는 주주제는 기쁨에 넘쳐 풍년을 맞이하려는 농부들의 긍지와 환희의 폭발과도 같이 힘차게 울려퍼진다.
부주제는 주주제가 이끌어온 휘모리장단에 민요 《풍년가》의 흥겨운 가락을 발전시킴으로써 희열이 넘치는 사회주의농촌의 생활장면을 생동감있게 표현하였으며 새납을 대담하게 관현악에 투입시켜 농악춤이 펼쳐진 시골의 농촌모습을 한층더 아름답게 그려주고있다.
발전부의 첫머리에서는 주주제에 기초한 변형곡형식으로 위대한 김일성주석이 창조하신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이 구현되여 이르는 곳마다 풍년이 들고있는 농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있으며 두번째에서는 새납독주로 농악을 본색대로 울려주어 농악무를 추면서 돌아가는 타작마당의 정경을 떠오르게 한다.
재현부에서는 최고조에 오른 새납독주의 흐름을 그대로 받아 더욱 흥성거리며 가슴후련한 정서를 안겨주는 동시에 금관악기군의 선률과 복합적으로 결합되면서 만풍년을 안아온 위인들께 드리는 감사의 정이 끓어넘치게 한다.
주제선률이 관현악곡 종결부에서 우렁차게 울리며 연주를 끝마친다.
이 곡은 이북의 교향악단에서뿐만이 아니라 이남의 악단에서도 가끔씩 연주되고있으며 해외에서도 연주되고있다. 이 곡을 연주한 국립교향악단의 김병화, 채주혁의 지휘를 사람들은 평가하고있고 윤이상음악연구소 관현악단의 지휘자 김호윤이 지휘한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가 최고의 평가를 받고있다.
나는 여기서 주체기악발전에 큰 공헌을 한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의 주체적민족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곡가 김영규에 대해 소개해보려고 한다.
작곡가 김영규는 1927년 8월 서울시 마포구 창진동에서 태여났다. 1939년 3월 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경성사범학교에 다니면서 풍금연주와 음악리론을 공부하였다. 부모님이 돌아가고 자신도 신경질환을 앓고있어서 공부를 계속할수가 없게 되였다.
해방은 왔으나 미제에게 강점당한 이남사회의 현실은 어지러웠다. 생활형편이 날로 곤궁해져서 음악학교에서 작곡법을 공부하려는 꿈은 일단 접을수밖에 없었다. 1946년 2월부터 고려교향악단의 연주가로, 1948년에는 서울교향악단의 연주가로 일하면서 작곡법을 독학하였으나 이남사회에서는 그의 꿈이 실현될수가 없었다.
1950년 7월 그는 의용군에 탄원하여 전선지구경비사령부협주단에 입대하였다. 이때부터 김영규는 인민군에 소속되여 연주활동도 하고 편곡,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1950년 11월 7일부터는 당과 정부의 조치에 의하여 국립예술극장에서 연주가로 일하면서 수많은 음악작품을 창작하였다. 이때 창작한 관현악 《보리타작》은 새로운 관현악의 창작기법을 시도하여 이북의 관현악발전에 기여하였다. 1958년에는 대공연음악무용서사시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을 창작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김일성주석의 따뜻한 품속에서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벌려오던 그는 1971년 3월부터 생의 마지막순간인 1989년 10월 22일까지 피바다가극단의 작곡가로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지도를 받으며 활동하였으며 이 시기에 그의 음악창작에서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게 되였다.
바로 이 시기에 관현악곡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1970)와 교향곡 《피바다》(1973) 등 수많은 관현악곡과 가극, 무용곡을 창작하였다. 작품을 사상예술적으로 높은 경지에서 훌륭히 창작한것으로 하여 김일성주석과 김정일국방위원장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특히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지도밑에 그가 창작한 관현악곡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는 민족적특성과 현대적감각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주체적관현악음악의 최고중의 하나로 평가를 받고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관현악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는 아주 좋은 작품이라고 높이 평가하시였다고 한다.
음악예술에서 천재적인 풍모를 지닌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작곡가에게 작품의 핵심과 형상방도를 찾아주시였으며 그가 창작에 착수하였을 때는 수차에 걸쳐 손질하고 다듬어서 명곡으로 되게 해주고도 그 모든 성과를 작곡가에게 돌려주고 치하해주시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그후에도 김영규작곡가에게 창작적시야를 넓히라고 조언해주면서 여러 나라에 예술대표단으로 보내주시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그의 건강까지 념려하여주면서 값비싼 고급약재들을 아낌없이 보내주는 한없는 사랑을 안겨주었으며 홀로 북녘에 온 그를 위해 부모의 심정으로 세심한 배려와 깊은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김영규작곡가는 이러한 배려와 신임에 대해 뜨거운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작품창작에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이것만이 나라의 은정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그는 생각하며 창작에 혼신의 열을 올렸다.
1989년 6월 김영규는 교향곡 《피바다》와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가 인민들이 사랑하는 명곡으로 창작된 성과를 취재하러 온 기자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이 작품들이 인민들의 사랑을 받는 명곡으로 창작된것은 전적으로 음악예술의 영재이신 김정일동지의 현명한 령도의 결과입니다. …기자선생도 잘 알다싶이 나는 남조선의 교향악단들에서 연주도 하고 작곡법도 독학을 해온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니 듣고 배운것이 서유럽의 음악이였고 낡은 형식의 교향곡이였지요. 그러므로 쏘나타형식의 교향악이나 서유럽의 오페라창작활동으로 머리가 굳어진 다음에 조국의 품에 안겨 참다운 예술활동을 하려 해도 당앞에 심려만 끼치게 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최고의 사랑과 배려를 받으며 비로소 주체의 미학관으로 무장된 혁명적이고 인민적인 기악곡과 교향악, 극음악작곡가로 자라나게 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크나큰 은정에 보답하려고 자신의 창작적정열을 불태워오던 그는 불치의 병으로 1989년 10월에 생을 마감하였다.
비록 62세의 길지 않은 생을 살고 갔으나 김영규는 사회주의조국의 품에 안기여 자기의 음악적재능을 마음껏 꽃피웠으며 김정일국방위원장의 각별한 보살핌속에 주체음악의 대가로 성장하였다.
그가 작곡한 교향곡 《피바다》와 관현악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는 조선음악의 세계적인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작의 하나이다. 그것은 북과 남, 해외에 사는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 높은 긍지로 오래오래 간직될것이다.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아》
이북에는 자랑스러운 심장의 노래들이 있다. 노래는 랑만에 넘쳐있고 미래에 대한 락관으로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그래서 평양의 밤하늘에는 언제나 잔잔한 선률이 흐른다. 행복을 노래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평양을 노래하는 서정적인 선률과 함께 친근하게 다가오고있다. 오늘도 가요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아》는 평양의 밤하늘에 은은하게 울려퍼지고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이 노래에 대하여 이렇게 높이 평가하시였다.
《지금 우리 인민들이 부르고있는 노래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아〉는 조선민족제일주의정신이 짙은 정서속에 담겨져있는 좋은 노래입니다. 이 노래에는 깨끗한 충성의 구슬땀을 바친 위훈의 그 사연과 청춘의 푸른 꿈을 꽃피운 잊지 못할 추억을 안고 희망찬 래일을 속삭이며 깊어가는 아름다운 평양의 밤을 더없이 사랑하는 우리 인민의 크나큰 민족적자부심과 긍지가 잘 반영되여있습니다.》
가요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아》는 세월이 흘러갈수록 수도 평양의 긍지를 사상예술적으로 승화시켜주는 명곡으로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심장의 노래로 애창되고 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여러차례에 걸쳐 가요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아》는 조선민족제일주의정신이 짙은 노래라고 평가하면서 노래를 널리 보급하여 전체 인민들이 즐겨 부를수 있게 해야 한다고 하시였다.
가요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아》는 잔잔한 감동을 주는 서정적인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힘을 얻는다고 하였다고 한다.
작곡가 김덕수는 《한 평범한 영화음악작곡가가 지은 미숙한 노래를 몸소 여러차례 들어주시고 그토록 분에 넘치는 치하의 말씀을 해주셨을 때 저는 적으나마 경애하는 장군님께 기쁨을 드렸다는 무한한 행복감과 그이의 품속에서 창작활동을 하는 크나큰 영예와 긍지로 하여 가슴뜨거워옴을 금할수 없었다.》고 격정에 넘쳐 말하였다.
작곡가 김덕수는 노래를 창작하던 때를 감회깊이 회상하였다.
온 나라가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앞두고 그 준비사업으로 들끓고있던 1989년 6월 초순 어느날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창작가들에게 평양의 밤에 대한 노래를 지을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그러나 창작가들은 노래를 짓는데 있어서 가사가 제기하는 정서적요구에 맞는 선률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안타까운 순간들을 보내고있었다. 노래창작은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사실 그때까지 평양의 밤을 노래한 가요가 몇편 나온것이 있기는 하였지만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다시 그들에게 과업을 주게 된것은 이미 나온 노래보다 더 좋은 가요를 지으라는 크나큰 믿음과 기대가 있었기때문이였다.
이런 과업을 받아안은 창작가들은 모두가 흥분하였다. 밤은 언제나 창작가들의 창작의욕을 자아내는 황금같은 시간이다.
고향의 밤, 초소의 밤, 밀림의 밤, 산촌의 밤…
밤은 사람들에게 깊은 사색을 하게 하고 크나큰 환희의 의욕을 주며 미지의 세계를 그리는 상상의 날개를 펼쳐준다. 밤이야말로 노래가 태동할수 있는 요람인것이다.
그래서 음악에서는 야상곡이며 소야곡이라는 랑만적인 작품들이 많이 나오게 되는것일가. 시인은 창작적욕구를 억제할수 없어 랑만적인 평양의 밤길을 끝없이 걸어보았다.
그럴수록 끝없이 걷고싶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바람결에 춤을 추는 한그루의 수양버들에도, 말끔히 단장된 대동강반의 산책길의 발자국마다에도 근로대중들이 흘린 구슬땀이 스며있어 그 어데나 무심히 다닐수 없는 사랑의 거리, 행복한 밤의 서정이 가슴에 저리게 안겨왔다.
첨단으로 장식하고 막대한 재력을 자랑하며 오색현란한 전광판이 번쩍이는 자본주의의 대도시들의 화려한 무대뒤에는 부자들만의 《쾌락의 밤》은 있을지는 모르지만 평양의 밤처럼 인간의 감정을 순화시키고 근로자들모두가 아름다운 추억과 행복감, 희망으로 가슴설레이게 하는 아름다운 랑만의 밤은 없을것이다.
평양의 밤은 소박하고 훈훈하였다.
시인 전동우는 《이 불빛 아름다운 평양의 밤은 오직 위인을 모시고 사는 우리 인민들만이 향유하는 특전》, 《그 누구에게 한순간도 양보할수 없고 한치의 땅도 내여줄수 없는 김일성민족의 고귀한 행운》이라고 하였다.
평양의 밤, 정녕 여기에는 이북의 근로대중들이 심장에 간직하고있는 모든 추억과 정서가 담겨져있다. 그래서 한밤이 지새도록 끝없이 걷고싶은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마음인것이다. 그 마음, 그 사상감정을 작가는 그대로 노래에 담았다.
평양을 노래하되 평양의 밤을 가지고 노래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신 김정일국방위원장의 가르치심은 얼마나 문학적이고 정서적인것인가. 위인의 창작적인 감정세계에 의하여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아》라는 세계적인 명작이 나올수 있게 된것이다.
가요가 이루어낸 명작으로서의 사상예술적가치와 성과는 청춘남녀들의 현재에 대한 긍지와 미래에 대한 락관과 나라의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향토애를 절절하게 노래하고있다는데 있다.
노래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아》는 《나는 알았네》, 《나는 영원히 그대의 아들》을 작사한 전동우가 작사하고 1989년에 김덕수가 작곡하였다.
고요한 강물우에 불빛이 흐르네
못 잊을 추억을 안고 내 마음 설레네
끝없이 걷고싶어라 내 사랑 평양의 밤아
지새지 말아다오 아름다운 평양의 밤아
깨끗한 구슬땀을 내 여기 바치였네
청춘의 푸른 꿈도 여기서 꽃피웠네
끝없이 걷고싶어라 내 사랑 평양의 밤아
지새지 말아다오 아름다운 평양의 밤아
위훈의 그 사연을 어이 다 말하랴
래일을 속삭이며 이밤은 깊어가네
끝없이 걷고싶어라 내 사랑 평양의 밤아
지새지 말아다오 아름다운 평양의 밤아
1절에서는 보람찬 하루일과를 마치고 불빛이 고요히 흐르는 대동강가를 끝없이 걸어보며 현대적인 락원의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흘린 값진 구슬땀과 온갖 정성을 들여 수도 평양을 건설해놓기까지의 많은 일들을 긍지높게 추억하며 총화하는 근로자들의 정서적세계를 노래하고있다.
우리 문화의 발상지, 세계5대문명의 발상지의 하나인 사회주의조선의 수도 평양의 유구한 력사를 담아싣고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 수많은 승리의 이야기를 안고 흐르는 대동강, 잔잔한 추억을 속삭여주는듯 강물에 비껴오는 불빛은 애틋한 평양의 정서를 말하여주는듯 하다.
가사는 지난날 가슴아픈 사연만 새겨주던 그 강이 오늘에는 고요히 흘러흐르며 락원의 도시 평양의 위대한 승리의 력사를 말해주는 랑만의 강으로 되였음을 보여주고있다.
위대한 령도자를 모시지 못하였다면 어찌 대동강반의 저녁길이 이렇듯 아름다운 추억을 안겨줄수 있겠는가. 못 잊을 추억을 안고 설레이는 가슴속에 깊이 자리잡은것은 위인을 모신 크나큰 긍지이고 자부심이다.
어떤 문학적수식어도 쓰지 않고 불빛흐르는 대동강의 소박한 모습을 통하여 오늘의 행복을 가슴뜨겁게 새겨주는 가사의 서정을 추억하는 랑만적인 선률은 자부심을 안겨주며 승화되고있다.
깨끗한 구슬땀을 내 여기 바치였네/ 청춘의 푸른 꿈도 여기서 꽃피웠네/
3년간의 전쟁으로 재더미밖에 남은것이 없었다는 평양, 그들의 사랑하는 고향땅을 몽땅 불살라버린 침략자들은 조선이 100년이 걸려도 다시 일어서지 못할것이라고 떠벌이였다.
그러나 평양은 침략자들이 떠벌이던 예언을 비웃기나 하듯 재더미속에서 솟구쳐 일어나 과거의 평양과는 비교도 할수 없이 아름답고 웅장하게 태여났다. 이 거창한 건설의 력사에 슴배여있는 건설자들의 구슬땀은 조국의 수도를 락원으로 변모시킨 위대한 헌신이였고 령도자와 민중에 바치는 고귀한 사랑이였다.
영웅도시 평양을 건설하는 길에서 충정의 마음도 자랐고 평양과 함께 청춘시절의 리상과 포부도 꽃피울수 있었기에 근로대중들은 평양을 자기 삶의 요람으로, 행복의 젖줄기로 심장속깊이 간직하고 모든것을 다 바쳐갔던것이다.
평양을 건설하기 위해 바친 근로자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오늘도 끝없이 계속되고있다.
위훈의 그 사연을 어이 다 말하랴/ 래일을 속삭이며 이밤은 깊어가네/
3절에서는 더욱 윤택해질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락관의 세계를 넓혀가고있다.
기적같은 전후복구건설로 세상을 놀래우며 청춘시절을 빛낸 선대들처럼 후대들도 강성부흥으로 빛날 첨단조국의 래일을 위하여 땀흘려 일하고 젊음의 자랑을 떨칠것이라는것을 확신하는 평양의 밤을 노래하였다.
많은 나라들에서 피흘리며 자기들의 조국을 지키고 땀흘리며 로동자들과 민중들의 행복을 위해 청춘을 바쳤던 사람들이 결국 사회의 버림을 받으며 희망도 자부심도 가지지 못하고있는 사례를 보고있지만 이북의 근로대중들은 위대한 령도자를 모시여 조국에 바쳤던 자기들의 청춘시절을 긍지높이 추억하고있으며 륭성번영할 찬란한 조국의 래일을 확신하는 강한 믿음을 보여주고있다.
특히 가사는 후렴에서 《끝없이 걷고싶어라 내 사랑 평양의 밤아/ 지새지 말아다오 아름다운 평양의 밤아》를 반복하여 자기들의 수도 평양에 대한 애정을 절절하게 표현하고있다.
《고요한 강물우에 불빛이 흐르네》라고 표현한 가사의 이 부분은 평화를 사랑하는 평양시민들의 마음을 직접 보는것 같고 저녁상머리에 둘러앉아 그날에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화목한 가정을 보는듯 포근함이 안겨온다.
2절에서도 청순한 이북민중들의 나라에 대한 충실성을 비유하여 표현한 《구슬땀》과 청춘의 아름다운 리상과 포부를 노래한 《푸른 꿈》과 같은 어휘들을 활용하여 가사의 예술적형상을 잘 조화시켜 평양의 밤전경을 한폭의 그림처럼 생생하게 안겨주어 그 아름다운 밤의 세계를 철학적인 사색으로 이끌어갔다.
끝없이 걷고싶어라 내 사랑 평양의 밤아/
아무런 가식도 없이 씌여진 이 가사에는 특별히 뜻을 부여하기 위하여 애쓴 구절이 따로 없지만 구절구절마다에 평양에 대한 사랑의 감정, 위인을 모신 크나큰 민족적긍지와 자부심, 소박한 생활의 정서가 강하게 안겨오고있다.
이 가사에 흘러넘치는 짙은 서정은 혁명의 수도의 벅차고 거창한 생활에서도 밤이라는 차분한 정서를 느끼는 서정적주인공의 시점에서 노래된것으로서 듣는이에게 깊은 여운을 주고있다.
아름다운 평양의 밤이 지새지 말기를 바라며 오래도록 걷고싶은것은 평양사람들의 한결같은 마음일것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그후 여러차례에 걸쳐 김덕수가 지은 가요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아》를 몸소 듣고 평가해주시였다고 한다. 김덕수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가요 <지새지 말아다오 평양의 밤아>의 창작과정을 통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바라시고 의도하시는 문제를 심장으로 접수하고 그 관철을 위하여 피타는 노력을 기울일 때 시대가 요구하고 인민의 사랑을 받는 명곡을 창작할수 있다는것을 심장으로 느끼게 되였습니다.》
륭성번영하는 조국과 더불어 평양은 온 세계에 주체의 찬란한 빛을 뿌리는 혁명의 수도로 자랑떨칠것이며 이 아름다운 노래는 우리 민족모두의 가슴속에 못 잊을 추억의 노래, 행복의 노래로 간직될것이다.
예술영화 《월미도》의 주제곡 《나는 알았네》
1985년 아메리카주지역 통일운동단체인 한겨레운동련합이 주최하는 동포대회가 로스안젤스에서 열렸다. 이 지역에 살면서 동포대회에 참가한 김병주선생이라는분이 고려서적잡화쎈터라는 상점을 경영하고있었다. 이북의 서적과 비데오 등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면서 이북바로알리기운동도 펼쳤고 북녘이 고향인 사람들의 향수도 달래주었다. 당시 이북관련 책이나 비데오를 취급한다는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주위분위기는 살벌하였다.
이런 때에 나는 조선예술영화 《월미도》를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영화 《월미도》는 우리의 조국반도를 단숨에 집어삼키려는 가당치도 않은 계획을 세워놓고 소위 《유엔군》이라는 이름으로 작당을 해서 쳐들어오는 미국과 그에 추종하는 15개 국가의 엄청난 수의 적을 북조선이 막아낸, 세계전쟁사에서 있어보지 못한 전승을 이루어낸것을 다룬 전쟁영화이다.
이 영화는 맥아더가 이끄는 침략군의 막강한 병력을 단지 1개의 인민군해안포병중대가 나서서 상륙을 3일간이나 저지시킨 영웅적투쟁을 형상한것이다. 월미도를 지키던 해안포병중대는 락동강전선까지 진출한 인민군대가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를 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끝까지 월미도를 사수하라는 최고사령부의 명령을 받는다. 이들은 3일간의 치렬한 접전을 치르고 모두 장렬하게 전사한다.
이 영화는 월미도의 전사들이 무엇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는가라는 주제를 놓고 작품이 전개되여간다.
중대장 리태운은 정세가 급변할것을 예견하지 못하였다. 다른 부대로 전속발령을 받고 떠날줄로 믿고있던 월미도전사들앞에서 중대장 리태운은 불타는 섬 월미도에 남아서 최후까지 싸울것을 결의한다.
그런 때에 학교를 갓 졸업한 겨우 17살인 무전수 영옥이가 중대에 배치되여오는데 영옥은 중대장에게 섬을 3일동안 사수하라는 지휘부의 명령을 전달한다. 중대원들은 어떻게 어린 동무가 이 섬에 오게 되였는가고 영옥에게 물어본다. 영옥은 학교를 졸업하고 동무들과 같이 군대에 가겠다고 일주일간이나 계속 울었더니 허락이 떨어져 여기에 오게 되였다고 장난섞인 대답을 해준다.
영화 《월미도》는 유럽영화에서뿐아니라 헐리우드의 영화에서도 볼수 없는 인상적인 전쟁영화이다. 이북이 내세우는 대표적인 전쟁영화로 알려져있는 《월미도》는 세계영화사에서는 전혀 볼수 없는 진정한 의미의 조국관을 보여주고있으며 숭고한 애국정신을 높게 다룬 예술적인 영화라는 평을 받고있다.
수백척의 함선이 밀려오는 긴박한 정세를 놓고 긴장해하는 중대장에게 당분조장은 해방직후 장군님께서 우리 광산에 찾아오셨을 때 일부 간부들이 광산의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국가과제를 수행하기 힘들다고 말씀올린적이 있었다고, 그때 장군님께서는 우리 광산 당원들앞에서 로동계급을 불러일으키면 이 세상에 못해낼 일이 없다고 하면서 설비보다 먼저 사람을 보라고, 그러면 반드시 해낼수 있다고 하시였다고 말한다.
포탄은 바닥이 나고 병사들은 지쳐있을 때 중대를 찾아온 대대장과 중대장 리태운과의 대화이다.
대대장은 전쟁전에 어떤 외국책을 읽었는데 거기에 조국에 대하여 아득한 옛날부터 선조들이 살아오던 곳, 아버지의 뼈가 묻힌 고향산천, 들판에선 종달새가 우짖는 곳, 그 정든 곳이 바로 내 조국이라고 써있었는데 어떤가고 묻는다.
중대장 리태운은 이에 대하여 무엇인가 좀 부족한것이 있는것 같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대대장은 옳다고, 장군님께서 우리에게 조국을 찾아주시기 전에야 그것이 무슨 의의가 있었겠는가, 조국이란 바로 우리의 장군님이시라고, 그러니 조국을 위해 한목숨 바친다는것이 무엇이겠는가, 장군님을 위하여 한목숨바친다는것이라고 력설한다.
정세는 점점 준엄해지고있었고 그날도 전호가에는 노을과 함께 저녁이 엄습해오고있었다. 전사들은 고향의 부모형제를 그리며 싸울 비장한 각오를 하며 잠 못 이루고있는데 어디서인가 조용히 손풍금소리가 울려나오고있었다. 영옥은 은은하게 그리고 절절하게 영화주제가 《나는 알았네》를 부르기 시작한다.
첫날 전투에서 발생한 희생자를 떠나보내는 자리에서 중대장 태운은 《동무들! 오늘 우리는 … 가장 가까왔던 우리 동지들과 영원히 작별합니다. 잊지 맙시다. 이들이 무엇을 그렸으며 무엇때문에 목숨을 바쳤는가를! 먼 후날 우리의 후대들은 월미도에서 싸운 사람들에 대하여 이야기할것입니다. 그들은 장군님께서 찾아주신 고마운 조국을 위해서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바쳐싸웠습니다. … 우리는 결코 이들이 흘린 피를 헛되이 하지 않을것입니다!》라고 엄숙한 선포를 한다.
전사들은 이런 말들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모두 전사한다. 그들은 마지막 남긴 편지에서 이렇게 절규하였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 행복을 누리는것보다 행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 마지막최후를 앞두고 중대장 리태운은 대대장에게 이런 글을 남기였다.
《… 우리는 명령대로 3일동안 조국의 섬을 사수하였습니다. … 우리는 죽습니다. 그러나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김일성장군만세! 조국이여! 번영하라!》
김일성주석은 그들의 위훈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월미도해안포병들이 잘 싸웠습니다. 그들은 최고사령부의 명령대로 인민군대의 전략적후퇴를 보장하기 위하여 마지막 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결사적으로 싸워 3일동안이나 적들의 상륙을 막아냈습니다. 우리는 월미도용사들의 영웅적위훈을 잊을수 없습니다.》
이북최고의 세계적인 남성배우 최창수가 연기한 마지막 장면은 이북영화사상 길이 남을 명장면중 하나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무전수 영옥(윤수경)을 더 잊지 못하고있다. 영옥이 부른(가수 최삼숙의 노래) 이 영화의 주제가 《나는 알았네》는 오늘도 이북과 이남, 해외에서까지 세대와 세대의 차이를 넘어 인기곡으로 사랑을 받고있다.
나는 이러한 현상이 단순히 노래가 아름답고 부르기 쉬워서만이 아닐것이라고 믿는다.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이 너무나 크고 시사하는 교훈이 뼈에 사무치기때문이리라. 그 감동을 전동우의 가사에서 진하게 느껴볼수 있을것이다.
나는 영화에서 느낀 감동을 주제음악을 중심으로 특히 가사가 주는 감동을 같이 나누어보려고 한다.
명가사에서 명곡이 나온다고 지적한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명언은 노래에서 확연하게 느껴볼수 있다.
나는 알았네
봄이면 사과꽃이 하얗게 피여나고
가을엔 황금이삭 물결치는 곳
아 내 고향 푸른 들 한줌의 흙이
목숨보다 귀중한줄 나는 나는 알았네
불타는 전호가에 노을이 비껴오면
가슴에 못 잊어서 그려보는 곳
아 내 고향 들꽃피는 그 언덕이
둘도 없는 조국인줄 나는 나는 알았네
살아도 그 품속에 죽어도 그 품속에
언제나 사무치게 불러보는 곳
아 어머니라 부르는 나의 조국이
장군님의 그 품인줄 나는 나는 알았네
심오한 철학적사색이 담긴 전동우의 시는 사람들의 마음을 한없이 틀어잡는다.
전동우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공부하던중 전쟁이 일어나자 인민군대에 복무하다가 국가적조치로 대학에 복교하였다. 1954년 대학을 졸업한 후 현역시인으로 있다가 1960년부터 평양문학대학(당시)과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창작지도교원으로, 1972년부터 조선영화문학창작사 가사창작실 실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시집 《청춘》(1961), 서사시 《인간의 노래》(1964), 시론 《서정시창작수업》(1964)을 발표하였으며 노래가사와 함께 많은 서정시, 서사시, 정론, 수필, 평론들을 남겼다.
작가라면 누구나 자기 생애에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명작들을 내놓기를 바랄것이다.
영화의 노래와 가요를 통하여 인민들과 각별히 친숙해진 전동우는 생애에 가사 200여편을 창작했다. 그러나 그가 세상에 남긴 명가사들은 저절로 이루어진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령혼을 태우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하며 쓴것이였다. 그는 늘 가사에는 문학적발견이 있어야 하고 철학적인 생활을 가사에 담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어머니조국의 귀중함을 뼈에 사무치도록 절감한 시인의 심장의 노래인 《나는 알았네》는 지금도 우리 마음을 세차게 틀어쥐고있다. 이런 전동우의 가사가 있었기에 작곡가 라국은 인민들의 심장에 호소하는 서정적인 명곡을 써낼수가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땅에서 1989년 5월 10일 전동우 작사, 라국 작곡 《나는 알았네》를 음악회의 중요종목으로 무대에 올려놓게 되였다. 뉴욕의 공연장은 사상 처음으로 북조선가곡이 교포들에게 선보인다는 신문, 방송의 대대적인 기사때문에 초만원을 이루었고 소문은 무성했으나 공개적인 방해책동은 감히 해오지 못하였다.
피아노반주도 현지인 뉴욕의 입맛에 맞게 편곡하였다. 창법도 서양식발성을 하여 영화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어보였지만 청중들은 한없이 행복스러워했다. 고향의 노래를 듣자고 4시간이나 운전하고 왔다고 하며 좋아서 내 손을 꼭 붙잡고 흔들어대던 한 로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공연의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성과는 말할수 없이 컸다.
그후 아메리카주민족문화연구회를 통해 라국선생이 우륵심포니에 맞는 편성으로 편곡한 《나는 알았네》를 보내왔다. 2001년 북부조국에서 온 다섯명의 음악인과 미국순회공연을 할 때에 이 음악을 긴요하게 사용하였다. 음악회에 찾아온 교포들은 이 사연을 알고있는듯 하였고 음악회장은 도시마다 초만원을 이루었다.
라국은 경성음악학교 재학중인 1950년 전쟁시기에 북에 들어온 음악가이다. 그는 남에 있을 때는 악단에서 바순을 연주하였고 입북한 다음 작곡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영화 및 방송음악단(당시)에서 수많은 영화음악을 작곡하였고 수많은 히트곡을 써내며 음악가로 꿈을 펼치며 살다가 1990년대초 작고했다.
오늘도 북조선은 미국과 첨예한 대결전을 벌리며 민족의 존엄을 굳건하게 지켜가고있다. 대결의 양상은 달라졌어도 제국주의세력의 근본적인 전략은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고있다. 그러나 월미도전투에서 보여준 간고한 투쟁정신은 오늘 북조선이 제국주의세력들과의 대결전에서 위대한 승리를 견인해오는 귀중한 역할을 하고있다.
《나는 영원히 그대의 아들》
나는 영원히 그대의 아들
작사 전동우, 작곡 김건일
그대가 한그루 나무라며는
이 몸은 아지에 피는 잎사귀
찬바람 불어와 떨어진대도
흙이 되여 뿌리 덮어주리라
아 나의 조국아
흙이 되여 뿌리 덮어주리라
그대가 크나큰 심장이라면
이 몸은 그 품에 뛰는 피방울
마지막 한방울 다할 때까지
높뛰는 고동을 더해주리라
아 나의 조국아
높뛰는 고동을 더해주리라
…
나는 노래를 듣기 전에 《나는 영원히 그대의 아들》의 시어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이 시를 랑송할 때 느껴야 할것은 조국앞에서 나의 참모습이 어떠한것인가를 랭철한 마음으로 들여다보아야 한다는것이다.
과연 흙이 되여 뿌리를 덮어줄수 있고 마지막 한방울의 피가 다 없어질 때까지 영원히 조국의 아들로 살수 있는가를 노래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참모습을 차가운 눈으로 찾으라고 명령하고있다.
나는 영원히 그대의 아들이라고 한 전체 이북인민들의 고백은 조국에 대한 애국의 약속이고 수령에 대한 변치 않는 맹세인것으로 알고있다. 북에서는 이런 노래를 국보적인 노래라고 한다.
1985년 11월 10일에 있었던 일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일군들과 창작가들에게 조국에 대한 노래창작과 관련된 귀중한 가르침을 주면서 우리 나라 예술영화주제가들가운데 조국을 노래한 작품들이 많다고 하시였다.
그러면서 예술영화 《종군기자의 수기》에 나오는 노래 《조국의 바다지켜 영생하리라》와 예술영화 《우리를 기다리지 말라》에서 나오는 노래 《나는 영원히 그대의 아들》은 다 조국을 사랑하는 귀한 노래들이라고 하면서 아주 잘 지었다고 치하해주시였다.
그때 분에 넘치는 치하를 받은 창작가들은 오히려 송구하게 생각하였고 지난날 자기들의 작품창작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다시한번 되돌아보게 되였다.
1973년 겨울 어느날이였다.
창작가들은 한 일군으로부터 김정일국방위원장이 그해 10월 금강산을 방문하였다는 감격적인 사실을 전해듣게 된다.
그날 온정령기슭에 이르시여 1211고지와 351고지, 월비산과 남강을 비롯한 유명무명의 고지들과 산천경개의 절경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던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조국해방전쟁(6.25전쟁)시기 수많은 격전이 벌어진 전투장들에는 아직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무명전사들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많을것이라고 하면서 창작가들이 무명전사들에 대한 취재를 잘하면 훌륭한 작품을 많이 써낼수 있을것이라고 하시였다는것이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그 이야기는 창작가들에게 정말 감동없이 들을수 없는것이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말씀에서 감격스러운 충동을 받은 한 작곡가는 이때부터 《조국과 병사》라는 주제를 가지고 인민군용사들의 조국애를 노래한 작품을 쓰려고 무척 애를 쓰고있었다.
그러던 그 작곡가가 예술영화 《우리를 기다리지 말라》의 주제가 《나는 영원히 그대의 아들》을 창작하고서야 오래동안 애써온 그 꿈을 실현할수 있었다고 한다.
가요 《나는 영원히 그대의 아들》을 들어본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노래가 좋다고, 잘 쓴 작품이라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이때 여기에 와있던 모든 창작가들은 너무도 송구하고 흥분되여 들떠있는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었다고 한다.
1987년 3월 28일이였다.
극장을 몸소 찾아와 창작상황들을 알아보던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담화를 잠간 멈추고 화제를 바꾸어 창작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시였다. 그것은 국보적인 노래창작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침이였다.
당시 일부 창작가들속에서 국보적인 노래를 별개의 노래처럼 생각하는 편향이 나타나고있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이런 그릇된 견해를 바로잡아주려고 여러가지 례를 들어가며 부드럽고 조용한 음성으로 차근차근 가르침을 주시였다.
《〈누가 나에게 가르쳤던가〉와 〈나는 영원히 그대의 아들〉같은 노래들을 인민이 다 좋아하는데 그런 노래가 바로 국보적인 노래입니다.》
인민이 좋아하는 노래가 국보적인 노래라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말씀을 받아안은 작곡가는 순간적으로 《바로 이것이구나!》 하는 흥분에 휩싸였다.
인민! 인민! 인민!
바로 인민을 위해 복무함이 없는 예술은 진정한 예술이라고 할수 없다, 예술의 중심도 인민이여야 하고 예술의 목표도 인민이여야 한다는 진리를 밝히고있는 가르치심이였다.
그날 천금같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귀중한 진리를 받아안는 창작가는 벅차오르는 감격을 억제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말씀속에 국보적인 노래에 대한 정확한 개념과 그것을 창작하기 위한 옳바른 길이 분명하고도 폭넓게 집대성되였을뿐아니라 또다시 그가 작곡한 노래를 분에 넘치는 평가를 해주며 그것을 국보적인 노래로 내세워주는 영광을 받았기때문이였다.
그때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날 창조현장을 다시 찾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창작가를 만난 자리에서 노래 《나는 영원히 그대의 아들》을 녀성독창과 합창으로 편곡하여 새롭게 형상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그리하여 이 노래는 민중들속에서 더욱 사랑을 받게 되였으며 널리 불리워지게 되였다.
1988년 2월 18일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혁명과 건설을 전진시키고 사람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하는데서 문학예술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밝혀주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시였다.
《나는 예술영화 〈우리를 기다리지 말라〉에 나오는 노래〈나는 영원히 그대의 아들〉과 같은 좋은 문학예술작품에서 늘 힘을 얻습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계속하여 노래 《나는 영원히 그대의 아들》에서는 조국과 전사와의 관계를 나무와 그 아지에 피는 잎사귀, 심장과 피방울에 비유하여 잘 형상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조국을 위하여 어떻게 자기의 한생을 바쳐야 하는가에 대하여 훌륭한 대답을 주고있다고 하시였다. 그러면서 노래의 1절가사를 외워보고나서는 가사가 좋다고 치하하시였다.
참으로 노래 《나는 영원히 그대의 아들》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관심과 세심한 지도밑에 국보적인 명곡으로 주체음악사에 빛나고있다. 이북은 심금을 울리는 노래가 많은 나라이다.
이북의 노래를 들으면 들을수록 많은 감동을 받게 된다. 평양을 처음으로 방문한 사람들은 영화의 주제가에서 특별히 많은 감명을 받는다고도 했다.
예술영화 《월미도》에 나오는 《나는 알았네》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아 내 고향 푸른 들 한줌의 흙이/ 목숨보다 귀중한줄 나는 나는 알았네/
아 내 고향 들꽃피는 그 언덕이/ 둘도 없는 조국인줄 나는 나는 알았네/
무심히 지나쳐버릴 고향의 산천을 보고 시인은 우와 같이 노래하였다.
왜 하나같이 북의 시인들과 작곡가들이 쓰고 창작한 곡들이 듣는 사람의 마음을 감격하게 만들고있는것일가.
그 가사들에는 철학이 있고 그 철학속에는 조국에 대한 사랑이 있기때문인것이고 이북에 감동스럽게 부를 노래가 많은것은 박세영, 조기천, 전동우, 백인준과 같은 시인들이 심장을 흔드는 시어로 태양을 노래하였기때문일것이다.
이북의 시인들은 시를 쓰지 않고는 배길수 없는 불타는 사명감과 왕성한 창작의욕에 넘쳐있다. 창작된 명작들은 잠자는 령혼을 일깨우며 인민대중을 끝없이 격동시킨다.
이북의 시인들은 조국의 아름다움을 뜨겁게 노래한다. 그 시는 조국을 세계의 첨단에 우뚝 세워놓은 령도자의 위대함을 노래한다. 시인을 따라 민중들은 자랑스럽게 수령을 노래한다.
김일성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중의 《민족의 얼》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언제인가 나는 리극로에게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는데 어떻게 되여 조선어연구를 전문으로 하게 되였는가, 선생이 조국에 돌아왔을 때 실업계에 나서라고 권고한 사람도 있고 벼슬길에 나서서 두각을 나타내라고 권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는데 무슨 연고로 언어학자가 되였는가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리극로는 아일랜드에 갔을 때 그 나라 사람들이 모국어대신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것, 간판과 도로표식을 비롯하여 모든것이 영어로 표기된것을 보고 조선말과 글도 저런 신세가 되지 않겠는가, 조국에 돌아가면 모국어를 지키는 운동에 한생을 바치자고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대목이다.문학예술에서 왜 민족성을 살리고 자주성을 견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충분한 설명으로 되리라 믿는다. 오늘 이남사회에는 《세계화》니, 《다문화》니 하며 알아들을수 없는 괴상한 리론들이 류포되여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있다. 방송보도시간에 나오는 자막들은 분명히 조선글인데 내용은 온통 알아볼수 없는 외래어투성이이다.
투데이, 쏠루션, 뉴스 데스크, 모닝와이드 등 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문화란것이 뿌리가 없고 서양의것을 마구잡이로 비벼놓은 잡것들뿐이다.
그런데 이북의 시인들은 우리의 고유한 그리고 우수한 민족어로 수령을 노래하고 령도자를 칭송하는 뜨거운 시를 쓰고 자랑스러운 민족의 얼을 노래한다.
이들은 민중이 알아듣지 못할 말로는 시를 쓰지 않는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속삭이듯 알아들을수 있는 언어로만 시를 쓴다. 이렇게 창조된 시들은 세인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고 민중은 시상에 100% 공감을 한다.
시인들은 호소하기도 하고 가끔 호령하기도 한다. 그것은 모두 근로대중들을 고무추동하여 나라의 건설역군으로 또 나라와 수령을 받드는 애국자들로 키워내기 위함이다.
시인들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생사의 기로에 놓이고 겨레가 수난을 당할 때 나라를 구하기 위해 한몸바쳐나서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하게 한다. 그런 작가의 창작품에서 느끼는 감동은 작곡가들도 똑같이 받고있어 노래에도 시인의 의도가 살아서 굽이치고있는것이다.
좋은 가사가 창조되여나올 때 언제나 심금을 울리는 명곡이 탄생하여나온다. 그 시인을 옳바르게 이끄는 손길에는 언제나 령도자의 위대함이 빛나고있다.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잘해주고싶은 마음은 남이나 북이나 별로 다르지 않은것 같다. 그러나 민중을 친혈육의 정으로 보살펴주는 공화국(북조선)의 품을 어머니라 부르는 이북의 군민들은 어머님의 은혜를 노래하고 아버님의 은덕에 효도를 한다.
세상사람들은 화목을 이루고있는 이북사회의 아름다운 가정을 보게 된다.
저 하늘의 별을 따서라도 인민들에게 이 세상 제일 큰 행복과 영광을 안겨주고싶은것이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마음이였고 강대하고 문명하고 번영하는 나라를 반드시 세워서 후대들에게 물려주려는것이 그분의 의지였다.
절대로 민중을 잡초처럼 두지 않고 존엄이 있는 행복, 행복이 있는 존엄을 근로대중들에게 진정 안겨주고싶은것이다. 민중을 행복의 주인으로, 그 행복을 누리는 최고의 향유자로 내세우고싶은것이다.
근로대중들은 불철주야 인민의 행복을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바쳐가고있는 최고령도자에게 한없는 감사의 인사를 드리였고 또 모든것을 바쳐서 보답하고싶어한다.
이북의 민중들은 노래에서처럼 《나라의 온갖 혜택을 받아만 오면서 성장해온 우리가 나 하나의 무사안일과 일신의 향락만을 바라겠느냐, 조국을 위하여 일을 하자, 일신의 영달만을 꾀하지 말고 순간을 살아도 값있게 살자.》고 다짐한다.
《내 나라 제일로 좋아》
세계에는 200여개의 나라들이 존재하고있지만 완전한 독립을 이룩하여 자주정부를 수립하고 주권을 행사하고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기준도 불분명한데 이렇게 많은 나라들을 선진국이다 후진국이다, 부국이다 빈국이다, 문명국가이다 야만국가이다 등등 자기들 구미대로 분류하고있으나 그 나라를 평가하는데서 가장 중요한 기준일수 있는 자립경제체제국가인가, 예속경제체제국가인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있으며 특히 그 나라가 자주로선의 길을 걷고있는 나라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못하고있는것이 현실이다.
노래 《내 나라 제일로 좋아》는 가요, 합창, 중창 등으로 편곡되였고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의 주제음악으로 되여 더욱 유명하게 되였다. 특히 작곡가 김연규가 교향곡 《내 나라 제일로 좋아》 3악장에 민족적색채가 짙은 장새납독주를 도입해넣은 다음 민중들속에서 인기가 더욱 높아지게 되였다. 국립교향악단 단장인 김연규가 지은 이 교향곡의 지휘는 국립교향악단의 지휘자 김병화가 하였고 2000년에 국립교향악단 CD 제2집에 수록되였다.
주체의 내 나라 제일로 좋아
이북민중들이 《내 나라 제일로 좋아》라는 노래를 즐겨 부르고있는것은 조국의 산천경개가 삐여나게 아름답다고 해서 그런것만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나라가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많이 따와서 자랑스럽고, 세계미인대회에 나가 1등을 한것이 자랑스러울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진짜로 자랑하고싶은것은 따로 있는것이다.
아무리 배부르게 먹을수 있고 사는데 불편이 없는 나라라고 하더라도 자기 나라가 정치적으로 주권은 상실되고 군사의 지휘권도 없으며 사상은 무지하고 경제적으로는 예속되여 종놈신세를 면치 못하고있는 조건에서도 자부심을 가질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인간의 진정한 자부심은 자주의 한길로 나라를 이끌어 세상에 그 위상을 떨쳐나가는 령도자를 모시고있느냐, 모시지 못하였느냐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수긍이 가는 말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나라를 자랑하고싶은 마음이 있으리라 믿는다. 자기 나라가 제일이라는것을 증명이라도 해보기 위해 나라의 크기, 인구의 많고 적음, 그 나라의 GDP, GNP의 수치, 국가간에 진행되는 교역량 등 가당치도 않는 여러가지의 기록들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 나라의 경제력이 어떻다고 말하면서도 자주성, 주체성 등에 대해서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딱 다물어버리고만다.
나라의 자주성은 분명 경제력보다 중요한 위치에 있어야 함을 잘 알면서도 내색을 못하고있는 리유가 있는것이다. 세계의 많은 나라가 강한 나라의 간섭과 전횡속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몇몇 강대국의 눈치만 보며 살고있기때문이다.
나라의 자주성은 정치와 경제뿐만아니라 군사와 외교, 사회와 문화(체육) 등 모든 면에서 담보되여야 한다.
그러자면 사람중심의 정치가 펼쳐져야 하고 균등하고 공평한 부의 분배가 이뤄져야 한다.
나라가 자주국가로 우뚝 서려면 무엇보다도 외세의 침략을 방어할수 있는 막강한 힘이 있어야 한다. 한 나라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자유로울수가 없다면 어떻게 그것을 자주국가라고 부를수 있겠는가?
외세의 무수한 침략을 받아왔던 이북민중의 마음속엔 진정한 평화는 오직 침략자를 격퇴시킬수 있는 무력에서만 올수 있다는 믿음이 꽉 차있다. 그리고 그 믿음은 확고부동하다.
그래야 나라가 화평하고 화목과 행복속에 번영할수 있다는것이다. 이것이 이북민중들사이에 흐르고있는 일반적인 정서이다.
근로자가 행복한 나라
국호에서 보는바와 같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민주주의국가임을 자랑스럽고 뚜렷하게 표방하고있다.
그만큼 인간의 존엄을 귀중하게 여기며 나라의 모든 정책이 민중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맞춰져있다는 뜻일것이다.
국가는 사람들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사업을 첫자리에 놓고 그것을 담보하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며 복무하고있다. 그래서 민중들은 한없이 고마운 국가에 의지하고 나라의 무궁한 번영을 위해 할수 있는 최대의 헌신을 한다. 이렇게 살아가는 근로자들의 삶은 평안하고 행복하기만 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가정의 부모들이 할 일을 맡아 어린이들을 양육하고 학교를 마치고 사회인이 된 후까지 모든것을 보살펴주는것으로 알려져있다.
자기를 키워준 나라의 큰 은덕을 항상 잊지 못하고 자기를 키워준 당과 국가를 위해 모든것을 바쳐갈 결심을 하는것이 이북민중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당을 가리켜 은혜로운 어머니의 품이라 부르는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것이다.
요즘 부자나라나 앞서가는 나라라는 평판을 받고있는 여러 나라들에서 대학등록금때문에 문제가 되고있는것은 모두 들어서 알고있는 일이다.
만일 대학생들모두에게 전액장학금의 혜택을 주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겠는가.
학생들은 그야말로 학비걱정없이 진리탐구에 모든 열과 성을 쏟아부을수 있는것이 이북의 현실이라고 한다면 믿고싶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니 어찌하겠는가.
이북민중들은 화려하게 살진 못하지만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회주의조국이 있고 우리의 모든것을 책임져 배려하고 갖가지 혜택을 주는 어머니품과 같은 조선로동당이 있다고 긍지높게 말한다.
이북은 민중들의 행복과 안녕을 제일로 생각하고 모든 정책을 립안하고 실행해나간다. 그러면서 민족성을 살려나가고 미풍량속을 장려해나간다.
그래서 나라의 령도자는 언제나 민중들속에서 활동하며 그들의 단소리, 쓴소리를 모두 듣는다. 민중들이 한 말은 정책에 반영되고 혜택은 민중에게 돌려진다.
국호에서 보듯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될것 같은 느낌이 드는 대목이다.
사회주의조국이 너무나 위대해보였다.
《노래 〈내 나라 제일로 좋아〉를 가지고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의 첫 화면에 나오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친필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가요 《내 나라 제일로 좋아》는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을 탄생시킨 노래라고 말하고있다.
이 노래를 창작한 작가는 1990년경 변화되고있는 동유럽의 사회주의 여러 나라를 방문하고 돌아와 느끼고 체험한 많은 일들을 정리하고 다시 생각해보는 과정에서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이 얼마나 위대한지 심장으로 느끼게 되였다고 한다.
준엄한 국제정세속에서도 세계가 보란듯이 나라를 이끌어가고있는 령도자가 자랑스러워서 창작한것으로 알려진 노래라고 하는데 조선민족이 제일이라는 정서가 반영된 이 노래의 의미와 감동을 김정일국방위원장도 깊이 공감하고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을 만들도록 지시하였다고 한다.
조선민족제일주의정신이 흐르는 유명한 가요
가요 《내 나라 제일로 좋아》는 이북민중들이 사랑하고 즐겨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지만 이남의 운동권을 비롯하여 세계 도처에 흩어져 사는 우리 동포들사이에서 널리 애창되고있는 노래이다.
북에서 이 노래는 TV와 라지오방송 그리고 김일성광장 등에서 펼쳐지는 여러 경축무도회들에서 빼놓을수 없는 애창곡과 무도곡으로 되여있어 춤판이 벌어질 때면 당연히 이 노래가 있어야 흥성거리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춤판에 끼여들게 될 정도로 되여있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사람들은 민족의 한 성원이 된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노래의 가사는 세상을 다 돌아보아도 내 나라의 꽃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 없고 내 조국의 물보다 맑고 맛이 좋은 물은 없으며 우리의 노래보다 더 좋은 곡조가 없고 이보다 더 흥이 나는 장단은 없다는것을 절절하게 느꼈던 창작가의 감정을 통하여 자기 나라가 세상에서 제일이라는 자부심을 자랑스럽게 노래하였다.
가사의 내용이 너무나 소박하고 알기 쉬운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민중들에게 편안하게 안겨오기때문에 근로대중들의 크나큰 사랑을 받고있다.
아름답고 부드러운 민족적선률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현대적감각에 맞는 새로운 음악형식을 갖춘 선률은 매우 경쾌하며 리듬은 아주 발랄하고 개성적이다.
노래에 깃들어있는 조선민족제일주의정신이란 한마디로 말하여 조선민족의 위대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 조선민족의 위대성을 더욱 빛내이려는 높은 자각과 의지로 발현되는 숭고한 사상감정이다. 이 숭고한 사상감정이 노래 《내 나라 제일로 좋아》에 흠뻑 묻어있다.
이북에서 내세우는 조선민족이 제일이라는것은 결코 다른 민족을 얕보거나 자기 민족의 우월성만을 내세우라는것이 아니다.
북녘사람들은 《우리 나라(이북)는 인구가 다른 나라보다 많은것도 아니며 령토가 크지도 않다. 다른 나라와 민족을 배척하고 깔보아야 할 아무런 리유가 없다.》고 말한다.
바로 노래 《내 나라 제일로 좋아》가 강조하고있는 조선민족제일주의정신은 다른 민족들에 대한 존중 및 신뢰와도 련결되여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우리 겨레가 남다른 민족적자긍심을 가지고있는 바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민족문화를 가지고있으며 우수한 민족전통과 위대한 사상을 가지고있습니다. 바로 이런 민족성이 조선민족제일주의의 바탕으로 되는것입니다.》
사회주의사회에서는 자본주의사회에서와는 달리 재력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고 그 사람의 가치를 오직 사상에 의하여 규정한다고 한다. 따라서 나라의 존엄성을 재는 척도의 하나는 얼마나 위대한 지도사상을 가지고있느냐에 있다.
이북민중의 자부심이 대단한것은 위대한 지도사상을 가졌고 또 이를 충실히 실천하고있기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북민중들은 오늘도 위대한 지도사상을 받들어 민족성을 살리고 미풍량속을 옳바르게 지키고 발전시켜나가는것이다.
오늘 이북민중이 민족적자주의식을 가지고 모든것을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면서 겨레의 슬기로운 민족성을 고수하고 존엄성을 지켜나가는것은 전적으로 조선민족제일주의를 견지해온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지도사상에서 기인하고있는것이다.
가요 《내 나라 제일로 좋아》는 1990년대초 준엄한 국제정세속에서도 락천적으로 살아가려는 이북민중들의 강인한 생활기풍, 휘황한 미래를 내다보는 이북근로대중들의 정서를 자신있게 표현한 경쾌한 노래이다.
노래 《내 나라 제일로 좋아》에는 김일성주석이 이룩한 주체의 혁명위업의 최후승리를 기어이 이루고야말리라는 이북민중들의 두려움없는 배포가 맥박치고있다.
이 락천적인 노래를 즐겨 부르는 이북의 근로대중들은 반드시 강성국가건설의 빛나는 전성기를 펼쳐나갈것이다.
가요 《내 나라 제일로 좋아》는 1991년 최준경이 작사하고 리종오가 작곡한 노래이다.
이국의 들가에 피여난 꽃도
내 나라 꽃보다 곱지 못했소
(후렴)
돌아보면 세상은 넓고넓어도
내 사는 내 나라 제일로 좋아
랄라랄라 랄라라 랄라랄라라
내 사는 내 나라 제일로 좋아
벗들이 부어준 한모금 물도
내 고향 샘처럼 달지 못했소
(후렴)
노래도 아리랑곡조가 좋아
멀리서도 정답게 불러보았소
(후렴)
해와 별 비치여 밝고 정든 곳
내 다시 안길 땐 절을 하였소
(후렴)
《전호속의 나의 노래》
누구나 조국을 사랑하지만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조국에 대한 사랑은 누구보다도 지극하다고 사람들은 말하고있다.
조국은 사람들의 참된 삶과 꿈을 펼칠수 있고 후손만대의 행복이 담보되며 민중의 자주성이 실현된 주체의 조국이라는것, 이러한 사회주의조국을 창건하고 이끌어가는것이 수령이기때문에 수령은 곧 조국이라는것이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지론이다.
조국은 모든 사람들의 진정한 어머니이며 삶과 행복의 요람과 같아서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이고 대상이기때문에 이북민중들은 행복의 요람인 조국의 륭성번영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서슴없이 바치게 되는것이라고 말한다.
1962년 8월 어느날,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학우들과 함께 평양 룡성구역 어은동에서 군사훈련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려 할 때였다. 누군가가 부르는 선창에 따라 전시가요 《전호속의 나의 노래》가 숲속으로 은은하게 울려퍼지기 시작하였다.
전호속의 나의 노래 고향으로 울려가라
조국땅을 보위하려 총을 멘지 삼년석달
적탄알이 비발치는 격렬한 싸움에도
공세우라 하신 말씀 명심하여 싸웠네
공세우라 하신 말씀 명심하여 싸웠노라
전호속의 나의 노래 고향으로 울려가라
우리 행복 삼키려는 원쑤 미제 쳐부시고
빛난 훈장 가슴팍에 내 집으로 돌아가면
사랑하는 부모처자 두팔로써 안기리
사랑하는 부모처자 두팔로써 안기리라
노래소리는 산골짜기를 따라 끝없이 울려퍼지고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전시가요 《전호속의 나의 노래》를 부르니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화선에서 병사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멸적의 투지를 다지던 모습이 눈에 안겨온다고 하시였다.
계속하여 전시가요 《전호속의 나의 노래》는 가렬처절했던 전화의 날에는 물론 오늘도 우리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속에서 널리 불리우는 노래이라고,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인민군장병들은 하루에도 수십차례씩 달려드는 적들의 공격을 물리치고는 불타는 고지에서 휴식의 한때가 오면 마라초를 피우며 고향에 두고 온 사랑하는 부모처자를 생각하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고, 동무들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훈련의 짬시간에 작품세계에 잠겨 이 노래를 합창으로 부르는것을 보면 확실히 전시가요 《전호속의 나의 노래》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명곡이라고,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며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노래는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지적하시였다.
이렇게 한편의 소박한 가요를 통해서도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어머니조국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며 조국의 존엄을 위하여 어떻게 투쟁하여야 하는것까지 일일이 례를 들어가며 심장깊이 깨우쳐주시였다.
참으로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조국에 대한 사랑의 정서는 김일성주석을 높이 모신 긍지로 넘쳐있었고 사회주의조국의 륭성번영을 확고하게 담보할 토대를 마련해준 김일성주석의 뜻을 받들어 근로대중을 행복의 락원으로 인도하려는 사랑으로 충만되여있었다.
가요 《전호속의 나의 노래》는 예술영화 《화선에서 부르던 노래》의 영화음악으로도 널리 알려져있다. 전쟁이 치렬하게 벌어지고있던 1951년 심봉원이 작사하고 교성곡 《압록강》과 관현악과 합창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의 창작으로 유명한 김옥성이 작곡하였다.
고향을 그리워하고 부모형제의 안녕을 기원하고 그리워하는것도 하나의 애국심이다.
인민군전사들이 치렬했던 싸움터에서 대중적영웅주의를 발휘하여 그처럼 용감하게 싸울수 있었던 비결의 하나가 바로 그들의 고향에 대한 사랑, 조국에 대한 불같은 사랑에 있었다는것을 전시가요 《전호속의 나의 노래》는 하나의 소박한 시적형상을 통하여 보여준다.
삼년석달이나 총탄이 비발치는 전장에서 치렬한 전투를 하면서도 병사들은 평화롭고 무궁번영할 조국의 앞날을 긍지높게 내다보았다. 병사들에게는 손에 억세게 쥐여져있는 총대가 나라의 진정한 평화를 담보하고 궁극적으로는 꿈에도 그려온 사랑하는 부모처자들의 행복을 지켜낼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때문이였다.
병사들은 자기들이 서있는 자리가 영광스러운 조국과 사랑하는 부모형제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가를 심장으로 절감하면서 정의의 총대로써 침략자들을 무찔러 조국을 영원히 부강하게 하리라는 굳은 결의를 다지였다.
조국해방전쟁의 성격은 이렇게 전시가요에서부터 명확히 규정되였으며 온 나라의 청년들, 온 민중이 합창한 《전호속의 나의 노래》는 침략자들에 대한 민중의 단호한 경고였고 선언이였다.
김일성주석은 1950년 6월 26일 전체 조선인민에게 한 방송연설에서 인류력사는 자기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투쟁에 결사적으로 궐기한 인민들은 언제든지 승리한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고, 우리의 투쟁은 정의의 투쟁이라고, 승리는 반드시 우리 인민의 편에 있을것이라고 격려하시였다. 찬란한 래일을 전호속에서 보았다.
전쟁시기에는 국가와 민족뿐아니라 개인의 운명까지도 예측할수 없는 급박한 상황을 맞게 될수도 있다. 이런 예측하기 어려운 때에 음악은 그 어느 때와도 비교할수 없이 강렬한 힘을 발휘하게 되여 민중을 하나로 묶는데 큰 역할을 해낸다. 근로대중들의 감정정서는 음악을 통하여 조국을 수호하려는 강렬한 열망으로 결집되는 위대한 힘을 뿜어낸다.
혁명은 미래를 위한것이다. 비록 혁명투사는 자기 생전에 그 투쟁의 열매를 보지 못하고 떠날수도 있지만 조국의 휘황찬란한 앞날과 후손만대의 행복을 위하여 소중한 청춘도 혁명을 위해 바치고 둘도 없는 목숨까지도 기꺼이 조국에 바치지 않았던가.
그래서 혁명가는 자기에게 차례지는 영광은 동지들과 후대들에게 남기고 자신은 락엽으로 되여 혁명의 뿌리를 감싸주게 된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혁명가들에게는 오늘보다 래일을 위하여 살며 투쟁하는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면서 끝없이 번영할 사회주의조국, 그 품속에서 더욱 보람차고 행복한 삶을 누릴 인민의 모습을 그리며 그 어떤 난관도 달게 여기며 일하고있다고 지적하시였다.
참으로 승리의 신심에 넘치는 고견이다.
사랑은 그리운 부모형제, 정든 고향과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도 아낌없이 바치려는 불보다 뜨거운 애정으로 승화된다.
그런데 목숨보다 더 귀중한 그 사랑을 유린하는 침략자들이 있다. 사랑을 파괴하고있는 무법자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는 불같이 격렬한 투쟁으로 이어지고 여기서 쟁취한 승리의 감정은 민중들의 정서를 뜨겁게 끓게 하여 강하게 분출시켜놓는다.
이런 격한 감정들은 한곳으로 축적되여 주먹을 불끈 쥐는 힘을 샘솟게 하고 이런 정서들은 승화되여 많은 명곡들을 창조해내게 하며 민중들은 창조된 노래들을 부르고 또 부르며 조국수호전에 나서게 되는것이다.
준엄한 전쟁시기 전호속에서도 《전호속의 나의 노래》를 부르며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랑만이 있었던것은 혁명가들이 항상 그러하였던것처럼 병사들도 착취와 차별이 없는 인민의 나라를 민중들에게 안겨주고 지켜주려는 최고사령관을 한없이 신뢰하고 조국의 찬란한 미래의 청사진을 긍지높게 보고있었기때문이였으리라.
민중들과 병사들의 가슴은 령도자의 두리에 뭉쳐 그 위대한 꿈을 꼭 이루고야말겠다는 불같은 신념과 의지로 불타고있었던것이다.
전화의 나날에 지녔던 병사들의 꿈은 강성대국으로 반드시 이루어질것이다.
사람들은 이북을 비유할 때 고슴도치라고도 하며 전갈이라는 말로도 표현을 한다. 그것은 북조선이 나라의 면적도 넓지 않고 인구도 많지 않으나 함부로 건드릴수 없는 무적의 나라 또는 대단히 저력이 있는 나라라는 말로 리해되고있다.
이미 북에 대해 알고있거나 국제회의의 협상테이블에서 담판의 당사자로 마주앉아본 경험이 있는 외교관들은 북조선을 가리켜 한결같이 말로는 당해낼수 없는 상대라고 혀를 내두른다는것이다.
무력으로도 건드릴수가 없고 담판에서도 말발이 서지 않는 이런 현상을 두고 무엇이라고 표현할수 있을가?
사람들은 그것이 알고싶었던것이다. 다른 나라들도 일군들을 전문적으로 육성하고있지만 북조선의 인재육성의 비법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결국 대단한 대답은 나오고야말았다. 그것은 자주로선을 고수하고 자력갱생의 기치아래 주체교육을 하기때문이라는것이다.
이들도 사회주의의 전통을 계승발전시켜온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령도력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는 모양이였다.
어떤 사람은 북조선의 음악에 대해 기계적이고 딱딱하고 랭혈적인 차가운 음악이라는 막연한 선입견으로 혹평을 하였었다. 그러던 사람이 후에 우연히 인터네트를 통해 북의 음악을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시간은 흘러서 몇개월 지난 후에 그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였는데 그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북조선의 음악에서 다른 나라의 음악과 다른 특이한 몇가지를 발견할수가 있었다.
음악에 민족적색채가 짙었으며 장단과 가락은 아주 매혹적이였다고 하였다. 민족악기의 독특한 음색이 인상적이였다고 하면서 자기에겐 역시 민족적인 선률이 제격이였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가 옳은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들어보아도 《전호속의 나의 노래》와 같이 밝은 희망을 심어주고 기쁨에 넘쳐 살게 된다는 긍정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음악은 다른 나라의 노래에서는 찾아볼수가 없는것이다. 나는 그에게 이북의 예술가들이 놀라운 창의력으로 세계음악의 중심에 설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민중중심의 음악정치를 펼친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이끄심이 있었기때문이라고 말해주었다.
최근 평양을 방문했던 미국의 저명한 지휘자와 이남의 이름있는 음악가도 이북의 교향악단과 공연단체의 공연모습을 직접 목격하고 몹시 감격하였다고 말하였다. 북조선은 음악으로 단결을 이룬 나라이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나 전쟁이 일어난 날은 잊지 않고있을것이다.
전쟁에서 진쪽은 패자로서 이런 패전의 쓴맛을 다시는 보지 말아야 하고 저지른 도발은 패망이라는 력사적교훈을 받게 된다.
정의의 수호자, 전쟁의 승리자들은 자손만대에 그 영광을 기억하게 하고 승리의 자랑찬 력사를 긍지높게 간직하게 한다.
이러한 가치와 생명력을 가진 력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위대한 기록의 하나가 다름아닌 전시가요라고 할수 있는데 이런 기념비적인 노래는 실로 영원한 생명력으로 민중속에 파고든다.
이북의 가요는 다른 나라의 노래처럼 절망적이지 않고 우쭐해서 남을 경멸하는 노래는 아예 있지도 않다. 무법자처럼 설치고 미쳐날뛰는 그런 싹수없는 음악은 아예 없다. 망나니같은 시끄럽고 파괴적인 소리는 음악축에 끼지도 못한다.
이북의 전시가요는 고귀한 정서가 내면에 흐르고있어 비록 견디기 힘든 역경이 엄습한다 해도 민중이 언제나 희망의 노래를 부르게 한다.
조국해방전쟁(6.25전쟁)시기에도 그 조그마한 나라가 미제와 그에 추종한 15개 나라 군대와 남조선괴뢰군을 어떻게 물리칠수가 있었겠는가?
불가사의한 이야기의 비결은 《전호속의 나의 노래》와 같은 심장의 노래가 병사들속에 있었기때문일것이다.
전쟁시기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조국해방전쟁의 길에 나섰던 대렬에 어린 병사들도 있었다. 전선으로부터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수천리길을 걸어오면서도 병사들은 전시가요의 구절구절에 담겨있는 깊은 뜻과 선률에서 오는 감동을 몇번이고 곱씹으며 최고사령관이 있는 곳을 찾아간다.
병사들의 마음속엔 그 길만이 승리의 길이며 최고사령관동지만 있으면 반드시 이긴다는 뜨거운 믿음이 있었다. 진정 그 어린 병사들은 최고사령관동지는 조국이고 승리라는 믿음에 충만해있었다.
이북의 가요들은 소박하다. 그러나 백전백승을 가져오는 이북의 전시가요들은 위대한 생명력을 웅비하고있었으며 노래는 온 나라 민중을 일깨워 승리의 광장으로 불러일으키는 기적같은 힘을 뿜어냈다.
수령만을 굳게 믿고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병사들은 전쟁의 진정한 승리자로 되였고 무적의 강자들로 이름을 떨쳤다.
조선의 영광은 노래와 함께 영원하다. 오늘도 이북의 근로대중들은 조국수호전쟁의 그 나날 전선에 울려퍼졌던 가요 《전호속의 나의 노래》의 의미를 다시금 심장에 안고 제국주의자들의 집요한 반공화국책동을 단호히 짓부시면서 내 나라의 푸른 하늘아래 보란듯이 강성국가의 전성기를 펼쳐놓을 굳은 결의를 하고있는것이다.
《눈이 내린다》의 세계를 심장에 안고 살자!
관현악과 합창 《눈이 내린다》를 인터네트싸이트 유튜브에서 볼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뉴욕필하모니의 평양공연이 진행되면서 국제적으로 유명해지게 된 동평양대극장에서는 외국인, 해외동포들을 위한 특별음악회가 열리고있었다. 공연은 세계인의 관심속에서 성대하게 진행되였다.
공연에는 세계적수준으로 평가받고있는 조선의 공훈국가합창단과 국립교향악단이 출연하였다. 민족악기들의 독특한 향취가 가득한 배합관현악의 신비한 색갈은 1 500여석의 자리를 꽉 메운 관람객들을 숭엄한 감동의 세계로 이끌어갔다.
한시간 남짓하게 진행된 음악회는 관현악과 합창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는데 새롭게 태여난 관현악과 합창 《눈이 내린다》는 이날 공연에서 절정을 이루었으며 음악전문가들과 애호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집중시켰다.
음악은 눈보라를 헤치며 적들을 물리친 항일투쟁의 산 력사와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영웅적으로 싸운 투사들의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는 이북민중들의 순수한 정신세계를 격조높게 형상하였다.
나는 여기서 관현악과 합창 《눈이 내린다》에 대한 이야기를 노래와 함께 전하려고 한다.
록화실황연주를 본것이였지만 공연은 규모나 높은 예술적기량으로 청중을 압도하였음을 느낄수 있었다. 충격과 흥분속에서 진행된 이 공연이 주는 감동은 실로 대단하였다. 공연이 진행되고있는 동안 나는 잠시도 인터네트화면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다.
눈이 내린다 흰눈이 내린다
빨찌산이야기로 이밤도 깊어가는데
불밝은 창문가에 흰눈이 내린다
눈이 내린다 흰눈이 내린다
밀림의 기나긴 밤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함박눈 송이송이 고요히 내린다
눈이 내린다 흰눈이 내린다
이 나라 빨찌산들의 그 념원 꽃핀 강산에
이밤이 지새도록 흰눈이 내린다
노래 《눈이 내린다》는 1965년에 창작되였고 1967년에 군무로 창작되여 더욱 유명해지게 되였다. 그러나 노래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대중속에서 인기를 독차지하고있었다.
가요 《눈이 내린다》는 가사가 근로대중들의 정서에 맞고 선률의 사색적이고 심오한 사상성으로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노래이다.
이날 음악회의 주요프로그람인 관현악과 합창 《눈이 내린다》는 1965년에 창작된 노래 《눈이 내린다》를 재형상한것이다.
관현악과 합창 《눈이 내린다》는 이북에서 선군시대의 기념비적걸작으로 평가받고있으며 날마다 라지오와 TV방송을 통해 대중들에게 다가가고있다.
이날 음악회에서는 《아리랑》, 《못 잊을 삼일포의 메아리》, 피치카토를 위한 현악합주 《이 강산 하도 좋아》, 관현악 《페르샤의 시장에서》(외국곡), 《장군님 백마타고 달리신다》 등 여러 종목들이 공연되였다.
공연에서 절정을 이루면서 관심을 집중시킨 종목은 단연 관현악과 합창 《눈이 내린다》였다. 공연에 출연한 국립교향악단과 공훈국가합창단 성원들과 지휘자에게 관중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였다.
관현악과 합창 《눈이 내린다》의 작품길이는 13분정도 된다.
이북 최고수준의 연주단체가 펼치는 열연을 통해 나오는 소리는 그 짧은 연주시간동안에 눈보라를 헤치며 적들을 물리친 항일투쟁의 나날과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싸운 투사들의 이야기로 밤을 지새우는 대중들의 정신세계를 생생하게 그려놓았다.
연주가 끝나자 우렁찬 박수가 터져나왔다. 지휘자는 관람객들의 끈질긴 요청을 받아들여 관현악과 합창 《눈이 내린다》를 다시한번 연주하였다. 환호하는 박수소리는 그칠줄 몰랐다.
이렇게 하여 시대의 기념비적걸작으로 탄생한 관현악과 합창 《눈이 내린다》는 승리의 나팔소리로 우렁차게 울려퍼지며 강성국가건설을 위해 땀을 흘리며 영웅적인 투쟁을 하고있는 이북의 근로대중들을 힘차게 고무하고있다.
《로동신문》은 《인류력사의 두터운 갈피에는 자기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모든것을 바친 영웅들의 이야기가 수없이 새겨져있지만 이 나라 빨찌산들의 이야기처럼 후세들의 심장을 뜨겁게 울려주는것은 없다.》고 하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백두밀림에서 시작된 우리 혁명의 행군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우리가 가야 할 혁명의 길은 멀고 험난합니다. 우리는 항일혁명선렬들이 필승의 신념을 지니고 굴함없이 싸운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사람들을 교양하여야 합니다.》라고 지적하시였다.
관현악과 합창 《눈이 내린다》는 강성국가건설의 전성기를 펼치기 위해 근로대중들이 부르는 승리의 함성으로 울려퍼지고있다.
관현악과 합창 《눈이 내린다》는 눈보라폭풍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김일성종합대학시절에 만든 민족악기 어은금과 하프가 묘하게 배합되여 울리는 소리가 신비로움을 자아내며 독특한 음색으로 그 옛날 밀림속에서 잠 못 이루던 빨찌산의 추억을 반짝이는 현에 태워 고요하게 흘러보내였고 바이올린군과 첼로군의 설레이는 선률은 항일의 혈전지로 우리의 마음들을 이끌어가고있었다. 여기에서 어은금을 도입한것은 하나의 혁신적인 시도였는데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하고싶다.
희생된 전사를 추모하듯 절절하게 들려오는 바이올린독주의 선률과 설음이 북받치는것과도 같은 합창단의 속삭임소리가 가슴을 파고들어올 때 팀파니와 금관악기들의 불벼락같은 호령소리와 진격의 나팔소리가 천둥치는것처럼 격동적으로 울리면서 간고했던 항일투쟁의 그 력사를 생생하게 재현하는 10여분의 음악속에서 느끼는 충격과 흥분은 흰눈이 쌓인 밀림속의 치렬했던 격전지를 다시 찾는듯 하였다고 관람객들은 입을 모았다.
백두의 줄기마다에 쓰러진 빨찌산들의 넋이 다시 살아나서 21세기 후손들에게 소리쳐 웨치는 혁명의 진리를 들었고 세기와 세기를 이어 승리의 한길로만 줄기차게 이어온 위대한 력사의 밑뿌리가 어떤것인가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는 우리 장군님께서는 백두산에서 남들이 100년, 200년을 두고도 못다 맞을 눈비를 다 맞으셨다고, 늘 어깨에 내린 눈을 털 사이없이, 비에 젖은 옷을 말릴 사이없이 원쑤들과 싸우셨다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숙녀사의 이 뜨거운 목소리가 송이송이 눈으로 되여 이 강산에 내린다고 사람들은 말하였다.
《편곡은 창작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명언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편곡도 작곡이상으로 품을 들이고 편곡의 새로운 기법을 연구하고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것을 활용할데 대한 새로운 지침을 주시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편곡은 노래선률을 짓는것에 못지 않은 어려운 작업으로서 높은 창작기교를 요구한다.》고 하시였다.
편곡은 새 작품을 창작하는데 못지 않게 어려운 작업으로서 편곡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음악의 폭과 깊이가 달라지고 그 수준과 품격이 달라지게 된다.
관현악과 합창 《눈이 내린다》는 지난 시기에 나온 명곡 《눈이 내린다》를 가지고 만들어진 작품으로서 새로운 편곡기법으로 재형상하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훌륭히 소화해냄으로써 같은 노래를 가지고서도 기악중주곡과도 다르고 무용조곡으로 편곡된것과도 다른, 교향악적인 거대한 화폭에 새로운 맛의 신선한 그림을 그려낼수가 있었다.
관현악과 합창 《눈이 내린다》는 리면상작곡의 원곡을 백두의 눈보라를 헤치며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간고한 투쟁을 벌려온 김일성주석의 항일혁명투쟁사에 대한 깊은 감동을 담아 재형상한 명곡중의 명곡이다.
바로 이러한 명곡을 관현악과 합창으로 편곡하면서 곡에 담겨진 내용과 심오한 사상을 교향악적으로 깊이있게 보여주려면 항일혁명투쟁사를 집약적으로 탐구하여야 하며 특히 소재는 백두산의 투쟁력사에서 찾아내여야 한다.
그런 면에서 관현악과 합창 《눈이 내린다》는 기존의 틀에 박힌 도입단계, 발전단계, 종결단계의 3단계 편곡기법의 틀에서 벗어나 중간발전부를 과감하고 다양하게 발전시켜 관현악사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놓은 걸작이다.
관현악과 합창 《눈이 내린다》의 이러한 중간의 발전부에서 그 규모를 대담하게 확대하였고 구조형식에서 파격적으로 과감한 처리를 하여 전투적용감성, 심오한 철학성, 미래의 락관성과 확실성으로 관현악전체를 감동과 신심이 넘쳐나게 하였다.
이 곡이 높이 평가받는 리유도 여기에 있을것이다. 이북의 근로대중들은 그 누구나 다 《눈이 내린다》를 좋아한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새로 형상한 관현악과 합창 《눈이 내린다》를 보아주시고 관현악과 합창 《눈이 내린다》가 정말 훌륭하다고, 작품이 대걸작이라고 치하하시였다고 한다.
김정일국방위원장처럼 온넋으로, 온 심장으로 이 노래를 열렬하게 사랑하신 위인은 없을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노래에 대한 애착심과 열정이 얼마나 크고 강렬하였으면 이렇게 표현하였을가.
그 선률이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하며 그 음량이 얼마나 장중하고 영웅적이며 그 하나하나의 음향들이 얼마나 그윽한것인가는 오직 김정일국방위원장만이 생생히 알고 표현할수 있을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이시야말로 항일혁명의 불길속에서 탄생하시여 성장하신 민족의 령도자이시였기때문이다.
김일성주석은 조선의 창창한 미래를 이렇게 내다보시였다.
《김정일동무를 백두산의 아들이라고 하는것은 항일혁명의 산아라는 뜻이며 민족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항일혁명투사들의 품에서 인생의 첫걸음을 떼고 그 품에서 우리 혁명의 향도성으로 솟아오른 조선의 아들입니다.
…
우리 혁명의 대가 굳건한것은 김정일동무가 항일혁명의 불길속에서 나서자란 민족의 령수이기때문입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을 알려면 그분이 어떤 심정으로 어떻게 살며 싸웠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러자면 관현악과 합창 《눈이 내린다》의 음악세계를 리해할수 있는 판단능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 음악의 깊은 세계를 알아본다는것은 곧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혁명세계, 그분의 의중과 사랑과 분노, 기쁨과 슬픔, 희망과 포부, 도덕과 의리 그 모든것을 안다는것을 의미한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관현악과 합창 《눈이 내린다》에서 기본핵은 3절에 나오는 《이 나라 빨찌산들의 그 념원 꽃핀 강산에》라는 구절에 있다고 언급하시였다.
그것은 반만년의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전설적영웅 김일성주석과 생사운명을 함께 한 혁명의 1세들이 바친 청춘의 이야기, 조국에 바친 숭고한 애국심과 민중들에게 남기고 간 고귀한 희생정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때문일것이다.
《눈이 내린다》의 세계를 심장에 안고 살자!
사람들은 광활한 령토도, 무진장한 나라의 자원도, 흥성이는 경제력도 국가의 큰 재산으로 칠수 있다.
하지만 조국의 영원한 번영과 무궁무진한 승리의 잠재력은 령토나 자원도 아니고 흥성이는 경제력도 아닌 강인한 정신력에 기초한,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백두의 혁명전통이라고 말할수 있다.
관현악과 합창 《눈이 내린다》를 들으면 백두의 눈폭풍을 헤쳐나온 선렬들의 고귀한 정신세계를 알게 될것이다.
우리는 그 정신을 자기 삶의 신조로 세워 살아가야 할것이다. 그러면 난관도 두렵지 않고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그것을 맞받아칠 승리의 신심도 넘쳐나게 될것이다.
말로 다 표현할수 없는 어려운 시련과 고비들을 이겨낸 선렬들의 모범적투쟁정신을 따라배우고 실천한다면 이 시대를 사는 후대들은 어떤 역경이 들이닥쳐도 절대 굴하지 않을 힘과 배짱이 생기게 될것이다. 실천과 투쟁과정에서 자기의 신념이 목숨보다 귀중하다는 진리를 터득하게 될것이다.
오늘의 행복은 백두의 피어린 줄기줄기에 묻힌 선렬들의 넋에서 꽃펴난것임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눈보라가 세차게 불어닥치는 격전지에서 적들을 쓸어눕혔던 만고의 빨찌산 20대청년장군의 영웅적기상, 백두산밀영고향집에 넘치던 백두광명성의 푸른 정기는 자주조국의 밝은 래일을 밝혀주고있으며 관현악과 합창 《눈이 내린다》의 기상을 기폭에 수놓아 높이 들고나가는 조선의 앞길에는 휘황찬란한 승리만이 있을것이다.
중화대지를 뒤흔든 조선의 가극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은 식민지노예로 암담한 생활을 하였으며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았다.
김일성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자신이 민중들과 생활해오는 과정에서 직접 체험한 당시의 어두운 모습을 생생하게 써놓으시였다.
이 시기에 자행된 일제의 악랄한 억압과 강탈 그리고 일제의 비호를 받는 조선인지주, 자본가들의 착취와 횡포는 말할수 없이 극심하였다. 항일유격대는 수자와 화력면에서 《토벌대》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지만 김일성주석이 이끄는 조선의 혁명무력은 《토벌대》를 상대하는 싸움에서 련전련승하였고 승리의 소식은 민중들에게 커다란 신심을 주었다.
백두산을 바라보는 민중들의 가슴엔 희망의 싹이 움트기 시작하였다. 항상 《토벌대》와의 싸움을 하는 엄혹한 환경속에서도
김일성주석은 고통을 당하는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주고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기 위해 선전선동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시였다.
일제를 반대하는 대중들의 투쟁은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이런 항일의 불길속에서 태여난 불후의 고전적명작 《꽃파는 처녀》는 진보적인류가 지향하는 인간의 본성적요구를 반영한 참다운 삶의 교과서로 되였으며 자주와 정의를 지향하는 근로대중의 투쟁을 선도하는 불멸의 기치로 대중들을 교양하고 이끌었다.
우리 민족과 세계의 진보적민중들은 오늘도 김일성주석께서 초기혁명활동시기에 친히 불후의 고전적명작 《꽃파는 처녀》를 창작하던 력사의 그날을 되돌아보면서 끝없는 민족애와 위대한 애국심으로 민중을 이끌어갔던 김일성주석의 위인적천품을 다시한번 우러러보게 된다.
김일성주석은 중국 만주일대의 광활한 농촌지역들을 혁명화하고 반일의 기치아래 민중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기 위하여 항일무장투쟁의 대중적기반을 확실하게 다져가면서 근로대중들을 혁명적으로 각성시키기 위한 정치사업의 하나로 혁명적문예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벌려나가시였다.
김일성주석께서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오가자에는 우리가 무어준 연예대가 있었다. 이 연예대가 계영춘의 지도를 받으면서 삼성학교를 거점으로 활동을 잘하였다. 나도 길림시절부터 쓰기 시작하여 시험적으로 몇차례 련습까지 해본 〈꽃파는 처녀〉의 대본완성작업에 달라붙었다. 대본이 완성되자 계영춘이 삼성학교에 조직되여있는 연극조성원들을 데리고 형상작업을 시작하였다. 우리는 10월혁명 13돐기념일에 삼성학교 강당에서 이 가극을 공연하였다.》
앓는 어머니의 병을 고쳐보려고 꽃을 파는 한 처녀의 이야기, 인간의 자주성이 무참하게 짓밟히는 착취사회에서 혁명가로 자라나는 주인공의 성장과정을 보여주는 가극의 내용은 억눌리고 천대받는 우리 민족이 살길은 오직 인간해방, 민족해방, 계급해방의 길, 혁명의 길밖에 없다는 진리를 깊이 깨우쳐준다.
지주집에서 좁쌀 두말을 꾸어다 먹은 빚때문에 대를 두고 머슴살이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꽃분이네 일가의 기구한 운명, 꽃분이가 애처롭게 부르는 가극의 주제가를 들으며 가극을 관람하는 민중들은 꽃분이의 처지가 자기들이 일제와 지주에게서 받고있는 설음이라고 생각하였고 이런 착취와 억압에서 벗어날수 있는 길은 오직 혁명의 길에 나서서 투쟁하는 길밖에 없다는것을 뼈저리게 느끼고있었다.
혁명의 위대한 진리를 깨우쳐주며 관중들의 심금을 울리는 불후의 고전적명작 《꽃파는 처녀》의 주제가가사는 너무나도 소박하고 애틋하다.
꽃사시오 꽃사시오 어여쁜 빨간 꽃
향기롭고 빛갈고운 아름다운 빨간 꽃
앓는 엄마 약구하려 정성담아 가꾼 꽃
꽃사시오 꽃사시오 이꽃이꽃 빨간 꽃
산기슭에 곱게 피는 아름다운 진달래
산기슭에 피여나는 연분홍빛 살구꽃
꽃사시오 꽃사시오 이 꽃을 사시면
설음많은 가슴에도 새 봄빛이 안겨요
이렇게 해서 태여난 이 불후의 명작은 오늘도 자주적인 민중들에게 크나큰 감명을 주고있다.
이 곡은 1989년 5월 뉴욕에서 력사적인 《남북가곡의 밤》공연에서 합창으로 편곡되여 불러졌고 청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곡이다. 그때만 해도 이북과 교류가 전혀 없었던 때라 비데오에서 몇곡을 채보하여 악보를 준비할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속에서 악보를 준비하여준 작곡가 김은경박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싶다.
가극이 창작되고 그 첫막을 올린 때로부터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꽃파는 처녀》는 문학예술의 영재이신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현명한 령도와 정력적인 지도에 의하여 1970년대에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로 각색되였으며 그로 인하여 이북에서는 물론 아시아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뜨거운 인기속에서 절찬을 받으며 공연을 이어가고있다.
중국땅을 뒤흔든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는 그 거대한 생명력과 감화력으로 《세계최고의 만점짜리 가극》, 《조선에서만 창조될수 있는 최고의 걸작》으로 찬양받으며 빛을 뿌리고있다. 김일성주석이 1930년 11월 첫 공연을 한 뒤로부터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는 중국인들과 깊은 인연을 맺고 조중친선의 아름다운 꽃을 활짝 피우며 여러차례 중국에서 공연되였다.
1973년 6월 만수대예술단 예술인들이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를 가지고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하여 순회공연을 진행하였을 때에도 《꽃파는 처녀》는 심오한 사상성과 뛰여난 예술성으로 하여 중국인민들에게 잊을수 없는 인상을 남겨놓았다.
그때로부터 25년후인 1998년말에 또다시 중국순회공연길에 오른 만수대예술단 예술인들이 부르는 불후의 고전적명작 《꽃파는 처녀》의 아름다운 노래선률이 중국인들의 심장을 다시 울려줄 때 그들의 반응은 참으로 대단하였다.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에 대한 중국인들의 아름다운 추억과 감동은 사라지지 않고있으며 세기를 이어가며 조중친선의 력사는 더욱더 빛나고있다.
2008년 4월 중순부터 50여일간 중국의 수도 베이징을 비롯하여 여러 주요도시들에서 피바다가극단의 예술인들이 진행한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공연은 중국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며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08년 4월 15일 뜻깊은 태양절에 중국 베이징의 국가대극원 가극극장에서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의 첫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피바다가극단의 예술인들은 상해, 무한, 항주, 천진, 남경 등을 순회공연하면서 수만명을 대상으로 20여회에 걸쳐 대성황을 이루며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어나가며 《꽃파는 처녀》의 열풍을 다시금 일으키였다.
중국의 신문방송매체들은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는 1930년대에 김일성주석이 창작하였으며 1970년대에 김정일령도자의 정력적인 지도밑에 영화와 가극으로 각색되였다고 전하면서 《<꽃사시오 꽃사시오 어여쁜 빨간 꽃>의 아름다운 노래선률과 함께 불쌍한 꽃분이의 운명이 펼쳐진다. 가극을 감상하는 관중들의 눈에서는 마치 호수의 뚝이 무너져내린것처럼 눈물이 쏟아져나왔다.》고 보도하였다.
또한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는 지난 세기에 창작된 가극으로서 민족적, 시대적특징이 뚜렷하며 북조선 국내와 세계 각지에서 진행한 1 400여회의 공연에서 언제나 관중들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꽃파는 처녀》는 진정한 고전적작품의 매력은 영원하다는 말을 다시한번 증명하였다, 1980년대 후반기와 1990년대 후반기의 젊은 관중들에게 있어서도 《꽃파는 처녀》는 교양적의의를 가진다고 자기들의 심정을 고백하고 공연실황과 그 의의에 대하여 대서특필하였다.
참으로 김일성주석이 초기혁명활동시기에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 《꽃파는 처녀》를 각색한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는 북조선의 주체적가극예술의 진수를 보이고있으며 가극예술발전에서 특출한 위치를 차지하고있다.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의 높은 예술성
훌륭한 예술은 위대한 인간, 천재적인 예술가의 지도에 의해서만 창조될수 있다.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공연을 관람한 중국인들은 세기를 이어 길이 빛날 명작을 창작하여 인류예술의 영원한 재보를 만들어준 김일성주석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불멸의 업적을 높이 칭송하였다.
나는 2009년초에 호남성교향악단의 초청을 받아 창사에 갔었다. 그 악단의 상임지휘자인 소명씨는 나에게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에서 나오는 노래 《혁명의 꽃씨앗을 뿌려간다네》를 불러주는것이였다. 어떻게 그 노래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작년에 이곳에서 진행된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공연을 보았다고 하였다.
그는 《가극은 대본, 음악, 무용, 무대장치, 의상, 분장 등이 전체적으로 높은 수준에서 잘 조화를 이루며 짜임새있게 진행되였다. 극중에 나오는 노래마다 선률이 아름답고 내용은 관람객들의 심금을 울려주었다. 사상성과 예술성에서 나무랄데가 없이 우수했다.》고 가극에 대해 말했다.
그는 이어서 《이런 작품이 나오려면 국가의 예술정책이 똑바로 서있어야 하는데 조선의 령도자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천재적예술성과 령도예술을 이 작품에서도 똑똑히 볼수 있었다. 이런 대작은 돈이 많이 들어서 웬만한 부자나라에서도 공연할 엄두도 못낸다. 이런것을 놓고 생각해보면 조선민족은 크게 복받은 민족이다.》라고 하였다.
옳바른 리상과 인생관을 심어주는 가극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는 베이징을 비롯한 중국의 여러 도시들에서 련일 성황을 이루었고 이 가극이 가지고있는 높은 사상성과 옳바른 인생관은 중국민중의 마음속에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해주는 계기가 되였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인 류운산은 김일성주석이 창작한 고전적명작 《꽃파는 처녀》는 조선인민뿐아니라 중국인민들속에도 널리 알려져있으며 두 나라 인민이 사랑하는 작품이라고 하면서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는 젊은 세대들을 교양하는데 매우 좋은 작품이라고 강조하였다.
베이징의 한 병원의 안과의사 전수화는 《내가 안과의사가 된것은 조선의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때문이다. 어릴 때 영화 <꽃파는 처녀>를 보면서 나는 지주때문에 눈이 먼 순희가 너무도 불쌍하여 앞으로 눈을 치료해주는 의사가 되리라고 결심했으며 오늘 안과의사로 일하게 되였다.》고 하면서 《<꽃파는 처녀>는 이렇게 사람들로 하여금 옳바른 리상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하게 하는 힘을 주고있다.》고 말하였다.
베이징의 한 오락회사 총경리는 《로인이나 젊은이나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를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것이다. 우리 세대는 어린시절에 조선의 혁명적인 영화 <꽃파는 처녀>를 보면서 옳바른 가치관과 인생관을 가질수 있었다. 나는 우리 자녀들의 세대들이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의 공연을 보면서 바로 그런 교양을 받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신문과 방송매체들은 《인류예술의 영원한 재보》, 《조선에서만 창조될수 있는 최고의 걸작》,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는 《전세계를 감동시킬수 있는 걸작》이라고 찬사를 쏟아내였다.
예술의 천재로 알려진 김정일국방위원장만이 창조할수 있고 그분의 품속에서 자라난 이북의 예술인들만이 만들어낼수 있는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의 중국순회공연은 중원의 대지를 뒤흔들며 예술강국 조선의 모습을 온 세계앞에 다시금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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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극 《홍루몽》
이민사회에서는 1년에 한번이라도 오페라(가극)구경을 할수 있는 사람은 전문가나 생활에 여유가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빼면 별로 없는것이 현실이다. 설령 오페라극장을 가본다 해도 외국의 문화를 리해하기가 힘들어 느끼는 감흥이 없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가극 《홍루몽》의 중국순회공연에 대하여 신문과 방송에 보도된 기사들을 종합해보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고 열광했던것도 경이적인 현상이지만 그보다 더 큰것은 이 공연을 통해 조중 량국의 친선적인 우호가 더욱 돈독해졌고 두 나라 관계발전에서도 획기적인 전진이 이루어졌다는것이다.
평양에서 진행된 제2차 태양절기념 전국예술축전에 1차축전때와 다름없이 해외동포예술단도 초청되여 공연에 참가하게 되였다. 양각도호텔 로비에는 수많은 중국인관광객들로 붐비고있었다.
평양대극장에서 절찬속에 공연중인 가극 《홍루몽》을 보고싶어하는 재미예술단의 마음을 알아보았는지 축전조직위원회에서는 우리 재미예술단전원을 공연에 초대하여주었다. 나라의 배려가 있었던것이다.
청나라 조설근의 장편소설 《홍루몽》은 남자주인공 가보옥과 두 녀주인공 림대옥, 설보채간의 3각관계로 인해 빚어지는 비극과 봉건가문의 흥망을 그린 대작이다.
가극 《홍루몽》에는 음악대학 학생들과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성악가들중에서 선발된 김일황, 최금주, 윤복실 등이 출연했고 연출은 채명석, 전은경이 하였다. 주인공을 뽑기 위해 전국적인 경쟁을 하였다고 한다.
우리가 평양대극장에 도착했을 때 극장 1층에는 중국인 관광객들로 발들일 틈이 없이 가득차있었다. 가극은 우리 말로 진행되였고 중국어자막이 동시에 제공되고있었다. 공연을 관람하는 중국인관광객들은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있었다. 크게 감동을 받고있는것이 틀림없지 않는가. 이만하면 오늘 공연은 대성공이다. 박수소리는 우뢰소리와 같았고 열광하는 청중들의 환호성은 그칠줄 몰랐다.
가극 《홍루몽》에서 서주의 소해금독주가 중국의 정서를 잘 살렸고 방창은 극의 내면세계에로 우리를 돌입시켰다. 관람자들은 무대미술은 아름다웠고 무용도 훌륭하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사실은 《홍루몽》의 서주는 처음에 소해금제주로 창작되여 연주되였는데 시연회에 참석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곡을 들어보시고 중국맛이 나면서도 《홍루몽》작품의 서주맛이 나게 처음 시작을 소해금독주로 4소절정도 연주하고 제주로 하도록 가르치시였다고 한다.
이북에서 창작된 가극 《홍루몽》이 온 중국땅을 뒤흔들어놓음으로써 중국민족의 대표적고전소설은 창작된지 200여년이 지난 오늘 그 진가가 세상에 더 잘 알려지게 되였다. 중국에서는 《홍루몽》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가 계속되고있으며 이 소설은 연극, 영화, TV극 등 여러 모양으로 각색되여 오늘도 중국사람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있다.
가극 《홍루몽》은 조중친선의 상징의 하나이다. 1961년 중국방문과정에 월극 《홍루몽》을 관람하신 김일성주석께서는 인민들이 좋아하는 창극형식으로 《홍루몽》을 만들도록 지시하고 여러차례 지도하여 완성시켜주시여 1962년에 조선에서 창극 《홍루몽》이 나오게 되였다.
김일성주석은 왜 《홍루몽》을 인민들에게 보여주도록 하시였는가.
김일성주석은 혁명과 건설에서 문학예술의 역할을 항상 중요하게 강조하였고 일찌기 우리 민족의 력사와 문화전통뿐아니라 세계의 문화도 더 잘 알도록 하기 위해 이 유명한 중국고전소설을 민족가극형식으로 새롭게 꾸미도록 하시였다고 한다.
《홍루몽》과 같이 예술적폭이 방대하고 심도가 깊으며 민족적성격과 색채가 뚜렷한 외국고전작품을 가극으로 창조하는 사업은 풍부한 문화전통과 예술적잠재력, 고도의 창작능력이 요구되는 거창한 예술창조사업이다. 원작의 성격과 특성을 잘 살리면서 민중의 감정과 시대적요구에 맞게 심혈을 기울여 시도한 창극 《홍루몽》의 창조사업은 가극발전에서 획기적전환의 계기의 하나로 되였다.
전통적인 조중친선의 강화발전에 깊은 관심을 돌려오신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조선에서 《홍루몽》이 창작된 때로부터 근 50년세월이 흐른 2009년 조중외교관계설정 60돐이 되는 조중친선의 해를 맞으며 가극 《홍루몽》을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최고의 수준에서 재창조할것을 지시하시였다고 한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원래의 창극에 토대하여 21세기의 혁신적안목과 1970년대의 창조방식, 투쟁기풍을 결합하도록 방향과 방도를 제시하였으며 음악창작과 창법, 악기구성, 무용, 방창, 무대미술 등 전체적인 면에서 력사주의적원칙과 현대적미감에 맞는 예술성을 훌륭히 보장하도록 하시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조선식의 배합관현악에 의한 아름답고 황홀하면서도 완전히 새맛이 나는 훌륭한 음악을 창작하고 5대혁명가극의 창작원칙을 철저히 구현하여 새 세대 예술인들이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지도해줌으로써 가극 《홍루몽》이 대걸작으로 새로 태여나 절대적인 환영을 받게 되였다.
피바다가극단은 중국공연을 떠나기 전에 북조선내에서만 60여회의 공연을 하였으며 10만여명이 관람하였다.
2009년 10월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조중친선의 해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온가보 중국총리와 함께 공연을 관람하시였다. 《홍루몽》은 조중간의 우호의 상징으로 되였다. 가극 《홍루몽》에 대한 반향은 대단하다.
평양을 방문하고있던 미국 아칸소의 교향악단 지휘자는 이 공연을 보고 전체적으로 중국민족의 전통적색채를 장중하게 부각시킨 배합관현악에서 감명을 받았다고 하며 음색과 울림이 너무나 매력적이고 독특하다고 극찬을 하였다.
2008년 중국순회공연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던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의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중원을 뒤흔들고있는 가극 《홍루몽》에 대하여 호남성의 최고신문 《창사만보》는 《음악이 심장을 틀어잡고있었으며 가사는 명쾌하고 아름다웠다. 무대배경이 미의 극치를 이루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천진시당 서기는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가극재창조를 발기하시고 배합관현악에서부터 가수선발에 이르기까지 깊은 관심을 돌려주셨기에 희곡의 고향 천진에서도 시민들의 박수가 폭포처럼 요란하게 나오고있었다. 이런것을 보면 <홍루몽>에 대한 천진시민들의 격정이 얼마나 컸던것인가를 알수 있을것이다.》라고 말하였다.
CCTV는 프라임타임 뉴스에서 《중화인민공화국 문화부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중인 조선피바다가극단은 베이징TV방송국 극장에서 성황리에 대형가극 <홍루몽>의 중국방문 시연무대를 가졌습니다. 가극 <홍루몽>은 조선최고의 예술단체인 피바다가극단이 세계최초로 중국의 고전명작 <홍루몽>을 가극으로 각색한것입니다. 198명으로 구성된 출연진은 시종 화려한 영상과 조명 등이 만들어내는 흐름식무대에서 중국의 고전작품을 감동적으로 해석해 중국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이끌어내며 조선예술의 남다른 매력을 자랑했습니다.》라고 보도하였다.
2009년 조중외교관계수립 60돐이 되는 조중친선의 해를 맞으며 북조선에서 창작되여 국내외의 시선을 집중시킨 가극 《홍루몽》은 중원의 대지에서 70여일간 대성황리에 공연을 하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2010년 5월 중국비공식방문이 성과적으로 끝난 뜻깊은 시기에 가극 《홍루몽》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방문했던 베이징, 천진, 심양, 대련시 등 12개 도시 3만 6 000여리의 긴 로정을 순회하며 30여회의 공연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 공연으로 조중친선의 열기를 획기적으로 고조시켰다.
《인민일보》 2010년 5월 14일부는 《<홍루몽>을 함께 감상하는 중국과 조선의 두터운 정》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고전명작 《홍루몽》이 가극으로 무대에 오르게 된데는 중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조선의 최고령도자들의 깊은 리해와 애착, 정과 심혈이 깃들어있다고 하면서 가극의 력사적인 창작경위와 가극공연을 통한 두 나라 령도자들의 전통적인 친분관계에 대하여 자세히 소개하였다.
국가1급 작곡가인 복건성대극원 총경리, 선전성방문화전파유한공사 총경리 등 문화관계 일군들도 가극 《홍루몽》에 홀딱 반했다고 하면서 《김정일총비서의 지도밑에 조선이 음악발전에서 이룩한 모든것은 영원히 전해가야 할 재보이며 그분께서 이끄시는 조선예술의 앞날은 휘황찬란하다.》고 격동된 심정을 피력하였다.
중국공연에서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고있는 피바다가극단의 공연성과를 언급하면서 《로동신문》은 《조중 두 나라 령도자들의 깊은 관심속에 근 반세기의 력사를 빛내고있는 가극의 창조와 공연을 통하여 공동의 위업을 위한 혁명투쟁에서 맺어진 친선관계를 보다 높은 수준에로 발전시켜나가려는 두 나라 당과 정부의 드팀없는 의지가 확인되였다.》라고 보도하였다.
중국정부는 피바다가극단을 국빈급으로 우대하였다.
중국정부는 기존관례를 깨고 중국문화부의 명의로 외국예술단체를 직접 초청하는 특례적인 조치를 취하였고 정부일군들이 국경도시 단동에까지 나가 피바다가극단을 영접하였으며 공안기관들이 안전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철도역들에서 특별대책을 세우도록 하였다.
이것을 보면서 나는 세계속에서 조선의 위상이 얼마나 높은것인가를 여실히 알게 되였으며 다른 서방세계의 예술단체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이러한 대우를 해주었던가를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었다.
더우기 국가대극원 원장의 말에 의하면 공연일정이 2011년 상반년까지 꽉 들어차 맞물려있는 상황인데도 기존관례를 깨뜨리고 피바다가극단의 가극 《홍루몽》공연을 특별히 성사시켰다고 한다.
리장춘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은 공연을 관람한 후 피바다가극단 창작가, 예술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가극 <홍루몽>공연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혁명업적이 어려있고 조중인민의 공동위업실현을 위한 항일전쟁의 전구였으며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 최근에 방문하신 중국 동북지방에서 친선의 열기를 세차게 분출시켰다.》라고 말하였다.
천진시에서의 공연보장을 맡은 한 일군은 피바다가극단이 오가는 길들과 장소들에 대한 통행과 안전보장 등 모든면에서 시당과 정부가 직접 나서서 국가수반급으로 성의를 다해 대하는것을 처음 보았다고 하면서 이를 통해 조중친선의 정을 깊이 느끼게 되였다고 강조하였다.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공연에 이어 뜻깊은 조중친선의 해에 평양예술단, 조선영화음악단,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이 중국을 방문하여 뜨거운 환호속에 성과적인 공연을 하였으며 2010년에는 가극 《홍루몽》공연이 중원의 대지를 뒤흔들어 놓음으로써 조중친선은 더욱 공고하게 발전해나가고있다.
공동의 재보인 가극 《홍루몽》과 더불어 두 나라 정부와 인민이 풍요롭게 가꾸어가는 조중친선의 아름다운 꽃이 오래오래 피여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