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박근혜가 모르는척 해서는 안되는것들을 밝힌다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하늘을 못 본척 하는 어린아이처럼 박근혜는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한국》의 정치적하늘에서 망국의 역풍이 거세게 불어닥치고있는것을 모르는척 하고있다. 박근혜는 이제라도 겸손한 마음의 자세로 나라의 안과 해외에서 불어닥쳐오고있는 역풍을 살펴보기를 바라면서 국민의 정성으로 공개편지를 밝힌다.

박근혜는 《대통령》선거과정에 《헌법》과 법질서를 통채로 위반하였기때문에 진실이 없는 가짜대통령이 되고말았다.

그러므로 박근혜가 자발적으로 사퇴하지 않으면 국민들의 불복종운동으로 인하여 결국 거센 탄핵에 직면하게 될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모르는척 해서는 안된다.

박근혜는 수없이 많은 민생을 위한 공약들을 풍선처럼 떠올렸다.

그런데 그 많은 공약들은 모두다 날아나 없어지고 오히려 민생을 파탄으로 몰고가고있다. 철도, 가스, 전력, 은행 등을 민영화시키려는 흉계를 꾸미고있다. 이에 대하여 민중은 생사를 결단하는 투지로 가득차있다. 박근혜는 민중의 분노와 투지의 폭발로 인하여 반드시 위기에 당면할것이다. 박근혜는 위기를 절대로 모르는척 해서는 안된다.

다음은 박근혜가 모르는척 해서는 절대로 안되는것은 미국중앙정보국(CIA)과 미국방첩대(CIC) 이 두 단체가 근 70년동안 《한국》에서 어떻게 작용을 하였는가에 대하여 피할수 없는 력사적자료들이 발표되고있는것을 모르는척 해서는 안된다.

인간이 가는 길을 모르면서 바람부는대로 가면 모든것이 허망한것이 되고만다. 력사의 미래는 아무 뿌리도 없이 그냥 불쑥 튀여나오는것이 절대로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이 오랜 세월동안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것을 살펴보는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현대사에 있어서 미국은 단 하루라도 《한국》의 문제에서 손을 떼고 무관심하게 지낸 날이 전혀 없었다. 1945년에 제2차세계대전종식후 랭전시대가 시작되면서 《한국》의 정치는 미국의 지배를 받아야만 했다. 《한국》은 오직 미국의 리익만을 위해 말을 하고 행동을 해야만 했다. 이와 같은 력사를 간략하게 살펴본다.

(1) 1949년 6월에 안두희는 김구선생을 암살했다. 안두희는 극우단체인 백의사에 소속되여있으면서 미국방첩대(CIC)의 지시를 받고 김구선생을 암살했다. CIC파견대장 실리소령은 김구선생암살에 대한 보고서 비밀등급 3급서류를 작성하여 미국에 보고했다. 그리고 장덕수와 려운형도 역시 CIC의 지시를 받은 백의사대원들에 의하여 살해되였다. 두말할 필요없이 미국 CIC는 리승만《정권》과 밀접한 배후의 관계를 맺고있었다.

(2) 1950년대에 리승만《정권》의 정치적위기가 계속되여 4. 19가 발생했다. 그리고 1961년에는 박정희 5. 16군사쿠데타가 발생했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미국은 4. 19가 실패한 후에 5. 16군사쿠데타가 분명히 발생하게 될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미리부터 예견하고있었다고 한다.

다시말하면 미국은 5. 16박정희쿠데타가 발생하기 14개월전부터 이미 사전에 미리부터 충분한 정보를 보유하고있었으며 CIA를 통하여 서울과 미국은 군사정보를 직접 교환하고있었던것이다.

그리하여 박정희 5. 16군사쿠데타는 미군 6만의 병력과 《한국》군 60만의 병력이 배후에 버티고있는 상황에서 박정희는 오직 3 600명을 동원하여 5. 16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하는데 아주 쉽게 성공할수 있었던것이다.

1961년에 미국은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를 워싱톤으로 불러들여 《한국》의 군정에 대한 지지를 공식화하고 미국의 신형군사장비 등을 제공해줄것을 지시했다.

(3) 1979년 10월 26일에 박정희를 저격하여 죽인 김재규는 주장하기를 《내뒤에는 미국이 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박정희저격사에 대하여 놀라움이나 곤혹을 전혀 느끼지 않고 다만 사태의 수습을 계획하고있을뿐이였다. 김재규는 미국의 2중음모의 희생자가 되여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없어지고말았다.

박정희가 죽은 후에 주《한》미군 베시사령관은 임기도중에 갑자기 교체되고 후임으로 윅컴사령관이 새로 부임했다. 왜 그랬을가? 윅컴사령관은 누군가?

윅컴사령관은 주《한》미군 1기갑사단에 근무한 경력으로 전두환과 깊은 인연을 맺고있었으며 또 윁남전쟁에도 함께 참전하여 전두환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군인이였다.

그런데 윅컴 주《한》미군사령관이 새로 부임하게 됨과 동시에 전두환일당이 12. 12쿠데타를 일으켜 정승화를 몰아내고 《정권》을 찬탈한 사건이 아무 어려움없이 자연스럽게 착착 진행되였다.

박정희가 죽은 후에 최규하가 림시《대통령》이 되였다. 하지만 최규하를 완전히 축출시키고 전두환이 쿠데타인 12. 12사태를 일으킴으로써 전두환군부세력이 실권을 쥐게 되였다.

이것은 윅컴사령관이 갑작스럽게 《한국》에 부임한것과 절대로 무관하지 않았다.

미국은 박정희를 리용할 때까지 실컷 리용한 후에 용도페기처분을 하기 위하여 김재규를 리용하여 박정희를 살해했다. 그리고 그후 1980년 5월 18일에 발생한 광주 5. 18항쟁을 미국은 오히려 전두환《정권》을 등장시킬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했던것이다.

《한국》에서 시시때때로 등장하는 민중들의 민주화열풍이 미국에게 커다란 위협이 되고있다.

하지만 민주화운동이 커지면 커질수록 미국은 오히려 이것을 역리용할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고있는것이다. 이 얼마나 기막히는 비극인가?

미국이 전두환을 리용할뿐만아니라 그 후에 로태우와 김영삼으로 련계되는 미국의 기본적인 《한국》에 대한 침략과 지배정책은 한치의 변함이나 후퇴가 없이 완벽하게 진행되고있었다. 김영삼은 3당합당으로 《정권》을 잡는데 성공한 후에 만족감에 도취하여 측근들에게 말하기를 《정권을 유지하려면 CIA가 필요하지예.》라고 실언을 했다고 하는 우스개소리까지 전해지고있었다.

미국은 《한국》정치에 개입하는 방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군사적침략, 경제적매수, 사상과 문화의 친미적세뇌공작 그리고 반공이데올로기와 종교를 련결시키는 위선 등으로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여 근 70년간 《한국》을 침략하고 지배하였다.

박근혜는 이와 같은 력사적자료들을 절대로 모른척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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