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봄하늘에서 울려온 폭음
장 수 봉
그날은 청명한 날이였다. 파랗게 개인 하늘엔 봄날의 희부연 안개마냥 흰구름 몇송이만이 가벼이 굼실거리고있을뿐이였다.
아직은 볼에 닿는 바람이 싸늘했고 산과 들에 새싹이 내불리기에는 때이른무렵이였다.
하건만 사람들은 싱싱한 하늘의 다함없는 청신함에 눈을 비비며 너나없이 봄의 전조를 느끼고있었다. 립춘이 하루 지난 때여서였을가.
하긴 립춘이라면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 봄이 찾아드는 절기이다. 해마다 이날이 오면 우리의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은 집안팎을 깨끗이 손질하고 새해의 소원과 새봄을 축복하는 립춘글을 써서 대문이나 기둥에 붙였다지 않는가.
허나 그날 사람들의 가슴가슴이 봄의 훈향을 머금고 류달리 설레인것은 다만 대물림하며 전해온 조상의 유습때문만은 아니였다. 그보다는 불신과 대결로 얼어붙었던 삼천리강토우에 훈훈하게 울려퍼진 화해와 단합의 서곡때문이였으리라.
올해의 첫아침 내외에 천명하신 절세의 애국자의 뜨거운 호소에 이끌려, 조국통일과 평화번영을 열망하는 7천만의 절절한 념원에 떠받들려 마침내 그날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을 위한 북남적십자실무접촉이 판문점에서 열렸던것이다.
희소식이였다. 겨레의 가슴속에 봄의 훈기를 안겨준 희망의 서곡이였다. 어디를 보나 웃음과 화기가 떠돌았다. 단지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에만 머무를것이 아니라 외세와 야합하여 동족을 해치려는 핵전쟁연습을 중단하고 《대북제재》놀음을 걷어치워야 한다는 격앙된 목소리들이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터져나왔다. 사람들은 《화해》와 《단합》, 《통일》이라는 단어를 립춘글인양 마음속에 써붙이며 온 강토가 환희에 끓어넘치던 6.15의 그날을 새삼스럽게 떠올려보고있었다. 바야흐로 이 땅우에 거창한 연두빛파도로 도래할 민족단합의 새봄을 가슴부풀도록 꿈꾸어보고있었다.
그런데 이 무슨 일인가. 봄의 서기가 떠돌던 조선반도의 하늘을 뒤흔들며 난데없이 스산한 폭음이 메아리쳐왔으니 말이다. 미국의 《B-52》핵전략폭격기편대들이 북을 겨냥한 핵타격연습을 하기 위해 조선서해 직도상공에 날아들었다는것이 아닌가.
온 겨레가 경악했다. 봄볕이 비껴드는듯싶던 조선반도는 삽시에 들이닥친 긴장과 불안으로 하여 다시금 한겨울로 되돌아가버리고말았다.
《B-52》폭격기라는게 과연 어떤것인가. 대륙간탄도미싸일, 핵잠수함과 함께 미국이 이른바 《3대핵전력》이라고 떠들어대는 전략핵무기가 아닌가. 지난해 조선반도의 전쟁위기를 극도로 고조시켰던 가증스러운 주범이 아닌가.
그렇듯 흉악한 대량살륙무기를 불신과 대결의 악순환이 지속되던 이 땅우에 모처럼 화해의 분위기가 깃들기 시작하던무렵에, 그것도 북과 남의 대표들이 판문점에 모여앉아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상봉과 관련한 합의를 이룩해나가던 그 시각에 수천㎞의 태평양을 넘어 우리 겨레의 머리우에 날려보내다니.
실로 억이 질리고 분통이 치밀어오르는 일이였다. 그날 《B-52》의 폭음은 흡사 피에 주린 야수의 울부짖음마냥 삼천리강토우에 살벌하게 뒤울려갔다. 그 폭음에 치를 떨며 공화국사람들은 두세기전 대동강에 기여들었던 《셔먼》호의 검은 흉체를 떠올렸고 지난 전쟁시기 이 땅의 도시와 마을들을 무차별적으로 초토화하던 미제공중비적들의 살기어린 굉음을 상기했다.
비단 북녘뿐이였으랴. 남녘의 민심도 《해도해도 너무 한다.》, 《하필 리산가족상봉회담날 핵폭격기 띄웠나?》, 《미국, 몽니를 부리는것인가?》, 《하늘로부터 날아오는 전쟁의 불씨 <B-52>투입 중단하라!》고 웨치며 울분의 함성을 높였다.
하건만 미국의 오만무도한 행보는 멈춰설줄 몰랐다. 공화국의 통큰 용단에 의해 마침내 북과 남사이에 화해의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하자 미국무장관 케리는 작심하고있었던듯 공화국을 《악》이라고 헐뜯으며 또다시 이 땅우에 긴장과 대결의 찬바람을 몰아왔다. 어디 그뿐인가. 미행정부의 고위외교당국자들이 문돌쩌귀에 불이 일게 기여들어 《핵문제를 떠난 관계개선은 있을수 없다.》느니, 《대북접근은 한미관계를 시험할수도 있는 움직임》이라느니 하고 피대를 돋구어대며 남쪽당국을 압박하고있다니 참으로 조상들의 표현을 빌려 말한다면 제 못 먹을 밥에 재를 뿌리는 비렬한짓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무엇때문에 미국은 이 땅에 화해의 봄이 오는것을 그처럼 못마땅해하는것일가. 우리 겨레가 화해하고 단합하는것은 미국이 념불처럼 외워오던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과 그다지도 모순되는 수화상극이란 말인가.
불현듯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쓰라린 상처로 새겨져있는 타프트-가쯔라협정에 얽힌 비화가 떠오른다.
1905년 7월 29일 루즈벨트 미국대통령의 특사였던 미륙군장관 윌리엄 타프트와 일본수상 가쯔라 다로사이에 벌어진 도꾜비밀회담에서 일본이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식민지통치를 인정하는 대가로 미국은 조선에 대한 일본의 《보호통치》를 인정한다는 밀약이 맺어졌다는것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당시 미국은 조선봉건정부와 외교관계를 맺고있던 나라였다. 1882년에 체결된 조미조약 제1조에는 두 나라가 서로 영원히 《평화》롭고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며 만일 다른 나라가 두 나라가운데 어느 한 나라에 대하여 멸시하거나 불법행위를 할 때에는 반드시 서로 돕는다는 허울좋은 문구가 명기되여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프트와 가쯔라사이에 맺어진 밀약내용을 보고받은 미국대통령 루즈벨트는 《우리의 립장이 더는 그처럼 정확하게 언급될수 없다.》고 하면서 곧바로 도꾜에 전보를 날려 밀약이 미국정부의 공식적인 뜻임을 표명했다고 한다. 무엇때문이였던가.
그 시기 미국의 대외팽창전략에서 주되는 관심사는 광대한 중국시장과 그 전진기지로서의 필리핀이였다. 그런데로부터 미국은 일본을 내세워 중국 동북지방에서 로씨야세력을 밀어냄으로써 장차 동북아시아를 제패하기 위한 유리한 발판을 마련할 목적으로 일제의 조선강점의 공범으로 나섰던것이다. 저들의 국익을 위해 조선봉건정부와 맺은 조약을 헌신짝처럼 차버린것이다.
그런줄도 모르고 로일전쟁에서의 일본의 거듭되는 승전앞에 초조해하던 조선봉건정부는 미국대통령 루즈벨트의 중재로 포츠머스에서 로일간에 강화회담이 진행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구세주를 만난것처럼 환성을 올리며 미국에 밀사를 파견한다, 루즈벨트의 큰딸을 초청하여 환대를 베푼다 하며 한바탕 분주탕을 피웠다니 실로 기가 막히는 일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위선적인 정체를 간파하기에는 너무도 무력하고 어질어빠졌던 조선봉건정부로서는 포츠머스회담의 중재자인 미국대통령이 조미조약에서 약속한바대로 조선의 독립을 보전하기 위해 적극 힘써주리라 기대해마지 않았을것이다.
만일 그때 고종황제가 타프트와 가쯔라사이에 벌어진 모의를 알았더라면 그리고 루즈벨트가 이미전에 《미국은 조선인들을 위해 일본에 대항할수는 없다.》고 언명한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 심경이 어떠했을가.
그로부터 몇달후 일제에 의해 《을사5조약》이 날조되기 바쁘게 미국은 조선에서 제일먼저 자국의 공관을 철수하였다. 일본의 조선강점을 맨 선참으로 인정하고 조선과 외교관계를 단절한 최초의 나라가 바로 미국이였다는것이다. 미국의 대조선정책의 진면모를 적라라하게 보여주는 실례라 해야 할것이다.
《력사는 사람을 지혜롭게 한다.》고 어느 현자는 말했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미국의 행동기준은 자국의 리해관계이다.
어제날 미국이 약소국을 배신하고 우리 겨레를 일본에 제물로 내던졌던것도 그리고 오늘도 미국이 우리 민족의 내부문제에 함부로 끼여들면서 동족의 화해와 단합을 한사코 가로막아나서고있는것도 다름아닌 세계제패라는 저들의 탐욕스러운 국익때문인것이다.
그렇다, 미국의 국익앞에 세계는 없다.
미국의 국익앞에 이 땅의 평화와 통일도 없다.
그네들의 피묻은 국익앞에서 우리 겨레의 운명은 한갖 흥정거리요, 손끝에서 튕겨난 주산알에 불과할따름이라는것을 지나간 력사는 생생히 고발하고있다.
하거늘 아직까지도 력사의 엄혹한 교훈을 깨닫지 못한채 《자유》와 《평등》, 《세계평화》와 《인권》을 떠드는 미국의 위선과 기만에 현혹되여 살아간다면 과연 100여년전의 비운의 주인공들과 다를바가 무엇이랴.
봄하늘에서 뒤울려온 그날의 폭음을 생각하느라니 우리 민족끼리라는 여섯자의 글귀가 천근만근의 무게로 가슴속에 새겨져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