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2. 조국찬가

 

 

북조선은 한마디로 음악속에 탄생했고 음악과 함께 존재하는 사회라고 말하고싶다.

김일성주석은 항일유격대를 지휘하면서도 언제나 음악예술과 함께 생활해오셨고 그 이후 김정일국방위원장시대에 와서도 북의 국사는 언제나 음악예술과 함께 존재하여왔다.

노래 《조선의 별》은 후에 조선로동당을 태동하게 했고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출현하게 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을 선포하는 기틀을 닦아놓았다.

민주건국의 첫 기슭에 울려퍼지던 《밭갈이노래》는 수십년을 이어 오늘은 대계도간석지벌에서, 봉건적잔재를 없앤 사회주의전야에서 메아리치고있다. 해방후 진행되였던 문맹퇴치사업으로부터 시작하여 국가의 교육정책으로 나라의 지식인대렬이 늘어나 부강발전의 밑거름이 되고있으며 민중들은 자주군사강국의 위력으로 펼쳐진 푸른 하늘을 선률에 담아 구가하고있다.

일심의 가요 대합창속에 번영하는 북조선의 위용이 만방에 떨쳐지고있다. 오늘 이북의 근로대중들은 모두다 노래 《승리의 길》을 높이 부르며 강성국가건설의 속도를 최대로 앞당겨나감으로써 김일성주석의 탄생 100돐을 인류최고의 대경사로 맞이하고 주체조선의 건국리념을 따라서 새로운 승리의 100년을 긍지높이 열어나가자고 모든 건설장에서 소리높이 웨치고있다.

1

 

노래속에 태여난 주체사회주의조선

 

음악예술은 그 나라, 그 사회를 들여다볼수 있는 자막대기(기준)라고 볼수 있다. 서방언론들과 남녘보수언론들은 북녘사회를 폄훼하고 비하하여왔지만 북녘동포들의 지적수준과 음악예술수준은 대단히 높다. 그 누구하고 이야기해보아도 력사의식이나 일반지식이 철저하고 그 누구하고 이야기해보아도 음악예술에 대한 상식과 지식수준이 대단히 높다. 로동자들의 건설공사장에도 음악소조들이 와서 흥을 돋군다. 인민군군인들이 있는 곳에도 어디를 가나 음악소조들이 있어 사기를 돋군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보아도 노래 못하는 청소년들이 없고 악기 하나 만질줄 모르는 청소년들이 없을 정도로 북녘은 예술음악의 전당이라고 말할수 있다. 소년궁전에서 공연하는 어린이들의 음악예술공연만 보아도 북녘의 음악예술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를 엿볼수 있다. 북녘사회 어디를 가나 북녘동포들은 음악예술과 함께 생활한다고 말할수 있다.

북조선탄생력사를 보아도 이 사회는 노래속에서 태여났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김일성주석은 항일유격대를 지휘하면서도 언제나 음악예술과 함께 생활해오셨고 그 이후 김정일국방위원장시대에 와서도 북의 국사는 언제나 음악예술과 함께 존재하여왔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북조선을 건설하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공훈국가합창단의 공연을 자주 감상했다. 그분은 음악예술과 관련하여 《노래소리가 높은 곳에 혁명이 있고 승리가 있다는것은 하나의 진리입니다.》라고 천명하며 북조선사회 어디에 가도 음악예술이 존재하도록 하는 음악정치를 펼쳐오시였다.

북조선의 정권이 수립된 기원을 살펴보면 참으로 신기함을 알게 된다. 정세가 아주 엄혹했던 일제시대에, 그것도 일제의 조선인탄압이 극성을 부리던 때에 차광수, 김혁 등 혁명가들은 암흑천지가 된 조선의 새벽하늘에 려명이 밝아옴을 알리고저 혁명송가 《조선의 별》을 작사작곡하여 보급했다. 이 노래는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가 2천만 우리 동포의 가슴에 독립의 희망과 항일무장투쟁의 승리를 내다보게 하는 귀중한 싹을 움트게 하였다.

《조선의 별》은 항일혁명투사이며 혁명시인인 김혁이 차광수의 조언으로 작사작곡한것으로 기록되여있다. 혁명시인 김혁은 노래머리에서부터 절절하게 뜨거운 마음으로 부를것을 요구하였다.

《조선의 밤하늘에 새별이 솟아 삼천리강산을 밝게도 비치네》로 시작되는 가사는 짓밟힌 조선에도 동이 트리라는 희망적인 내용을 담고있다. 어두운 조선의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같은 김일성주석을 중심으로 공고하게 단결하고 높이 받들면서 혁명에 바친 마음 변치 말자는 철석같은 다짐이 이 노래에 담겨있다.

이들은 당시 김성주라는 본명을 사용하던 김일성주석을 한별이라고 부르면서 지도자로 받들었고 김일성주석에 대한 흠모의 마음을 표현한 이 노래를 창작하고 널리 보급하기로 했다.

이때 10대의 어린 김일성주석은 자신을 별에 비기고 노래까지 짓는다며 동료들을 꾸짖었다고 한다. 혁명송가 《조선의 별》은 민중이 김일성주석에게 사랑과 존경을 담아 바친 첫 노래인것으로 하여 높은 평가를 받고있다.

노래 《조선의 별》은 후에 조선로동당을 태동하게 했고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출현하게 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을 선포하는 기틀을 닦아놓았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김일성주석은 만민을 안아주고 이끌어주는 위대한 구성, 만민이 따르고 우러르는 은혜로운 태양이시라고 지적하신것은 이북동포들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나는 지난 시기 평양을 방문하였을 때 다음과 같은 체험을 하게 되였다. 1995년 8월 15일 조국해방 50돐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가하였다. 김일성주석이 서거한 바로 다음해이여서 북녘동포들의 슬픔이 채 가시지도 않은 때였다.

이런 어려운 조건에서도 해외동포들을 모란봉극장에서 진행되는 국립교향악단의 경축공연에 초대해주었다. 어버이심정으로 우리를 대해주는 북부조국에 참으로 고맙고 감격스러웠다.

이윽고 경축무대의 막이 올랐다. 공연종목도 모두 북부조국에서 작사하고 작곡한 음악으로만 이루어져 인상적인 공연이였다.

국립교향악단 단장인 작곡가 김연규의 교향곡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네》중에서 제4악장 《우리는 맹세한다》의 선률이 지휘자인 김병화의 지휘로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곡중에서 《김일성장군의 노래》가 나오자 모두 일어서서 흐느끼는 청중들의 눈물을 보았다.

김일성주석의 유훈을 받들어 기어이 조국통일을 이루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보는듯 하였다. 나는 1990년 평양에서 열린 범민족통일음악회에 참가한 후 1996년부터는 매번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초대되여 참가하였다.

이때마다 가슴뜨겁게 느껴온것이 있었다.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참가하는 세계의 모든 예술인들과 외국손님들 그리고 해외동포들은 최고의 존경과 흠모의 마음을 안고 태양절(김일성주석의 탄신일인 4월 15일) 아침에 주체의 최고성지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하여 은은히 흐르는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들으며 숭엄한 마음으로 경모의 인사를 드린다.

여기에는 높은 위치에 있는 외국의 정치인, 국제사회에 이름있는 성직자, 세계적인 최고의 인기배우 등 각계 유명인사들이 다 있지만 이들이 태양절 아침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하여 인류의 태양으로 높이 추앙받는 김일성주석께 드리는 흠모의 정은 다르지 않아보였다.

이러한 까닭에 북녘의 《김일성장군의 노래》는 대표적인 위인송가이다. 1946년에 창작된이래로 공식국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애국가》보다도 많이 불리여온 노래이다. 작사는 리찬이며 작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애국가》를 작곡한 김원균이 하였다. 이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가사중 3절 《로동자 대중에겐 해방의 은인 민주의 새 조선엔 위대한 태양》이라는 가사가 아주 인상적이고 김일성주석이 오늘도 민중의 사랑으로 추앙받는 령도자임을 실감있게 보여준다.

이 혁명송가의 세계는 헤치면 헤칠수록 끝이 없는 보물고였고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음악정치는 강철의 담력으로 사회주의를 수호하는 자주의 기치라고 생각하게 되였다.

북조선의 음악정치는 제국주의와의 첨예한 대결에서 백전백승하는 신묘한 지략 그자체라고 말할수 있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과 같은 역경을 딛고 기적같이 일어난 성공의 비결이라고도 말할수 있다.

북조선은 한마디로 음악속에 탄생했고 음악과 함께 존재하는 사회라고 말하고싶다.

2

 

《번영하라 조국이여》

 

자기들의 나라가 잘되고 륭성번영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있을것이다.

그러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민중들이 자기의 사회주의와 민족의 번영을 바라는 마음은 결코 다른 나라들의 인민들과 같다고 말할수는 없다. 김일성주석이 나라의 해방을 위해 항일투쟁의 길에서 자주의 기발을 휘날리던 1925년부터 해방을 안아온 1945년까지, 또 그때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오늘에까지도 줄기차게 몰려드는 제국주의세력의 끊임없는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고 얼마나 많은 선렬들이 희생되였던가!

북조선은 이렇게 감당하기 힘든 희생을 감수하면서 값비싼 승리를 이룩하였다. 그러기에 나라의 소중함은 어디에도 비길수가 없을것이다. 이북에서 전후복구사업은 너무나 힘에 겨운 시련이였다.

오죽하면 정전협정조인당사자였던 미국의 클라크까지 《조선은 초토화되여 석기시대로 돌아갔다. 앞으로 한세기 정도는 다시 문명사회를 일굴수 없을것이다.》라고 자기들이 저질러놓은 잔인성을 인정해버리고말았을가.

미군의 폭격은 낮이고 밤이고 쉬지 않고 이어졌고 건물이란 건물은 모두 파괴되였다. 숱한 사람들이 폭격으로 죽어나갔다.

전쟁전에 평양시의 인구가 37만명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6.25전쟁기간 미군이 평양에 투하한 폭탄이 40만개이상이였다고 하니 이것은 평양주민 한사람에게 1개이상의 폭탄을 퍼부었다는것을 말하여준다. 이것만 보아도 전쟁에서 미국이 자행한 싸움이 얼마나 처절하고 잔인했는가를 짐작케 하고있다.

가요 《번영하라 조국이여》는 천리마대고조시기에 나온 노래이다. 《번영하라 조국이여》는 가수들이 선호하는 곡중의 하나이다. 노래의 선률이 시원하고 아름다우며 기교도 만만치가 않은 곡이다.

언제인가 이 악보를 받아안은 한 쏘프라노(녀성고음)가수는 노래가 무척 마음에 든다고 하면서도 막상 프로그람에 이 곡을 포함시키겠는가 하고 물어보며는 머뭇거리며 망설인다. 딱부러지게 의사표시를 하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눈치이다.

노래가 마음에 든다며 왜 머뭇거리느냐고 물어보았더니 하는 말이 《노래는 나무랄데 없이 잘 만들어진 곡입니다. 부르고싶은 욕심도 있어요. 허나 가사가… 아시지 않아요.》 하는것이였다.

사실 그러하였다. 반북, 반공으로 세뇌가 된것은 이남뿐이 아니다. 이곳 재미교포사회도 례외로 될수 없었다. 한번은 통일음악회라 하여 네명의 가수가 출연하고 피아노반주로 진행되는 조그마한 음악회를 알차게 기획하였다. 음악회를 홍보하기 위한 선전용전단은 이미 뿌려졌다.

다만 관중들의 호응을 받는 흡족한 음악회로 이루어지기만을 바라고있었다. 이렇게 음악회의 마지막점검을 하려던 바로 그때였다. 난데없이 출연하기로 된 네명중 세명한테서 전화가 련속 걸려왔다. 리해하기 힘든 사태가 벌어진것이다.

《선생님, 이번에는 사정상 통일음악회에 출연을 할수 없게 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이만한 정도의 례의는 상식적으로 알만 한 사람들이고 그만한 정도의 교육은 이미 받은 사람들이 아니던가. 이젠 더 물어볼 기력도 없어져버렸다. 그런줄도 모르고 관객들은 음악회장으로 몰려오고있었다. 사실 이렇게 음악회가 처참하게 망가지게 된 자초지종의 이야기를 할수 있는 시간적여유도 없었지만 솔직히 그렇게 할 의욕도 없었다.

뉴욕 허드슨강이 내려다보이는 숲속에 자리잡은 공연장이였다.

6월 하순의 저녁해빛은 아직도 찬란하였다. 음악회가 시작되기 직전에 기관의 표시도 선명한 자동차 한대가 정황을 살피려는 임무를 띠고 왔는지 한번 쭉 둘러보고는 잽싸게 공원밖으로 빠져나가는것이였다.

마치 사살한 시체를 확인이라도 해보려는것처럼…

나는 지금도 그날을 잊지 못하고있다. 그날 음악회에서 네사람이 부를 노래전부를 한 녀가수가 혼자 다 소화해냈다. 너무도 고맙고 감격스러웠다. 나에게는 이 기막힌 사정을 관객들에게 알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청중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사이의 정황을 알고싶어하는 눈치였다. 그들에게는 알아야 할 권리가 있었다. 청중들은 낌새를 알았는지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억한 심정을 가라앉히며 차분하게 말하려고 애를 썼다.

《존경하는 여러분, 여러분께서도 침통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된 오늘의 음악회상황을 심상치 않게 보셨을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긴 있었구나 하는 표정을 여러분의 얼굴에서 읽을수가 있었습니다.》

세명의 음악인이 출연할수 없게 된 사연을 차근차근 설명해나갔다. 《이 사실을 분렬된 조국의 현실로만 받아들이고말아야 하겠습니까?》 내 목소리는 울고있었고 객석은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뜨거운 격려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가까스로 음악회는 진행될수 있었다.

원래 반주자가 못 나오게 되여 갑자기 반주를 맡게 된 중국인음악가와 그날 밤 음악회를 무리없이 진행하게 해준 메조쏘프라노 조공자선생에게 이 지면을 통해서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가요 《번영하라 조국이여》는 천리마조선의 찬가로서 이북의 근로대중들이 사랑하는 노래들중의 하나이다. 이 노래는 천리마대고조시기인 1962년에 창작된 명곡이다.

그때는 천리마를 탄 기세로 힘차게 달려 5개년인민경제계획을 앞당겨 끝낸 이북의 민중들이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결정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여 7개년인민경제계획수행에 모두 떨쳐나섰던 격동적인 시기였었다.

특히 1961년 김일성주석의 탄신일인 4월 15일을 계기로 만수대언덕에 세기를 주름잡으며 비약하는 천리마조선의 영웅적기상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조형물 천리마동상이 우뚝 솟아올라 이북의 민중들을 계속혁신, 계속전진으로 고무추동하고있던 때였다.

김일성주석의 손길아래 조국의 강토우에 사회주의락원이 건설되고 천리마조선의 기적같은 발전상이 온 세상을 놀라게 하던 시기에 나온 명곡 《번영하라 조국이여》는 높은 감화력을 가지고있었고 이 노래는 민중들속에서도 불려졌고 예술인들에 의해 무대에서도 불려졌다.

1962년 10월 25일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관현악과 합창 〈번영하라 조국이여〉가 좋다고 하시였습니다. 〈번영하라 조국이여〉는 최근에 나온 노래들가운데서 제일 잘된 작품입니다.》라고 평가해주시였다.

노래는 창작되여 세상에 나온 첫날부터 사회주의조국에 대한 열렬한 찬가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있었으며 예술인들이 펼치는 해외공연에서도 천리마조선의 참모습과 주체예술의 위력을 높이 떨쳤다.

예술에서 천재적경륜을 지닌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천리마조선의 기상을 반영한 조선의 명곡 《번영하라 조국이여》를 창작된지 수십년이 지난 오늘의 시대적요구에 맞게 재형상하도록 하여주시였다.

그리하여 노래는 보다 더 훌륭하게 재형상되였는데 독창곡에서도 무한한 창의력을 끌어올려 주선률에 변화를 주고 발전적으로 전개해나갔다. 정말로 사람들은 이렇게도 같은 곡을 새롭게 느낄수도 있구나 하며 감탄을 터치였다.

민중들의 사랑을 받게 된 명곡 《번영하라 조국이여》는 합창으로 편곡되고 공훈국가합창단이 열창하여 관람자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의도와 가르침을 따라 국립교향악단이 출연하는 피아노협주곡으로도 편곡되여나오게 되였다. 피아노협주곡 《번영하라 조국이여》는 그 첫 울림부터 범상치가 않았다.

최정인이 편곡한 이 협주곡을 피아노연주가 윤순옥이 협연하고 비엔나아까데미에 류학하고 돌아온 신예지휘자 방철진이 지휘하였다. 곡의 길이는 12분이고 유튜브를 통해서 감상할수가 있다.

북조선은 과학이나 정치에서도 그러하듯이 예술분야에서도 그 시도와 계획이 만년을 내다보며 파격적인 진행을 한다. 그 구상이 웅대하고 예술적으로 아름다워서 공연을 볼 때나 들을 때나 언제나 자부심이 생겨나고 긍지가 차넘친다.

북조선은 발전한 나라를 답습하며 뒤따라가는것이 아니라 언제나 선봉에 서서 새 세계를 이끌고있다. 부강조국을 노래하는 가요 《번영하라 조국이여》조국의 륭성번영을 이룩하는것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확고한 신념이였고 온 나라 근로대중들의 한결같은 희망이다.

오늘을 위한 오늘이 아니라 래일을 위한 오늘에 사는것을 인생관으로, 생활신조로 삼아온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 로정은 언제나 미래에 대한 락관으로 일관되여있었다.

고난의 행군을 하던 1996년 1월 어느날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일군들에게 혁명가들에게 있어서는 오늘보다도 래일을 위하여 살며 투쟁하는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면서 《나는 끝없이 번영할 우리의 사회주의조국, 그 품속에서 더욱 보람차고 행복한 삶을 누릴 우리 인민의 모습을 그리며 그 어떤 난관도 달게 여기며 일하고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렇게 힘들었던 고난의 행군시기이였음에도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희망차고 행복할 래일을 앞당기려고 언제나 가슴을 태우고있었으며 부강번영할 조국의 웅대한 청사진을 펼쳐보이고 그 구상을 실행해나가시였다.

언제나 미래를 락관하며 리상을 꽃피워가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현명한 령도가 있었기에 강성국가건설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힘있게 추진되고있는것이다.

가요 《번영하라 조국이여》의 작사는 《애국가》를 작사한 박세영이 하였고 작곡가 모영일과 김제선이 공동으로 창작하였다.

 

   아름다운 강산에 아침노을 붉은데

   푸른 하늘 저 높이 나래치는 천리마

   수령님의 높은 뜻 이 땅우에 넘치니

   번영하는 나의 조국 영광속에 빛나라

   온 강산을 덮을듯이 노래소리는 울리여퍼지네

   아름다운 강산에 아침노을 붉은데

   푸른 하늘 저 높이 나래치는 천리마

   그 기상 넘치여 내 조국 빛나라

   

                                 …

 

 온 세계에 앞서나가자

 

가요 《번영하라 조국이여》는 깊은 뜻속에 북조선이 온 세계의 첨단에 서게 되는 날이 꼭 온다는것을 강하게 암시하였다.

북조선에 있어서 더 큰 마음의 재촉은 바로 번영하는 첨단조국을 어서 현실로 보이고싶은것이다. 어떤 사람은 지식경제시대인 오늘날 발전이 없는 생활은 죽음과 같다고 비유하였다.

세계에 앞서나가려는 이북근로대중들의 투쟁은 날마다 련속적으로 벌어지고있으며 그 투쟁속에 기념비적창조물들이 수없이 일떠서고있다. 희천발전소, 대계도간석지, 대동강과수종합농장건설 등이 그 투쟁에서 흘린 땀방울의 일부이다.

그들의 의식속에는 촌음도 허송할수가 없었다. 시간속에 모든것이 있다며 강성국가건설을 위해서는 오늘의 이 시간을 소홀히 할수가 없다는것이다. 그들은 이 점을 강조한다.

모두가 신발끈을 조여매고 강성국가건설의 현장으로 나가고있다. 그들은 조국이 기억하는 애국자로 살려고 한다. 그러기 위하여 강성국가건설의 맨 앞장에 서서 인생을 새 출발하는 각오로 2012년을 빛내이려고 한다.

진리로 뭉쳐진 억센 뜻 온 세계 앞서나가리/

북조선의 근로대중들은 위대한 조국애로 넘치는 《애국가》를 부르고 또 부르며 가사의 한자한자에 스며있는 의미를 다시 심장에 새긴다. 선렬들의 피땀이 슴배인 공화국기발앞에서 애국의 더운 피 한방울까지 바쳐갈 열정과 맹세를 실천으로 보이고있으며 장엄하게 울려퍼지는 《애국가》앞에 떳떳이 설수 있게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있다.

이것이 2012년을 빛내이려는 이북의 모습이다. 그들은 누구의 힘도 믿지 않고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위대한 노력, 자기들이 쌓아온 위대한 힘으로 온 세계에 앞서나가자고 추동하고있다. 하루하루를 창조의 생활속에 살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이북의 근로대중들은 오직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밝혀주신 강성국가건설설계도따라 혁명의 매일 매 순간을 값지게 살며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심단결로 굳게 뭉쳐 온 세계를 향해 돌진하고있다.

3

 

《번영하여라 로동당시대》

 

이북에도 수확의 계절이 왔다. 벼이삭 익어가는 농장을 바라보는 농부(근로자)들의 마음은 흐뭇하여 넉넉한 미소를 짓는다. 노래소리는 강산에 울려퍼지고 행복한 웃음소리는 주체의 락원으로 아름답게 퍼져나간다. 가요 《번영하여라 로동당시대》를 높이 부르는 북녘의 근로자들은 금나락을 거두어들일 기쁨으로 설레고있다.

천만근로자들은 조선로동당을 진두에서 지휘하며 사회주의 위업을 눈부시게 진전시켜온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현명한 령도를 높이 받들어 2010년에 당창건 65돐을 성대하게 맞이하였다.

어머니의 품이라고 부르는 조선로동당은 근로대중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고 강성국가건설에서 결정적전환국면을 열어놓기 위해 온갖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고있다. 전체 민중들은 온 세계에 앞서나가려는 당의 의도대로 각자 일터에서 경제강국건설의 포성을 힘차게 울리고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사회주의위업은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정당한 위업이며 인류가 사회주의를 향하여 나아가는것은 누구도 막을수 없는 력사발전의 법칙이라고 하면서 미래의 사회가 사회주의체제로 변화되지 않으면 안되는 필연성을 과학적인 근거에 기초하여 조목조목 론증하시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론문 《사회주의는 과학이다》에서 당시 일부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된 근본원인과 주체사상에 기초한 이북의 사회주의승리의 필연성을 알기 쉽게 분석해 누가 읽어보더라도 쉽게 리해할수 있게 해놓으시였다.

1990년대초에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동요하고 붕괴되기 시작하자 자본주의극우언론들은 《사회주의종말론》을 내돌리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얼마 안가서 붕괴되고 패망의 길로 가지 않을수 없을것이라고 조롱섞인 기사들을 토해내고있었다.

그러나 주체사상의 대가인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곧바로 《사회주의종말론》에 반박을 가하여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라는 론문을 발표하시였다.

론문은 주체의 사회주의는 영원불멸이라는것, 그것은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검증된 필연적인 사실이라는것을 강하게 주장하며 《사회주의종말론》의 반동적본질을 진보적인류에게 깨우쳐주었다. 사상은 사회주의의 생명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자주사상중시의 기치를 높이 들고 혁명과 건설을 힘있게 추동하고 전진시켜오시였다. 그분의 현명한 령도는 주체의 사회주의위업을 필승의 높은 경지에 올려놓았다.

사회주의는 사상의 힘으로 전진하고 발전하는 우월한 제도라고 북에서는 주장한다. 그렇기때문에 사회주의사회에서는 사상의 순결성이 철저하게 요구되고있으며 그 순결성을 생명같이 귀중하게 여기고있는것이다.

조선로동당은 주체사상의 리론을 구현하여 근로대중과 군인들을 사상과 신념의 강자로 키워놓았으며 이렇게 자라난 젊은 일군들은 사회주의로선을 더욱 튼튼하게 다져가는 역군이 되여 각자의 일터에서 충실히 일하고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저서 《사회주의는 과학이다》, 《사상사업을 앞세우는것은 사회주의위업수행의 필수적요구이다》 등에 이북의 군대와 민중이 사회주의의 승리를 위한 투쟁에서 꼭 지키고 실천해나가야 할 사상리론적지침들과 경전적인 강령들을 수록해놓았다.

조선로동당은 사상사업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체사상, 선군사상일색으로 일관시켜놓았으며 여러곳에 혁명전통교양, 계급교양시설들을 번듯하게 만들어 근로자들의 사상정신력을 최대로 높이고 혁명과 건설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선군정치방식으로 풀어나가도록 하고있다.

이북의 조선로동당은 자본주의사회에서 보는 진보당이냐, 보수당이냐 하는 개념과는 그 의미와 역할에서부터 근본적으로 다르다.

조선로동당이 먹는 문제에서부터 주택문제, 건강후생문제, 교육과 문화생활문제, 국토방위문제에 이르기까지 책임적으로 해결하고있는데 대해 민중들은 한없는 고마움을 느끼며 살아가고있다.

이렇게 당은 인민생활의 전반적인 문제들을 근로대중의 자주적요구에 따른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풀어나가기 위해 자기의 역할을 다하고있다.

민중에게 최대의 혜택을 돌려주는 사회주의리상사회를 건설하자면 당을 조직사상적으로 튼튼하게 꾸리고 혁명과 건설에 있어서 당의 령도를 확고히 보장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사회주의정권의 기능과 역할을 높여서 어느 특정인이나 집단이 생산활동에서 얻어지는 리익과 혜택을 독식하지 못하게 방지하며 민중에게 공평한 혜택이 돌려지도록 사회주의적, 집단주의적공동소유의 개념을 차질없이 발전시켜나가는것이다.

그래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사회주의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복잡다단한 세계정치정세의 무쌍한 변화속에서도 자주와 평등의 굳건한 틀을 철저하게 고수하도록 하시였으며 대중들의 윤택한 생활과 근로자들의 복지향상을 위해서라면 철두철미 혁명적원칙을 지켜나가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오시였다.

바로 이 업적과 은덕을 반영하여 1996년 고난의 행군의 그 간고한 나날에 가요 《번영하여라 로동당시대》가 나왔다.

고난을 락관으로 돌파하는 노래 《번영하여라 로동당시대》는 최준경이 작사하고 인민예술가 리종오가 곡을 붙였다.

《휘파람》, 《반갑습니다》 등 유명한 노래를 많이 지어냄으로 해서 《히트곡 제조기》라는 별명까지 붙어있는 작곡가 리종오는 보천보전자악단의 지휘자로도 활약한바 있는 재간이 많은 음악가로 남과 북뿐만아니라 해외에까지 널리 알려져있다.

그의 대표적인 10곡의 히트곡들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휘파람》, 《반갑습니다》를 비롯하여 《도시처녀 시집와요》, 《사랑의 미소》, 《친근한 이름》, 《녀성은 꽃이라네》, 《아직은 말 못해》, 《축복하노라》, 《축배를 들자》 등 사회의 신선한 기풍과 건전한 도덕적풍조를 장려하는 곡들로 경쾌하고 발랄해서 남녀로소를 불문하고 폭넓게 지지를 받고있다.

그가 작곡한 가요 《번영하여라 로동당시대》는 모든것의 패권을 쥐려는 이북의 그 어디에서나 울려퍼지고있으며 건설장이나 생산현장들에서 진행되는 방송야회들에서 빼놓을수 없는 노래로 되고있다.

방송야회라 함은 중앙TV의 방송원들과 인기연예인들 그리고 사회적유명인사들이 건설현장, 생산현장들을 방문하여 근로자들의 수고도 위로해주고 격려도 해주면서 그들의 경험담과 성공담을 직접 들어보는 인기있는 방송프로그람중 하나이다.

많은 근로자들이 모인 가운데 희천발전소건설 공사현장에서 방송야회가 진행되는것을 보았다.

남녀청년돌격대원들, 근로자들은 그사이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어려웠던 일, 힘들었던 난관을 돌파하면서 이루어냈던 성공담과 생생한 경험담을 시청자들에게 전하여준다. 근로자들은 그사이 공사장에서 겪은 힘들었던 일, 일이 잘되지 않아서 속상해했던 이야기들까지 모두 털어놓는다.

이를 지켜보는 전국의 시청자들과 방송야회의 현장에 나온 근로자들은 희천발전소건설현장의 청년일군들의 밝은 모습에서 사회주의조선의 저력을 느끼고 그들의 강인한 눈빛에서 이북의 창창한 앞날을 내다볼수 있으리라.

이윽고 손풍금의 경쾌한 리듬을 타고 《번영하여라 로동당시대》의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아나운서는 늙수그레한 그러나 미남자인 가수 한분을 소개하는것이였다. 사람들은 벌써 그 나이많은 가수를 알아보는지 열광적인 큰 박수를 보내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는 예술영화 《이름없는 영웅들》에도 출연하여 큰 인기를 얻었던바 있고 교육부문에서 음악영재들을 육성하고있는 유명한 남성고음(테너)가수 손대원교수였다.

나이 70에도 저렇게 높은 음까지 무리없이 소화해낼수가 있다니…

경이롭다는 말밖엔 할 말이 없었다. 손교수의 노래가 끝나자 강성국가건설의 전성기를 펼치고저 희천발전소공사현장에 나와있는 근로자들은 열화같은 박수로 재청을 하였으며 손대원교수의 청아한 노래소리는 희천의 푸른 하늘가로 아름답게 퍼져나갔다.

 

    해솟는 아침처럼 희망찬 시대

    꽃피는 봄날처럼 화창한 시대

    장군님 해빛아래 락원이 꽃펴

    화목한 대가정엔 복이 넘치네

    (후렴)

    빛나라 로동당시대

    태양이 찬란한 시대

    영원히 번영하여라

 

    황금의 가을처럼 풍성한 시대

    창조의 열매들이 주렁진 시대

    주체의 성공탑이 높이도 솟아

    부강한 사회주의 위용 떨치네

    (후렴)

    

    반만년 처음 보는 륭성의 시대

    력사에 자랑 높은 영광의 시대

    당의 향도따라 새 세기에로

    더 좋은 우리 미래 앞당겨가네

    (후렴)

    

지금 이북에서는 최첨단돌파에 대한 희소식으로 흥성거리고있으며 새로운 목표의 첨단을 향해 달려가는 근로자들의 마음은 신심에 넘쳐있고 세계를 향하여 앞서나가려는 이북의 저력을 보고있는 남과 해외 여러곳에 흩어져 사는 우리 민족은 긍지에 차넘치고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허리띠를 조이며 창조한 우리의것, 우리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에 의거하여 대고조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올리며 우리 땅에 있는 우리의것을 가지고 우리의 멋이 나는 사회주의락원을 건설해나가야 한다고 근로자들과 청년학생들을 격려하시였다고 한다.

이북은 최근 여러 부문에서 첨단공업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켜놓았고 여기서 얻어진 성과물들에 대하여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있다. 바야흐로 희천련하기계종합공장이 첨단의 주역으로 떠오르고있는것이다. 세계는 이젠 희천의 이름만 들어도 지식경제시대에 들어선 북조선을 우러러보기 시작하였고 첨단강국의 일원으로 된 이북의 근로자들의 긍지는 비길수 없이 높아지고있다.

드디여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CNC공작기계공장이 자주의 나라 북조선에 건설된것이다. 이제 희천련하기계종합공장은 세계가 그 브랜드네임을 인정하고있고 《련하기계》의 생산품은 이 세상 그 어느 나라, 어느 기업도 따라잡을수 없게 되여있다고 한다.

희천의 로동자들은 《적게 일하고 잘살수 없으며 배우지 않고 남을 압도하는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낼수 없다는것은 진리이다. 땀을 흘리지 않고서는 달콤한 열매를 기대할수 없으며 로동의 결과로 얻어진 모든 열매들은 근로하는 전체 인민의 몫이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북의 민중들이 각 건설장에서 자부심에 넘쳐 긍지높게 부르는 노래 《번영하여라 로동당시대》는 오늘도 래일도 영원토록 울려나갈것이다.

4

 

《우리의 7.27》

 

핵전쟁의 공포로 한창 위기감이 감돌던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은 어김없이 열리고있었다. 이 기간에 재미예술단과 함께 평양을 방문했던 나는 안내원에게 조선의 기상이 넘쳐나고 전쟁승리의 자랑찬 긍지가 충천한 전승기념관에 한번 가보자고 하였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을 찾아간 나는 력사의 진실을 말해주는 전시관들을 일일이 돌아보면서 받은 충격과 감동으로 흥분에 휩싸였었고 북받쳐오르는 감정을 억제할수가 없었다.

대전관이라는 전시관에 들어섰을 때의 일이다. 립체적으로 전쟁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실지처럼 전시한것도 그렇지만 유엔의 기발로 위장한 미국과 그에 추종한 15개 나라에서 온 침략자들을 몰아내기 위하여 이북의 군민이 얼마나 피를 흘리며 싸웠던가, 무엇때문에 청춘도 바치고 목숨도 서슴없이 불길속에 던졌던가 하는 문제들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해보게 되였다.

포로가 된 미제침략군 사단장의 별 두개가 아직도 뚜렷한 투구와 제2차 세계대전때 유럽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었다는 미제2사단의 색바랜 사단기를 보면서 해설강사의 말대로 대전해방전투가 세계전쟁사에 류례없는 위대한 승리를 거둔 전투라고 생각하였다. 7월의 뜨거운 태양아래 어느 농가의 지붕우를 타고 올라간 박넝쿨에는 탐스러운 주렁박이 풍성하게 매달려있었다. 길거리에 나와 람홍색공화국기발을 흔들며 연도에서 인민군을 열렬히 환영하는 근로대중들의 모습과 김일성장군님의 초상화를 들고 나와 환영하는 촌로의 모습도 보였다.

어렸을적에 지리산자락에서 보았던 생생한 그 정경을 오늘 여기에서 되돌아볼수 있었다.

시인 전동우는 조국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아 내 고향 푸른 들 한줌의 흙이/ 목숨보다 귀중한줄 나는 나는 알았네/

아 어머니라 부르는 나의 조국이/ 장군님의 그 품인줄 나는 나는 알았네/

비록 노래의 짧은 한 부분이였지만 6.25전쟁때 조국을 위해 몸바친 수많은 청춘들의 피값이 바로 여기에 있었고 선렬들의 고귀한 희생에 대한 대답도 바로 이것이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지금도 6.25전쟁은 북과 남에서 부르는 이름에서조차도 판이한 시각차를 보이고있다. 6.25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라 부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한국전쟁》이라 명명한 이남의 력사관과 세계관이 그만큼 다르다는것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마치 민중사관과 식민지사관을 비교라도 하듯이 말이다.

이북에서는 6.25전쟁을 《조국땅에 기여든 침략자들을 몰아내고 인민들에게 진정한 조국의 해방을 안겨주자》라는데에 초점이 맞춰져있었다면 이남의 주장은 《남침이냐 북침이냐》를 놓고 따지며 쓸데 없이 시간을 허비하며 본질을 흐리게 하는것이였다.

이남에서 제국주의침략전쟁에 대한 옳바른 판단을 할수 없도록 교묘하게 시야를 가리우고있었지만 그 진실이 어디로 가랴.

이북에서 7.27은 전승기념일이다. 정전협정은 조(북)미간에 싸운 3년간의 치렬한 전쟁을 잠시 쉬는것으로 되여있다.

그러니 결코 종전협정도 아니고 평화협정도 아닌것이였다.

평양에서는 7.27을 전승기념일이라 하며 대규모경축행사를 벌리고있지만 워싱톤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패배한 전쟁으로 기억하면서 요란스러운 경축행사없이 백악관에 조기만이 쓸쓸하게 게양되고있다.

이것을 보아도 7.27은 북에서는 틀림없는 전승기념일이고 미국에겐 잊어버리고싶은 패배일인것이다. 당시의 량측 군대의 대치선이 현재의 군사분계선(휴전선)으로 확정되였다.

그야 어찌되였건 이북은 페허라 할만큼 완전히 파괴당했으나 미국에 먹히우지 않았다. 그래서 7.27은 조국해방전쟁의 위대한 승리를 기념하는 전승기념일인것이다. 반면에 미국은 북조선을 먹으려고 전쟁을 일으켰었으나 자기의 전쟁수행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정전협정조인당시 미국의 《유엔군》 총사령관 클라크는 정전직후 미국의 국회에서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귀국보고를 하였다고 한다.

《본관은 미국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나아가서 이기지 못하고 돌아온 미국력사상 첫번째 장군이 되였다.》

미국의 국가기념일가운데 조기를 게양하는 날은 2일간이라고 한다. 그 2일중의 하나인 백악관에 게양되는 7.27의 조기만 보아도 6.25전쟁은 조(북)미간에 벌어진 전쟁이였다는것을 생생하게 보여주고있다.

김일성주석은 조국해방전쟁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미제침략자들은 저들의 방대한 병력과 비행기, 땅크 등 현대적인 군사기술기재들을 조선전쟁에 대량적으로 투입하였을뿐아니라 유엔의 간판밑에 15개 추종국가군대까지 끌어들였습니다.  

그러나 미제국주의자들은 이러한 방대한 무력을 가지고도 우리 인민을 굴복시킬수 없었으며 조선인민의 완강한 투쟁에 의하여 참패를 당하고 자기들이 처음 전쟁을 도발하였던 계선에 주저앉지 않을수 없게 되였습니다.》

《미제국주의무력침략자들을 반대하며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기 위한 3년간에 걸친 조선인민의 영웅적투쟁은 우리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우리 조국을 자기들의 식민지로 만들며 조선인민을 노예화하려던 미제국주의침략자들의 군사적모험은 참패를 당하고말았습니다.》

북조선의 군대와 민중들은 미제국주의자들의 무력침공을 물리치는 간고한 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두어 영광스러운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영예롭게 수호하였고 나라의 국제적위신을 크게 높인것으로 평가하고있다.

또한 전쟁승리의 결정적요인을 정치사상적우월성에 두었으며 이 우월성이 담보되였기때문에 승리할수 있었다고 하였다. 우리 민족이 반만년의 력사에서 외래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영웅적투쟁을 한 때가 여러번 있었지만 조국해방전쟁에서와 같이 전체 민중의 단결된 력량으로 강대한 적에게 결정적타격을 주고 빛나는 승리를 쟁취하여본적은 일찌기 없었고 이처럼 나라가 국제적으로 위신이 높아지고 전세계민중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본 때는 없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조국해방전쟁을 통하여 미국의 《강대성》에 대한 신화가 깨여졌을뿐아니라 미제국주의자들이 오래동안 교묘하게 은페하여오던 리상화된 미국식《민주주의》의 음흉한 정체는 적라라하게 드러나게 되였다고 술회하였다.

1953년 7월 27일, 이날 쌍방이 정전협정문에 서명하고 전쟁의 총포성은 멎었다. 전투는 끝났으나 전쟁은 계속되고있다. 종전 아닌 정전이 오늘까지 이어지고있는것이다. 7.27은 태양의 미소와 더불어 영원하다.

7.27승리의 날에 많은 평양시민들이 금수산기념궁전에 모였다.

사람들은 언제나 환하게 미소를 짓고계시는 김일성주석의 모습을 우러러 숭고한 경의를 표하는 군인들과 근로자들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바라보고있었다. 주석님의 영상앞에 서서가슴에 번쩍이는 훈장을 가득 달고 깊은 추억에 잠겨 오래도록 걸음을 떼지 못하는 전쟁로병들의 모습에서 6.25전쟁에서 위훈을 세우고 산화한 영웅전사 리수복, 강호영, 조순옥 등의 불굴의 모습을 보고있는듯 하였다.

이들은 미제국주의강적과 맞서싸워 세인을 놀라게 한 위훈을 세운 사람들이였다. 나라없던 그 세월에 시달리던, 헌신짝처럼 천하디천하게 버림받던 인간들에게 인생의 참된 대우를 받게 해준 주석님의 그 품을 목숨보다 귀중히 여긴 사람들, 주석님이 계시기에 전쟁의 승리는 확정적이라는것을 굳게 믿은 신념이 투철한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이였다.

김일성주석의 현명한 령도가 없었다면 그들이 어떻게 하여 나라에 공을 세운 영웅으로 자라날수 있었겠는가.

조국해방전쟁때 자기 수령과 조국, 민중을 위하여 목숨바쳐 싸운 전쟁로병들을 바라보는 이북의 군대와 민중들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를 충직하게 받들어가야 할 시대의 사명감을 절실하게 자각하며 더욱 굳은 결의를 다진다.

전쟁시기 한 미군장교는 이북의 군대와 민중들의 사활을 건 투쟁에 완전히 넋을 잃고 이렇게 고백하였다고 한다.

《조선사람들은 무서운 사람들이다. 누구도 정복할수 없는 사람들이다. 정복하려는 사람은 그가 워커이든 맥아더이든 트루맨이든 결국은 나처럼 수치스러운 종말을 고하게 될것이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에서의 북조선이 거둔 혁혁한 전과는 김일성주석의 탁월한 령도와 그분의 두리에 굳게 뭉친 군대와 민중의 처절한 투쟁에 의하여 거둔 고귀한 결실이다.

적들의 불의의 무력침공을 결정적인 반공격으로 짓뭉개버릴데 대한 명령을 하달받은 군부대들은 명령을 심장으로 받들고 적들의 공격을 순간에 좌절시키고 전쟁이 일어난지 단 3일만에 침략군의 아성인 서울을 해방, 한달 반사이에 남반부지역의 90%이상과 인구의 92%이상을 해방시켰다고 기록하고있다. 싸우는 조선을 주시하고있던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은 이북의 군대와 민중이 이룬 기적적승리를 보며 자기들의 눈과 귀를 의심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였으며 침략군이 제아무리 수적, 기술적으로 우세하다고 하여도 북조선의 정치사상적, 전략전술적우세를 감당할수는 없었던것이다.

미국은 지난 조선전쟁에 저들의 륙해공군의 많은 부분과 15개 추종국가군대, 남조선괴뢰군을 포함한 200여만의 대병력과 《하늘의 요새》라고 하던 《B-29》전략폭격기를 비롯한 최신형전투기술기재들을 동원하였으며 7 300여만t이상의 군수물자들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이처럼 미국은 세계대전도 치를만 한 막대한 무력을 조선전쟁에 투입하였지만 1953년 7월 27일 력사상 처음으로 패배를 인정하고말았다. 력사의 교훈에서 보듯이 북조선을 힘으로 제압하려고 하는것은 시대착오적인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세계는 다 알고있다.

오늘 북조선의 위력은 지난 전쟁시기와는 비교가 안되게 강화되였다. 이것은 이북을 잘 아는 세계지성들의 한결같은 평가이다. 일심단결된 이북의 군민을 바라보는 세계의 량심들은 나라와 민족의 자주적존엄을 수호하며 발전하는 선군조선의 경이적인 현실앞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있는것이다.

미국은 지난날 자기들이 일으킨 전쟁에서 많은 승리도 거두었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곳은 조선반도가 아닌 다른 곳이였다. 앞으로도 조선반도에서는 결코 그런 승리를 맛보지 못할것이며 그런 무모한 전쟁으로는 미국의 윤택한 앞날을 담보할수도 없을것이다. 우려섞인 목소리는 여기저기에서 나오고있다.

금융불안정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있는 나라의 부채에서 오는 사회적불안감은 미국국민사이에 팽배하고있다.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의 미국에 대한 신용등급강등조치는 미국의 자존심에 먹칠을 하고있으며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높다는 미국인의 장래에 대한 희망을 어둡게 하고있다.

미국은 사정이 이러한데 조선반도에서 군사적긴장을 조성하며 굳이 재정을 탕진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라크, 이란 등의 나라에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고 중동의 친미국가들이 줄줄이 미국에 등을 돌리고있는 판국에 작은 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군사력을 소모하는것이 과연 미국을 위해 중요한 일이겠는가?

지금은 기울어지는 미국의 경제를 회복시키는 일이 시급한 때라고 입을 모으고있다. 시대는 참으로 많이 변하였다. 만일 제국주의세력들이 지난날 참패의 교훈을 망각하고 또다시 전쟁을 일으키려고 침략의 먹구름을 몰고온다면 미국국민들도 이를 환영하지 않을것이고 이남의 민중들도 미국을 외면해버릴것이다.

더구나 북조선의 군대와 민중들의 《침략자들을 단호히 소탕하고 민족의 존엄과 위용을 더욱 힘있게 떨칠것》이라는 말이 뜬소문만은 아닐것이다.

              우리의 7.27

    

    가슴에 훈장을 달고 전우들 모여왔네

    전승의 기쁨을 안고 전우들 모여왔네

    공장과 협동벌의 그 옛날 병사들이

    오늘은 군복을 떨쳐입고 모두 모여왔네

    (후렴)

    칠이칠 우리의 칠이칠 승리의 칠이칠

    전우여 그날의 우리 노래 함께 부르자

    

    순간도 승리의 신심 잃지를 않았다네

    때로는 승리를 위해 목숨도 바치였네

    불타는 전선길과 용광로앞에서

    우리는 한마음 이날 위해 힘껏 싸웠다네

    (후렴)

    

    가슴에 훈장을 달고 전우들 모여왔네

    전승의 축포를 보며 전우들 맹세하네

    원쑤가 덤벼들면 내 나라 내 조국 위해

    또다시 멸적의 총창들고 우리 나가리라

    (후렴)

5

 

신념의 노래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

 

가요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는 민중스스로가 선택한 사회주의를 지켜나갈 굳은 결심의 표출이고 사회주의조국을 최첨단에로 이끌어온 령도자에 대한 끝없는 경애의 표시이고 엄숙한 맹세이다.

노래는 어떤 고난과 시련의 풍파가 휘몰아쳐온대도 《당중앙 따라서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라고 비장하게 다짐하고있으며 푸른 소나무처럼 언제나 푸르고 변함없는 신념을 강조하고있다.

 

저 멀리 험한 령을 넘어 걸어온 길 그 얼마랴

우리 서로 뜻을 같이하고 혁명의 먼길을 왔어라

영광넘친 길을 걸어도 준엄한 길 걷는다 해도

당중앙 따라서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

 

혁명의 비바람을 헤쳐 가야 할 길 몇만리냐

성스러운 기발아래 다진 그 맹세 더욱더 불타네

한순간을 우리 살아도 두번다시 태여난대도

당중앙 따라서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

 

눈서리를 이겨내는 꽃은 그 향기도 영원하고

해빛안고 피여나는 마음 언제나 그 뜻을 따르네

천만산악 넘어간대도 세찬 파도 헤쳐간대도

당중앙 따라서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

 

천년이 가도 만년이 가도 우리 신념 붉게 피리라

당중앙 따라서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

 

북조선 최고권위의 예술단체의 하나인 만수대예술단 단장으로 활약했던 리학범은 리정술이 작사한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라는 가사에 곡을 붙여 1981년에 발표하였다.

리학범은 평양음악무용대학(당시) 작곡학부를 졸업하고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 부원, 조선예술영화촬영소와 만수대예술단 작곡가를 거쳐 1995년부터 만수대예술단 단장을 맡았었으며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했다.

옛 문인들은 변치 않는 신념을 노래할 때 소나무의 강인한 기상이나 대나무의 곧은 절개를 곧잘 문장에 인용하였다.

리조때 성삼문은 세조에게 전향하지 않는다는 죄목으로 처형되였는데 그때 지은 시조에서 《만수산 제일봉에 락락장송되였다가 세월이 만건곤할제 독야청청하리라》라는 충효의 기상이 넘치는 시를 읊었다. 자기는 비록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가지만 님 향한 뜨거운 충성심은 죽어서 더욱 창창할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충효의 본을 보여준 성삼문을 후세사람들은 충신으로 높이 평가하고있다.

봉건군주에 대한 충의를 지킨것이 그리도 높이 평가될진대 하물며 나라를 찾아주고 자기들의 운명을 지켜주고 빛내여준 위인들에 대한 이북민중들의 절대적인 충실성과 그분들을 따라 자기들이 사는 제도를 지키려는 신념을 그 무엇에 비기겠는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좌절과 절망속에서 참기 힘든 고통을 받으며 비참하게 살아가고있을 때 김형직선생님은 《남산의 푸른 소나무》라는 시를 발표하여 민중들을 크게 고무하였다.

선생님의 시가는 우리도 단결하여 투쟁하면 큰 힘을 모을수 있고 그 힘은 궁극적으로 나라의 독립까지도 쟁취할수 있다는 큰 희망을 심어준다.

《남산의 저 푸른 소나무가 눈서리에 파묻혀서 천신만고 괴롬받다가 양춘을 다시 만나 소생할줄을 동무야 알겠느냐》라는 불굴의 기상을 노래한 이 시는 민중을 한없이 설레게 하였으며 나라가 독립을 하려면 대중들이 일어나야 한다는 진리를 강하게 암시하였다.

사회주의길로 끝까지 나아갈 이북민중들의 신념을 담은 가요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는 힘있고 무게있는 리듬을 타고나오는 선률로 청중을 깊은 사색의 세계로 끝없이 이끌어가고있다.

영광넘친 길을 걸어도/ 준엄한 길 걷는다 해도/ 당중앙 따라서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

가사가 보여주듯이 노래는 자기가 선택한 사회주의의 승리를 굳게 믿고 어떠한 천지풍파도 단호하게 뚫고나가겠다는 불굴의 결의를 보여주는 주체시대의 행진곡이다. 준엄한 시련을 이겨내고 쟁취한 혁명의 승리를 목숨으로 지켜내여야 한다고 력설하고있는 이 노래는 이북민중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있는 명곡이다.

가요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는 영광의 날이나 준엄한 날이나 당을 따라 영원히 한길을 가려는 민중들의 철석같은 믿음과 의지를 감동깊게 노래하였다. 가사에서는 김일성주석이 시작한 위대한 혁명위업의 승리를 위해서 넘고넘어온 준엄한 시련의 고비와 영광의 나날들을 감회깊이 돌이켜보면서 주체의 혁명위업을 계승해나가고있는 조선로동당을 따라 최후의 승리를 꼭 이루고야말겠다는 이북민중의 철석같은 신념을 격조높이 노래하였다.

이 노래는 조선로동당을 따라 충정의 한길만을 가려는 이북민중의 한결같은 신념을 반영하여 창작한 뜻깊은 명곡으로서 오늘도 백두의 기상을 힘차게 떨치며 강성국가건설의 전성기를 펼쳐나가기 위한 힘찬 투쟁을 벌리고있는 이북민중의 가슴가슴을 뜨겁게 울려주고있다.

한해가 저물어가던 1980년 12월 29일이였다. 그사이 많은 혁명적가요를 창작하고 합창과 관현악편곡에서도 이름을 날리던 어느 예술단체의 한 작곡가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부름을 받고 그분이 사업하는 집무실로 갔다.

만면에 밝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반갑게 맞이해준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작곡가와 현재 창작상황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주고받은 다음 작곡가에게 당의 두리에 철통같이 뭉쳐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할 우리 인민의 드팀없는 신념과 불굴의 의지를 담은 노래를 지을데 대하여 절절하게 설명한 뒤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과업을 주시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바라고있는 새 노래창작에 대한 간곡한 과업을 받아안고 창작현장에 돌아온 작곡가는 기어이 좋은 노래를 만들어내고야말겠다는 다짐을 하며 그날부터 작가와 함께 머리를 싸매고 밤낮으로 창작에 몰두하였다.

그들은 창작에 매달려 씨름하던 끝에 마침내 주체시대의 행진곡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의 창작을 완성하게 되였다.

이 노래창작에 대한 과업을 받은지 꼭 두달이 되는 1981년 2월 28일의 일이였다.

이날 만수대예술극장에서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을 초대한 가운데 2월의 명절을 경축하는 음악무용종합공연이 진행되였는데 새로 창작한 여러편의 노래와 함께 합창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도 공연되였다. 이 공연을 관람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이날 공연종목으로 무대에 올랐던 몇편의 새 노래들을 잘 만들었다고 평가해주셨지만 창작가들과 예술인들이 특별히 힘을 기울였고 기대를 모았던 합창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 노래를 지은 작곡가와 모든 창작가들은 이 작품을 실패한것으로 단정해버리고말았다. 그후 창작가는 포기하지 않고 더욱 인상깊은 작품을 쓸 새로운 각오로 새 노래창작을 다시 시작하였다.

그러던 그해(1981년) 4월 어느날이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이날 만수대예술단을 찾아 4.15기념 공연준비사업을 지도하시였다. 창작가들은 공연지도를 마치고 떠나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을 전송하려고 복도를 따라 나가다가 그만 발걸음을 멈춰서게 되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앞서 걸어나가면서 깊은 사색에 잠겨 조용히 노래를 부르고있는것이였다.

 

    저 멀리 험한 령을 넘어

    걸어온 길 그 얼마랴

    

창작가들과 관계일군들은 저으기 놀라지 않을수가 없었다.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몇달전에, 그것도 공연무대에서 한번밖에 들어본적이 없었던 가요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의 선률을 어떻게 그대로 기억할수 있단 말인가! 그분께서 노래의 선률을 기억하고계신다는것은 노래가 성공했다는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흥분과 격정속에 가요를 록음하여 그 테프를 올리고 어떤 의견이라도 들으려고 기다리고있었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초조해진 창작가와 예술일군들은 이번에는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를 공연실황으로 록화하여 다시 김정일국방위원장께 보고드렸다.

그런데 바로 그날에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록화테프목록에 친필로 이 노래가 아주 좋다고 적어 보내주시였다.

이때 이 노래를 작곡한 작곡가는 물론 온 예술단이 환희에 잠겨 기쁨에 들떠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노래가 완성되였음을 의미하는것이 아니였다.

한달이 지난 5월 31일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만수대예술단의 한 일군에게 가요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는 선률이 유순하고 아름다와서 좋다라고 하시며 노래는 이렇게 정서가 깊으면서도 유순하고 아름답게 지어야 한다고, 가요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는 들으면 들을수록 좋다고, 전사들의 심정을 그대로 노래에 담았기때문에 선률이 마음을 끌어당긴다고, 가사도 잘 썼다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노래에 대한 평가를 인차 내리지 않고 몇달 끈것은 좋은 노래일수록 더 좋게 만들고싶은 욕심에서였다고, 그래서 두고두고 불러도 보고 다른 악단에 과업을 주어 편곡형상한것을 들어보기도 하였다고 하면서 확실히 노래가 좋다고 다시금 평가하시였다.

이 노래를 명곡으로 완성하려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예술지도에서 보여준 비범한 문학적예지는 끝이 없었다.

가사형상을 놓고보아도 그를 잘 알수 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가사에서 《당중앙 우러러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라는 구절이 있는데 《당중앙 따라서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로 고쳐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김일성주석앞에서는 자신도 한 전사가 되여 오직 주석님만을 높이 우러러모시겠다고 하는 겸허한 말씀이였다.

창작가들과 일군들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을 향도의 태양으로 모시고있는 인민들의 뜨거운 념원이 담겨져있으므로 가사표현을 원래대로 그냥 두면 좋겠다고 하였지만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허락하지 않고 당중앙이 함께 나간다는 뜻으로 《당중앙 따라서》로 가사를 고쳐야 하겠다고 지적하시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 가사표현을 인차 고치지 못하였다. 그러던 1981년 8월 어느날 《로동신문》에 나가는 가요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를 보아주던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친히 펜을 들어 《당중앙 우러러》를 《당중앙 따라서》로 고쳐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창작가들은 이 노래가 이제는 다 완성된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가요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가 나온지 1년 3개월이 지난 1982년 5월 어느날,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이 노래가사의 2절을 좀 고쳐야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우릴 불러 혁명동지라고 믿어주는 그 사랑에…》라고 하였는데 노래를 부르는 동무들의 심정은 알만 하다고, 하지만 가사에 전인민적폭은 나오지 못하였다고 지적하시였다.

그후 2절가사의 몇개 수정안을 내였지만 그 어느 하나도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의도에 맞게 수정하지 못하였다. 창작가들이 끝내 해결하지 못하자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손수 2절가사를 고치여 내려보내주시였다.

    

    혁명의 비바람을 헤쳐

    가야 할 길 몇만리냐

    성스러운 기발아래 다진

    그 맹세 더욱더 불타네

    

고쳐준 가사를 전체 가사의 흐름속에서 읽어보고난 창작가, 예술인들은 그분의 높은 문학적인 식견과 창작적능력에 감탄을 하였다. 조선로동당에 의한 주체위업의 빛나는 계승과 당을 따르는 민중의 신념과 의지를 반영하려고 하였으나 처음의 가사는 어딘가 모르게 허전하고 가사의 핵이 빠져버린것 같은 감을 주고있었다.

1절의 가사에서는 김일성주석을 따라 험하고 사나운 산을 넘어 머나먼 혁명의 길을 걸어온데 대해 노래하였고 가사 2절에서는 당중앙을 따라 혁명의 비바람을 헤쳐 가야 할 길 몇만리냐라고 노래하니 조선로동당에 의한 주체위업계승이 분명하게 보인것이였다. 그리고 성스러운 기발아래 다진 그 맹세 더욱더 불타네라고 강조가 되여 당을 따라 기어이 주체혁명위업을 완성할 민중의 신념과 의지가 격조높이 노래되여 가사의 핵이 뚜렷하게 부각되였다는 확신이 서게 되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그후 노래형상에서 제기되는 세세한 문제들에 대하여서까지 세심하게 정성을 기울이시였다.

하여 김일성주석의 위업을 끝까지 완성하려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신념은 영원히 변치 않을것이라는것과 당을 따라서 수령의 위업에 충실하려는 전민중적사상감정을 높은 경지에서 승화시킨 이 노래는 주체시대의 명곡으로 빛나게 되였다.

북조선의 력사는 승리의 노래 높이 부르며 창조한 자랑찬 력사이다.

김일성주석께서 1946년 중앙교향악단창립공연을 본 다음 음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음악은 민족적특성을 살리면서 혁명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켜야 합니다. 우리의 음악은 우리 인민의 감정과 정서에 맞고 새 조국건설에 일떠선 우리 인민의 혁명적지향에 맞아야 하며 민족적해방을 이룩하고 새 생활창조에 일떠선 우리 인민의 환희와 기쁨, 긍지와 자부심, 혁명적열정을 반영한 참말로 인민적이며 혁명적인 음악으로 되여야 합니다.》라고 밝혀주었으며 음악예술인들이 새 민주조선건설에 적극 이바지할것을 호소하시였다.

태양의 위업을 높이 받들고 실천해오신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저서 《영화예술론》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시였다.

《본래 음악은 자연을 변혁하고 사회를 개조하기 위한 사람들의 로동과정에서 나와 생활속에서 발전하여온, 인민에게 가장 친근한 예술이다. 모든 예술이 다 생활속에서 나왔지만 특히 음악은 무용과 함께 직접 로동과정에서 나오고 또 로동과정에서 불리워온것으로 하여 그 어느 예술보다도 생활과의 련계가 깊다. 생활이 있는 곳에는 음악과 노래가 있기마련이다.》

또한 음악은 인간의 내면세계와 체험을 깊이있게 펼쳐보여주며 인간생활에 뜨거운 열정과 풍부한 정서와 약동하는 생기를 안겨주는 고상한 예술이라고 밝혀주시였다.

항일혁명투쟁을 하던 때에도 새 세대의 피끓는 청년들은 혁명송가 《조선의 별》을 높이 부르며 김일성주석을 따라 혁명의 려명을 안아왔고 항일유격대원들은 《조선인민혁명군》《반일전가》와 같은 혁명적인 노래를 부르며 시련과 고난을 넘고넘어 조국해방의 감격을 우리 민족에게 안겨주었다.

준엄한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에도 조선의 군대와 인민은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네》, 《높이 들자 붉은기》,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 등 신념의 노래를 부르며 시련을 이겨냈다.

노래로 시작되고 노래로 전진하여온 조선혁명은 위대한 음악정치와 더불어 강성국가건설의 전성기를 반드시 펼쳐놓을것이다.

6

 

가요 《우리의 김정일동지》에 대 하 여

 

자본주의사회에 사는 해외동포들이나 남녘동포들이 이북에 대한 리해가 너무 없는것 같아 북부조국의 음악예술을 통하여 이북사회를 리해시켜보는것이 어떻겠는가 하는 《민족통신》의 제안을 받고 쓰기 시작한것이 벌써 38번째 글이 되였다.

나자신도 북부조국의 음악예술을 리해하고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였지만 내 글을 읽어보고 북녘사회를 리해하는데 도움이 되였다고 응답해주는 독자들의 격려의 말을 들으면 한층더 힘이 나군 하였다. 그래서 요즘에는 글쓰는 재미도 가지게 되였다. 아직도 부족하지만 독자 여러분의 넓은 아량을 바란다.

내 기억으로는 2007년 2월인것 같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탄생일을 경축하는 음악회가 평양에서 열리였다. 만수대예술단이 출연하는 공연이였다. 그 음악회에서 들었던 관현악과 합창 《우리의 김정일동지》는 지금도 내 마음속에 진한 감동으로 남아있다.

가요 《우리의 김정일동지》는 류동호가 작사하고 황진영이 작곡하였다. 창작년도는 1994년이다.

이때는 김일성주석이 서거하여 이북민중들은 말할수 없이 큰 슬픔에 잠겨있었고 엎친데 덮친다는 격으로 견디기 힘든 자연재해까지 겹쳐 근로대중에게 닥쳐온 시련은 말할수 없이 컸다.

국제정세는 북조선에 불리하게 전개되고있었다. 사회주의권에 있던 이전 쏘련의 해체를 비롯하여 그 위성국가라고 하는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맥없이 무너져버린지 몇년이 흘러갔다.

미국신문들에 이남의 조, 중, 동과 같은 보수신문들까지 합세하여 《북조선붕괴설》을 악랄하게 퍼뜨리고있었으며 《이북이 무너지는것은 기정사실이고 다만 시간문제일뿐이다.》라고 보도하였다. 미국과 이남의 라지오나 TV방송도 매일같이 《북조선붕괴설》을 떠들고있었다.

미국 클린톤정부는 《5026》이라는 군사작전을 개시하여 녕변의 핵시설을 금방이라도 폭파할것 같이 엄포를 놓았으며 조선반도에는 전쟁이 터질것만 같은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았다. 북조선은 다른 나라에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지만 도움을 청할만 한 나라도 이 세상에 없었다.

이러한 때에 가요 《우리의 김정일동지》가 나왔다.

 

     우리의 김정일동지

    

    행복한 내 나라 한지붕아래

    화목한 대가정을 꾸려주셨네

    인민을 친형제로 키워주신분

    그이는 우리의 김정일동지

    

    언제나 슬기론 인민이라고

    소박한 그 생각도 정책에 담네

    인민을 선생으로 부르시는분

    그 선생의 스승은 김정일동지

    

    인민을 열렬히 사랑하시며

    한평생 인민위해 복무하시네

    인민을 하늘처럼 믿으시는분

    그 하늘의 태양은 김정일동지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사회주의권이 와해되다싶이 한 조건에서 고난의 행군이라는 뼈아픈 시기를 맞이하게 되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앞에는 돌파해야 할 수많은 난문제들과 당장 해결하여야 할 다급한 국내외적인 현안들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김일성주석의 유훈을 관철하고 강성국가를 건설하려면 미국과 그와 결탁한 련합세력과의 대결에 맞설 군사력을 강화하여야 하였기에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비장한 각오를 하며 공장이 아닌 군부대행에 나서시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조선의 운명을 책임지고 사회주의수호전에 나섰으며 이북민중들은 선군정치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따라나섰다. 인민을 하늘처럼 믿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을 인민들은 그 하늘의 태양으로 노래하였으며 최고사령관을 목숨으로 사수하려는 필승의 의지를 가진 군대는 《명령만 내리시라》라는 노래를 부르며 훈련을 다그쳐나가고있는 상태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자력갱생으로 주체조선의 위상을 빛내여나갈 맹세를 하였고 기필코 태양의 위업을 완성하며 강성국가로 나갈 굳은 결심을 실현하기 위하여 선군정치를 전면적으로 펼치시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김일성주석의 정치방식을 그대로 따르며 시행하였고 백두산의 전통대로 모든 사업을 강화해나가시였다. 오직 군대와 인민만을 믿고 제국주의와 맞서 싸웠으며 미국과의 대결전마다에서 승리를 이룩하고 강성대국건설에 박차를 가하시였다.

《피눈물속에 1994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합니다.》

1995년 새해 첫날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인민들에게 보낸 서한의 한 대목이다.

세계는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어떤 정치를 펼칠것인가 주목하였고 어떻게 난관을 헤쳐나가겠는가를 주의깊게 지켜보았다. 조선의 향방은 초미의 관심사로 되였다.

1995년 새해 첫날 새벽,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김일성주석이 생전의 모습으로 영생하고계시는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아 그분께 인사드리고 이른아침 다박솔초소를 찾으시였다. 다박솔초소는 그때까지만 하여도 이름없는 포병부대의 하나의 초소에 불과했다. 눈길을 헤쳐 병사들을 만나신 후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행보는 전선에서 전선으로 쉴새없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다박솔초소방문을 선군정치의 전면적실현의 계기라고 말하고있다.

앞에서 언급한것처럼 1994년무렵은 북에 있어서 무서울 정도로 혹독한 시련의 시기였다.

김일성주석의 서거와 련이은 혹독한 자연재해, 북미간의 숨막히는 대결이 가장 첨예하게 치솟았던 시기였고 고난의 행군길에 오르지 않으면 안되는 엄혹한 시기였다. 렬차가 곳곳에 멈춰섰고 공장굴뚝엔 연기가 보이지 않았다. 인민생활을 보장하는 일용품창고는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런 준엄한 사태하에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총대는 주인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슴에 새기고 선군의 기치를 더 높이 추켜드시였으며 군민을 사회주의수호전에 불러일으켰다. 그에 화답하는 수뇌부결사옹위의 물결은 나라의 방방곡곡을 뒤덮었다.

조선인민군은 주체사회주의의 주역, 혁명의 주력군, 기둥으로 나섰다.

조선인민군은 반미대결전에서의 총결산의지를 가다듬었으며 조국보위도 사회주의건설도 우리가 다 맡자는 구호를 내세웠다.

이렇게 선군정치의 전면적실현의 장이 펼쳐졌다. 이북은 천신만고의 난관을 뚫고 사회주의를 수호하고 부강조국건설을 위해 전진해나갔다. 선군정치를 전면적실현의 높이에 올려세우는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것은 혁명적군인정신이 창조된것이였다. 혁명적군인정신의 발원지를 꼽으라면 단연 안변청년발전소건설문제가 상정된다. 공사는 2000년 10월에 완공되였다. 공사가 시작된것은 1980년대 중반이였다.

공사를 시작한지 10년째이던 1995년은 가장 어렵다는 100리물길공사가 벌어졌던 시기다. 새해벽두부터 조선인민군의 각 부대들이 구간을 나누어 맡아 전개한 공사는 끊임없는 난관을 돌파해야 하는 그야말로 악전고투였다. 허리까지 물이 차오르는 지하막장에서 매일 마치와 굴착기의 전투가 벌어졌다. 암반이 무너지고 굴이 붕괴되는 사고들과 싸워야 했으며 희생자들도 생겼다. 이런 시련을 감수해가며 1996년 드디여 1단계공사를 마쳤다.

그때 물길이 뚫렸다는 보고를 받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건설장을 찾아 국가적지원이 거의 없는 속에서 방대한 공사를 끝마친 군인들이야말로 혁명적군인정신의 창조자들이라며 높이 평가하시였다고 한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안변청년발전소 군인건설자들이 발휘한 혁명적군인정신을 온 나라가 따라배우도록 하였고 이 과정에 강계정신이 창조되였다.

강계정신의 창조과정은 미국의 대북고립압살정책이 낳은 고난의 행군의 피맺힌 원한을 씹으며 일떠선 이북민중들의 눈물겨운 이야기와 투쟁을 동반하고있다.

지금도 건설은 계속되고있다. 희천발전소가 바로 그것이다. 10년이 되여도 완성하기 힘들다는 이 거창한 공사는 완공을 눈앞에 두고있다. 세계의 량심들은 미국에 의해 북조선이 입은 손실과 재앙을 외면할수 없을것이다.

예술영화 《자강도사람들》을 본 사람들은 강계지방 사람들의 투쟁모습을 보고 강계정신이 어떻게 창조되였는가 하는것을 리해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북은 그당시 자강도의 소재지인 강계지역 주민들의 활동을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기 위한 투쟁의 모범사례로 알리고 따라배우게 권장하였다.

북의 신년사설과 언론매체에서는 《자강도사람들》이라는 단어가 끊임없이 등장했고 그 핵심인 강계정신이 강조되였다. 자강도사람들의 기풍을 따라배우자는것이다. 그렇다면 자강도사람들에 의해 창조된 강계정신은 과연 무엇인가?

이북사람들은 좀처럼 어려움을 내색하거나 과장하지 않지만 《자강도사람들》이라는 영화에서는 그때의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고난의 행군시기에 받고있던 민중들의 고통과 처절함을 려과없이 그려내고있다.

점심끼니 배급으로 옥수수 몇알을 배급해야 했고 굶주림을 이겨내기 위해 주민들이 땅속의 니탄으로 떡을 만들어 먹는 대목 등을 통해 어려웠던 시련의 시기를 보여주며 자력갱생의 정신으로 교양했다.

영화의 대사들에서 고난의 행군의 처절함을 엿볼수 있다. 영화의 대사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피눈물을 뿌리며 시작한 이 고난의 행군이 이처럼 가슴아픈 희생을 가져오리라고 생각해본 사람도 없었고 음식이라고 말할수도 없는 풀뿌리, 나무뿌리, 니탄덩어리를 먹으리라고 상상해본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 얼마나 처절한 절규인가.

중소형수력발전소의 설립으로 전력문제가 해결되고 개간과 옥수수, 감자농사로 식량문제를 자급할수 있게 된 자강도의 현실에서 온 나라 민중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자강도사람들의 자력갱생과 간고분투의 정신, 혁명적락관주의를 강계정신으로 불렀으며 자강도사람들을 따라배워 전국적으로 중소형수력발전소건설운동이 벌어졌다.

이러한 속에 1998년 8월 31일 이북은 인공지구위성 《광명성1》호를 쏘아올려 단방에 우주궤도진입을 성공시키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이북은 우주공간의 평화적리용권한을 주장했지만 미국무성의 분석가들은 《광명성1》호를 실어나른 로케트에 온통 정신이 빠져있었다.

인공지구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자면 대륙간탄도미싸일보다 높은 추진력과 정확성이 있어야 하기때문에 이북의 인공위성발사성공은 미국으로 향한 장거리타격보복능력이고 직접적위협으로 볼수 있었다.

이북의 민중들이 이 《광명성1》호를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상상하는것은 어렵지 않다. 고난의 행군의 시련과 싸워왔던 이북민중들의 얼굴은 일순 눈물어린 환희로 뒤바뀌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의 승리를 볼수 있는 사변이였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전면적으로 수정되였다. 미국의 전쟁씨나리오와 북정권교체전략이 파탄난것이다.

고난의 행군, 강행군으로부터 조명록차수의 방미, 조미공동콤뮤니케의 체결, 알브라이트의 방북, 2000년 6월 북남수뇌회담이 실현되기까지 북의 선군정치의 승리를 아무도 부인할수 없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돈의 가치를 절대적인 삶의 기준으로 삼고있다. 례를 들면 《국민총생산》, 《국민소득》 등 돈을 얼마나 소유하였느냐 혹은 외화보유고가 얼마나 되느냐 등 모든것이 돈으로 계산되고 그것에 따라 인격까지 평가되고 사회의 모든것의 가치가 규제된다.

그러나 이북은 총대가 든든하고 군대가 자기의 사명과 역할을 다해야 제국주의자들의 그 어떤 군사적위협이나 침략책동으로부터 사회주의정권을 굳건히 수호하고 인민정권이 자기의 기능과 역할을 보다 원만히 수행해나갈수 있다고 믿는다. 사실 그 정당성은 이전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의 교훈이 잘 말해주고있다.

북에서는 민중의 모든 행복은 제국주의침략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있다고 보고 군대이자 인민이라는 원리를 밝혔으며 선군정치가 국가보위와 혁명의 승리적전진을 위한 만능의 보검이라고 하고있다. 민중의 운명은 결코 저절로 지켜지는것이 아니라는 신념이 확고하다. 그들은 사회주의제도를 허물고 근로대중의 존엄과 행복을 빼앗으려는 제국주의자들의 군사적위협과 침략책동은 끊임없이 계속된다고 말하고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군대이자 곧 당이고 국가이며 인민이라는 독창적인 선군의 원리를 밝힌것은 인민의 행복을 담보하기 위한 커다란 업적이라고 하고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독창적이고 처음으로 되는 이 선군원리에 기초하여 북조선에서는 선군정치가 전면적으로 실현되고 있으며 민중의 자주적존엄과 행복의 웃음이 날로 커가고 강성국가의 휘황한 미래가 펼쳐지고있다.

이러한 현실은 오늘도 이북의 근로대중속에 《우리의 김정일동지》의 노래가 더욱 소리높이 불리워지게 하고있다.

7

 

최고사령관의 배짱-《내 나라의 푸른 하늘》

 

예로부터 대동강은 풍치가 수려하기로 이름이 나있다. 아름다운 대동강가에 자리잡은 민족음악의 산실이라고 부르는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은 내 나라의 푸른 하늘아래 아름답게 세워진 주체음악의 대전당이다.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 관현악단의 보금자리인 음악당홀에 들어서면 넓은 정면의 벽을 가득 채운 대형의 그림이 시원스럽게 전시되여있다. 푸른 하늘밑에 끝없이 펼쳐진 초원우에 철없이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평화로운 고향의 다정함이 한눈에 안겨온다.

그러나 이 푸른 하늘을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투쟁과 희생이 있었는지는 사람들이 다는 알지 못한다.

푸른 하늘과 관련하여 조선중앙통신의 기사에는 이런 글이 실렸다. 《우리 군대와 인민이 어제도 오늘도 노래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을 그토록 사랑하는것은 이 명곡에 사회주의조국의 위대한 수호자의 불같은 신념과 의지가 반영되여있기때문이다.》

참다운 애국은 조국결사수호에 있다고 말한다.

조국의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라도 적들의 더러운 군화발아래 짓밟히지 않게 하려는 철석같은 신념과 의지가 천만군민의 심장에 새겨져있고 조국의 푸른 하늘에 불구름을 몰고 날아드는 어떤 대적도 한몸으로 막아내겠다는 민중의 결사투쟁정신은 조국의 하늘에 그 누구도 범접할수 없는 금성철벽의 요새를 만들어놓았다.

2006년 3월 이북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정령을 통해 예술공연 《내 나라의 푸른 하늘》에 김일성상을 수여하였다.

정령은 이 작품에 대해 《이 땅우에 주체의 사회주의강국을 일떠세운 우리 당의 불멸의 업적과 혁명의 수뇌부두리에 일심단결하여 내 조국의 푸른 하늘을 영원히 빛내여갈 우리 군대와 인민의 철석의 신념과 의지를 대서사시적화폭으로 훌륭히 형상하였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조선반도에 드리워지고있는 전쟁의 먹구름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의 련속이였다. 이렇게 도사리고있는 위험한 순간순간을 승리로 이끌어낸 조국의 맑은 하늘가엔 오늘도 《내 나라의 푸른 하늘》노래가 맑고 아름답게 울려퍼지고있다. 이러한 현실이 펼쳐질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백전백승을 이끌어온 위대한 수호자의 령도가 있었기때문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영원히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을 맑고 푸르게 할것이라고 하면서 자신도 가요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을 사랑한다고 하시였다고 한다.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을 더욱 푸르게 지켜가려면 선차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애국애족과 매국배족이 량립될수 없는것처럼 민족자주와 외세의존은 량립될수 없는것입니다.》라고 하면서 진정으로 북남사이의 화해와 민족의 단합, 조국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외세의존의 길로 나갈것이 아니라 민족자주의 길로 나가야 한다고 지적하시였다.

조국통일이 민족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이루어져야 할 대업이라면 민족적자주성을 확립하기 위한 문제가 조국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근본열쇠라는것을 명심하고 민족자주의 원칙에 기초한 조국통일투쟁을 가열차게 벌려서 조국통일을 이루도록 해야 할것이다.

그래서 민족문제, 통일문제를 민족의 의사와 리익에 맞게 우리의 힘으로 우리 민족끼리 풀어나가야 한다. 철저한 민족자주의 리념은 민족문제를 해결하는 생명선이다.

우리 나라의 통일은 앞으로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관계없이 오직 민족자주의 원칙에 의해서만 이룩되여야 한다. 그렇게 되여야 우리는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을 후대들에게 물려줄수 있을것이기때문이다.

푸른 하늘은 조국의 품이다. 2007년 3월 예술공연 《내 나라의 푸른 하늘》(려명편)을 관람한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조선민족의 정신과 기상을 반영한 선군시대의 또 하나의 대걸작을 훌륭히 창조한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면서 전체 창작가들과 출연자들에게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의 이름으로 감사를 주시였다는 기사를 보았다.

1986년에 창작된 가요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은 구희철이 작사하고 허금종이 작곡하였다.

 

    민들레 곱게 피는 고향의 언덕에

    하얀 연을 띄우며 뛰놀던 그 시절

    아 철없이 바라본 푸른 저 하늘이

    내 조국의 자랑인줄 어이 몰랐던가

    

왜 우리는 하나의 가요에서 이처럼 큰 감동을 받고있는것인가.

그것은 우리의 머리우에 언제나 맑고 푸른 하늘만이 열려있게 해주려고, 가없이 펼쳐진 저 푸른 하늘을 인민에게 안겨주려고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전선과 전선, 농장과 공장을 헤쳐간 고난과 시련의 발자취들에서 솟구쳐오르는 무한한 힘을 보았기때문일것이다.

명곡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은 온 나라가 다같이 부르는 나라에 대한 사랑, 인민에 대한 사랑의 노래이다.

노래에 흘러넘치는 열렬한 조국애는 단순히 나서자라난 고향과 정든 부모형제가 있는 산천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다. 이 세상 그 어디나 하늘은 있어도 너보다 푸른 하늘 어디 가 찾으랴라는 구절속에 근로대중이 생명보다 더 귀중히 여기고있는 진정한 조국이란 무엇이며 오늘날 그 조국을 위해 바치는 사랑이란 과연 어떤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대답을 들을수 있다.

노래는 우리 민중이 안겨사는 사랑의 품을 푸른 하늘에 비유했고 그 하늘에 해와 별이 빛나 민중들의 행복이 꽃펴나고 백성들의 운명이 지켜지며 나라의 앞날이 밝고 창창하다는 진리를 심오한 예술적형상으로 표현하고있다.

우리의 푸른 하늘은 김일성주석이 찾아주시고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지켜주고 빛내여오신 내 나라, 민중을 위한 참다운 의료제도, 교육제도 등 기본생활이 철저하게 보장되고 착취가 없고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고 사는 사회주의제도의 고마운 품일것이다.

잊을수 없는 고난의 행군시기의 체험을 돌이켜 생각할 때마다 사람들은 푸른 하늘, 해와 별이라고 하는 가슴뭉클한 생각으로 눈시울을 적시면서 넓고 따사로운 그 품에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온몸을 불태우고있다. 철없이 바라본 푸른 하늘, 푸른 하늘은 그저 푸른것이 아니였다.

철없이 바라본 푸른 하늘이 내 조국의 자랑인줄 어이 몰랐던가 하고 노래를 부를 때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물음앞에 자신을 비추어보게 된다.또 나의 운명, 나의 행복, 나의 미래를 지켜주고 빛내여준 고마운 내 조국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하였던가 하고 뒤돌아보게 한다.

노래 《내 나라의 푸른 하늘》에서 우리는 애국의 호소를 듣는다. 말은 비록 없어도 조국의 한그루 나무, 한포기 풀도 사랑할줄 알고 조국을 위해 말없이 헌신할줄 아는 그런 사람을 조국은 필요로 하고있다는 애국의 호소를 듣고있다.

 

    조용히 눈을 감아도 푸른빛 어리고

    꿈에도 보이는 내 나라의 맑은 하늘

    아 가없이 펼쳐진 푸른 저 하늘을

    시련많던 불구름도 가릴수 없었네

 

이북의 민중들은 이 노래를 부를 때면 피끓는 애국심이 솟아오른다고 한다. 해와 별 찬란히 빛나는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을 더욱 푸르게 해주는 길이라면 어떠한 희생도 서슴없이 받아들일 헌신의 불타는 마음들이 노래 《내 나라의 푸른 하늘》과 더불어 온 나라에 메아리치고있다.

이 세상 그 어떤 대적이 큰소리를 치면서 쳐들어온다 해도 결사옹위와 일심단결로 다져져 금성철벽을 이루고있는 한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은 그 누구도 흐리게 하지 못할것이다.

 

    이 세상 그 어디나 하늘은 있어도

    너보다 푸른 하늘 어디 가 찾으랴

    아 은혜론 해와 별 찬란히 빛나는

    내 나라의 정든 하늘 안고 살리라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을 지키는 평화는 듣는것처럼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다.

지금 이북은 침략과 전쟁의 원흉이며 평화와 사회주의의 파괴자인 제국주의자들과 직접 총부리를 맞대고 첨예한 대결을 하고있는 환경과 조건에서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을 진행하고있다.

그래서 이북은 군대가 백전백승의 무적강군으로 막강하게 준비되여있어야 가없이 푸른 하늘아래서 민중들이 행복하게 살수 있는 래일을 담보할수 있으며 강성국가건설도 성과적으로 추진해나갈수 있다는것으로 판단을 하고있다.

《인민군대의 총창우에 평화가 있고 사회주의의 승리가 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이 명언에는 혁명무력을 불패의 강군으로 준비시켜놓아야 평화가 유지되고 전쟁을 억제할수 있으며 조국의 자주적통일을 틀림없이 이룩할수 있다는 깊은 뜻이 담겨져있다.

노래 《내 나라의 푸른 하늘》에는 최고사령관의 담대한 배짱이 담겨져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정력적인 령도가 있어 군대의 위력이 백방으로 강화되고 나라의 방위력이 철벽으로 다져졌으며 제국주의자들의 끊임없는 침략책동이 사전에 분쇄되고 나라의 평화와 안전이 지켜졌다.

한 나라의 령도자가 강철같은 담력과 배짱을 가지고 혁명과 건설을 이끌어야 근로대중의 사기도 높아지고 정신력도 최상으로 발휘될수 있다. 현대적인 군사기술수단과 거대한 경제적잠재력을 비롯한 막강한 국력도 령도자의 담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것을 알수 있다.

령도자의 담력이야말로 천만금에도 비길수 없는 행복의 조건이며 위대한 민족으로 되는 절대적인 조건이다. 그래서 령도자의 담력은 근로대중들에게 이 세상 그 어떤 첨단무기보다 더 귀중하고 믿음직스러운 최상의 선물인것이다.

《조선은 결심하면 한다!》, 이 구호는 오늘의 조선을 대변하는 자신만만한 승리의 웨침이고 령도자를 우러르며 따르는 조선인민의 긍지의 혼이 배여있는 높은 기상의 웨침이다.

불구름이 몰려드는, 남들 같으면 벌써 열백번도 무너져버렸을 고난의 행군의 그 어려운 나날에도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강철의 담력으로 후손만대의 번영을 담보하는 강성국가건설의 기치를 주저하지 않고 높이 드시였다. 그리하여 첨단을 달리는 조선의 위대함은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을 지키는 또 하나의 무기는 첨단과학기술이다.

1998년 《광명성1》호의 성과적발사에 이어 또다시 인공위성 《광명성2》호의 제작뿐만아니라 발사까지 단번에 성공시켜 첨단과학강국으로서의 이미지를 높인 조선에서는 미지의 과학요새들인 주체철과 주체섬유, 주체비료가 계속 쏟아져나오고 전반적공업발전에서 획기적인 성과들이 이룩되였다.

CNC화의 새 기술혁신과 비약의 폭풍으로 조선은 지금 최첨단강국, 경제대국으로 본격적인 전성기에 들어섰고 막대한 투자와 첨단과학기술적토대가 충분히 있어야 하는 열핵반응장치도 100% 자체의 힘으로 설계제작하고 핵융합에서 성공함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핵융합의 성공으로 새 에네르기개발을 위한 돌파구가 열리게 되였고 이북의 최첨단과학기술발전에서 새로운 수준의 경지가 펼쳐지게 되였다.

이에 대하여 인터네트신문 《우리 민족끼리》는 이북민중들의 표정을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민족의 위대성은 령토의 광대성이나 력사의 유구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민족을 이끄는 령도자의 위대성에 의하여 규정된다. 지난날 나라와 민족을 이끌만 한 령도자가 없었던탓에 식민지노예의 처지에서 갖은 멸시와 천대를 받던 우리 민족이 세상이 부러워하는 민족으로 자랑떨칠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위대한 김일성주석과 경애하는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을 높이 모시였기때문이다.》

이북의 근로대중들은 영원히 가요 《내 나라의 푸른 하늘》을 부를수 있는 확고한 터전을 마련해준 위대한 령도자를 영원히 높이 받들고 사회주의의 찬란한 미래를 개척해나가는것을 자기들의 최대행운과 영광으로 심장에 새겨안고 힘차게 전진하고있다. 이북의 사회주의는 승승장구할것이다.

8

 

《밭갈이노래》

 

《밭갈이노래》는 우리 나라 농민들의 생명의 노래, 희망의 노래, 먹고살 땅을 받은 농민들이 김일성주석께 드리는 감사의 노래이다.

내가 나서자란 전라도는 우리 나라에서 넓은 평야지대로 이루어져있는 곳이다. 경작면적도 다른 곳에 비해 훨씬 넓고 곡식수확량도 그에 비례해서 엄청나다. 경작면적이 넓다고 하는 소리는 세대마다에 돌아갈수 있는 부침땅의 크기가 보다 더 많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넓은 땅의 소유주는 따로 있었고 실지로 농사짓는 농부들에게는 땅이 없었다.

대대로 소작을 붙여먹고 사는 농부들의 가정은 봄이 오기 훨씬 전부터 곡식항아리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어떤 집은 쌀독에 곡식이 한톨도 없다. 곡식을 아끼려고 잡곡을 섞고 고구마나 무우와 배추시래기를 섞어 밥을 지어도 춘궁기를 무사히 넘길수는 없다. 굶은 후유증으로 누렇게 부어오른 동네사람들을 많이 보았고 여기저기 상여에 실려 쓸쓸히 떠나갈 때 힘없이 울리는 통곡소리는 가슴을 저리게 하였다. 보리타작할 5월은 아직도 너무 멀었다. 농민들의 식솔들은 이 보리고개를 어떻게 넘을수 있을지.

나라가 해방이 된 뒤에도 세 끼니를 먹는 집은 지주집을 빼놓으면 거의 없었고 굶는 집이 많았다. 이러한 때에 이북에서는 해방된 이듬해인 1946년에 김일성장군님에 의하여 토지무상분배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실시되였고 토지개혁은 철저한 무상분배의 원칙하에서 이루어지고있었다는 소문이 들리기 시작하였다.

무상분배! 어찌 《밭갈이노래》가 울려나오지 않을수 있었겠는가. 농민들의 마음은 설레였고 김일성장군을 우러르는 그들의 가슴은 뜨겁게 불타고있었다.

1946년 3월 5일 김일성주석은 력사적인 《북조선토지개혁에 대한 법령》을 공포하시였다.

법령을 통해 5정보이상의 땅을 가지고 소작주면서 착취하던자들을 지주로 규정하고 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하여 그 땅을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줬다.

이리하여 4만 4 000호의 지주들의 땅이 몰수되여 72만여호의 농민들에게 무상분여됨으로써 농민들이 봉건적착취와 예속에서 벗어나게 되였다.

토지개혁법령 1조는 일본인토지소유와 조선인지주의 토지소유 및 소작제를 철페하고 토지리용권은 밭갈이하는 농민에게 있다, 이북의 농업제도는 지주에게 예속되지 않은 농민의 개인소유인 농민경리에 의거한다고 규정했다.

당시 이북에선 총농호의 4%밖에 안되는 지주들이 부침땅면적의 58.2%나 차지하고있어 농민 대부분은 빈농이거나 소작농이였다.

토지개혁으로 1946년 3월 5일이후 정부로부터 분배받은 토지에서 나온 농산물은 자신들이 처분할수 있게 되여있어 농민들의 기쁨은 말할수 없이 컸다.

노래의 가사에는 《아 장군님 주신 땅》이라고 매절마다 강조되여있다.

논밭을 새로 받은 농민들의 기쁨은 말할수 없이 큰것이였고 그 기쁨은 무엇에도 비교할수가 없었을것이다.

농민들은 그때의 기쁨에 대하여 《우리가 례배당에 가서 아무리 하느님을 부르며 간절하게 기도를 해도, 사찰에 가서 부처에게 정성스런 불공을 드려도 하느님이나 부처님은 우리(농민)를 외면하였고 우리의 절망적인 몸부림을 끝내 외면해버렸다.

농민들은 항상 빚에 쪼들렸고 지주의 학대와 착취를 피할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러나 김일성장군은 우리 농민들이 생명처럼 여기는 토지를 주었다. 그것도 돈 한푼 받지 않고 무상으로 주었다. 우리가 어찌 그분을 하느님같이 생각하지 않을수 있겠는가.》라고 설명한다.

가요에서 새로 푼 논에는 봄물결이 출렁이고 주인된 새땅엔 기쁨도 넘실거린다라고 한것은 땅을 가지게 된 농민들의 기쁨이 얼마나 컸겠는가를 짐작할수 있게 한 대목이다. 세상사람들은 《주인된 새땅엔 기쁨도 넘실넘실》이라는 가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일성주석이 농민에게 땅을 주었고 그들을 새 조선의 주인으로 내세워주시였다는 뜨거운 사랑의 이야기를 후대들은 기억해야 할것이다.

《밭갈이노래》는 행복의 노래이다.

봄을 맞이한 이북의 전야마다에서는 가요 《밭갈이노래》가 흥겹게 울려퍼지였다. 

김일성주석이 직접 작성하여 발포한 토지개혁법령은 설음과 눈물에 얼어붙은 이 나라 농민들의 가슴에 맺힌 한을 녹이는 봄빛이였으며 주종적토지소유관계의 새로운 정립과 땅에 대한 농민들의 소원의 실현을 온 세상에 소리높이 선언한 력사적사변이였다.

이북 총농호의 4%밖에 안되는 지주들의 땅을 무상으로 몰수하여 이북인구의 80%이상을 차지하는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땅을 나누어준 토지개혁은 농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불과 한달도 못되는 짧은 기간에 전국적인 규모로 가장 철저히 수행되였다.

력사적인 토지개혁법령발포(1946. 3. 5) 1년후인 1947년 창작되여 민중의 사랑을 받는 가요 《밭갈이노래》는 김일성주석이

베풀어준 토지개혁의 혜택으로 난생처음 자기 땅에서 밭갈이를 하게 된 농민들의 기쁨을 담은 민요풍의 서정가요이다.

 

               밭갈이노래

                                 작사 집체, 작곡 함홍근

    

    백두산말기에 백학이 너울너울

    해방된 강산에 뻐꾸기 뻐꾹뻐꾹

    아 장군님 주신 땅

    에루화 데루화 모두다 떨쳐나 밭갈이가세

    

    주인된 새땅엔 기쁨도 넘실넘실

    새로 푼 논에는 봄물결 출렁출렁

    아 장군님 주신 땅

    에루화 데루화 한친들 묵이랴 밭갈이가세

 

    민주의 새봄에 만풍년 불러불러

    장군님은덕에 천만년 보답하세

    아 장군님 주신 땅

    에루화 데루화 충성의 한마음 밭갈이가세

 

 

《밭갈이노래》는 토지정리사업에서도 빛을 내였다. 이북은 1998년 10월부터 경지증대효과가 큰 강원도, 평안북도, 황해남도, 평안남도와 평양시순으로 토지정리사업을 진행해 전국적으로 23만 6 360여정보의 토지를 정리하였다.

《로동신문》은 몇해전 토지개혁법령발포일을 맞이하여 게재한 글을 통해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뙈기논밭에서 봉건적토지소유의 잔재를 발견하고 낡은 사회의 유물을 완전히 청산하기 위한 하나의 혁명으로 토지정리사업을 내세우시였다.》고 강조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김일성주석의 령도업적을 만대에 빛내이며 토지의 면모와 구조를 개변시켜 봉건적토지소유의 잔재를 완전히 없애기 위하여 토지정리사업을 발기하고 그 실현을 진두에서 지휘하였다.

해방직후의 토지개혁이 지주를 청산하고 토지의 봉건적소유관계를 타파한 혁명이라면 오랜 세월 내려오던 봉건적토지소유의 잔재들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이 땅을 사회주의국가의 토지답게 시원스레 변모시킨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토지정리사업은 나라의 부강발전을 위한 만년대계의 애국위업으로서 누구도 내릴수 없는 위대한 혁명적용단이였다.

1998년은 이북이 고난의 행군이라는 뼈아픈 고통을 겪고있던 때였다. 큰물피해와 왕가물 등 자연재해로 많은 농경지가 류실되고 제방이 파손되는 등 상상하기조차도 힘든 일들이 련이어 덮쳐왔었다. 이런 때를 노렸다는듯이 제국주의침략세력들은 고립압살책동으로 북조선을 못살게 굴었으며 목을 죄여오기 시작했다.

《5026》이라는 핵전쟁씨나리오를 하나씩하나씩 행동으로 옮겨오고있던 준엄한 시기였다.

그러나 이런 때에도 이북에서는 전쟁물자가 아닌 불도젤 같은 수많은 자연개조의 수단들이 강원도를 향해가고있었다. 당연히 침략을 물리칠 방어태세를 갖추어야 했었는데 토지정리를 하기 위한 준비에 큰 힘을 넣고있었으니 누가 이런 사실을 상상이나 할수 있었겠는가.

백두의 기상과 담력을 지닌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웠던 시기였지만 한개의 리나 한개의 군이 아니라 도를 단위로 하여 토지정리사업을 진행하도록 하시였고 한두해가 아니라 10년, 50년을 내다보고 토지정리할 논밭의 규모를 800평, 1 000평, 1 500평으로 바둑판처럼 규격화했다.

자연흐름식물길건설로 물문제도 원만히 해결되였다.

자연흐름식물길건설은 높은 곳에서부터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자연적성질을 리용하여 전기의 도움이 없이도 물이 논밭으로 저절로 흘러가게 하는것으로서 이 구상은 우리 나라 관개건설력사상 처음이고 독창적인 방법이라는데만 그 의의가 있는것이 아니였다.

농업의 생명수인 물문제를 원만히 풀어 농업생산에서 결정적전환을 일으킴으로써 우리의 힘으로 부강번영하는 주체의 사회주의강성국가를 건설할수 있게 하는 위대한 구상이라는데 그 막중한 력사적의의가 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곡창지대인 서해안일대의 관개체계를 자연흐름식물길체계로 바꿀데 대한 웅대한 구상을 펼쳐놓으시였다.

자연흐름식물길, 그것은 참으로 최첨단의 과학기술이고 신묘한 관개방식이다. 이 과학적이고 또 신묘하고 웅대한 구상을 발기한 이자체가 농업혁명력사에 하나의 크나큰 사변으로 기록되여야 할것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처럼 전쟁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정세속에서 전당, 전군, 전민을 물길공사에 총동원하고 강성국가를 건설할 원대한 구상을 실천해온 례는 세계 어느 나라 력사에서도 찾아볼수가 없다.

그렇듯 위대한 령도로 하여 개천-태성호물길과 백마-철산물길이 선군시대의 자랑스러운 기념비로 조국땅에 건설되였고 뒤이어 미루벌물길이 완공되여 미루벌의 농업생산을 더욱 늘일수 있는 튼튼한 담보가 마련되게 되였다.

민중들은 장군님의 은덕으로 미루벌이 천지개벽되였다고 기뻐하였다. 온 나라 민중들의 크나큰 기대와 관심속에 미루벌물길이 완공되던 당시 온 고장 사람들이 몽땅 떨쳐나서 노래와 춤판을 벌리였다. 미루벌이 생겨나서 보기 드문 광경이 벌어졌다.

여기 미루벌농민들은 해방전에는 먹을 물 한동이를 얻기 위해 십리나 걸어야 했고 가물에 말라서 갈라터진 땅을 두드리며 쭉정이농사나 지어먹어야 했던 사람들이다.

《하늘도 못 주던 물을 우리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라고 미루벌사람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사회주의락원은 눈앞에 있다.

이북의 근로대중들은 위대한 수령, 위대한 령도자를 높이 모신 긍지와 자부심으로 행복스러워하고있으며 제일 잘살고 제일 행복하게 살 강성국가를 하루빨리 건설하기 위하여 모든것을 다하고있다.

세계에는 번쩍거리는 번화가를 두고 《문명》을 떠드는 나라들도 있고 《고도성장》을 자랑하며 만족해하는 민족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이런 민중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리상적인 창조를 생각해낼수 있으며 실현할수 있겠는가?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혁명적대고조의 진군속에서 우리 인민이 오랜 세월 품고있던 리상과 포부가 하나하나 현실로 꽃펴나고있다고 하시였다고 한다.

그렇다. 이북에서는 봉건적토지소유의 잔재인 뙈기논들이 정리되고 산천이 아름다운 리상향으로 변화발전되고있다.

농촌마다, 건설장마다 새로 들어선 문화주택은 이북근로대중들의 자부심과 긍지를 높여주고있으며 이러한 이북의 현실에 대한 여러 나라 사람들의 부러움은 높아만 가고있다.

모든 생산공정의 콤퓨터화가 실현되여 근로자들이 구시대의 로동에서 완전히 벗어나 흥겹게 일할수 있는 환경, 이것이 인류가 그처럼 그려보고 소원하던 리상이다.

바로 이러한 리상이 최첨단돌파전이 힘있게 벌어지는 북부조국에 펼쳐지고있다.

《밭갈이노래》는 대계도간석지에서도 흥겹게 울려퍼지고있다. 대계도간석지건설의 원대한 구상은 토지를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준 김일성주석에 의하여 제시되였다. 농민들은 지금도 그때의 행복을 잊지 못하고있다.

평안북도간석지건설련합기업소의 근로자들을 비롯한 건설자들은 염주군 다사도로부터 대다사도, 소연동도, 대계도를 거쳐 철산반도에 이르는 수십리에 방조제를 쌓고 내부망공사를 마무리하여 한개 군의 면적과 맞먹는 부침땅을 얻어내는 성과를 올렸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대계도간석지건설공사를 성과적으로 끝마친것은 강성대국건설에서 이북근로대중들이 이룩한 또 하나의 위대한 승리이며 대계도간석지건설자들이야말로 사나운 파도와 싸우며 조국의 대지를 넓혀나가는 용감한 바다의 정복자, 백절불굴의 투사들이며 조국이 영원히 기억하고 추억할 위훈의 창조자들이라고 치하하시였다.

용감한 바다의 정복자들, 백절불굴의 간석지건설자들이 수수만년 행성의 인력으로 썰물과 밀물만이 교차하던 이 일대를 근로대중들의 의지와 리상대로 황금벼이삭이 물결치는 옥토로 변화시킨 이 엄연한 현실은 조선은 결심하면 못하는 일이 없다는것을 온 세상에 소리높이 웨친 일대 사변이다.

김일성주석께서 한평생의 모든것을 다 바쳐 이룩해놓은 터전우에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자자손손 대를 이어가며 행복을 누릴수 있는 민족의 락원으로 가꾸어주신 사회주의대지가 있어 이북민중들은 얼마든지 자기의 힘으로 부강번영하는 주체의 사회주의강성국가를 보란듯이 건설해놓을것이다.

9

 

아동가요 《조선을 위하여 배우자》

 

       조선을 위하여 배우자

                             작사 명준섭, 작곡 함기찬

    

    해님이 두둥실 솟는 아침에

    창밝은 교실에 들어설 때면

    가슴에 뜨겁게 울려와요

    지도자선생님 하신 그 말씀

    (후렴)

     조선을 위하여 배우고 배우자

     아 조선을 위하여 배우자

    

    창가에 애기별 웃는 깊은 밤

    일기장 펼치고 글을 쓸 때도

    마음속거울로 비쳐보아요

    지도자선생님 하신 그 말씀

    (후렴)

 

    글 한자 배워도 한걸음 가도

    즐겁게 춤추며 노래할 때도

    언제나 우리는 잊지 않아요

    지도자선생님 하신 그 말씀

    (후렴)

 

요즈음 이남의 대학가는 치솟은 등록금으로 술렁거리고있다.

나는 이남의 신문에서 하늘높은줄 모르고 뛰여오르는 등록금을 감당할수가 없어서 길거리에 뛰쳐나와 항의하는 대학생들의 시위행렬에서 《비싼 대학등록금 고등학생도 힘듭니다. 대학교 가기가 두렵습니다. 뼈빠지게 일하시는 부모님께 너무 죄송합니다.》라는 글이 씌여진 피켓을 목에 걸고 울부짖는 한 녀학생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았다. 그 녀학생의 눈물어린 절규는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대학교정을 누비며 청춘의 랑만을 불태우고 진리를 탐구해야 할 학생들임에도 불구하고 감당하기가 너무도 벅찬 비싼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학생들은 강의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로동판으로 줄달음질쳐야 한다.

최저임금도 안되는 벌이로 등록금을 준비하려면 매 학기마다 1 000시간이상의 로동을 해야 한다. 그렇게 뼈빠지게 뛰여도 로동판을 전전하며 번 돈으로는 등록금을 충당하기가 쉽지 않은게 이남의 현실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로동에서 오는 겹쌓인 피로때문에 건강이 심히 파괴되여 쓰러진다고 한다.

그나마 《학자금대출》이라도 받았던 학생들은 졸업후에 취직이 안되여 신용불량자로 전락해버리고마는데 《학자금대출》을 받았던 학생들 대부분은 졸업과 동시에 조여오는 빚독촉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하숙방안에 련탄불을 피우거나 건물옥상에서 뛰여내리는 등의 방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게 오늘의 이야기이다. 지난 10년동안 자살한 대학생수는 무려 2 300명이나 된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수가 없다.

이것이 이남의 현실이다.

사람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권리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추우면 입어야 하고 아프면 치료를 받을수 있어야 한다. 취학적령기가 되면 학교에 가서 배워야 할 권리도 있다.

그러나 이남의 사회구조는 그 기본권을 거부하고있다. 지체가 부자유하거나 정신적장애로 인해 정상적인 삶을 누릴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는 유효하다.

이런 부자유스런 삶을 사회는 외면할 권리가 없다. 신문을 보면 이러한 초보적권리마저도 무참하게 짓밟아버리는것이 오늘 이남의 비참한 현실인듯싶다. 이남의 이러한 현실과 반대되는 참다운 교육제도가 이북에 펼쳐져 누구나 마음껏 배우고있다.

이북에서는 오래전부터 전반적11년제무료의무교육을 완전하고 철저하게 시행하고있다. 그래서 평균적인 교육수준이 높을수밖에 없다. 이남에서처럼 외국에 류학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온 사람이라고 해서 특별대우도 하지 않지만 절대 그들에게 주눅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국내대학출신들이라 하여 밀리는 일은 절대로 없기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조선에서 공부한 엘리트라는데서 더 큰 자부심을 가진다.

인공위성과 첨단과학분야에서 계속적으로 승전고를 울리고있는 젊은 과학자들은 김일성종합대학이나 김책공업종합대학 등 국내에 있는 대학과 연구소에서 일하는 30대의 젊은 과학자들이라고 한다.

그만큼 나라의 교육제도가 우월하다는것이고 이런 교육제도아래에서 자라나고있는 행복한 세대들은 무슨 일에든지 자신감에 넘쳐있고 자기들의 깨끗한 량심을 아낌없이 나라에 바치려고 다짐을 한다.

1989년에 나는 평양에 있는 룡북녀자중학교(당시)를 방문한적이 있다. 현관에 나와 우리일행을 환영하던 이 학교 부교장으로 있는 녀선생은 수업이 진행되고있는 오전시간이였지만 학교를 찾아간 우리 재미동포일행을 교문앞까지 나와서 환대하여주었으며 특별히 환영음악회까지 열어주었다.

공연을 통하여 짧은 시간에 학교의 모든것을 보여주려고 낸 묘안이였는지는 몰라도 우리일행을 위해 이러한 특별한 공연까지 조직해준데 대해 참으로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만나보았던 학생들마다 몸가짐이 단정하였고 머리모양손질도 맵시있게 하여 깔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학생들은 모두가 례절바른 모범생들같이 보였다.

깨끗한 교실안에는 《조선을 위하여 배우자!》,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라는 애국적인 내용의 글발이 붙어있었고 우리가 미술시간에 흔히 보던 아그리파나 비너스 등의 서양식석고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다만 우리의 포근한 얼굴들로 된 석고상으로 교실안이 장식되여있었다.

나는 이 학교를 참관하면서 많은것을 배우고 깨닫게 되였는데 특히 교육에서 사대주의를 배격하고 민족성과 주체를 바로세우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지를 알게 되였으며 이를 보면서 큰 감명을 받았다.

김일성주석은 일군들에게 사람이 사대주의를 하면 머저리가 되고 민족이 사대주의를 하면 나라가 망하며 당이 사대주의를 하면 혁명과 건설을 망쳐먹는다고 늘 가르치셨다고 한다. 사람이 자주적인 존재로 되려면 남을 덮어놓고 숭배하는 사대주의를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근로대중들을 계몽시키였다고 한다. 김일성주석의 교육관이 얼마나 훌륭하고 애국적이였는지 알수 있었다. 학교기악소조에서 준비한 관현악연주순서가 되였다. 관현악을 전공한 나로서는 이 종목에 특별히 관심이 쏠렸다. 부교장선생은 우리가 듣고싶어했던 곡목인 《아리랑》, 《노들강변》 같은 민요합주와 혁명가요를 편곡한 기백이 넘치는 곡목들을 준비하여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서양의 목, 금관악기에다 장고, 북 등 우리의 타악기와 저대, 단소, 피리 등 죽관악기와 새로 개량된 가야금, 옥류금까지 한데 어우러져 울려나오는 합주는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한 독특한 맛과 소리로 우리를 감싸주었다.

이 합주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이 1960년대부터 주체적으로 발전시켜온 바로 배합관현악의 일면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이들 학생들은 전혀 새로운, 신바람이 나고 힘이 솟구치는 그리고 어깨춤이 저절로 나오는 진짜 음악을 들려주는것이였다.

우리일행은 정열적으로 공연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조선을 위하여 배우자!》라는 나라의 교육방침을 높이 받들며 실천하는 모습을 보았다.

1995년 8월 15일을 맞으며 재미동포운동단체들은 조국해방 50돐 경축대회에 초청되여 혁명의 성산 백두산을 오르게 되였다. 우리를 태우고 백두산을 내려오는 뻐스는 삼지연군에 있는 조그마한 소학교앞을 지나가고있었다. 학교정문에 높이 걸려있는 구호가 눈에 번쩍 띄였다.

《조선을 위하여 배우자!》라는 구호는 매우 충격적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비록 시골소학교에 걸려있는 구호이였지만 글줄에는 심오한 철학적의미가 새겨져있었고 뜨거운 애국의 충정이 배여있었다.

해방이 되자마자 새 조국을 건설하는 길에서 김일성주석의 령도아래 문맹퇴치사업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알다싶이 이북은 나라를 찾고 해방을 이룩했지만 재정형편은 말이 아니였다. 일제가 물러간 그 자리에는 피페한 상처만 남아있었을뿐이였다.

해방후 새 조국을 건설하는데 들어갈 돈도 많이 요구되였고 여러가지 급한 일도 많았지만 김일성주석은 아이들 교육에 필요한 연필과 공책을 만드는 학용품공장을 우선하여 건설할것과 최고의 제품을 학생들에게 보급하도록 만단의 조치를 취하여 교육문제해결의 기초를 다져놓으시였다.

전반적인 무료의무교육제도를 수립하였으며 전국적으로 실시된 무료의무교육의 덕으로 이북의 교육수준은 짧은 시일안에 괄목할만 한 성장을 가져올수 있게 되였다.

2011년 4월 제27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갔을 때에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안내원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는 여러차례에 걸쳐 이북을 방문했었지만 이런 이야기를 나눠볼 기회가 없었다. 11년제의무교육에 대해서는 여러번 들어보았지만 대학등록금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있었다. 왜냐하면 이북에서 대학의 학제는 11년제의무교육에 포함되지 않기때문이다.

이북은 교육의 목표를 사람들을 자주성과 창조성을 가진 혁명인재로 키우는데 두고 화목한 집단주의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착취와 압박을 반대하고 사회와 인민을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는 인재를 키워내는데 많은 힘을 썼다. 북에서 내세우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의 집단주의정신은 개인과 집단의 관계를 단적으로 설명해주고있다.

안내원은 교육제도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선생은 왜 우리 공화국(이북)의 교육제도가 우수하다고 하며 왜 사회주의제도가 우월하다고 하는가를 아십니까?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부모가 아이들의 전성장과정과 대학을 나와 직장에 취직이 되여 돈벌이를 할 때까지 경제적부담을 포함해서 모든것을 책임을 져야 하지만 우리에게는 어머니품과 같은 은혜로운 당이 있고 모든것을 책임져주는 고마운 정부가 있습니다.

우리는 대학등록금 같은것을 모릅니다. 나라에서는 학생들의 장래를 모두 책임져주고 대학생들에게 장학금까지 주기때문에 우리 학생들은 공부하는데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습니다. 세심한 배려를 해주는 당의 고마움을 못 잊어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그저 나라에 자기들의 모든것을 바치려는 생각만 하고있을뿐입니다. 그렇게 갖가지 혜택을 받고 자란 새 세대들이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조국을 위해 충정을 다하고 사회에 좀더 많이 기여하고싶어합니다. 이것이 자라나는 우리 젊은 세대들의 희망입니다.》

북은 김일성주석에 의하여 해방이 되자마자 시작한 문맹퇴치사업과 여러 단계에 걸치는 교육사업의 발전, 11년제무료의무교육의 전반적인 실시로 배움의 빛나는 새시대를 열어놓았다. 인민중심의 주체교육제도를 계승발전시킨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탁월한 령도업적을 계승하여 이북의 교육은 《조선을 위하여 배우자!》의 철학적인 구호와 함께 무궁무진하게 발전할것이며 자랑찬 교육의 나라 선군조선의 영광은 더욱 찬란하게 빛날것이다.

10

 

조선의 행진곡 《승리의 길》

 

2011년 1월 14일부 이남의 한 신문에 특별한 기사 하나가 실려 눈길을 끌었다. 그 신문에 실린 흥미로운 기사에는 가요 《승리의 길》이 실려있었다. 북의 《로동신문》의 첫페지를 그대로 실어놓은것이였다. 이남신문은 북에서 신년공동사설이 실리던 《로동신문》의 첫페지에서 관례를 깨고 가요 《승리의 길》을 실어놓은데 대해 의아해하면서도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있었다. 자기들나름대로 해설도 덧붙여놓았다.

바로 유튜브에 실려있는 노래 《승리의 길》을 관심깊게 들어보았다. 김일성주석의 주체혁명위업, 김정일국방위원장이 계승발전시켜온 선군혁명위업을 대를 이어가며 필연코 최후승리로 이끌어 마무리하겠다는 당중앙군사위원회 김정은부위원장의 비장한 결심을 노래 《승리의 길》에서 보았다.

 

    머나먼 혁명의 길에 흘린 피 붉은기에 있고

    승리의 천만리우에 영광의 자욱이 있다

    수령님 따라서 시작한 이 혁명

    기어이 장군님따라 승리떨치리

 

평양비행장에서 평양시내로 가는 차를 타면 김일성경기장옆 개선문광장을 지나게 된다. 광장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개선문은 웅장한 모습으로 그 위용을 자랑하고있다. 규모도 크지만 예술적인 평가에 있어서도 세계의 으뜸이라고들 한다.

이북에 무진장한 화강암을 잘 다듬어서 세운 이 건축물 앞뒤면에는 《김일성장군의 노래》가 새겨져있고 아치형의 둥근 문둘레에 근로대중의 충정의 마음을 담아 1982년 4월 김일성주석의 탄생 70돐을 상징하는 70송이의 목란꽃을 정성스럽게 새겨놓았다.

또 개선문에는 김일성주석이 항일투쟁을 시작하여 조국으로 개선한 《1925-1945》의 자랑스러운 년대기가 긍지높게 새겨져있다. 항일혁명투쟁은 선군혁명의 시작이였다.

이북의 근로대중들은 선군정치는 사회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만능의 보검이며 백전백승의 기치라고 굳게 믿고있다. 그들은 치렬한 반미대결전에서 련전련승하고있는 비결과 사회주의건설에서 이루어내고있는 눈부신 발전의 비결도 선군정치에서 출발했다고 확고하게 말하고있다.

일제가 기승을 부리던 1925년 14살 어린 소년의 나이인 김일성주석은 조선의 독립을 이루지 않고서는 다시 조국에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비장한 각오로 압록강을 건느신다. 항일투쟁의 초창기에 김일성주석은 김혁, 차광수 같은 천금을 주고도 살수 없는 귀중한 혁명동지를 얻으시였다. 그들을 골간으로 1930년 7월초 조선혁명군을 결성하였고 1932년 4월 25일 드디여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백전백승을 이어나갈 이북의 혁명무력의 활동은 시작되였다. 항일유격대의 앞에는 항상 탄탄대로만 있었던것은 아니였다. 백두산의 줄기줄기마다에 펼쳐져있는 밀림속의 칠흑같은 긴긴밤에 굽이쳐흐르는 압록강을 쉴새없이 넘나들며 피어린 전투를 벌려온 항일유격대!

초점잃은 눈으로 빈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몰아쉬던 우리 민족에게도 려명이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캄캄한 밤하늘에 새별이 솟아올랐고 항일의 혁명무력은 만주벌의 차디찬 눈바람을 헤쳐가며 그 세력을 끊임없이 확장해나가고있었다. 신출귀몰 김일성부대의 유격전법은 일본관동군의 간담을 서늘케 해주었으며 우리 민족에겐 말할수 없는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었다. 혁명의 승리를 확신하고있는 북조선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음악이 사람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하고 혁명과 건설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는데서 큰 역할을 하기때문에 음악작품을 창작하고 보급하는것도 하나의 정치로 보고 선군시대의 요구에 맞게 음악정치를 펴시였다고 한다.

음악을 중시하고 음악을 정치의 위력한 수단으로 하여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을 밀고나가는것이 바로 음악정치이며 음악으로 사람들의 정서생활을 풍만하게 하고 사람들의 심장을 움직여 혁명과 건설을 전진시켜나가는데 음악정치의 특성이 있다. 철의 신념과 뜨거운 인간애로 혁명을 령도하는 당만이 음악을 중시하고 음악정치를 할수 있는것이라고 한다.

커피 한잔이 생각나 동네의 빵집에 잠간 들렸을 때였다. 뒤에 앉은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뭐라고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중에 흥미있는 이야기가 귀에 번쩍 들어왔다. 이북의 김정일국방위원장과 당중앙군사위원회 김정은부위원장이 공군사령부협주단 전자악단공연관람에 참석했다는 이야기였다.

2011년 1월 한동안 당중앙군사위원회 김정은부위원장이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에 동행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그 사이 일본의 첩보위성 두대가 먹통이 되였고 미국에서 발사한 정찰위성이 추락하며 폭발하는 장면을 유튜브에서 보았다는것이다.

그러면서 왜 하필이면 공군사령부협주단 전자악단의 공연을 이때에 보러 갔겠느냐는것이다. 공군사령부협주단 전자악단은 인원도 많지 않은 보통악단인데 김정일국방위원장과 당중앙군사위원회 김정은부위원장이 동행하였다는것을 주목해야 하고 여기에는 분명히 뭔가 리유가 있었을것이라는것이다.

그럼 이번엔 전자전에서도 승리를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하는 추측을 해보았다. 또 세상이 돌아가는것을 내다보려면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무슨 공연을 보러 가는가만 눈여겨보아도 훨씬 안목이 넓어질것이라는 롱담도 류행되지 않을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공연관람은 음악정치의 일부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2011년 새해를 맞으며 당과 군대, 국가의 책임일군들과 함께 은하수관현악단의 신년경축음악회를 관람하였다는 신문보도가 있었다.

《애국가》의 주악으로 시작된 음악회무대에는 설화와 녀성2중창 《새해인사를 드리옵니다》, 혼성6중창과 합창 《변이 나는 내 나라》, 녀성독창과 합창 《나래치라 선군조선 천리마여》, 합창 《당신만 있으면 우리는 이긴다》 등 다채로운 종목들이 올랐는데 여기에 설화와 합창 《승리의 길》도 관람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신문은 이 공연을 《혁명적기백이 나래치는 공연》이라 하며 이 공연을 통하여 출연자들은 어버이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따라 강성대국의 령마루를 향하여 질풍같이 달려온 자랑찬 승리의 로정을 긍지높이 노래하였으며 새해에도 조선은 결심하면 한다는 필승불패의 신념과 의지를 안고 다시한번 대비약을 일으킴으로써 륭성번영의 일대 전성기를 펼쳐갈 군대와 인민의 철석같은 신념과 의지를 잘 보여주었다고 하였다.

위대한 변혁이 눈앞에 펼쳐지고있는 력사적시기에 혁명의 총진군에 련속적인 박차를 가함으로써 2011년을 조국청사에 영원히 아로새겨질 승리의 해로 빛내자고 하였다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담화를 신문은 전하였다.

가요 《승리의 길》은 북조선이 혁명승리를 확신하며 내놓은 노래이다. 차영도 작사에 성동민 작곡으로 되여있다.

   

   머나먼 혁명의 길에 흘린 피 붉은기에 있고

   승리의 천만리우에 영광의 자욱이 있다

   수령님 따라서 시작한 이 혁명

   기어이 장군님따라 승리떨치리

   

   우리는 자기를 믿듯 승리를 굳게 믿고 산다

   고난의 천리를 가면 행복의 만리가 온다

   수령님 따라서 시작한 이 혁명

   기어이 장군님따라 승리떨치리

   

   폭풍이 사납다 해도 이 땅에 다른 길은 없다

   백두의 붉은기높이 끝까지 가야 할 이 길

   수령님 따라서 시작한 이 혁명

   기어이 장군님따라 승리떨치리

   

이북에서는 2011년 새해초부터 가요 《승리의 길》을 큰 소리로 부르며 오늘의 대고조진군에 더욱 박차를 가하자는 구호를 높이 웨치고있다. 온 나라에 높이 울려퍼지고있는 가요 《승리의 길》은 북조선의 최후승리를 알리는 장엄한 북소리이며 승리를 앞당기기 위해 일떠나선 전민중적행진곡이라고 하였다.

노래 《승리의 길》에 담긴 심오한 혁명철학을 가슴깊이 새기고 이북의 근로대중들은 김일성주석의 강성국가건설유훈을 실현하기 위하여 내세운 목표를 기어코 달성하고 영원무궁할 조국번영의 새시대를 맞이하려는 결의에 충만해있다고 전한다.

시련과 역경, 어떠한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히 맞받아나가 기어이 승리하는것이 이북근로대중들의 영웅적인 투쟁기질이며 끝까지 가야 할 혁명의 길에 영원히 백승을 아로새길 투지와 용맹을 안겨주는 노래 《승리의 길》은 값높은 삶과 투쟁의 진리를 가슴속에 새겨주는 신념의 노래이다.

근로대중들은 이 노래에 새겨있는 투쟁정신으로 어떠한 역경과 난관이 막아선대도 정면돌파할 기상으로 충천해 있다.

이북에서 《승리의 길》노래는 자기의 힘을 굳게 믿고 힘차게 일떠서 희망찬 미래를 앞당겨가려는 근로대중들의 락관주의정신을 그대로 담고있는 노래이다.

이북민중들은 승리는 그것을 믿는자에게 있고 영광은 원대한 포부를 안고 투쟁하는 근로대중에게 있다는 진리를 긍지높게 간직하고있다.《승리의 길》노래에 대해 이북은 혁명의 최후승리를 이룩할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는 조선의 행진곡이라고 하고있으며 《승리의 길》노래를 높이 부르며 확고한 승리를 위한 부강조국건설의 전면공세, 전면돌파전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고있다.

백두에서 김일성주석이 시작한 혁명을 기어이 완성하려는것은 전체 이북근로대중들의 신념이고 의지이다.

이북의 근로대중들은 모두다 노래 《승리의 길》을 높이 부르며 강성국가건설의 속도를 최대로 앞당겨나감으로써 김일성주석의 탄생 100돐을 인류최고의 대경사로 맞이하고 주체조선의 건국리념을 따라서 새로운 승리의 100년을 긍지높이 열어나가자고 모든 건설장에서 소리높이 웨치고있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