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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인송가

 

송가는 위인을 찬양하여 인민들이 심장으로 터치는 노래이다. 인민은 심장으로 매혹되는 위인에게만 노래를 드린다. 하기에 송가를 일러 《위인을 보는 거울》, 《노래이기 전에 매혹된 넋》이라고 하는것이다.

인류사를 돌이켜볼 때 북조선인민들처럼 그처럼 많은 송가를 지어 자기 수령, 자기 령도자를 노래한 민족이나 인민은 없었다.

김일성주석께서는 10대에 벌써 캄캄한 밤하늘에 솟아 삼천리강산을 밝게도 비치는 새별이라는 위인칭송의 송가를 받으시였고 쌓으신 업적과 더불어 인민이 드리는 수많은 송가를 받으시였다.

김일성주석의 혁명위업을 그대로 계승해나가신 김정일국방위원장도 젊디젊은 년세에 노을이 피여나는 이른 아침이면 인자하신 그 미소를 생각한다는 인민의 다함없는 존경의 마음이 담긴 위인칭송의 첫 송가와 함께 조국과 겨레가 드리는 많고많은 위인칭송의 송가를 받으시였다.

업적에서 위대하고 그 덕망에서 숭고한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한평생이 반영되여있는 수많은 송가들은 민족의 태양, 절세의 애국자를 칭송하여 민족이 드리고 인류가 드린 태양찬가이다.

태양찬가!

내 일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 있다면 그 첫번째는 김일성주석님에 대한 송가를 접한것이였고 두번째 큰 행운은 새 세기의 태양찬가를 또다시 받아안은것이였다.

내가 유년시절에 받아안은 《김일성장군의 노래》도, 인생의 50대에 받아안은 《김정일장군의 노래》도 우리 민족사와 더불어 아니 전인류사에 길이 남아 세세년년 영원히 울려퍼질 태양찬가이다.

태양이 영원하듯이 태양찬가도 영원하다.

세기를 이어 부르는 태양찬가속에 겨레의 밝은 앞날, 인류의 창창한 미래가 있다.

우리 민족이 가고 인류가 가는 앞길에 태양찬가는 천만년 길이길이 높이 울려퍼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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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더불어 영생하는 김일성주석  

 

음악에 반영된 위인적풍모

 

나는 《민족통신》이 련재로 다룬 《툭하면 이북을 씹는 버릇 좀 그만두자》와 《입은 삐뚤어도 말은 바로하자》의 글들을 통해 해외의 일반동포대중들이 미국언론, 일본언론, 남녘수구언론들에 의하여 영향을 받은 나머지 이북의 사정을 너무 모른다는 내용들을 접하게 되였다. 그래서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북을 여러차례 방문하면서 그때마다 이북의 음악인들을 통하여 많은것을 배웠고 동시에 이북사회에 대한 이모저모를 리해하게 되였다. 나는 북의 음악예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북의 음악은 행진곡풍으로 박력은 있지만 경직되여있고 서정성은 없으며 사상성에만 매달려서 예술적순수함이 결여되였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선입견을 말하는 경우들을 많이 보았다.

나는 1989년 5월 뉴욕에서 《남북가곡의 밤》공연을 준비하면서 북의 노래를 찾을수가 없어서 애를 태우고있다가 우연히 링컨쎈터의 도서실에서 《봄노래》와 《산으로 바다로 가자》, 《밭갈이노래》 등 몇곡의 북조선노래를 찾아내고 혼자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었다. 곡조도 아름다웠고 가사도 이보다 순수할수가 없었다.

그 당시 이 노래를 찾아냈을 때 나의 기쁨은 《남북가곡의 밤》공연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의 열화같은 환호성속에서 증명되였다. 민중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있는 바로 이러한 곡이 명곡이라는것을.

북조선의 음악예술은 한마디로 민중을 위해서 태여나서 존재하는 친민중적예술이라고 볼수 있다. 인민을 위한 음악, 인민을 위한 예술을 떠나서 북조선의 음악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김일성주석은 이북의 음악방향에 대해 《우리의 음악은 반드시 조선적인것이 바탕으로 되여야 하며 우리 인민의 감정에 맞아야 합니다. 조선사람의 감정과는 거리가 먼 순수한 서양음악은 우리 인민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정립하시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명곡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하시였다.

《명곡이란 들을수록 좋고 새길수록 뜻이 깊어지며 부를수록 더 부르고싶은 노래입니다. 다시말하여 명곡이란 생활이 있고 사상이 깊으며 정서가 풍부한 노래, 선률이 아름답고 유순하여 들을수록 좋고 부를수록 더 부르고싶은 노래입니다.》

비록 오래전에 창작된 음악일지라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들어도 처음처럼 좋고 민중의 열렬한 사랑을 받을 때 그 음악은 마땅히 명곡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나는 1981년부터 매년 뉴욕을 중심으로 4∼5회씩 관현악공연활동을 벌려오고있는데 1989년부터는 서양음악으로부터 점차 북조선음악을 공연종목에 증가해왔다. 이것은 인위적인 조정이 아니라 청중들의 요구에 따라 그렇게 한것이다.

이북에서 민요 《아리랑》,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등으로 편곡한 관현악곡은 예술성이나 기교편성, 민족악기의 배합 등이 우수하게 구성되여있으며 꽹과리, 새납, 저대 등의 삽입으로 민족악기가 전체 관현악을 압도하고있다. 직접 연주를 할 때는 통쾌함도 맛보게 된다.

나는 우륵교향악단에서 지휘자로 활동하며 특히 《아리랑》과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등 이북 관현악을 연주하고 이 공연이 끝날 때마다 우뢰와 같은 박수가 쏟아져나오는것을 경험하며 우리 악단의 연주성과만이 아님을 잘 알고있다. 다른 세계명곡의 연주가 아무리 잘되였다고 해도 이러한 청중들의 열광은 경험해본적이 없기때문이다.

이러한 감동에는 민족과 민족의 구별이 없다. 우리 동포나 미국인이나 어떤 다른 민족에게도 감격과 열광은 하나이다. 열광하는 청중들의 가슴속에 오래오래 남아있을 그 감동을 지금도 나는 추억하고있다.

세계의 적지 않은 음악예술인들도 처음에는 북조선의 음악예술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있었지만 막상 북조선을 방문한 다음에는 북의 음악예술을 다시 평가한다. 뉴욕필하모니 연주가들이 력사적인 평양공연을 하고 북의 음악예술인들의 련습모습을 보고 또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나서는 북조선의 음악예술수준이 대단히 높다고 말하였듯이 이북의 음악예술수준은 실제로 대단히 높은것으로 인정되고있다. 특히 이북은 민족음악발전에서도 놀랄만 한 성과를 보여주고있다.

나는 오늘날 이북이 예술강국으로서도 세계에 우뚝 설수 있은 원동력은 이북의 지도자들이 펼쳐온 옳바른 예술정책에서 비롯되였다고 생각한다.

1995년 8월 15일 조국해방 50돐 경축행사에 참가하기 위하여 조국을 방문하였을 때였다.

조국방문기간에 기록영화를 감상하게 되였는데 거기에서 김일성주석이 《사향가》를 부르는 영상을 보게 되였다.

 

내 고향을 떠나올 때 나의 어머니

문앞에서 눈물 흘리며 잘 다녀오라

하시던 말씀 아 귀에 쟁쟁해

 

우리 집에서 멀지 않게 조금 나가면

작은 시내 돌돌 흐르고 어린 동생들

뛰노는 모양 아 눈에 삼삼해

 

대동강물 아름다운 만경대의 봄

꿈결에도 잊을수 없네 그리운 산천

광복의 그날 아 돌아가리라

 

 

이 노래는 김일성주석이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로서 북에서는 불후의 고전적명작으로 숭엄하고도 친근하게 대하고있다.

원래 노래는 가사를 통해 사상과 감정 등을 소상히 느낄수 있게 되며 노래가락속에서 훈훈한 정서와 그 인간적풍모를 느낄수 있다.

노래 《사향가》에는 부모님께 드리는 효성, 형제들에 대한 사랑, 나라에 대한 절절한 애국심이 어려있고 곡전체에 흐르는 너그러움과 자애로움은 그분의 위인적풍모를 흠뻑 느끼게 한다. 노래에서 풍기는 조국에 대한 사랑, 인민에 대한 사랑, 가정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가슴에 뜨겁게 다가와 인민을 하늘처럼 받드셨다는 그분의 이민위천의 좌우명이 선명하게 부각되여온다. 소박한 노래의 소재에서 주는 감동이 이처럼 컸던것은 노래에 그분의 위대한 인간애와 심오한 철학적사상이 깃들어있기때문일것이다.

《사향가》는 단순한 음악작품이 아니라 자기 민족, 자기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인민의 생활감정을 체현한 인민의 수령만이 창작할수 있는 인민송가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김일성주석이 직접 지으신 노래는 《사향가》외에 《조선의 노래》, 《피바다가》, 《꽃파는 처녀》, 《반일전가》, 《조국광복회10대강령가》, 《조선인민혁명군》 등이 있다.

《피바다가》는 후에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세심한 지도밑에 교향곡 《피바다》, 협주곡 《피바다》 등 여러 형태로 창작되여 인민을 교양하고 나라를 지키려면 어떠한 품성을 지녀야 하는가를 명확하게 제시해주었다.

우리 민족과 세계의 진보적인민들은 오늘도 김일성주석이 초기혁명활동시기에 친히 불후의 고전적명작 《꽃파는 처녀》를 창작하시던 력사의 그날을 되돌아보면서 끝없는 민족애와 위대한 애국심으로 인민대중을 이끌어갔던 그분의 위인적천품을 다시한번 우러러보게 된다.

김일성주석은 중국 만주일대의 광활한 농촌지역을 혁명화하고 반일의 기치아래 인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여 항일혁명투쟁의 대중적지반을 튼튼히 다져나가면서 근로대중들을 혁명적으로 각성시키기 위한 정치사업의 하나로 혁명적문예활동을 활발하게 벌려나갔다.

그분이 친히 지으신 고전적명작들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신음하는 동포들에게 조국해방의 신심을 주고 나라찾는 싸움에로 불러일으키는데서 참으로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압록강의 노래》는 김일성주석이 열네살 어린 나이에 고향 만경대를 떠나 나라를 찾고서야 조국에 돌아오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다짐하면서 압록강을 건느실 때 부르신 노래이다.

김일성주석께서는 노래로 혁명활동을 시작하시였으며 그로 하여 피바다속에서 조선의 참다운 예술은 태동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과연 그 나이에 어데서 무엇을 하였던가를 생각해보며 그분이 얼마나 우리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신가를 절실히 알게 되였다.

그러면 이렇게 위대한 수령을 모신 인민들은 수령을 위해 무슨 심정을 노래하였는가가 아주 흥미롭고 당장이라도 수령에게로 향한 인민들의 간절한 마음을 알아보고싶은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였다.

인민을 하늘처럼 받들었던 그 인민의 위대한 어버이 김일성주석을 조국의 인민들은 물론이고 해외동포들도 민족의 친근한 어버이이시며 태양이라고 부른다. 그 태양을 우러르며 따르는 해내외의 7천만 우리 민족을 자랑스러운 김일성민족이라고 부른다.

김일성주석의 위인적풍모를 노래한 《조선의 별》에는 망국의 암흑속에서 참다운 령도자(구세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조선인민들의 마음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그려져있다.

김일성주석께서는 혁명의 길에 나서신 10대의 나이에 《조선의 별》이라는 송가를 받으신다. 혁명시인 김혁이 지은 노래이다.

조선의 밤하늘에 새별이 솟아/ 삼천리강산을 밝게도 비치네/

그이의 가까운 혁명동지들이 새별을 먼저 알아보고 암흑속에서 태양을 맞이하는 벅찬 심정으로 조국해방을 안아올 그분을 바라보며 희망을 노래하였다.

류행가에도 시대상이 깃들어있고 민족의 애환이 아롱져있다고 말들을 하는데 하물며 일제식민지하에서 민족의 운명을 건져줄 구세주를 기다리는 인민들이 그분께 드리는 송가에는 얼마나 절절한 마음들이 깃들어있겠는가.

절망과 고통으로 신음하던 때 그렇게 갈망하던 조선의 밤하늘에 새별이 솟아오른것이다.

그 새별은 다름아닌 한별! 김성주이시다.

조선의 독립을 고대하던 인민들은 세차게 박동치는 심장의 격정을 억누르며 목이 터지게 이 노래를 불렀을것이다.

그 노래속에 조국해방이 왔고 해방의 만세소리 높이 울리는 속에 그이께서는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받으신다. 노래에는 항일투쟁의 간고한 력사가 피눈물처럼 어려있다.

시인 리찬은 조국해방의 감격과 노예처럼 갈 곳 몰라 방황하던 근로대중에게 김일성장군이 해방의 은인으로 오셨다는 소식을 한시라도 빨리 큰소리로 전하고싶어 민주의 새 조선에 민족의 위대한 태양을 모신 긍지를 거창한 시대적화폭에 담아 작사하였고 김원균은 이러한 인민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 영생불멸의 혁명송가를 작곡하였다. 오늘도 이 노래는 우리들의 가슴을 깊은 감동속에 설레이게 하여주고있다.

영상자료들을 보면 김일성주석이 한평생 인민을 위해 험한 길을 수많이 걸으시였다는것을 알게 된다.

나라의 최고지도자의 지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통일군들보다 몇배나 현장에 나가계시며 진척되여가는 공사현장들을 몸소 돌아보시는가 하면 근로자와 친근한 대화를 나누시면서 환하게 웃으며 만족해하시는 그분의 영상을 볼 때면 인민들의 행복한 일상생활을 직접 보는듯 하다.

어린이들을 누구보다도 사랑하신 주석님께서 어느 화창한 봄날 어느 한 학교를 방문하시여 어린아이들의 교복입은 모습을 보아주시며 사진을 찍어주시는 인자한 모습, 어느 평범한 가정을 찾으시여 살림살이형편을 몸소 살펴보시는 친근한 어버이의 모습, 그 모습에서 인민들을 잘 먹이고 좋은 집에서 살게 하며 비단옷을 입히고싶어하셨다는 주석님의 념원이 방불히 안겨온다. 그 념원이 선군시대에 들어와 여기저기에 아름답게 꽃펴나고있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일찍부터 김일성주석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김일성대원수님 고맙습니다

 

꽃봉오리 방실 피여나라고

따사로운 품속에 안아주시는

김일성대원수님 고맙습니다

김일성대원수님 고맙습니다

    

제일 좋은 고운 옷 비닐꽃신도

우리에게 선참으로 안겨주시는

김일성대원수님 고맙습니다

김일성대원수님 고맙습니다

 

어린 동무 모두모두 보살피시며

산골마을 유치원도 찾아주시는

김일성대원수님 고맙습니다

김일성대원수님 고맙습니다

 

어른들만이 아니라 아이들도 김일성주석의 사랑과 은덕을 노래에 담아 부른것이다. 참으로 주석님의 한평생은 인민에 대한

사랑으로 일관된 한평생이라 할수 있다.

조선예술영화 《조선의 별》에는 김일성주석이 초기혁명활동시기에 동지를 찾아 수백리길을 걸으신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의 주제가 《동지애의 노래》는 한사람의 동지를 얻기 위해 그분께서 얼마나 험한 길을 걸으셨는가에 대해서와 한명한명의 동지는 천금을 주고도 살수 없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일깨워주고있다.

1993년 3월 11일 재미교포들을 접견해주신 자리에서 김일성주석은 선생들이 내가 쓴 회고록을 읽고 혁명동지들에 대한 나의 의리심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하는데 나는 조국의 광복과 사회주의위업을 위하여 싸우다가 희생된 동지들을 잊을수 없다고 하시였다.

북에서는 항일혁명투쟁과 조국해방전쟁시기에 희생된 전사들과 혁명동지의 자녀들을 친부모처럼 끝까지 맡아키워서 항차 그들이 국가의 중요한 위치에서 일하며 조국에 충정을 바쳐가게 하고있다고 한다. 조국과 인민을 위한 성스러운 위업에 한목숨 다 바친 영웅들과 혁명전사들에 대한 주석님의 숭고한 사랑과 동지적의리는 참으로 뜨겁고 열렬한것이다.

사랑의 정치철학과 단결의 실천방법을 지니신 위대한 김일성주석은 재미교포들을 접견한 자리에서 우리 조국을 통일하기 위하여서는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여야 한다고,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여 조국을 통일하는것이 나의 희망이라고, 나는 나라가 분렬된 첫날부터 민족대단결을 조국통일의 중요원칙으로 내세우고 그 실현을 위하여 꾸준히 투쟁하여왔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은 한평생을 조국과 인민을 위해 바치시였다.

김일성주석은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여 전체 인민들이 자기 운명을 자기스스로 개척해나갈수 있는 력사의 새시대를 열어놓으시고 독창적인 선군혁명의 길을 개척하시여 한세기에 미, 일 두 제국주의를 타승하신 민족의 은인이시고 위대한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시다.

오늘날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조선이 미국, 일본의 책동에 맞서는 첨예한 대결전에서 걸음마다 승리를 이룩하는 통쾌한 모습을 보고 부러움을 금치 못하고있다고 한다.

주석님은 인민의 위대한 스승이시며 정치, 사상, 군사강국을 만들어 나라에 백년대계의 확고한 기틀을 세우시고 인민의 존엄을 최고의 지위에 올려놓으신 민족의 위대한 은인이시다.

만방에 빛을 뿌리는 위대한 나라를 창건하신 주석님께서는 오늘도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며 세계인민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되고있다.

 

    한평생 인민위해 바친

    수령님의 위대한 사랑

    꿈결에도 안고 사는 마음

    오늘도 그 품을 찾네

    위대하신 수령님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네

 

이렇게 인민의 절절한 마음이 담긴 수많은 송가들은 그야말로 심장에서 나오는 노래이며 이 위인칭송의 노래를 사람들은 태양찬가라고 하며 자랑스럽게 부른다.

인민의 심장속에 깊이 뿌리내린 이 노래들과 더불어 김일성주석은 영원히 인민과 온 겨레와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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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은금에 자원도 가득한

삼천리 아름다운 내 조국 반만년 오랜 력사에

찬란한 문화로 자라난 슬기론 인민의 이 영광

몸과 맘 다 바쳐 이 조선 길이 받드세

찬란한 문화로 자라난 슬기론 인민의 이 영광

몸과 맘 다 바쳐 이 조선 길이 받드세

 

백두산기상을 다 안고 근로의 정신은 깃들어

진리로 뭉쳐진 억센 뜻 온 세계 앞서 나가리

솟는 힘 노도도 내밀어 인민의 뜻으로 선 나라

한없이 부강하는 이 조선 길이 빛내세

솟는 힘 노도도 내밀어 인민의 뜻으로 선 나라

한없이 부강하는 이 조선 길이 빛내세

 

 

나에게는 조선의 《애국가》의 가사를 읽어볼 때나 장엄하게 울리는 선률을 들어볼 때나 강하게 느껴지는 감동이 있다. 나라를 이끄는 령도자의 조국만년을 내다보는 원대한 포부와 장엄한 기상이 노래전체에 용솟음치고있으며 드높은 민족의 존엄과 영예가 가슴뿌듯이 안겨오는것이다.

조국과 민족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감정을 승화시켜주고 인민들에게 자기의 력사와 문화에 대한 높은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는 노래 《애국가》.

슬기로운 인민들이 신성한 로동으로 이루어낸 화목한 사회, 일심단결을 승리의 보검으로 틀어쥐고 굳게 뭉쳐 일떠선 인민의 뜻으로 세워진 나라라는 자부심, 마음만 먹으면 못해낼것이 없다는 신념과 어떤 일이 있다 해도 강성국가건설, 자주적통일을 자기 힘으로 이루어내고야말겠다는 결심이 이 노래속에 기운차게 나타나고있다.

내 나라 푸른 하늘아래의 한줌의 흙도 소중하게 여기는 이 노래는 길가에 피여있는 들국화처럼 소박하고 순수하다. 북조선의 민중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야말로 민중들의 의사와 힘을 하늘같이 믿고 일떠선 나라라고 힘차게 웨치고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애국가》가사는 시인 박세영이 썼다. 곡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작곡한 김원균이 1947년에 창작하였다. 《애국가》의 가사는 1절과 2절로 되여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헌법에는 《애국가》를 국가로 규정하고있다.

1946년 9월초 어느날 김일성주석께서는 한 일군에게 애국가창작을 조직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으며 9월 27일에는 창작가들을 부르시여 애국가창작의 방향과 실천상에서 제기되는 문제와 구체적인 해결방도들까지 자세히 설명해주시였다.

9월 27일 김일성주석은 몇몇 작가들에게 지금 인민들은 해방된 조국땅에서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 된 기쁨과 감격을 목청껏 노래하고싶어하며 애국가를 요구하고있다고, 이것은 우리 당의 령도밑에 새 생활을 창조하기 시작한 우리 인민의 마땅한 요구이라고, 그런데 인민들의 이처럼 절절한 심정과 요구를 충족시켜줄 애국가가 아직 없다고, 우리는 하루빨리 애국가를 창작하여야 하겠다고 간곡하게 당부하시였다.

그리고 애국가창작에는 모든 작가들과 작곡가들이 참가하여야 하며 작가나 작곡가가 아니라도 창작하고싶은 사람은 누구나 다 참가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애국가에 담아야 할 사항에 대하여 이렇게 밝히시였다.

《우리 나라는 참으로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세 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있고 산들은 기세차고 장엄하며 전원에는 오곡백과가 무르익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지하자원, 금은보화도 무진장합니다.

우리 인민은 반만년의 오랜 력사를 가진 인민이며 찬란한 문화를 가진 슬기로운 인민입니다. 우리 인민은 경주의 첨성대, 금속활자의 발명, 아름다운 미술로 일찍부터 세계에 명성을 떨쳤습니다. 또한 우리 나라는 아름다운 선률로 가득찬 음악의 나라입니다. 우리 나라의 과학과 문화예술은 이처럼 자랑찬 력사를 가지고있습니다.

우리 인민은 먼 옛날부터 외적을 물리치고 우리 강산을 피로써 지켰으며 특히 항일유격대원들은 일제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손에 무장을 들고 15성상 영웅적으로 싸웠습니다. 착취와 억압에서 해방된 우리 나라의 근로인민들은 오늘 자기 손에 정권을 튼튼히 틀어쥐고 부강한 새 조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고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조국과 슬기로운 투쟁전통을 가진 조선인민의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노래에 담아야 합니다. 인민들이 이런 노래를 부르면 자기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더욱 솟아날것입니다.》

《애국가》가 창작되여 선포될 때까지 있었던 일들에 대하여 《애국가》를 작곡한 김원균은 이렇게 회상하였다.

《수령님의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받으면서 나는 진정 수령님이시야말로 인민들의 사상감정과 념원을 한몸에 체현하고계실뿐아니라 그이는 누구보다도 가장 철저하시고 가장 열렬하신 절세의 애국자이시라는것을 더더욱 절감하게 되였다.》

1947년 5월 초순 박세영의 시가 애국가의 가사로 채택된 뒤 여러 작품들중에서 선발된 두편의 창작곡이 최종심사를 받기 위한 애국가후보작품으로 등록되였다.

1947년 6월 어느날 김일성주석이 참석한 가운데 드디여 여러번의 심사를 거쳐 선정된 두편의 애국가후보작품에 대한 시청회가 열리였다.

공정한 심사를 위하여 작곡가의 이름을 표시하지 않고 번호로 표시해 인연이나 안면 등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였다.

력사적인 시청회장에는 새로 탄생할 《애국가》를 감상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날은 날씨가 몹시 무더웠는데도 불구하고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시청회장에 들어서시는 김일성주석을 뵈온 김원균은 너무나 감격하여 눈물이 줄줄 흘러내려 어찌할줄을 몰랐다고 한다.

김일성장군의 노래》창작에 대한 인민들의 열렬한 지향을 간곡히 막으시였으며 노래가 창작된 다음에도 그 보급에 대하여 굳이 사양하시던 김일성주석이 이번에는 친근하게 창작지침도 주시고 몸소 시청회에까지 참석해주시니 어찌 감동이 크지 않았겠는가.

날씨가 너무 무더워 한 일군이 선풍기를 그이옆에 가져다 설치하려고 하자 김일성주석은 선풍기를 회의장가운데 놓고 모두에게 바람이 골고루 가도록 하라고 이르시였다. 시원한 바람을 일구며 돌아가는 선풍기를 한동안 바라보시던 김일성주석은 오늘 날씨는 몹시 무덥다고, 그렇지만 인민들이 그처럼 기다리는 《애국가》가 나오게 되였으니 얼마나 기쁜가고 하시면서 좀 덥기는 하겠지만 새로 나온 《애국가》를 위하여 선풍기를 좀 끄는것이 어떻겠는가고, 얼마나 힘을 들여 만들어낸 열매인가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창작가들이 내놓은 작품을 이처럼 귀중히 대해주시는 김일성주석의 은정이 예술인들의 마음을 감동케 하였고 시청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도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시청회참가자들모두가 그분을 우러러보았다.

가사를 쓴 시인도 노래를 부를 합창단성원들도 선풍기소리가 《애국가》를 감상하는데 방해가 된다는것에 대하여 미처 주의를 돌리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 이윽고 피아노반주가 흘러나오고 합창단의 노래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마음은 설레이고 심장은 세차게 뛰기 시작하였다. 장중한 선률이 울려퍼지자 모두들 엄숙한 마음으로 듣고있었다.

노래를 주의깊게 들으신 김일성주석은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다가 두 노래를 다시금 차례로 부르게 하시였다.

이윽고 노래가 끝나자 김일성주석은 매우 만족하신 어조로 두곡이 다 좋다고 높이 평가하시면서 곡의 선률이 장중한 맛이 있고 무게가 있는 첫번째 노래를 《애국가》로 정해주시였으며 두번째 노래는 제목만 바꾸어 그대로 부르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김일성주석이 《애국가》의 탄생을 선포하는 그 력사적인 순간 장내에서는 폭풍같은 박수와 환호가 터져올랐다. 시청회참가자들은 모두가 김일성주석을 우러러보며 음악예술에 대한 그분의 천품앞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그때 그분은 가사 한구절한구절을 짚어가시며 세심한 지도를 주시였다. 그리고 《찬란한 문화로 자라난》이란 시행부터 그아래는 반복하는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우리 나라는 찬란한 문화로 자라난 유구한 력사를 가진 나라인데 그 좋은 대목을 어떻게 한번만 부를수 있겠습니까. 그 대목을 한번만 부르면 너무 단조로울것 같습니다. 노래의 이 부분을 다시한번 반복하여 부르면 선률적효과로 보아도 좋고 음악상조화도 잘될뿐아니라 노래가 한결 장중해지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에게 민족적긍지감과 자부심을 더욱 북돋아줄것입니다. 인민들이 이 노래를 부르느라면 자기 조국에 대한 사랑이 더욱 솟구쳐오를것입니다.》라고 하시였다.

김일성주석의 이러한 지적과 가르치심은 참으로 비범하고 천재적인것이였다. 《애국가》를 작사한 사람이나 작곡한 사람 그리고 시청회에 참석한 사람들중 누구도 그 생각을 하지 못하였던것이다.

이날 연주된 첫번째 노래가 김원균 작곡 《애국가》이고 두번째 곡은 오늘날 제목을 바꾸어 부르고있는 리면상 작곡 《빛나는 조국》이다. 글줄마다에 스며있는 가사의 의미를 되새겨볼수록 절세의 위인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사상을 알게 되고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선률의 진한 감동은 삼천리 내 조국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뜨겁게 느끼게 한다. 《애국가》를 듣는 사람들은 그가 누구이든지 나라를 위해 한몸바쳐 나가겠다는 각오를 가지게 될것이다.

지난날 이북의 인민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에서 나라를 지켜냈으며 태양의 위업을 받들어 주체의 사회주의락원을 건설하였다. 오늘도 이북은 이 노래를 부르며 정치강국, 사상강국, 군사강국, 예술강국을 건설하고있으며 또 나라를 과학기술강국의 궤도우에 올려놓고있다. 이 시각도 경제강국건설의 힘찬 노래소리가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울리고있다.

이처럼 김일성주석의 숭고한 뜻이 어려있고 조국건설의 웅대한 구상이 아로새겨져있는 《애국가》는 주체조선에 찬란한 빛을 더해주며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세계만방에 끝없이 울려퍼질것이다.

3

 

가요 《빛나는 조국》 

 

김일성주석이 애국가를 만들어야 하는 리유를 설명하면서 그 필요성을 절절하게 호소하실 때 그분은 30대 초반의 청년이시였다.

김일성주석은 항일무장투쟁의 전쟁터에서 일제와의 치렬한 싸움을 승리로 장식하고 개선하시였다. 그런데 어떻게 하여 인민의 심정을 그리도 속속들이 잘 파악할수 있었는지, 어떻게 하여 전쟁터에서 군대를 지휘하던 사령관이 음악예술의 깊은 곳까지 관심과 조예가 깊을수 있었는지 생각이 깊어질수록 음악인으로서 그분의 위인상과 인간상에 흠뻑 빠져들게 되였다.

세계 어느 나라의 국가수반이 자기 나라의 인민을 그렇게까지 소중하게 대하였던가! 이러한 위대한 령수를 모셨던 이북민중의 자부심과 흠모심, 어버이라 우러르는 김일성주석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은 어떠했던가!

이북의 민중들은 위대한 수령을 모셨던 영광의 그 시절을 잊지 못하고있으며 강성국가건설의 오늘을 살면서, 일터마다에서 승리의 찬란한 래일을 맞이하려 분투하면서 무한한 긍지를 노래한다.

김일성주석은 애국가창작방향을 이렇게 주시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조국과 슬기로운 투쟁전통을 가진 조선인민의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노래에 담아야 합니다. 인민들이 이런 노래를 부르면 자기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더욱 솟아날것입니다. …

애국가는 새 조국창건에 일떠선 우리 인민들을 우리 당과 인민정권의 두리에 단결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할것이며 그들을 보다 큰 투쟁과 승리에로 불러일으킬것입니다.》

이북에서는 1947년 애국가를 제정하기 위하여 여러편의 창작품들을 응모하였다. 그중에서 최종심사에 올라온 두편의 노래가 있었는데 그 한편의 창작곡은 인민예술가 김원균의 《애국가》이고 애국가로 채택되지 못한(준우승) 다른 창작품은 바로 인민예술가 리면상이 작곡한 《빛나는 조국》이다.

가요 《빛나는 조국》의 가사도 《애국가》를 쓴 박세영이 쓴것이다. 이 곡은 선률이 아름답고 그 짜임새에 있어서 빈틈이 없는 명곡으로 평가되고있는데 애국가를 뽑는 최종 시청회석상에서 김일성주석은 두곡이 다 좋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이 곡은 《애국가》란 이름이 아닌 다른 제목으로 바꾸어 그대로 부르는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시였다.

그뒤로 가요 《빛나는 조국》은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이나 국가의 중요한 행사에서 귀중하고도 빈번하게 연주되고있으며 《애국가》에 버금가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있고 북조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노래로 알려져있다.

 

    반만년 오랜 력사 문화도 빛나고

    수령님 혁명정신 하늘땅에 넘친다

    창조와 로력으로 피끓는 인민들아

    찬란한 인민조국 길이길이 받드세

    조선아 조선아 영원무궁 만만세

    

    삼천리금수강산 자원도 넘치고

    건설로 불타는 뜻 온 세상에 떨친다

    자유와 행복으로 나래편 인민들아

    부강한 민주조선 길이길이 빛내세

    조선아 조선아 영원무궁 만만세

 

 항일무장투쟁의 승리로 빛나는 조국

 

김일성주석은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인민대중의 리상과 념원이 실현된 새 세상을 세울 큰뜻을 품고 혁명의 길에 나서시여 압록강을 건느신다.

1925년부터 시작한 항일혁명투쟁의 초기에 김일성주석은 최창걸, 차광수, 김혁과 같은 귀중한 혁명동지들을 하나하나 찾아내고 묶어세워 조국의 해방을 위한 항일무장세력을 형성한다.

1926년 10월 17일, 조선로동당의 력사적뿌리인 타도제국주의동맹이 결성되였는데 타도제국주의동맹조직은 점차 세력이 발전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을 출현시키는 토대를 닦아놓았다. 타도제국주의동맹은 략칭으로 《ㅌ.ㄷ》라고 하며 우리 식으로 《트.드》로 발음한다.

김일성주석은 1930년 6월 카륜에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지도간부회의를 소집하고 주체사상의 원리와 혁명투쟁에서 견지해야 할 원칙과 립장을 발표하시였는데 조선혁명의 성격과 임무, 일제와의 무장투쟁로선과 반일민족통일전선로선, 혁명적당창건로선에 이르기까지 회의에서 밝혀진 모든것은 주석님의 확고한 자주정신에서 나온 혁명로선이였다. 

김일성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나는 투쟁의 나날에 심어지고 옥중에서 무르익힌 그 사상과 립장을 〈조선혁명의 진로〉라는 이름으로 발표하였을뿐이다. 그것이 곧 우리 혁명의 로선으로 되고 지도사상으로 되였다.》

김일성주석은 1932년 4월 25일 상비적혁명무력으로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였고 이를 중심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점차 체계적인 군사활동으로 전개하여나갔으며 종국에 가서는 기필코 항일무장투쟁의 승리를 이루어내시였다.

 

 세계적인 강국건설을 지향해온 조국

 

조선은 100여년전만 해도 외세에 땅과 국호는 물론 언어와 사람들의 성마저 빼앗기고 살아야 했던 작고 불우한 나라였다. 그러나 오늘의 북조선은 세계에 정치사상강국으로, 군사강국으로, 첨단과학기술강국으로 그리고 문화예술강국으로 그 빛을 찬란하게 뿌리는 주체의 조국이다. 

김일성주석은 토지개혁, 문맹퇴치 등 근로대중의 기본적인 삶으로부터 교육, 의료, 의식주의 모든 분야에서 민중의 복지를 체계적으로 완성해놓았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자주적인 나라로 출발한 북조선을 누구도 건드릴수 없는 자주강국의 지위에 확고히 올려세워놓았으며 오늘은 위성제작 및 발사까지 포함한 첨단과학기술을 개척한 세계적인 강대국수준의 대렬에 당당히 올라서게 하시였다.

김일성주석은 일찌기 21세기는 김정일세기로 빛을 뿌릴것이라고 천리혜안의 천재적예언과 확신을 표명하시였다. 그것이 눈부신 현실로 완벽하게 증명될줄을 누가 알았으랴.

지금 북조선은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고 세계는 경탄을 자아내며 조선을 쳐다보고있다.

김일성주석이 새 세기를 축복하는 위대한 예언을 하시였다면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강성국가건설의 승리로 휘황찬란할 북조선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이렇게 선언하시였다.

《분발하고 또 분발하여 위대한 당, 김일성조선을 세계가 우러러보게 하라!》

 

 사회주의인민정부수립으로 빛나는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창건될 그때 남과 북, 해외의 온 겨레는 해방된 삼천리반도에 지난날 억압받고 착취받던 근로대중이 주인이 되는 참다운 인민의 나라가 건설되는것을 보며 무한한 감동으로 경축하였으며 김일성주석의 참신한 건국업적을 열렬히 축하하였다.

당시 남쪽에서 1948년 미제국주의세력을 등에 업은 리승만이 반동세력을 규합하여 단독《정부》를 선포하고 왜놈들편에 붙어서 우리 민족에게 갖은 억압을 가하며 못살게 굴었던 가증스런 친일파족속들을 속속 등용하고있는 꼴을 보는 근로대중의 실망과 우려는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때문에 이북에서 참신한 민주정권이 수립된다는 소식은 북과 남, 해외의 근로대중에게 말할수 없는 큰 충격파를 던져주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이북력사의 모든것을 론할 때 김일성주석을 빼놓고는 아무 이야기도 할수 없다고 강조하면서 김일성주석은 우리 겨레가 수천년력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위대한 수령이시며 나라의 창건자,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시라는 사실을 엄숙히 선언하시였다.

김일성주석이 1948년 9월 9일 항일의 불길속에서 마련된 정권수립의 경험과 전통에 기초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한것은 주체사상, 선군사상에 기초한 사회주의국가건설의 새 기원을 열어놓은 력사적사변이였으며 우리 민족의 정치와 경제, 문화와 사회제도에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온 일대 경사로 기록되고있다.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에 립각해서 근로대중을 이끌어가고있는 북조선에서는 건국초기부터 자주의 홰불이 활활 타올랐으며 조선은 그 어떤 외세나 티끌만 한 반민족적요소들까지도 모두 청산하여 해내외 우리 동포대중들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받는 위대한 태양의 나라로 찬란한 빛을 뿌리고있다.

 

 한세기에 두 제국주의를 물리친 빛나는 조국

 

1953년 7월 27일은 북조선이 침략군우두머리인 미국과 판문점 정전협정조인장에 마주앉아서 협정문에 서명한 날이다.

이남과 미국에 추종한 15개 국가는 이 협정체결조인식장에 나타날수 없었다.

이북에서는 6.25전쟁을 조국해방전쟁으로, 1953년 7월 27일을 전승의 날로 부르지만 이남에서는 《휴전협정일 혹은 정전협정일》로 하고있다.

이북에서는 이날을 전승기념일이라 부르며 크게 기념하고있다.

이 한가지 사건을 어떻게 부르는가 하는 문제에서만도 자주성과 사대종속성으로 북과 남의 정체성은 확연히 다르게 구분되고있다. 김일성주석은 선군의 기치를 높이 들고 항일무장투쟁에서 일제를 타도하고 조국해방위업을 이룩하시였고 조국해방전쟁에서 침략자 미제국주의를 제압하고 력사적인 승리를 쟁취하시였다.

7.27전승기념일을 반미결사전에서 승리한 북조선의 위상을 세계에 높이 떨친 제2해방의 날이라고 력사는 정의하고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는 두차례의 제국주의와의 전쟁에서의 승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시였다.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시며 위대한 군사전략가이신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군사분야에서 사대주의와 교조주의를 단호히 배격하시고 항일혁명투쟁의 고귀한 경험을 현대전의 특성에 맞게 창조적으로 계승발전시키시여 독창적인 전쟁리론과 전법들을 창조하시였으며 령활무쌍한 령군술로써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의 한길로 이끄시였습니다.》

100여차례의 해외침략력사를 자랑하는 미제는 자기들의 륙해공군무력의 많은 부분과 15개 추종국가군대, 남조선괴뢰군을 포함한 200여만의 대병력과 막대한 전쟁수단과 군수물자를 조선전쟁에 투입하여 공화국전역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과 포격을 감행하고 세균무기까지 전쟁에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북의 군대와 인민들은 김일성주석의 두리에 뭉쳐 사활을 건 투쟁을 벌림으로써 미국에게 만회할수 없는 치명적타격을 주었고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탁월한 전략전술과 주체전법들을 조국해방전쟁에 적용하여 대승리를 거둠으로써 력사상 처음으로 세계《최강》이라는 미국의 거만한 코대를 여지없이 짓뭉개버리였다.

조선에서의 전쟁의 시작과 진행과정을 지켜본 세계 진보적인민들은 인류해방위업에 불멸의 공헌을 하신 김일성주석을 《인류해방의 구성》, 《세계혁명의 위대한 령도자》, 《반제투쟁의 승리의 상징》으로 높이 존경하였다.

 

 항일의 혁명전통을 계승한 빛나는 조국

 

김정일국방위원장의 고전적로작 《혁명선배를 존대하는것은 혁명가들의 숭고한 도덕의리이다》에서는 우리 인민은 앞선 세대 혁명가들을 혁명선배로 존대하며 그들의 혁명정신과 투쟁업적을 더없이 귀중히 여기고있으며 선배들이 개척한 혁명위업을 충실히 계승발전시켜나가고있다고, 이것은 우리 인민이 대를 이어 빛내여나가는 숭고한 도덕의리이며 우리 혁명이 복잡한 환경속에서도 끄떡없이 승승장구하고있는 근본요인의 하나라고 지적하고있다.

세계사회주의운동의 력사는 혁명선배들을 존대하고 그들이 이룩한 혁명업적을 고수하고 발전시켜나갈 때 혁명이 승리적으로 전진하게 되며 혁명선배들을 무시하고 그들의 업적을 부정할 때에는 결국 나라가 망하게 된다는 심각한 교훈을 동유럽과 이전 쏘련 등 여러 나라에서 보여주었다.

그래서 이북에서는 청소년들에게 혁명의 1세, 2세들이 항일혁명투쟁시기와 조국해방전쟁시기,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의 어려운 시기에 난국을 뚫고 어떻게 살며 투쟁하였는가 하는것을 똑바로 가르치려는 교육을 장려하고있으며 모든 청소년들이 혁명의 1세, 2세들이 지녔던 투쟁정신을 적극 따라배우도록 하고있다.

이러한 혁명전통은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자인 당중앙군사위원회 김정은부위원장에 의하여 대를 이어가며 앞으로도 빛나게 계승될것이다.

 

 자주의 기치를 높이 든 빛나는 조국

 

나라와 혁명앞에 가장 엄혹한 시련이 닥쳐왔던 고난의 행군시기에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튼튼한 국방력만이 김일성주석께서 개척하시고 승리적으로 이끌어오신 주체의 혁명위업을 지켜내고 완성해나갈수 있다는 진리를 꿰뚫어보시고 선군정치를 사회주의기본정치방식으로 내세우고 강성국가건설을 위한 투쟁을 선군정치방식으로 이끌어나가시였다.

겨레에게 통일되고 부강번영하는 조국을 안겨주시려고 한평생을 바친 김일성주석의 국가건설업적을 이어오신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애국애족의 정신에 기초를 둔 세련된 정치예술이 있었기에 두차례의 북남수뇌상봉이 마련될수 있었고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채택할수 있었으며 온 겨레가 자주통일실현을 위한 애국운동에 적극 참가할수 있었다.

온 겨레는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우리 민족자체의 힘으로 조국통일운동을 벌려나가야 할것이다.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조선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성스러운 운동을 지속적으로 벌려야 하며 민족의 분렬을 종식시키도록 모든 힘과 지혜를 결집시켜야 할것이다. 우리 민족에게서 조국통일처럼 시급한 당면문제는 없기때문이다.

민족의 자주통일을 실현하는데서 우리 겨레가 들고나가야 할 기치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다.

온 겨레는 우리민족끼리기치를 더욱 높이 들고 자주통일의 길로 신심드높이 전진해나감으로써 조국통일의 그날을 하루빨리 앞당겨와야 할것이다.

4

 

《노래하라 만경대갈림길이여》

 

평양의 광복거리에는 만경대갈림길이 있다.

만경대를 찾는 많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신 절세의 애국자 김일성주석의 위대한 헌신의 한평생을 생각하며 숙연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민다.

그것은 이곳에 고향보다 먼저 강선의 로동계급을 찾으셨던 위인의 불멸의 발자취가 깊이 새겨져있기때문이다.

1925년 열네살의 어리신 나이에 만경대고향집사립문을 나서시여 광복의 천리길에 오르신 김일성주석은 스무해동안이나 조국해방을 위한 항일투쟁을 승리적으로 마감하고 마침내 조국에 개선하시였다.

김일성주석은 1945년 10월 9일 항일의 나날 그렇게도 잊지 못하며 그리워하던 고향집을 지척에 두고도 새 조국건설을 위해 강선으로 향하시였다.

사람들은 그날을 가리켜 김일성주석이 1945년 10월 2일 해방된 조국땅에 첫 병기공장을 건설할 터전을 잡아주신 평천리에 대한 현지지도와 함께 현지지도의 시작이라고 말하고있다.

그날의 만경대갈림길에 깃든 사연을 전해들은 온 나라의 민중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가시는 김일성주석께 고마움을 금치 못하면서 새 조국건설에 모두 떨쳐나섰다.

조선의 근로대중들은 위인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길이 전하기 위하여 이곳에 만경대갈림길혁명사적기념비 《강선으로 가시는 길에서》를 세워놓았다.

지금도 그날의 뜻깊은 사연을 노래한 가요 《노래하라 만경대갈림길이여》는 이북, 이남과 해외동포들속에서 널리 애창되고있다. 노래가사는 리종성이 쓰고 김영신이 곡을 붙였다. 창작년도는 1970년이다.

 

    광복의 피어린 길 헤쳐오시며

    스무해 긴긴 세월 못 잊던 고향집

    열려진 사립문을 지척에 보시며

    장군님 지나가신 만경대갈림길이여

    

    푸르른 백양나무 기쁨에 설레고

    늙으신 조부모님 기다리시건만

    새 조선건설의 불길을 지피시려

    장군님 고향 먼저 강선을 찾으시였네     

    …

 

 

1945년 10월 9일 강선으로 가시는 길에 김일성주석은 만경대로 갈라져 들어가는 갈림길에서 차를 세우게 하셨다. 그리고는 만경대쪽을 가리키며 동행하던 일군에게 저기가 바로 만경대라고, 좋은 곳이라고 하시며 대신 한번 들어가보라고 말씀하시였다.

순간 그 일군은 놀랍기도 하고 믿어지지 않았다. 깊은 생각에 잠기신듯 김일성주석은 20년만에 보는 고향이라고, 들어가면 늙으신 조부모님이 계실것이라고, 자신의 인사를 전해달라고, 그리고 나라가 해방되였으니 며칠있지 않아서 자신도 돌아올것이라고 알려드리라고, 또 좋은 세상이 올것이라는것도 말씀올리라고 이르시였다.

김일성주석은 잠시라도 만경대의 고향집에 들리실것을 간절히 청하는 일군에게 다음에 들리겠다고 하시면서 강선으로 가는 길을 재촉하시였다.

항일혁명투쟁시기 간고한 행군길에서나 숙영지의 우등불가에서 늘 그리워하던 고향 만경대가 지척에 있었지만 발걸음을 돌릴수밖에 없었던 그날의 주석님심중을 어찌 다 헤아려볼수 있겠는가.

김일성주석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가문이 만경대에 뿌리내리게 된 경위를 이렇게 언급하시였다.

《우리 가문은 김계상할아버지대에 살길을 찾아 전라북도 전주에서 북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만경대에 뿌리를 내린것은 증조할아버지(김응우)대부터였다. 증조할아버지는 원래 평양 중성리에서 태여나 어려서부터 농사를 지었는데 생활이 너무도 구차하여 평양에 사는 지주 리평택의 묘지를 보아주기로 하고 산당집을 한채 얻어가지고 1860년대에 만경대로 이사해왔다.》

《대대로 소작살이를 하다나니 우리 집안은 매우 어렵게 살았다. 그런데다가 3대를 두고 외독자로 내려오던 우리 가문이 할아버지(김보현)대에 와서는 아들딸 6형제를 보게 되여 열명 가까운 대식구로 불어났다.  

할아버지는 어떻게 해서나 자손들의 입에 풀칠이라도 시켜보려고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남들이 다 자는 이른새벽에도 쉬지 않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진거름을 모았다. 밤이 되면 등잔불밑에서 새끼를 꼬고 짚신을 삼고 멍석을 틀었다. 할머니(리보익)도 밤마다 물레질을 하였다.》

나는 만경대고향집을 여러번 방문하였다.

만가지 경치를 한눈에 보며 즐길수 있다는 만경대는 산천경개가 매우 아름다운 곳으로서 고향집앞에 있는 남산에 올라 대동강과 평양의 경치를 굽어보면 한폭의 그림을 감상하는것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러나 민족의 태양이 솟아오른 혁명의 요람은 너무나 소박하였다. 너무 의외여서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중국의 호남성에 있는 모택동주석의 고향집을 가보아도, 미국의 대통령들의 생가를 가보아도 이렇게 서민적이진 못했다.

세계 그 어느곳에도 만경대고향집처럼 인류의 마음의 고향이 되여 수많은 민중들의 뜨거운 마음이 쉴새없이 물결쳐오는 유서깊은 곳은 없다.

키낮은 사립문에 들어서면 어린시절 김일성주석이 광복의 천리길에 오르기 전까지 사용하였던 방이 보이고 그 건너편에 소여물 써는 작두와 옛날에 쓰던 간단한 농기구들과 할머니가 쓰시던 물레 등 가사도구들이 보존되여있는 헛간이 있다.

고향집 장독대에 놓여있는 쭈그러진 독에 깃든 사연과 주석님의 어린시절에 대한 해설강사의 설명은 우리의 마음에 절절하게 와닿았다. 인류의 태양으로 추앙받고계시는 주석님가문의 살림형편도 우리네 어제날 농촌마을의 가난한 생활형편과 하나도 다를것이 없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우리 민족이 일일천추로 학수고대하며 기다렸던 조선의 별은 이렇게 민족의 비운이 무겁게 드리워져 암울했던 그 시기에 이 유서깊은 만경대고향집에서 찬란하게 솟아올랐던것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지적대로 김일성주석은 우리 민족이 수천년력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하고 높이 모신 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시며 온 세계가 공인하는 인류의 태양이시라는 사실에 스스로 공감되였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이 고향집을 떠나 열네살 어리신 나이에 광복의 천리길에 오르시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이에 대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걸으신 광복의 천리길은 일제식민지통치의 검은구름이 덮인 조국강산에 민족재생의 서광을 비쳐준 영광의 길이였으며 인민대중의 자주위업, 주체혁명위업의 새 기원을 열어놓은 력사의 길이였습니다.》라고 그 의미를 언급하시였다.

봉건통치배들의 실정으로 나라를 빼앗기여 도탄에 빠진 겨레의 운명, 숨막히게 돌아가는 세계정세속에서 벌어지는 약육강식의 랭혹한 현실을 보면서 10대의 어린 김일성주석은 오직 투쟁을 통해서만이 우리 민족은 일제를 몰아낼수가 있고 독립된 조국에서 행복하게 살수 있다는 진리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였고 그 신념은 더욱 굳혀졌다.

김일성주석의 가슴속엔 한시바삐 조국을 되찾고 그 모든것을 영원한 우리의것, 조선의것으로 만들고싶은 념원으로 가득차있었다. 어린 김일성주석은 압록강가에서 강건너쪽 이국땅으로 선뜻 발걸음을 옮겨놓지 못하시였다. 조국을 하직하면 언제 다시 이 강을 건너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압록강을 건느려다 돌아서서 강뚝우에 나딩구는 조약돌을 하나 집어들고 손바닥에 감싸쥐였다.

조국의 표적이 될수 있고 조국을 추억할수 있게 하는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가지고 가서 소중히 간수하고싶으셨던것이다.

이렇게 기약없이 압록강을 건느시는 어리신 김일성주석의 발걸음은 얼마나 무거웠으랴.

설음과 비분에 감싸인 조국산천을 몇번이고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김일성주석은 그 누군가가 나라를 찾고서야 돌아가리라고 노래한 《압록강의 노래》를 부르며 압록강너머로 무거운 걸음을 떼시였다.

준엄한 항일의 나날 달빛이 흐르는 밀림속의 숙영지 우등불가에서 청년빨찌산대장 김일성주석은 한시도 잊을수 없는 정든 고향 만경대를 그리며 몸소 창작한 《사향가》의 선률속에 향수를 달래였고 조국을 그리워하는 대원들에게 고향의 봄에 대하여 자주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며 노래 《사향가》도 불러주시였다.

그렇게 못 잊어하며 그리워하던 고향이건만 해방의 새봄을 안고 조국에 개선한 김일성주석은 나라의 부강번영과 민중들의 행복을 위한 길을 먼저 택하고 강선의 로동계급을 만나기 위해 떠나신것이였다.

열네살 어린 나이에 광복의 천리길에 오르신 때로부터 항일의 나날 한시도 잊은적 없는 고향집을 지척에 두고 말이다. 

김일성주석은 이렇게 현지지도를 시작하시였으며 생의 마지막시기까지 무려 2만 600여곳을 찾으시였다.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고 인민에게 최고의 행복을 안겨주시려 한평생을 바친 주석님의 은혜를 근로대중들은 오늘도 잊지 못하고있다. 만경대갈림길은 강성대국으로 이어지는 길이였다.

만경대와 더불어 빛날 력사의 갈림길에 수놓은 애국헌신의 발자취, 그것은 강선의 로동계급으로 하여금 해방후 일제가 파괴한 전기로를 2달만에 되살려 첫 쇠물을 뽑고 그처럼 간고하였던 1956년에 1만t의 강재만 더 있으면 나라가 허리를 펴겠다고 하신 김일성주석의 교시를 받들고 6만t능력의 분괴압연기에서 12만t의 강편을 밀어내여 부강조국건설의 굳건한 발판을 만드는데 기여하게 한 거대한 힘의 원천이였다.

집단적혁신운동으로 주석님의 령도적권위를 보장한 1950년대 천리마대고조의 전통을 이어 오늘의 대고조앞장에 강선의 로동계급을 내세워 더욱 빛나는 만경대의 갈림길이다.

2008년 12월 강선을 찾은 력사의 그날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자체의 힘과 기술로 나라의 전력조건과 원료조건, 전극조건에 맞는 현대적인 초고전력전기로를 몇달동안에 건설함으로써 강철생산을 획기적으로 늘일수 있는 전망을 열어놓은 강선의 로동계급을 크게 치하하셨다.

그날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새로운 혁명적대고조의 봉화를 지펴올려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천리마의 고향인 강선이 끓어야 온 나라가 들끓고 강선의 로동계급이 소리치며 힘차게 내달려야 전국의 로동계급의 발걸음이 더 빨라지고 인민경제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강성대국건설을 위한 총진군의 불길이 더욱 세차게 타오를수 있다고 뜨겁게 고무하시였다.

그러면서 강성대국건설의 전환적국면이 열리고있는 벅찬 시기에 천리마제강련합기업소에서 지펴올리는 혁명적대고조의 봉화는 온 나라 전체 인민을 격동시키는 새로운 총진군의 불씨로 될것이라고, 강선의 로동계급은 전후 어려운 시기에 강철로 우리 당을 믿음직하게 받들던 그때처럼 다시한번 천리마를 탄 기세로 세기를 주름잡으며 혁명적대고조의 선봉에 서야 한다고 격려하시였다.

조국과 민중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심장을 불태우시며 끝없이 이어온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의 길이야말로 해방직후 김일성주석이 고향 만경대를 지척에 두고 강선을 찾은 력사의 갈림길과 맥을 같이하고있고 뜨겁게 잇닿아있는 성스러운 길이였다.

만경대갈림길과 더불어 빛나는 김일성주석의 애국헌신의 숭고한 뜻은 김정일국방위원장시대에 와서 더욱 찬란한 현실로 꽃펴났으며 그에 토대하여 북부조국의 축복받은 땅우에 기어이 최고수준의 인민생활이 보장되는, 그래서 세상이 부러워하는 강성국가가 일떠서게 될것이다.

5

 

《충성의 노래》가 창작된 사연

 

불후의 고전적명작 《충성의 노래》가 창작된지 40여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사람들은 그 노래가 어떻게 되여 세상에 나오게 되였는지 아직 다는 모르고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이 노래에 슴배여있는 사연을 소개하려고 한다.

1969년 2월 11일에 있은 일이다.

이날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영화음악작곡가들을 만나 창작사업에서 제기되는 여러가지 정형들을 하나하나 살펴본 다음 작곡가들에게 새 노래창작과제를 주려고 작곡가들을 불렀다고 말씀하시였다.

지난 기간 창작된 김일성주석을 흠모하는 명곡들을 감회깊이 회고하며 깊은 사색에 잠겨있던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문득 이 세상에서 어떤 작곡가가 제일 유명하다고 생각하는가고 물으셨다.

질문해오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속뜻을 미처 몰라 서로 얼굴들만 쳐다보며 머뭇거리던 창작가들은 자기들이 알고있는 몇몇 작곡가들의 이름을 말하였는데 대부분 서유럽의 작곡가들이였다.

창작가들의 대답을 듣고있던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그런가고 되물으셨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는 김정일방위원장의 얼굴표정을 살펴본 작곡가들은 그제서야 자기들의 대답이 잘못되였다는것을 알아차리였다.

아직도 서유럽음악에 대한 맹목적인 숭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는 작곡가들을 안타깝게 바라보시던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확실하고 단호한 음성으로 작곡가들의 기본사명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우리 인민들의 다함없는 흠모의 정을 담은 노래를 짓는것이라고, 수령님에 대한 우리 인민들의 흠모의 정을 담은 명곡을 짓는 사람이 바로 훌륭한 작곡가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조선의 반만년력사에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찬란한 업적을 이룩해놓았고 민중들의 높은 추앙을 받고계시는 김일성주석에 대한 근로대중들의 한결같은 흠모의 정을 담은 명곡을 많이 창작하는것이야말로 주체시대의 민중들이 문화예술계앞에 요구하고있는 시급한 문제였으며 작곡가들은 력사와 민족, 조국앞에 이 문제들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숭고한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것을 자각하게 되였다.

그러나 작곡가들이 내놓은 작품들은 수자도 많지 않았을뿐아니라 이제까지 나와있는 노래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있었다. 작곡가들은 이러한 결과에 대해 많이 실망하고있었으며 자책감을 가지지 않을수 없었다.

이런 그들을 보시며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작곡가들이 지은 노래라 하더라도 인민들이 인정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으면 명곡이 아닙니다, 그런 곡을 지은 사람은 훌륭한 작곡가라고 말할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명곡과 명작곡가의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계속하여 명곡이란 들을수록 좋고 인상깊은 노래라고 하시며 작곡가들은 창작사업에 정열을 쏟아부어 수령님에 대한 우리 인민의 흠모의 정을 담은 명곡을 지어야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 말씀을 듣고 작곡가들은 흥분에 휩싸였으며 모두들 새로운 창작의욕으로 들떠있었다.

1969년 봄이였다.

당시 예술영화촬영소에서는 민족최대의 경사스러운 명절인 김일성주석의 탄생기념일을 맞으며 예술공연을 준비하고있었다.

공연종목들가운데서도 창조집단이 특별히 힘을 넣은것은 단막극 《한 전령병이 전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 단막극의 절정장면에 쓸 효과음악이 신통하지 않아 애를 먹고있었다.작곡가들은 달라붙어 여러번 작곡을 다시하였으나 허사였다. 이러한 때에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촬영소에 나와 단막극을 지도하면서 예술영화 《천리길》에 나오는 음악이 좋다고,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어버이수령님의 현지지도를 회상하는 장면에 나오는 음악을 가져다가 단막극의 마지막장면에 쓰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이 기악곡을 단막극의 덕성장면에 넣는다면 김일성주석의 덕성을 정서적으로 부각시킬수 있으리라고 타산하시였던것이다.

과연 그이의 가르치심대로 예술영화 《천리길》음악을 덕성장면에 넣으니 단막극의 절정이 살아났으며 음악자체도 새로운 감흥을 자아냈다.

그리하여 단막극은 예술공연에서 관중들로부터 절찬을 받게 되였다. 공연이 있은 때로부터 몇달이 지난 어느날이였다.

이날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기악7중주를 새로 무어주고 작곡가에게 예술영화 《천리길》에 나오는 노래의 선률을 가지고 7중주곡으로 편곡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작곡가는 예술영화 《천리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바이올린독주곡 하나를 삽입곡으로 써넣었었다. 그러니 작곡가는 처음에 누구도 이 음악을 듣고 관심을 가지거나 인상깊게 생각할 사람은 없을것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왜냐하면 창작가자신도 이 곡을 신통하게 생각하지 않았었고 애착도 느끼지 못하고있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이 곡을 스쳐버리지 않고 작곡가에게 무대에서 한번 더 이 선률을 재현해보자고 하시는것이였다.

정말 뜻밖이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아주 평범한 곡에서도 누구도 감득하지 못하는 사상감정의 심오한 싹을 찾아내여 그것을 크게 발전시킬 원대한 설계를 창작가들에게 안겨주는 비상한 예지를 소유하고계시였던것이다.

창작가들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비범한 통찰력과 뛰여난 판단에 모두들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가느다란 바이올린의 선률 하나를 보고 먼저 큰 그림을 그려 폭넓은 기악중주로 승화시키고 거기에서 다음단계로 가는 더 크고 새로운 음악을 창작하는 그분의 음악적천품을 적으나마 알게 되였던것이다.

작곡가는 감동에 휩싸였고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었다. 이름없던 신인작곡가의 단편적인 영화음악을 완성해주고 빛내여주시는 그분의 은정이 하도 고마와 작곡가는 밤을 밝혀 기악곡을 써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매일같이 촬영소에 나와 중주곡을 들으면서 한소절한소절 편곡과 연주형상에서 나타난 결함들을 바로잡아주시였다.

그분의 지도밑에 중주형상이 한창 무르익어가고있던 어느날이였다.

하루의 지도를 마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천리길》은 영화의 제목이지 이 곡의 제목은 아니라고 하면서 제목을 만들어보라고 하시였다. 다음날 밤새 여러 작곡가들이 만든 제목들을 보아주신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제목들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나도 지난밤에 제목을 좀 생각해보았다고, 나는 영화의 내용과 이 음악의 선률을 새겨보느라니 《충성의 마음을 안고》라는 제목이 떠올랐다고, 동무들의 생각엔 어떤가고 물으시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그후 기악곡 《충성의 마음을 안고》를 8중주곡으로 완성하도록 이끌어주었으며 김일성주석을 모시고 진행하는 예술공연에 내놓도록 하시였다.

그러나 아직 작곡가는 작품을 계속 완성시켜나가시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깊은 의도를 다는 알수 없었다. 그이께서는 작품에 대한 지도를 그것으로 그치지 않으시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그 선률에 가사를 붙이는것이 좋겠다고 하면서 가사를 구상해보라고 하시였다.

새로운 과업을 받은 창작가들은 새로운 창작사업에 달라붙었으나 그들은 이 곡에 어떤 가사를 붙여야 할지, 그분이 바라는 가사가 어떤것인지 도무지 가늠할수가 없었다. 인민들은 항일의 그날로부터 김일성주석을 위대한 영웅으로, 나라의 운명을 구원해준 절세의 애국자로, 조국과 민족의 앞길을 밝혀주는 민족의 태양으로 높이 우러러모시고 주석님께 자기의 운명을 전적으로 의탁하고 일편단심 충정을 다해나갈 뜨거운 마음을 간직하여왔다.

이 충정의 마음은 뜨거웠고 민중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변함없는 신념이며 철석같은 의지의 표현이였다.

백두의 험한 산줄기에서 엄동의 눈보라를 헤쳐오며 항일무장투쟁을 위대한 승리에로 이끌어오신 김일성주석은 해방이 되여서도 편히 쉬지도 못하고 공장에서 농촌으로, 인민들의 가정으로, 눈보라, 비바람 몰아치는 험한 길을 걷고걸으며 인민의 행복을 위해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할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바치시였다.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은덕을 못 잊어하고있다. 이북의 민중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자기들이 높이 모시고 따르는 위대한 수령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고싶어하였으며 이 뜨거운 충정의 마음은 온 강토를 덮었고 하늘가에 닿아있었다. 김일성주석을 흠모하는 노래를 인민들은 바라고있었다.

1969년 11월 18일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문화예술부문 책임일군을 부른 자리에서 이렇게 절절히 호소하시였다.

《지금 우리에게는 수령님에 대한 송가가 많지 못합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아직 우리가 수령님의 혁명전사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있다는 무거운 자책감을 금할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의 가사를 일군에게 안겨주시였다.

가사를 받아안은 일군의 마음은 기쁨으로 심히 흥분하고있었는데 그 가사는 주옥같은 시어로 수놓아진 명가사중의 명가사였다. 그 유명한 가사가 바로 불후의 고전적명작 《충성의 노래》였다.

 

             충성의 노래

    

    장백의 험한 산발 눈보라 헤치시고

    혁명의 수만리길 걸어오셨네

    내 조국 찾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

    인민들은 일편단심 충성을 맹세하네

    

    찬이슬 맞으시며 농장을 찾으시고

    눈오는 이른새벽 공장을 찾으시네

    크나큰 그 은덕은 만대에 길이 빛나리

    인민들은 심장으로 충성을 노래하네

    

    삼천리 내 조국에 해빛은 찬란하고

    행복의 노래소리 넘쳐흐르네

    통일된 강산에서 인민들은 대를 이어

    위대하신 수령님 모시고 천만년 살아가리

    

그날 뜻밖에 명가사를 받아안은 작곡가들은 환성을 터뜨리며 기뻐서 어쩔줄 몰라했다. 흥분에 휩싸여 들떠있는 작곡가들에게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가사가 어떤가, 마음에 드는가고 물으며 의견이 있으면 서슴없이 말하라고 하시였다.

창작가들은 솟구치는 격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감격의 눈물, 행복의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있었다.

이렇게 되여 김일성주석을 흠모하는 송가 《충성의 노래》의 창작이 완성되여 세상에 나오게 된것이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충성의 노래》김일성주석의 탄생 60돐 기념공연무대에서 인민들의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처음으로 그 감동적인 선률을 선보이게 되였다.

사람들은 그처럼 고대했던 훌륭한 명곡, 수령흠모의 송가가 태여나게 된것에 대하여 기뻐하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시가를 창조하신 김정일국방위원장께 다함없는 존경의 인사를 드리였다.

그때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1995년 4월 1일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일군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회고의 말씀을 하시였다.

 《〈충성의 노래〉는 1969년에 만수대예술단을 내오면서 창작한 노래입니다. 나는 그때 위대한 수령님의 영웅서사시적인 혁명력사를 노래로 형상하여 인민들속에 널리 불리워지도록 하기 위하여 〈충성의 노래〉를 창작하였습니다.》

정녕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창작한 불후의 고전적명작 《충성의 노래》 세월과 세월을 이어가며 김일성주석의 위대한 존함과 함께 통일된 조국하늘가에 영원히 그리고 아름답게 울려퍼질것이다.

 6

 

희세의 음악정치가 김정일장군 

 

《나의 첫사랑은 음악입니다》

 

《나의 첫사랑은 음악입니다.》라는 가슴설레이게 하는 이 고백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음악정치를 함축하여 표현하고있는 유명한 명언이다.

그분의 집무실 책상우에는 늘쌍 악보가 놓여있었고 새로 작곡하여 형상한 노래선률이 방안에 가득히 흐르고있었으며 그분께서는 음악을 들으며 현지지도의 구상도 하고 음악과 더불어 사색하는 과정에 정치적결심도 하시였다고 한다.

나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음악에 대한 사랑이 이민위천사상에 의해 하늘처럼 떠받들리우고있는 일심단결된 인민에 대한 사랑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북조선의 음악을 비롯한 무용, 미술 등 예술전반을 옳바르게 리해하려면 우선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예술세계에 진지한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을 독자들에게 말씀드리고싶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북예술의 발전사에 대한 심도있는 리해를 도출해내지 못할것이기때문이다.

이북을 다녀온분들은 평양뿐아니라 북조선의 어디를 가보아도 사회전체에 신선한 음악이 흐르고있는것을 기억할것이다. 근로자들은 이런 음악의 흥겨움속에서 사회주의건설의 보람을 찾고 이런 음악적분위기속에서 로동의 성과도 올린다. 이른아침 잠에서 깨여 늦은 저녁까지 음악은 어머니의 따뜻한 품처럼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준다. 그때문인지 평양을 방문한 외국손님들은 사회의 이런 온화한 분위기를 일컬어 조선은 음악예술의 나라이라는 찬사를 보낸다.

평양비행장에서 호텔로 가는 평양의 어구에 들어서면 네온싸인전광판에 씌여져있는 글발이 가슴에 안겨온다. 큼직하게 써놓은 《조선은 하나다!》와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라는 구호는 북조선이 지향하는 통일정책과 자주의 정치철학을 짐작할수 있게 해준다.

이 얼마나 민족적자존심이 넘쳐나는 구호이고 조국통일을 이루어내려는 7천만 우리 민족의 절절한 지향을 담고있는것인가!

이북의 민중들은 자신들이 정치의 강국, 사상의 강국, 군사의 강국, 예술의 강국으로 빛을 뿌리고있는 영광스러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이라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있다. 어쩌면 세상에 이북처럼 자존심이 강한 나라는 없을것이다. 이북사람들은 큰 나라에 대해 부러워하지 않는다. 이러한 심리는 《내 나라 제일로 좋아》라는 노래에도 반영되여있지만 거리의 구호에도 자기의것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대단히 강하게 배여있다.

이남의 한 문인이 지은 책 《위인과 정서》에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인류사상 처음으로 음악정치라는 새로운 경륜을 창조하여 그것을 현실화한 위대한 정치가라고 하면서 뽈스까의 초대대통령인 파데레우스키는 작곡가이자 피아노연주가였고 캄보쟈의 국왕 시하누크도 피아노와 클라리네트의 수준있는 연주가였지만 노래와 정치를 유기적으로 결합시켜나간 정치인은 오직 김정일국방위원장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어떻게 음악으로 자기의 정치철학을 구현할수 있었는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궁금해하며 몹시 알고싶어한다.

서방세계의 수많은 지도자들은 4년정도의 임기를 다 채우기도 전에 통치철학이 바닥나 민중들의 외면을 받고있는 일이 허다한데 북조선의 김정일국방위원장에 대한 민중들의 존경과 사랑은 어떻게 되여 날로 뜨거워지고있는것일가.

《정치가 뚫고들어가기 힘든 곳도 문학예술은 뚫고들어갈수 있으며 총포를 가지고 쟁취할수 없는것도 문학예술을 가지고 쟁취할수 있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내놓으신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또 《노래와 함께 걷는자 영생하리라!》, 《혁명이 있는 곳에는 풍만한 정서가 있고 정서가 넘치는 곳에는 들끓는 생활과 투쟁이 있다.》고 지적하여 음악의 생활화를 주장하셨다.

《노래는 혁명의 무기이며 추동력입니다. 혁명적인 노래는 투쟁의 대오에 높이 울리는 진군가이며 시대의 행진곡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노래소리가 높은 곳에 혁명이 있고 승리가 있다는것은 하나의 진리입니다.》, 이것이 음악이 자신의 첫사랑이라고 고백하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노래철학이다.

이북에는 음악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90년대 중엽 클린톤정부가 《녕변핵공격설》을 퍼뜨리며 조국반도의 정세를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로 몰고가 상황이 극도로 준엄했을 때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일군들에게 자신이 중히 가지고있던 대단한것을 내려보내겠다고 하시였다.

일군들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수 있는 어마어마한 신형무기를 보내주려는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천만뜻밖에도 《혁명의 수뇌부 결사옹위하리라》라는 하나의 노래악보였다. 이 노래는 삽시간에 온 나라에 퍼져나갔고 군대와 민중은 하나같이 이 노래를 부르며 혁명의 수뇌부와 사회주의조국을 결사옹호하려는 철석같은 신념으로 모두가 충정의 결의를 다지였다고 한다. 사회주의수호전으로 정세가 급박한 시기에 맞춰 노래는 수뇌부의 결심을 인민들에게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노래 《혁명의 수뇌부 결사옹위하리라》가 온 나라에 울려퍼지고 온 나라 인민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조국을 위해 청춘도 목숨도 바칠 각오를 가지였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음악정치가 가지는 거대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민중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하고 그들을 혁명투쟁에로 고무추동하는데 있어서 음악예술이 차지하는 기능과 역할을 깊이 파악하고 음악을 통해 민중들의 단결단합, 미래에 대한 락관,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불러일으켜 고난의 행군과 같이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도 딛고 일어서게 하였으며 최후의 승리는 우리에게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하시였다.

《높이 들자 붉은기》, 《동지애의 노래》,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 《승리의 길》, 《우리는 빈터에서 시작하였네》 등 노래는 공연무대에서뿐만아니라 건설장에서, 기업소에서, 민중이 있는 그 어느곳에서나 울려퍼지였다. 이런 노래들이 없었더라면 한걸음도 앞으로 전진할수가 없었을것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음악정치를 펼쳐나가는데서 공훈국가합창단을 1995년 12월 24일에 독자적인 예술단체로, 전문합창단으로 내세우고 고난의 행군을 위대한 승리로 이끌기 위한 선군정치의 나팔수로 만들기 위해 무려 수십번이나 현지지도하며 전투적이고 혁명적인 노래를 창작하고 형상하도록 정력적이고도 세심한 지도를 주시였다고 한다.

평양에서 진행된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참가한 재미예술단 성원들이 공훈국가합창단공연에 초대되여 공연을 관람하는 기회를 가졌는데 그들은 《공훈합창단은 세계적으로 단연 최고의 실력있는 합창단이다. 웬만한 합창단은 이앞에서 합창의 <ㅎ>자소리도 낼수가 없겠다.》라고 합창단의 실력을 높이 평가하였고 마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참가하고있던 로씨야의 챠이꼽스끼아까데미야합창단, 중국인민해방군합창단의 공연을 보았을 때 공훈국가합창단의 장중함과 유연하고 단호한 창법, 불패의 정신으로 무장된 공연기량이 이들과는 비교가 안되게 월등하다는것을 실감할수 있었다.

1989년 뉴욕에서 《남북가곡의 밤》에 출연할 가수가 이북의 가곡을 선정할 때의 일이다. 그들이 하나같이 제기하는 말이 있었는데 그것은 순수한 예술가곡을 찾아달라는것이였다. 순수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면 사상성이 없는 노래가 순수한것이 아니냐고 반문을 한다.

그러나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음악은 정치에 복종해야 하며 정치가 없는 음악은 향기없는 꽃과 같고 음악이 없는 정치는 심장이 없는 정치와 같다는 음악과 정치에 관한 심오한 철학적해답을 주시였으며 예술지상주의적인 음악을 위한 음악을 단연 배격하면서 음악은 정치실현에 복종하고 정치를 정서적으로 안받침하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이남에 있을 때 같은 교향악단에서 일하던 친구의 어머니가 딸(친구의 누나)과 전쟁통에 헤여져 60여년동안이나 생사를 모르고 지내다가 재미동포전국련합회의 도움으로 신청한지 5년만에 의사인 딸 송희를 찾았다.

어머니는 단숨에 평양으로 달려갔다. 며칠후에 나는 그 어머니와 같이 아침식사를 하면서 조국에 온 소감이 어떻습니까 하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어머니는 《에미도 없는 딸자식을 잘 길러주고 대학까지 보내 어엿한 의사로 키워준 이 나라 령도자에게 진짜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깊은 감사의 큰절을 올리고싶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이어갔다.

오늘 북조선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음악정치로 일심단결된 사회를 이루어냈고 나라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해낼수 있다는 자신감에 충만되여있다. 이북동포들은 이런 자신감을 한없이 끌어올리는 긍지의 노래를 부르며 강성국가건설의 전성기를 펼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있다. 그리고 이북동포들은 전체가 하나같이 2012년을 긍지높게 빛내이려고 총력을 다하고있다. 이북동포들은 사상강국, 정치강국, 군사강국에 이어 경제강국까지 이룩하는 승리의 대경사를 맞이하기 위해 남녀로소를 불문하고 총력투쟁을 전개하고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음악예술이 차지하고있는 몫은 대단히 큰것으로 나타나고있다.

7

 

《조국의 품》

 

1989년 3월에 처음으로 이북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 당시에는 조선민항이라고 불렀던 고려항공의 비행기를 베이징에서 탑승하게 되였다.

《우리 비행기는 압록강을 지나 영광스러운 조국의 하늘에 진입하였습니다.》라는 승무원의 안내방송을 들으며 창가로 안겨오는 이북산천의 모습을 설레임속에 바라보고있을 때 아름답고 청아한 동요 한곡이 흘러나왔다.

어린이가 맑은 목소리로 부른 그 노래가 바로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유년시절작품인 《조국의 품》이라는것을 후에 알게 되였다.《조국의 품》은 한없이 순결한 조선의 명곡이다. 이북의 우리 동포들은 이 노래를 불후의 고전적명작이라고 부른다.

초가을 길가에 소박하게 피여나는 들국화같이 깨끗하고 청순한 노래이며 부모님께 드리는 효성과 나라사랑의 애국심이 곡전체에 뜨겁게 넘치는 노래이다.

어떤 외국출판물에 게재된 글에서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비상한 음감과 음악적열정을 떠나서는 그이의 음악적천품에 대해 론할수 없다.》고 하면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어린시절부터 예술분야에서 놀라운 재능을 보여주어 사람들을 경탄시키시였다고 하였다.

외국출판물의 찬사그대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일찍부터 비범한 예지로 수많은 명작들을 창작하시였다.

그중에는 1950년대에 창작한 불후의 고전적명작 《조국의 품》도 있다.

부르면 부를수록 조국이란 무엇인가의 물음에 대한 답이 스스로 새겨지는 이 노래는 전쟁이 치렬했던 1952년에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몸소 지은 노래이다.

창작된지 퍽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도 가슴을 뜨겁게 울리는 가요 《조국의 품》은 듣는 사람들의 심장속에 뜨거운 여운을 남기는 불멸의 명곡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조국은 모든 사람들의 진정한 어머니이며 삶과 행복의 요람이라고, 참된 삶과 행복은 조국의 품속에서 시작되고 꽃펴난다고 늘 가르치시였다.

가요 《조국의 품》은 일찌기 그 어떤 시인도 밝히지 못하였던 조국에 대한 새로운 사상, 조국의 품은 어버이장군님의 품이라는 숭고한 철학적론리를 생생한 시적형상으로 노래한 시대의 명곡이다.

이북에서 발행되는 한 예술전문지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6.25전쟁) 최고사령부에서 생활하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41(1952)년 8월 중순 또다시 후방으로 들어가시여 그곳에서 공부하시였다.》라고 하면서 불후의 고전적명작 《조국의 품》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8월 하순 어느날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속해있던 학급학생들이 식물채집을 하기 위해 마을 뒤산에 오른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산의 모양새와 소나무를 비롯한 자연풍치들이 어딘지 모르게 평양의 모란봉과 비슷하여 학생들은 식물채집시간이라는것도 잊고 줄곧 모란봉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있었다.

학생들과 함께 산에 오르시였던 김정일국방위원장도 모란봉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한그루의 소나무곁에서 떠날줄 모르고있었다. 사실 모란봉은 김정일국방위원장에게 있어서 남다른 추억이 깃든 곳이였다.

그분께서는 조국이 해방된 후 어린시절에 어머님이신 김정숙녀사를 모시고 모란봉에 자주 올라갔었다고 한다.

그런데 슬픈 일이 벌어졌다. 1949년 9월 뜻밖에 사랑하는 어머니 김정숙녀사가 세상을 떠나게 되였다. 그때 말할수 없는 슬픔속에 김정숙녀사를 안치한 곳도 바로 모란봉이였다.

모란봉의 어머님묘소곁에는 크게 자란 소나무 한그루가 서있었다. 그래서 마을 뒤산의 소나무를 보게 되자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였던것이다.

바로 그때 모란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학생들이 큰소리로 떠들어댔다. 그 소리를 듣고있던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학생들이 떠들고있는쪽으로 갔다.

사연인즉 한 학생이 모란봉의 소나무를 생각하며 《아직도 모란봉에 이런 소나무가 그냥 있을가?》 하고 묻자 다른 학생이 《미국놈 폭격에 모두 불타버렸을거야.》라고 대꾸한것이 그만 학생들을 두패로 갈라지게 하여 모란봉의 소나무들이 불에 탔다거니 불에 타지 않았다거니 하면서 말다툼으로까지 번지게 되였던것이다.

끝내 결판을 낼수 없었던 학생들은 이 문제를 두고 담임인 녀선생에게 매여달리며 시비를 가려달라고 간청하였다.

평양을 떠난 후 모란봉에 가보지 못한 녀선생님은 딱한 표정을 지으며 학생 김정일국방위원장에게 문제해결을 도와달라는 눈짓을 보냈다. 판결을 내려달라는 뜻이였다.

이제는 학생들의 눈길이 김정일국방위원장에게로 쏠리고있었다. 그러자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진중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학생들의 얼굴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모란봉의 소나무는 꿋꿋이 살아있습니다. 미국놈들은 아무리 발악해도 모란봉을 불태울수 없습니다. …

… 미국놈들은 그 어떤 폭탄으로도 우리 조국을 절대로 불태울수 없습니다.》

그날 저녁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낮에 있었던 일들을 돌이켜보며 다음과 같이 일기를 쓰시였다.

《1952년 8월 20일

  모란봉은 불타지 않았다

 …

모란봉은 아름답다.

봄이면 진달래, 살구꽃이 만발하고 가을이면 단풍이 붉게 탄다.

우리 나라의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는 모란봉에는 을밀대를 비롯한 유적들이 많다.

오늘 ××동무는 모란봉의 소나무가 불에 탔다고 했다.

나는 모란봉은 절대로 불타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보지도 못하고 왜 그렇게 말했는가?

조국을 찾아주신 어버이장군님께서 일본놈들이 나무를 막 찍어버린 모란봉에 나무를 심고 근로자들의 휴식터를 만들어주셨으므로 절대로 불타서는 안되기때문이다.

모란봉은 누구나 다 행복하게 안겨사는 조국의 품속에 있다.

조국의 품은 어버이장군님의 품이다.

그러면 모란봉도 위대한 장군님의 품속에 솟아있지 않는가. 그런데 어떻게 불탄단 말인가.

나는 모란봉을 잊을수 없다.

언제나 모란봉의 노을이 그립다. 대동강의 무지개가 보고 싶다.

모란봉은 불타지 않았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일기를 쓴 이틀후 녀선생은 김보현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을 일이 있어서 댁으로 찾아가게 되였다.

할아버지는 녀선생을 집으로 반갑게 맞아들이면서 보고있던 필기장을 녀선생에게 넘겨주는것이였다. 할아버지는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다.

《선생님, 우리 증손이가 시를 지었수다. 궁냥이 바다같소. 과시 문장가웨다.》

녀선생이 받아본 필기장은 바로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쓴 일기장이였다.

이틀전에 쓴 《모란봉은 불타지 않았다》의 일기뒤에 3련으로 된 가사 한편이 적혀있었다.

가사의 제목은 《조국의 품》이였다.

 

    모란봉에 붉게 타는 노을인가요

    대동강에 곱게 비낀 무지갠가요

    노을처럼 아름다운 조국의 품은

    내가 자란 정든 집 고향입니다

    

    진달래꽃 방긋 웃는 새봄인가요

    종달새가 지저귀는 하늘인가요

    봄날처럼 따사로운 조국의 품은

    나를 안아키워준 어머닙니다

    

    바다우에 둥실 솟는 아침핸가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인가요

    해빛처럼 밝고밝은 조국의 품은

    아버지장군님 품이랍니다

 

참으로 청순하고 아름다운 노래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유년시절에 쓴 이 소박한 동요속에 그분의 백옥같이 티없는 마음이 담겨있고 수령에 대한 충실성과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충만되여있음을 볼수 있다. 1절에서는 아름답고 귀중한 조국에 대한 감정을 내가 자란 정든 집 고향이라고 표현하였다.

2절에서는 조국은 나를 안아키워준 어머니의 품이라고 긍지에 넘쳐 노래하였고 3절에서는 해빛처럼 밝고밝은 조국의 품은 다름아닌 아버지장군님의 품이라고 노래하였다.

어린 나이에 쓴 티없이 맑은 이 하나의 시에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사상정신세계가 확연하게 나타나있다. 가사를 두번세번 읽고난 후 거기에 담겨있는 심오하고도 깊은 뜻을 온몸으로 체험한 녀선생의 가슴은 흥분과 격정으로 설레이고있었다.

그날 저녁 교실에서는 풍금소리가 울리고있었다.

무슨 일인가 하여 녀선생이 교실안으로 들어가보니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인기척도 느끼지 못하고 깊은 생각에 잠겨 열심히 풍금을 타고있는것이였다.

그런데 노래의 선률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같은 선률을 여러번 반복하는것이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조국의 품》가사에 곡을 붙이고있었던것이다.

그로부터 얼마간의 시일이 지난 1953년 1월 중순 어느 날 교실창가에 오래동안 서서 눈이 내리는 밖을 바라보던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교실에서 책을 보던 학생들은 일시에 그분께로 모여들었다.

노래를 다 부르자마자 학생들은 약속이나 한듯 모두 노래를 배워달라고 졸랐다.

학생들은 다같이 가요 《조국의 품》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되여 전쟁이 한창이던 나날에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손수 가사를 창작하고 곡을 붙이신 불후의 고전적명작 《조국의 품》이 세상에 태여나게 되였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조국의 품》은 선률이 무척 아름다운 서정적인 노래이지만 우리 민족이 제일이라는 자부심을 안겨주고 사대사상을 철저히 배격한다. 가요 《조국의 품》은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을 노래하며 우리의것이 얼마나 귀중한가를 알게 하여주며 나라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알려주고있다. 가요 《조국의 품》은 조국애를 높이 끌어올려주고있다.

노래의 처음부터 끝까지 절절하게 넘쳐흐르는 선률에서 수령관을 확실히 하였다. 바로 사람과 사람사이를 훈훈하게 만드는 인간애를 흠뻑 느낄수 있는 감동적인 예술작품이다.

노래 《조국의 품》을 창작하여 부른 소년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순결한 정신세계는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고있다. 그것은 나라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고 수령을 어떻게 받들어야 하는가를 깨달을수 있게 해준것이다.

이북의 한 문학평론가는 이 작품에 대해 《주체의 수령관에 관한 사상적핵을 발견하고 서정적형상으로 일반화하였기때문에 조국을 노래한 시문학발전의 새로운 길을 열어놓은 첫 작품》이며 《그림처럼 아름다운 조국의 자연으로부터 정든 집과 고향집을 표상케 하고 사람들에게 약동하는 삶과 새 생활을 안겨주는 조국의 품》을 통해 《서정구조의 완벽성》을 보여주었다고 극찬을 했다.

그리고 한 음악평론가는 《조국의 품은 곧 아버지장군님의 품이라고 노래한 이 철학적해명은 인류음악발전사에 빛나게 아로새겨질 거대한 의의를 가지는 하나의 발견이며 불멸의 공헌》이라고 했다.

어린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불후의 고전적명작 《조국의 품》에서 조국을 아버지장군님의 품이라고 철학적인 정의를 주시였다.

조국을 단순히 나서자란 땅, 산천에 대한 추억에만 국한해서 해석하게 된다면 조국을 노래할 때 우리들의 마음은 이렇게까지 뜨거움에 젖지는 않을것이다.

잠결에도 더듬어 찾아 엄마품의 존재를 확인하고 단잠에 드는 아기처럼 꿈결에도 조국을 부르고 웨치면 우리의 가슴은 쩌릿해온다. 그래서 참된 사랑은 머리로 깨닫기보다는 심장으로 느낀다고 하는가 보다.

지난 시기 이북의 민중은 수많은 역경과 제국주의세력의 고립과 압살책동을 이겨냈고 동유럽을 휩쓴 사회주의붕괴의 역풍도 이겨냈다.

대국상의 피눈물의 바다도 헤쳐왔고 허기진 배를 움켜쥐며 고난과 시련의 언덕도 넘은 그들이 오늘 세상에 대고 소리높이 부르고싶은 그 이름, 조국! 조국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들은 조국을 이렇게 말한다.

《조국은 바로 김일성주석이 찾아안겨주고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빛내여온 자랑스러운 나라, 민중이 모든것의 주인이 되고 모든것이 인민을 위하여 존재하는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이다.》

과연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극도의 개인주의와 무서운 인간증오사상이 만연하는 사회, 절대다수 대중에게 빈궁의 권리만이 남게 되는 자본주의의 처절한 사회가 근로대중들의 참다운 조국이 될수 있는가라고 랭정하게 묻고싶다.

《우리에게 있어서 조국은 곧 사회주의이다. 우리 인민은 사회주의가 아닌 조국에 대하여 순간도 생각해본적이 없다.》라고 이북의 민중은 확고부동한 자기들의 결심을 말한다.

이렇게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한식솔로 사회주의조국의 품속에서 서로 돕고 화목하게 살아온 이북의 근로대중들은 멀지않은 날에 틀림없이 주체의 강성국가를 세우고 길이길이 행복한 생활만을 누려갈것이다.

8

 

《나의 어머니》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또 5월은 푸르고 희망에 차있는 달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렇게 희망에 넘치고 약동하는 계절에 다시 볼수 없는 어머니를 애타게 불러보는 어린이들도 있다. 미국에서는 5월의 두번째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정해놓고 어머니들을 위한 여러가지 행사를 한다. 자식들을 위해 헌신적인 로고를 다하고있는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을 기억하고 축하하자는 취지로 제정되였다고 한다.

이날에 감사의 표시로 어머니의 가슴에 붉은색 카네숀꽃을 달아드리고 만일 어머니가 없는 사람은 사랑하는 어머니의 무덤에 흰색 카네숀꽃을 드린다. 누구나 이것을 아름다운 소행으로 여긴다.

누구에게나 어머니가 있다.

그러나 어머니가 없는 사람도 있다. 일찍, 너무도 일찍, 누구도 원치 않는 그 길을 어머니는 떠났기때문이다.

어머니가 없는 사람의 슬픔을 어머니가 있는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슬픔이 어떤것인가를 어렴풋하게 짐작하고있을뿐이다. 특히 유년기에 어머니를 잃은 소년의 슬픔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당해본 사람이 아니라면…

불후의 고전적명작 《나의 어머니》김정일국방위원장의 애창곡으로 된것은 그만한 리유가 있다.

그분의 천품은 효성과 의리로 점철되여있다.

어머님이신 김정숙녀사를 그리워하고 잘해드리고싶어했던 이야기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유년시절에 아버님이신 김일성주석에게 바친 아름다운 이야기에서 엿볼수 있다.

유작촌은 《정통과 계승》이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어머니가 떠나가신 사실을 리해할수 없었던 녀동생은 울먹이며 엄마를 찾으며 아빠한테 다가가려고 하였다. 바쁘신 아버지의 집무에 방해되지 않게 하려고 오빠는 동생의 손을 이끌어 옆방으로 가더니 울먹이는 동생을 타일렀다.

《이젠 엄마를 찾으면 안돼. 네가 엄마를 찾으면 아버지는 일도 못하시고 속상해하신다. 이제부터 엄마가 보고싶으면

아버지한테 가서 울지 말고 나한테 와야 해. 그래서 함께 어머니사진을 보자.》

울먹이는 소리로 조용히 이른 말이였지만 그것은 아버지에게도 그리고 측근들에게도 똑똑히 들렸다.

그 순간 김일성주석은 아들의 음성이 새여나온 곁방에 한동안 눈길을 주었으며 측근들과 친척들은 돌아앉아서 눈시울을 닦았다고 한다.

아들은 어머니가 얼마나 아버지를 헌신적으로 보필하였는가를 일상으로 보아와 잘 알고있었다. 아들은 자기가 늘 보아왔던, 아버지의 뒤바라지를 하느라 늘 어머니가 하시던 일을 이제 자기가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또 간직하였다. 밤새 국사를 준비하시느라 잠 못 이루시는 아버지가 출근하기 전에 잠간이라도 쉬시라고 새벽마다 시끄럽게 우짖는 참새떼를 쫓아내려고 어머니가 쓰시던 장대를 들고 창밑을 거닐며 새들을 날려보내군 하였다.

아버지는 새소리로 새벽잠을 설치군 하였는데 어느날 갑자기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깨끗이 없어졌다. 그 일이 너무도 이상하여 밖으로 나오다가 그만 문가에 멈춰서고말았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 굳어진채 말없이 한참동안이나 이 광경을 지켜보다가 아들을 가까이 불렀다.

아들의 옷자락은 새벽이슬에 축축히 젖어있었다. 그 젖은 옷을 만져보며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다가 아들에게 조용히 말하였다.

《다 자랐구나.》

일찍 어머니를 잃은 소년 김정일은 더이상 유년이 아니였다. …

불후의 고전적명작 가요 《나의 어머니》김정일국방위원장이 1960년 7월 15일 평양남산고급중학교(당시) 졸업생들의 뜻깊은 축하모임에서 친히 부르신 노래로 알려져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고급중학교시절에 그리운 어머님에 대한 노래를 하나 지으려는 생각을 하고 하루수업이 끝난 교실의 조용한 창가에 홀로 서서 노을비낀 하늘가를 바라보면서, 때로는 락엽지는 학교정원을 거닐면서 조용히 그 노래를 불러보며 한음한음 선률을 익혀나가시였다.

1982년 12월 17일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한 예술단의 창작가들에게 가요 《나의 어머니》는 자신께서 해돋이를 보면서 가사를 쓰고 곡을 붙여 부르던 노래이라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어려서 어머님의 사랑에 대하여 잘 몰랐지만 차차 나이들면서 어머님의 사랑이 얼마나 그립고 귀중한것인가 하는것을 알게 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어머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그려보시는듯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 가요 《나의 어머니》를 창작하던 때를 회상하시는것이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직접 창작한 노래 《나의 어머니》는 불후의 고전적명작이다. 그분의 창작곡 《조국의 품》,《축복의 노래》, 《대동강의 해맞이》, 《조선아 너를 빛내리》, 《충성의 노래》 등 여러 노래들중에서도 가요 《나의 어머니》는 특별히 인상이 깊은 노래로 알려져있다.

 

            나의 어머니

    

    세월의 눈비를 다 맞으시며

    나를 품어키우신 나의 어머니

    만가지 소원을 헤아려보시며

    조선의 고운 꿈 꽃피워주셨네

    

    비와도 눈와도 먼길 떠나도

    손잡아 이끄신 나의 어머니

    순간을 살아도 빛나게 살라고

    길러준 그 품을 내 어이 잊으랴

    

    기쁘나 힘드나 부르고싶은

    정답고 미더운 나의 어머니

    그 은혜 못 잊어 세월의 끝까지

    수령님 받들어 한길을 가리라

    

    어머니 어머니 나의 어머니

    뜨거운 그 사랑 내 크며 알았네

 

 

북의 책들에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이 1960년 7월 15일 평양남산고급중학교 졸업생들의 야회에 몸소 참석하시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날 학생들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서 동무들의 어머니들이 모두 학교에 찾아왔다. 그들과 인사를 나누며 한동안 기쁨에 넘친 어머니들의 모습을 보시던 학생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조용히 창가에 다가가서 밤하늘을 바라보시였다.

금시 달려오시여 그 어느 어머니보다도 더 뜨겁게 축하해주시며 따뜻하게 끌어안아주시였을 어머님의 모습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가슴은 한없는 그리움으로 뜨겁게 달아오르시였다.

이윽고 학생들의 부모들은 다 돌아가고 드디여 졸업생축하모임이 시작되였다.

모임에서는 졸업생들의 한결같은 희망에 의하여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노래를 부르게 되시였다.

뜻깊은 졸업생축하모임에서 과연 어떤 노래를 부르겠는가 하고 학생들은 잔뜩 호기심에 찬 눈으로 학생 김정일국방위원장을

바라보고있었다. 이때에 학생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맑고 부드러운 음성이 울려나오기 시작하였다.

학생들은 처음 듣는 노래이지만 가슴에 느껴오는 감동이 너무 커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은은하고 부드러운 이 노래의 선률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이 한해전부터 부르던 노래, 바로 《나의 어머니》였다.

《나의 어머니》김정일국방위원장의 사모곡이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일곱살때 어머님을 잃은 어린시절에 자신께서는 세월의 눈비를 다 맞으시며 자신을 품에 안아키우신 어머님의 그 사랑이 무엇인가를 미처 알지 못하였지만 성장하면서 그것을 알게 되였다고 어머님의 사랑에 대하여 절절하게 추억하시였다고 한다.

1959년 12월 어느날 밤이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는 음악실에서 피아노를 치며 이 노래를 부르시였다.

한 학생이 호기심에서 김정일국방위원장에게 그 노래를 가르쳐줄수 없겠는가고 청을 드리였다.

그러자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그 학생에게 노래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하며 눈이 내리는 밖으로 나오시였다.

펑펑 쏟아지는 눈송이를 손에 받으시며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지난날을 뜨겁게 회고하며 추억의 말씀을 하시였다.

《우리 어머님은 백두산에서 이 눈을 맞으시며 나를 안아키우시느라고 무척 고생을 하셨다.

해방후 어느해 눈내리던 겨울날 밤에 어머님은 나에게 꿰진 바지를 곱게 기워 입혀주시면서 이제 대학에 갈 때면 좋은 바지를 해주겠다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어서 빨리 커서 유치원을 마치고 소학교, 중학교를 거쳐 대학생이 되여 마음껏 배워서 아버지장군님을 받들어가라고 말씀하셨다. 어린시절에 나는 세월의 눈비를 다 맞으시며 나를 품에 안아키워주시던 어머님의 그 사랑이 무엇이였는가를 미처 몰랐지만 크면서야 그것을 알게 되였다. 여느때도 그러하지만 더우기 오늘처럼 눈내리는 겨울날 밤이면 나는 어머님의 사랑을 돌이켜보며 어머님께서 바라시던대로 수령님을 높이 받들어모셔야 하겠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지군 한다. 방금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피아노를 쳐본거다.》

바로 그 노래는 사무치게 그리운 어머님에 대한 노래 《나의 어머니》이였다.

이처럼 한음한음에 깊은 사색과 탐구를 담아 노래 《나의 어머니》를 완성하였으며 마침내 교직원, 학생들앞에 내놓으시였던것이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나의 어머니》는 참다운 충신, 효자의 신념과 의지를 키워준 품, 빛나는 삶의 길로 손잡아 이끌어준 은혜로운 사랑에 대한 다함없는 송가이다.《조선문학사》 12권에는 불후의 고전적명작 《나의 어머니》에 대하여 《높은 사상성과 고상한 예술성이 결합된 혁명적시가문학의 가장 빛나는 본보기로, 숭고한 시정신이 집대성되여 활짝 피여난 현대시가문학의 정수로 되고있다.》라고 씌여져있다.

어머니의 사랑은 무엇이였는가. 3절의 가사이다.

 

    기쁘나 힘드나 부르고싶은

    정답고 미더운 나의 어머니

    그 은혜 못 잊어 세월의 끝까지

    수령님 받들어 한길을 가리라

    

    어머니 어머니 나의 어머니

    뜨거운 그 사랑 내 크며 알았네

 

 이날부터 불후의 고전적명작 《나의 어머니》는 교원, 학생들뿐만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애창곡으로 되였다.

9

 

《조선아 너를 빛내리》

 

 

김일성종합대학창립 60돐기념 예술공연을 동영상으로 본적이 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조선아 너를 빛내리》를 긍지에 넘쳐 힘차고 절절하게 부르는 청년학생들의 름름한 모습에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수령과 당 그리고 인민에게 했던 그날의 맹세를 보는듯 하였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조선아 너를 빛내리》김정일국방위원장이 청소년시절에 창작한 혁명적시가작품들 가운데서 《조국의 품》과 함께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져있다. 이번에는 여기서 이 두 시가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려고 한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조선아 너를 빛내리》김정일국방위원장이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혁명활동을 시작하시던 1960년 9월에 창작한 시가로서 기념비적명작으로 꼽고있다. 작품은 그분께서 안은 주체혁명위업계승완성의 크나큰 포부와 필생의 사명을 이 세상에 선포한 뜻깊은 시로서 영원불멸할 문학사적의의를 가지고있으며 위대한 령도자가 수령앞에 조국과 인민앞에, 시대와 력사앞에 다진 엄숙한 맹세를 장엄하게 선포한 불후의 고전적명작으로 전해지고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조선아 너를 빛내리》김일성주석께서 개척한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완성하며 주체의 조국을 온 세상에 빛내여가려는 숭고한 뜻이 아로새겨져있는 걸작으로서 심오한 철학적내용이 함축되여있다.

작품에는 열네살의 어린 나이로부터 장구한 세월 나라의 주권과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하여 한생을 바쳐오신 김일성주석의 혁명위업을 빛나게 받들어나가려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결심이 어려있고 수령에 대한 절대적이고도 무조건적인 충실성이 노래 곳곳에 나타나있다.

《로동신문》은 《〈조선아 너를 빛내리〉, 이 노래는 력사의 부름앞에 당당히 나서신 백두산장군의 출현을 알리는 장엄한 뢰성이였으며 21세기태양의 출현을 예고하는 위대한 메아리였다.》라고 표현하면서 수령의 사상과 위업에 대한 절대적인 충실성과 계승정신으로 일관되고 그 목표에 있어서 과거 이름없던 식민지약소국을 세계제일의 강대국으로 우뚝 올려세우려는 원대한 포부로 숭고하며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을 위하여 필생의 투쟁과 희생까지도 서슴지 않을 각오가 담겨져있다고 설명하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1960년 9월 1일 룡남산마루에 올라 《위대한 태양의 나라 조선을 만대에 길이 빛내이자, 이것은

나의 드팀없는 신념이고 의지입니다.》라고 자신의 포부를 당당하게 천명하였으며 자신의 맹세를 《조선아 너를 빛내리》라는 한편의 시를 통해 강렬하게 노래하시였다.

 

     조선아 너를 빛내리

 

    해솟는 룡남산마루에 서니

    삼천리강산이 가슴에 안겨온다

    이 땅에서 수령님 높은 뜻 배워

    조선혁명 책임진 주인이 되리

    아, 조선아 너를 빛내리

 

    위대한 수령님 높이 모시고

    주체의 한길로 억세게 나아가리

    사나운 풍랑도 폭풍도 헤쳐

    조선을 이끌고 미래로 가리

    아, 조선아 너를 떨치리

 

    누리에 빛나는 태양의 위업

    대를 이어 해빛으로 이어가리라

    주체의 붉은 노을 지구를 덮을

    공산주의 그날을 앞당겨오리

    아, 조선아! 나의 조선아!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영화예술론》에서 《인민들이 오늘도 부르고 래일도 부를수 있는 노래, 력사의 시련을 이겨내면서 세상에 길이 전해지는 노래라야 진실로 가치있는 예술이라고 할수 있다. 이러한 가치있는 노래를 짓자면 곡이 잘되여야 할뿐아니라 가사에 인간생활에서 가장 의의있는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높은 시적형상으로 일반화하여야 한다.》라고 지적하였으며 노래창작에서 절대적인 조건으로 되는 가사의 중요성을 여러번 강조하시였다.

1절에는 수령님의 높은 뜻을 배워 조선을 빛내겠다고 하였으며 2절에는 어떤 역경도 고난도 뚫고나가 첨단조국을 이룩해내겠다는 의지가 담겨있고 3절에는 조선의 존엄을 세계에 우뚝 세우겠다는 맹세가 강하게 깃들어있다.

시에서 보인것과 같이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영화예술론》에서 《가사는 간명하게 될수록 좋다. 가사는 사상감정이 뚜렷하고 표현이 간결하면서도 뜻이 깊게 되여야 한다.》고 지적하시였다.

그것은 뜻이 깊으면서도 표현에서 풍부하고 세련된 시구가 아니고서는 시문학에서 생명이라 할수 있는 서정성을 기대하기가 어렵고 주제에 대해 시적인 형상을 통한 힘있는 주장을 할수가 없기때문이다. 이 시가에서 핵심적인 주장은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에 대한 숭고한 리념을 간결하면서도 뜻이 깊게 표현하여 형상성을 높은 단계에서 보장한것이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조선아 너를 빛내리》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형성된 혁명전통을 계승발전시키시려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신념을 그대로 담은 명작으로서 근로자들과 청년학생들을 주체혁명위업수행에로 불러일으키려는 포부가 시가에 담겨져있다.

이 시가를 발표했던 9월이 오면 룡남산언덕에 자리잡은 김일성종합대학을 비롯한 여러 단체들에서 불후의 고전적명작 《조선아 너를 빛내리》를 주제로 한 공연이 펼쳐지며 50여년전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조국과 인민에게 다지시였던 그 맹세를 기념하고 따라배우기 위하여 여러가지 행사를 진행하고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는 여러편이 있는데 유년시절에 창작한 《조국의 품》, 《축복의 노래》를 비롯하여 《나의 어머니》, 《대동강의 해맞이》, 《조선아 너를 빛내리》, 《충성의 노래》,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 《진달래》 등은 지금도 애창되며 전해오고있다. 이 노래들에는 그분의 세계관이 깃들어있고 충정과 효성심 그리고 인민에 대한 자애로운 사랑이 전체 노래마다에 넘쳐나고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약속한 그날의 맹세는 오늘 현실로 펼쳐지고있다. 이북의 민중들은 조국과 령도자에게 바칠 뜨거운 충정과 선군의 기치높이 주체혁명위업을 완성하려는 필승의 의지를 다지면서 21세기를 맞이하였다.

이리하여 룡남산의 우렁찬 뢰성은 혁명의 북소리 요란했던 1970년대와 일심단결의 1980년대를 탄생시켰고 고난의 행군과 같은 가장 엄혹한 력사의 도전을 이겨냈다. 진보매체들은 이렇게 지적하였다.

《이북은 이제 특수한 군수산업의 발전과 수차례의 인공위성발사성공, CNC기술개발, 주체철의 출현, 비날론폭포 등 첨단과학기술강국의 대렬로 확고하게 진입하였으며 2010년에는 상온에서의 핵융합을 성공시킴으로써 제국주의자들의 제재와 고립, 압살의 수많은 역경을 헤쳐나오며 군사강국으로 부상하였다.》

이어서 진보언론들은 《난공불락의 요새우에 튼튼한 국가기반형성을 완성하였다.》고 했으며 《정치사상강국으로 사회가 평온하게 안정화되였으며 위대한 령도자의 손길따라 세계의 어떤 나라보다 혜택을 누리며 살고있다. 군사강국으로 부상한 조선은 이제 핵무기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일심단결된 인민의 힘은 핵무기보다 더 강하다는 믿음이 있기때문》이라고 하였다.

특히 혁명위업계승문제가 순조롭게 해결되였으며 국가의 모든 분야에서 안정적인 발전이 이루어지고있기때문에 2012년 강성국가건설의 전성기를 펼쳐나가는데서 차질이 없을것으로 내다본다고 했다.

이 모든것을 보면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수령과 인민 그리고 당앞에 한 맹세라고 평가했던 노래 《조선아 너를 빛내리》의 그 맹세는 이제 꿈이 아닌 현실로 되고있으며 조선을 그야말로 만년대계의 탄탄대로에 올려놓았다는것을 확신할수 있다.

《조선은 결심하면 한다!》라는 강하고 결의에 찬 구호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세계첨단대렬에 우뚝 서있는 조선을 감탄하며 보게 하고있다. 세상의 흐름을 읽을줄 아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것을 감지하고있었으며 그런 사람들의 수자는 날로 늘어나고있는 추세로 보인다.

그렇다. 《조선은 결심하면 한다!》는 이 구호에 담겨진 의미를 세계는 주목하고있다. 최첨단을 돌파하며 더 높이, 더 빨리 내달리는 활력에 차넘치는 나라, 조선은 크나큰 긍지를 가지고 세계를 향해 달려가고있다.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일부 나라들은 북을 향해 험담하고 폄하해왔지만 세계는 이제 첨단조선의 위상을 경탄하며 바라볼것이다.

다가오는 승리의 래일을 확신하며 솟는 힘 노도도 내밀어 세계에 앞서나가려는 이북민중의 의지가 노래 《조선아 너를 빛내리》에 맥박치고있으며 자주의 기치 높이 든 북조선은 세계평화의 기수로 찬란한 빛을 뿌릴것이다.

10

 

《동지애의 노래》

 

노래가 감명을 주고 민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면 그런 노래는 인민들의 요구에 의해 합창곡이나 관현악곡 또는 협주곡으로 다시 편곡되여 애호가들의 곁으로 바싹 다가서게 된다.

그러나 《동지애의 노래》는 노래 그자체가 감동이여서 그런지 관현악과 합창으로 편곡된 리종순 작사, 성동춘 작곡, 리정언 편곡의 《동지애의 노래》가 가장 규모가 큰 곡으로 알려져있고 《조선은 하나다》나 다른 가요처럼 기악곡이나 협주곡으로는 편곡되여있지 않다.

《동지애의 노래》는 예술영화 《조선의 별》의 주제가이며 1980년에 창작되였다.

《동지애의 노래》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애창곡으로 알려져있다.

 

가는 길 험난하다 해도 시련의 고비넘으리

불바람 휘몰아쳐와도 생사를 같이하리라

천금주고 살수 없는 동지의 한없는 사랑

다진 맹세 변치 말자 한별을 우러러보네

 

돌우에 피여나는 꽃은 그 정성 키운것이고

죽어도 잃지 않는 생은 그 사랑 주신거라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야 할 혁명의 길에

다진 맹세 변치 말자 한별을 우러러보네

 

북조선은 오늘도 김일성주석이 개척한 주체혁명의 길을 따라 전진하고있다. 새 세기 이북의 표대는 김일성주석의 한생을 상징하는 붉은기이며 백승을 이어가는 만능의 보검은 혁명적동지애라고 한다.

《조선말대사전》에서는 《동지애》는 《같은 사상과 목적을 위하여 싸우는 혁명동지들사이에 서로 아끼고 도와주는 가장 고상하고 가장 귀중한 사랑 또는 그러한 정신과 품성》이라고 설명하고있다.

이북에서 《동지애》는 생명에 비유되는 무게있는 단어이고 고매한 인격과 도덕적품성 그리고 고결한 의리로 표현되는 가장 고상한 낱말이라고 할수 있다.

조선예술영화 《조선의 별》은 김일성주석의 초기혁명활동을 사실적으로 그린 북조선의 유명한 예술영화이다.

《동지애의 노래》는 예술영화 《조선의 별》의 주제가로 더욱 널리 알려져있으며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고 노래만 들어본 사람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고있다. 오늘날 《동지애의 노래》는 세계적판도에서 애창되고있는 명곡이다.

2008년 12월 15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동지애의 기치높이 억세게 전진하자》에서 지적된 기사내용의 일부를 소개하려고 한다. 《우리의 동지애는 선군혁명의 불길속에서 이루어지고 선군위업과 더불어 높은 경지에 오른 고결한 사상감정이다. 그것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사상정신적특질로, 수령, 당, 대중의 일심단결의 초석으로, 조선혁명의 강력한 추진력으로 되고있다.》 그러면서 신문은 이 고귀한 사상정신적재부를 혁명적동지애라고 자랑스럽게 부르고있다고 전재하면서 수백만의 혁명동지들이 령도자의 두리에 하나로 굳게 뭉쳐 싸워나가는 자기들의 앞길에는 언제나 승리와 영광만이 빛날것이라는 강한 자신심을 나타내였다.

이것을 보면 북에서 말하는 동지애는 우리가 흔히 일컫는 우정과는 다른 차원에 있음을 알수 있다.

《수령이 위대하면 작은 나라도 위대한 시대사상의 조국으로, 사상의 강국, 정치대국으로 온 누리에 빛을 뿌릴수 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이 명언에는 위대한 수령을 모셔야 작은 나라도 사상과 정치 등 모든 면에서 세계를 압도할수 있다는 심오한 사상이 담겨져있다. 다시말하면 수령이 위대하면 작은 나라도 위대하고 강한 나라로 된다는 뜻이다.

수령은 시대의 지도사상을 창시하여 조국과 혁명의 앞길을 밝혀주고 위대한 정치로 나라와 민족을 빛내여준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자기 민족이 위대하고 강대한 나라로 되는것을 원하고있을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바란다고 하여 실현되는것이 아니며 요구한다고 하여 이루어지는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북은 비록 큰 나라는 아니지만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이 있고 혁명과 건설에서 불멸의 업적을 이루어놓은 김일성주석의 사상과 령도를 변함없이 빛나게 계승발전시켜오신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령도가 있었기에 사상강국, 정치대국, 군사강국의 지위에 오를수 있었으며 그것은 자기 수령, 령도자와 혼연일체가 되여 떨쳐나선 인민대중의 무궁무진한 힘의 생명력으로 되였다.

예술영화 《조선의 별》에서 본 인상적인 장면이 기억속에 오래 남아있다. 한명의 동지를 얻기 위해 수백리 밤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는 김일성주석의 젊은 시절의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였다.

동지는 과연 목숨을 무릅쓰고 찾아갈만큼 귀중한것이였던가, 동지는 정말 천금을 주고도 살수 없고 생사를 같이할만큼 가치가 있는것일가? 모든 해답을 영화속에서 찾았고 실제로 이북사회를 보면서 확인할수 있었다.

2004년 4월 7일 일군들을 만난 자리에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동지를 얻는것으로부터 시작한 조선혁명은 동지들에 대한 사랑과 믿음에 기초한 일심단결의 힘에 의하여 승리적으로 전진하여왔다고 하면서 자신의 동지관에 대하여 이렇게 밝히시였다.

《혁명은 동지를 얻는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진리는 내가 대를 이어 물려받은 고귀한 유산입니다. 나는 이 유산을 귀중히 여기고 혁명동지들을 제일 사랑하며 나자신처럼 믿습니다. 동지들이 있기에 김정일이도 있고 동지들이 없으면 김정일도 없다는것이 나의 사상적신조이며 나는 곧 그대이고 그대는 곧 나라는 동지에 대한 믿음, 이것이 나의 동지관입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자신이 《동지애의 노래》를 특별히 좋아하는것도 동지를 귀중히 여기기때문이라고 하면서 자신은 총잡은 군인들을 단순히 최고사령관의 전사라는 군직관계에서가 아니라 사상과 뜻을 같이하는 혁명동지로 보고 그들을 끝없이 사랑한다고, 나는 군인들이 있는 곳이라면 아무리 멀고 험난한 곳이라고 해도 찾아가 믿음을 주고 정을 주며 사랑의 한품에 안아 선군혁명동지로 내세워주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일심단결은 동지애의 사랑속에서 싹터온 선군조선의 상징이며 백승의 기치이다.

조선혁명은 동지의 사랑속에 자라온 일심단결로 개척되였고 그 일심단결의 위력은 언제나 백승을 떨쳐왔다. 조선혁명의 력사적뿌리로 되는 《ㅌ.ㄷ》의 전통도 동지애속에서 자라온 일심단결의 전통이며 북조선을 이 세상 그 어떤 폭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국으로 세워놓을수 있었던것도 통일단결의 전통을 굳건히 이어온데 있다고 볼수 있다.

일심단결은 하나의 중심, 하나의 사상에 기초한 사상의지적단결이며 혁명적동지애와 의리로 굳게 뭉친 도덕적, 혈연적단결이다. 탁월한 수령을 중심으로 하고 위대한 지도사상에 기초하고있으며 숭고한 도덕의리로 결합되여있는 다시말하여 동지애의 기초우에 다져진 단결만이 가장 위력하고 공고한 단결로 될수 있다.

오늘 일심단결의 위력은 강성국가건설을 위한 총진군에서 더욱 높이 떨쳐지고있다.

지금 이북에서는 제국주의자들의 악착스러운 제재봉쇄책동속에서도 세상을 경탄케 하는 기적과 혁신이 련이어 창조되고있다. 이 자랑찬 현실은 단결의 기상으로 전진하며 단결의 위력으로 력사의 모진 시련을 과감히 뚫고나갈수 있다는것을 보여준다. 항일의 불길속에서 탄생하여 세기를 이어 꿋꿋이 계승되는 동지애의 전통이야말로 찬란한 미래를 열어나가는 백승의 기치이다.

가요 《동지애의 노래》는 일심단결의 위력을 백배해주고있다.

이북의 사회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동지애의 세계가 펼쳐지고있다. 참된 혁명가들사이에 오가는 동지애는 인간사랑의 최고의 미덕으로 인식되고있다. 사람들은 혁명적동지애의 인품이 있는 사람을 가장 고상한 인격자로 내세운다. 그러나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정신적경지에 도달한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북에서는 동지애의 발현이 제한된 몇몇 사람들의 미풍에 그치지 않고 모든 근로대중들사이에 흔히 볼수 있는 일반적인 사회현상으로 보편화되였다. 온 나라가 동지애의 세계로 결속될수 있었던것은 선군령도라는 령도자의 독특한 정치철학이 있고 그 철학을 자기의것으로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따르며 실천하는 민중들이 있기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은 이북사회의 동지적단결이 매우 높은 단계에 이르렀다는것을 말하여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선군의 기치밑에 혁명동지의 대부대가 자라고 혁명적동지애에 기초하여 혁명대오의 일심단결이 더욱 굳게 다져지고있습니다.》라고 지적하시였다.

선군혁명은 력사상 가장 숭고한 목적과 리념을 내세운 성스러운 위업이다. 총대로 인민대중의 자주권을 지켜내고 총대의 힘으로 자주적인 새 세계를 건설해나가는 선군위업만큼 고상한것은 없다. 인민과 동지를 위해서는 한목숨 기꺼이 바치려는 동지애는 정열에 불타는 사람들사이에 맺어지는 사랑이기에 더없이 순결하고 진실한것으로 된다.

시련앞에서는 모든것이 분명해진다. 생사를 눈앞에 둔 투쟁에서는 말이나 동정으로 끝나는 《동지애》, 일시적인 감정과 충동으로 이루어진 《동지애》는 통하지 않는다. 혁명의 길에 나선 사람들사이에는 천만번 죽더라도 동지를 배반하지 않는 혁명적의리, 위기일발의 순간에 한몸을 내던져 동지를 구원하는 희생정신, 이 세상 끝까지 동지와 고락을 같이하는 투철한 정신의 소유자만이 참된 동지로 존재할수 있는것이다.

지난 1990년대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기간은 령도자와 혁명전사들사이의 동지적단결이 더없이 높은 경지에 이른 나날이였다.

나라가 생사존망의 갈림길에 놓여있던 고난의 행군의 그 어려운 시기에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오직 동지들과 민중을 믿고 그들에게 의거하여 험난한 난국을 앞장에서 헤쳐나가시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근로민중이 있고 병사들이 있는 곳이라면 방방곡곡 그 어디라도 찾아가며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였다.

이때에 태여난 사랑의 서사시는 이루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많다. 최전방초소길과 파도사나운 바다길 그리고 북방의 사나운 6 000여리의 눈보라길과 폭양, 폭우가 쏟아지는 삼복철강행군의 로정에서 보인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동지애의 세계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격동시키였다고 북의 매체들은 전하고있다.

선군의 기치밑에 다져진 불패의 동지적단결은 발전의 밝은 앞날을 보장하는 열쇠와도 같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혁명적동지애를 떠나서는 우리 당의 존재와 강화발전에 대해서도, 우리의 일심단결에 대해서도 말할수 없고 우리 혁명의 승리적전진에 대해서도 생각할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동지애는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변함없는 혁명의 생명선이다. 이북의 모든 발전과 동력은 동지애와 단결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첨예한 반제반미대결의 정세속에서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을 다그치고있는 앞길에 이북은 또다시 고난의 행군과 같은 혹독한 시련이 닥쳐올지도 모른다는 경각심을 가지고있다. 그러나 최후의 승리는 천만이 동지애로 뭉쳐나가는 근로대중에게 있다는것을 굳게 믿고있다. 력사에는 막강한 경제력, 군사력을 가지고도 패망한 례는 있었어도 강한 단결력, 정신력으로 뭉친 나라는 패한적이 없었다고 하면서 동지애의 중요성을 력설하고있다.

동지애에 기초한 일심단결은 승리의 상징이다. 지금 이북은 강성국가건설의 전성기를 펼치기 위한 진군을 힘차게 다그치고있다. 이 방대한 목표를 실현할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이 있고 그것을 최고로 발휘해나갈수 있게 하는 혼연일체의 위대한 힘이 있다는것을 믿고있다. 이북이 모든 힘을 들여 건설하는 강성국가는 동지애의 위력으로 떠오르는 일심단결의 강국이며 동지애가 전면적으로 꽃펴나는 인간사랑의 락원이라고 한다.

선군혁명동지애라는 최강의 무기가 허물어지지 않는 한 이북의 사회주의는 끄떡없을것이며 부강한 국가건설위업은 반드시 실현될것이다.

선군혁명동지애는 혁명선렬들이 물려준 가장 고귀한 유산으로 잘 보존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할 리상이고 영원한 결정체이다. 이 고귀한 유산을 생명과 같이 귀중히 여기고 끝없이 빛내여나가는것은 후대혁명가들에게 지워진 성스러운 사명일것이다.

이북의 근로대중들이 《동지애의 노래》를 높이 부르며 힘차게 전진해나갈 때 최후의 승리는 반드시 이루어질것이다.

11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정일장군의 노래》

 

    1. 백두산줄기내려 금수강산 삼천리

     장군님 높이 모신 환호성 울려가네

     태양의 위업 빛내신 인민의 령도자

     만세 만세 김정일장군

    

    2. 대지의 천만꽃도 그 사랑을 전하고

     동서해 푸른 물도 그 업적 노래하네

     주체의 락원 가꾸신 행복의 창조자

     만세 만세 김정일장군

    

    3. 강철의 담력으로 사회주의 지키여

     내 나라 내 조국을 세상에 떨치시네

     자주의 기치 높이 든 정의의 수호자

     만세 만세 김정일장군

    

1990년대초는 이전 쏘련이 해체되고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도 무너져 국제질서가 무척 복잡하고 어지러운 상태였다.

이렇게 국제정세가 복잡하게 돌아가고있을 때 이북에서는 김일성주석이 서거하는 국상을 당하게 된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주석의 서거는 이북전역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김일성주석의 령전은 물론 만수대언덕과 나라 곳곳에 있는 김일성주석의 동상과 추모행사장에는 이북동포들은 물론이고 해외동포와 외국인들의 추모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있었다.

온 나라가 비통해하며 피눈물을 흘리며 슬픔에 잠겨있고 련이은 대자연재해로 엄청난 시련을 겪고있을 때 미국의 클린톤행정부는 《녕변핵시설》을 타격하기 위한 소위 《5026작전계획》을 세워놓고 이남과 제국주의련합세력들까지 동원하여 이북을 옥죄여오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북조선이 빠르면 3일 혹은 3달, 늦어도 3년이면 붕괴된다는 소위 《3. 3. 3붕괴설》을 퍼뜨리면서 악랄한 방법을 총동원하여 이북을 고립시키기 위한 정치적압력과 군사적위협, 경제적제재를 모두 발동하였다.

세계의 관심은 조선이 과연 이런 엄청난 제재를 돌파하고 일어설수 있을것인가, 다가오는 험한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갈것인가에 대해 집중되고있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제국주의에 맞서 사회주의수호전에 돌입하도록 하시였다.

령토의 크기로 보나 인구수로 보나 엄청난 차이가 있는 조선이 남북으로 대치하고있는 조건에서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불사하는 결심을 내린것이다.

남쪽에서는 민심이 매우 뒤숭숭했다. 제국주의충복인 보수언론들은 《사회주의는 종말이 왔다.》고 대대적인 선전에 련일 열을 올리고있었다. 이러한 때에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라는 론문을 발표하여 《북조선붕괴설》을 내돌리는 제국주의세력들의 궤변을 단호히 분쇄해버리시였다. 파문은 대단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론문 서장에서 《여러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무너진것은 과학으로서의 사회주의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주의를 변질시킨 기회주의의 파산을 의미한다. 사회주의는 기회주의에 의하여 일시 가슴아픈 곡절을 겪고있지만 그 과학성, 진리성으로 하여 반드시 재생되고 종국적승리를 이룩하게 될것이다.》라고 주장했으며 《사람위주의 사회주의,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는 가장 과학적이고 가장 우월하며 가장 위력한 사회주의이다. 사회주의는 그 과학성과 진리성으로 하여 반드시 승리한다.》고 강력한 톤으로 사회주의필승을 예견하는 신심에 찬 론문을 종결하시였다.

준엄했던 그 시기에 총대중심의 선군정치가 전면적으로 확립되였고 인민들은 령도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핵보다 강력한 일심단결의 공고성을 더욱 다지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하기 위하여서는 《우리는 조선민족제일주의교양을 계속 강화하여 인민들이 높은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조선민족의 위대성을 더욱 빛내여나가도록 하여야 한다.》, 《민족자주의 원칙에서 혁명과 건설을 자기식으로 하는것은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해나가기 위한 기본요구이다.》, 《제국주의, 지배주의를 반대하고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해나가기 위해서는 세계 진보적인민들의 국제적단결과 협조를 강화하여야 한다.》라고 늘 강조하시였다.

사회주의수호전이 벌어지던 시기 북조선에서는 혁명의 수뇌부 결사옹위하리라는 애국의 홰불이 타오르고 인민들은 령도자의 위대성을 격동적으로 노래하였다. 만세! 만세! 김정일장군! 김정일국방위원장을 따르는 온 나라 전체 인민들의 웨침이 온 강토를 뒤덮었다.

이러한 격변하는 사회력사적환경속에서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정일장군의 노래》가 세상에 태여나게 되였다.

1절에서는 백두의 혁명전통을 계승하여 발전시킨 령도자에 대한 믿음, 인민들의 긍지와 환희를 노래했고 2절에서는 특출한 령도력으로 인민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었다는 사랑과 의리를 노래하였으며 3절에서는 자주의 기치를 높이 든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있는 북조선은 전세계 진보적인민들이 우러러보는 선망의 대상으로 되였고 천지풍파가 밀려온대도 사회주의조선의 승리를 막을자는 아무도 없다는 신념을 노래했다.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정일장군의 노래》는 조선인민군협주단소속의 신운호가 가사를 쓰고 같은 소속의 설명순이 곡을 붙였다. 설명순에게는 영생불멸의 혁명송가와 같이 인민들의 사랑을 받는 많은 창작곡을 내놓을수 있었던 뜨거운 사연이 있다.

1963년 5월 어느날 설명순은 김일성종합대학 정문에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을 만나뵙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그 자리에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은 《가마마차 달린다》를 지은 창작가라고 못내 반가와하며 그가 음악창작을 하면서 고심하던 문제들을 일일이 들어보고나서 음악을 우리 인민의 감정과 정서에 맞게 창작할데 대한 귀중한 지침을 주시고 앞으로 음악공부를 더해서 좋은 노래들을 많이 지으라고 뜨겁게 고무해주시였다.

그후 설명순은 평양음악대학(당시) 작곡학부에서 음악창작교육을 받았으며 1970년대부터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지도와 가르치심을 받으며 시대정신이 맥박치는 수많은 명곡들을 내놓았다.

설명순은 김일성상계관인이고 로력영웅, 인민예술가이며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정일장군의 노래》를 비롯한 사상예술성이 높은 명곡들을 많이 창작하여 이북민중들의 사랑을 받는 작곡가로 성장하였다.

그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충실한 전사의 의리를 가슴에 새겨안고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다녀간 최전방초소와 공장과 농촌으로 나가 전사들과 민중들의 절절한 목소리를 들으며 그속에서 새롭고 독특한 선률의 새로운 싹을 찾고 한음한음 적어나갔다.

김정일장군의 노래》는 1997년 2월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였는데 첫 시연은 그해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탄생기념 중앙보고대회장에서 있었다.

송가는 연주할 때마다 심장을 격동시키고있다. 1998년 12월 6일이였다. 이날에 미국땅에서 처음으로 《김정일장군의 노래》를 중심으로 하는 송가음악회를 열었다.

나의 마음은 공연시작전부터 긴장되여있었다. 공연반응이 어떠하겠는가 하고 초조해있었다. 그러나 막상 공연의 막이 오를 때 나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뉴욕의 연주회장안은 관람자들로 꽉 차있었다. 나는 민족의 자긍심과 억제할수 없는 격정을 안고 흥분되여 《김정일장군의 노래》를 지휘하기 시작하였다.

연주가 끝나자 장내에서는 우렁찬 박수와 환호소리가 터져나왔다. 공연은 끝났어도 사람들은 오래도록 자리를 뜰줄 몰랐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훌륭한 노래를 지휘해준데 대해 진심어린 격려를 하여주었다.

나는 미국에서 송가음악회가 이렇듯 큰 성황을 일으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다.《김정일장군의 노래》는 재미동포들과 타민족음악애호가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여기에서 자신감을 얻은 나는 그해 12월 16일에는 벌가리아의 쁘리챠예술극장에서 력사적인 태양찬가를 공연하였고 1999년과 2000년의 2월과 12월을 비롯한 뜻깊은 계기들마다 송가음악회를 열었다.

세계10대교향악단의 하나로 200여년의 력사를 가진 로씨야국립교향악단의 지휘단상에도 서보았고 벌가리아방송교향악단도 지휘해보았다. 1995년 5월에 있은 국제교향악축전에 초청되여 브람스의 《교향곡 2번》과 드보르쟈끄의 《교향곡 8번》도 지휘해보았다.

그러나 미국에서 공연한 송가음악회처럼 내자신이 격동되고 관객을 흥분에 휩싸이게 한 공연은 경험하지 못하였다.

김정일장군의 노래》에 대한 나의 흥분과 관객들의 감동은 곧 하나의 조국을 지지하는 뜨거운 성원이였다. 지금도 나는 미국에서 진행하였던 태양송가음악회들이 단순한 연주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구촌에 메아리쳐가는 우리 민족제일주의의 노래소리였고 미국의 전역에 폭풍처럼 울려간 《김정일장군의 노래》는 강성국가로 부상하는 조선의 필승불패를 알리는 뢰성벽력이였으며 조선의 통일과 세계의 자주와 정의를 안아올 홰불이였다.

12

 

교향곡 《경례를 받으시라》

 

1991년 12월 24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6기 제19차전원회의가 열렸다. 김일성주석의 제의에 따라 이 회의에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운명을 책임지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시였다.

조선인민군이 근 60년의 자기 력사에서 새로운 서광을 맞이하는 영광의 순간이였다. 김일성주석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위대성에 대하여김정일동지의 령도밑에 우리 혁명은 새로운 앙양기를 맞이하였습니다. 김정일동지의 령도가 시작된 때로부터 당사업은 물론 정치, 경제, 문화의 여러 부문 사업에서 새로운 전변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으며 사회주의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커다란 혁신과 앙양이 이룩되였습니다.》라고 언급하시였으며 김일성주석의 교시를 받는 근로대중은 행복스러워하였다.

태양의 위업을 빛내실 인민의 령도자, 주체의 락원을 가꾸어나가는 행복의 창조자, 자주의 기치를 높이 드신 정의의 수호자를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신것이다. 최고사령관은 단순히 군직이 아니라 조선의 사회주의와 인민의 운명과 전도를 책임지고 이끌어나갈 혁명의 령도자이다.

이북의 민중들은 21세기의 태양으로 떠오르신 최고사령관에게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열렬한 축복의 인사를 하고싶었고 승리의 노래를 목청높여 부르고싶었다.

왜 이북의 전체 근로대중들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신것을 그렇게 열광하고 기뻐했던것일가? 이북의 민중들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을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시였을 때 《수령님과 꼭같으신 장군님》이라고 했고 《장군님은 우리의 운명이시고 희망입니다.》라고 수령복과 장군복을 그득히 받아안은 행복한 인민이라는 자부심속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충정을 다짐하였다.

항일투쟁의 준엄한 시기인 1932년 4월 25일 반일인민유격대가 창건되였고 그것이 1948년 2월 8일 정규무력인 조선인민군으로 강화발전되였다. 김일성주석이 무적필승의 강군으로 키워내여 한세기에 두 제국주의강적을 물리친 인민군대의 백전백승의 전통을 확고하게 틀어쥐고나갈 천출명장의 출현을 맞이하게 된 민중들은 휘황찬란한 나라의 앞날을 바라보게 되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을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신 사실이 알려지자 온 나라는 경축분위기로 들끓었으며 남녀로소 할것없이 누구나 기뻐하였으며 어디서나 기쁨의 노래와 환희의 춤판이 벌어졌다. 그이를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신것을 축하하고 더욱 빛내이기 위한 여러가지 자발적인 경축모임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최고사령관을 따르는 이북의 근로대중의 충정은 절대적인것이였다. 1979년 12월 19일에 발표된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저서 《우리 식대로 살아나갈데 대한 당의 전략적방침을 철저히 관철하자》는 백두에서 개척된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가려는 그이의 변함없는 의지가 살아움직이는 기념비적문헌이다.

우리 식, 우리 힘으로 나라와 민족의 번영을 이룩하자는 이 문헌을 보며 북조선민중들은 자기의것을 소중히 대하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을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라 부르며 한없이 신뢰하고 존경하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노래를 불러도 제 선률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도 제 장단으로 춤을 추며 식을 내도 제멋의 식을 내고 살아도 제정신으로 사는것이 우리 인민이다.》라고 우리 식을 강조하여오시였다.

주체성과 민족성이 철저히 지켜지고 온 사회가 동지적의리로 뭉쳐진 대가정을 이루고있는 이북사회는 근로대중의 영원한 삶의 터전으로 되며 행복의 요람으로 된다.

이 삶의 터전을 지켜주고 빛내여주는 최고사령관을 우러러 교향곡 《경례를 받으시라》가 나왔다.

교향곡 《경례를 받으시라》는 4악장으로 구분되여있다. 2007년 뉴욕에서 열린 경축음악회에서 인기를 끌었던 이 곡은 CD로 실황록화되여 요청하는 많은 애호가들에게 분배되였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다시 연주해달라는 요청이 제기되여 2010년 경축공연때에 폭발적인 인기속에서 재청공연을 하였다.

 

         경례를 받으시라

 

    펄펄펄 날리는 당기를 보아라

    기폭은 말하리 말하리

    불패의 단결로 승리를 떨치신

    로숙한 우리 당의 력사를

    로동당의 령도자 김정일원수이시여

    경례를 받으시라 경례를 받으시라

 

    펄펄펄 날리는 국기를 보아라

    기폭은 말하리 말하리

    인민의 존엄과 행복을 지켜준

    영광찬 공화국의 력사를

    인민들의 어버이 김정일원수이시여

    경례를 받으시라 경례를 받으시라

 

    펄펄펄 날리는 군기를 보아라

    기폭은 말하리 말하리

    혁명의 무력을 승리로 이끄신

    빛나는 군건설의 력사를

    최고사령관이신 김정일원수이시여

    경례를 받으시라 경례를 받으시라

 

 

교향곡 《경례를 받으시라》는 《조선음악전집》 20권에 교향곡 《내 나라 제일로 좋아》 등 1990년대에 창작된 5개의 교향곡과 함께 수록되여있으며 악풍은 민족적이고 민요적이면서 현대적인 작품들이다. 악기편성은 죽관악기와 민족악기까지 그리고 많은 종류의 타악기가 포함된 대형의 관현악곡들이다.

가요 《경례를 받으시라》를 기초로 해서 만들어진 이 교향곡은 국립교향악단 단장으로 사업하는 인민예술가 김연규와 일본에서 귀국한 작곡가 강수기가 공동으로 작곡을 하였다.

제1악장 《경례를 받으시라》는 웅장한 서주의 음향은 백전백승의 김정일국방위원장과 인민군대의 위용을 표현하였고 민중들과 함께 전진하는 군사강국의 무진장한 위력을 형상하였다.

제2악장은 조금 느린 속도로 되여있으며 《그리워》라는 주제에서 보듯이 사무치는 그리움이 정서적으로 얽혀있다. 최고사령관을 흠모하고 그리워하는 군인들과 민중들의 마음을 생생하게 그려놓았다.

악장의 가요 《그리워》 1절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봄날의 따사론 해빛이 저 하늘 비쳐올 때

   내 가슴속에 조용히 떠오르는 그 모습

   그리워 그리워 자애론 그 품이

 

제3악장 《청춘들아 받들자 우리 당을》은 우리 나라 민요적인 선률에다 흥이 나는 조선장단을 효과적으로 배합하여 곡에 박진감을 더해주었으며 타악기의 활약이 돋보이는 3악장의 노래는 황진영이 작사하고 작곡하였다.

 

   맑고 푸른 하늘처럼 순결한 꿈을 안은

   젊음이 넘쳐나는 피끓는 청춘들아

   우리의 마음 모두 합치여 어머니당을 받들자

   충성으로 받들어가자 어머니 우리 당을

 

제4악장에서는 사나운 폭풍도 쳐몰아내고 신념을 안겨주고 미래도 희망도 다 맡아주고 이끌어준 김정일국방위원장을 영원히 믿고 따르려는 근로대중의 투철한 신념을 격조높이 노래하였다.

1998년 9월 김일성경기장에서는 공화국창건 50돐을 경축하여 집단체조《영광빛나는 김일성조선》이 성대하게 진행되였다. 그 공연의 록화실황을 비데오테프를 통해 볼수 있었다.

이북의 집단체조는 언제나 그러하듯이 일사불란한 조직력과 세련된 기량을 과시하며 관중들의 마음을 꽉 틀어잡는다. 이 집단체조에서도 공연의 주제를 집약적으로 부각시키며 완벽한 공연을 펼쳐나갔다.

북조선은 수십년이나 지속되고있는 제국주의의 고립압살책동으로 말미암아 말로는 다할수 없는 고통을 받고있는데다가 1990년대 중엽에는 큰물피해까지 겹치는 자연재해로 2중, 3중의 극심한 시련을 겪고있었다.

이렇게 혹독한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인민은 인공지구위성 《광명성1》호를 성과적으로 발사하였으며 과학기술강국으로 도약하는 조국의 위상을 보면서 긍지와 락관으로 충만되여있었다. 온 나라는 그야말로 축제분위기에 들떠있었으며 고난의 행군, 강행군의 승리를 확신하는 자신감은 하늘에 닿을듯 하였다.

이날의 집단체조에서는 이처럼 커다란 승리를 안아온 최고사령관에 대한 일심단결된 온 나라 인민의 충정이 최고조로 끓어올랐다. 공연이 끝나자 최고사령관을 그리며 목메여 부르는 신념의 노래들은 모두의 마음에 진한 감동을 주었다. 조국을 위하고 령도자를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겠다는 청년들의 울부짖음은 오래도록 귀가에서 떠나지 않고있었다.

축복하고 축원하는 군대가 조선인민군이다.

1992년 조선인민군창건 60돐을 경축하는 열병식장의 높은 단상에서 크게 격려하던 《영웅적조선인민군 장병들에게 영광이 있으라!》라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열렬한 축복은 오늘까지도 이북의 군인들만이 아닌 온 나라 근로대중들에게 무엇에도 비길바 없는 축복으로 고무되고있으며 승리와 영광의 길로 추동하는 원동력으로 강하게 작용하고있다.

김일성주석의 김정일시대는 오늘도 영광스러운 시대이지만 앞으로는 더욱 찬란하고 륭성번영하는 시대로 될것입니다.》라는 유명한 어록은 이북의 근로자들에게 경전같은 역할을 했으며 무한한 생명력을 불어넣는 힘의 원천으로 작용하였다.

또한 이 유훈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을 높이 받들어온 인민의 끝없는 긍지와 자부심이고 벅찬 행복이고 새로운 혁명적대고조의 승리를 향하여 질주하며 달려나갈 맹세의 결의이며 부강번영할 통일조국을 기어이 안아오고야말 근로대중의 변치 않는 불굴의 의지일것이다.

이북민중들의 마음에 넘쳐나는 이 환희의 함성은 오늘 새로운 승리의 《발걸음》노래소리와 더불어 륭성번영할 자주통일조국의 창창한 앞날로 오래도록 끝없이 이어져나갈것이다.

13

 

《2월의 봄》은 축원의 봄

 

가요 《축원》은 온 겨레에게 최고의 행복을 안겨주기 위해 불면불휴의 노력을 기울여오신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민중들의 간절한 소망에서 나온 태양칭송의 노래이다.

오늘 나라를 세계제일의 정치사상강국으로, 군사강국으로 우뚝 세워놓고 경제강국을 건설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있는 이북의 근로대중들은 나라의 어엿한 주인으로서의 긍지를 느끼고있으며 령도자에 대한 흠모심은 말할수 없이 높아가고있다.

뉴욕에서 《2월의 봄》이라는 주제로 조국의 통일을 념원하는 음악회를 진행하였다. 겨울이라 춥고 비까지 내리는 고르지 못한 날씨였지만 그런 날씨를 아랑곳하지 않고 공연장안에는 일찍부터 많은 사람들이 와서 막이 오르기를 기다리고있었다. 공연은 성황리에 대성공을 거두었다.

조선의 음악을 좋아하고 우리 나라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지지하는 많은 동포들과 타민족형제들이 음악회장을 찾아주어 경축공연을 한층더 빛나게 하였다.

이북의 유엔대표부성원들과 중국, 로씨야, 이딸리아, 그리스, 우즈베끼스딴, 윁남대표부와 이남의 공관직원 등 많은 외교관들이 이 경축공연에 참석하였다.

이 음악회를 후원하였던 재미동포전국련합회 윤길상회장은 다음과 같은 축하문을 보내주어 프로그람에 소개하였다. 축하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해마다 2월이면 눈덮인 백두산이 눈에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이 력사적인 계절에 미국 뉴욕땅 한복판에서 조선의 음악이 울려퍼져온지 여러해가 됩니다. 예속과 지배를 거절하고 자주, 친선, 평화, 평등을 이룩하며 살아가고있는 조선민족의 정서로 충만한 선률이 금년에도 또 울려퍼지고있습니다.

조선의 음악은 아름답고 심장을 울리는 높은 예술성을 지니고있습니다. 이러한 음악들을 연주하여 동포들과 현지인들이 황홀한 감동에 젖어 카타르시스를 체험하여 힘을 얻게 하여줍니다.

이 사업을 꾸준히 하여온 우륵교향악단의 지휘자 리준무선생과 단원들에게 심심한 감사와 격려를 보냅니다. 우륵교향악단이 미국 뉴욕땅 한복판에서 문화강국으로서의 조국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이 귀한 사업에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2월의 봄》은 축원의 송가이다.

동포2세 첼로연주가 자퀴스 리는 현악기들의 잔잔한 트레몰로(떨림음)를 타고나오는 호른의 선률에 심취한듯 하더니 유연하게 첼로의 활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강영걸의 첼로협주곡 《축원》의 선률은 숭엄한 분위기로 청중을 끌어안으며 공연장에 숙연하게 흐르고있었다. 첼로의 고요한 선률은 관람자들의 가슴에 파고들어 어느덧 평안함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충만하였다.

《낮이나 밤이나 인민의 행복위해 그 언제나 마음을 많이도 써오신분》, 이는 그이의 몸과 마음이 평안하시기를 바라는 전체 근로대중들의 간절한 소망을 노래한것이다.

《아 우리의 친애하는 김정일동지 인민은 바랍니다 기쁨속에 계시기를》, 이것이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안녕을 바라는 이북민중들의 소망인 가요 《축원》의 1절가사이다.

 

2. 길없는 초행길 남먼저 헤치시며

바람부는 험한 길 많이도 걸으신분

아 우리의 친애하는 김정일동지

인민은 바랍니다 좋은 길만 가시기를

 

3. 높은 산 낮아져 바다가 된다 해도

인민들은 한마음 끝까지 따르리

아 우리의 친애하는 김정일동지

인민은 바랍니다 행복속에 계시기를

 

 

이렇게 인민을 위한 행복의 락원을 만들어가시는 령도자를 흠모하고 칭송하는 노래는 끝없이 이어져가고있다.

그러나 인민을 하늘처럼 내세우고 끝없이 사랑하신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인민이 드리는 노래를 뒤에 남기고 현지지도의 길을 쉬임없이 걸으시였다.

노래 《승리의 길》과 함께 2011년의 첫 현지지도에 나서신 김정일국방위원장의 강행군은 눈보라치던 1월에 이어 2월에도 전선을 찾아, 공장을 찾아, 농장을 찾아 그리고 희천의 건설장을 찾아 온 한해 끊임없이 이어졌다.

2011년초의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이러한 엄동의 혹한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방곡곡을 종횡무진하며 더욱더 정력에 넘치는 활동을 하신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소식을 듣고 민중들의 마음은 밝아지고 신심과 용기는 하늘에 충천하였다.

사나운 눈보라와 삼복의 무더위속에서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인민을 찾아 공장길과 농장길을 걷고 또 걸으며 모든 근로대중을 세상에서 제일 잘사는 행복한 인민으로 만들려고 강행군하는 령도자를 우러르며 따르는 이북민중들의 마음은 한없는 긍지에 넘쳐있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선군의 총대로 조선을 높이 세운 백두의 령장이시였고 제국주의세력을 타도하여 나라를 굳건히 지켜낸 자주의 령장이시였으며 정의의 수호자이시였다. 조국이란 모든 사람들의 어머니이고 한시도 떨어져서 살수 없는 사랑의 품이라고 말한다. 북의 민중들은 인간의 참된 삶과 행복은 조국의 품속에서 시작되고 꽃펴난다는 령도자의 조국관을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고있다.

조국을 잃으면 누구나 망국노가 되고 부모잃은 고아의 신세를 면치 못한다. 조국은 그래서 생명처럼 귀중한것이고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한것이라고 하는것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일제에게 빼앗겼던 조국을 찾아준 김일성주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의미깊은 말씀도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천고의 백두밀림에서 온갖 풍상고초를 다 겪으시며 강도 일제를 때려부시고 잃었던 조국을 찾아주시였으며 전인미답의 혁명의 길을 개척하시여 오늘은 이 땅우에 온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인민의 보금자리, 사회주의락원을 일떠세워주시였습니다.》

사람들은 김일성주석이 항일혁명투쟁으로 찾아주신 귀중한 조국을 선군의 총대로 굳건히 지켜오신 김정일국방위원장에 대한 고마움을 심장에 새기고 조국번영을 위해 힘차게 투쟁하고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핵참화를 막아낸 천출명장이시다.

1994년 김일성주석이 서거했을 당시 제국주의세력들은 때를 만난듯이 하늘에서 바다에서 벌떼처럼 달려들어 사회주의조선을 붕괴시키기 위한 고립, 압살책동을 더욱 강도높이 벌리기 시작하였다.

사회주의조선은 오로지 자기의 힘으로 나라와 인민을 지켜내야 하는 시련의 엄중한 시기를 맞이한것이다. 어느 누구도, 어떤 나라도 선뜻 나서서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고 북조선도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믿은것은 오직 하나, 그것은 백전백승을 이어온 인민의 힘, 항일투쟁때부터 다져온 일심단결의 주체적력량뿐이였다. 이북의 근로대중들은 웨쳤다. 《모두다 총폭탄이 되여 혁명의 수뇌부를 사수하자》, 《당신은 우리의 운명이고 희망이십니다》 등의 심장의 부름을 웨치며 선군의 총대를 힘있게 틀어쥐였다.

제국주의침략세력의 고립, 압살책동으로 하여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준엄했던 1990년대 그 시기에 자주의 기치를 더욱 높이 추켜들고 선군정치를 전면적으로 실현하여 제국주의자들과의 정치군사적, 외교적대결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고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의 튼튼한 기반을 마련하게 되였다.

이러한 업적을 노래하여 첼로협주곡 《축원》은 노래가 나온지 몇년후인 2003년 강영걸에 의하여 편곡되였다.

첼로협주곡 《축원》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대중들의 큰 인기를 얻으며 명곡으로 자리잡게 되였으며 2004년에 문학예술출판사에 의해 출간된 《조선음악전집》 20권 협주곡편에 수록되였다.

인민들이 좋아하고 인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있으며 다시 들어보아도 언제나 감명을 주고있는 이 협주곡은 단악장으로 되여있다.

첼로협주곡 《축원》은 조광이 지휘하는 조선 국립교향악단의 반주로 첼로리스트 김훈이 협연한 CD가 나와있는데 연주시간은 약 8분 42초이다. 이 곡은 뉴욕에서도 여러번 연주되였다. 내가 지휘하는 우륵교향악단의 반주로 첼로리스트 리동우와 자퀴스 리가 협연자로 출연하여 성공을 거둔바 있다. 이 공연실황은 CD와 DVD로 록화되여있다.

《조선음악전집》 20권은 인사말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찌기 협주곡을 철저히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참다운 우리 식의 기악음악으로 발전시킬데 대한 구상을 안으시고 협주곡창작에서 견지해야 할 원칙과 수행방도를 비롯하여 그 실천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에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을뿐아니라 협주곡창작사업을 정력적으로 지도하여주시였다.》

또한 전집에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인 지도밑에 창작완성된 수많은 협주곡들가운데서 15편을 선곡하여 악기별로, 창작년대별로 편집하였다고 하였다.

2011년 1월 하순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당중앙군사위원회 김정은부위원장과 함께 공군사령부협주단 전자악단의 공연을 관람하였다는 기사가 보도되였는데 이 전자악단도 음악회에서 《축원》을 주요종목으로 택하여 연주하였다고 한다.

축원의 마음은 단지 이북의 민중들만이 아니고 조국의 자주적통일을 바라는 7천만 우리 민족의 간절한 소망으로 되고있다.

민족을 광명한 언덕에 인도하는 세기의 태양, 사랑과 인덕의 빛과 열로 천하를 밝히고 겨레의 운명을 보살피는 위대한 령도자의 품이 있어 우리 민족의 앞날은 창창하다고 믿는것은 오늘 남녘겨레나 해외동포들의 솔직한 심정일것이다.

만물이 태양을 따르고 여러 갈래의 강줄기가 바다로 흘러 만나게 되는것이 거역할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듯 남과 북, 해외의 온 겨레가 김정일국방위원장을 민족의 태양으로 영원히 높이 모시려는것은 력사의 필연일것이다. 2월의 봄을 맞이하는 온 겨레의 심장마다에는 영생축원의 마음이 불타고있다. 이 불타는 영생축원의 마음과 마음이 자주적조국통일을 가져오는 고귀한 투쟁으로 결실을 맺도록 하나같이 떨쳐나서야 할것이다.

14

 

가요 《대를 이어 충성을 다하렵니다》

 

60여년전 김일성주석은 항일투쟁의 엄혹한 정세속에서 이룩된 혁명전통에 기초하여 당을 창건하시였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운명에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오게 된 력사적인 사변이였다.

이북은 로동계급의 전위대인 조선로동당이 창건되면서 지도부가 더욱 강화되였고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한 승리의 길을 걸어올수 있게 되였으며 반만년민족사에 번영의 시대를 펼쳐나가게 되였다. 김일성주석은 새 조국건설에서 민주주의중앙집권제원칙을 정확히 지키도록 하였고 한편으로는 당조직들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고 조직성원들의 규률과 원칙을 확립하여 수령의 사상으로 유일적령도체계를 확립하시였다. 나아가서 당지도부는 광범한 대중속에 뿌리박고 민중의 운명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자애로운 어머니당의 건설을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결정하였다.

이북은 일관성있게 자주로선을 지켜오면서 혁명위업의 승리를 락관적으로 내다보았다. 혁명전통의 계승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며 김일성주석의 이민위천의 사상과 혁명전통을 후손만대에 길이 빛내기 위해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몇해전 북은 《로동신문》 사설에서 혁명은 력사적계승속에 전진하며 완성된다고 지적했다. 혁명은 개척의 력사도 중요하지만 계승의 력사는 더욱 중요하다고 하였다. 계승이 없는 혁명은 미래가 없는 혁명이라고 경계했으며 위대한 계승이 있어야 혁명이 세대와 세대를 이어 승승장구하게 된다고 하면서 전통과 계승의 중요성을 비중있게 다루었다.

또한 혁명위업계승이 가장 공고하고 순결한 계승으로 되자면 그것을 참답게 이어갈 위대한 계승자가 있어야 하는것은 필수적이라고 하면서 아무리 훌륭한 위업도 위대한 계승자를 추대하지 못한다면 한갖 력사의 유산으로 남게 된다고 후계자선정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부각시켰다.

전통과 계승은 기초를 확립한다. 김일성주석은 조선로동당을 창건하고 발전시켜온 력사적과정은 결코 순탄한 행로가 아니였다고 한다. 세계의 정치정세가 복잡하게 돌아가고있는 속에서 현대수정주의자들의 온갖 궤변과 배신행위로 여러 나라들에서 로동계급의 사상과 투쟁업적이 무참하게 짓밟히고 란도질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던(쏘련의 흐루쑈브의 등장과 동유럽사회주의가 붕괴되는) 시기에도 이북은 끄떡하지 않고 건재하였다.

동유럽 여러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되고 붕괴될 때에도 동요하지 않고 력사의 모진 시련과 풍파속에서도 사회주의위업을 안정적이고 승리적으로 이끌어올수 있었던것은 자주로선을 확고하게 견지해왔기때문이였다고 이북의 민중들은 믿고있다.

이때에 발표된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론문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는 동유럽에서 일어난 사회주의나라들의 붕괴는 과학으로서의 사회주의의 실패가 아니라 사회주의를 변질시킨 기회주의의 파산을 의미한다고 예리하게 파헤쳐서 조목조목 과학적으로 증명하였으며 《사회주의종말론》을 내돌리던 제국주의세력들에게 철퇴를 안겼다.

이북은 주체사상체계의 확립을 방해하는 온갖 이색적인 사상요소가 틈타 들어오는것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았으며 사상사업을 힘있게 벌려 수령중심의 유일적사상체계를 확립하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이렇게 김일성주석의 혁명사상을 틀어쥐고나가는것을 절대적원칙으로 하고 이북의 혁명을 백전백승의 한길로 이끌어오면서 강성국가건설과 주체혁명위업을 더욱 확실하게 완성하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래서 이북의 민중들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수령관에 립각한 실천적모범을 그대로 따라하는것이 당건설의 절대불변의 원칙이라고 믿었고 그대로 따르며 실천했다. 가까운 앞날에 후손만대의 번영을 위한 강성국가건설의 위업을 이룩하려는 북조선민중들의 결심과 의지는 대단해보인다.

2010년 10월에 진행된 조선로동당창건 65돐 경축행사가 그것을 보여주었다. 바로 그 10월의 광장은 행복의 광장이였다.

10월 10일 아침, 평양의 하늘은 무척이나 푸르렀다. 이날 김일성광장에 운집한 수십만의 평양시민들은 2010년 9월에 진행된 당대표자회에서 민중들의 한결같은 의사에 의하여 변함없이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추대된 김정일국방위원장을 축하하는 한없는 긍지와 흥분속에 휩싸여있었다.

이날 진행될 조선로동당창건 65돐 경축행사를 통해 북조선의 참모습을 온 세계에 생방송으로 중계하기 위해 평양에 온 BBC, CNN 등 서방의 언론들의 모습들도 화면에 선명하게 보였다. 이들은 모처럼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듯 카메라의 초점을 이리저리로 분주하게 돌려대고있었다.

이윽고 광장안이 조용해지더니 천지를 진동하는 폭풍같은 만세소리가 하늘을 찌를듯 터져올랐다. 나는 이날 만세를 부르는 평양시민들의 모습에서 확고한 승리의 환희를 보았고 전도가 양양한 조국의 앞날을 보았다. 군민이 함께 웨치는 대교향곡의 우렁찬 함성은 10월의 푸른 하늘가에 그리고 온 세계의 진보적인류를 향하여 끝없이 퍼져나가고있었다.

이 10월의 교향곡은 정녕 조선의 위대함을 세계에 알리는 일심단결의 우렁찬 전주곡이였고 세계가 북조선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되는 승리의 서곡으로 장엄하게 울려왔다.

드디여 주석단에 환한 미소를 지으신 김정일국방위원장과 온 세계의 지대한 관심속에 있던 당중앙군사위원회 김정은부위원장이 미소를 머금은 빛나는 눈빛과 친근한 모습으로 평양시민들의 열광적인 환호에 박수로 답례를 하면서 름름하게 등장하고있었다.

와서 보고 말하라! 이북은 자본주의세계의 훼방군들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도도히 흐르는 혼연일체의 대하에서 밀려난 몇방울의 거품을 보고 어리석은 <진단>을 내리는 가소로운자들, GDP니 뭐니 하는것밖에 현실을 평가할 자막대기가 없는 자본의 노예들은 이 땅에 와보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도 조선의 강대성의 수수께끼를 풀수 없을것이다.》

자기들과 대화를 하려면 10월의 광장에서 지축을 울린 열병대오의 척척척 발걸음소리에서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완성해나가는 힘찬 진군소리를 들어보라고 하며 통일강성국가건설에 대한 포부를 기어이 활짝 꽃피워놓을 백두산장군들의 맹세를 들어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양식만 고집하지 말고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라는 구호를 높이 들고 화목하게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도 와서 보고 리해하는 조건에서, 자기들의 령도자를 우러러 만세를 부르며 흘리는 뜨거운 눈물의 순결함과 충정의 무게, 당을 어머니라 부르며 온 나라가 하나의 대가정을 이루고 사는 한식솔의 특유한 가풍을 보고난 다음에야 자기들을 리해할수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조선로동당의 선군정치, 인덕정치, 광폭정치와 이 땅의 개개인들의 운명이 어떻게 피줄처럼 련결되여있는가를 알아야 하며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는 성새가 되고 방패가 되리라는 이 나라 천만심장의 고동이 어떻게 뛰는가를 똑똑히 들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들은 흥분된 가슴을 억누르며 《기다리라 래일이여, 똑똑히 보라 세계여, 아침해가 빛나는 동방의 아름다운 나라, 조선은 강대하고 위풍당당하며 풍요하고 살기 좋은 사회주의무릉도원, 주체의 강성국가로 반드시 솟아오르게 될것이며 우리의 후손만대는 이 땅에서 길이길이 무궁번영을 누려가게 될것이다.》라고 말하고있다.

이러한 민중의 나라, 무궁번영할 조국을 이끌어나가는 령도자를 흠모하여 이미 1970년대초에 노래 《대를 이어 충성을 다하렵니다》가 나왔다. 노래 《대를 이어 충성을 다하렵니다》는 조선인민의 절절한 흠모의 마음을 반영한 노래중의 하나이다.

 

    노을이 피여나는 이른아침에

    인자하신 그 미소를 생각합니다

    고요한 밤하늘에 별이 웃을 때

    따사로운 그 사랑이 그립습니다

 

    정다운 그 품속을 멀리 떠나도

    그리움은 가슴속에 넘쳐납니다

    언제나 어데서나 가슴속깊이

    자애로운 그 모습을 그려봅니다

 

                                  …

 

노래가 나올 당시 조선인민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을 김일성주석의 후계자로 추대할데 대한 청원서와 수많은 편지들을 당중앙위원회에 보내였다고 한다.

청원서와 편지들에는 그이의 령도를 받들고 김일성주석께서 개척한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갈 백성들의 한결같은 결의들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바로 40년전의 2월은 북조선민중의 한결같은 소망과 의지가 실현된 력사적인 달이였다.

그 당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라는 최고의 존칭이자 애칭으로 불려지던 때 나온 《대를 이어 충성을 다하렵니다》의 노래를 음미해보면 그 당시 민중들의 뜨거운 마음을 알수 있듯이 오늘 《발걸음》노래를 부르는 이북민중들의 당중앙군사위원회 김정은부위원장에 대한 애정과 존경의 정서가 그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될것이다.

가요 《발걸음》은 당중앙군사위원회 김정은부위원장을 존경하는 이북민중들의 마음을 담은 노래로 오늘 널리 애창되고있다.

    

    척척척척척 발걸음 우리 김대장 발걸음

    2월의 정기 뿌리며 앞으로 척척척

    발걸음 발걸음 힘차게 한번 구르면

    온 나라 강산이 반기여 척척척

 

    척척척척척 발걸음 우리 김대장 발걸음

    2월의 기상 떨치며 앞으로 척척척

    발걸음 발걸음 힘차게 한번 구르면

    온 나라 인민이 따라서 척척척

    

    척척척척척 발걸음 우리 김대장 발걸음

    2월의 위업 받들어 앞으로 척척척

    발걸음 발걸음 더 높이 울려퍼져라

    찬란한 미래를 앞당겨 척척척

    

행복은 눈앞에 있다. 요즘 이북에서는 평범한 로동자들이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프로그람을 짜고 콤퓨터를 하는것이 일상생활로 되고있다고 하며 이제는 온 나라에 퍼진 CNC화가 무인화단계에 본격적으로 들어섬으로써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있다고 한다. 만족의 척도와 내세우는 목표의 높이가 근본적으로 달라지고있는것이 이북의 현실이라고 한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한번도 높은 연단에 올라 연설하신적이 없었지만 이북의 근로대중은 그분이 펼쳐놓은 창조의 선경들에서 그 포부와 리상을 알고 자기들을 위해 바쳐온 무한대한 사랑과 헌신의 세계를 되새겨보면서 영원히 높이 모실 결의를 다지고 실천하고있으며 이것은 곧 이북민중들의 기백이고 정서로 되였다고 말할수 있다.

이남의 반통일세력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국과 일본에 추종하여 시대와 력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반통일적이며 반민족적인 동족대결론, 전쟁대결론에 매여달리고있는데 이것을 보며 세상이 비웃고있다. 북을 몰라도 너무나 모르고있다는것이다. 혹시 그런 말을 하고싶더라도 와서 본 다음에 이야기를 해보라는것이다.

북에는 오늘 자기들의 국력이 력사이래 최절정에 올라있다는 철석같은 믿음이 있다. 수뇌부에 《대를 이어 충성을 다하렵니다》라고 맹세하는 이북민중에게 심리적교란을 목적하는 전단을 뿌려봐야 무슨 효과가 있겠는지 심사숙고해봐야 할 일이다.

평화를 원한다면 대결보다는 대화를 해야 한다. 대결정책과 외세공조의 틀을 박차버리고 민족화해의 정의로운 길로 한시바삐 나와야 한다.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6.15공동선언의 기치아래 하나로 단결하여 조국통일의 성업을 꼭 이루어내야 할것이다.

15

 

《못 잊을 삼일포의 메아리》

 

2010년 11월 29일부 인터네트신문에 김정일국방위원장이 국립교향악단의 공연을 관람하시였다는 소식이 크게 보도되였다. 당중앙군사위원회 김정은부위원장과 여러 간부들도 이 공연을 같이 관람하였다고 보도되였다.

교향악단 예술인들은 이 공연무대에 교향련곡 《당에 드리는 노래》를 비롯하여 피아노협주곡 《번영하라 조국이여》, 관현악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고맙습니다》, 《병사는 벼이삭 설레이는 소리를 듣네》 등을 공연하였다고 전하였다.

신문은 공연후 김정일국방위원장이 국립교향악단 창작가, 예술인들이 새로 창작한 교향련곡 《당에 드리는 노래》를 비롯한 종목들을 가지고 훌륭한 공연을 진행한데 대하여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였다고 전하였다.

아울러 신문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인민예술가이며 국립교향악단 수석지휘자인 장룡식이 편곡, 지휘한 교향련곡 《당에 드리는 노래》는 선군시대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기념비적걸작이라고 하면서 우리 당의 영광찬란한 력사를 대서사시적화폭으로 감동깊게 보여주는 훌륭한 작품을 창작완성한 창조집단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시고 그들에게 감사를 주시였다고 전했다.

신문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음악은 인간학인것만큼 사람들의 고상한 정신세계를 아름답고 풍만한 예술형상으로 그려내여 우리 인민의 문화정서적요구를 원만히 충족시켜야 한다고 하시면서 주체교향악을 더욱 발전시키는데서 지침으로 되는 강령적인 과업들을 주시였다고 하였다.

나는 노래를 론하기 전에 새로운 창작품교향련곡 《당에 드리는 노래》로 나라가 들썩이게 한 장룡식음악가가 누구인가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나누어볼가 한다.

2009년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때 축전조직위원회는 축전에 참가한 해외동포예술인들을 국립교향악단의 태양절기념공연에 초대해주었다. 흥분과 기대속에서 공연은 시작되였다.

국립교향악단의 여러 지휘자들이 번갈아 가며 무대에 올라와 《조선의 노래》를 비롯한 북의 노래들과 외국명곡을 수준높게 지휘하여 극장안의 많은 관람자들로부터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국립교향악단은 챠이꼽스끼의 《이딸리아기상곡》, 말러교향곡 《1번》 등 외국의 명곡들도 연주하여 조선의 음악에만 국한하지 않고 폭넓은 레퍼토리로 정열적인 연주를 하여 청중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정일봉의 우뢰소리》 등 우리 민족에게 친근감을 주는 주체의 관현악곡을 절찬리에 연주하였는데 여기서 연주된 《못 잊을 삼일포의 메아리》는 우리에게 또 다른 신선한 감명을 주었다.

관현악곡 《못 잊을 삼일포의 메아리》를 지휘하는 장룡식의 지휘봉에서 새로운 창조의 의지가 번쩍이고있었다. 그의 열정은 세차게 용솟음쳤고 그 첫소리부터 범상치 않게 울려나왔다. 그의 지휘에 따라 초가을의 삼일포를 아름답게 그려내고있는 관현악곡을 듣노라니 장군대에 올라 삼일포의 절경을 부감하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를 보는듯 했다.

지휘기법은 화려하였으며 그 전개해가는 과정에서 느껴오는 웅장함은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조선음악의 특별한 감흥을 더해주었다. 설레임과 감동으로 어우러져나오는 음향은 우리에게 새로운 자부심을 안겨주었고 관현악은 수령결사옹위의 정신을 일깨워주듯 풍만해지고있었다.

장룡식은 자기 특유의 섬세한 기교로 화려하고 담대한 연주를 전개해나갔다. 장룡식은 음표 하나하나에 숨어있는 소리까지도 빠뜨리지 않고 끌어내려는 충실성을 보여주었으며 유순하게 흐르는 서정적인 선률에서 자칫 지루하게 될수 있는 문제들을 로련하게 처리해가며 박진감을 더해주고있었다.

중후하게 흐르는 주제가락에 목관군과 화려한 바이올린군의 조화로운 접근으로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넣어줌으로써 곡의 색채를 한층더 선명하게 해주었고 신선한 분위기를 지속시켜주었다.

그날 모란봉극장에서 진행한 국립교향악단의 초청음악회는 작품도 마음에 들었고 지휘도 일품이였다.

명곡 《못 잊을 삼일포의 메아리》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정력적인 지도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의 탄생 65돐을 맞으며 1982년에 창작되였다. 전병구가 작사하고 허금종이 작곡하였다.

 

    해방된 삼일포에 단풍이 타는데

    항일의 녀전사 여기에 오셨네

    못 잊을 그날에 울리신 총소리

    오늘도 울려가네 하늘가 저 멀리

 

    항일의 명사수로 빛나던 그 모습

    푸르른 물결우에 정답게 비꼈네

    못 잊을 그날의 삼일포총소리

    충성의 메아리로 우리를 부르네

 

    동백꽃 피여나는 남해의 기슭에

    장군님 모시고 갈 그 념원 불탔네

    못 잊을 그날의 삼일포총소리

    통일의 념원담아 끝없이 울리네

 

 

《못 잊을 삼일포의 메아리》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깃들어있다. 초가을의 기운이 감도는 1947년 9월 28일에 김정숙녀사는 금강산 삼일포를 찾았다. 장군대에 올라 절경을 부감한 김정숙녀사는 아름다운 삼일포의 경치에 흠뻑 젖어들었다.

삼일포는 말그대로 한폭의 그림이였다. 김정숙녀사는 그 아름다운 삼일포의 경치를 바라보면서 김일성주석의 현지지도의 길에 같이 나선 수행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그때 삼일포의 와우도 뒤쪽에서 한떼의 물오리가 날아오더니 장군대앞에 내려와앉았다. 물우에 떠있는 물오리떼를 바라보던 김일성주석은 총을 가져오라고 하시였다. 김일성주석은 부관이 가져온 총으로 물오리를 겨냥하더니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과 함께 물오리가 물우에 둥둥 떴다. 김일성주석은 녀사에게 총을 넘겨주시며 한번 쏴보라고 하시였다. 두손으로 총을 넘겨받은 김정숙녀사는 물오리떼를 바라보았다.

총소리에 놀라 날아올랐던 물오리떼가 다시 내려와앉았는데 그곳까지의 거리는 좀 멀었다. 동행한 일군들은 거리도 멀고 물오리들이 쉬지 않고 움직이고있어서 맞히기가 어려울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김정숙녀사는 별로 겨냥하는 기색도 없이 물오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순간 물오리는 날개를 몇번 퍼덕이더니 물우에 늘어졌다. 이날의 김정숙녀사에 대한 절절한 이야기는 두고두고 후대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였다.

가요 《못 잊을 삼일포의 메아리》의 가사의 깊은 뜻은 서정성이 충만한 선률로 훌륭하게 승화되였다. 사색적으로 마음속깊게 흐르는 선률은 그날 삼일포에서 보여준 김정숙녀사의 숭고한 수령옹위와 조국통일지향의 정신세계를 체현하는데서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노래는 설레이기도 하고 때로는 격정에 넘쳐나기도 하였다.

선률은 확대된 리듬과 폭넓은 열정으로 최고조를 이룬 다음 점차 선률이 가라앉으면서 사색적인 정서로 돌아와 마무리하여줌으로써 조국통일의 그날을 앞당겨 김일성주석을 남해기슭에 모시려는 녀전사의 숭고한 마음을 감동적으로 보여주었다.

가요는 합창과 관현악형식으로 편곡되고 품위있게 형상되여 시대와 민중들의 감정을 보다 아름답게 표현하고있다. 뜻깊은 사연으로 점철되여있고 예술성이 높은 이 가요는 민중들의 뜨거운 사랑속에 오늘도 남과 북, 해외의 동포들속에서 널리 불려지고있다.

2007년 12월 가요 《못 잊을 삼일포의 메아리》는 새롭게 형상되였다. 《로동신문》의 기사에는 가요 《못 잊을 삼일포의 메아리》에 대해 그 의의를 새롭게 정리해서 내놓았다.

신문은 보천보전자악단에서 새로 형상한 노래 《못 잊을 삼일포의 메아리, 떠나는 마음》은 세상에 나온 첫날부터 만사람의 심금을 틀어잡았으며 날이 갈수록 폭풍같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있다고 하였다. 《로동신문》은 《백두산위인들의 빛나는 한생을 가장 집약적으로 총화한 선군시대의 명작》, 《완전히 새롭고 신비한 음악세계》, 《완전무결한 음악형상》이라고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이 시대의 명작 《못 잊을 삼일포의 메아리, 떠나는 마음》은 백두산위인들에 대한 우리 민중들의 다함없는 흠모심과 수령결사옹위정신의 분출이며 날로 더욱 눈부시게 발전하는 주체음악예술의 새로운 면모를 힘있게 과시하고있는 기념비적명작이라고 평가하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음악은 사람들에게 생활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풍부한 정서, 약동하는 생기, 래일에 대한 희망과 랑만을 안겨주는 인간생활의 가장 친근한 예술이라고 하시였다.

시대적정서를 노래에 훌륭히 반영하고 새것을 창조하는것은 음악예술창작사업앞에 나서는 하나의 중요한 일이라는것을 뜻하고있다.

새로 형상한 녀성4중창 《못 잊을 삼일포의 메아리》는 오늘날 이북의 음악예술이 해결하여야 할 기본주제이고 이북민중들의 정신력에서 근본을 이루는 수령결사옹위정신에 관한 문제를 음악예술적으로 훌륭히 해결한 본보기창작품의 하나라고 말할수 있다.

이 명곡에 깃든 심오한 정신을 오늘에 맞게 새롭고 폭넓게 전개해나감으로써 음악예술의 내용에서 근본문제로 나서는 예술적과제를 옳바르게 실현할수 있었으며 자신들의 어제와 오늘을 자랑스럽게 돌아보고 찬란한 미래를 확신할수 있게 한 기념비적명작으로서의 품격을 완벽하게 갖출수 있게 되였다고 이북민중은 말하고있다.

작품은 우선 시대적미감에 맞는 매우 독특하고 참신한 음악기법과 새로운 정서적표현을 강조해주고있다. 음악의 속도와 리듬은 선률의 정서적색갈과 감정을 표현하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들이다. 같은 선률도 속도와 리듬을 바꾸어놓으면 음악의 성격과 맛이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속도와 리듬은 창작과 연주에서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있다.

일반적으로 명곡들을 소재로 하여 성악곡이나 기악곡을 창조할 때 원곡의 정서적색갈을 위주로 하여 창작하는것은 하나의 관례로 되여있다.

그러나 새로 형상한 《못 잊을 삼일포의 메아리》와 같이 지난 시기 사색적으로 부르던 이 노래를 완전히 형태를 바꾸어 왈쯔의 리듬을 타도록 하고 노래전체의 정서적폭을 넓게 하여 민중들에게 새로운 모습의 음악을 보여주었다.

이북의 민중들속에 널리 알려진 명곡 《못 잊을 삼일포의 메아리》를 새로 편곡해놓음으로써 총대를 가지고 혁명의 수뇌부를 옹위하기 위하여 헌신적으로 용감히 싸운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의 수령결사옹위정신은 후대들이 따르고 배워야 할 숭고한 모범적전통으로 더 높이 떠오르게 되였다.

조선혁명의 장구한 로정에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는 날아오는 총탄을 한몸으로 막아나서 김일성주석을 보위하였다. 녀사가 쌓아놓은 수령결사옹위의 업적은 오늘도 가요 《못 잊을 삼일포의 메아리》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있다.

이렇게 주체성과 높은 예술성이 구현된 기념비적명작 《못 잊을 삼일포의 메아리》가 거둔 수령결사옹위정신의 귀중한 성과는 타고난 음악적재능과 폭넓은 정치적능력을 발휘하여 음악으로 민중들의 문화정서생활을 향상시키고 시대와 혁명을 이끌어온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탁월한 령도에서 얻어진 또 하나의 빛나는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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