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일화〕
숙종왕을 뉘우치게 한 소설
숙종왕(1674-1720년)은 성이 독같이 났다.
《그놈의 성 김가를 지워버리고 그저 이름만 쓰도록 하라.》
일인즉 대제학, 판서의 벼슬에까지 올랐던 김만중(1637-1692년)이 감히 임금의 처사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참소를 하는데 참을수 없어 관직을 떼고 멀리 선천에 류배를 보내기까지 했었는데 이번엔 인현왕후 민씨를 페하고 후궁인 장씨를 왕후로 삼은데 대해 또다시 참소해온것이였다.
민씨로 말하면 김만중의 조카딸이였으나 그가 왕후로 있을 때에도 김만중은 인척관계에 치우쳐 왕궁의 부패타락한 처사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래서 왕궁의 이러저러한 비사를 간해나섰다가 그만 왕의 비위에 거슬려 평안도 선천에 귀양을 가게 되였던것이다.
그후 왕은 인현왕후를 마주보기가 멋했던지 한해만에 인차 김만중을 류배지에서 풀어주었다. 그런데 두달도 채 못되여 또다시 참소해온것이 아닌가.
(제까짓 놈, 내가 민씨를 페하고 장씨를 왕후로 앉힌들 어쨌단 말인가. 아직도 정신이 덜 들었군.)
시어미 역정에 개배때기 찬다는 격으로 참소를 받아들인 궁성관료들을 한참이나 들볶아댄 숙종왕은 당장 김만중을 멀리 남해에로 다시 류배보내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가만, 문서를 꾸미되 절대로 성을 쓰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놈에게는 그 성도 아까우니까.》
왕의 령이 내리자 김만중은 멀리 남해에서 두번째 류배살이를 시작하게 되였다.
그로부터 몇년후 어느날 궁성에서 나도는 소설 《사씨남정기》를 읽고 소설에 묘사된 사씨의 불우한 운명과 그의 인간됨에 깊이 공감된 숙종왕은 그 소설의 경위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자기가 류배지에 처넣은 김만중이 썼다는것이 아닌가.
깊이 생각되는바가 있어 숙종왕은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장희빈대신 이미 세상을 떠난 민씨를 다시 왕후로 회복시켜주었다.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김만중의 정의의 필봉이 마침내 망두석같은 왕의 마음도 움직이게 한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