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통일광증이 낳은 《5. 24억지》
한해는 365일, 손을 꼽아 세여보아도 몇분이면 충분하다.
허나 잠간이면 훑어볼수 있는 이 수자속에 민족의 운명과 관련된 가지가지의 사변들이 담겨져있고 이러한 날들이 모여 해를 이루고 세기를 이루고 력사를 이루고있다.
민족의 첫 국가 단군조선의 력사도, 강대성을 자랑하던 고구려의 력사도 이 365일속에 있고 외세에 의해 강요당한 민족분렬의 비극도 바로 이 365일과 더불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는 근 70년의 년륜을 새겨온 민족분렬의 력사속에 2010년 5월 24일이라는 수치스러운 죄악의 날도 포함되여있다.
바로 이날 극도의 반통일광증에 미쳐버린 리명박패당이 《천안》호사건을 구실로 그 무슨 《5. 24조치》라는것을 조작함으로써 북남관계에 또다시 먹구름을 몰아왔던것이다.
《5. 24조치》의 조작을 계기로 북남사이의 반목과 질시, 적대와 충돌을 조장시키기 위해 없는것도 날조해내고 부당한것도 정당한것으로 둔갑시키고 그 책임을 대방에게 무작정 전가시키는 괴뢰패당의 상투적수법이 다시한번 적라라하게 드러나게 되였다.
《5. 24조치》에 대해 말할 때면 자연히 《천안》호사건이 묻어다니게 된다.
지난 2010년 3월 26일 밤 9시경 조선서해 백령도와 대청도 근해에서 남조선괴뢰군함선 《천안》호가 원인 모르게 두동강이 나 침몰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때로부터 50여일이 지난 5월 20일 괴뢰패당이 《조사결과》라는것을 발표하였는데 결론은 《천안》호가 북의 어뢰공격에 의해 침몰되였다는것이였다.
아닌밤중에 홍두깨라 하지 않을수 없다.
사건발생초기 공화국은 비록 침몰된 함선이 남측군함이고 괴이하게도 장교들은 무사하고 46명의 애젊은 사병들만 무참하게 목숨을 잃었지만 그들이 민족의 일원이라는 점에서 있어서는 안될 불상사로 간주하고 이에 유감을 표시하였다.
또 괴뢰당국에서도 사건발생시 《북의 특이동향》이 없은것으로 보아 《북이 개입했다는 근거가 없다.》고 공언하였으며 실지 정세가 긴장할 때에 실행하는 《대북》정보감시태세인 《워치콘》도 가동시키지 않았다.
사고가능성으로도 백령도부근의 수많은 기뢰부설에 따른 《기뢰에 의한 사고》와 배가 낡은것으로 인한 《자연피로파괴》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사고수역의 얕은 수심때문에 잠수정의 기동이 어려운 대신 어뢰는 쉽게 탐지될수 있다면서 《어뢰공격에 의한 사고》는 전혀 불가능하다고 확언까지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서울에서 조심스럽게 울려나온 《북소행》설은 점차 《북의 직접개입》설로, 나아가 《북어뢰공격》으로 포장되면서 모든것이 북과 침몰함선을 련결시키는 방향으로 이어졌고 북과의 련관을 부정할수 있는 증거들은 조사대상에서 철저히 배제되게 되였다.
이러한 사전작업밑에 리명박패당은 마침내 밀실에서 《원인발표-대통령담화-국방부성명》이라는 각본을 짜놓고 여느날도 아닌 지방선거를 위한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는 첫날에 《천안》호침몰원인을 《북어뢰공격》으로 매도하는 《조사결과》를 발표하였던것이다.
《천안》호침몰사건의 진상을 객관적으로 공명정대하게 해명하자는 공화국의 원칙적인 립장이 즉시에 천명되자 궁지에 빠지게 된 리명박은 막무가내로 5월 24일 《대국민담화》라는것을 발표하였으며 뒤이어 괴뢰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안보관련장관이라는자들이 《합동기자회견》을 열고 마침내 《대북봉쇄조치》라는 억지발표를 단행하였던것이다.
그야말로 귀신도 머리를 내흔들 모략의 극치였다.
리명박의 《대국민담화》라는것은 다름아닌 저들의 날조극, 모략극의 정체를 은페해보려는 서툰 연극이였고 동족대결에 환장이 된 광신자의 악담이였으며 사건해명보다는 북에 대한 그 무슨 《응징》과 《보복》, 국제사회를 통한 《제재》를 실현해보려는 어리석은 기도의 산물이였다.
담화라는것을 다른데도 아닌 바로 서울시 룡산구에 있는 《전쟁기념관》에서 발표한것만 놓고보아도 리명박패당의 이러한 대결광기를 잘 알수 있다.
가관은 《주요전군지휘관회의》라는 전쟁모의판에 머리를 내민 리명박이가 《말을 앞세우기보다는 행동으로 분명하고 단호하게 조처할것》이라고 반공화국대결의 열을 올린데 이어 수하졸개들이 덩달아 《단호한 응징》과 《응분의 대가》를 줴쳐대며 허세를 부린것이다.
괴뢰군부는 때를 만난듯이 함선침몰일을 《치욕의 날》이라고 고아대면서 서해상에서 미제침략군 핵잠수함의 참가하에 대규모련합잠수함훈련을 강행하였으며 전연일대에서 반공화국심리전방송을 재개하는 등 분주탕을 피워댔다.
괴뢰통일부 역시 《5. 24조치》이후 북남간 일반교역과 위탁가공교역을 위한 모든 물품의 반출입을 금지하고 북에 대한 신규투자는 물론 개성공업지구에 대한 신규진출과 투자도 금지하였으며 또 개성공업지구 체류인원도 축소하는 망동을 부림으로써 통일부가 아닌 《분렬부》로서의 본색을 스스로 드러내놓았다.
이외에도 괴뢰들은 추악한 인간쓰레기들을 내몰아 북의 어뢰공격으로 《천안》호가 침몰되였다는 엉터리동영상까지 제작하여 살포하도록 하였으며 공화국선박들의 제주해협통과불허, 개성공업지구사업을 비롯한 북남경제협력교류의 전면차단을 부르짖으며 북남관계를 파국에로 몰아갔던것이다.
이것이 바로 괴뢰들이 그처럼 떠드는 《천안》호사건과 《5. 24조치》의 내막이다.
부언한다면 이 무모한 대결광기가 미국상전의 적극적인 부추김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는것이다.
미국은 《천안》호가 침몰되기 바쁘게 북의 군대가 관여했다는 여론을 조성하였는가 하면 남조선당국의 조사과정에 대해 《상당히 신뢰성》이 있다느니, 《북어뢰공격》발표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느니 하면서 북과의 강경대결에로 괴뢰들을 적극 떠밀어주었다.
남조선당국이 《천안》호침몰사건의 조사결과를 발표하면 그를 비호하는 미국의 성명이 뒤따르고 리명박의 《대국민담화》가 발표되면 그를 두둔하는 미국의 지지립장이 공개된것도 바로 상전의 《류다른 관심》의 산물이였다.
이처럼 《천안》호침몰사건과 《5. 24조치》라는것은 동족을 모해, 압살하기 위한 더러운 흉심밑에 조작된 리명박패당과 미제상전과의 치졸한 모략극으로 북남관계사에 또 하나의 특대형범죄로 기록되였다.
《천안》호사건과 《5. 24조치》는 조작경위부터 시작하여 처음부터 마감까지 허위와 날조, 억지로 일관되여있는것으로 하여 각계층의 규탄과 배격만을 받았으며 동족대결에 환장이 된 괴뢰들의 추악한 몰골만 보여주었다.
당시 《북소행》설이라는 괴뢰들의 주장은 발표되자마자 《온갖 의혹투성이의 종합체》, 《해괴한 론리에 의한 억지》 등 민심과 내외여론의 신랄한 질타속에 그야말로 동네북신세가 되고말았다.
남조선경내는 물론 미국과 서방나라들에서까지 비난과 조소가 쏟아져나왔으며 세계의 량심적인 정계, 사회계, 학계인사들이 이 사건에 대한 자기들의 견해를 무게있게 표명하였다.
벌어진 사태의 정치적배경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들과 물증들에 대한 과학적해명, 사건발생과정에 대한 객관적이며 공정한 해석에 준하고있는 그 모든 주장들을 총괄해보면 《천안》호사건이 동족대결을 위해 고의적으로 조작된 한갖 모략극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이였다.
괴뢰당국이 《북어뢰공격》설을 발표한데 대해 지어 《조선일보》까지도 《정부의 무신경과 여론결정요인에 대한 무지, 군의 무사려가 복합적으로 만들어낸 <조사결과>에 대한 불신분위기는 당연하다. <천안>함의 진상은 시간이 흐르면 반드시 밝혀지게 돼있다. 그 심판의 시각에 부끄러워 고개를 떨구지 않으려면 정파와 리념을 넘어 모두가 진상앞에 정숙해야 한다.》고 하였다.
특히 그해 9월에 발표된 《최종보고서》에 대해서는 《국정조사에 버금가는 강도로 검증》해야 한다면서 이 《리해불가능》의 자료, 《검증》결과를 보고도 북을 주범으로 본다면 기자노릇을 그만두어야 할것이라고까지 하여 언론계를 들썩케 하였다.
당시 《<천안>함폭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모든 언론은 가짜》라는 말이 남조선언론계에서 공공연히 나돈것은 결코 우연한것이 아니였다.
지금도 남조선에서는 《천안》호사건의 《북소행》설에 대한 반신반의와 의혹, 불신이 계속 표출되고있으며 당국의 《조사결과》발표를 전면반박하는 《<천안>함프로젝트》라는 기록영화까지 제작되여 방영되고있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괴뢰패당은 사건조작후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을 돌아치면서 《천안》호침몰사고가 《북에 의한것》이라고 강짜를 부리고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회부하여 《테로지원국재지정》 등 국제적제재포위망을 어떻게 하나 성사시켜보려고 어리석게 놀아댔다.
그러나 역도에게 차례진것은 랭대와 조소뿐이였다.
괴뢰패당의 이러한 몰골을 두고 남조선의 언론들은 《<천안>호침몰사건을 <북의 소행>으로 규정하고 유엔안보리사회에 상정한 리명박의 <천안>호외교가 시간이 갈수록 표류하고있다.》, 《기세좋게 출발한 리명박의 <천안>호외교가 밖에서는 뺨맞고 안에서는 뒤통수 맞는 일이 연출되고있는것이다.》, 《<천안>함침몰원인을 <북풍>조작으로 악용하려다 우리 국민들은 물론이거니와 유엔안보리사회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조차 조롱거리신세가 되여버렸다.》라고 야유조소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괴뢰들이 《북소행》설을 떠들어댈수록 《천안》호침몰사건이 공화국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는것만 증명되였으며 의혹과 불신만 더 무성해졌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날이 갈수록 허위가 드러나고 진실이 밝혀지는데 당황망조한 괴뢰패당은 《조사결과》에 의혹을 나타내는 사람들에 대한 탄압선풍을 일으켜 남조선사회에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급급하였다.
《북소행》설에 다른 의견을 제기하면 《좌익빨갱이》, 《친북》으로 몰아댔으며 《조사결과》를 비방하거나 집회를 벌리면 가차없이 진압해버렸다. 나중에는 과학적인 론거밑에 의혹을 표시한 사람들까지 모조리 잡아가두었고 저들의 날조극에 동조하지 않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북편들기》, 《북감싸기》라고 삿대질까지 해대는 추태를 부렸다.
괴뢰행정안전부(당시)는 함선침몰사건《조사결과》를 비난하는것에 대해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엄격히 단속할데 대한 계획을 밝히였으며 괴뢰경찰은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색출하는 체포소동에 나서 그해 5월말현재 10여명을 잡아가두는 폭거까지 감행하였다.
괴뢰군부것들은 조사의 허위성을 까밝힌 조사단 민간위원, 야당《국회》의원들을 비롯한 개별적인물들과 언론사들을 검찰에 기소하고 심지어 재향군인회와 성우회 등 극우익보수깡패들을 불러들여 제 목소리를 내라고 닥달질을 해댔다.
깎을수록 커만지는 구멍처럼 《조사결과》에 대한 각종 의혹들이 계속 쏟아져나오고 이에 바빠맞은 괴뢰패당이 그것을 막아보려고 발광하는 모습은 《천안》호사건이야말로 반공화국대결모략극이며 《5. 24조치》야말로 반통일광증이 낳은 억지중의 생억지라는것을 또다시 실증해주고있다.
그렇다면 리명박패당이 내외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까지 조작해낸 《5. 24조치》의 출현동기는 무엇인가 하는것이다.
그것은 단마디로 극도의 동족대결의식, 반통일광증이 낳은 필연적산물이라는것이다.
만일 《천안》호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경우 푼수에도 맞지 않게 《대양해군》을 떠들며 허장성세를 부리던 저들이 세계앞에서 깨깨 망신당할것은 물론이고 의문의 사상자들로 하여 가뜩이나 움씰움씰하던 반《정부》투쟁을 폭발시키는 계기로 될것은 자명한 리치였다.
하기에 괴뢰패당은 《천안》호사건을 공화국과 억지로라도 련결시켜 저들에게 쏠린 민심의 분노를 눅잦히고 이 기회를 리용하여 북남대결상태를 보다 격화시켜 수장된 저들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건져보려고 하였던것이다.
결국 《천안》호사건과 《5. 24조치》의 조작이야말로 극도의 반통일광기를 체질화한 괴뢰패당에게 있어서 분노한 민심을 다른데로 유도하고 민주세력에 대한 탄압과 북남사이의 대결상태를 보다 격화시키기 위한 구실을 마련하는데서 천재일우의 《기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야말로 반통일광증을 체질화한 민족반역아에게서나 나올수 있는 비렬하고도 추악한 대결방안이였다.
여기에는 또한 《천안》호사건으로 인한 《북풍》으로 박두한 6. 2지방선거에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여 민주세력보다 압도적인 우세를 차지하려는 보수패당의 교활한 속심도 깔려있었다.
당시 어느 한 야당대표가 《불충분한 조사와 여러 의문에도 불구하고 리명박대통령이 서둘러 결론을 내리고 대국민담화를 발표한것은 다분히 6. 2지방선거를 앞둔 국내용발표라고 볼수밖에 없다.》라고 질타한것은 이를 증명해주고있다.
그러나 괴뢰패당의 억지공사는 걸음마다 악사였다.
리명박패당이 그토록 《북풍》을 몰아왔건만 6. 2지방선거에서 패전의 쓴맛을 보는 결과만 초래하였던것이다.
이를 놓고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이 6. 2 지방선거에서 사실상 패배했다. 여권은 당초 리명박정권의 반환점에서 치르어지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천안>함발 <북풍> 등에 힘 입어 압승을 기대했으나 이처럼 민심의 준엄한 심판을 받으며 패배함에 따라 후반기 국정운영에 큰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라고 정평한 《련합뉴스》(2010년 6월 3일)기사의 한 대목은 리명박패당의 가련한 몰골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게다가 《천안》호사건에 대한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그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내외의 목소리가 나날이 높아져 괴뢰패당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었다.
이뿐이 아니다.
당시 괴뢰패당이 《5. 24조치》를 취하자마자 통일부를 비롯하여 보수세력쪽에서는 북이 《큰 타격》을 받을것이라고 흰소리를 쳤었다.
그러나 야권에서 《남쪽이 보는 피해가 오히려 크다.》고 우려를 표시한데 이어 《참여정부》때의 어느 한 인사도 《5. 24조치》에 대해 《상대방에게 하나의 상처를 주기 위해 우리가 열개, 스무개의 상처를 입는것과 마찬가지》라고 내놓고 비판하여 보수패당을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었다.
실지로 리명박패당이 《천안》호사건을 걸고 북남경제협력사업을 전면중단하자마자 남조선 각계에서는 그에 대한 불만과 규탄의 목소리가 하루도 그칠새없이 터져나왔다.
우선 남조선의 북남경제협력관련 기업들과 단체들이 괴뢰당국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반공화국대결소동에 반기를 들고나선것이다.
북측지역에서 경제협력사업을 추진하고있던 기업인들은 리명박《정부》의 조치는 《대북제재》가 아니라 남측기업들을 죽이는 제재조치이다, 20년간 북남관계에 기여해온 기업들의 숨통을 조이는것이라고 하면서 괴뢰통일부를 찾아가 집단적인 항의를 들이대였고 개성공업지구관련 기업들도 리명박패당이 개성공업지구를 로골적으로 페쇄하려 한다고 하면서 《대북》심리전재개를 걷어치울것을 촉구하고 《민원소송》을 제기하였다.
또한 남조선의 지방자치단체들과 일반주민들속에서도 괴뢰정부에 비난의 화살을 날리였다.
경제협력사업으로 덕을 보아오던 남조선강원도, 경기도, 인천시 등 지방자치단체들과 일반주민들은 괴뢰당국의 북남경제협력사업중단조치로 적지 않은 손실을 입었다고 불만을 터뜨리였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괴뢰당국의 조치가 북에 고통을 주는것이 아니라 지방에 경제적고통을 주고있다, 《정부》가 누워서 침뱉기를 하였다고 울분을 토하였으며 일반주민들은 북의 농토산물과 수산물반입중단으로 해당 물가가 10~30% 상승하고 그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입게 되였다, 《정부》가 아무러한 대책마련도 없이 가격상승만 부채질하고있다, 서민들의 생활에 주름살만 늘어나고있다고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였다.
그러면서 북남대결로 얻을것이란 남측의 경제적위기와 서민생활위축뿐이다, 북남사이의 경제교류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하면서 주민들의 처지는 안중에도 없는 괴뢰당국을 저주하였다.
이를 두고 남조선의 언론들과 진보적인사들은 《정부》가 《천안》호사건과 관련하여 북을 《아프게 하겠다.》며 내놓은 대책이 오히려 남측기업들의 목줄을 조이고있다, 《5. 24조치》는 북이 아니라 남측기업에게 벌을 주는 자해적조치라고 개탄하였다.
결국 리명박패당이 공화국을 경제적으로 질식시키려고 북남경제협력전면중단조치를 취하였지만 그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와 저들의 경제에 피해를 주고 괴뢰패당에 대한 남조선인민들의 원성만 불러왔던것이다.
《5. 24조치》가 조작된 후 1년이 지나 《주간동아》(2011년 8월 23일호)는 《5. 24조치》로 하여 남측에서 170억US$의 손실이 추정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외통위는 1월 25일-3월 25일 남북경협기업을 상대로 피해실태조사를 벌렸다. 넉달동안 조사결과를 분석한 최종보고서가 8월초에 나왔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남경필위원장명의로 작성한 보고서 서문은 이렇게 밝혔다.
<우리가 확실하게 아는것은 5. 24조치가 남북경협기업에 돌이킬수 없는 피해를 주었다는 사실이다. 북의 대외교역량변화를 봤을 때 정부가 의도한만큼 북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찾아볼수 없다. 남북경협기업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았는데 죽지 않고 마지못해 산다. 어렵다는 표현이 사치스러울만큼 죽거나 죽어가고있다.>》
실지로 북남교역에 종사해온 어느 관계자는 북남교역 전면중단으로 800여개 교역업체 대부분이 문을 닫았고 종업원이 일자리를 잃었다, 임금이 밀리고 법적분쟁에 휘말리는 등 극심한 고통을 겪고있다고 한탄하였으며 또 다른 관계자는 교역중단으로 시장물가, 식당밥값이 올랐다고 하면서 북의 물품을 취급하던 도매업체가 정상거래를 못하면서 류통업체도 피해를 보고있다, 《5. 24조치》로 34만명이 일자리를 잃은것으로 추정한다고 하였다.
제반 사실은 괴뢰패당이 《5. 24조치》로 얻은것은 결국 수많은 중소기업의 파산과 몰락, 수십만명의 실업자를 비롯한 막심한 경제적손해와 민생파탄, 괴뢰정부에 대한 남조선인민들의 불신뿐이라는것을 보여주고있으며 도끼로 제 발등을 찍는 결과만을 초래하였다는것을 실증해주고있다.
《5. 24조치》가 민족사에 끼친 가장 뚜렷한 해독은 다름아닌 북남관계의 파탄과 군사적대결상태의 격화이다.
6. 15북남공동선언이후 활발하게 진행되여오던 북남사이의 민간교류와 협력사업들이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하루아침에 중단되였으니 그것이 바로 괴뢰패당의 동족대결정책과 《5. 24조치》때문이였다.
이로 하여 지난 시기 진행해오던 통일행사와 력사유적공동발굴, 학술토론회, 사회문화교류사업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금강산관광은 6년째 중단상태에 있다.
남조선의 각계층과 단체들은 극악한 《5. 24조치》로 북남관계가 최악의 상태에 처하였다고 이구동성으로 목소리를 합치고있다.
지난 2012년 리명박패당의 《5. 24조치》조작 2년이 되는것과 관련하여 조국통일범민족련합 남측본부, 민주통합당, 남북경협활성화추진위원회 등은 《5. 24대북제재조치》는 리명박《정권》의 《대북대결의식》, 《흡수통일야망》의 산물이라고 규탄하면서 북남관계의 전면적인 차단으로 6. 15공동선언과 10. 4선언으로 마련된 북남화해협력의 성과물들이 모두 물거품으로 되고 통일에 큰 난관이 조성되게 되였으며 북남사이에 극도의 불신과 대결분위기가 조성되여 랭전시기에도 찾아보기 어려웠던 연평도포격전과 같은 사태가 발생하는 등 북남관계가 최악의 상황에 처하고 전쟁위험이 더욱 증대되였다고 비난하였다.
그러면서 한결같이 《5. 24조치》는 완전히 실패한 정책이라고 비난하면서 북남관계를 파국에로 몰아넣고 《대북》협력업체들을 말려죽이는 《5. 24조치》는 즉각 페기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괴뢰통일연구원의 연구위원도 《<5. 24조치>는 법적으로도 근거가 없고 균형성보장에도 크게 어긋나는 조치이기때문에 해제하는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여 괴뢰패당을 아연케 하였다.
결론은 동족대결의 인위적산물인 《5. 24조치》가 더이상 살아있을 하등의 리유와 구실도 없으며 이를 완전해체할 때만이 그로 하여 초래된 불신과 반목질시, 적대감과 대결상태를 해소할수 있고 북남관계개선의 길도 열어나갈수 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