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현 명 수
시내물이 지졸지졸 흘러가는 시내가에 늙은이 하나가 앉아있었다. 그는 양복바지를 허벅지까지 걷어올리고 슬관절이 툭 두드러진 바싹 마른 다리를 물우에 드리우고있었다. 머리는 은빛에 가까운 백발이였고 얼굴에는 지나간 생의 희로애락의 자취인양 실고랑같은 주름살들이 얼기설기 얽혀있었다. 맑은 물속에 정갱이까지 잠그고나서 물건너편을 응시하는 로인의 연한 눈동자에는 떨기나무의 그림자들이 비껴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도 십여년만에 처음으로 평온을 즐기는상싶었다. 가을날의 태양은 수림사이를 헤치며 골을 따라 흘러내리는 시내물우에 따사로운 빛을 아낌없이 휘뿌리고있었다. 청청한 하늘에는 목화송이같은 구름이 두어장 가벼이 떴고 미풍이 시내가의 뭇풀들을 살살 흔들어놓았다. 물소리는 쉴새없이 지졸대고 솔새의 울음소리도 쬬릿쬬릿 들려왔다.
한동안 그린듯이 앉아만 있던 로인은 흠칠 놀래였다.
그는 서서히 고개를 숙였는데 눈에 안겨든것은 발등을 쫏고 급기야 달아나는 자그마한 물고기였다. 푸른색의 등을 번뜩이는 작은 물고기를 보며 로인은 빙긋이 웃음을 지었다.
불쑥 60여년전의 일들이 머리속을 스쳤다.
그의 고향인 함경북도 부령군의 작은 산골마을로 수성천이라는 맑은 물이 감돌아흘렀다. 봄이면 노란 꽃가루가 내물우에 뽀얗게 떠돌고 가을이면 바늘같은 바늘잎나무락엽이 떠내려오는, 쌉쌀한 송진내가 바위틈속에까지 슴배여있는 수성천의 여울목은 그의 소꿉시절의 놀이터였다. 이 수성천에 버들치가 좀 많았던가! 조가비처럼 웅크린 손안에서 퍼들쩍거리던 버들치, 두개의 집게발을 위엄있게 쳐들고 어기적어기적 바위틈으로 숨어들던 가재… 괴춤을 움켜쥐고 가랭이까지 물에 화락하니 적시며 강물에서 뛰놀았고 백사장에서 딩굴기도 하였다. 순녀, 영세, 인달이… 하고 송아지적 친구들의 이름을 입속으로 가만가만히 불러보던 로인은 《유진아!》 하는 부름소리에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물이 지졸대며 흘렀고 강변의 수림이 이따금 솨- 소리를 낼뿐…
인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착각인것이다. 하기사 일흔살을 넘긴 로인을 누가 아이때처럼 《유진아!》 하고 불러준단 말인가. 아마도 그 부름은 평생 로인의 가슴속에 맺혀진 모친의 부름소리일것이다.
《유진아! …》 하고 60여년전 그날에도 그의 모친은 수성천여울목으로 나와 이렇게 그를 찾았었다.
《유진아, 우리 래일 아버지를 찾아가자꾸나. 할아버님과 할머님도 세상을 떠났다. 이젠 너의 아버지를 찾아 일본으로 가야겠어!》
어린 유진은 어머니의 시름에 겨운 표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를 찾아간다는 말에 모두뜀을 하였었다. 하긴 예닐곱살의 애어린 소년이 몇마지기 되지 않던 산골뙈기밭을 장례비용으로 저당잡힌 어머니의 시름을 어찌 알았으랴. 그리고 현해탄을 건느는 자기의 걸음이 운명적인 걸음이였음을 어찌 알았으랴.
로인은 힘겹게 다리를 너부죽한 돌우에 옮겨놓고 허리를 구부려 걷어올린 바지를 내리였다. 연회색양복바지의 정갱이부분이 거멓게 젖어있었다. 로인은 양말과 구두를 쥐고 일어섰다. 어느새 지팽이까지 손에 쥔 로인은 산천경개를 다시 한번 둘러보고 유년시절처럼 맨발로 맑은 물이 돌돌 흘러가는 시내가를 따라 내려갔다.
이 물줄기를 따라가느라면 스위스의 오붓한 마을이 나진다. 이 마을의 구석진 귀퉁이의 수림가까이에 크지 않은 려관이 있었다.
몇해전 우연히 이곳을 찾아왔던 유진은 수림속을 흐르는 시내물가에서 하루낮, 하루밤을 보냈다. 그 시내물이 고향의 수정천은 아니였지만 그후로는 고향생각이 날 때면 저도 모르게 이곳을 찾게 되는 유진이였다. 따스한 해볕이 물우에서 노니는 이곳 여울목에 발을 잠그고있느라면 흘러가버린 유년시절의 추억들이 마치도 금시런듯 삼삼히 떠오르군 했다.
이제 사나흘후에 유진은 암스테르담의 저택에서 한 교포기자와 만나야 하였다. 요즘에 와서 유진은 그 교포기자에게 자기의 여생이 모두 실려있는것 같은 심정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그 교포기자의 이름은 최윤걸이라고 하였다. 키가 훤칠하고 낯색이 하얀 그를 유진은 《킹즈》라고 불리우는 차집에서 알게 되였다. 옆자리에 앉아도 되겠는가고 친절히 묻는 신사풍의 동양인을 유진은 첫눈에 신뢰하게 되였었다. 초면의 사나이를 어떻게 신뢰할수 있었을가? 유진은 때때로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군 하였다. 그러나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군 하였다. 외로운 이민생활을 하면서 벗을 그리던 마음이 그 인상좋은 동양인에게서 혈육같은 그 어떤 느낌을 받았던것은 아니였는지… 식탁에 마주앉아 통성하는 과정에 서로가 암스테르담에서 사는 한민족, 조선민족임을 알게 되였을 때 그들의 신뢰는 더욱 깊어갔다. 그후 윤걸에게는 로인의 저택을 아무 날에나 방문할수 있는 특전이 차례졌다. 그리고 교포들이 얼마 살지 않는 암스테르담에서 그들은 착실한 벗이 되였다.
유진은 윤걸이가 조국을 방문할 예정임을 벌써 반년전부터 알고있었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유진은 마치 하느님이 자기의 기도를 알아주는것 같은 기분이였다.
윤걸은 조국으로 떠나기를 며칠 앞두고 유진의 초청을 받았다. 조국방문축하연을 겸한 만찬은 어둠이 창가에 두툼히 쌓인 깊은 저녁녘부터 시작되였다.
서로 축하의 인사가 오가고 유진이 장농속 깊숙이 간수했던 조선소주와 그의 마누라 숙향이 조리한 민족음식을 배불리 먹고나서 그들은 차잔이 있는 탁으로 자리를 옮겨앉았다. 그곳에서 유진은 윤걸의 조국방문예정일정을 물었다. 윤걸의 말을 이윽토록 다 듣고나서 유진은 조심스레 말을 꺼내였다.
《실은 조국을 방문하려는 선생에게 내 한가지 긴요한 부탁이 있습니다.》
윤걸은 우리사이에 무슨 격식이냐는듯 소탈한 미소를 지었다.
유진은 차탁우에 숙향이 가져온 CD 한장을 올려놓았다.
《이 늙은게 연구한 식물조직배양기술에 대한 연구자료입니다. 나의 반생은 사과나무의 조직배양에 대한 연구로 흘렀지요. 지금 세계적으로 기둥형사과나무의 초밀식재배를 완전히 실현하는것을 사과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기본방도로 보고 여기에 연구사업을 집중하고있습니다. 일반 사과나무는 정보당 2천~3천그루 심는데 기둥형사과나무는 1만~2만그루를 심을수 있습니다. 때문에 한그루의 기둥형사과나무에서 사과를 10kg씩만 수확해도 정보당 100t이상 수확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일 난문제는 기둥형사과나무는 곁가지가 거의 없으므로 가지자름법에 의한 묘목생산을 실현할수 없으며 접눈이 적어서 접눈에 의한 번식도 거의 할수 없는거지요. 그래서 난 조직배양기술로 기둥형사과나무접가지묘목을 생산할수 있다고 보고 연구를 심화시켰던겁니다.》
유진은 자기와 CD를 번갈아보는 윤걸에게 눈길을 두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이 연구자료를 윤걸선생이 조국에 가져갔으면 합니다.》
순간 윤걸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정말입니까?》
그러던 윤걸의 웃음이 떡 굳어졌다.
《아니, 아니될 말씀입니다. 이 연구자료야 응당 선생님이 가지고 가셔야지요. 이거야 선생님의 심혈이 깃들어있는 창조물이 아닙니까. 응당 선생님이 가지고 조국으로 가셔야 합니다. 이번 길에 함께 가기는 힘들겠지만… 제 돌아와서 꼭 선생님이 조국을 방문할수 있도록 힘써보겠습니다.》
그 말에 유진은 고개를 숙였다.
숙향도 눈굽에 흰 수건을 가져갔다. 한참후에 유진은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만 될수 있다면 제 평생소원이 풀릴것입니다. … 이런 말이 있지 않소. 여우도 늙어 죽을 때는 제 굴을 찾아간다고… 요즘은 꿈에서도 내 고향 수성천여울물에 손을 씻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그러나 아니될 소리… 난 고향에 돌아갈수 없는 몸이요.》
윤걸은 놀랐다. 그는 묵묵히 로인을 지켜보았다.
《나는 말이요…》 하고 유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뗐다.
《난 이미 오래전에 고향으로 돌아갈 배표를 제손으로 찢은 놈이외다.》
방안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고요하였다. 이윽하여 로인은 지나간 과거사를 털어놓았다.
《난 일본으로 돈벌이하러 간 아버지를 찾아 어머니와 함께 고향을 떠났소. 시모노세끼에 내려 낯설은 이역의 거리를 헤매며 한달여만에 겨우 아버지가 일하던 광산을 찾았건만 굴이 무너지는통에 그만 잘못되였더군. 어머니는 살길이 막막하였소. 그래도 고향으로 돌아갈 려비를 마련해보겠다고 아글타글 애를 썼는데 그만 미국놈 포격에 잘못되였지… 그게 아마 8. 15해방을 며칠 앞두고였을게요. 나는 일본땅에서 고아가 되였소. 부평초처럼 여기저기 떠돌면서 이집저집 빌어먹으며 살지 않으면 안되였지. 그러던 나를 한 동포가 불쌍히 여겨 데릴사위로 맞아 자기 집에 데려다 키우기로 하였소. 그가 저 사람의 아버지요.》
옛 추억을 더듬는 로인의 눈가에는 물기가 촉촉히 배여나왔다.
《장인은 자그마한 철공소를 운영하고있었소. 그는 나를 학교에도 보내주었소. 어떻게 해서든지 실력으로 일본을 이겨야 한다는것이 그의 지론이였지. 그래서 나는 그의 뜻대로 공부를 열심히 하였소. 그리고 혹까이도의 대학에도 입학하였소. 그곳에서 나는 세포유전학을 공부하게 되였소. 우리 학부에서 조선사람은 나와 박석진이라는 친구까지 해서 둘이였지. 지금도 잊혀지지 않소… 그때가 1957년 봄이였지. 평양에서 제1차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왔던거요. 그때의 감격을 어찌 한두마디의 말로 다 하겠소만…》
로인은 눈물을 닦았다.
《그때로부터 이태후 일본에서 사는 조선공민들은 사회주의조국으로의 귀국의 권리를 쟁취하였소. 난 선참으로 고향으로 돌아갈 의사를 표명하였소. 이듬해 봄 우리는 귀국하기 위해 짐을 싸기 시작하였소. 십여년만에 처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것이였지. 그런데 나의 장인은 남반부의 울산이 고향이였소. 장인은 울산으로 가겠다고 하였지. 집사람은 무남독녀였소. 나는 그야말로 운명의 갈림길에 서게 된것이요. 한동안 번민하던 나는 끝내 귀국선이 기다리는 니이가다항으로 가지 못했소. 결국 사랑과 의리를 지키자고 귀향길을 버린셈이지. … 난 남조선에서 유전학연구사로 일하면서 예속자본의 실상을 낱낱이 체험하게 되였소. 그리고 북에 고향을 둔 나를 당국측에서도 시답게 보지 않았소. 결국 늙어 닻을 내린 곳이 이 암스테르담에서의 이민생활이였구려. 나는 이 조직배양연구를 종합하여 고향에 보내려고 이 나라 주재 조선대사관의 문화참사를 찾아갔었는데 그 젊은 문화참사가 글쎄… 박인철이라는 그 젊은이는 알고보니 박석진의 아들이 아니겠소. 참 운명이란… 결국 오늘 선생에게 이처럼 어려운 부탁을 하게되는게요. …》
그리하여 윤걸은 유진의 연구자료를 가지고 조국으로 떠났고 유진은 그의 귀국을 초조히 기다리고있는것이다.
이제 나흘후에 윤걸은 네데를란드에 도착할것이다.
유진이 려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눈매가 부드러운 접수구의 처녀가 반기며 손을 내미는것이였다.
《부탁하신 비행기표입니다.》
려객기는 암스테르담비행장에 정시 착륙하였다.
여러날동안 상쾌한 수림속에서 휴식을 하고 돌아오는 유진은 몸도 여느때없이 튼튼해보였고 기분도 좋았다. 비행기에서 내려서는 그를 숙향이 맞이하였다. 50년세월 희로애락을 함께 나눠온 귀중한 벗이였다. 젊어서는 련인이였고 로쇠한 지금에 와서는 능숙한 간호부이기도 하였다. 유진과 마찬가지로 머리가 하얗게 센 숙향은 지팽이를 짚으며 비교적 활달하게 걸어오는 그를 보며 안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느때나 늙은 자기 남편을 꼭 강변에 놓고 온 아이같아 안절부절 못하는 그였던것이다.
더우기 요즘에 와서는 남편의 심장병이 도지는것 같아 잠시도 마음을 놓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스위스에서의 수림속 산책이 아마도 남편의 건강에 확실히 좋은것 같다. 얼굴색이며 걸음걸이, 팔을 휘젓는품을 보아도 떠날 때보다는 아주 건강해보이니 말이다.
그들은 나란히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마치 오래간만에 만난 젊은 련인이런듯 서로 팔을 끼고 부축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집은 높지 않은 둔덕에 자리잡고있었다. 하얀 울타리를 빙 둘러쳤고 남쪽으로 궁륭식대문을 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현관까지 포도나무덩굴이 휘감겼는데 포도송이들이 다락다락 매달려있었다. 좌우켠에는 처음 이 집을 세내던 날 떠다심은 정향나무 두그루가 있었다. 5월이면 천첩만첩으로 활짝 피여난 정향나무꽃향기가 온 뜨락을 뒤덮군 하였다. 유진로인은 집으로 들어서며 그에게로 고개를 돌리고 속삭였다.
《역시 집이 좋구만. 뭐니뭐니해도 자기 집이 제일이요… 참, 기분이 좋소구려.》
그 말에는 조금도 꾸밈이 없었다. 그리고 집안팎을 정가로이 꾸리는 마누라의 고상한 취미에 대한 례찬이기도 하였다. 숙향은 그 대답으로 유진의 팔을 꼭 당겨끼였을뿐이였다.
유진은 응접실을 지나 서재로 들어갔다. 서재의 문을 열던 그는 한동안 문지방에 우뚝 서있었다. 책상우에 놓인 한장의 사진이 눈에 띄였던것이다. 은근한 빛을 띤 은틀에 넣은 낡고 퇴색한 사진이였다. 그 사진에는 조약돌이 하얗게 깔린 여울물가에 엇비듬히 누워 배꼽을 드러내고 웃어대는 네명의 벌거숭이꼬마들이 귀염성스럽게 찍혀있었다. 얼굴이 까맣게 타고 한쪽눈을 찡그리며 젖이가 빠져 두개의 대문이만 보이는 이몸을 황하니 열고 웃는 소년, 좌측 맨끝에 거의 눕다싶이 앉아있는 장난꾸러기소년이 유진의 어릴적 모습이였다. 60여년전의 어느날 마을의 대사집에 촬영하러 왔던 읍거리의 마음후한 사진사가 우연히 찍게 된것이였는데 사진이 잘되였다면서 절반값만을 받고 나누어준것이였다. 이제는 무척 오랜 세월이 지나 누렇게 퇴색이 되고 구김살이 가고 귀퉁이가 헐어 나들나들해졌건만 유진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고향의 유물이였다. 언제인가 다심한 숙향이 그 옛 사진을 콤퓨터로 복사하여 새것처럼 재생하여왔었는데 로인에게는 사진뿐만아니라 그속의 수성천의 여울물이며 자기의 어릴적 초상마저도 생소하게 느껴져 다시 낡은 사진을 내걸게 하였던것이다. 지금도 유진은 이 사진을 보면서 고향 수성천의 여울물소리와 《유진아!》 하고 찾던 어머니의 모습, 어머니의 입김, 체취, 저녁밥을 짓는 산골특유의 내굴냄새까지도 생생히 되새기게 되는것이였다.
유진은 한순간 가슴이 묵직하게 조여들면서 왼쪽흉벽을 예리한 송곳으로 후비는듯 한 아픔을 느꼈다.
숙향은 창백해지는 유진의 얼굴을 발견하고 날쌔게 비상약을 꺼내였다. 실주름으로 뒤덮인 가느다란 손가락들을 날래게 놀리며 포장을 벗겨낸 그는 유진의 혀아래에 약을 밀어넣었다.
《여보, 몹시 피로했나봐요.》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서재문을 닫았다.
다음날도 날씨는 맑게 개였다.
유진은 숙향과 함께 정원에서 차를 마시고있었다. 향내가 입안에서 맴돌고 따끈한 음료는 목구멍을 적셔주었다. 눈부신 아침해빛이 창가에 반사되여 아롱거리고 초가을의 달작지근한 포도향기가 정원으로 풍겨왔다.
유진은 김이 몰몰 피여오르는 차를 다시 한모금 마시고나서 눈을 질끈 감고 사색에 잠겼다.
이제는 최윤걸이 돌아올 시각도 멀지 않았다. 20시간후이면 그가 이 집 대문안으로 들어설것이다. 아니 그가 곧장 여기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래동안 려행을 하였으니 피로도 풀어야 할것이다. 그때까지 제발 날이 흐리지 말아야겠는데… 아, 그대신 내가 그런 려행을 할수만 있다면… 내 생의 나머지 시간을 다 주고서라도 하루만 내 고향 수성천여울물가에 앉아있고싶구나. …
밝은 태양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유진은 하얀 꼬리연이 남실거리며 날아오르던 고향의 푸른 하늘을 추억하였다.
고향을 떠나던 그날 소꿉시절의 어린 친구들이 동구밖까지 졸레졸레 따라오며 물었었다.
《유진아, 너 언제 올래?》
《열밤 자고 올게. …》
어린 유진은 엿가락을 씹으며 쭐렁거리며 소리쳤다. 그런데 그 열밤이 근 한생이 되는 타향살이로 이어졌던것이다.
숙향은 조용히 녀성잡지를 들여다보고있었다.
문득 유진은 나직이 물었다.
《내가 스위스에 가있는 동안에 윤걸선생에게서 아무런 소식도 없었소?》
숙향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도 무엇인가 말할듯 하면서도 주저하는 눈치였다.
(웬 일일가?)
유진은 그의 손을 꼭 감싸쥐였다.
《말하오. 무슨 일이 있은것 같은데…》
《일은 무슨…》
그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아무래도 내가 알게 될 일이겠지? 지금 아는게 낫소.》
《사실은…》 숙향은 하는수없이 말꼭지를 뗐다.
《실은 조선대사관에서 사람이 찾아왔었어요. 한주일전에… 박인철이라는 문화참사가 생각나시죠. 그가 당신을 꼭 만났으면 하더군요. 내가 스위스에 갔다고 하였더니 오면 꼭 알려달라면서 명함장을 놓고 갔어요. 그의 말이 어쩐지 당신의 사과나무조직배양연구에 대해 호기심이 있어하는것 같던데… 인상이 밝고 명랑하고 또 례절이 밝은 청년이던데… 여하튼 좋은 일이겠지요.》
(박인철?! 박석진의 아들이 나를? …)
유진은 등받이에 몸을 실으며 다시 눈을 꾹 감았다.
(박석진… 그도 이젠 늙었을테지… 활달하고 강의한 청년이였던 박석진…)
유진은 10년전 박석진을 만나러 뽈스까로 간적이 있었다. 신문에서 뽈스까를 방문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기술대표단 단장이 박석진임을 알게 된것이였다. 옛 친구를 만날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비행기표를 사가지고 날아간 그였지만 석진을 만날수 없었다. 석진은 《나에게 유진이라는 참 좋은 친구가 있었다. 그와 나는 대학동창이다. 그러나 나의 벗 김유진은 내가 조국으로 귀국하던 날 죽었다. 나는 살아있는 유진을 만남으로써 벗에 대한 옛 추억을 더럽히고싶지 않다.》고 하면서 면회를 사절한것이였다.
유진은 실망감을 안고 돌아서지 않으면 안되였다. 유진에게 있어서 석진은 대학동창이기 전에 친형제같은 사람이였다. 그들은 함께 이국의 땅에서 고학의 눈물도 흘렸고 왜놈들의 인종차별과 모진 수모속에서도 서로 의지하고 도와주며 수난의 언덕을 어깨겯고 넘어왔던것이다. 그런 석진에게서 배척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유진은 자기의 인생이 더없이 허무하게 느껴지지 않을수 없었다.
석진이 말한 유진의 장례날, 그날은 바로 석진의 결혼식날이였다. 석진은 귀국을 앞두고 부랴부랴 사랑하는 조선처녀와의 혼인식을 서둘렀던것이다. 결국 석진은 신혼려행겸 귀국을 하게 되였다.
대학시절의 박석진은 숱한 처녀들의 구혼의 눈길을 받아온 총아였다.
침착하고 과묵한 유진이와 달리 석진은 걸걸하고 직통배기였으며 대학야구팀의 기둥선수였다. 하기에 전교의 교직원과 학생들치고 석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보통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그의 꺽두룩한 키, 운동복을 입고 나설 때의 근육이 불끈거리는 우람진 체구, 호탕한 웃음소리… 억센 사내다운 이 모든것이 묘령의 처녀들의 시선을 끌었던것이다.
석진에게 련정을 품은 숱한 처녀들속에는 혹까이도지사의 딸 유끼꼬도 있었다. 아침이면 눈같이 하얀 승용차를 타고 등교하는 그 유끼꼬가 석진에게 청혼을 하였다는 소문도 쉬쉬하며 돌아갔었다. 유진은 그 소문에 귀가 솔깃하여 석진에게 직접 물어보았었는데 그때 석진은 《유끼꼬는 참 괜찮은 처녀지. 똑똑하고 그리고 아름답고… 허나 그는 일본녀자가 아닌가!》 하고 대답하였다. 그후 석진은 항상 까만 조선치마저고리를 입고 다니는 음식가게집 딸을 일생의 반려로 정한것이였다.
그 석진이를 유진은 누비돗자리가 깔린 자그마한 세집에서 축하해주게 되였다.
밝은 형광불빛아래 높이 쳐들린 붉은 축배잔이며 소박하면서도 성의가 깃든 음식들, 신랑신부의 어줍어하면서도 새 생활에 대한 희망과 락관으로 떨리는 노래소리, 웃음소리, 박수소리… 신랑도 신부도 석진의 이웃들도 모두 한마음으로 즐겁게 웃고 떠들었으나 애써 미소를 지으며 축배잔을 드는 유진의 심중에는 피눈물이 흐르고있었다. 유진이가 석진이와 함께 조국으로 귀국하게 되였다는 환희로 가슴을 들먹이며 집으로 달려왔을 때 그를 기다린것은 너무도 뜻밖의 일이였다.
《이보게, 나는 아무래도 울산으로 떠나야 할가보네.》
장인은 한숨을 내쉬며 무거운 어조로 말하였다.
그가 철공소를 확장하려고 여기저기 줄을 놓아 꾸어온 돈으로 주식투자를 하였는데 그의 대리인은 모든것을 걷어안고 어디론가 종적을 감춘것이였다. 결국 장인은 철공소도 잃고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였다. 그런 그를 찾아온 한 사람이 울산의 어느 회사를 찾아가면 그 회사에서 약차한 선불금을 내준다는것이였다. 죽을수가 생기면 살수가 생긴다고 장인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수 없었다. 더우기 남조선의 울산은 장인의 고향이였다. 짐승도 죽을 때는 제 굴을 향해 돌아눕는다는데 환갑을 바라보는 장인으로서는 고향에만 돌아가면 뼈를 깎아서라도 빚을 물것 같았다. 또 선산에 묻히고싶던 평생의 소망도 자연 풀리는셈이였다.
장인은 남편과 아버지를 번갈아보며 어찌할바를 몰라 한숨만 쏟는 딸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숙향아, 예로부터 녀필종부라 했느니라. 네 남편이 북으로 귀향할 결심이라니 너도 따라가거라. 아무렴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쓸겠니?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느니라. 참고 견디느라면 조국땅의 허리를 가로지른 저 분렬의 철조망도 걷힐게고… 그럼 우리 다시 모여 살자꾸나.》
장인에게는 숙향이 하나밖에 없는 혈붙이였다. 당장 일본땅에서 생리별을 당할 판이였다. 헌데 석진의 결혼피로연에 초청받고 오던 유진은 검은 안경을 낀 한 사나이와 만났었다. 그 사나이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울산의 회사에서 장인에게 선불금을 주기로 한것은 어떤 호의에서가 아니라 유전학자인 유진이가 그 회사에 입직하는 조건부를 내걸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이 사실을 장인은 그에게 숨기고있은것이였다. 만일 이것을 모르고 훌 일본땅을 떠났더라면… 아마 빚을 물 여지도 없는 장인은 재판에 회부될것이였고 차디찬 감옥에 갇혀 인생을 마무리짓게 될것이였다. 유진은 자기의 발목을 잡지 않으려는 장인의 희생적인 사랑에 가슴이 뭉클하였다. 한편 눈앞이 캄캄하였다.
그에게는 장래를 툭 털어놓고 의논할 사람조차 없었다. 새 삶의 희열로 가득찬 석진의 가슴속에 재를 뿌릴수도 없었다.
장인은 유진에게 있어 친아버지나 다름없는분이였다.
그는 유진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었고 삶의 첫 보금자리도 꾸려주었다.
예로부터 결초보은이라는 말이 있듯이 죽은 후에 넋이라도 남는다면 그것을 장인을 위해 깡그리 바치고싶은 그였던지라 유진은 장인의 딱한 처지를 외면할수 없었다.
결국 유진은 석진의 새 생활에로의 출발을 축하하는 축배잔을 들면서 피눈물의 결단을 내렸던것이다.
가자, 울산으로! 뭇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비웃는대도 나는 장인과 숙향이를 위해 울산으로 갈것이다!
그 이튿날 유진은 야밤삼경에 가족을 데리고 니이가다항으로가 아니라 시모노세끼로 떠나게 되였다.
울산으로 온 유진은 유전학연구사가 되였다. 회사에서 준 선불금으로 장인의 빚을 물어주었고 새살림을 차릴 주택도 세낼수 있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일본말과 일본노래를 듣지 않게 된것만으로도 유진은 고국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되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혈육같았고 깍듯이 인사를 하는 연구실의 동업자들도 마치 오래동안 정을 나눠오던 벗들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의 안도감은 몇달이 지나 아지랑이처럼 사라져가고있었다.
유진은 언제부터인가 자기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이상한 사나이들을 발견한것이였다. 하루, 이틀… 그것이 한달이 지나도록 계속되자 그는 사장을 찾아가 신소하였다. 사장은 어디엔가 전화를 걸고나서 그에게 말하였다.
《유진씨, 당신이야 이북의 돈을 받으면서 공부한 사람이 아니요. 지금쯤 이북에서는 당신을 인테리변절자의 전형으로 내세우고 운명의 심판대에 올려놓으려고 하고있을거요. 그러니 당신을 초청해온 우리로서 당신을 보호하는거야 당연한게 아니요. 당국에서도 다 생각이 있어 조처한일일테니 크게 신경을 쓰지 마시오.》
그후에도 그 그림자들은 유진의 곁에서 떨어질줄 몰랐다.
유진은 불안감에 빠져들었다. 카페에 가서도 누군가가 지켜보는 속에서 음식을 먹는듯싶어 아예 식당출입을 끊게 되였다. 극장에서 곁의 사람이 별찮은 물음을 건네여도 와뜰 놀라게 되였다. 분명 뒤켠 어디엔가 앉아있을 자기의 그림자가 어떤 접선처럼 생각하지 않을가 하는 위구심에서였다. 밤에는 괴이한 꿈들이 펼쳐져 밤대로 그를 괴롭히였다. 결국 유진은 심장병에 걸려 3개월간 병원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되게까지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유진은 거리를 거닐다가 고향사람을 만났다.
타향에서는 제 고향 까마귀를 보아도 반갑다는데 한고향사람임에야! 그러나 그 고향사람의 처지는 차마 눈뜨고 못 볼 지경이였다.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찌산이 된 그는 정전후 체포되였다가 금방 출소한 상태였다. 무의무탁한 그의 처지가 하도 딱하여 세방과 일자리를 얻으라고 얼마간 용돈을 쥐여준것이 죄가 되여 유진은 경찰서의 신세를 지게 되였다. 《빨갱이》에게 정치자금을 대주었다는것이였다. 유진을 취조한 검사는 그가 동료들에게 들려준 과거사까지 꺼들면서 《불온사상자》라는 감투를 씌웠다. 즉 그가 이북에서 준 학비로 공부했다고 말한것이 이북제도에 대한 선전으로 된다는것이였다. 유진이 출소하는 날 검사는 뒤쫓아나와 바래우며 말하였다.
《유진씨가 유능한 연구사이니 출소하게 되는거요. 회사측이 당신을 보증한단 말이요. 그러니 사장님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해야 하오. 과거사는 몽땅 잊으시오. 이북에 고향이 있다는 사실, 북에서 학비를 보태주었다는 사실, 이 모든것을 깡그리 잊으시오. 새 인간 김유진이 되란 말이요.》
유진은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자신이 가련하기도 하였다. 눈이 있어도 보지 말아야 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말아야 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남땅으로 온것이 후회막급하였다.
그리하여 장인의 병사후 기회를 엿보던 유진은 밀선을 타고 암스테르담으로 오게 된것이였다.
그런 그였기에 대사관 문화참사가 박석진의 아들임을 알게 되였을 때 일종의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하면서도 그런 의젓한 아들을 키운 석진의 인생에 대한 부러움도 그들먹이 차올랐었다. 유진은 인생말년기에 배신자로 고향으로 갈 자격조차 잃어버렸다면 석진은 고향의 시내가나 흰 파도 설레이는 동해바다가에서 낚시대를 드리우고 앉아있는지 어찌 알겠는가. 바로 지금 이 시각도…
(음-)
유진은 신음 비슷한 소리를 짤막하게 내였다.
《인철선생이 더 다른 말은 없었소?》
숙향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별안간 나를 만나자고 하다니? 조직배양기술에 대한 호기심이라… 하긴 그럴수도 있지. … 여하튼 그와 만나는것은 최윤걸선생이 돌아온 다음으로 미루자. 윤걸선생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
유진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콤퓨터로 암스테르담의 세계새기술정보봉사홈페지와 접속하였다. 스위스에서의 생활은 인간생활의 일체 다반사를 잊고싶었던 일념에서부터 속세와의 련계를 전혀 갖지 않았던것이였다. 지금 그가 불쑥 알고싶어진것은 그간에 있은 세계 각국에서의 조직배양기술의 발전실태와 연구 및 생산자료였다. 홈페지를 열어나가던 유진은 가슴 철렁한 정보를 받게 되였다. 그것은 이미 3년전에 북조선에서 《사과나무접목과 조직배양》이라는 소론문이 출판되였기때문이였다.
그 필자의 이름은 박석진이였다.
유진은 노여움에 북받쳤다. 모든것이 귀찮았다. 입만 열면 꼭 새기술정보쎈터에 대한 욕설이 터져나갈것만 같았다. 3년전에 출판되였다는 론문을 이제야 게재하는게 무슨 세계새기술정보봉사쎈터인가? 《낡은자료수집보관쎈터》라고 불러야겠다!
그러면서도 유진의 가슴속에는 미련이 남아있었다.
그의 연구는 단순한 식물조직배양이 아니라 기둥형사과나무의 초밀식재배를 확고하게 담보하는 조직배양기술이였다. 그러니…
유진은 기대하였다. 그가 인생의 불꽃이 사그라져가는 황혼기에 마지막힘을 깡그리 모아 진행한 그 연구는 어떤 영예도 부귀도 바라지 않은것이였다. 그것은 스스로 귀향길을 포기하고 살아온 한생의 속죄였고 마지막 모대김이였다.
노여움에 불타던 유진의 얼굴에 한동안 애수가 비껴흘렀다.
노여움에서 자기 연구에 대한 긍지로 그리고 고향에 대한 추억으로 뻗어가던 유진의 상상력이 고향의 수성천가에 닿은것이였다. 하얀 조약돌, 사각거리는 걸음소리, 재잘거리는 여울물소리, 흰 거품, 흘러가는 종이배… 유진은 상상속에서 고향의 작은 버들치를 다시 보았다.
유진은 최윤걸을 기다렸다. 그는 유진의 마지막 희망의 불꽃이였다.
시간이 흐르고 날이 갔다.
최윤걸은 예정된 날자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곧장 유진에게로 달려왔다.
고마웠다.
하지만 그가 날라온 소식은 유진의 마지막 기대마저 산산이 무너뜨렸다. 조국에서는 이미 기둥형사과나무에 대한 자기식의 새로운 조직배양기술을 완성하였고 5cm크기의 조직배양모를 어느한 과수농장에 도입하여 넉달만에 80cm까지 키워 접눈까지 붙임으로써 묘목을 생산할수 있는 과학기술적토대를 닦아놓았던것이다.
그 연구집단의 책임자는 다름아닌 박석진이였다!
… 유진은 눈을 뜨기조차 싫었다. 창가림을 한 방안은 어둑시근하였고 방안공기는 신선하였다. 클로르헥시딘냄새가 때로 코를 자극하였다.
유진은 평온이 오기를 기다렸다. 모든 시름과 걱정을 잊고 망각의 그 세계로 빨리 가고만싶었다. 이승에 대한 미련은 한가닥도 남지 않았다. 만사가 귀찮아졌다.
침대옆에서 숙향이 한숨을 푹푹 내쉬고있었다. 최윤걸의 귀국에 잇닿은 뜻밖의 충격은 유진의 심장병을 악화시킨것이였다. 벌써 병원생활을 시작한지도 닷새가 지나가고있었다. 점적대에 매달린 액체가 한방울한방울 유진의 혈관속으로 흘러들고있었다. 그러거나말거나 유진은 까딱없이 누워만 있었다. 눈조차 뜨는 일이 없었다. 눈시울을 밀어올릴 기운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삶의 의욕을 잃은 늙은이의 자포자기였다.
갑자기 곁에서 숙향이 애써 소리를 죽여가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진은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았다. 일생을 해로하며 함께 살아온 한 녀인이 울고있는것이다. 가련한 령감의 인생을 불쌍히 여겨 울고있는것이다.
(아아, 나는 어찌하여 이렇듯 가련해졌는가!)
가련한 인생! 사는것이 죽는것보다 못한 인생! 이제는 거리바닥에 나딩구는 쓰레기처럼 하등의 쓸모도 없이 된 깽깽 말라빠진 육체… 눈을 떠 하늘을 보면 무얼 하고 발로 땅을 짚고 서면 어쨌단 말인가. 이미 넋은 지옥에 나떨어졌고 남은것은 병약한 몸뚱이뿐인걸…
인생을 이미 포기한 그였기에 숙향의 울음소리도 그를 일으키지 못하였다. 주사를 놓겠다고 간호부가 소매를 걷어올리고 피줄이 두드러지도록 하기 위해 마른 팔뚝을 비끄러맬 때도 맥없이 축 늘어질뿐이였다. 때로 숙향이 그의 가슴을 흔들어보았으나 유진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기진한 속에서도 죄의식은 유진의 가슴을 허비고있었다.
(아아, 나때문에 불행해진 숙향! 그대도 나를 따라 이민이 되였지. 저승에서라도 서로 다시 만난다면 그대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내 모든것을 바치련만… 하지만 하느님도 우리의 기도를 외면했구려. 숙향, 불쌍한 나의 녀인이여!)
그때 문소리가 났다. 유진은 분명히 그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이 소리는 그에게 아무런 련상도 감흥도 일으키지 못하였다. 다만 흐느끼는 그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가슴이 쥐여비틀리는것만 같았을뿐이다.
《선생님! …》
나직이 울리는 소리였다. 마치도 깊은 잠에 든 사람을 깨우려는듯 조심스럽게 울리는 부름소리였다.
(윤걸선생이 왔구나! 고마운분이다. 정말 그에게 어떻게 감사를 드렸으면 좋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죽어가는 이 몸이 그에게 무슨 감사를 드린단 말인가. 추한 모습으로 그의 마음만을 상하게 할뿐이다. 한데도 그는 나를 찾아오다니…)
《선생님이 아직 의식이 없으십니까?》
(저 목소리는? … 귀에 설구나. 누굴가? 누가 나를 찾아왔을가?)
《아니예요. 의사들은 의식은 돌아왔을거라고 해요. 단지 기력이 없어서인지 말 한마디도 못하고 눈도 뜨지 않는군요. 령감님이 이젠 세상을 떠나려는가봐요. …》
숙향은 더욱 섧게 흐느끼였다.
《선생님, 정신을 차리십시오!》
걱정스레 찾는 윤걸의 목소리였다.
《누가 왔는가 보세요. 대사관에서 박인철참사선생도 오셨어요.》
(오, 박인철. 그였구나. 박석진의 아들! 분명 나의 연구때문일거다. 그에게 모든걸 설명해야지. 그런즉 내게는 이승에서 할 일이 조금은 남아있었구나. 일어나야지. 그를 만나야 해.)
유진의 얼굴근육이 푸들거렸다. 숙향은 숨을 죽이고 그를 살피였다. 그러나 유진은 눈을 뜰수가 없었다.
(아아, 내 기력이 이렇듯 쇠잔해졌단 말인가?)
박인철이 침대옆으로 바투 다가앉았다. 유진은 그것을 촉감으로 느꼈다.
하지만 눈을 뜰 기력조차 없는 그가 어떻게 말을 하랴. 다만 입술을 이지러뜨렸을뿐이였다. 그 모습은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미여지게 하였다.
《여보…》 하고 흐느끼며 숙향이 말하였다.
《이보시오 참사선생, 우리 령감님을 나무람 마세요. 우리 령감님은 그때 나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오. 그 죄의식에 한생 쫓기다가 이렇게 심장병을 얻었고 지금은 죽음의 문어구에 이르렀구려. 후회란 언제나 때늦게 오는 법이니 어찌겠나요. 그게 우리 불쌍한 령감님의 인생이였는걸. 제발 나무람마오.》
《어머님.》 하고 인철은 숙향에게 말하였다.
《저는 조국에서 선생님에게 보내는 말을 전하자던것인데… 그만 제가 늦은가 봅니다.》
《조국에서요? …》
(조국에서? …)
《윤걸선생에게서 이야기를 다 들었습니다. 저희들이 일을 쓰게 못하였습니다. 그러다나니 선생님 같으신분이 중태에 빠지게 되였습니다.
어머님, 조국은 선생님을 탓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머니조국은 활짝 문을 열고 어서 오라고 부르고계십니다.
요전에 제가 찾아갔던것은 선생님께 이번에 평양에서 진행되는 조선생명공학연구사들의 학술연구토론회에 초청하는 초청장을 드리자던것이였는데 그만… 조국에서는 선생님께서 고향도 방문하고 명승지관광도 하시라고 선생님과 어머님을 부르고계십니다.》
《흑-》
숙향은 오열을 터뜨렸다.
유진은 몸이 붕 떠오르는듯싶었다.
(내가 환각에 잠겼구나. 참사선생이 정말 그렇게 말했을가? 아니… 환각이다. 이미 천당의 문이 열린 모양이다. 헌데 저건 뭔가? 저건… 그래, 저건 수성천이다. 내 고향 수성천이야! 그래, 저 아이들은 인달이, 영세… 다 있구나. 아, 저기 흰 저고리를 입은 녀인이, 그래, 어머니다. 나의 어머니! …)
입원실안에 있던 숙향과 윤걸, 인철은 불쑥 울리는 소리에 놀랐다.
《어머니!》
그들의 시선이 동시에 유진의 얼굴우에 모였다.
유진은 희맑은 눈을 뜨고 천정을 올려다보고있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비끼기 시작하였다.
《어머니! 어머니! …》
* *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다음해 봄날이였다.
유진은 숙향과 함께 조국으로 가기 위해 비행장으로 향했다.
그가 병원에서 퇴원한것은 여러달전의 일이였지만 유진은 조국으로 갈 용단을 선듯 내리지 못하였었다.
족제비도 낯짝이 있다는데 어찌 배은망덕한 이놈이 빈손으로야 감히 조국으로 간단 말인가.
대사관의 박인철참사가 찾아가고 윤걸이 권유해도 유진은 요지부동이였다. 그런 그에게로 며칠전에 박석진의 편지가 날아온것이다.
《유진이, 나를 용서하라구…
임자에 대한 이야기를 아들에게서 다 들었네. 너무 가슴이 미여져서 난 며칠밤을 꼬박 뜬눈으로 새우다가 이렇게 펜을 들었네. 이제야 펜을 들고 자네에게 보낼 글을 쓴다고 생각하니 더욱 죄스럽고 면목이 없구만. 내가 그때 신혼기분에 들뜬탓에 구렁텅이에 떨어지는 자네를 외면한것만 같고… 그래서 자네의 인생을 꼭 내 손으로 망쳐놓은것만 같은게… 왜 임자의 덜미를 잡아서라도 함께 귀향하지 못하였단 말인가.
사실 난 그때 임자를 평생 용서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네. 그래서 뽈스까로 나를 찾아왔을 때도 만나지 않았던걸세. 임자가 몇푼의 돈에 유혹되여 조국의 은혜를 배반한줄로만 알았던거지. 조국이 전후복구와 사회주의건설로 허리띠를 조이면서도 학비에 보태라고 보내준 교육원조비를 받고 임자가 흘리던 눈물도 모두 허위였다고 단정해버렸단 말일세. 그러나 어머니조국은 자네의 지난날을 깡그리 용서해주었구만. 뒤늦게라도 고향을 잊지 않고 조국앞에 조금이나마 보탬을 주려고 애써온 임자의 그 속죄의 마음을 조국은 그 무엇보다도 귀중히 여겨주었단 말이네.
유진이, 오라구. 어서빨리 조국으로 오라구. 와서 우리 다시 시작해보자구. 우리의 생애가 비록 얼마 남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 여생에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우리 함께 의논해보자구. 임자가 암스테르담에서 홀로 무엇인가를 해보겠다고 아글타글 애썼다는 사연이 나의 가슴을 찢네. 이제라도 친구의 의리를 다하고싶네. 오라구, 어서!…
내 임자의 고향에서 기다리겠네.
산골안개 흐르는 아침에 우리 수성천여울물에
발을 담그고 나란히 앉아 우리 고향과 조국과
그리고 후대들에게 물려줄 새로운 열매를 만들어보세나. …》
비행장에 도착하여 승강대로 오르는 유진의 가슴은 후두둑 널뛰고있었다. 그의 귀전에는 벌써 수성천의 여울물소리가 돌돌 들려오고 고향산천이 솨- 소리내여 설레이며 반기는 정경이 눈앞에 환히 보이는듯싶었기때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