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민족공조는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김진명의 장편소설 《무궁화꽃이 피였습니다》(1-3권)에 대하여-
김 성 희
환상은 현실속의 미래이다. 그것이 미래의 현실로 될것인지 말것인지 하는것은 미정이지만 그 환상의 립지가 오늘의 현실이고 현실에 살고있는 한 인간의 의식이라는 점에서 그자체도 결국은 현실적인것이라는 점만은 의심할바 없다.
장편소설 《무궁화꽃이 피였습니다》는 남조선 지성인의 현실적인 환상의 반영인것으로 하여 관심을 끈다.
이 소설에서 어디까지가 직접적인 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환상적인 미래인지를 가르는것은 어렵다. 소설의 주인공은 《특출한 물리학자》 리용후인지 아니면 그의 행적을 추적하고 자기희생적인 《애국적장거》로 민족의 머리우에 드리운 위기를 타개한 기자 권순범인지 하는것은 더 론의해보아야 할 문제이지만 필자의 주견에 의하면 리용후는 현실적주제의 담당자이고 권순범은 환상적주제의 담당자이다.
무엇보다도 리용후의 운명선에 체현된 인간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강대국들에 의해 롱락당하는 남조선의 한 지식인의 비극적운명문제이다.
이것은 본질에 있어서 민족의 자주권문제, 민족의 자주권과 개인의 삶의 가치에 관한 문제로 된다.
《겨레를 위해》 자기의 지성을 깡그리 불태우고 나중에는 생명까지 바친 리용후의 형상은 무척 감동적이다.
오랜만에 고국에 돌아와 신윤미와 함께 시골려행을 하는 길가에서 국민학교 어린이들이 공부하며 뛰노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즐거워하던 리박사 그리고 도시락을 못 싸온 가난한 아이들이 점심대신 물배를 채우고는 우두커니 하늘을 바라보고 선 모습을 보며 두눈에서 주르르 눈물을 흘리던 리박사… 그 인간사랑의 순결한 웃음과 눈물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노벨상을 마다하고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명예와 재부를 버리고 미국을 떠나 고국을 찾아와 핵개발에 헌신한 리용후의 결단이 제 한몸을 바쳐 제 겨레를 살리자는 고결한 민족애의 발현이였다는것이다. 하기에 그는 박정희앞에서 그토록 절절히 《유신》독재의 포기를 요구했고 미국과 일본의 《핵우산》이 아니라 오직 자체의 강력한 핵무기만이 민족을 지키고 구제하는 길임을 력설하였다. 그의 재능, 그의 자아희생은 응당한 결실에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의 생명, 그의 리상은 란도질당하였다. 우리 민족의 부강번영을 바라지 않는 미국은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는 나라도 민족도 안중에 없는 매국역적들을 리용하여 그의 생명을 빼앗고 저들의 뜻에 기울어져간다고 하여 한때 제놈들의 심복이였던 《대통령》까지도 제거하였다. 이것이 현실인것이다.
민족의 자주권이 유린당한 식민지하에서는 일개인의 리상과 포부가 아무리 애국애민의 열정에서 움터나온 숭고한것이고 세기적인 천재와 거인적인 노력이 안받침된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실현불가능의 허상에 불과한것이다. 그가 한생을 다 바쳐 아끼고 사랑해준 겨레들까지도 그의 이름, 그의 행적을 모르고있는것이다. 그의 생은 어떤 가치를 가지고있는가. …
소설에서는 리용후의 비극적운명을 통해 미국은 백년가도 민족의 원쑤이지 벗이 아니며 민족의 자주권이 없이는 개인의 삶도 빛날수 없다는 진리를 말하고있다.
그렇다면 권순범의 형상속에 심어진 인간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방아닌 우방, 미국의 손탁안에서 으깨여진 리용후의 리상과 포부를 재생시키고 실현시킬 방도에 대한 문제이다. 어떻게 해야 민족의 자주권을 살리고 애국에 바쳐진 고결한 인간들의 삶의 가치를 력사앞에 옳바로 인식시킬것인가. 이것이 평범한 기자 권순범의 형상에 부여된 과제이다.
그의 시점은 초기에 심히 회의적이고 적지 않게 이지러져있다. 그는 북에 대한 리해에 있어서 세속적인 편견에 젖어있고 미국에 대한 리해에서도 심히 일면적인 환상에 잠겨있다.
그러나 리용후의 수수께끼같은 죽음의 원인을 해명해들어가는 과정에 그는 미국과 일본의 심장부에 뚫고들어가 우리 조국을 둘로 갈라놓고 저들의 리익을 위해서라면 사정없이 황페화하고 궁극에는 이 지구상에서 소멸해버리려는 승냥이들의 본질을 꿰뚫어보게 된다. 그는 핵문제를 둘러싼 렬강들의 행위속에서 믿을것은 오직 한겨레, 한민족뿐이라는 의식개변의 폭풍을 체험한다.
《어째 우리가 칠천만민족이야? 오천만이지.》
《이 사람, 아 북의 주민은 우리 민족이 아닌가?》
《동포이기는 하지… 자, 한잔 들자구.》
미국에서 대석과 나누는 이 대화에서 알수 있는것처럼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그의 생각은 조국이 분렬된이래 남조선사회에 집요하게 부식된 극심한 편견에 기울어져있다.
《동포이기는 하지…》
그렇다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러던 권순범은 마침내 외세가 아니라 민족공조만이 내 나라, 내 민족을 살리고 분렬된 민족의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길임을 인식하게 되며 민족의 리익이 침해당할수 있는 위급한 시각에 죽음을 각오하고 미국의 첩자 리한수를 추격하여 비행기에 오르며 과감히 리한수를 사살하고 비행기를 랍치하여 북으로 오는것이다.
북은 그의 뜻대로 모든것을 순조롭게 해결해주며 마침내 불가사의한것으로 예정되였던 전쟁의 참화를 막고 위기는 극복된다.
그의 시야에서 북의 실상을 뒤덮었던 의혹과 불신의 안개는 서서히 걷히여버린다. 북과의 사심없는 합작에 의해서 비로소 리용후의 리상과 포부도 현실적으로 실현되며 리용후와 그의 딸 미현의 생애도 진정으로 가치있는 삶의 새 궤도에 들어서는것이다.
소설에서는 이 두사람의 형상선의 교차속에서 현대력사의 중요한 결론을 도출해내려고 하였다.
그것은 외세와의 공조가 아니라 우리 민족끼리의 공조에 의해서만이 겨레의 운명도 민족의 장래도 옳바로 개척할수 있다는것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시대는 끊임없이 전진하고있으며 문학예술에 대한 인민의 요구도 날을 따라 더욱 높아지고있다. 문학예술은 마땅히 시대와 함께 전진하여야 하며 자주성을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을 선도하여야 한다.》
이 소설이 가지는 현실적가치는 작가가 시대의 요구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당시 남조선사람들이 아직은 완전한 현실적실체로 인식하기 어려웠던 사회적문제를 제기하고 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를 확립하는데 이바지하는 작품을 창작함으로써 시대의 요구에 따라 민족의 자주성을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을 선도하려는 대담한 의도를 실천에 구현한데 있는것이다.
물론 그것은 이 소설이 창작되던 20세기 90년대초의 현실에서는 아직 뚜렷한 실체로 형상해내기 어려웠다. 그리하여 작가는 권순범의 선을 환상의 세계에로 이끌어가며 일본의 조선침략과 민족사멸위기라는 극단적인 정황을 조성해놓고 미국을 비롯한 주변강대국들의 패권적, 리기적동향을 예상한 급진적인 극적사건을 그려내게 된다.
여기서 일본이 우리 민족의 철천지원쑤임은 물론이고 미국도 역시 일본과 한짝패가 되여 우리 민족의 멸살을 꾀하는 사악의 무리임이 확증된다.
북과의 합작으로 마련된 강력한 핵억제력에 의해서만 강대국을 무릎꿇게 하고 민족의 위기를 해소할수 있게 된다.
과거(리용후)와 현재(권순범), 현실(리용후의 비극)과 환상(권순범의 승리)의 교차점에 응결된 작품의 문제성은 실로 심각하다. 그것은 리미현, 신윤미 그리고 박준기와 그의 유자녀들로 대변되는 남조선의 인민대중의 삶과 운명을 결정지을 민족의 참된 자주권문제인것이다.
소설에서는 이 문제를 1993년의 급박한 정황에서 세계적문제로 돌출되였던 미국에 의해 산생된 북의 《핵문제》에 걸어 해명하고저 하면서 온 민족이 미제와 일본군국주의 그리고 그밖의 주변대국들의 야망에 대처하여 민족공조에 기초한 자체의 핵억제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을 확인하였다.
이 주장은 불피코 북에 대한 태도문제, 참다운 민족의식에 대한 문제로 제기되지 않을수 없다.
소설에 묘사된 1993년의 정세는 동족인 남조선사람들에게도 실로 심중한 요구를 제기하고있었다.
미국이 북에 대한 《핵사찰》을 강요하고 무조건적인 《핵계획포기》를 강요하고있는 조건에서 남이 어떤 립장을 취해야 할것인가.
소설에서는 미국이 남조선에 자기의 핵무기를 배비해두고있는것을 부인도 시인도 안하는 조건에서 《핵문제》에 대한 남조선당국자들의 견해를 놓고 권순범의 심리에 찾아든 실망과 의혹을 비교적 생동하게 그리고있다.
《지난날의 력사속에서 같은 나라, 같은 민족이면서도 갈라져있었던 경우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다시금 결합하여 강성해지는 국가는 비록 갈라져있을 때라 하더라도, 당장 눈앞의 상호위협과 안전보장에 급급하여 주변의 강대국과 제휴하여 같은 민족에게 대응하는 경우는 없었다. 오직 망해가는 나라만이 자신의 형제에 대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외국과 제휴를 하고 그러다가 외국의 간섭에 시달리고 사정에 변화가 생겼을 때는 어이없이 무너져버렸던것이다.》
순범은 일반적력사법칙의 관점에서 북의 《핵문제》에 대응하는 남조선당국자와 안기부장의 대화에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외세를 등에 업고 외세의 리익에 추종하는것은 결국 외세에 어부지리를 주는 행위이외에 달리될수 없다.
바로 여기서 애국과 매국이 갈라지며 민족주체의식과 사대의식이 대립하는것이다.
작품은 바로 이 분기점에 서서 우리 민족의 분렬이 지속되고있는 책임을 외세뿐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내부에서도 찾게 함으로써 참다운 민족의식의 지양을 촉구하고있다.
미국은 우리 공화국의 군사력이 《남침》의 도구라고 설교하였고 남은 그것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여 우리의 군사력에 경계심을 키워왔다.
물론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평화를 사랑하는 인류와 민족의 지당한 념원이고 옳바른 지향이다.
그러나 민족을 겨냥한 적의 막강한 핵위협앞에서 그것이 선차적인것으로 될수는 없다. 선차적인것은 민족의 안전담보이며 그것은 세계최대의 핵보유국인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핵위협부터 해소하는것이다. 미국은 일본의 방대한 플루토니움반입행위는 눈감으면서도 왜 공화국북반부에 평화적인 핵활동마저도 포기하라고 강요하는것인가.
소설은 여기에 초점을 박고 핵문제와 관련하여 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질것을 밝히고있다.
만일 공화국이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미국, 일본과 대응하지 않았다면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되였겠는가. 그것은 소설의 후반부에 그려진 일본의 불의적인 독도침략과 련이은 남조선산업중심지들에 대한 폭격장면에서 밝혀진다. 미국은 이것을 묵인하고 오히려 은근히 부추기였다. 북과 남이 공동으로 개발한 강력한 최첨단미싸일기술과 핵대응에 의해서만이 민족의 안전은 고수될수 있었다.
작품이 북에 대한 태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북의 무장력이 단순히 북만이 아니라 온 민족의 안전과 평화도 담보하고있다는 인식을 보여준것은 혁신적인것이다.
다 아는바와 같이 21세기에 들어와서 이것은 명약관화한 진리로 확증되였다.
공화국의 선군정치가 없었더라면 이미 조선반도는 열번도 더 미제와 일본군국주의에 의해 제2, 제3의 전쟁참화를 겪었을것이며 북과 남은 다같이 엄청난 재난을 면할수 없었을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또 하나의 흥미있는 문제는 민족적자존심에 대한 문제이다. 이 문제는 미일을 비롯한 강대국의 전횡앞에서 민족주체성을 잃어버린 비굴한 《소국민》의식에 대한 비판과 함께 오랜 세월 굴욕적인 식민지시대를 겪은 지난날에 대한 문제로도 심화된다.
민족적자존심을 잃고 강대국앞에서 숙명적인 사대의식을 감수해온 그자체에 작품에 그려진 현실을 초래한 책임이 있는것이다.
소설은 이에 대한 심각한 재검토로써 해명한다.
작가는 권순범이 일본에서 체험한 인상깊은 일화속에서 이에 대한 대답을 주고있다.
《치마저고리》장에 그려진 총련계녀학생에 대한 일본우익청년들의 폭행장면과 그것을 희생적으로 막아나선 순범앞에서 녀학생이 울먹이며 하는 말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매일같이 그때문에 곤경을 치르면서도 어떻게 하나 조선치마저고리를 기어이 입고 나서는 총련의 녀학생들, 자식들의 고통을 보다못해 부모들이 협의를 해서 조선치마저고리를 안 입히기로 했을 때 《왜 우리가 우리의 옷을 못 입고 버려야 하나 생각하니 분해서 하루종일 공부도 되지 않더라.》는 녀학생, 돈벌고 출세하는데만 정신이 팔려 민족성같은것에 대해선 의식이 약하다 못해 오히려 일본의 편에 서서 《거치장스러운 옷을 뭣하러 입고 다니면서 말썽만 일으키느냐.》고 비난하는 민단계의 일부 동포들에 대한 그 녀학생의 원망은 그저 스쳐보낼수 없는 목소리이다. 총련의 녀학생들이 행패를 당할 때 도와주는 일본인은 있어도 민단동포들은 없다는 말을 무심히 들어서는 안된다.
소설은 여기서 오랜 식민지시대의 생활이 인박아놓은 비굴한 《소국민》의식에 불을 걸고있다.
그것은 다시 《살인교향곡》장에서 일본인 오다의 시점에서 반복하여 확인된다. 과거 《대동아전쟁》때 조선에서 야만적인 일본군위안부모집에 관여했던 전범자 오다는 그때의 증인으로 나선 법정에서 이렇게 말한다.
《전쟁이 끝난 후 저는 제가 한 일이 무엇이였나를 깨닫게 됐습니다. 괴롭고 자책하는 가운데 여기저기 피해다녔습니다. 한국인들이 복수하러 올가봐 두려움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복수하러 오는 사람이 없었고 마치 그런 일은 있지도 않았던것처럼 되고있었습니다. … 저는 이상하게도 오히려 한국인을 경멸하게 되였습니다. 혼도 정신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량심의 가책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는 문득 차이를 깨닫게 되였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차이를 말입니다. 한국인들은 이러한 일들을 공동의 문제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더군요. 자신이 당하지 않았으면 오히려 당한 사람을 경멸하고 비난하는 경향이 있더군요. 한마디의 반항도 죽음으로 이어지던 당시의 상황에서 그저 당할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리해하기는커녕 마치 더러운 뭐나 본것처럼 하더군요. 따라서 사람들은 숨길수밖에 없게 되여있더군요.》
일본인의 입에서, 그것도 우리 인민에게 용서받을수 없는 죄를 짓고 스스로 자책하는 범죄자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는것은 괴롭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아니, 크나큰 민족적수치이다.
그래서 도꾜 한복판에서 몸팔이를 하는 한 남조선녀인이 《일본에서 보면 한국남자들은 참 못났어요. 촌스럽고 퉁명스럽고…》라고 하면서 《그들은 마음에 벼르는게 없다.》고 타매할 때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생각해야 할것인가.
조선민족제일주의정신, 참다운 민족적자존심을 지니는 문제는 오늘 주변에 강대국을 끼고있는 우리에게 있어 생명과도 같이 귀중한것이다.
개인이 자존심을 잃으면 노예로 되고 민족이 자존심을 잃으면 나라를 망친다.
인간의 존엄이 담보되는 자주적정권과 자기의 사상, 자기의 군력을 가지지 못한 민족은 강자앞에서 비굴해지기마련이고 종당에는 제 민족내부에서 강약의 저울대를 놓고 저들끼리의 싸움에만 잠기기마련이다.
작품은 이런 시점에서 세계의 일류두뇌진이 모인 노스캐롤라이나의 핵개발팀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낸 리용후를 긍지높게 찬양한것이며 미국이 그처럼 자랑하던 《아폴로계획》의 실현도 그 제일의 공로자가 조선사람임을 밝히고저 한것이다.
우에서 본바와 같이 장편소설에 제기된 사회적문제는 현시기 우리 민족의 운명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들과 밀접히 맞물려있으며 기본적으로 작가의 시점은 민족자주, 민족공조의 립장에 서있다. 이것이 이 소설의 예술적품위여하를 초월하여 일정하게 독자대중의 인기를 모으게 한 비결이라 하겠다.
작품이 제기한 이 모든 문제성은 솔직히 말하여 충분한 예술적해명을 보지는 못하였다.
인간학적견지에서 볼 때 이 작품은 많은 미숙성을 보여준다.
형태적으로 보면 정치탐정소설부류의 추리소설적양상을 띤 작품인데 력사적사실에 깊이 침투하여 사건의 본질을 밝히는 진실성이 미약하고 중간부를 넘어서서부터는 가상적현실에로의 환상적비약이 시작되면서 초기의 주도세밀한 추리소설다운 맛은 사라지고 기록주의적인 사건적설명에 급급하고있다.
사실상 이때부터는 소설다운감이 부족하다.
강대국의 《핵우산》밑에서 시들어가던 《무궁화꽃》이 남이 씌워준 우산을 벗어버리고 자기의 강력한 힘에 의하여 다시 피여나는 상징적인 형상속에서 남조선일방이 아니라 통일조국의 위력한 모습을 보여준 점에 공감이 간다.
그러나 그 공감은 아직 울림이 약하다. 환상은 역시 환상이며 현실은 역시 현실이다. 작가의 민족주체의식이 어느 정도 박력을 가지고 안겨오기는 하지만 그것이 사실주의적형상의 강력한 침투력을 가지고 우리 심장속에 육박해들어오지 못하는것은 아쉬운 일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이 작품에서 작가의 필봉이 남조선사회와 미국, 일본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파헤쳐들어갈 때 그것은 힘있고 예리하다.
특히 《살인교향곡》장에 그려진 일제의 과거죄행에 대한 폭로는 실로 무자비하고 적라라하다. 여기서 필자의 일본에 대한 인식은 비교적 주체적견지에 뚜렷이 서있다. 일본에 대한 력사관도 삐뚤어진것이 없고 오늘의 시점에서 저들의 천인공노할 만행을 은페하려고 발광하는 일본의 진면모를 발가놓은 견결한 립장도 바로서있다. 일본군위안부를 비롯하여 력사에 류례없는 일제의 조직적인 비인간적범죄는 참으로 생동한 력사적세부와 결부되여 폭로되고있다.
시효가 없는 반인륜적범죄-이것이 일제에 대한 용서없는 선고로 되여 울려퍼진다.
하지만 작품의 곳곳에는 우리 공화국의 정치, 사회문화생활에 대한 극심한 몰리해와 무자각한 표현들이 산재되여있다.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의 붕괴와 랭전시대의 종말로 북에 조성된 난관과 시련에 대한 인식은 어느 정도 옳다고 해야 할것이다.
그와의 련관속에서 우리 공화국의 현실에 대한 본질적인식이 바로서있지 못하다. 핵문제와 관련한 공화국의 태도와 조미핵대결전의 경과, 그 이후 북남사이에 협력과 대화가 진전되고 조국통일문제의 해결에서 일어난 거대한 전변의 본질이 명료한 해명을 받지 못하고있다.
남조선사회에서 일어난 민간주도하의 통일운동의 실태도 외면되고있으며 이와 관련한 남조선당국의 움직임도 사실주의적필치로 해부되지 못하고있다.
그것은 이 작품이 3권이나 되는 비교적 방대한 페지수에도 불구하고 추리소설적인 양식, 렵기적인 흥미본위의 서술방식을 취하면서 시대의 본질을 체현한 전형적인 력사적사건, 생활의 본류속에 주인공들을 세워놓고 그들의 체험과 사색, 성장과정을 깊이있게 파고들지 못한 약점과도 관계되는것이다.
작가는 조국통일문제해결, 민족의 자주권문제해결의 요건인 사상, 제도, 리념의 차이를 초월하는 민족대단결문제를 정면에서 취급할 대신에 아직도 공화국의 제도와 리념에 대한 일변도적인 배척관념을 버리지 못하고있는것이다.
남조선당국자의 《북방정책》과 관련한 서술대목에서 그것이 집중적으로 드러나고있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으로 민족을 위하는 작가에게서도 이처럼 오유를 나타내게 한 그자체를 남조선현실과 결부시켜 리해하게 된다. 하지만 작가가 환상속에서 현실의 미래를 보여주려고 한 의도는 소중한것이다.
민족의 자주를 원한다면 오늘의 현실이 가져오게 될 그 미래를 두고 더 많이 환상하라. 그러되 그 환상이 참말로 력사의 진실로 부각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현실을 더 깊이 투시해보라. 이것이 통일문학, 민족문학건설자들의 급선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