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민족의 존엄과 운명을 수호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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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군을 민족수호의 보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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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을 위한 정치-선군정치

 

비록 총포소리는 없으나 한 나라의 선진적인 사회제도를 압살하고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제국주의자들과의 정치군사적대결전에서 단 몇해도 아니고 수십여년에 걸쳐 승리를 이룩하고 나라와 민족의 운명과 존엄을 수호해나간다는것은 사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공화국은 지난 수십여년간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자들의 로골적인 침략전쟁위협과 끈질기면서도 악랄한 고립압살책동을 단호히 짓부시고 나라와 민족의 운명과 존엄을 영예롭게 수호해왔다.

불과 한세기전 변변한 총 한자루 없고 제힘으로 나라를 지켜낼만 한 똑똑한 군사가 없어 궁성의 울타리에까지 남의 나라 파수병을 세우지 않으면 안되였고 섬나라오랑캐들의 침략에 항전의 총성 제대로 울려보지 못한채 나라를 통채로 빼앗기고 근 반세기동안 망국의 운명을 강요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조선이였고 우리 민족이였다. 그 조선, 그 민족이 오늘은 《유일초대국》이라고 자처하는 미국과도 당당히 맞서나가는 정치군사강국으로 세계무대에 우뚝 올라섰다.

조선에서 이룩된 이 경이적인 기적은 선군을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수호하기 위한 만능의 보검으로 틀어쥐고나갈 때 어제날의 약소민족도 오늘은 존엄높은 민족으로 될수 있다는것, 선군정치야말로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지켜주는 애국애족애민의 정치이라는것을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불패의 혁명무력에 의거하고있는 우리의 선군정치는 제국주의반동들의 온갖 침해로부터 인민대중의 자주적요구와 리익,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믿음직하게 수호하고 담보하는 원칙적이고 정의로운 반제자주의 정치이며 숭고한 애국, 애족, 애민의 정치입니다.》

선군정치는 그것이 내포하고있는 애국애족적인 성격으로 하여 평화로운 환경에서 존엄있게 살면서 제힘으로 제땅을 지키고 통일된 조국에서 화목하게 살아가려는 우리 민족의 념원을 현실로 꽃피운다.

선군정치는 우선 나라와 민족의 안전과 평화를 굳건히 수호하는 애국애족의 정치이다.

나라와 민족에게 있어서 자주성은 생명이다.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지켜내지 못하는 정치는 애국애족의 정치라고 말할수 없다.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지키는것은 인민대중의 자주성실현의 선결조건이다.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내지 못하면 민족적독립과 자주권을 빼앗기고 민족은 망국노의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애국, 애족의 정치는 나라의 안전과 평화를 견결히 수호하는 정치로 되여야 한다.

세계에는 200여개의 나라와 수많은 민족, 종족이 살고있다. 하지만 그 어느 민족도 우리 민족처럼 항시적으로 전쟁의 위험속에서 살아온 민족은 없었다.

백수십년전의 력사만을 거슬러보아도 1866년 미국침략선 《셔먼》호의 침략과 같은 해 프랑스의 무력침략(병인양요), 1871년 미국의 대규모무력침략사건(신미양요)과 청일전쟁, 로일전쟁을 비롯하여 삼천리강산은 주변대국들의 리권쟁탈을 위한 각축전장으로 무참히 찢기우고 짓밟혀왔다.

결코 우리 민족의 애국심이 남만 못하여 빚어진것이 아니였다. 바로 군력이 강하지 못했기때문이다.

나라를 지키고 애국애족을 할수 있는 가장 큰 힘인 총대, 군력이 약하다보니 렬강들에게 항의 한번 변변히 해보지도 못하였으며 나중에는 나라마저 송두리채 빼앗기지 않으면 안되였다.

1945년 8월 일제의 무조건항복으로 이 땅에 잠시 평화가 깃든듯 하더니 미국의 남조선강점으로 하여 우리 민족의 운명에는 또다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미국의 력대 통치배들은 륙지로는 아시아대륙과 직접 잇닿아있고 바다로는 태평양과 련결되여있는 조선반도의 전략적중요성으로부터 조선에 대한 침략야망을 로골적으로 드러내놓군 하였다. 미국의 전쟁광신자 맥아더는 《나는 항상 남조선을 가치가 매우 큰 군사전초기지로 인정하였다.》고 떠벌이였으며 전쟁상인으로 악명떨친 덜레스는 조선반도를 아시아대륙을 마음대로 가르고 잘라먹을수 있는 《단검》으로 묘사하였다.

저들의 세계제패전략실현에서 조선반도가 이렇듯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것으로 하여 미국은 전 조선을 강점할 야망밑에 1950년 6월 25일 조선전쟁을 일으켰다.

저 태평양건너 미국땅에 돌 한번 던져본적이 없는 조선민족이다. 하건만 미국은 이르는 곳마다에서 우리 겨레의 머리우에 총포탄을 마구 퍼부어 대량학살을 감행하였고 우리 민족이 대대손손 이룩해놓은 이 땅의 창조물들을 모조리 파괴해버렸다.

3년간의 전쟁은 미국의 참패로 끝났으나 미국은 전 조선을 가로타고앉으려는 그 야망만은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라도 조선반도를 기어이 타고앉으려는 미국의 속심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오면서 하나의 굳어진 공리처럼 되여버렸다.

미국이 침략과 전쟁을 일삼으면서 내세우는 상투적수법은 상대방에게 도발자의 감투를 씌우는것이다. 삼천리강산을 황페화시키고 우리 민족을 멸살시키기 위한 핵전쟁연습에 기를 쓰고 달라붙으며 이 땅의 정세를 전쟁접경에로 몰아가면서도 마치 공화국을 지역정세의 《파괴자》로, 저들을 남조선의 《보호자》로 광고하는것이 바로 그것이다.

힘이 약하면 나라는 백주에 명분없이 얻어맞고 벌둥지가 되여도 어데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으며 죽든지 노복이 되든지 해야 하는것이 오늘의 현 실태이다.

미국의 강권의 희생물이 된 그레네이더와 빠나마, 이전 유고슬라비아와 이라크 등 여러 나라들의 비참한 운명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있다.

민족의 자주성은 강력한 총대로 지켜야 한다. 그 누구도 다른 나라를 지켜줄수 없다.

선군정치는 군사를 국사중의 가장 큰 중대사로 내세우고 인민군대를 불패의 무장력으로 강화발전시킴으로써 이 땅의 평화와 우리 겨레의 안전을 믿음직하게 수호해주고있다.

《유일초대국》으로 자처하면서 국제법도 안중에 없이 이르는 곳마다에서 전쟁과 테로를 일삼고있는 미국이 감히 조선반도에서만은 전쟁의 불집을 터뜨리지 못하고있는 엄연한 사실은 선군정치야말로 이 땅의 평화와 민족의 안전을 담보해주는 진정한 애국애족의 정치라는것을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선군정치는 또한 민족의 통일과 륭성번영의 앞길을 열어나가는 애족애민의 정치이다.

민족이 공고하고 포괄적인 사회생활단위, 운명개척의 기본단위로 존재하고 발전해나가자면 하나로 통일되여야 한다. 민족성원들이 갈라져 서로 대립되면 피줄과 언어, 문화생활과 지역의 공통성을 유지할수 없으며 나중에는 민족의 운명이 끝장나게 된다.

조선민족은 예로부터 한강토우에서 한피줄을 이으며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살아온 단일민족이다. 한피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이 력대로 살아온 강토도 하나였지 결코 둘이 아니였다. 지리적개념뿐아니라 5 000년을 내려오면서 한피줄을 이어왔다는 사회력사적개념으로 보아도 조선은 부정할수 없는 오직 하나이다.

이러한 민족이 둘로 갈라지고 강토가 분렬되게 된것은 결코 우리 민족의 의사에 의한것이 아니다.

외세의 지배와 간섭의 산물인 민족분렬은 근 70년간 우리 겨레에게 헤아릴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들씌웠다. 제 나라, 제땅우에서 마음대로 오갈수 없는것은 물론 혈육과 친척들을 지척에 두고도 생사조차 알수 없는 기막힌 형편에 놓이게 되였으며 철도와 도로는 끊긴채 수십년세월 버림받고 민족경제의 균형적발전은 심히 억제당하고있다. 또한 미국의 민족리간책동으로 말미암아 한피줄을 이은 하나의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남이 아닌 남이 되여 서로 대치하고있는 비극적인 사태는 오늘까지 지속되고있다.

조선이 강해지는것도 잘사는것도 통일되는것도 바라지 않으며 오직 저들의 리익과 세력권쟁탈의 희생물로 영원히 남아있어야 한다는 강도의 론리에 따라 이 땅을 가로타고앉아 북과 남의 통일운동을 각방으로 방해하고있는것이 바로 미국이다.

재미동포 오인동은 미국의 이러한 속심을 2013년 9월 8일 남조선의 《통일뉴스》에 실은 글에서 다음과 같이 폭로하였다.

《가만히 보니 미국은 분단된 남과 북을 무척 좋아한다. 북은 말 안 들어 좋고 남은 너무 잘 들어 좋다. 미국의 핵위협때문에 강요된 선택으로 갖게 된 핵미싸일을 북이 포기하지 않을것을 아는 미국이다. 또 북핵이 있어야 미국은 페기나 비핵화를 주장할수 있다. 그러면 남은 더 크게 복창해주니 미군주둔을 계속할수 있고 군사기지도, 대규모미군실전연습장도 무상으로 제공받으며 최신, 재래식무기판매는 물론 놀랍게도 주둔비용도 받는다. 한편 더 중요하게는 중국과 로씨야를 견제하기 쉽게 되고 일본에서 국익을 챙기며 계속 동북아질서를 주도하면 되는것이다.》

오늘 공화국에서 군사를 제일국사로 내세우고 국방력강화에 힘을 넣는것은 민족내부의 모순을 풀기 위한데 목적이 있는것이 아니라 외세의 침략전쟁책동에 맞서 나라와 민족의 안전을 지키고 민족공동의 륭성번영을 이룩하자는데 있다.

근 70년에 걸치는 민족분렬의 력사는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지배를 끝장내지 않고서는 우리 민족끼리, 혈육끼리 진정한 화해와 단합, 협력과 교류를 이룰수 없고 조국통일은 물론 민족의 륭성번영도 이룰수 없다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선군정치는 민족분렬의 원흉이며 조국통일의 방해자인 미국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 전국적범위에서 민족적자주권을 확립할수 있게 하는 정치이다.

남의 집에 기여든 강도에게는 몽둥이가 제격이듯이 남의 나라 땅의 절반을 강탈한 강도는 오직 민족의 강력한 자주적힘, 강한 군력을 핵으로 하는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내쫓는 길밖에 다른 방도는 없다. 이러한 강한 군력을 핵으로 하는 전민족적인 위력한 힘을 마련하게 하는것이 바로 애국애족애민의 선군정치이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운명을 굳건히 수호하는 만능의 보검인 선군정치를 법적으로 확고히 담보하는 국가기구체계를 완벽하게 세우심으로써 민족의 운명개척에서 불멸할 업적을 쌓아올리시였다.

일반적으로 국가정치는 그에 맞는 체계가 마련되여야 실현될수 있는것만큼 선군정치는 그것을 실현할수 있는 국가기구와 관리질서가 마련될 때 전면적으로 펼쳐지게 된다. 그러므로 선군정치실현의 요구에 맞는 국가관리체계를 세우는것은 선군정치를 전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요구로 나선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군사중시, 군사선행의 원칙에서 국방기관의 권능을 중시하는 독특한 국가기관체계를 확립하심으로써 선군정치를 하나의 체계화된 정치방식으로 굳히시고 나라와 민족의 운명수호와 개척을 위한 튼튼한 담보를 마련해놓으시였다.

주체87(1998)년 9월 5일 평양에서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회의가 열리였다.

회의에서는 위대한 장군님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변함없이 높이 추대하였다. 또한 새롭게 개정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을 심의채택하였다.

헌법에서는 국가정치생활에서 국방위원회의 지위와 권능을 최우선시하는 새로운 국가기관체계의 확립을 법화하였다. 이것은 국가정치생활전반 특히 나라의 방위력강화에서의 새로운 전변을 법적으로 담보하는 중대한 사변이였다.

국가정권을 구성하고있는 국가기관들의 체계와 그 활동에 의하여 국가의 정치활동이 진행되며 그 원활성이 담보된다.

반만년을 헤아리는 인류의 국가활동력사는 나라의 국력과 사회정치생활전반을 규제하는데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국가정권형태와 함께 국가기관체계를 시대의 요구와 나라와 민족의 정치적지향과 요구에 맞게 끊임없이 개편하고 강화발전시켜온 력사이며 당대의 력사적시대에 맞는 합리적인 국가기관체계의 수립과 운영이 나라와 민족의 흥망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다는것을 실증하여온 력사라고도 말할수 있다.

국방력이 자주독립국가의 존엄과 정치적대를 떠받드는 기둥이라면 국가정권은 나라의 군력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을 믿음직하게 떠밀고나가는 위력한 정치적무기이다. 사회생활의 다른 모든 분야들의 발전이 국가정치의 주도적이며 결정적인 역할에 의존하는것과 마찬가지로 전인민적인 사업으로 조직전개되여야 하는 군사력, 방위력을 다지는 국방사업도 전사회에 대한 통일적지휘를 실현해나가는 국가정권의 기능과 역할을 떠나서 순조롭게 진행될수 없다.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믿음직하게 수호할수 있는 불패의 국방력, 군사력을 마련하는 사업은 나라의 인적 및 물적자원을 최대한으로 동원리용하여야 하는 어렵고 방대한 사업이다.

현대적무장으로 장비된 제국주의자들의 항시적인 군사적위협을 받고있는 공화국인 경우 인민들의 자주적인 생활상요구를 보장할수 있게 사회주의경제건설을 힘있게 밀고나가면서 동시에 적들의 침략에 믿음직하게 대처할수 있는 강력한 방위력을 다져나가는것, 이러한 군사경제적요구를 원만히 실현해나갈수 있게 사회주의국가를 강화하고 그의 활동을 옳게 보장하는 문제는 매우 사활적인것으로 제기되고있다.

나라의 군력을 백방으로 강화해나가자면 결정적으로 전사회에 대한 통일적지휘기능을 수행하는 가장 포괄적인 정치조직인 국가정권을 군력강화를 지향하면서도 인민대중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충분히 보장하기 위한 국가정책을 믿음직하게 집행해나갈수 있는 우월한 국가기관체계를 가진 강위력한 정권으로 만들고 그 기능과 역할을 백방으로 높여나가야 한다.

이러한 제반 조건을 완전하고도 충분히 해결할수 있는것이 바로 국방위원회의 지위와 권능을 최우선시하는 새로운 국가기관체계의 확립이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선군정치를 법적으로 확고히 담보할수 있는 국방중시의 국가기관체계를 확립하신것은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수호하는 길에서 억척의 지지점을 마련한 력사적인 계기로 되였다.

3

한평생 걸으신 선군의 길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참으로 선군은 우리 장군님께서 한평생 간직하고 구현해오신 드팀없는 혁명신조였으며 조국청사에 빛나는 승리와 불멸의 업적을 수놓으신 위대한 혁명실천이였습니다.》

김정은원수님께서 말씀하신바와 같이 선군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한평생 간직하고 구현해오신 드팀없는 혁명신조였고 조국청사에 빛나는 승리와 불멸의 업적을 수놓으신 위대한 혁명실천이였다.

선군의 길이 제국주의침략세력의 전쟁위협으로부터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지키는 길이였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들 같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전인미답의 그 길을 변함없이 걸어오시였다.

언제인가 인민군지휘성원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내가 11살 되던 때 벌써 나에게 권총을 주시였다, 그때에는 수령님께서 왜 나에게 권총을 주시였는가 하는것을 미처 다 몰랐다, 나는 곡절많은 혁명의 길을 걸어오면서 수령님께서 왜 어린 나에게 권총을 주시였으며 그것이 얼마나 귀중한가 하는것을 가슴깊이 느끼게 되였다, 세상에 변절하지 않는 동지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총이다, 나는 총을 가장 귀중히 여기고 사랑한다, 우리의 총에는 항일혁명선렬들의 고귀한 피와 넋이 스며있으며 사회주의의 운명이 달려있다, 총이 없으면 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할수 없고 나라와 민족, 인간의 존엄과 영예를 지켜낼수 없다고 말씀하신적이 있으시였다.

이 말씀에는 혁명의 총대에 의해 나라와 민족의 존엄과 운명이 담보되고 지켜진다는 심오한 뜻이 담겨져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 진리를 서재에서 터득하신것이 아니였다.

장군님께서는 일찌기 나라와 민족을 위한 투쟁의 진두에 나서는데서 인생의 참된 보람과 행복을 찾는 애국애족적인 인생관과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고 인민의 안녕을 지키며 인민의 행복을 창조하기 위하여서는 한생을 군인으로 살며 헌신분투하여야 한다는 확고부동한 신념과 의지가 집약되여있는 위대한 가문의 가정철학을 자양분으로 하여 성장하시였다.

백두의 설한풍속에서 빨찌산의 아들로 태여나 포연에 절은 옷을 입고 항일전의 총소리와 함께 인생의 첫시작을 떼신 장군님께서는 미제를 반대하는 가렬처절한 전화의 나날에 특히는 공화국을 힘으로 압살하고 우리 민족을 노예로 만들려는 제국주의자들과의 치렬한 정치군사적대결전을 승리에로 이끌어오시는 과정에 이것을 더욱 신념으로 굳히시였다.

인민대중의 자주위업, 사회주의위업을 위한 투쟁은 자주와 지배주의,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와의 힘의 대결, 총대의 대결을 동반한다. 그런것만큼 군사문제는 언제나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관건적인 문제로 된다.

자체의 강한 군사력이 없이는 제국주의와 반동들의 침략과 지배주의적책동을 물리치고 인민대중의 자주위업, 사회주의위업을 승리에로 이끌어나갈수 없다는것, 총대에는 총대로 맞서고 혁명은 총대로 담보해야 한다는것, 혁명의 총대우에 인민대중의 자주위업, 사회주의위업의 승리가 있고 나라와 민족의 부강번영이 있다는것, 이것은 력사에 의하여 그 진리성이 확증된 혁명의 원리이고 법칙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처럼 총대철학을 절대불변의 진리로 신념화하고계시였기에 한평생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운명을 수호하기 위한 선군의 길을 변함없이 걸어오실수 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49(1960)년 8월 25일 근위 서울류경수제105땅크사단을 현지지도하시는것으로부터 선군령도를 시작하시였다.

혁명령도의 첫 자욱을 떼시며 장군님께서 단행하신 인민군부대에 대한 현지지도는 바로 그이께서 지난 기간의 정치적성장과정을 통하여 간직하신 총대중시, 군사중시의 신념과 선군의지의 발현이였으며 청년장군, 청년지도자의 선군령도의 시작을 알리는 력사의 선언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선군령도의 첫걸음을 옮기신 때로부터 1960년대말에 이르는 근 10년간 인민군군부대들과 구분대들을 수많이 찾고 또 찾으시여 천출명장으로서의 위인적풍모와 특출한 정치군사적실력을 발휘하시였으며 혁명무력건설사에 길이 빛날 불멸의 업적을 쌓으시였다.

인민군대가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라는 혁명적구호밑에 당과 수령의 군대로 강화발전되고 인민군군인들이 《일당백》의 전투적구호를 높이 들고 전투정치훈련을 강화하여나간 로정에는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령도의 자욱이 력력히 아로새겨져있다.

국방건설을 경제건설과 병진시키며 전군간부화, 전군현대화와 전민무장화, 전국요새화의 당의 자위적군사로선을 성과적으로 관철하여온 투쟁도 결코 위대한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를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

그리하여 이 시기부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를 틀어쥐고 력사적인 선군정치를 시작하시였다.

1960년대 후반기에 미국의 도발적인 침략책동에 의하여 일어났던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사건, 대형간첩비행기 《EC-121》사건 등 치렬한 조미대결전들에서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이 믿음직하게 지켜지고 운명이 수호된것은 장군님께서 선군정치로 인민군대를 현명하게 령도하신데 그 결정적요인이 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쳐 선군정치를 더욱 심화발전시키신데 기초하여 1990년대 중엽 선군정치를 전면적으로 펼쳐나가시였다.

1995년 1월 1일 아침이였다.

온 나라 군인들과 인민들은 김일성주석을 잃고 처음으로 맞는 새해 첫날이여서 쓰라린 상실의 아픔과 함께 커다란 기대속에 TV시청시간만을 기다리고있었다. 이제 위대한 장군님께서 력사적인 첫 신년사를 하실것이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던것이다.

우리 인민들만이 아니였다. 전세계의 초점도 평양에 집중되였다.

김정일장군님께서 신년사를 통해 어떤 정책표명을 하시겠는지, 그이께서 지금과 같이 어려운 형국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하실것인지. …

그런데 일은 예상밖으로 번져졌다.

TV에서는 그 전해에 신년사를 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존귀하신 영상이 방영되는것이 아닌가.

우리 인민은 크나큰 격정에 파묻혔다.

세계는 크게 놀랐다. 하다면?!…

세계의 짙은 의혹과 놀라움이 거듭되는 그 시각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서거이후 첫 현지지도로 흰눈덮인 인민군대의 어느 한 고지를 찾으시였다. 후날 세상에 널리 알려진 다박솔중대의 포진지였다.

병사들이 드리는 새해의 첫 꽃다발을 받으시고 새해를 맞는 인민군장병들을 축하해주신 장군님께서는 포진지에 오르시여 초소의 설경을 유정한 눈길로 바라보시다가 동행한 일군들에게 다박솔중대라고, 이런 곳을 다박솔중대라고 한다고 정겹게 말씀하시였다.

이어 장군님께서는 군인들의 화력복무훈련을 보시며 훈련을 아주 잘한다고, 중대가 전투적기백이 있다고, 모든 중대들에서 이 중대와 같이 전투훈련을 싸움맛이 나게 한다면 인민군대가 일당백의 무적의 전투대오로 더욱 강화될것이라고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찬바람부는 포진지에서 오랜 시간 훈련을 지도하신 다음 중대교양실과 병실을 돌아보시였다. 부대에서 진행되는 사상교양사업, 문화생활, 후방사업정형을 료해하신 그이께서는 전투준비와 군인생활을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중대를 떠나시기에 앞서 중대군인들과 함께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그때 안팎의 정세는 참으로 엄혹하였다.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반동들은 정치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공화국을 압살하려고 그 어느때보다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미국은 하나로 통합확대한 《을지 포커스 렌즈》, 《독수리》를 비롯하여 각종 전쟁연습을 끊임없이 감행하였다. 미국과 남조선호전분자들의 무모한 군사적도발책동으로 말미암아 조선반도에는 전쟁의 불구름이 항시적으로 드리워져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를 팽팽한 정세가 조성되였다.

이와 함께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련합세력의 끈질긴 경제봉쇄책동으로 하여 연료와 동력, 원료 등 모든것이 부족하였다. 거기에다가 혹심한 자연재해까지 겹쳐 난관은 말할수 없이 컸다.

한 나라, 한 민족의 운명을 열두번도 더 동강냈을 이러한 엄혹한 때 장군님께서 내리신 력사적인 결단이 바로 수령님의 선군위업을 이어 총대로 나라와 민족, 사회주의의 운명을 지키시려는 결심과 의지를 안고 단행하신 다박솔초소에로의 길, 선군의 길이였다.

그해 1월초 서방의 한 출판물에는 이런 글이 실렸다.

《… 김일성주석을 계승할 김정일장군이 새해정초임에도 신년사를 포기하고 군방문을 단행했다는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흔히 새로 출마한 령도자가 첫 정치활동일정을 어느 분야에 정하는가 하는데 따라 그의 차후 정치의 방향이 결정되고 그가 의거하게 될 정치적력량이 확정된다고 볼 때 이 사실의 근저에 무엇이 깔려있는지는 두고보아야 할것이다. …》

다박솔초소에로의 길, 그것은 혁명투쟁에서 총대가 기본이라는 선군의 원리로부터 총대를 강화하여 제국주의자들의 온갖 도전으로부터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끝까지 지켜내겠다는 선군령장의 위대한 신념과 의지를 실천으로 보여준 력사적인 길이였다.

이렇듯 다박솔초소에 선군장정의 큰 자욱을 찍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부대들을 찾아 현지시찰의 길을 걷고 또 걸으시였다.

어제는 동해안의 녀성해안포진지와 철령을 넘어 찬바람부는 351고지로, 오늘은 사나운 날바다를 헤치시며 초도와 적들이 눈앞에 도사리고있는 판문점으로, 래일은 일당백의 고향 대덕산과 지쳐내리는 차바퀴에 어깨를 들이미시며 오성산으로…

위대한 장군님께서 끊임없이 걸으시는 선군의 길은 그자체가 적들의 머리에 내리는 무서운 철추였으며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운명을 지키기 위한 총포성없는 대결전에서 승리를 마련하는 길이였다.

그렇지만 그것은 매 순간 위험을 마주하는 준엄한 길이였다. 그래서 인민군지휘성원들, 인민군장병들은 장군님께서 그런 위험한 길을 걷지 말아주실것을 기회있을 때마다 절절히 말씀드렸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351고지에 대한 현지시찰을 마치고 돌아오신지 며칠 안되던 어느해 3월초 어느날이였다.

일군들은 장군님을 한자리에 모시고 조선인민군 군악단 취주악공연을 관람하게 되였다.

이날 일군들은 군인들과 인민들이 장군님의 신변안전과 건강을 잘 돌봐드릴데 대한 수많은 청원편지를 보내오고있는데 대하여 말씀드리면서 다시금 그이께 앞으로 위험한 최전연시찰만은 정말 그만두시였으면 하는 간청을 드리였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나는 우리 인민들이 나를 생각하여 위험한 최전방까지는 나가지 말아달라고 제기하는 지성에 큰 고무를 받고있으며 이에 대하여 고맙게 생각하고있다고, 우리 인민들과 일군들이 나를 생각하여 그런 제기를 하는것은 수령님을 모시던 사상감정의 표현이라고 하시였다.

그이께서 얼마나 뜨거움에 잠긴 음성으로 이야기하시는지 일군들은 저도 모르게 눈굽이 젖어들었다.

형언 못할 격정이 장내에 고조되는 가운데 그이의 드팀없는 의지가 어린 말씀이 계속되였다.

그렇지만 나는 최전방에 있는 조선인민군 초병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생활도 료해하고 그들을 고무하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최고사령관으로서 병사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에나 다 가야 한다. 동무들은 내가 최전연에 배치되여있는 부대를 자주 현지지도한데 대하여 걱정을 많이 하면서 수령님을 모시던것처럼 하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할수 없다. 최고사령관은 병사들이 있는 곳에는 그 어디에나 다 가야 한다. …

이렇게 걸으신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길은 그 시작이 있어도 끝이 없이 련속되는 성스러운 장정이였다.

철령만도 수없이 넘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를 사상과 신념의 강군으로 키우는 사업에 선차적인 힘을 넣으시면서 그 어떤 침략자들도 단매에 때려부실수 있게 일당백으로 준비되고 현대적으로 무장된 강군으로 키우는데 모든 심혈을 다 바치시였다.

그 나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국방공업을 강화하는 사업에서 한치의 양보도 모르시였다.

사탕이 없이는 살수 있어도 총알이 없이는 살수 없다, 우리 나라에서 군사가 첫째이고 국방공업이 선차이다, 국방공업을 떠나서는 강성국가도 건설할수 없고 나라와 민족의 존엄도 지킬수 없다, 군대의 위력이자 군수공업의 위력이다. …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관점과 립장에서 나라의 군수공업, 국방공업발전에 최대의 힘을 넣으시면서 군력강화를 위한 선군길을 걷고 또 걸으시였다.

사실 숨죽은 공장들과 힘겨운 생활난을 겪고있는 인민들의 모습을 눈앞에 보면서 공장이나 농촌이 아니라 군인들을 찾아 전선시찰의 길을 이어가시는 장군님의 가슴은 형언할수 없이 쓰리고 아팠다. 그러나 선군의 길에서 한치라도 물러서면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결딴나겠기에, 총알보다 쌀을 먼저 생각하면 우리 인민이 또다시 제국주의자들의 노예가 되겠기에 장군님께서는 힘들어도 그 길을 가고 또 가시였다.

애국애족애민으로 용솟음치는 뜨거운 심장을 안으시고 넘기 어려운 고비들을 결사의 의지와 초인간적인 헌신으로 헤쳐넘어오신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장정에 의하여 나라의 군력강화에서는 새로운 기적과 혁신이 일어났다.

인민군대는 그 어떤 적의 불의의 군사적침공으로부터도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운명을 굳건히 지켜낼수 있는 불패의 전투력을 가진 무적필승의 강군으로 자라났다. 뿐만아니라 최첨단군사과학과 국방공업발전에 기초하여 그 어떤 적도 일격에 타격소멸할수 있는 위력한 현대적타격수단들과 전쟁수행에 필요한 온갖 군사적수요를 장기적으로 보장할수 있는 믿음직한 담보가 마련되고 적들의 전쟁도발책동을 산산이 짓부셔버릴수 있는 강력한 전쟁억제수단들을 가질수 있게 되였다. 온 사회에 군사를 중시하는 사회적기풍이 더욱 철저히 확립되고 전인민적, 전국가적방위체계는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튼튼히 다져지게 되였다.

언제인가 영국의 한 군사잡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발표되여 세계적인 파문을 일으킨적이 있다.

현재 미국의 강대한 군사력에 맞설수 있는 군사강국은 몇개 되지 않는다. 쏘련이 해체된 후 군사력이 약화되기는 하였지만 로씨야는 미국에 맞설수 있는 군사강국으로 꼽을수 있다. 중국도 그렇게 볼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실제적으로 미국과 전면전쟁을 벌릴 가능성이 없으며 그것을 의도적으로 피하고있는 나라들이다. 그러나 북조선은 미국과의 전면전쟁을 할 의지를 가진 군사강국이다. 북조선은 로씨야나 중국과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의지와 각오를 가진 군사강국이다. …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한평생 걸어오신 선군의 길이 있어 오늘 공화국은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믿음직하게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를 담보할수 있는 불패의 군력을 가진 군사강국으로 우뚝 솟아오를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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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민족의 자주권을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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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리품 《푸에블로》호

 

지난 수십여년간 조선반도에서 일촉즉발의 전쟁정세는 한두번만 조성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구상의 그 어느 지역에서도 멈춤을 모르던 미국의 전쟁마차는 매번 조선의 문턱만은 넘어서지 못하였다.

그것은 미국이 이 땅에 전쟁의 불구름을 몰아올 때마다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지키기 위한 전초선에 서시여 언제나 초강경의 대응으로 단호하고도 무자비한 타격을 가하시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계시기때문이였다.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나포사건을 둘러싼 조미대결과정은 미국의 전쟁책동을 짓부시고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끝까지 수호하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철의 신념과 의지를 뚜렷이 보여준 쾌거였다.

1968년 1월 23일 미국은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를 공화국령해에 깊숙이 침입시키는 엄중한 도발행위를 감행하였다.

각종 최신정탐설비를 갖춘 전문적인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는 미중앙정보국의 지시에 의하여 공화국의 령해에 깊이 들어와 여러곳에서 각 항구들과 연해에 있는 각종 군사시설물들 그리고 무력배치상태와 공업시설 등 군사적 및 국가적 기밀들을 탐지하는것을 목적으로 하고있었다.

사실 《푸에블로》호는 공화국만이 아니라 태평양지역의 여러 나라 령해에 기여들어 각종 군사 및 국가정보자료들을 계통적으로 수집해갔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도 그것이 문제시되지 않았었다.

원산앞바다에 미국의 무장간첩선이 침범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를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에 대한 란폭한 범죄행위로 보시고 즉시 간첩선을 나포하기 위한 명안들을 일일이 밝혀주시였다.

그리하여 조선인민군 해군함정들은 원산앞바다에 도적고양이처럼 기여들어 공화국에 대한 정탐활동을 벌리던 미국의 최신형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를 나포하였다.

나포된 간첩선에서는 고사기관총과 수십정의 저격무기들, 각종 탄약과 수류탄들을 비롯한 무장장비들, 무선도청기, 송신기, 암호기 등 여러가지 정탐기재들 그리고 해도, 항해일지, 란수표 등 수많은 간첩활동문건들이 나왔다.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를 나포한것은 응당한 자위적조치로서 공화국의 자주권을 유린한 침략자들에게 내린 단호한 징벌이였다.

간첩선을 나포했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잘했다고, 정말 잘했다고, 우리 해병동무들이 용감하다고 높이 치하하시면서 세계적인 파문을 일으킬 사건이라고, 이른바 세계의 《최강》을 떠드는 미제의 무장간첩선을 나포한것은 력사상 있은적이 없다고, 이것은 오직 조선에서만 있을수 있는 일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정말 통쾌하다고, 미국놈들이 또다시 조선인민앞에 수치스러운 참패를 당하였다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신문과 방송, 통신을 통하여 주권국가의 자주권을 란폭하게 유린한 미국의 침략적죄행을 세계의 면전에서 폭로하도록 필요한 대책들을 취해주시는 한편 저들의 침략행위를 인정하지 않고 모략공세를 벌리는 미국에 대하여 강력한 타격을 가하도록 하시였다.

주체57(1968)년 1월 24일 한낮경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민족보위성(당시)청사를 찾으시였다.

해당 일군으로부터 미국대통령 죤슨이 미국력사에 일찌기 없었던 일이라고 하면서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푸에블로》호를 찾아오라고 호통쳤다는 보고를 받으신 그이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미국놈들이 제아무리 고아대야 함정에 빠진 승냥이신세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였다.

일군이 올리는 종합된 적정자료를 료해하신 장군님께서는 단호한 어조로 우리는 《푸에블로》호를 미국앞바다에서 붙들어온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 령해인 원산앞바다에서 나포하였다고, 이것은 누구도 건드릴수 없는 공화국의 응당한 자위적조치라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물론 피를 즐기는 미제침략자들이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사건을 구실로 무슨짓을 할지 모른다고, 그렇다고 하여 절대로 놀랄것은 없다고, 우리는 이 기회에 미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적이며 날강도적인 죄행을 세계면전에 발가놓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 방향과 방도들을 밝혀주시였다.

이것은 그대로 미국을 심판대우에 내세우고 범죄행위를 다불려 무릎을 꿇게 하기 위한 령활무쌍한 지략의 제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앞으로 우리 나라 정세가 극도로 긴장하여질수 있으므로 놈들의 일거일동을 예리하게 살피며 그에 대처할 준비도 빈틈없이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하시고 청사를 떠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예견하신대로 미국은 《푸에블로》호가 나포되자 불맞은 승냥이처럼 헤덤벼쳤다.

미국은 1월 24일과 25일 두차례에 걸쳐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고 《푸에블로》호가 공해상에 있었다고 거짓말을 꾸며대는가 하면 조선측이 국제법을 《위반》했기때문에 사죄해야 한다고 생억지를 부리면서 군사적보복조치를 취할것이라고 으르렁거렸다.

미국은 윁남으로 항행하고있던 핵추진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와 4척의 구축함으로 구성된 기동함대를 공화국연해에 끌어들인 동시에 일본에 있던 2개의 비행대대를 남조선에 끌어들였다. 한편 미국본토에서는 1만 4 600여명의 예비공군과 해군항공대 그리고 지원부대의 소집을 명령하였으며 남조선강점 미군과 남조선군 그리고 일본자위대에 비상동원령을 내리게 하였다.

또한 긴급나토각료리사회니, 조선전쟁참전국회의니 하는것들을 련이어 벌려놓고 전쟁모의를 거듭하였으며 1월 29일에는 대통령 죤슨이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국무부의 요인들과 두차례에 걸쳐 전쟁도발음모를 모의하였다. 같은 날 항공모함 《요크타운》호를, 2월 1일에는 통신중계선 《아링톤》호를 각각 조선동해의 포항근처에 기여든 기동함대에 합류하게 하였다. 2월 1일에 미국은 동남아시아에 주둔하고있던 미군에 휴가중지령을 내렸으며 또다시 항공모함 《레인저》호와 또 하나의 무장간첩선 《배너》호를 조선동해에 들이밀었다.

미국은 이렇듯 조선반도에 저들의 침략무력을 대대적으로 집결시키는 한편 《원산을 폭격하겠다.》느니, 《원산을 공격하고 그 배를 빼앗아가겠다.》느니, 공화국의 어느 《비행장을 하나 폭격하겠다.》느니 위협해나서면서 지상과 공중으로부터 공화국에 대한 군사적도발행위를 발악적으로 감행하였다.

이와 함께 미국은 《푸에블로》호사건을 유엔에 제소하여 저들의 전쟁도발행위를 또다시 유엔의 기발로 가리우고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공화국에 넘겨씌워보려고 책동하였다.

바다건너 아메리카에서 《보복》의 《검은 파도》가 조선반도를 향하여 물밀듯이 밀려오고있었다.

과연 미국이 몰아오는 《보복》의 《검은 파도》앞에 조선의 운명은 어떻게 될것인가?

그때 미국의 전쟁광증에 겁을 먹은 어떤 사람들은 핵전쟁이 터진다고 아우성치면서 나포한 간첩선을 돌려보내는것이 좋겠다고 《권고》해오기까지 하였다.

어느날 공화국외무성을 통하여 어느 한 나라 대사가 위대한 수령님과의 면담을 요청해왔을 때였다.

그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 모름지기 《푸에블로》호 선원들을 놓아주도록 조선에 압력을 가해달라는 미국의 청탁을 받고 만나자고 할것이라고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장군님께 최고사령관이라는 립장에 서서 《푸에블로》호를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는지 한번 결심채택을 해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 말씀드리였다.

저는 미국놈들이 항복서를 내기 전에는 《푸에블로》호 선원들을 절대로 석방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푸에블로》호는 우리의 전리품이므로 놈들이 항복서를 낸다 해도 돌려주지 않겠습니다. 우리 인민군대가 나포한 미제무장간첩선을 먼 후날 박물관에 전시해놓고 후대들에게 이것은 우리가 미국놈들에게서 빼앗은 간첩선이라고 말해주겠습니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날 그때 김정일동지의 결심을 들으면서 그 배짱이 마음에 푹 들었다고, 그 배짱에서 큰 고무를 받았다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미국의 군사적기도를 환히 꿰뚫어보시고 그것을 철저히 짓부셔버릴 방안들을 밝혀주시였다.

조성된 사태의 결말과 조선반도에서의 새 전쟁이 일어날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불안과 초조속에 세계의 이목이 공화국에 집중되고있던 주체57(1968)년 2월 5일 저녁무렵이였다.

민족보위성청사를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총참모부 책임일군으로부터 적정보고를 받으시였다.

보고가 끝나자 그이께서는 미국놈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전후 최대규모의 무력을 우리 나라에 동원하였다고, 미제가 우리 나라에 많은 무력을 끌어들이는 목적은 위협공갈의 방법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놈들이 떠들어대는것처럼 《보복》을 하거나 전면전쟁을 일으키려는데 있다고, 놈들이 말하는 《보복》이라는것은 우리가 제놈들의 요구대로 《푸에블로》호와 그 선원들을 돌려주지 않으면 그 대가로 공화국북반부의 그 어디를 치겠다는것이라고 명철하게 가르쳐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지시봉을 드시고 지도를 가리키시며 말하자면 여기 원산이나 공업도시들인 함흥, 청진, 남포 지어 평양까지 포함하여 우리의 주요도시들을 타격하겠다는 수작이라고, 우리는 놈들의 이러한 《보복》조치를 기다릴것이 아니라 주동적으로 짓부셔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이어 그이께서는 그러자면 민족보위성에서 놈들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살피는것과 함께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있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적들의 《보복》조치를 짓부셔버릴 명안들을 명시해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흥분을 금치 못하는 책임일군에게 우리가 수행하게 되는 전쟁은 조국땅에서 미제를 몰아내고 조국을 자주적으로 통일하는 정의의 전쟁이며 반대로 미제가 조선에서 감행하는 전쟁은 침략적이며 략탈적인 부정의의 전쟁이라고, 정의의 전쟁은 반드시 승리하며 부정의의 전쟁은 반드시 패한다는것은 움직일수 없는 력사적진리라고 확언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또한 우리에게는 정규적인 혁명무력과 국가적후방도 지원도 없이 일제의 100만대군과 맞서싸워 이겼으며 청소한 무력으로 세계《최강》을 떠벌이던 미제를 력사상 처음으로 타승한 귀중한 투쟁업적과 풍부한 경험이 있다고 하시면서 우리 인민은 수령님의 두리에 굳게 뭉친 영웅적인민입니다, 미제침략자들은 우리 인민의 힘을 얕보지 말아야 하며 분별있게 행동하여야 합니다, 만약 미제침략자들이 우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우리 나라에서 전쟁을 일으킨다면 우리는 적들과 싸워 단연 결판을 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시간이 퍼그나 지나도록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인민군대앞에 나서는 과업과 구체적인 방안들을 일일이 제시해주시였다.

이러한 속에서 주체57(1968)년 2월 8일 평양에서는 조선인민군이 정규무력으로 강화발전된지 20돐이 되는것과 관련하여 성대한 경축연회가 진행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회에서 하신 력사적인 연설에서 만일 미제국주의자들이 계속 무력을 동원하여 위협공갈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그들은 이로부터 얻을것이란 아무것도 없을것이라고 하시면서 있다면 오직 시체와 죽음뿐일것이라고 엄숙히 선언하시였다. 그리고 우리는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결코 전쟁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고,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는 미제국주의자들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할것이라고 강경하게 언명하시였다. 그것은 미국의 무분별한 전쟁책동으로부터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끝까지 수호할 공화국의 단호한 립장을 엄숙히 천명한것이였다.

이날 연회에 참석하신 장군님께서는 인민군대의 한 책임일군에게 수령님께서 내리신 선언은 미제국주의자들과 그 앞잡이들에게는 폭탄과 같은 선언이라고, 미제는 《푸에블로》호사건에서 쓰디쓴 참패외에 아무것도 얻을것이 없겠지만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는 아주 큰것을 얻게 될것이라고, 이제 두고보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기의 자주권과 민족의 운명을 수호하려는 조선의 신념과 배짱이 실제로 어떤것인가를 보여주는 조치들을 련이어 취하시였다.

인민군대와 로농적위대(당시) 전체 부대들이 완전전투태세에 들어갔다. 각종 현대적인 무장장비들이 방수포들을 벗어던지고 전투위치를 차지하였다. 완전무장한 군종, 병종 예비구분대들도 지정된 계선으로 진출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군대와 함께 인민들도 한손에는 총을, 다른 한손에는 낫과 마치를 들고 래일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오늘 밤까지는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치도록 이끄시는 한편 온 나라에 평화시기의 정상적인 생활이 그대로 흐르도록 하시였다.

전국의 극장, 영화관들과 체육관, 경기장들에서는 예술공연과 영화상영, 체육경기들이 이전이나 다름없이 진행되였다. 인민대표단들도 여느해처럼 인민군장병들을 축하해주었고 예정했던 전국농업대회도 성대히 열리였다.

장군님자신께서도 이무렵 몸소 평양대극장에 나가시여 조선인민군협주단이 창조한 음악무용서사시 《수령님께 드리는 충성의 노래》를 지도하시였다. 그후 어느날에는 평안남도 안주군 상서리를 돌아보시면서 학교를 잘 건설하고 교구비품을 충분히 갖출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한 일군이 장군님의 집무실을 찾아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이께서는 작전도가 아니라 녀성들의 옷도안을 들여다보고계시였다.

미소를 지으시고 좋다고 하시며 옷도안들을 펼쳐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어디엔가 전화로 우리 녀성들이 입을 옷인데 꼭 도안대로 만들어 선녀가 되게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시였다.

(우리는 벌써 이겼구나!)

이런 환희에 휩싸여있는 그 일군에게 장군님께서는 《푸에블로》호사건과 관련한 외교적대응책을 세워주시고나서 미국호전광들에게 버릇을 가르쳐주어야 한다고, 큰 나라라고 하여 작은 나라를 업수이여기는 오만한 자세를 꺾어놓아야 한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미국이 조선을 똑바로 알았어야 했다. 조선을 아직도 잘 모르는데 미국의 비극이 있다.

이번에 미국놈들이 허장성세하면서 우리 나라에 기여들지만 돌아갈 때에는 우리 인민과 세계인민들앞에서 적대적인 정탐행위를 인정하고 항복서라도 내야 제발로 돌아갈수 있다. 올 때에는 제 마음대로 왔지만 돌아갈 때에는 절대로 제 마음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

계속하여 이제 교활하기 그지없는 미국놈들이 무모하게도 모험적인 책동을 할수도 있다고, 그러나 덫에 걸린 도적고양이신세이므로 우리 인민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의 항복서를 반드시 쓰게 될것이라고 하시면서 세상사람들은 우리가 미국놈들로부터 항복서를 어떻게 받아내는가를 보게 될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참으로 위대한 장군님의 여유작작하고 배포유연하신 모습은 적들을 한손에 거머쥐고 쥐락펴락하시며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굳건히 수호해가시는 전설적령장의 모습이였다.

그 위대한 모습을 우러르며 인민군장병들과 인민은 물론 세계 진보적인류는 조선의 승리를 락관하였다.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침해하는것을 티끌만치도 용납하지 않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무비의 담력과 배짱, 령활무쌍한 지략앞에 《푸에블로》호사건이 터진 때로부터 근 1년만에 미국은 항복하였다.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인 1월 24일에 열린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장에 나타났던 미군수석대표는 이런 으름장을 놓았었다.

《공해상에 있던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조선정부는 미국에 사죄해야 한다. 미국은 손해배상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11개월이 지난 12월 23일 11시 30분에 회담장에 나타난 미군수석대표는 수많은 내외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음과 같은 사죄문에 떨리는 손으로 수표하였다.

《미합중국정부는 1968년 1월 23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령해에서 조선인민군 해군함정들의 자위적조치에 의하여 나포된 미국함선 푸에블로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령해에 여러차례 불법침입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중요한 군사적 및 국가적기밀을 탐지하는 정탐행위를 하였다는 이 함선의 승무원들의 자백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대표가 제시한 해당한 증거문건들의 타당성을 인정하면서 미국함선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령해에 침입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반대하는 엄중한 정탐행위를 한데 대하여 전적인 책임을 지고 이에 엄숙히 사죄하며 앞으로 다시는 어떠한 미국함선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령해를 침범하지 않도록 할것을 확고히 담보하는바입니다.》

이어 판문점에서는 80여명의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을 석방이 아니라 추방하는 전대미문의 의식이 진행되였다.

기자들은 사죄문에도 서명하고 추방당한 《푸에블로》호의 승무원들도 넘겨받은 미군수석대표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물었다.

《감상이 어떠한지요?》

《15년전 이곳에서 정전담판문건에 수표한 해리슨의 고백을 읽어보라. 그는 내가 할 말을 미리 다하였다.》

미군수석대표는 이런 탄식을 남기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만이 아니였다. 미국대통령 죤슨은 사죄문을 읽어보고나서 이렇게 비명을 질렀다.

《미국이 생겨 력사에 남긴 사죄문은 오직 이것 하나뿐이다.》

외국에서 출판된 어느 한 도서에서는 《푸에블로》호사건을 통한 조미대결전결과에 대하여 이렇게 평했다.

푸에블로호사건에서는 도대체 누가 사죄했고 누가 승리하였는가.

굴복한것은 미국이였다.

푸에블로호가 나포되고 승무원들이 조선에 억류되였는데도 제7함대는 조용히 조선해협을 떠나가버렸다. 미국병사들의 포로생활은 근 1년이라는 긴 세월이였고 같은 해 12월 23일 미국정부가 령해침범을 인정하고 사죄문을 발표하고서야 겨우 석방되였다.

조선에서 패배한 죤슨대통령은 재선되지 못했다.

김일성주석과 김정일장군의 조선은 미국과의 군사대결에서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력사적인 승리를 거둔것이다.

케네디의 꾸바위기는 미국뿐아니라 전세계에서 기록영화로 거듭 방영되고있지만 이 푸에블로호사건을 둘러싼 조미군사대결과 미국의 굴복은 그 이상의 력사적의미가 있는 사건이다.》

오늘도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전리품으로 전시되여있는 《푸에블로》호를 보면서 사람들은 민족을 중시하시고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는자들과는 자그마한 타협이나 양보도 모르시는 절세의 위인을 령도자로 모실 때 제국주의자들과의 정치군사적대결에서 력사적승리를 이룩하고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굳건히 수호할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금 새겨안게 된다.

6

련이어 받아낸 사죄문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푸에블로》호사건이후에도 대형간첩비행기 《EC-121》격추사건과 판문점사건, 무장직승기격추사건 등을 통해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함부로 건드리려는자들에게 무자비한 타격을 가하시였다.

1960년대말 미국은 《푸에블로》호사건에서 응당한 교훈을 찾을 대신 더욱 앙심을 품고 전쟁도발책동을 집요하게 벌리였다.

새로 대통령자리에 올라앉은 닉슨은 아시아인들끼리 싸우게 하는 《새 아시아정책》이라는것을 내놓고 일본반동들과의 아시아반공군사동맹조작에 열을 올리고있었다. 한편 조선반도에서 군사적침략의 구실을 마련하기 위해 최신식전자정찰설비를 갖춘 대형간첩비행기 《EC-121》을 조선동해상공에 자주 침입시켜 공중정탐행위를 일삼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정세의 흐름을 꿰뚫어보시고 인민군대가 적들의 어떠한 침략에도 제때에 강력한 타격을 안길수 있도록 만단의 전투태세를 갖추도록 하시였다.

주체58(1969)년 4월 15일 공화국의 군대와 인민은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57돐을 경사롭게 기념하고있었다. 바로 이날 《푸에블로》호사건에 못지 않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날 오후 1시 50분경 조선인민군 공군의 비행사들이 조선동해령공에 불법침입하여 정탐행위를 감행하던 미국의 대형간첩비행기 《EC-121》을 단방에 격추하고 거기에 타고있던 30여명의 미군을 깊은 바다속에 수장해버렸던것이다.

대형간첩비행기 《EC-121》격추사건은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이 침해당하는것을 추호도 용납하지 않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빛나는 예지와 탁월한 지략이 안아온 빛나는 승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미 미국의 대형간첩비행기 《EC-121》이 공화국의 령공에 기여들어 정탐행위를 감행한다는데 대한 보고를 받으시였을 때부터 미국에 다시한번 강타를 안길 구상을 무르익히시였다.

격추사건이 일어나기 얼마전에도 장군님께서는 한 인민군지휘성원에게 간첩비행기가 다시금 우리측 령공에 날아들면 즉시 비행기를 출동시켜 쏴떨굴데 대한 특별명령을 내리시면서 우리는 이번 작전을 잘하여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사건으로 수치스러운 항복을 당한 미제침략자들에게 이번에는 하늘에서 된타격을 가함으로써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할것이라는 우리의 립장이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것을 세계앞에 보여주어야 한다고 하시였었다.

그리고 대형간첩비행기를 일격에 요격하기 위한 방안까지 가르쳐주시였는데 그 하나하나는 그야말로 적의 약점을 찾아 기묘한 전술로 적의 심장을 면바로 찌르는 비수와 같은것이였다.

조선인민군 공군의 비행사들은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전투준비를 빈틈없이 갖추고있다가 간첩비행기가 또다시 령공을 침범하자 단방에 격추해버릴수 있었다.

이 사건은 단순히 령공을 침범한 간첩비행기를 쏴떨군데 그치는 일이 아니였다. 반제반미투쟁의 전초선에서 견결히 싸우는 조선인민과 그 무장력이 세계제패를 꿈꾸며 날뛰는 미국과 정면대결하여 일격에 거꾸러뜨린 빛나는 승리였다.

대형간첩비행기 《EC-121》격추소식이 내외에 큰 충격을 불러일으키고있던 어느날 오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미국의 간첩비행기가 격추된 사실을 이야기하시면서 우리는 적들이 땅우로 기여들건, 바다로 기여들건, 하늘로 기여들건 즉시에 모조리 요정낼수 있도록 만단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우리는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있다가 적들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하늘의 《푸에블로》호라고 으시대던 저들의 비행기가 박산났다는 급보를 받은 미국대통령 닉슨은 국가안전회의를 연다, 대응책을 모의한다 복닥소동을 벌리며 또다시 수많은 침략무력을 급파하여 조선반도의 정세를 일촉즉발의 전쟁접경에로 몰아갔다.

특히 미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 공화국에 대한 핵공격을 기정사실화하는 핵전쟁계획까지 작성하였다. 이에 대하여 남조선의 《련합뉴스》(2010년 6월 24일)는 다음과 같이 폭로하였다.

《멜빈 레어드 당시 국방장관은 정찰기격추사건이 발생한지 두달만인 1969년 6월 25일 북에 대한 핵군사작전씨나리오를 포함해 총 25개의 주요 및 세부옵션이 담긴 비상계획을 헨리 키신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보고했다.

문서에 따르면 이들 옵션가운데 프리덤 드롭(Freedom Drop)이라는 작전명이 붙여진 전술핵무기사용비상계획은 북이 새로운 도발을 감행할 경우에 대비해 … 3가지 세부옵션을 제시하고있다.

먼저 북을 응징하는 차원에서 0.2-10kt의 파괴력을 지닌 핵무기로 북의 12개이상의 표적을 공격한다는 내용이다.

핵무기공격은 주한미군에 배치된 전술전투기 또는 항모배치 폭격기 아니면 서젼트미싸일과 오네스트 죤미싸일을 리용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두번째 옵션은 70kt의 핵무기로 북의 16개 비행장을 타격해 공군력을 궤멸하는 방안이고 세번째 옵션은 10-70kt의 핵무기를 리용해 북의 공격능력을 상당수준까지 훼손하는 내용을 담고있다.》

정세는 나날이 격화되여가고있었다.

세계는 《푸에블로》호사건때에는 미국이 포로송환때문에 굽어들었지만 이번에는 비행기가 통채로 바다에 처박혀 걷어갈것도 없으니 그야말로 《보복》할것이라는 우려로 가슴을 조이며 조선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으시고 전세계에 미국의 죄행을 폭로하고 전군, 전민을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반미대결전에로 불러일으키시였다.

주체58(1969)년 4월 19일 새벽 1시였다.

한 일군은 다급하게 울리는 전화종소리에 얼른 송수화기를 들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걸어오시는 전화였다.

그이께서는 좀 쉬면서 일하라고 하시며 지난해에는 우리 해군이 미제에게 본때를 보여주었는데 올해에는 공군이 미제에게 또다시 된매를 안겼다고, 우리에게 도발을 거는 제국주의자들에게는 무자비한 징벌을 가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놈들을 군사정전위원회에 끌어내여 된매를 안길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된매를 안기면 놈들은 닭쫓던 개신세가 되고말것이라고 하시였다.

정세는 그이께서 예견하신대로 돌변하였다.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장에 끌려나온 적들은 제편에서 먼저 《EC-121》격추사건을 꺼내놓으면서 생트집을 걸었다.

조선인민군측 수석위원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안겨주신 담력과 배짱을 안고 미국측 수석위원에게 이렇게 들이댔다.

- 그래, 당신네 나라에서는 집에 강도가 뛰여들었을 때 어떻게 하는가. 조선사람들은 강도에게는 몽둥이가 제격이라고 하면서 몽둥이로 후려친다. 이번에 《EC-121》이 조선의 몽둥이세례를 받고 동해바다에 수장되였다.

대답하라, 《EC-121》이 유엔군에 속하는 비행기인가 아니면 미태평양함대에 속하는 비행기인가? …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질문에 미국측 수석위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간첩비행기가 유엔군소속이 아니라 미태평양함대소속 비행기라는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인것만큼 사실대로 소속을 인정한다면 저들의 죄가 국제법에 따라 보다 엄중시될것이기때문이였다.

미국측 수석위원은 비지땀만 흘리다가 말 한마디 없이 회의장에서 사라지고말았다.

4월 23일 전쟁소동에 매달리는 미국의 침략성을 세계앞에 고발하고 조선인민의 철저한 반미립장을 엄숙히 선언하는 공화국정부의 성명이 발표되였다.

《우리 인민은 그 누구를 먼저 다치려 하지 않지만 그 누가 우리를 모욕하며 건드리는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전체 조선인민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끝까지 물리치고야말 단호한 결의를 가지고있다.》

사생결단의 의지로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지켜내려는 이 단호한 결의는 그대로 위대한 장군님의 의지이고 립장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일군들에게 적들의 그 어떤 군사적위협도 우리를 놀래울수 없다고, 우리는 수령님께서 단호히 선언하신것처럼 적들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할것이라고 강인담대한 결단의 의지를 피력하시였다.

전군, 전민이 장군님께서 펼치신 반미대결전에 떨쳐일어나 적들의 도발에 련속 된매를 안겼다.

1969년 8월 17일 군사분계선상에서 만단의 전투준비상태를 유지하고있던 인민군군인들은 공화국북반부지역에 또다시 침입한 미군용비행기 《OH-23G》를 파리잡듯 요정내고 거기에 탔던 비행사 3명을 포로하였다.

너무나도 단호하고 응당한 징벌이였다.

공화국의 강경한 대응에 더는 어쩔수 없게 된 미국은 이해가 다 저물어가던 12월 3일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정전위원회 쌍방 수석위원간의 회의에서 저들의 범죄행위를 인정하고 사죄문을 써서 바치지 않으면 안되였다.

사죄문에는 《…군용비행기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반부령공깊이 침입시킴으로써 정전협정을 위반하였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자주권을 엄중히 침해한데 대하여 전적인 책임을 지고 이에 엄숙히 사죄하며 앞으로 이와 같은 범죄행위를 다시는 하지 않을것과 정전협정을 엄격히 준수할것을 확고히 담보》한다고 밝혀져있었다.

근 8개월간 대형간첩비행기 《EC-121》격추사건으로 땅바닥에 떨어진 《초대국》의 체면을 세워보려고 《보복》이니, 전면전쟁이니 하면서 열을 올리던 미국은 결국 《OH-23G》군용비행기격추사건을 계기로 끝내 무릎을 꿇고말았다.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나포와 더불어 대형간첩비행기 《EC-121》의 격추는 세계면전에서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은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를 생동하게 보여준 산모범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미국에 의하여 일촉즉발의 위험한 정세가 조성될 때마다 군인들과 인민들에게는 필승의 신심과 락관을 안겨주고 원쑤들에게는 공포와 전률을 일으키시며 언제나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지켜오시였다.

1976년 8월 18일 아침 10여명의 미군은 대형화물차를 끌고 와 판문교부근의 인민군초소앞에 있는 나무를 무작정 찍으려고 덤벼들었다.

정상적인 순찰임무를 수행하던 인민군경비인원들이 도발적인 행동을 중지할것을 경고하자 미군측은 대기시켜놓았던 30여명의 불한당들까지 동원하여 도끼와 몽둥이를 집어던지며 일제히 달려들었다.

결국 쌍방간에 격투가 벌어져 2명의 미군장교가 죽고 부상자들이 발생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판문점사건의 진상이였다.

공화국에 대한 국제적인 제재와 압력, 전쟁발발의 구실을 마련할 목적밑에 미리 촬영준비를 해두었던 미국은 사건발생직후 저들에게 유리하게 찍은 사진자료들로 사건의 진상을 외곡보도하면서 기만적인 서한이라는것을 만들어 유엔안전보장리사회에 제출하고 그것을 공식문건으로 배포하도록 하는 한편 남조선강점 미군부대들에 비상대기령을 내려 전투태세에 들어가게 하였다. 련이어 오끼나와와 미국본토로부터 《F-4》초음속비행기와 전투폭격기편대들 그리고 핵항공모함 《미드웨이》호를 주축으로 하는 미제7함대의 기동타격함대와 오끼나와주둔 미해병대병력 1 800여명을 긴급히 남조선에 끌어들이면서 전쟁열을 고취하였다.

온 나라에 전쟁을 앞둔 긴장한 분위기가 조성되였으며 온 세계가 공화국에서의 사태발전을 놓고 우려하였다.

그러나 미국의 이러한 전쟁광기도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굳건히 수호하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철의 신념과 배짱앞에서 물먹은 담벽처럼 무너져내리고말았다.

조성된 사태를 예리하게 판단하시고 앞으로의 정세발전에 대처한 대응책을 면밀히 강구해놓으신 장군님께서는 평범한 날처럼 집무실에서 깊은 사색과 랑만적인 정서에 넘쳐 음악을 감상하시여 긴장하고도 무거운 마음을 안고 대외출장에서 돌아온 외교일군을 놀래우시였다. 사건발생후 나흘째 되는 날에는 총참모부의 책임일군을 데리고 체육단에 나가 머리쉼을 시키시고 정황발생이 있을가봐 걱정하는 그에게 구데기 무섭다고 장을 담그지 못하겠는가고 호탕하게 웃으시여 빨찌산출신 백전로장의 경탄을 자아내시였다.

또한 조성된 정세로 하여 긴장하게 사업하는 인민군대의 한 책임일군의 건강을 념려하여 몸소 그를 데리고 호수가에 나가시여 낚시질도 하면서 즐거운 휴식의 하루를 보내도록 하시였으며 수개 사단의 병력을 뚝 떼내여 사회주의건설에 동원시킬데 대한 명령을 하달하도록 하시는 한편 중지되였던 군인휴양을 다시 재개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판문점사건이 일어난 때로부터 10일째 되는 날이였다.

저들의 위협공갈이 통하지 않게 되자 미국은 이날 공화국에 대한 군사적대응조치를 위한 작전을 최종적으로 확정하고 대통령의 명령이 있기만을 기다린다는것을 언론을 통해 공포하였다. 대통령이 한마디만 하면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이른바 최후통첩이였다.

이러한 정세와 관련하여 이날 한 일군은 음악무용이야기 《락원의 노래》시연회를 예정대로 조직해야 할지, 미루어야 할지 몰라 위대한 장군님께 문의의 말씀을 올리였다. 그이께서 이미전에 시연회에 나가보겠다고 말씀이 계셨지만 정세가 너무도 긴장하여 시간을 낼수 있을런지 가늠이 가지 않아서였다.

일군의 심중을 헤아리신 장군님께서는 놈들이 아무리 최후통첩을 보내여도 자신께서는 그것을 코흘리개들의 으름장만큼도 여기지 않는다고 하시고는 예정대로 음악무용이야기 《락원의 노래》시연회를 조직하라고 이르시였다.

몇시간후 시연회장으로 나오신 장군님께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일군들에게 괜찮다고, 언제 어데서 달려든대도 두려울것이 하나도 없다고, 만단의 준비가 다되여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러니 위대한 수령님께서 래일 전쟁이 터진다 해도 오늘 밤 12시까지 건설을 해야 한다고 교시하신대로 우리는 어서 음악무용이야기 《락원의 노래》를 잘 만들어 어버이수령님께 기쁨을 드리자고 하시였다.

미국의 방대한 침략무력이 대통령의 명령을 기다리고있던 그 시각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음악무용이야기 《락원의 노래》창조사업을 밤늦도록 지도해주시였다.

이날 장군님을 모시고 대극장에 나갔던 그 일군은 후날 자기의 격동된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회고하였다.

《옛 병서에 전장에서 군사들은 적을 보기 전에 사령관의 낯색을 먼저 가려본다.고 씌여있다. 이것은 전쟁에서 사령관의 의지와 품격이 병사들의 전투사기를 높이며 싸움의 승패를 결정짓는데 커다란 작용을 한다는 뜻에서 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날 저녁 대극장의 좌석에 앉으시여 출연자들과 호흡을 같이하시며 예술창조사업을 지도하시는 그이의 태연자약한 모습을 우러르며 우리는 벌써 이겼구나!하는 확신을 다시금 가지게 되였다.》

그의 이러한 확신이 현실로 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그처럼 위세를 부리며 날치던 미국은 북조선은 군사적방법으로는 굴복시킬수 없는 나라라고 비명을 지르면서 당초의 전쟁도발계획을 포기하고 판문점공동경비구역의 경비질서변경에 관한 공화국의 주동적인 제의를 받아물고 항복하였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지니신 드센 담력과 배짱은 다름아닌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운명을 기어이 지켜내시려는 높은 책임감과 철의 신념에서 분출되는 담력과 배짱이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철의 신념과 담력, 배짱을 그대로 닮은 공화국의 군대와 인민은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침해하는 침략자들을 무자비하게 징벌하였다.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 우리 군대는 강경하고 단호한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내려오는 우리 군대의 전통이다, 카터가 회담하러 왔다간 후 미국놈직승기가 들어온것도 단방에 쏴떨구지 않았는가, 우리는 누구든 우리의 자주권을 침해하는데 대해서는 절대로 용서치 않는다, 또 용서란 있을수 없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1994년 12월 어느날 판문점에서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 성원과 남조선주둔 미군사령부 고위인물사이에 접촉이 진행되였다.

《미국은 미군직승기의 우리 나라 령공침입을 인정하는가?》

《인정합니다.》

《미군직승기의 침입목적은 무엇인가?》

《직승기조종사들의 훈련부족에서 온 실수였습니다.》

《당치않은 소리요. 이라크전쟁에서 위훈을 세웠다는 직승기조종사들이 훈련부족이란 말이 되는가?》

《담보하건대 다른 목적은 없습니다.》

《우리의 군사시설에 대한 미군직승기의 정찰목적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조종사들을 우리의 법에 의하여 처리할것이요.》

《조선인민군측에서 인도주의를 베풀어 죽은 직승기조종사의 시체와 포로된 조종사를 돌려주기 바랍니다.》

《침략자들에게 무슨 인도주의가 필요한가?》

《거듭 요청하건대 관대하게 용서하여주기 바랍니다.》

《미국측이 미군직승기의 우리 나라 령공침입뿐아니라 우리의 군사시설에 대한 정찰목적을 사죄하지 않는 한 우리는 절대로 직승기조종사들을 돌려보낼수 없다는것을 선언하오.》

세계에 대고 이래라저래라하면서 거만하게 행동하던 미국도 판문점에 나와서는 피고석의 죄인처럼 죽은 미군직승기조종사의 시체와 살아남은 직승기조종사를 돌려줄것을 애원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조선인민군측은 미국이 직승기의 침입목적을 사죄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요구에도 응할수 없다는 강경자세를 취하였다. 미국대통령 클린톤은 할수없이 자기 특사를 보내여 미군직승기가 공화국령공을 침입한데 대하여 인정하고 이러한 행동에 사죄를 표시하였으며 앞으로 이와 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할것을 공식적으로 담보하였다.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굳건히 수호해나가시려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철의 신념과 무비의 담력앞에 미국은 이처럼 또다시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되였다.

7

선군의 총대로 밀어낸 전쟁의 불구름

 

지난 세기 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조선반도는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련합세력과 공화국이 그 어느때보다도 팽팽하게 맞선 열점지대로 변하였다.

주체의 사회주의를 허물어버리려는 침략자들과 이를 지켜내기 위한 수호자들사이의 대결로 낮과 밤이 흘러갔다.

이 치렬한 대결에서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나라와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굳건히 수호하시고 공화국을 세계가 우러르는 강국으로 올려세우시였다.

이전 쏘련이 해체된 후 《유일초대국》으로 등장한 미국은 저들의 세계제패전략실현의 주되는 장애로 되는 공화국을 어떻게 하나 없애버리려고 총력을 집중하였다.

1993년에 들어서면서 정세는 더욱 격화되였다.

미국은 공격의 화살을 공화국에 집중하고 핵무기개발의혹설을 집요하게 퍼뜨리면서 세계여론을 오도했다. 그리고 공화국이 핵무기전파방지조약의 의무를 리행하지 않았다는 날조된 죄명을 씌워 2개의 군사대상에 대한 특별사찰을 강요하였다. 이것은 공화국의 자주권에 대한 참을수 없는 침해였고 파렴치한 내정간섭이였으며 공화국을 압살하려는 로골적인 적대행위였다.

공화국이 미국의 이러한 특별사찰요구를 단호히 배격하자 미국은 특별사찰에 응하지 않으면 《그레네이더나 빠나마, 이라크의 전철을 밟게 될것》이라느니, 그 무슨 제재를 가하겠다느니 위협하는 한편 1993년 1월 이미 중지했던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의 재개를 공포하고 여기에 20여만의 침략무력을 동원하였다. 이것은 미국이 공화국에 대해 군사행동으로 사실상 선전포고를 해온것이나 다름없었다.

령토와 인구상에 있어서나 군사비와 병력수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가진 조미간의 군사대결은 실제로 공화국과 세계제국주의련합세력사이의 대결구도였다.

세계는 과연 조선이 어떻게 대응해나갈것인가에 대하여 깊은 우려를 가지고 주시하였다.

이러한 때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미국의 핵소동을 짓부시고 나라와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단호한 자위적조치를 취하시였다.

첨예한 정세속에서 시간이 흐르던 주체82(1993)년 3월초 어느날 인민군대의 한 책임일군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걸어오신 전화를 받게 되였다.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인민군부대들의 전투동원준비상태에 대하여 알아보신 다음 호탕하게 웃으시며 우리 한번 미국놈들의 명줄을 쥐고 흔들어보자고 말씀하시였다.

마치도 미국의 도발로 조국해방전쟁이 일어나던 날 미국놈들이 조선사람을 잘못 보았소라고 말씀하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그 담대한 음성을 듣는것만 같았다.

주체82(1993)년 3월 8일 전국, 전민, 전군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함에 대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 제0034호 《전국, 전민, 전군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함에 대하여》가 세상에 엄숙히 선포되였다.

명령에서는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이 새 전쟁을 도발한다면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는 당과 수령을 위하여, 피로써 쟁취한 인민대중중심의 우리 식 사회주의를 위하여 끝까지 싸워 침략자들에게 섬멸적인 타격을 주고 영웅조선의 존엄과 영예를 다시한번 떨칠것이라고 선언하면서 원쑤들은 우리 공화국의 한치의 땅, 한포기의 풀도 함부로 건드릴수 없다는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엄숙히 경고하였다.

이것은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끝까지 수호하려는 군대와 인민의 단호한 자세와 립장, 칼에는 장검으로, 총에는 대포로 맞선다는 폭탄선언이였다.

최고사령관명령이 나간데 이어 강경한 군사적대응조치들이 취해졌다.

《팀 스피리트 93》합동군사연습이 실동단계에 들어섰을 때 인민군기계화련합부대의 기동과 배합된 공격훈련, 대기계화부대들의 실전훈련이 진행되였다. 얼마후에는 미국에 사전통보한 조선인민군의 위력한 무기가 발사되였다.

최고사령관명령에 접하여 군대는 물론 온 나라가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투쟁에 산악같이 일떠섰다.

준전시상태에 돌입한 첫날에 벌써 최고사령관명령을 관철하기 위한 10여만 평양시군중대회가 진행되였고 최고사령관명령이 하달된 후 10여일 남짓한 기간에 전국적으로 150만여명의 청년들이 인민군대입대를, 수많은 제대군인들과 전쟁로병들이 복대를 탄원해나섰다.

최고사령관명령을 받들고 나라와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결사수호하기 위한 투쟁에로 전군, 전민이 일떠선 이러한 현실은 원쑤들을 전률케 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 적들에게 더 무서운 강타가 안겨졌다.

3월 12일 나라의 최고리익을 수호하기 위한 조치로서 부득이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한다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의 성명을 알리는 조선중앙통신사 보도가 세계에 힘있게 울려퍼졌다.

이것은 침략자, 도발자들의 전쟁책동으로부터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끝까지 수호하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신념과 의지가 얼마나 확고부동한것인가를 다시한번 온 세계에 알리는 선언이였다.

사실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의 탈퇴를 선언한다는것은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핵무기전파방지조약이 본질상 핵렬강들이 핵우세, 힘의 우세를 리용하여 세계무대에서 저들의 영향력을 영구히 행사하기 위해 만들어낸 제재몽둥이로서 그에 도전한다는것은 결국 핵대국들의 정치외교적압력과 경제봉쇄 지어 무력침공까지도 각오한다는것을 의미하기때문이다.

그러나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침해하는 핵무기전파방지조약과 같은데 구애되지 않는다는것을 선언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철의 의지와 강인담대한 배짱앞에 세계는 깜짝 놀랐다.

《지구상의 모든 핵폭탄을 다 터쳐도 공화국의 이번 성명보다 위력하지 못할것이다.》, 《조선의 결정은 미행정부를 쇼크상태에 빠지게 하였다.》, 《북조선의 핵개발을 막으려고 한 미국의 전략이 북조선의 탈퇴선언으로 실패하였다.》 …

어떤 일이 있어도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굳건히 수호하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철의 의지앞에 핵몽둥이를 휘두르던 미국은 넋을 잃고 기가 질리여 《팀 스피리트 93》합동군사연습을 예정기일보다 앞당겨 중지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으며 국제원자력기구도 특별사찰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미국지배층속에서는 《국제정세는 북조선에 불리하니 흰기를 들고 항복할수밖에 없을것이라고 국제사회는 판단했다. 미국도 그렇게 판단하였다. 미국은 조선의 군사동맹국이였던 이전 쏘련은 이미 없어지고 중국도 자기 일이 바빠서 남의 일에 동조하지 않을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판단은 옳다. 그러나 잘못 본것이 있다. 상대를 잘못 본것이다. 상대는 유고슬라비아의 밀로쉐위츠도 아니고 이라크의 후쎄인도 아니다. 미국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을 리해하지 못하고있었다.》라는 한탄소리가 련이어 터져나왔다.

1993년 조미핵대결전은 공화국의 자주권을 존중하고 내정에 간섭하지 않으며 조선의 자주적통일을 지지한다는 원칙밑에 조미사이에 평등하고 공정한 기초우에서 대화를 계속하기로 한다는것을 내용으로 하는 뉴욕 조미공동성명의 발표로 막을 내렸으며 1994년 10월 미국대통령 클린톤이 위대한 장군님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지도자》라고 최대의 존경을 표시하면서 그이께 경수로제공과 대용에네르기보장을 담보하는 서한을 보내여왔다. 국교관계도 없는 적대국이며 세계《유일초대국》이라고 자처하는 미국으로부터 대통령의 담보서한을 받아낸것은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력사적사변이였다.

이에 대하여 미국신문 《뉴욕 타임스》는 《클린톤의 양보》라는 제목의 론평에서 《미국이 무력을 동원하여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위협을 가하여 아이띠군부가 정권을 내놓게 만들었고 이라크에는 군사적압력을 가하여 싸담 후쎄인이 쿠웨이트국경에서 무력을 철수하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었지만 조선이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위협을 가하자 클린톤은 손을 들고 항복하였다.》라고 썼다.

하지만 미국은 사회주의강경보루이며 성새인 공화국을 기어이 허무는것으로서 반사회주의전략실현을 종결지어보려는 변함없는 야망을 품고 그 이후에도 공화국에 대한 핵위협을 끊임없이 가해왔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때마다 보다 강도높은 초강경대응으로 적들에게 무자비한 타격을 가하시였다.

만지역과 세계 여러 나라들에 대한 무력간섭을 통하여 기고만장해진 미군부는 1998년에 들어와 전쟁준비가 완료되였다는것을 시사하는가 하면 《북조선으로 쳐들어갈것을 예견한 새로운 전쟁계획을 완성하였다.》는 보도와 함께 제2의 조선침략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27》을 제3국의 출판물을 통해 공개하면서 공화국을 위협해나섰다.

《작전계획 5027》은 미군과 남조선군이 공화국북반부를 선제공격하여 《붕괴시키는것을 목적》으로 한 극히 침략적이고 모험적인 전쟁계획이였다. 그 위험한 전쟁각본은 5단계로 된 작전임무들과 그 수행을 위해 미군 54만 5 000여명, 남조선군 63만여명, 항공모함전단 5~7개, 스텔스전투폭격기 《F-117》, 《F-111》, 핵무기를 적재한 전략폭격기 《B-1》, 《B-2》, 《B-52》를 비롯하여 현대적인 첨단장비들과 대형타격수단들을 투입할데 대한 내용이 구체화되여있었다.

미국은 이러한 전쟁계획을 공개하면서 그 무슨 효과를 보리라고 타산하였다. 이것은 공화국에 대한 위협공갈인 동시에 대결과 협력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는 일종의 최후통첩이였다.

같은 해 11월 하순 남조선에 날아든 미국대통령 클린톤은 전례없이 남조선강점 미군부대들의 동원상태와 비행대의 출동준비상태까지 최종점검하면서 《미국은 미국인과 우방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할 각오가 되여있으며 능력도 있다.》고 장담하였다. 때를 같이하여 합동참모본부 의장을 비롯한 미국방성우두머리들과 태평양군 사령관, 륙해공군 사령관들, 7함대 사령관 등이 뻔질나게 남조선을 드나들며 전쟁모의를 거듭하였고 여러가지 명칭을 단 합동군사연습을 대대적으로 벌려놓았다.

그리하여 공화국의 인공지구위성발사를 전후로 하여 치렬하게 벌어지던 조미대결은 드디여 전쟁폭발이라는 현실적위험성을 안고 첨예한 대결의 분수령으로 치닫고있었다.

자주권의 수호냐 굴종이냐 하는 물음앞에 또다시 세계가 숨을 죽이고 조선을 주시하고있던 주체87(1998)년 11월 하순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군지휘성원들과 자리를 같이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작전계획 5027》에 대하여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미제국주의자들이 우리의 기를 꺾어보려고 전쟁계획을 만들어 사방에 공개하는것 같다고, 적들이 공화국을 군사적으로 압살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인민군대에서 《한미련합군》작전계획 《5027》의 침략성을 폭로하는 성명을 발표하여야 하겠다. 이번 성명에서는 바로 작전계획 《5027》에 우리 공화국에 대한 미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적야망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내용으로 침략전쟁에 환장이 된 미제국주의자들을 강경하게 때려야 한다. …

그리하여 12월초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의 대변인성명이 발표되였다.

미국도 일본도 우리의 타격목표이고 선제공격은 미국만의 독점물이 아니라는 내용으로 일관된 담화문은 지난 시기 공화국이 미국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한다고 한 선언의 단계를 넘어 공격대상과 공격수단, 공격방식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한 군사적초강경립장의 명백한 표명으로 되였다.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결사수호하려는 공화국의 초강경대응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다음날에는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을 날려보내겠다는 보다 강경한 립장을 담은 당시 인민무력성 부상의 담화가 발표되였고 련이어 열린 반미집회들에서는 인민군대가 침략의 아성과 그 기지들을 그대로 두지 않을것이라는 강력한 웨침들이 울려나왔다.

《작전계획 5027》을 공포하면서 허세를 부리던 미국은 공화국의 초강경대응자세에 아연실색하였다.

세계는 첨예하게 벌어지는 조미대결전을 보면서 이 지구상에서 《유일초대국》이라고 자처하는 미국과 당당히 맞서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굳건히 지켜나가는 조선이라는 강국이 있다는것을 똑똑히 보았다.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의 탈퇴에 이은 국제원자력기구에서의 탈퇴, 그 이후에 진행된 핵문제해결을 위한 조미회담과 그 리행을 위한 주요협상들, 효력을 림시정지시켰던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의 완전탈퇴와 6자회담진행, 위대한 장군님의 특사의 미국방문, 미국대통령의 우리 나라 방문준비를 위한 미국무장관의 공화국방문과 2009년 8월 미국 전 대통령 클린톤일행의 평양방문, 2010년 8월 미국 전 대통령 카터의 공화국방문 등은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생명보다 더 귀중히 여기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결단과 의지, 령활무쌍한 지략에 의하여 이루어진 반제반미대결전에서의 공화국의 승리를 그대로 보여주는것이였다.

주체91(2002)년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공화국을 방문한 로씨야의 한 인사를 만나주시였다.

그때 그는 위대한 장군님께 조선은 언제나 《유일초대국》이라고 하는 미국과 땅땅 맞서 이기군 하는데 그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자기로서는 도저히 알수 없다고 말씀올리였다.

장군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명쾌한 대답을 주시였다.

그 누가 내리누르면 누를수록 더 맞받아나가는것이 바로 조선인민의 기질이다. …

천만마디의 말로도 대신할수 없는 그 한마디의 말씀에 흥분을 금치 못한 인사는 본국으로 돌아가 《조선의 정치력학》이라는 론설을 발표하였다.

그는 글에서 작용과 반작용법칙은 고전력학의 기초로 되는 뉴톤의 3법칙이라는것, 그 법칙을 리용하여 로씨야의 과학자 찌올꼽쓰끼는 로케트리론을 내놓고 우주정복의 시원을 열어놓았는데 뉴톤의 3법칙처럼 미국이 압력을 가할수록 조선인민은 더 강해진다는것, 미국이 핵무기로 위협하면 할수록 조선인민의 타격력도 더 강해진다는것, 이것은 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 내놓으신 《조선의 정치력학》이라고 썼다.

이처럼 수십여년에 걸쳐 진행된 전대미문의 조미대결전들에서의 공화국의 승리는 전적으로 나라와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을 굳건히 수호하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철의 신념과 의지, 적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초강경대응이 안아온 자랑찬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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