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온 나라에 민족성이 차넘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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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족흥망의 사활적문제로

 

오늘날 민족의 넋과 전통을 고수하고 발전시켜나가는 문제는 그 어느때보다 심각하게 제기되고있다. 렬강들의 강권과 패권주의적전횡은 세계 도처에서 수많은 민족들의 고유한 특성을 무자비하게 짓뭉개고있으며 그에 굴복한 민족허무주의와 사대주의가 수많은 민족들의 멸망과 쇠퇴과정을 조장시키고있다. 여기에다가 각이한 사상조류들, 이를테면 《국경없는 문화》, 《국경없는 가치관》을 부르짖는 《초문화주의》와 같은 사조들이 민족들의 정신과 전통을 좀먹고있다.

지나간 시대에는 외세의 군사적공격으로부터 자기의 령토와 민족성원들의 생명안전을 지키는것이 민족보존의 기본담보로 되였다면 오늘의 시대에는 그와 함께 민족의 넋을 지키고 빛내여나가는 문제가 민족의 존망과 관련되는 사활적인 문제로 나서고있다.

민족발전에 장애를 놓는 온갖 이색적인 사상조류들의 독소를 해소하고 민족의 넋과 전통을 고수하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력사적인 로작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할데 대하여》에서 시대와 민족이 제기하는 이 심각한 물음에 명철한 대답을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주체성과 함께 민족성을 지키는것을 나라와 민족의 흥망을 결정하는 사활적문제로 내세우고 정치, 경제, 문화를 비롯한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민족성을 고수하는것이 민족의 운명개척에서 근본적인 의의를 가지는 문제로 된다는데 대하여 과학적으로 밝히시였다.

주체성과 함께 민족성을 고수할데 대한 문제는 민족문제와 관련한 위대한 장군님의 사상에서 특별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력사적경험과 교훈은 주체성과 민족성을 지키는가 못 지키는가 하는것이 혁명과 건설의 승패를 좌우하는 관건적문제이며 나라와 민족의 흥망을 결정하는 사활적문제라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어떤 민족이나 력사적으로 형성되고 공고화된 민족성을 가진다.

민족마다 자기의 고유한 민족성을 가지며 또 모든 민족이 자기의 민족성을 귀중히 여긴다는것은 이미전부터 단편적으로나마 론의되여온 문제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민족이 지니게 되는 민족성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문제에서 어떤 의의를 가지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서는 관심이 돌려지지 못하였다.

로동계급의 선행한 민족리론에서는 자본주의제도가 청산되고 사회주의, 공산주의건설이 진척됨에 따라 민족자체가 점차 없어질것이라고 예견하였기때문에 민족성문제자체를 론할수 없었다.

민족성이라고 할 때 그것은 해당 민족에게 고유한 특성을 말한다. 즉 다른 민족에게는 없어도 해당 민족에게만 있는 특성 또한 다른 민족에게 있어도 해당 민족의것과 구별되는 특성을 말한다.

민족성은 사회력사적으로 형성되는 특성으로서 그것은 유산으로 내려오는 민족의 우수성으로 집약된다.

민족성은 인종적인 특성과 구별된다. 인종적특성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진것이지만 민족성은 사회력사적으로 이루어지고 공고화된 특성이다.

민족성은 민족성원들의 넋과 기질, 생활양식과 언어, 풍속 등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사람들이 민족을 형성하고 독자적인 생활단위를 이루고 살아나가는 과정에서 민족성이 형성된다.

우리 민족의 민족성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통하여 형성된것으로 하여 공고한것이 그 특징으로 된다. 오랜 력사적과정속에서 하나의 피줄을 이어받고 하나의 언어를 쓰면서 하나의 지역에서 살아왔기때문에 우리 민족의 민족성은 순수하고 우수한것으로 되고있다.

민족성에서 중요한것은 해당 민족이 지닌 정신과 넋, 심리라고 할수 있다. 각 민족에게 고유한 민족정신, 민족적넋이 민족성에서 기본을 이룬다.

우리 민족의 민족성에서 중요한 내용을 이루는것은 자주정신이다.

자주정신은 우리 민족에게 고유한 특성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자주정신이 높고 자기의 존엄을 귀중히 여기였으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사를 중시하고 나라를 보위하는것을 귀중한 본분으로 여겨왔다. 자주와 애국, 정의를 귀중히 여기는 이러한 정신이 민족적정서와 감정, 생활양식에 관통되게 되였다.

민족성에는 또한 민족적기질과 생활양식, 언어와 풍속, 민족적감정과 민족적정서 등이 포함된다. 민족적기질로 나타나는 민족적성격은 오랜 력사적기간이 흘러가도 변하지 않으며 그것은 대를 이어 민족성원들의 체질로 굳어지게 된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민족의 존재와 발전에서 민족성을 지키는것이 가지는 의의를 깊이 헤아리시고 민족성을 살린다는것은 자기 민족의 고유하고 우수한 특성을 보존발전시키고 그것을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 구현해나가는것이라고 하시며 민족성을 고수하기 위하여 나서는 문제들에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매개 민족은 자기의 고유한 특성을 가진것으로 하여 세계앞에서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것을 버리는 경우에는 민족으로서의 자기의 존재를 유지할수 없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민족성을 고수하는 문제는 민족의 운명과 관련되는 사활적인 문제로 되는것이다.

물론 력사적으로 형성된 민족성은 시대적, 계급적제한성을 가질수 있다. 그러나 민족성을 복고주의, 부르죠아민족주의의 온상으로 볼수는 없다. 민족성에는 민족자주정신과 민족문화전통이 체현되여있으며 그것은 나라와 민족의 귀중한 재부로 된다.

민족성을 고수하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애국애족의 립장을 지키는것이 중요하다.

나라와 민족을 떠나서는 누구도 살아갈수 없고 운명을 개척할수 없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자 개인의 운명이며 민족의 운명속에 개인의 운명이 있다고 가르치시였다.

나라와 민족이 남에게 예속되면 사람은 설사 살아있어도 상가집 개만도 못하고 산천은 설사 지경이 남아있어도 제모습을 보존하기 어렵게 된다. 이것은 일제식민지통치시기 우리 민족이 당한 치욕의 력사가 말해주고있다. 그 시기 수많은 우리 민족이 악독한 식민지통치밑에서 굶어죽고 얼어죽고 불타죽었으며 이 땅의 귀중한 재부들이 략탈당하였다.

반대로 민족이 강성하고 흥하면 사람들도 존엄있고 행복한 생활을 누릴수 있다. 오늘도 해외에서 살고있는 동포들이 선군으로 존엄높은 자기의 조국을 잊지 않고 자기 민족과 운명을 함께 하는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민족의 운명이자 개인의 운명이며 민족의 운명속에 개인의 운명이 있다는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민족관은 모든 민족성원들에게 참다운 인생관을 가르쳐주는 귀중한 사상정신적보검으로 된다.

민족의 운명이자 개인의 운명이며 민족의 운명속에 개인의 운명이 있기에 사람은 자기 민족을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여야 하며 민족의 발전을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는 애국애족의 립장을 가져야 한다.

애국애족의 립장에 선 사람이여야 자기의 민족성을 지킬수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자기의것을 귀중히 여길수 없으며 그것을 발전시킬수 없다.

민족을 사랑한다는것은 곧 민족적인 모든것을 사랑한다는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민족성을 고수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애국애족의 정신과 립장을 가져야 한다.

민족성을 고수하기 위하여서는 다음으로 민족자주의 원칙을 견지하고 민족의 운명을 자기식으로 개척해나가야 한다.

민족이 자주의 원칙을 견지한다는것은 그 누구의 압력이나 간섭을 받음이 없이 민족의 발전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제정신을 가지고 자기의 결심에 따라 처리해나간다는것을 의미한다.

외세에 눌리워 자기의 주대를 세우지 못하면 민족적인 모든것을 잃을수 있고 그렇게 되면 민족의 고유한 특성을 살릴수 없게 된다.

오늘 남조선에서 민족성이 유린되고 말살되게 된것은 중요하게 력대 집권자들이 민족적자주권을 지키지 못하고 외세에 눌리워 주대를 세우지 못한것과 관련된다.

그러나 공화국에서는 절세의 백두산위인들의 투철한 민족자주로선이 있었기에 민족의 고유하고 우수한 전통과 문화가 날로 개화발전하고있다.

이에 대하여 남조선의 민족사바로세우기회 회장은 《민족의 본향-평양》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주체성, 민족성을 확고히 고수하고 빛내이는 이북의 자랑찬 현실은 절세의 위인이 안아온 애국의 결실이다.

주체사상탑이 창공높이 솟아있는 평양은 희세의 령수 김정일장군님을 모시여 자주로 존엄높은 주체의 성지로 찬양을 받고있다. 그분의 사상과 의지가 빛발쳐 평양에서는 우리 식대로 살아가는 기풍, 우리 민족제일주의정신이 나래치고있다.

대국의 압력과 간섭을 배격하고 자주적립장에서 세계를 굽어보는 평양을 서방은 두려워한다. 세계를 저들의 지배권에 넣고 유일초대국행세를 하려는 미국도 평양의 존엄만은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

이 세상 그 어떤 힘으로도 깨뜨릴수 없는 이북의 사회주의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리상적인 사회, 주체성과 민족성이 확고히 담보되는 사회이다. 이렇듯 존엄높고 위풍당당한 강국을 우뚝 세워주신 김정일장군님을 우리 민족은 천세만세 격찬하고 무궁토록 칭송할것이다.》

민족성을 고수하기 위하여서는 다음으로 민족의 주체적력량을 튼튼히 꾸려야 한다.

민족성은 민족자체의 주체적준비가 튼튼히 마련될 때 지켜질수 있고 발전할수 있다. 민족자체의 정치군사적 및 경제적력량이 마련되여야 튼튼한 민족적지반우에서 민족의 고유한 우수성과 전통을 지켜낼수 있고 발전시켜나갈수 있다.

자체의 주체적력량이 꾸려지지 못하고 민족적지반이 약한 상황에서는 민족성을 지킬수 없고 발전시켜나갈수도 없다.

사회주의를 건설하던 동유럽나라들의 실태가 그것을 실증해주고있다. 이전 동유럽사회주의나라 집권자들은 큰 나라를 쳐다보면서 정치를 하였다. 그들은 모든 정책적문제들을 큰 나라의 의견과 결론을 받아 처리하였으며 큰 나라의 정책과 로선을 그대로 받아물었다. 그들은 경제건설도 큰 나라에 의존하고 큰 나라의 도움으로 하려 하였고 큰 나라 식을 따르고 큰 나라가 하라는대로 하였다.

그리하여 정치, 경제, 군사 등 거의 모든것이 큰 나라에 얽매이게 되였다. 지난 시기 이 나라들은 변화된 현실의 요구에 맞게 새로운 리론과 정책을 내세우지 못하고 선행리론에 대한 교조주의적립장에 매여달리면서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보장하지 못하였다.

이 나라들은 주체성과 민족성을 가지고 혁명과 건설을 하는것이 마치도 국제주의에 배치되는것처럼 생각하였다. 이로부터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고 민족적특성을 살리는 문제들에 대하여 응당한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

결과 이 나라 인민들속에서 민족허무주의가 자라나게 되였으며 큰 나라가 위기를 겪게 되자 같이 위기를 겪게 되였고 수십년간 건설해오던 사회주의가 좌절되는 비극적사태가 초래되였던것이다.

현실은 주체성을 견지하지 못하고 민족성을 살려나가지 못하면 자주성을 잃게 되며 사람들이 머저리가 되고 결국 나라와 민족이 망하게 된다는것을 뚜렷이 실증해주고있다.

민족성을 고수하기 위하여서는 다음으로 사람들의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야 한다.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은 민족애와 민족자주의식의 발현으로서 자기 민족의 우수성을 체득한데 기초하여 이루어지고 발현된다.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한 투쟁에서 사회력사적으로 형성되는 민족의 우수성은 인종적특성과는 인연이 없으며 어느 특정한 민족만이 지니게 되는것도 아니다. 모든 민족에게는 다 자체의 우수성이 있으며 그것을 살리고 내세우려는 지향과 요구가 있다.

민족의 우수성을 살리고 내세우는데서 중요한것은 민족유산을 옳게 계승발전시키는것이다.

민족유산을 홀시하고 줴버리는 허무주의는 민족적우수성의 개화발전을 가로막는 주되는 장애물이다. 민족성을 살려나가자면 민족유산을 귀중히 여기는 립장을 가져야 하며 민족의 우수성을 부정하는 허무주의를 철저히 배격하고 극복하여야 한다.

민족유산을 귀중히 여긴다는 간판밑에 지난날의것을 덮어놓고 되살리는 복고주의 역시 민족의 우수성을 옳게 살려나갈수 없게 하는 유해로운 경향이다.

민족의 우수성을 옳게 살려나가려면 민족유산에 대한 허무주의적태도와 복고주의적경향을 다같이 배격하고 민족적립장과 계급적립장, 력사주의원칙과 현대성의 원칙을 옳게 결합시켜 낡은것, 현실에 맞지 않는것은 버리고 진보적이고 인민적인것을 내세우고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력사적으로 내려오는 민족유산을 옳게 살리는것과 함께 민족의 새로운 우수성을 끊임없이 창조해나가는것이 중요하다. 유산으로 내려오는 민족의 우수성에 기초하여 새로운 우수성들을 창조해나갈 때 민족의 우수성은 더욱 개화발전하게 되며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높이는데서 그것이 노는 역할이 커지게 된다.

민족성을 고수하기 위하여서는 다음으로 제국주의, 지배주의를 반대하여 투쟁하여야 한다.

민족성을 고수하고 발전시키는데서 주되는 장애요인은 제국주의, 지배주의이며 그와 결탁한 사대매국세력이다.

제국주의자들은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이 시련을 겪고있는것을 좋은 기회로 여기고 다른 민족의 민족성을 말살하려고 책동하고있다. 더우기 오늘 제국주의자들은 《세계화》라는 미명밑에 새로운 형태를 띠고 민족성을 말살하기 위한 책동을 로골적으로 감행하고있으며 《인종론》, 《세계주의》를 비롯한 이색적인 리론들이 여러가지 형태로 각색되고 변형되여 사람들의 민족의식과 민족성을 마비시키기 위해 리용되고있다.

그러므로 민족성을 말살하려는 온갖 세력들의 책동을 반대하여 투쟁할 때 모든 민족이 자기의 존엄과 자주권을 지킬수 있고 민족의 독자적인 발전을 이룩할수 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력사상 처음으로 민족발전의 합법칙성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에 기초하여 민족성의 본질과 내용, 민족성을 고수하는데서 나서는 원칙적인 문제들을 전면적으로 밝혀주시였을뿐아니라 혁명과 건설을 령도하시면서 민족적인것을 소중히 여기시고 민족적인 특성을 살리도록 깊은 관심을 돌려오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여러 기회에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의 문화유산을 귀중히 여길줄 모르고 내세울줄 모르는 사람은 례외없이 민족허무주의자라는데 대하여 지적하시면서 지난날 실학파, 카프문학을 비롯하여 민족의 우수한 문화예술유산을 보잘것없는것으로 여기던 경향들을 비판하시고 그것들을 옳바로 평가하여주시였다.

이뿐이 아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91(2002)년 2월말 어느날에도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혁명과 건설에서 민족성을 고수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하나의 언어와 피줄, 문화를 가지고 한강토에서 수천년동안 살아온 단일민족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장군님께서는 세상에 우리 나라와 같이 고유한 민족성을 가진 단일민족은 없다고, 우리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민족성을 강조하고 철저히 고수해나가야 한다고, 나라와 민족이 자기의 고유한 민족성을 지키지 못하고 이질화되면 망하게 된다고 준절하게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최근 사람들속에서 민족성이 없는 현상들이 나타나고있는데 대하여 지적하시고나서 우리는 민족성을 저버리거나 개량하려는 자그마한 경향에 대하여서도 묵과하지 말고 경종을 울리며 우리 인민의 고유한 민속에 대한 선전교양사업을 더욱 강화하여 그것을 적극 장려하고 계승해나가도록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민족성을 고수하는것은 민족옷이나 입고 민속놀이나 하는 유희가 아니라 제국주의자들의 사상문화적침투를 막는 소리없는 싸움, 포성없는 전쟁이며 민족의 이질화는 곧 망국이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토록 민족성을 강조하고 철저히 고수해나가도록 심혈을 기울여오신것이다.

하기에 시대와 력사는 말한다.

민족이 있고 전통이 있다고 하여 그 민족이 영원히 번영하는 민족으로 되는것이 아니라 민족성을 귀중히 여기고 참답게 빛내여나가는 민족의 탁월한 령도자, 민족의 넋을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진정한 민족의 어버이를 모셔야만 존엄높은 위대한 나라, 위대한 민족으로 된다는것을…

2

2) 민족의 력사가 찬란히 빛나도록

3

공백이 생길세라

 

한평생 민족중시의 관점과 립장을 일관하게 견지하여오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선조들이 창조해놓은 력사유적유물들을 귀중히 여기고 그것을 빛내여나가도록 각별한 관심을 돌려오시였다.

민족애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민족의 고유한 력사와 문화, 민족이 창조한 모든것에 대한 긍지와 애착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사상감정이다.

민족적인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민족허무주의에 빠지게 되며 나라와 민족을 진심으로 사랑할수 없고 민족을 위해 헌신할수 없다. 오직 자기 민족의 고유한 력사와 문화, 전통을 소중히 여길줄 알고 그것을 옳게 살리기 위해 애쓰는 사람만이 참된 민족애를 지닌 애국자로 될수 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민족사에 사소한 공백도 생길세라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를 바로세우는데 커다란 관심을 돌리시였다.

우리 민족은 인류력사의 려명기로부터 이 땅에서 한피줄을 잇고 오랜 기간 살아온 단일민족이며 자기의 근면한 창조적로동으로 훌륭한 물질문화적재부를 창조한 슬기롭고 재능있는 민족이다.

그러나 지난 시기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력사와 문화전통은 사대주의사가들에 의하여 적지 않게 허무주의적으로 취급되였고 제국주의자들과 어용사가들에 의하여 혹심하게 외곡되게 되였다.

세기적인 외곡에 의해 우리 민족사에 생긴 공백을 메워주시고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전통을 다시 찾아 개화발전시켜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주신분이 바로 김정일장군님이시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벌써 1960년대초에 력사분야에 남아있던 사대주의적이고 교조적인 잔재를 꿰뚫어보시고 우리 나라 사회발전의 합법칙적과정을 비롯하여 민족사에서 공백으로 되여있거나 지난 시기 사대주의사가들에 의해 외곡되고 전도된 문제들을 바로잡아주시였다.

그중의 하나가 우리 나라 구석기시대문제를 바로잡아주신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실 때였다.

어느날 조선력사시간에 원시사회에 대한 강의가 있었는데 교원은 강의에서 당시 학계가 정립한대로 우리 나라에는 구석기시대가 없었다고 하면서 신석기시대문제만을 취급하였다.

당시 일부 전문가들은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는것을 근거로 이웃나라들에서 구석기시대를 거친 사람들이 신석기시대에 조선반도에 이주하여 살았다는 주장을 들고나왔었다.

교원의 강의를 들으며 장군님께서는 의혹을 감추지 못하시였다.

한것은 우리 나라에 구석기시대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문제가 단순한 학술적문제가 아니라 우리 민족사의 유구성과 독자성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민족의 존엄과 순수성, 민족사의 정통성과 관련되는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기때문이였다.

그로부터 며칠후 학생들속에서는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의 존재문제를 가지고 열기띤 론쟁이 벌어졌다.

의견이 분분하였으나 누구도 이에 대하여 명확한 대답을 찾지 못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장군님께서는 동무들이 아주 중요한 문제를 가지고 론쟁을 벌렸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 나라에 구석기시대가 있었는가 없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정확한 리해를 가지려면 반드시 주체적립장에서 고찰하여야 한다. 지금 일부 고고학자들이 우리 나라에서 아직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발굴되지 않았다고 하여 우리 나라에는 구석기시대가 없었다고 주장하는것은 과학리론적으로 심히 그릇된 견해이다. …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지난날 일제어용학자들이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이 발굴되지 못한것을 기화로 하여 조선에는 원래 구석기시대가 없었고 그때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일제어용학자들의 주장은 조선민족의 《렬등성》을 론증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꾸며낸 허황하기 그지없는 날조품이다. 우리 나라에서 아직 구석기시대의 유물을 발굴하지 못하였다고 하여 우리 나라에 구석기시대가 없었다고 단정할수가 없다. 동아시아의 여러 지역들에서도 이미 구석기시대 유적들이 많이 발굴되였는데 그가운데는 우리 선조들의 거주지역과 아주 가까이 있는 곳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유적들은 우리 나라와 가까운 주변지역들에서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다는것을 명백히 보여주고있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 구석기시대문제는 아직 구석기시대 유적들이 발굴되지 않았을뿐이지 태고적부터 우리 나라에서 사람들이 살았다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장군님께서는 구석기시대 유물이 아직 발굴되지 못한 원인도 일부 력사학자들의 사대주의적관점과 결부하여 고찰하여야 한다고, 우리 나라 구석기시대의 존재문제는 반드시 주체적립장에서 고찰하여야 한다고 지적하시고나서 그래야 구석기시대의 유물과 유적들도 많이 찾아낼수 있으며 우리 나라의 구석기시대에 대한 과학적리해를 가질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반드시 발견될것이라는 위대한 장군님의 과학적인 예견은 그후 많은 고고학적발굴에 의해 엄연한 사실로 증명되였다.

그로부터 3년후 함경북도 선봉군 굴포리(당시)에서 구석기시대 중기의 유적이 처음으로 발굴되였고 몇년후에는 평양시 상원군(당시) 검은모루동굴에서 구석기시대 전기의 유적이 새롭게 발견되였으며 련이어 평안남도 덕천시 승리산동굴과 평양시 력포구역 등지에서 구석기시대 인류의 뼈화석과 수많은 유적들이 나타났다.

이리하여 우리 민족은 원래부터 이 땅에서 기원하여 발전하여온 단일민족이고 세상에 보기 드문 유구한 력사를 가진 이 땅의 원주민들이며 우리 강토는 인류문명의 발상지의 하나이라는것이 과학적으로 확증되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에서의 노예소유자국가의 형성문제와 관련한 론의가 제기되였을 때에도 민족사에 노예소유자국가가 있었는가 없었는가 하는 문제도 단순히 학술상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유구성과 우리 나라 사회발전의 합법칙적과정을 인정하는가 안하는가 하는 매우 중대한 문제라고 하시면서 온갖 사대적, 교조적견해와 일제어용사가들에 의한 력사위조행위의 해독을 가시고 주체적립장에서 대하도록 하시였다.

그후의 력사연구와 유적 및 유물발굴결과에 고조선이 우리 나라의 첫 노예소유자국가라는것이 해명되였다.

이때뿐이 아니다.

주체53(1964)년 1월 어느날 한 학생이 위대한 장군님을 찾아온적이 있었다.

어떻게 왔는가고 물으시는 그이께 학생은 론문을 집필하다가 리해되지 않는 점들이 있어서 의견을 받으려고 왔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는 개화사상가들의 사회정치 및 경제사상에 대한 론문을 쓰고있었는데 김옥균의 경제근대화사상을 어떻게 분석평가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고심하고있었던것이다.

당시 학계에서는 김옥균을 친일사상을 가진 인물로 평가하고있었다. 학생은 이러한 사실을 장군님께 말씀드리고 가르치심을 주실것을 간청드리였다.

김옥균의 이름을 거듭 되뇌이시던 장군님께서는 김옥균이 갑신정변이전에 《한성순보》에 발표한 《회사설》과 《치도략론》을 보았는가고 물으시였다.

다 보았다는 학생의 대답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거기에 나라를 근대적으로 발전시키려는 김옥균의 부르죠아개혁사상이 뚜렷이 반영되여있다고 하시면서 회사제도를 통하여 근대적인 기업을 건설하고 나라의 근대화를 이룩하려는 김옥균의 사상은 자력으로 나라의 근대적발전을 실현하려는 애국적이며 진보적인것이였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회사제도를 발전시킬데 대한 김옥균의 견해의 진보성과 계급적제한성에 대하여 그리고 《치도략론》에서 볼수 있는 나라를 근대화할데 대한 그의 립장의 진보성에 대하여 알기 쉽게 가르쳐주시고나서 《회사설》과 《치도략론》은 김옥균이 친일파가 아니라 우리 나라를 근대화하기 위하여 활동한 부르죠아개혁운동가라는것을 잘 보여주고있다고, 론문을 쓰면서 이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하겠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개화파의 대표적인물인 김옥균의 경제근대화사상을 주체적립장에서 과학적으로 해명해주신것은 우리 나라에서 자본주의발생발전에 대한 외곡된 인식을 바로잡아준 력사적인 발견으로 되였다.

이렇게 되여 친일파로 락인되여 력사의 시궁창속에 묻힐번했던 김옥균이 부르죠아개혁운동의 선구자로 자기의 모습을 되찾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비범한 예지와 과학적통찰력, 정력적인 령도가 있어 우리 선조의 기원문제, 민족사의 시원문제도 빛나는 해명을 보게 되였다.

장군님께서는 수수천년 신화로만 전해져오던 단군을 민족의 원시조로 찾아주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단군릉발굴사업을 세심하게 지도하심으로써 마침내 단군의 유골과 유물을 발견하고 그 유골이 발굴당시로부터 5 000여년전의것임을 과학적으로 확증하는 민족사적성과를 거둘수 있게 해주시였다. 그리하여 단군은 평양에서 태여나 고조선국가를 세운 실재한 인물이라는것이 증시되고 우리 민족은 동방에서 가장 이른시기에 문명시대에로 이행하여 단일민족의 피줄을 이어온 슬기로운 민족이라는것이 론박할 여지없이 밝혀지게 되였으며 평양은 고조선의 수도로, 민족의 성지로 확증되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나라의 전반사업을 령도하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일군들의 편협한 생각도 바로잡아주시며 우리 민족사가 더욱 빛나도록 깊이 마음쓰시였다.

주체88(1999)년 3월 24일이였다.

이날도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 력사에서 이름있는 왕들의 묘도 다 개건하도록 하시였다고, 동명왕릉, 왕건왕릉, 단군릉을 훌륭히 개건하도록 하시여 우리 나라 력사를 빛내이신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앞에 남조선사람들과 다른 나라 사람들도 다 머리를 숙이고있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일군들이 당에서 오래전부터 민족문화유산을 귀중히 여기고 잘 보존관리할데 대하여 강조하고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있는데 대하여 지적하시고나서 공산주의자는 견결한 혁명가가 될뿐아니라 열렬한 애국자가 되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진정한 혁명가는 열렬한 애국자가 되여야 한다는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민족애에 떠받들려 평양에 백선행의 조각상과 계월향을 찬양하는 비가 세워진것을 비롯하여 력사의 두터운 이끼에 묻혀 사라져가던 력사적인물들과 력사자료들이 응당한 평가속에 빛을 보게 되였으며 수많은 력사유적유물들이 새롭게 발굴정리되여 사람들에게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더욱 북돋아주게 되였다.

우리 민족이 이룩해놓은 문화유산들을 귀중히 여기고 옳게 계승발전시켜나가도록 마음써오신 위대한 장군님의 로고는 계몽기가요에도 깃들어있다.

주체89(2000)년 2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부 일군들이 《락화류수》와 《눈물젖은 두만강》과 같은 계몽기가요들을 두고 퇴페적인 노래라고 한데 대하여 지적하시면서 사실 그런 가요들은 나라를 빼앗긴 우리 인민들의 민족적울분을 반영한 노래이며 일제침략자들에 대한 항거의 노래였다고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해방전에 창작된 계몽기가요들이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진 대중가요라는데 대하여 해설해주시면서 지난날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진 대중가요들을 퇴페적인 노래라고 부르지 못하게 한다면 우리 시대에 작곡한 노래 《휘파람》도 그렇게 해야 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장군님께서는 인민들속에 널리 퍼져 많이 불리워지는것이 류행가인데 류행가라고 하여 다 나쁜 노래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우리 인민들이 즐겨부르는 대중가요들도 류행가라고 할수 있다고 하시였다.

계몽기가요에 대한 그릇된 인식은 이렇게 되여 바로잡히게 되였다.

계몽기가요를 우리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으로 재생시켜 공백이 생겼던 시대를 메우며 인민의 사랑속에 불리우게 하실 의지를 지니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96(2007)년 3월 어느날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계몽기가요를 옳게 계승발전시킬데 대하여 진지한 담화를 나누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이날 계몽기가요에는 빼앗긴 조국과 떠나온 고향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노래도 있고 나라를 강탈한 침략자들에 대한 원한과 항거의 감정이 깔린 노래도 있으며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경개와 명승고적과 결부시켜 조국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노래한 가요들도 있고 조국해방에 대한 념원과 확신을 담은 노래들도 있다고 하시며 일일이 그 이름들을 찍어주시였다.

《고향의 봄》, 《찔레꽃》, 《황성옛터》, 《조선팔경가》, 《봉선화》, 《눈물젖은 두만강》…

그이께서는 계속하여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노래 눈물젖은 두만강을 사랑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두만강이 나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있기때문인가 봅니다. 두만강은 위대한 수령님의 항일혁명투쟁력사가 깃들어있는 뜻깊은 강이며 우리 어머님께서 어리신 나이에 부모님들을 따라 망국노의 피눈물을 뿌리며 건느신 강입니다. 두만강기슭에는 항일의 나날 수령님의 해발이 되시여 조국땅을 넘나드시며 인민들을 반일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신 어머님의 혁명활동자욱이 새겨져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그래서인지 몇해전에 외국방문을 마치고 조국으로 돌아오면서 두만강을 건늘 때 제일먼저 생각난것이 노래 《눈물젖은 두만강》이였다고 하시면서 그때 자신께서는 동행한 일군들에게 이 노래는 조국이 없었던 수난의 시기 우리 인민들의 서글픈 감정과 조국해방의 념원을 담은 노래라고, 그때에는 두만강을 원한의 강, 피눈물의 강이라고 하였는데 오늘에 와서는 락원의 강, 행복의 강이 되였다고 이야기해주었다고 감회깊이 회상하시였다.

일군들은 그이의 회고의 말씀에 접하면서 커다란 격동과 함께 자책감에 휩싸이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깊은 사색의 세계에는 평범한 한곡의 노래에도 락후에서 번영에로 솟구쳐오른 우리 민족의 현대운명사가 비껴있는것이였다.

그런데 자기들은 민족의 수난이 절정에 이르렀던 나날에 이 나라의 뜻있는 사람들이 망국의 울분을 안고 조국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해방에 대한 절절한 념원을 담아 심혈을 쏟으며 만든 수십, 수백곡의 노래들을 하치않은것으로 여기면서 줴버리려 하였다는 생각에서였다.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의 그러한 마음을 헤아려보신듯 그것이 력사앞에서 매우 무책임한 처사였다는것을 깨우쳐주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계몽기가요는 일정한 제한성을 가지고있지만 우리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으로 된다. 력사적고찰이 없이 계몽기가요를 류행가라고 하면서 부르지 못하게 하고 부정한다면 우리 나라 음악사에서 1920년대, 1930년대 음악을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가 계몽기가요를 인정하고 부르게 하지 않았더라면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이 력사의 이끼속에 묻혀버릴번 하였다. 계몽기가요를 다시 찾은것은 우리 나라 음악사에서 하나의 큰 사변과 같은것이며 주체성과 민족성을 살리고 력사주의적원칙에서 민족음악유산을 계승하는데서 이룩한 귀중한 성과이다. …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어 계몽기가요보급사업을 잘할데 대하여 지적하시고나서 유산을 옳게 계승하면 력사가 빛나지만 유산을 옳게 계승하지 못하면 력사에 공백이 생기고 우여곡절을 면할수 없게 된다, 공백이 생긴 력사를 후대들에게 물려주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계몽기가요를 인정하고 널리 부르도록 하는 목적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공백이 생긴 력사를 후대들에게 넘겨줄수 없다!

조국과 민족앞에, 력사앞에 지닌 책임을 이렇듯 가장 숭고한 높이에서 다하시려는 절세의 애국자를 민족의 어버이로 높이 모시였기에 오늘도 계몽기가요는 우리 겨레의 사랑속에 널리 불리우고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력사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외곡이 바로잡혀져 민족사의 유구성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고 력사의 먼지속에 묻혀버릴번 하였던 민족의 유산들이 빛을 뿌리게 된것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우리 민족에 대한 불같은 사랑, 손상입고 허물진 민족의 력사를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시며 본래의 모습대로 되살리고 세상에 유감없이 빛내이시려는 그이의 숭고한 의지가 낳은 고귀한 열매이다.

4

력사유적들을 귀중히 여기시여

 

력사가 민족적전통이 형성되고 발전되는 토양이라면 력사유적과 유물은 그 력사속에서 민족적전통을 담고 후세에 길이 전해지면서 대를 이어주는 재부이다.

민족의 슬기와 력사는 력사유적과 유물을 통하여 후세에 전하여진다. 력사유적과 유물은 선조들이 어떤 문화를 창조하고 어떻게 생활하였으며 어떠한 길을 걸어 발전해왔는가 하는것을 보여주는 실물자료이다. 력사유적유물이 없으면 민족의 력사와 전통에 대하여 똑똑히 알수 없게 된다.

이 땅의 모든 력사유적과 유물은 우리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민족의 재보이며 우리 나라의 유구한 력사와 발전된 문화를 전해주는 귀중한 유산이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력사유적유물이 가지는 중대한 의의를 헤아리시고 선조들이 남긴 유적과 유물을 더 많이 발굴하고 잘 보존관리하는데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여 우리 인민이 민족적전통을 굳건히 이어가도록 하시였다.

어느해 여름이였다.

한여름의 무더위도 아랑곳없이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느 한 산기슭을 지나가시다가 동행한 일군들에게 여기에 고려시기의 귀중한 유적이 있다는데 함께 가보자고 하시면서 앞장서 산으로 오르시였다.

푸른 숲 우거지고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산봉우리와 골짜기에 묻혀있는 그 유적은 고려시기부터 전해지는 오랜 건물이였는데 그때 림시로 다른 사업에 리용되고있었다.

걸음을 멈추시고 그 건물을 주의깊이 살펴보시던 장군님께서는 근엄하신 음성으로 아무리 중요한 사업이라고 한들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에야 어찌 비길수 있겠는가고 하시며 건물을 보존할수 있도록 즉석에서 필요한 대책을 일일이 세워주시였다. 그러시고나신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지금 일부 사람들속에서 지난날의 유적을 복구하고 보존하는것이 마치도 복고주의인것처럼 생각하면서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을 손상시키는 현상들이 나타나고있는데 이것은 매우 그릇된 견해라고 하시며 민족문화유산을 계승발전시키는데서 나서는 원칙적문제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깨우쳐주시였다.

그날 장군님께서는 그곳을 떠나시기에 앞서 다시금 건물의 건축양식과 단청의 특징에 대해서까지 하나하나 헤아리시고나서 이 건물은 고려시기 건물들중에서 제일 오랜 건물로서 우리 선조들의 세련된 건축술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주는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이라고, 민족문화유산을 잘 보존하여야 한다고, 귀중한 유적들을 손상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고 거듭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우리 민족의 우수한 문화유산을 그토록 귀중히 여기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대성산에 유희장건설을 구상하실 때에는 오래전에 없어진 고구려의 대성산남문도 동시에 복구할것을 계획하고 그 설계도대로 대성산을 꾸리도록 하여주시였으며 고조선과 고구려, 고려의 건국시조들의 왕릉을 개건하여 귀중한 력사적문화재보로 후대들에게 물려주도록 하심으로써 1993년에는 평양시교외에 동명왕릉이, 1994년 1월에는 개성시 송악산기슭에 왕건왕릉이, 1994년 10월에는 단군릉이 웅장하게 개건되였다.

뿐만아니라 《선조들이 이룩해놓은 문화적재부를 귀중히 여겨야 한다》, 《력사유적과 유물을 적극 발굴하고 잘 보존관리하자》, 《력사유적과 유물보존사업에 대한 당적지도를 강화할데 대하여》, 《민족문화유산을 옳은 관점과 립장을 가지고 바로 평가처리할데 대하여》를 비롯한 수많은 로작들을 발표하시여 우리 민족의 우수한 문화적재부들을 전면적으로 발굴정리하고 보호하는 사업을 국가적사업으로 벌려나갈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으며 해마다 4월과 11월을 문화유적애호월간으로 정해주시고 력사유적유물보존관리를 더 잘해나가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민족의 우수한 문화유산을 빛내이기 위한 사업에 필요한것이라면 그 무엇도 아낌없이 돌려주시였다.

조선기록영화 《고구려벽화무덤》을 찍을 때의 일이다.

그때 해당 부문 일군들은 영화촬영의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것으로 하여 방도를 찾지 못하고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되신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에게 선조들이 남긴 유물들을 잘 보존하고 후대들에게 전해주기 위한 일인데 비용이 좀 많이 들면 뭐랍니까, 고분들이 산속깊이 있어서 전선대를 많이 세워야 한다고 하는데 필요한만큼 다 세웁시다, 비용을 많이 쓰더라도 기록영화를 찍도록 합시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이렇듯 각별한 관심속에서 장군무덤, 춤무덤, 씨름무덤, 집안제12호무덤, 장천제1호무덤을 비롯한 12기의 고분들과 평양시, 평안남도, 황해남도에 분포되여있는 40기의 고구려벽화고분들을 영화화면에 옮기기 위한 사업이 성과적으로 진척되게 되였다. 한편의 영화를 찍기 위하여 깊은 산속에 무려 1 000여대의 전주대가 세워지고 수만m의 전선줄이 늘여졌으며 수많은 자금과 로력이 투하되였다.

그리하여 고구려인민들이 남긴 찬란한 문화를 후대들에게 전할수 있는 여러편의 기록영화들이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훌륭히 완성되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현지지도의 길에서도 월정사를 비롯한 여러 력사유적들을 몸소 찾으시며 민족문화유산을 잘 보존관리하여 사람들에게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더욱 북돋아주도록 하기 위한 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주체97(2008)년 5월 24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산이 높아 늘 흰구름이 낀다는 백운산에 자리잡은 룡흥사를 찾아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룡흥사에 옛날것이 그대로 보존되여있다고 하기에 일부러 왔다고 하시면서 룡흥사는 우리 선조들의 높은 건축예술과 뛰여난 예술적재능을 보여주는 력사문화유적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룡흥사를 구체적으로 돌아보시면서 대웅전 네기둥에 있는 주련과 현판, 석가모니불상과 탱화를 비롯하여 많은 유물들이 모두 옛날것 그대로의 진품인데 대하여 만족해하시였다.

이날 이곳 일군은 그이께 《함흥부 백운산 성불사향로전중건현판기》에 씌여져있는 글의 내용도 해설해드렸다.

옛날에 무슨 리유에서인지 대웅전이 불에 타자 한 대감이 13살 난 목수를 데려다가 49일동안에 새로 지었는데 그때 주지를 비롯한 승려들이 어린 목수에게 줄 삯돈이 아까와 채 완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를 쫓아 내려보내고 자체로 완성하려고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승려들은 그 목수를 다시 데려다가 잘못을 빌고 일을 시켰는데 4개 기둥가운데서 한개 기둥에 쐐기가 없는대로 끝내다나니 지금도 지붕한쪽이 기울어진 상태로 있다는 내용이였다.

대웅전과 마주서있는 운하루에 이르시여 천정에 그린 그림들도 자세히 보시며 다른 사찰들과 차이나는 룡흥사의 이채로운 점도 찾아내신 장군님께서는 이어 이곳 일군이 운하루 뒤벽의 기둥에 붙어있는 게조각을 가리키며 그 형상의도를 나름대로 해설해드렸을 때에는 게는 잡아가지고 잔등에 돌을 지질러놓으면 죽을 때까지도 그대로 뻗치고있는 성질이 있는데 운하루를 영원히 받치고있으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붙여놓은것이라면 그럴듯하다고 그의 말을 긍정해주시였다.

선조들이 남긴 문화유산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긴 말씀이였다.

향로전건물에 대한 해설을 들으시고 무량수각으로 향하시던 장군님께서는 문득 이미 돌아보신 대웅전을 다시 살펴보시며 아까 그 소년목수가 지은 집의 한쪽이 기울어졌다는데 어느 쪽인가고 물으시였다.

대웅전의 뒤쪽기둥이라는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그쪽으로 가시여 기울어진 기둥을 유심히 보시였다.

마치도 기울어진 상태로 수백년이 흘러도 무너지지 않도록 기둥을 세운 13살 소년목수의 재능을 헤아려보시는듯.

일군들의 귀전에는 룡흥사에 옛날것이 그대로 보존되여있다고 하기에 일부러 왔다고 하시던 그이의 말씀이 되새겨졌다.

선조들의 슬기와 지혜가 깃든 유적유물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길이 보존하시려는 마음이 얼마나 뜨거우시였으면 일부러 천금같은 시간을 내시여 이곳을 찾아주시였으랴.

감동에 젖은 일군들의 가슴을 흔들며 장군님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산발에 메아리쳤다.

력사문화유적은 나라의 귀중한 문화적재보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민의 슬기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력사문화유적들을 잘 보존관리하고 그를 통한 교양사업을 잘하여야 한다. 우리는 우수한 민족문화유산을 옳게 살리기 위한 사업을 실속있게 벌려 인민들에게 조선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더욱 북돋아 주어야 한다. …

선조들이 창조해놓은 력사유적유물들을 그토록 귀중히 여기시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이시기에 나라를 빼앗겼던탓에 류실되였던 력사문화재부들이 오늘날 더욱 빛을 뿌리도록 해주시였다.

주체97(2008)년 5월 10일이였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함경북도 김책시 림명리에 있는 북관대첩비를 찾아주시였다.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시기 한산대첩, 행주대첩, 연안대첩과 더불어 북관땅에 기여든 섬오랑캐무리들을 통쾌하게 섬멸한 또 하나의 대첩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세워진 기념비였다.

이날 강사의 해설을 듣고나신 장군님께서는 북관대첩비는 임진조국전쟁시기 정문부의병대가 함경도지방에 기여든 왜적을 격멸소탕하고 큰 승리를 거둔것을 기념하여 세운 승전기념비라고, 북관대첩비는 1708년에 세웠는데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 나라를 강점한 다음 조선인민의 애국심과 반일감정을 없애버리려고 그것을 훔쳐다 일본으로 가져갔었다고 강사의 해설을 보충해주시였다.

일군들의 머리속에는 대첩비가 겪은 수난의 력사가 되새겨졌다.

그 비를 세우며 선조들은 민족의 애국적기상과 슬기를 내외에 길이 전하고 변하지 않는 일본침략자들의 야망을 후대들이 경계하며 나라를 튼튼히 지켜줄것을 얼마나 간절히 바랬던가.

하지만 무능한 봉건통치배들의 사대망국행위로 말미암아 나라는 망하고 이 땅에 기여든 일제는 제놈들의 수치스러운 패배의 력사가 새겨진 북관대첩비를 훔쳐다 저들의 전리품을 보관한다는 곳에 숨겨두었다. 그러다 다시 야스구니진쟈의 구석진 곳에 처박아넣고 조선민족의 반일애국정신을 짓누른다는 의미에서 그우에 1t도 넘는 돌을 짓눌러놓았다.

나라가 없었던탓에 수난을 겪은 유적유물은 북관대첩비만이 아니다.

일제는 근 반세기에 걸치는 식민지통치시기 우리 나라의 귀중한 문화유물들을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파괴, 략탈하는 특대형범죄를 감행하였다.

일제가 조선강점시기 200여기의 왕릉, l만 1 000여기의 고분에서 파낸 보물의 량만 하여도 막대하였다. 일제는 그것도 모자라 《보물의 소유자는 조선총독의 명령에 의하여 그것을 관립 또는 공립박물관과 미술관에 바칠 의무가 있다.》는 법령을 발포하고 조선에서 략탈하여간 금관, 장신구, 고려상감자기, 청동거울, 불상을 비롯한 많은 우리 나라 문화재들을 일본의 박물관들에 전시해놓고 뻔뻔스럽게도 그것들을 저들의 《국보》, 《중요문화재》, 《중요미술품》 등으로 세상에 공개하였다.

최근 일본의 출판보도물들이 열을 올리며 소개하였던 도꾜국립박물관에는 도자기를 비롯한 우리 나라의 문화유물이 4만점이나 비치되여있다고 한다. 또한 오사까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는 근 800점의 조선도자기들이, 네즈미술관에는 조선에서 략탈해온 도자기와 기타 진귀한 문화유물들이 수천점이나 소장되여있다고 한다.

오죽하면 일본의 한 학자까지도 《일본 국보라고 세계에 자랑하고 또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다 그 미를 찬양하고있는 작품의 거의 모두가 대체 누구의 손에 의하여 만들어진것인가. 그중에서도 국보중의 국보라고 부르지 않으면 안될 거의 모두가 실로 조선민족에 의하여 만들어진것이 아닌가. 이는 력사가들도 립증하는 의심할 여지조차 없는 사실이다.》라고 고백하였겠는가.

총대가 약하면 선조들이 이룩해놓은 문화유산마저도 지켜낼수 없다는것을 말해주는 력사의 증견자 북관대첩비를 바라보는 일군들에게 장군님께서는 당에서는 반일교양과 조선민족제일주의교양을 강화하기 위한데서 력사유적유물을 잘 보존하는것이 중요하기때문에 어떻게 하나 북관대첩비를 찾아오도록 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북관대첩비의 복원을 민족의 존엄과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로 보시고 여러가지 강력한 조치를 취하시여 본래의 자리에 다시 세워주신 절세의 애국자, 민족의 어버이.

그이께서는 말씀하시였다.

북관대첩비는 일제가 훔쳐간지 100년만에 다시 찾아 원상대로 여기 림명땅에 세워지게 되였다. …

100년만에 복원된 북관대첩비, 그것은 강력한 국력, 총대가 있어야 나라를 지킬수 있고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도 수호할수 있다는것을 뚜렷이 보여주는 력사의 증거물이였다.

력사유적을 그토록 귀중히 여기시며 민족의 력사를 더욱 빛내여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현명한 령도가 있어 우리 인민은 반만년의 오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슬기로운 민족으로서의 긍지를 세상에 소리높이 자랑하며 자기의 존엄을 더욱 힘있게 떨칠수 있게 되였다.

5

민족의 재보로 빛내여주시다

 

혁명과 건설을 령도하여오시는 전기간 주체성을 확고히 고수하고 민족성을 일관하게 견지하여오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자주정치, 민족중시의 정치가 있어 우리 민족의 슬기와 재능, 위대함은 만방에 더욱 높이 떨쳐졌다.

그것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것이 바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 나라에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과 같은 새 세기를 대표하는 훌륭한 문화예술작품이 나온것은 세상에 자랑할만 한 일입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발기와 정력적인 지도에 의하여 창작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걸출한 위인을 령도자로 모실 때 어제날의 약소민족도 오늘은 위대한 민족으로서 자기의 새 력사를 창조해나가게 된다는것을 생동한 예술적화폭으로 보여주고있는 민족의 귀중한 재보이며 세계적인 대걸작이다.

주체90(2001)년 7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을 부르시여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의 준비정형에 대하여 알아보시였다.

이미 장군님께서는 그 전해에 위대한 수령님 탄생 90돐과 조선인민군창건 70돐을 계기로 훌륭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을 내놓을것을 발기하시고 작품에 주로 수령님의 건당, 건국, 건군력사를 종합적으로 깊이있게 반영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작품창작과 관련한 실천적문제들에 대하여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었다.

이날 한 일군으로부터 준비한 작품의 구성안에 대한 설명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90돐을 계기로 내놓을 작품이라고 하여 수령님의 혁명력사에 대한 총화로만 되게 하여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1900년대로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옹근 한세기를 포괄하는것으로 내용구성을 고쳐 다시 완성하도록 해주시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작품준비정형을 또다시 료해하시던 장군님께서는 창작가들이 작품의 제명을 《태양의 노래》라고 합의했다는것을 아시고 우리 나라에는 옛날에 나온 《아리랑》도 있고 우리 시대에 새로 창작한 《아리랑》들도 많은데 《아리랑》을 가지고 작품의 대를 세우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하시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제목을 《아리랑》이라고 다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아리랑》!

장군님께서 달아주신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제목을 되새겨보며 탄성을 올리던 일군들과 창작가들의 머리속에는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주체51(1962)년 5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민요 《아리랑》을 두고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민요 《아리랑》은 곡도 유순하지만 가사의 글줄마다에는 곡절많은 사연이 깃들어있다고 하시면서 창작초기의 가사에서 나오는 표현의 뜻에 대하여 풀이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가사에서 《아난리요》(현재는 아라리요로 됨)란 나는 님을 리별하기 어렵다는 뜻이고 《고계》라는것은 고생의 계선이라는 의미이나 민요 《아리랑》의 유래에서 본것처럼 리랑이 그때 실지 재등을 넘어갔으므로 두가지 뜻을 다 담고있다고 그 의미를 해설해주시였다. 그러시면서 《고계》라는 단어도 실상 입에 오르면 《고개》로 발음되니 사람들이 입말체를 따라 《고개》로 부른것인데 지금 그것이 굳어져 그렇게 되였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이윽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민요 《아리랑》이 나온지는 오래되였지만 오늘도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져있다고 하시면서 그것은 이 노래에 고유한 민족적정서가 깔려있기때문이라고, 민족적정서와 감정이 풍부히 담겨져있는 노래는 오랜 세월이 흘러가도 잊혀지지 않고 사람들속에서 널리 불리우게 된다고 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그때에 있었던 일을 돌이켜보며 일군들은 아리랑이라는 말에 깃들어있는 민족의 정서와 감정, 민족적향취에 대하여 돌이켜보았다.

아리랑!

이 말속에는 겨레의 피가 진하게 흐르고 민족의 숨결이 력력히 맥박치고있다. 아리랑을 모르면 조선사람이 아니다. 해방전에도 그랬고 오늘도 우리 조선민족은 어데 가나 아리랑 하면 다 통한다.

북과 남의 체육선수들이 공동유일팀을 무어서 국제경기에 나갈 때에도 세계의 하늘가에 《아리랑》의 노래가 울리였다. 산넘고 바다건너 이국땅 멀리에 가 살면서 조국을 그리고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상품을 하나 만들어도 《아리랑》이라는 상표를 붙이고 자그마한 식당을 하나 내와도 《아리랑》간판을 다는것이 우리 동포들이다. 아리랑은 북에 살건 남에 살건 해외에 살건 조선사람이라면 누구나 넋을 담고 정을 담아 즐겨부르는 민족의 가요이다.

그러나 민요 《아리랑》에 깃들어있는 성부와 리랑의 전설이 말해주듯이 품어주고 내세워주는 진정한 제 나라가 없었던 지난날에는 이 노래에 피눈물이 배여있었다.

당시 우리 겨레는 자기들의 불우한 처지를 《아리랑》에 담아 부르며 봉건통치배들에 대한 원한과 복수를 토로하였다. 하지만 그때에는 그래도 자기가 살 땅이 있었고 명색상뿐이였지만 나라도 있어 자기들의 운명이 좀 달라질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희망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40여년간에 걸치는 일제식민지통치는 사람들의 마음속 한구석에 자리잡고있던 한가닥의 희망마저 깡그리 앗아갔다.

나라잃은 백성은 상가집 개만도 못하다는 말그대로 우리 민족의 처지는 너무도 처참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문전옥답은 어디다 두고

쪽박 살림살이가 웬 일인가

 

이것은 라운규가 1920년대에 창작한 영화 《아리랑》에서 나오는 노래가사이다.

이 영화에서는 사막에서 물을 놓고 돈많은 상인과 불쌍한 나그네들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장면이 나오는데 황막한 사막, 여기서 물을 찾아 헤매는 나그네들은 일제식민지통치밑에서 억압과 착취와 무권리속에 신음하는 조선민족을 상징한것이며 많은 물을 가지고있으면서도 목말라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한모금의 물도 주지 않는 악착스러운 상인은 일제침략자와 지주, 자본가를 의미하는것이였다.

영화 《아리랑》은 당시 커다란 파문을 불러일으켰으며 세상사람들은 조선민족이 겪고있는 불행과 고통에 대하여 잘 알게 되였고 점차 아리랑은 수난에 찬 우리 민족의 대명사로 통용되게 되였다.

생사기로에서 헤매이던 우리 아리랑민족에게 드디여 광명이 비쳐왔다.

5천년력사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민족의 위대한 영웅 김일성주석께서 피어린 항일혈전을 벌리시여 이 땅에 해방의 새봄을 안아오시였다.

그때로부터 조선민족의 운명에서는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났다.

해방의 봄을 맞아 활력에 넘쳐있는 조선의 새 모습을 보면서 이전 쏘련의 한 시인은 1949년에 조선의 새 아리랑의 탄생을 예고하는 뜻깊은 시를 남기였다.

 

아리랑-여기에선 노래한다

아리랑, 분명 인민들속에 예언자가 있어

조선민족은 오래전부터

희망과 소원의 아리랑을

많이도 엮어왔으리

 

해와 별 비치는 새 조선에서는

바람도 얼음도 바위도 상처도

두려움없이 새 아리랑에로 나가노라

 

시인의 예언그대로 대를 이어 수령복을 받아안은 오늘의 조선은 아리랑의 새시대를 맞이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계시여 21세기 조선민족의 운명에서는 또다시 력사적인 전환이 일어났다.

20세기 초엽 망국의 설음을 안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어가고 현해탄을 건너 산설고 물설은 이국땅에 쫓겨가면서 비애와 눈물의 《아리랑》을 피터지게 부르던 우리 민족이 오늘에 와서는 절세의 위인을 령도자로 모신 감격과 기쁨에 넘쳐 민족적긍지와 랑만, 혁명적기상이 약동하는 선군아리랑, 강성부흥아리랑을 심장으로 부르고있는것이다.

정녕 아리랑이라는 이 말속에는 우리 민족의 현대사가 함축되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아리랑과 함께 민족이 걸어온 어제와 오늘, 희망찬 래일에 대하여 하나로 련관시켜보시며 전통민요인 《아리랑》을 기본소재로 정해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지난날 탁월한 령도자를 모시지 못한것으로 하여 한탄과 슬픔속에 눈물의 《아리랑》을 노래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우리 조국, 우리 인민이 절세의 위인을 모시여 행복의 《아리랑》을 긍지높이 부르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존엄높은 인민으로 되게 된 조선혁명의 80년 력사와 우리 민족의 100년 현대사를 생동한 서사시적화폭으로 형상하도록 구체적이고도 세심한 지도를 주시였다.

숭고한 민족애와 창조적예지로 빛나는 그이의 손길은 극구성과 매 장면들에서 높은 예술적기량과 함께 내용의 철학적의미를 최상의 수준에서 심화시키고 종래와는 근본적으로 대조되는 새로운 형상수법들을 창작도입하도록 세부적인 형상목표에 이르기까지 뜨겁게 미치였다.

어느날 창작가들이 올린 대본을 보아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작품전반에 우리 아리랑민족의 성격이 진실하고 깊이있게 그려지게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의상도 아리랑민족의 특성을 보여줄수 있게 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1장 1경에 형상한 혁명가극 《피바다》에서 나오는 《류랑의 노래》대신 일제식민지통치시기 수난당하는 우리 인민의 슬픔을 반영한 노래인 《눈물젖은 두만강》을 넣도록 하시고 창작가들이 노래형상이 잘되지 않아 애를 먹고있을 때에는 노래를 우리 식으로 부르고 반주도 우리 식으로 하면 된다고 그 방도에 대하여서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물결거치른 두만강기슭에 몸부림치는 갈대숲, 괴나리보짐을 이고 지고 나루배에 오르는 류랑민들의 눈물젖은 얼굴, 처량한 배사공의 모습이 흐르는 속에 절절하게 울리는 녀가수의 노래소리.

진정 눈물없이는 볼수 없는 명장면은 이렇게 창조되게 되였다.

밤하늘에 찬연히 솟은 별무리속에서 유난히 빛을 뿌리는 새별, 그 새별이 봉화대에 불을 지피는 특색있는 장면에도 위대한 장군님의 지도의 손길이 어려있다.

관람자들이 관심을 모으는 봉화대에 불을 지피는 장면은 처음 《자주》라고 쓴 글발이 서서히 오르면서 불을 다는것으로 형상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 착상이 반복과 류사성을 가진다는데 대해 지적하시면서 보다 새로운 방법으로 특색있게 할데 대하여 제기하시고 창작가들의 머리를 틔워주시였다.

하여 조선의 새별로 높이 솟아오르시여 이 땅에 혁명의 불길을 지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업적을 상징적으로 형상한 새로운 형식이 창조될수 있었다.

우리 인민들이 즐겨부르는 노래선정과 천정해살전광을 창조하고 안개를 피워올려 천길만길 내려찧는 폭포를 형상하여 신비경을 펼친 명화폭도 위대한 장군님의 여러차례의 세심한 지도와 가르치심에 의하여 창조될수 있었고 배경대를 대형화, 상징화, 률동화하고 레이자조명과 특대형환등을 비롯한 최신과학기술의 성과를 도입하여 그 효과를 높은 수준에서 결합시켜 그처럼 완벽한 작품을 창조하도록 해주신분도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이처럼 민족의 슬기와 재능을 세상에 소리높이 떨치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한없이 숭고한 민족애와 그이의 지칠줄 모르는 창조의 낮과 밤이 있어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드디여 민족의 재보로, 민족의 자랑으로 세상에 태여날수 있었다.

2002년 4월 14일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풍치수려한 릉라도의 5월1일경기장에서 세계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를 모으며 대성황리에 공연되였다.

제목자체가 《아리랑》이여서 그것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대번에 우리 민족, 조선민족을 생각하게 하였다. 10여만명이 출연하여 하나와 같이 움직이면서 펼쳐보이는 씩씩하고 랑만적인 체조동작과 아름답고 황홀한 음악무용, 천변만화하는 배경대와 배경대를 가득 채운 영사화면, 희한한 빛세계의 독특한 형상언어가 결합되여 그 예술적형상수준에서 완전무결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관람하면서 그들은 공연이 꿈아닌 현실이라는데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인류문화사가 알지 못하는 대걸작인것으로 하여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태양대메달》, 《평화》훈장을 받았으며 2007년 8월에는 세계기니스기록집에 등록되여 민족의 재보로 빛을 뿌리고있다.

특히 2005년 8월 조국해방 60돐, 조선로동당창건 60돐을 계기로 진행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온 겨레의 가슴속에 지울수 없는 깊은 추억을 남기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들만이 아닌 남녘동포들도 평양으로 달려와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관람하도록 방문길을 열어주시여 《아리랑》이 우리민족끼리시대에 민족이 함께 부르는 《아리랑》으로 되게 해주시였다.

장군님께서 열어주신 《아리랑》관람길을 따라 평양에 온 남녘동포들의 감동과 흥분은 《아리랑》공연관람에서 최절정을 이루었다.

《아리랑》공연이 진행되는 5월1일경기장은 조선민족된 긍지와 자부심으로 한껏 부푼 북과 남, 해외 온 겨레의 뜨거운 동포애의 정으로 차고넘치였다. 우리 인민들이 《우리는-》 하고 구호를 웨치면 남녘동포들은 《하나다!》라고 화답하고 뒤이어 또다시 《조국-》 하면 《통일》 하고 화답해나섰다. 서로 손을 흔들어주고 울고웃으며 손을 맞잡는 모습은 조선민족된 긍지와 자부심, 민족의 통일열기의 뜨거운 분출이였다.

《아리랑》공연을 관람한 남녘동포들은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거대한 금강석》, 《민족의 저력과 미래에 대한 상징》, 《북체제의 위력함, 북사회에 관통되여있는 강한 정신력을 1시간 20분동안에 충분히 읽었다.》, 《눈앞이 아찔하고 마음이 흥분되고 하늘나라 천궁에 온것으로 착각을 일으키는 공연》이라고 감탄을 터뜨리였다.

한편 남조선언론들도 《아리랑잔치 분단을 잊었다》, 《화려한 교예, 흥겨운 연주 강성한 나라열망꿈틀》,

《지구최고의 마술, 아리랑》 등의 제목들을 달고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에 대한 소개에 지면을 아끼지 않았다.

공연을 관람한 외국의 벗들도 조선민족의 슬기와 재능, 위대함을 심장으로 느끼며 연해연방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갈채를 보내였다.

《정말 놀랍고 황홀한 공연이다. 환상적인 꿈속에 잠겼다가 깨여난것과 같은 심정이다. … 조선사람들은 다른 나라에서 할수 없는 위대한 기적을 창조하였다.》, 《아리랑공연은 참으로 훌륭한 작품이다. 김정일동지의 정력적인 지도와 현명한 령도가 있었기에 이렇게 훌륭한 예술작품이 창작될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참으로 아리랑은 세계기니스기록집에 올려야 할 명작이다.》, 《정말 훌륭하다. 이런 공연을 처음 본다. 진정 조선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예술의 천국이다.》 …

세계의 수많은 나라와 민족들이 제국주의자들의 《세계화》책동에 말려들어 자기의 민족성을 말살당하고 민족의 자주권을 무참히 유린당하는 대정치혼란속에서도 끄떡없이 민족의 자주적발전을 당당히 이룩해나가는 우리 조국의 자랑스러운 면모를 그대로 담은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대대손손 후세에 길이 물려갈 민족의 자랑으로서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민족중시사상과 령도가 낳은 또 하나의 민족의 재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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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의것을 귀중히 여기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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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어를 적극 살려나가야 한다

 

민족을 중시한다는것은 구체적으로 자기 민족의 본태를 굳건하게 지켜나가는데서 표현된다.

민족의 본태란 말그대로 민족의 본래의 모습, 민족의 고유한 특성이다. 자기의 본태를 굳건히 지켜나가는 민족은 독자적인 민족으로서 자기의 존재를 유지하고 발전을 이룩할수 있지만 자기의 본태를 잃어버린 민족은 사멸을 면치 못한다.

하지만 민족의 본태는 민족성원들이 바란다고 하여 저절로 고수되는것이 아니다. 더우기 이 세상에 다른 나라와 민족의 민족성을 말살하려는 제국주의, 지배주의세력이 남아있는 조건에서 민족의 본태를 지켜나간다는것은 그야말로 헐치 않다.

민족의 본태를 굳건히 지키고 끝없이 빛내여나가는 숭고한 애국위업은 민족을 끝없이 사랑하는 위대한 령도자에 의해서만 이루어질수 있다.

오늘 이 땅에는 우리 민족의 본태를 굳건히 지키고 빛내여오신 애국애족의 최고화신 김정일장군님의 현명한 령도가 있어 민족문화가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며 활짝 꽃펴나고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 당은 민족성을 귀중히 여기고 우리 인민의 우수한 민족적전통을 적극 살렸으며 그것을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에 구현하였다.》

우리 민족이 창조한 우수한 민족문화를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계승발전시켜오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은 민족어발전에도 뜨겁게 어려있다.

지나온 인류력사는 민족의 흥망성쇠는 중요하게 언어의 흥망성쇠도 동반하였음을 보여주고있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던 수천수만개의 언어들가운데서 지배주의, 제국주의의 언어침략과 민족어말살책동으로 하여 사멸된 민족어들이 적지 않다. 력사의 광풍속에서도 자기의 언어를 지킨 민족들은 살아남았고 발전한 반면에 자기 언어를 지키지 못한 민족은 영영 사라져버렸거나 남에게 먹혀버리는 비참한 운명을 면치 못하였다.

언어는 민족성의 뚜렷한 징표이며 민족의 생명과도 같다.

민족이 민족으로서 생존해나가자면 피줄의 공통성과 함께 자기의 언어, 민족어를 고수해나가야 한다는것은 지나온 우리 민족의 력사가 보여주는 피의 교훈이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언어문제의 중요성에 대하여 이렇게 쓰시였다.

《내가 그때 일본사람들의 행실가운데서 제일 고약하게 여긴것은 조선사람들더러 조선말을 못하게 하고 일본말을 하라고 강요하는것이였습니다. 민족이라는것은 무엇보다먼저 피줄과 언어의 공통성에 의해 특징지어집니다. 우리 말을 떠나서는 조선민족이 있을수 없습니다.

그러니 조선말대신 일본말을 쓰라고 한것은 조선민족을 이 세상에서 영영 없애자는 수작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언어를 잃으면 민족이라는것도 사멸하고맙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회고록에서 쓰신바와 같이 언어문제는 단순히 사람들이 의사를 나누는 교제수단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존망과 관련되여있는 사활적인 문제이다.

우리 민족은 반만년의 유구한 세월 하나의 언어를 변함없이 써오면서 자기의 민족성을 고수하여왔다.

우리 말과 글은 배우기 쉽고 어휘가 풍부하며 표현이 섬세하고 억양이 부드러운데다가 못하는 말, 못 적는 글이 없을뿐아니라 소리가 류창하고 복잡한 사상과 섬세한 감정, 사물현상의 미세한 차이까지도 잘 나타낼수 있는 뛰여난 표현력으로 하여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언어의 하나로 되고있다. 실례로 일본의 가나문자는 300여개정도의 소리만을 표현할수 있지만 우리 글은 무려 1만여개의 소리를 표현할수 있다. 우리 글자는 최신과학기술을 도입하는데서도 한자에 비할바없이 우월하다.

우리 말과 글이 이처럼 우수하기때문에 언제인가 프랑스에서 진행된 세계언어학자들의 학술회의에서 영국의 한 이름있는 언어학자는 우리 글에 대해 발음기관을 형상하여 글자를 만들었다는것도 독특하지만 기본글자에 획을 더하여 음성학적인 동일계렬의 글자를 파생해내는 방법은 대단히 체계적이고 훌륭하다고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에서도 문맹퇴치사업에서 공적이 있는 나라들에 주는 상을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이름을 따서 《세종상》으로 정하였고 세계적으로 우리 글을 배우겠다는 사람들의 대렬이 늘어나 현재 수십개 나라의 수백여개 대학들에서 우리 글을 정규학과목으로 지정하고 배워주고있다.

이것은 우리 말과 글의 우수성에 대한 뚜렷한 실증으로 된다.

그러나 아무리 세계가 인정하고 부러워하는 우리 말과 글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귀중히 여기지 않고 옳바로 계승해나가지 않으면 민족의 귀중한 재부인 민족어가 말살되게 된다. 오늘 남조선의 현실이 바로 그러하다.

남조선에서는 말과 글, 생활풍조 등 모든 사회생활이 더욱더 미국화, 일본화, 서양화되고 민족성과 민족의 존엄이 여지없이 유린말살되고있다. 언어생활을 놓고보아도 외래어와 잡탕말이 더욱 늘어나 우리 말은 형체조차 찾아볼수 없을 지경이다.

현재 남조선은 영어, 일본어, 중어, 로어로부터 그리스어, 에스빠냐어, 헤브라이어에 이르기까지 무려 30여개의 언어가 범람하고있는데다가 이것들이 서로 뒤섞여 국적도 알수 없는 말아닌 잡탕말과 우리 말을 마구 간략하거나 변형한 각종 은어 등까지 란무하여 말그대로 《만국의 언어오물장》, 《민족어페허지대》로 화하고있다.

몇년전 남조선의 국어문화운동본부가 서울의 한곳에 있는 간판을 조사해본 결과 총 468개중 46%가 외래어로만 되여있었고 우리 말에 외국어를 섞어쓴것이 5%, 《아이다호프》, 《데킬라》, 《리틀도꼬》와 같이 우리 글로 표기는 하였으나 외국어라고밖에 볼수 없는것이 34%를 차지하였으며 우리 말로 된 간판은 겨우 15%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현실을 두고 남조선의 한 신문은 《이젠 정말 듣기조차 지겨울 정도다. 꼬부랑말 안 쓰면 대화가 통하지 않기라도 하는지… 사대주의에 푹 빠져 외국말로 지껄이는 꼴이란 정말 가관이다. 세계화만 웨치며 영어가 구세주라도 되는듯이 떠벌이는 인간들이 많다. 외국것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따르려 하니 정말 문제다.》라고 개탄하였다.

력사는 민족문화유산과 전통을 변함없이 계승해나갈 때 민족성이 고수되고 민족적번영을 이룩해나갈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자기의 민족성을 잃고 민족의 전도를 그르치게 된다는 교훈을 남기고있다.

오늘 공화국에서는 민족어의 순결성이 철저히 보장된 평양문화어가 민족의 만년재보로 찬연히 빛나고있다.

평양문화어는 주체성과 민족성이 힘있게 살아높뛰는 민족의 고귀한 사상정신적재부이다. 평양문화어에는 정의와 진리를 귀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우리 인민의 자주적지향과 요구가 집대성되여있고 민족의 넋과 정기가 빛나고있는것으로 하여 조선문화어의 표준으로 되고있다. 여기에는 우리 말의 우수한 요소들이 다 포함되여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일찍부터 언어문제를 민족의 흥망성쇠와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의 하나로 보시고 고유한 우리 말과 글을 적극 살려쓰고 민족어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주체44(1955)년 1월 10일이였다.

이날 어느 한 곳을 찾으시였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이 읽고있는 도서 《조선어철자법》을 보시고 좋은 책을 본다고 하시며 지금 어떤 사람들은 조선어철자법을 잘 모르다나니 토 같은것을 바로 쓰지 못한다고, 조선어학습을 잘하여 우리 말과 글을 자유자재로 활용할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조선어철자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우리 글을 홀시하고 다른 나라 글을 쓰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기관 사무실에는 한문으로 《출입구》라고 써놓았는가 하면 시내 여러곳의 식당들에는 식당간판을 외래어로 《레스트랑》이라고 썼다. 무엇때문에 누구나 알기 쉬운 우리 글을 쓰지 않고 다른 나라 글을 쓰는지 모르겠다. 조선사람이 우리 말과 글을 쓰지 않고 다른 나라 말과 글을 쓰는것은 민족적자존심이 없는 표현이다. …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벌써 우리 글대신 외래어와 한문투를 쓰는 그릇된 현상의 본질을 민족적자존심이 없는것으로 보시는 그이의 예리한 통찰력과 분석력에 그 일군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언어는 민족을 가르는 징표의 하나이다, 지난날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우리 나라를 강점하고 《동조동근》이니, 《내선일체》니 하면서 민족동화정책을 실시하고 우리 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하였으며 창씨개명까지 강요하였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는 수령님께서 찾아주신 우리 말과 글을 내세워야 하며 발전시켜야 한다고, 지금 언어생활에서 사대주의적현상이 많다고, 다른 사람들이 리해하지 못하는 말과 글을 쓰는것이 결코 유식한것이 아니라고 하시였다.

그 일군이 자기들에게도 언어생활에서 사대주의적경향이 있다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언어생활에서 사대주의적현상을 철저히 없애야 한다고 하시면서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에는 누구나 다 리해할수 있는 우리 말을 써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민족어발전에 커다란 심혈을 기울여오시면서 《영화예술론》, 《주체문학론》을 비롯한 수많은 고전적로작들을 발표하시였다.

여기에는 언어의 본질과 기능, 언어를 민족문제와 밀접한 련관속에서 고찰할데 대한 문제, 우리 말을 발전시키는데서 견지하여야 할 근본원칙과 방도 등 우리 민족어를 주체적립장에서 발전풍부화시켜나가기 위한 모든 문제들이 전면적으로 밝혀져있다.

주체83(1994)년을 보내고 새해의 첫 사업을 펼쳐나가시던 시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말에 다른 나라 말과 잡탕말이 끼여들지 못하게 하며 고유한 우리 말을 적극 살려쓸데 대하여 간곡하게 말씀하시였다. 선군령도의 길에서 찾으신 어느 한 공장에서 부식물가격표를 한 사라에 얼마라고 쓴것을 보시고는 사라라는 말은 일본말이므로 접시라고 고쳐야 한다고 일군들을 따뜻이 일깨워주시였다.

이뿐이 아니다.

주체94(2005)년 9월 함흥시의 어느 한 기업소를 현지지도하실 때 기업소일군이 평양문화어가 아닌 사투리를 쓰는것을 보시고는 문화어를 쓰도록 웃음으로 깨우쳐주기도 하시였다.

주체97(2008)년 6월 5일이였다.

이날 새로 개건된 청류관에 나오시여 이곳에서 봉사하는 여러가지 료리들을 보아주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빨간무우김치에 시선을 주시며 이것은 무슨 김치인가고 물으시였다.

명세표에 분명 《빨간무우김치》라고 씌여져있는데 무슨 김치인가고 물으시는 그이의 말씀에 일군들은 선뜻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다.

여러 일군들이 빨간무우김치라고 말씀올리자 장군님께서는 머리를 가볍게 저으시며 아니라고, 총각김치라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빨간무우김치는 총각김치라고 이름을 바꾸어 부르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하시며 우리 인민들은 예로부터 연한 잎줄기가 붙어있는 어린 무우로 만든 김치를 총각김치라고 불렀다고, 빨간무우로 만들었다고 하여도 예로부터 전해오는대로 총각김치라고 부르는것이 좋겠다고 따뜻이 일깨워주시였다.

크지 않은 음식이름의 유래까지도 알려주시면서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음식이름을 그대로 써야 한다고 가르쳐주시는 장군님의 숭고한 민족애에 일군들은 감동을 금치 못하였다.

온 사회에 건전하고 문화적인 언어생활기풍이 차넘치도록 이끌어주신 장군님의 세심한 손길은 인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쓰고있는 인사말과 부름말, 전화례절마다에도 력력히 어려있고 문학예술작품의 대사 하나하나에도 깃들어있으며 상업봉사자들을 비롯한 봉사성원들의 친절성에도 그대로 비껴있다. 그이께서 언어생활에서 문화성을 높일데 대하여 주신 가르치심만 해도 이루 다 헤아릴수 없다.

이처럼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가 있었기에 오늘 공화국에서는 혁명적군인정신, 강계정신, 희천속도, 단숨에 등 선군시대의 요구와 지향, 인민들의 사회주의생활을 반영한 말들이 끊임없이 생겨나고있다. 군인들과 인민들속에서는 남이 듣고도 모를 어렵고 까다로운 한자말이나 외래어대신에 고유한 조선말을 적극 살려쓰고 토배기사투리나 비문화적인 말대신에 아름답고 세련된 평양문화어를 쓰기 위한 언어생활기풍이 차넘치고있다.

자기의 고유한 문화어를 가지고있는것으로 하여 우리 인민은 고상한 풍모와 자질을 갖추고 민족문화의 우수성을 훌륭히 계승발전시켜나가고있다.

《세계화》의 간판밑에 《국적없는 문화》, 《세계문화》를 부르짖는 제국주의자들의 악랄한 사상문화적침투책동속에서도 민족어의 순결성이 굳건히 고수되고 우리 민족의 고유한 언어생활이 활짝 꽃펴나고있는 이 땅의 현실은 위대한 령도자를 모실 때 민족문화도 개화만발하게 된다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8

우리 장단, 우리 가락이 좋아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리 민족이 창조한 우수한 민족문학예술을 옳게 계승발전시켜나가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여 이 땅우에 참다운 민족문학예술의 화원을 펼치시는 세기적인 업적을 이룩하시였다.

인민이 좋아하고 인민에게 친근한 형식은 민족적인 형식이다.

예술의 민족적형식은 어느 민족예술이나 가지고있기마련이다. 그러나 우리 예술처럼 민족의 구미와 정서에 꼭 맞을뿐아니라 다른 나라, 다른 민족도 다같이 좋아하는 예술, 흥미가 아니라 심장을 격동시키는 예술적감화력, 정서적감흥력으로 만사람을 끌어당기는 그러한 민족예술은 동서를 막론하고 찾아보기 쉽지 않다.

물론 지구상에 민족예술을 보존하고 부흥시키는데 관심을 돌리는 나라가 적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대체로 민족예술을 살린다고 하면서 옛날것을 그대로 옮겨놓고있는것이다. 그런가 하면 오늘의 예술은 현대적이여야 한다고 하면서 퇴페적인 서방식을 모방하고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김일성주석께서 제시하신 민족문화유산계승발전에 관한 사상을 빛나게 구현하시여 우수한 민족문학예술전통을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키시였으며 문학예술의 모든 부문을 민족적바탕우에 확고히 선 참다운 인민적인 예술로 건설하시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조선사람에게는 조선음악이 제일이고 조선화가 제일이고 조선춤이 제일입니다.》

인민적이며 민족적인 절가를 기본형상수단으로 하는 《피바다》식혁명가극, 민족악기와 양악기를 합리적으로 기묘하게 배합한 주체의 관현악, 인민들속에서 널리 사랑받고있는 민요와 민속무용들만 놓고보아도 민족예술의 전통이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옳게 계승발전되고 민족적인것과 현대적인것이 최상의 경지에서 유기적으로 결합된 우리의 민족문학예술의 면모를 잘 알수 있다.

지난날 인민들로부터 경원시되던 가극이 인민들이 누구나 좋아하는 가극으로 근본적인 전환을 이룩한 유명한 가극혁명은 민족문학예술발전의 일단을 잘 보여주고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1970년대에 혁명가극 《피바다》창조과정을 지도해주시면서 지난날의 낡은 형식을 청산하고 가극혁명을 수행할것을 결심하시고 이 사업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를 가극으로 옮기는 과정에 지난날 가극의 기본형식이였던 아리아와 대화창을 통채로 들어내고 가극을 절가로 엮어나갈데 대한 명안을 제시해주시였다.

그 발생자체가 인민대중의 로동생활과 밀접히 결부되여있을뿐아니라 집단적인 가창형식에 기초를 두고있는 절가는 인민적음악의 기본형식이다. 예로부터 인민들은 절가를 통하여 자기들의 소박한 생활체험의 세계를 풍부하게 반영하여왔으며 그 과정에 다양한 종류와 양상의 절가들을 창조하여왔다.

장군님께서는 가극을 절가화할데 대한 명안을 밝혀주신데 이어 창조현장에서 창작가들과 함께 밤을 지새우시며 비범한 예지로 새로운 창조의 눈도 틔워주시고 형상방도도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그이께서는 가극창조의 나날에 무려 1만여곡에 달하는 노래를 들으시고 지도해주시여 마침내 가극의 절가화를 전면적으로 완벽하게 실현하시였다.

뿐만아니라 《피바다》와 《꽃파는 처녀》의 창조과정만 하여도 140여회, 《밀림아 이야기하라》, 《한 간호원에 대한 이야기》창조과정까지 합치면 200여회나 현지에 나오시여 새로 창조하는 가극이 인민적인 가극으로 되도록 지도해주시였다.

새로운 《피바다》식가극을 특징짓는 방창이나 흐름식립체무대미술, 무용과 관현악들도 다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시고 이끌어주시여 완성된것들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현시대의 요구와 우리 인민의 지향, 정서에 맞는 새로운 인민적인 가극들인 《피바다》, 《꽃파는 처녀》, 《밀림아 이야기하라》, 《한 간호원에 대한 이야기》, 《금강산의 노래》, 《한 자위단원의 운명》이 불과 1년 남짓한 기간에 련이어 창조되였다.

이것은 세계가극창조력사에 일찌기 있어보지 못한 놀라운 기적이였다.

흔히 가극 한편을 창조하는데 수년이 걸리는것이 보통이다. 지어 어떤 나라에서는 근 30년이 걸린 실례도 있다.

그런데 사상예술적수준에서 지금까지 인류가 창조하여놓은 모든 가극들가운데서 최고봉을 이루는 걸작들을 그처럼 짧은 기간에 6편이나 련이어 세상에 내놓았으니 이것이야말로 기적이 아닐수 없다.

새로운 《피바다》식가극은 우리 인민뿐아니라 가극의 고향이라고 하는 유럽대륙에서도 폭풍같은 환희를 불러일으켰다.

혁명가극 《피바다》를 본 유럽의 이름있는 한 예술가는 자기의 격동된 심정을 토로하면서 《이 가극은 봉건귀족들과 억만장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유럽가극과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형식의 참다운 인민의 위대한 가극이다. 이 가극은 의심할바 없이 세계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예술의 혜성이며 가극의 왕자이다. 낡은 유럽가극의 시대는 물러가고 새로운 가극의 시대가 왔다. 전세계는 이에 대하여 목소리를 합쳐 만세를 불러야 할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우리 식의 배합관현악이 탄생하게 된 력사적동기와 과정속에도 민족적인것을 귀중히 여기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세계가 깃들어있다.

어느해 12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을 부르시여 국립교향악단의 창작활동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당시 우리 나라에서는 교향악이 인민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있었다. 그것은 우리 인민의 생활감정과 기호를 반영하지 못하고있었기때문이였다. 일부 창작가들은 유럽의 고전교향곡을 덮어놓고 숭상하면서 교향곡이라면 응당 그러한 형식으로 되여야 하는것으로만 생각하고있었다.

언어도 생활방식도 문화력사도 전혀 다른 유럽의 교향악이 우리 인민의 사상감정과 기호에 맞을수 없다는것은 너무도 자명한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교향악이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게 되자 그것을 마치도 인민들의 문화수준이 낮아서 교향악을 리해하지 못하는것처럼 생각하였다.

이러한 실태를 두고 누구보다 마음쓰시며 그 소생의 길을 탐구하고계시던 장군님께서는 이날 그 일군에게 사대주의자들이 떠벌이는것처럼 우리 인민이 무식하여 교향악을 리해하지 못하는것이 아니라 인민들이 요구하는 교향악을 하지 못하는데 근본원인이 있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우리 시대, 우리 인민이 요구하는 새 교향악을 만들기로 결심하였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는 교향악을 우리 인민이 즐겨부르는 민요와 인민대중에게 널리 보급된 명곡을 편곡하는 원칙에서 발전시켜야 한다고, 이렇게 할 때만이 교향악이 인민대중의 사랑을 받는 음악으로 될수 있다고 하시면서 유럽교향악의 낡은 틀을 벗어던지고 교향악을 통속화하며 우리 인민의 감정에 맞는 우리 식의 교향악을 건설할데 대한 독창적인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새로운 교향악을 창조하는데서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진 민요와 명곡을 가지고 교향곡을 만들데 대한 문제, 우리 민족음악에서 특성을 이루고있는 민요의 장단을 잘 살리는 문제, 연주형상에서 민요창의 독특한 멋을 잘 살릴데 대한 문제 등을 주체적교향악창조의 기본원칙으로 제시하시였다.

민족적인것을 그 무엇보다 귀중히 여기시는 절세의 위인의 숭고한 민족애에 떠받들려 마침내 우리 나라에서는 일찌기 세계교향악력사에 있어본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형식인 혁명적인 내용과 민족적특성, 인민적성격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참신한 교향악이 태여나게 되였다.

새 형식의 교향악이 관중들의 절찬속에서 공연되고있던 어느날 장군님께서는 해당 일군들로부터 교향악에 대한 인민들의 반향을 들어보시고 못내 기뻐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교향곡의 창작과 그 연주형식에 있어서뿐아니라 악기편성에서도 종래의 양악기본위의 편성으로부터 우리 나라의 고유한 민족악기와 양악기를 서로 배합하여 인민들의 기호에 맞는 새로운 음색을 창조하도록 하시고 그것을 우리 식의 배합관현악의 기본음색으로 규정해주시였다.

오늘도 불후의 고전적명작 《사향가》, 《피바다가》와 《아리랑》, 《도라지》, 《조선은 하나다》,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를 비롯한 우리 식의 교향곡들이 인민들의 사랑속에 계속 공연되고있는것은 위대한 장군님의 이렇듯 구체적이고도 세심한 지도가 낳은 빛나는 결실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음악예술분야에서 민족적특색을 옳게 살려나가도록 하는데도 특별한 관심을 돌리시였다.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선인민군협주단에서 가야금병창과 가야금독병창이 독점물로 되여야 한다는 믿음을 안겨주신적이 있으시였다.

그런데 가야금연주에서 기본이라고 할수 있는 롱현주법을 잘 살리지 못하다보니 인민군협주단의 자랑으로 되고있던 그 독점물이 점차 빛을 잃기 시작하였다.

장군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문제에 대하여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가야금연주에서는 롱현을 잘 살려야 가야금의 고유한 음색을 낼수 있다. 민족악기의 연주법을 현대화한다고 하여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민족적인 소리색갈을 약화시켜서는 안된다. 가야금에서 롱현이 기본이라는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선의 맛을 살려야 가야금이다. …

그러던 주체97(2008)년 11월 8일 장군님께서는 인민군협주단에서 준비한 가야금제주 《옹헤야》와 가야금병창 《매봉산의 노래》를 보아주시였다.

공연을 보아주신 장군님께서는 오늘 공연에 내놓은 가야금소품 두 종목이 다 멋있다고, 특히 제일 마음에 드는것이 가야금제주 《옹헤야》이라고, 인민군협주단의 가야금병창이 이제는 자기의 얼굴을 찾았다고 하시면서 오늘에야 진짜 조선의 맛을 보았다고 매우 만족해하시였다.

한 일군이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롱현을 살리는데 품을 넣었기때문에 오늘과 같은 음색을 찾을수 있었다고 말씀올리자 그이께서는 옳다고, 가야금에서는 롱현이 기본이라고, 롱현주법을 깊이있게 잘 살리니 얼마나 좋은가고, 바로 이런 음악이 조선음악이라고 하시면서 가야금제주 《옹헤야》는 우리 식, 조선의 맛을 잘 살린 아주 좋은 작품이라고 다시금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음악예술분야에서 민족성을 고수할뿐아니라 새로운 민족성을 적극 창조해나가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가 있어 우리 식의 경음악과 전자음악도 태여날수 있었다.

그이께서는 전자악기가 배합된 특색있는 악기편성으로 민족음악에서 민족적선률의 고유한 정서와 향취를 두드러지게 돋구어냄으로써 민족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우리 식의 경음악을 훌륭히 창조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록크나 디스코, 쟈즈와 같은 음악만을 연주하는것으로 인식하고있던 전자악기를 가지고 우리 민족의 취미와 정서에 맞게 조선장단을 타고 유순하고 고상한 우리의 선률을 기본으로 살리면서 음악을 아름답고 건전하고 정서있게 형상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가극, 음악뿐아니라 무용, 교예 등 문학예술전반을 인민적인 사회주의민족문학예술로 발전시켜주시면서 우리 민족의 우수한 문화를 잘 보존하고 옳게 계승해나가도록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주체59(1970)년 3월 5일이였다.

이날 평양대극장에서 음악무용종합공연 시연회를 보아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공연종목에 《사당춤》은 왜 빠졌는가고 물으시였다.

그이께서는 그 춤은 사찰에서 나온 춤이기때문에 공연종목에 넣지 않았다는 한 일군의 대답을 들으시고 이런 말씀을 하시였다.

봉건시기 우리 나라에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집뜨락을 무대로 삼고 노래와 춤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사당》이라고 불렀다. 그들의 춤은 일정한 형식을 갖춘 작품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놀이에 어울리는 즉흥적이면서도 재치있는 동작으로 된것이였다. 이러한 《사당춤》에는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춤가락과 민족적인 흥취가 적지 않게 반영되여있다. …

《사당》이라는 말을 사찰을 의미하는것으로 리해하고있다가 그이의 말씀을 받고서야 비로소 《사당》에 대하여, 《사당춤》에 대하여 알게 된 일군들은 너무도 부끄러워 머리를 들수 없었다.

무용을 전문한 자기들이 민족의 유산인 《사당춤》에 대해서 뜻조차 왕청같이 알고있었으니 어찌 그렇지 않으랴.

장군님께서는 부끄러움과 자책감에 몸둘바를 몰라하는 일군들과 창작가들의 마음을 눙쳐주시며 《사당춤》이라고 부르는것이 쉽게 리해되지 않는다면 《3인무》라고 하여도 된다고, 이번 공연종목에 《3인무》를 넣고 이미 준비한 배우들을 출연시켜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일군들과 창작가들에게는 민족의 슬기와 재능, 풍부하고 아름다운 생활감정을 반영한 문화유산이라면 빠짐없이 발굴하고 훌륭히 살림으로써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주시려는 장군님의 숭고한 의도가 가슴뜨겁게 안겨왔다.

이렇게 되여 세월의 락엽속에 묻혀 사라져버릴번 하였던 옛 《사당춤》은 《3인무》로 다시 태여나 민족의 자랑스런 재보로 빛을 뿌리게 되였다.

《사당춤》만이 아니다.

주체64(1975)년 12월 하순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새롭게 발굴한 민속무용 《돈돌라리》를 보시게 되였다.

원래 민속무용 《돈돌라리》는 1930년대초에 동해안의 북청지방에서 창작되여 여러 고장들에 보급되여온 군중무용의 하나이다. 춤은 일제식민지통치의 그 암담한 시기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기어이 오고야말 조국강산의 동틀날(《돈돌라리》라는 말도 여기에 어원을 두고있다.)을 그리는 우리 인민의 생활감정을 경쾌한 노래선률과 춤가락에 담아 진실하게 반영한것으로 하여 인민들속에서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책동과 해방후 민족문화유산에 대한 일부 편협한 사람들의 허무주의적인 태도로 하여 이 무용은 점차 빛을 잃었으며 또 춤자체가 현대적인 미감에 잘 맞지 않는 부족점이 적지 않아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가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사회주의문화는 빈터우에서가 아니라 지난날의 문화유산가운데서 진보적이며 인민적인것을 사회주의현실에 맞게 계승발전시키는 기초우에서 창조된다고 하시면서 예로부터 우리 인민들속에서 널리 전해오는 민속무용들을 발굴수집하여 새롭게 발전시킬데 대한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이때 동해안지방의 《돈돌라리춤》 같은것을 발굴하여 현대의 미감에 맞게 잘 살려낼수 있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대본을 옆으로 밀어놓으시고 무대우에 펼쳐지는 춤동작들을 구체적으로 보아주시였다.

공연이 끝난 후 그이께서는 원래 《돈돌라리》는 특색이 있는 춤인데 본래의 《돈돌라리》곡은 다 없애고 현대화된 곡에다 손동작을 맞추어놓으니 흥취가 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무용 《돈돌라리》를 하자면 민속무용대로 해야지 원래의 《돈돌라리》를 완전히 무시하고 현대화하였으니 누가 그것을 보고 《돈돌라리》라고 하겠는가고 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춤은 다시 새롭게 만들어지게 되였으며 그 이듬해 3월 위대한 장군님께서 두번째로 이 춤을 보아주시였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춤을 형상한 안무가에게 《돈돌라리춤》의 어떤것이 원색춤가락인가고 물으시였는데 그는 똑똑한 대답을 드리지 못하였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너그럽게 웃으시며 골라내기 어려운 모양이라고 하시면서 민속무용 《돈돌라리》에서는 손을 들었다 내리며 어깨를 가지고 재간을 부리는것이 있었는데 오늘 출연한 무용 《돈돌라리》에는 그런것이 없다고 일깨워주시였다.

그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창작가들이 완성한 무용을 다시 보아주시고나서 기쁨을 금치 못해하시였다.

교예는 사람들에게 강의한 의지와 담력, 생활의 랑만과 희열을 안겨주는 재주의 예술로서 오랜 력사를 자랑하고있다.

고구려무덤벽화들에 그려져있는 그림을 통해서도 알수 있는바와 같이 우리 나라에서는 벌써 세나라시기에 말타기재주, 손재주, 발재주, 칼쓰기재주 등 여러가지 교예가 있었다. 팔청리벽화무덤에는 두 남자가 고삐를 쥐지 않은채 말을 타고 재주를 부리면서 큰 뿔나팔을 불며 북치는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그려져있는데 이것은 당시의 말타기교예정형을 보여주는것이다. 팔청리, 약수리, 수산리 등지의 여러 벽화무덤들에는 여러개의 공과 짧은 막대기를 연거퍼 올리던지고 받는 모습을 그려 당시의 손재주교예를, 키만 한 높이의 나무다리를 탄 교예사가 완함(악기이름)의 반주에 맞추어 춤을 추며 걸어가는 모습을 그려 당시의 발재주교예를, 칼을 여러가지 자세로 들고있는 그림을 그려 칼쓰기재주를 보여주고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는 교예도 우리 민족의 감정과 정서에 맞게 발전시키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여러 기회에 교예부문 사업을 지도해주시면서 교예예술이 사회주의적내용과 민족적형식이 옳게 결합된 아름답고 우아하며 고상한것으로 되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그리하여 오늘 공화국의 교예는 우리 인민들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세계최상의 교예》, 《세계패권을 쥔 교예》, 《현시대와 미래를 대표하는 본보기교예》로 불리우고있으며 세계교예올림픽축전, 세계교예축전, 세계요술축전, 세계교예선수권대회 등 세계적인 범위에서 진행되는 축전과 대회들마다에서 1등과 선수권 등을 보유함으로써 민족적자부심을 북돋아주고있다.

이처럼 문학예술의 모든 부문을 민족적바탕우에 확고히 선 참다운 인민적인 예술로 건설하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불멸의 령도업적이 있어 이 땅에서는 오늘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조선의 장단, 조선의 가락이 울려퍼질것이다.

9

건축물들에 민족의 넋이 어리도록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 땅에 일떠서는 건축물들마다에 우리 민족의 넋이 어리도록 커다란 심혈을 기울여오시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민족건축전통을 옳게 계승발전시켜야 민족건축유산가운데서 지금까지도 자기 인민의 지지와 사랑을 받는 민족건축의 우수한것을 계승발전시키고 민족적특성을 살려 주체적인 건축을 성과적으로 창조할수 있다.》

매개 나라와 민족은 사회생활의 력사적과정에 형성되고 공고화된 자기의 고유한 전통을 가진다. 전통은 나라와 민족의 발전과 더불어 대를 이어 끊임없이 전해진다.

력사적으로 형성된 민족적전통은 시대적, 계급적제한성을 가질수 있으나 거기에는 민족자주정신이 체현되여있으며 그것은 나라와 민족의 귀중한 재부로, 부강조국건설의 중요한 밑천으로 된다.

기초가 약한 집이 쉽게 무너지는것처럼 민족전통도 굳건히 살려나가지 못하면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점차 흐려지고 완전히 사멸될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민족허무주의에 빠지게 되고 다른 나라를 쳐다보는 사대주의병에 걸리게 된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인민의 우수한 민족적전통을 적극 살리고 그것을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에 구현하도록 그토록 심혈을 기울이신것은 그와 관련되여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의 민족성, 민족적전통을 고수하고 적극 살리며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 철저히 구현해나가는것을 부강조국건설의 근본원칙의 하나로 내세우시고 이 땅에 일떠서는 기념비적창조물들마다에 민족의 넋이 어리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오늘 평양의 중심부 남산재에는 조선식건물의 전형인 인민대학습당이 일떠서있다.

원래 이곳은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제일 아끼시던 명당자리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설계된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에는 남산재일대가 수도의 중심부로 계획되고 그 중심에 정부청사를 앉히는것으로 예견되여있었다.

그러나 수령님께서는 수도중심부에 정부청사를 배치하는것보다 인민들이 늘 리용하는 로동회관과 같은 큰 건물을 지을것을 예견하시였다.

하기에 그이께서는 전쟁에서 승리한 그때로부터 건축가들이 수도의 중심부의 건축형성을 빨리 완성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남산재에 건물을 앉히자는것을 여러번 제기할 때마다 그들을 만류하시며 뒤로 미루시였었다.

그러던것을 1970년대에야 비로소 남산재에 정부청사가 아니라 인민들이 그 누구나 마음대로 공부할수 있는 도서관을 앉히기로 결심하시고 주체62(1973)년 12월 몸소 눈덮인 이곳에 오르시여 그 터전을 정해주시였다. 그러시고 주체63(1974)년 10월에는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새로 지을 건물의 이름을 전민이 다 와서 공부하는 곳이라는 뜻에서 《인민대학습당》으로 할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김일성주석의 구상과 뜻을 실현하기 위하여 인민대학습당형성안에 대한 전국적인 현상모집을 진행하도록 하시고 그 형성안들을 여러차례 보아주시면서 수령님의 뜻대로 인민대학습당을 철두철미 민족적형식의 특색있는 건축물로, 주체건축예술의 대걸작품으로 훌륭히 건설하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주체67(1978)년 7월말 어느날이였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이 올린 설계형성안들을 몸소 보아주시였다.

형성안들을 보아주신 장군님께서는 형성안들이 모두 현대식건물로 되여있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이런 형식의 집들도 많이 지어야 할것이라고 이르시고나서 수도의 건축형성상 중심축으로 되여야 할 인민대학습당의 건물형식은 반드시 조선식으로 되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설계일군들은 그이의 말씀에 어려있는 깊은 뜻을 인차 깨닫지 못하였다.

사실 그들도 조선식건물을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것은 아니였다.

현상모집요강을 만들던 때로부터 형성안작성단계는 물론 출품된 작품들의 심의단계에서도 이 문제는 줄곧 론점으로 되여왔다.

그러나 조선식으로는 건물을 크게 짓기 힘들며 그렇게 되면 수도의 중심부에 놓이는 건물로서 자기의 풍격을 원만히 갖출수 없다는 론리에 눌리워 빛을 보지 못했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이미 건축가들속에서 벌어진 이러한 론쟁을 환히 꿰뚫고계신듯 일군들에게 수도의 건축형성상 중심축으로 되여야 할 인민대학습당의 건물형식은 반드시 조선식으로 되여야 한다고, 그것은 평양이 조선의 수도이며 우리 인민들이 평양대극장이나 인민문화궁전, 옥류관과 같은 조선식건물을 더 좋아하기때문이라고, 그러므로 수도의 중심부에 삼각점을 이룬 평양대극장과 인민문화궁전, 옥류관의 한가운데 들어앉는 인민대학습당 역시 조선식건물로 되여야 한다고, 그래야 평양이 조선의 도시, 인민의 도시로서의 성격과 면모를 더욱 살릴수 있다고 하시며 인민대학습당의 건물형식이 반드시 조선식으로 되여야 하는 근거에 대하여 하나하나 일깨워주시였다.

정연한 론리와 강한 설득력으로 일관된 그이의 말씀은 대번에 일군들과 건축가들의 심장을 틀어잡았다.

평양대극장과 옥류관, 인민문화궁전을 점으로 하여 3대 조선식건물이 삼각형을 이루고있다는것이라든가 인민대학습당이 그 중심에 놓인다는것은 지금껏 평양시건설을 맡아가지고 시안을 환히 들여다보며 메주밟듯 한 건축가들도 생각하지 못한것이였다.

그로부터 며칠후 일군들과 건축가들은 다시한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묘향산에 새로 일떠선 국제친선전람관을 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집을 조선식으로 지어놓으니 높아도 얼마나 보기 좋은가고 하시면서 인민대학습당도 조선식건물로 짓자고 말씀하시였던것이다.

민족적전통을 귀중히 여기시며 그것을 적극 살려나가시려는 절세의 위인들의 사색의 세계는 이렇듯 하나로 잇닿아있었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69(1980)년 1월말 어느날 인민대학습당형성안을 또다시 보아주시였다.

형성안을 깐깐히 보아주시던 그이께서는 문득 건물후면의 회의실지붕을 왜 조선식으로 하지 않고 서양식으로 해서 범벅이를 만들어놓았는가고 물으시였다.

한 설계일군이 회의실의 조선식지붕을 서양식평지붕으로 고치게 된 사연을 말씀드리였다.

그에 의하면 회의실이 정면과 좌우측면에서 바라보면 나타나지 않고 후면에서 봐야 조금 나타나는데 그것도 고층건물에 가리워 알릴락말락하기에 인민대학습당을 조선식건물로 되게 하는데 큰 영향이 없다는것이 첫째 조건이였고 조선식지붕은 평지붕과는 달리 시공에서 품이 많이 들기때문에 건설속도를 높일수 없어 그렇게 하기로 했다는것이 둘째 조건이였다.

설명을 들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저으기 신중한 안색을 지으시고 우리는 오직 하나의 원칙과 방법대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의도하시는대로만 해야 한다고 단호히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 강조하신 하나의 원칙이란 위대한 수령님께서 7년전 12월 남산재에 오르시여 이곳에 인민대학습당을 조선식으로 잘 지어 인민들에게 선물할데 대하여 하신 교시였다.

그런데 일군들은 조선식에 얼룩이 지게 했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대학습당 회의실지붕을 평지붕으로 고친것은 잘못되였다고, 다른 지붕들을 다 조선식으로 하면서 회의실지붕만 평지붕으로 하면 민족적형식에 현대식건물형식을 섞어놓은것으로 된다고, 원래 평지붕은 비가 새기때문에 좋지도 않다고 하시면서 인민대학습당건물은 민족적형식을 살리면서도 현대적으로 꾸려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에서 자기들의 잘못을 깨달은 일군들은 그후 회의실의 평지붕설계를 조선식지붕설계로 고쳐 인민대학습당건물의 지붕을 모두 조선식으로 관통시키도록 하였다. 이렇게 되여 인민대학습당은 조선식건축물로서의 특성이 완전무결하게 살아나게 되였으며 그 품위가 더욱 높아지게 되였다.

민족적전통을 귀중히 여기고 그것을 적극 살려나가시려는 절세의 위인의 숭고한 뜻에 떠받들려 하늘을 날던 학떼가 날개를 편채 내려앉은듯 높이 들린 추녀며 청기와를 이은 지붕을 이고 풍치수려한 향암천기슭에 거연히 솟아있는 국제친선전람관은 물론 세상사람들로부터 이 세상에 오직 하나 《살아움직이는 기념비》로 불리우는 주체사상탑도 거연히 솟아오를수 있었다.

주체사상탑을 세울것을 발기하시고 그 형식과 위치까지 밝혀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구상에 따라 탑형성안이 완성되여가던 주체69(1980)년 3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탑형성안을 보아주신 장군님께서는 주체사상탑을 책으로 쌓은것처럼 형상한것을 보시고 왜 그렇게 하였는가고 물으시였다.

한 일군이 주체사상탑을 말그대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을 탑으로 기념비화한다는 의미에서 수령님의 혁명사상, 주체사상이 담겨져있는 고전적로작들을 탑으로 쌓아올린것처럼 하고 거기에 로작제목도 새겨넣으려고 한다고 말씀드리였다.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탑을 책으로 쌓은것처럼 형상하면 로작권수가 문제라고 하시면서 사람들이 주체사상탑을 보고 로작을 몇권 쌓은것처럼 형상하였는가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그리고 로작제목을 새겨넣으면 그것이 제대로 보이겠는가고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탑을 책으로 쌓은것처럼 형상하는것은 좋은것 같지 않다고 하시면서 그 수정방도에 대하여서까지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여러 기회에 탑신을 민족적형식의 석탑으로 건설할데 대하여 밝혀주신것을 비롯하여 주체사상탑건설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일일이 알아보시며 그 대책까지 하나하나 세워주시였다.

오늘만이 아니라 먼 후날에 가서도 자그마한 손색이 없는 세계에서 으뜸가는 탑으로 완성하시려고 온갖 심혈을 다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150m의 거대한 탑신을 우리 나라의 민족적인 돌탑건축양식을 살려 단으로 형성하면서도 현대적미감에 맞게 매 단을 직선으로 하고 처마를 짧게 처리하였을뿐아니라 네 모서리를 수직으로 강조함으로써 하늘로 곧추 솟아오르는듯 한 강한 느낌을 표현하고있는 주체사상탑이 시대의 기념비로 이 땅에 솟아날수 있었다.

언제나 민족적전통을 고수하고 그것을 철저히 구현해나가도록 깊은 관심을 돌려오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선군령도의 그 바쁘신 길에서도 소박하게 지어놓은 민족적형식의 살림집들을 보아주시며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가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한해도 다 저물어가던 주체93(2004)년 12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새로 건설된 종합봉사소건물과 살림집들을 돌아보시기 위하여 칠보산을 찾아주시였다.

현지에 도착하신 장군님께서는 조선식지붕을 인 살림집들을 비롯하여 주변을 둘러보시다가 한 건물을 가리키시며 무슨 건물인가고 물으시였다.

관광을 온 외국인들의 생활상편의를 보장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서 조선식온돌방으로 된 식사칸들과 주방칸, 상점 등 봉사시설들이 갖추어진 건물이라는 이곳 일군의 해설을 들으신 장군님께서는 종합봉사소건물이 멋있다고 하시며 앞서 계단을 올라 대문안으로 들어서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대문에 들어서시여 이 지방에 흔한 크고작은 자연돌들로 키를 맞추어 깔아놓아 주변환경과도 잘 어울리고 고전미와 민족적인 향취가 나도록 한 마당을 보시고 아주 잘하였다고 치하해주시였다.

또한 새로 건설한 살림집들로 가시는 길에서 어느 한 살림집의 합각지붕을 보시고는 기와를 제대로 했는가도 알아보시며 조선식으로 지은 살림집들에 조선기와를 이었는데 앞으로 기와를 더 잘 만들어야 하겠다고, 조선기와에 유약을 바르고 구워내면 윤기가 나고 보기 좋을것이라고 하시며 일군들의 생각을 틔워주기도 하시였다.

이날 한 살림집을 찾으신 장군님께서 2층에 있는 손님방을 돌아보실 때였다.

그이께서 이불장앞으로 다가서시자 주인집녀인이 문을 열고 이불을 보여드리며 손님들이 리용하는 침구류라고 말씀드리였다. 거기에는 조선이불 한조와 여느 이불 한조가 정돈되여있었다.

차곡차곡 개여있는 이불을 보신 장군님께서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시며 이불장에 관광객들이 리용할 침구류로 조선이불도 넣은것은 잘하였다고, 이런데서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리용하는 침구류로 조선이불도 갖추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비록 외국인들을 위한 숙소이지만 민족적정서가 한껏 흘러넘치도록 더 잘 꾸려주시기 위해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모습을 우러르는 일군들에게는 깨달아지는것이 있었다.

그이께서 도시의 호텔처럼 번들거리는 대리석이 아니라 소박하면서도 주위환경과 잘 어울리게 자연돌들을 깐 종합봉사소건물 안마당이며 조선이불을 보시고 왜 만족해하시였는지 그리고 조선기와를 잘 만들어야 한다고 왜 간곡하게 당부하시였는지.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전통을 적극 살릴뿐아니라 시대의 요구에 맞게 풍부화하고 더욱 발전시켜 온 세상에 조선민족의 우수성을 빛내이도록 하시기 위해 가르쳐주기도 하시며 그토록 깊은 관심을 돌리신것이였다.

민족적전통을 적극 살려나가도록 마음써오신 위대한 장군님이시였기에 칠보산뿐아니라 황해북도 서흥군 범안리와 사리원시 미곡리를 비롯하여 찾으시는 단위들마다에 민족적형식으로 훌륭히 건설된 살림집들을 보시고 너무도 기쁘시여 쌓인 피로도 잊으신채 모든 리와 마을들을 로동당시대의 무릉도원으로 꾸릴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기도 하시였다. 그리고 어느 한 민속거리를 돌아보실 때에는 조선식건물을 많이 지었지만 특색이 잘 살아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해당 력사적시기 건물들의 특성이 나타나게 꾸릴데 대한 문제 등을 지적해주시며 하나하나의 건물들마다에 민족의 넋이 어리도록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숭고한 민족애에 떠받들려 이 땅에 솟아난 민족적형식의 특색있는 기념비들과 건축물들은 민족적전통을 적극 살려나가도록 한평생 마음써오신 절세의 위인의 그 은정을 길이 전하고있다.

10

민속전통을 적극 살려나가야 한다시며

 

민속은 해당 민족의 풍속이나 생활풍습 또는 습관이다. 민족의 본태는 인민들의 구체적인 생활에 반영되여있으며 또 그것을 통하여 표현된다.

오랜 력사를 거쳐 발전풍부화된 고유한 조선민속에는 슬기롭고 근면한 우리 민족의 창조적지혜와 재능, 고상한 사상감정과 례의도덕, 조선사람의 독특한 생활양식 등 고유한 구미와 기호를 비롯한 민족적특성이 진하게 반영되여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민속문제, 민속을 살리는가 못 살리는가 하는것을 민족의 존망에 관한 중대한 문제로 보시고 민속명절과 민속놀이, 민속례법과 민족옷차림 등 우리 인민의 고유한 문화전통과 생활전통을 적극 살려나가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전통과 미풍량속을 고수하고 인민들의 요구와 리익에 맞게 살려나가는데 계속 깊은 주의를 돌려야 합니다.》

우리 민족이 해마다 맞고 보내는 설명절과 정월대보름, 추석(한가위)과 같은 민속명절들에도 민속전통을 적극 살려나가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애국애족의 심혈이 깃들어있다.

주체69(1980)년 3월 어느날이였다.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문득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고 물으시였다.

일군들이 한동안 얼떠름해있는데 그이께서는 오늘이 정월대보름날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사실 우리 인민들은 예로부터 설명절, 추석을 년중 제일 큰 민속명절로 쇠여왔을뿐아니라 정월대보름도 이런 명절들 못지 않게 크게 쇠여왔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두고 내려오며 조상전래로 크게 쇠여오던 이 명절은 지난날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정책에 의하여 심히 짓밟히게 되였으며 해방후에는 사대주의자들과 민족허무주의자들의 책동으로 자기의 모습을 점차 잃어버리게 되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가지고 오신 조선엿을 맛보라고 일군들에게 주시면서 우리 인민들은 설명절과 같은 명절놀이에서뿐아니라 로동생활, 문화생활, 의식주생활, 도덕생활 등에서 우수하고 훌륭한 민속전통을 창조하였다고, 우리 선조들이 대를 이어오면서 창조한 민속전통은 우리가 잘 보존하고 계승발전시켜야 할 귀중한 민족적유산이라고 말씀하시였다.

민족의 넋과 생활정서가 깃들어있는 민속명절을 똑똑히 알게 하시려고 그토록 마음쓰시는 절세의 위인을 우러르는 일군들의 눈앞에는 몇해전 동지날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주체64(1975)년 12월 어느날이였다.

몇몇 일군들은 위대한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이께서 계시는 곳으로 달려왔다. 영문을 몰라하는 그들에게 장군님께서는 식사나 함께 나누자고 찾았다고 하시며 어서 상에 나앉으라고 이르시였다.

그러시고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가고 물으시였다.

서로 머리만 기웃거릴뿐 대답을 못하고있는 그들을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오늘이 동지날이라고 하시며 동지죽을 쑤었으니 모두들 들라고 말씀하시였다.

예로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동지날이 되면 수수나 찹쌀로 만든 동그랭이를 넣어 쑨 팥죽을 먹는 풍속이 전해져오고있다.

력사기록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서는 이미 고려시기에 국가적으로 동지를 민속명절의 하나로 정하고 쇠였으며 민간에서는 이날을 맞으며 집집마다 팥죽을 쑤어 이웃들과 나누어먹으면서 화목을 두터이 하였다. 《동국세시기》에도 동지날은 작은 설날이라고 하여 붉은 팥죽을 쑤어먹었는데 찰수수가루나 찹쌀가루를 익반죽하여 새알심을 만들어 죽속에 넣고 꿀을 타서 철음식으로 삼았으며 제사에도 쓴다고 씌여져있다.

팥죽이 동지날을 상징하는 음식인데로부터 민간에서는 동지무렵에 날씨가 따뜻하면 이듬해에는 농사가 잘될 징조라는 의미에서 《동지죽이 쉬는 해에는 풍년이 온다.》, 얼핏 보기에는 사람이 변변치 않을것 같으나 일이 록록치 않음을 비겨 《배꼽은 작아도 동지팥죽은 잘 먹는다.》는 속담까지 전해져오고있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일군들 매 사람앞으로 동지죽그릇을 밀어놓으시며 어서 들자고, 동무들을 위해 쑨 동지죽이라고, 우리 함께 동지죽을 먹고 새해에도 더 많은 일을 하자고 하시였다.

그러시고 예로부터 우리 인민은 년중 밤이 제일 길고 낮이 제일 짧은 날인 동지날에 팥죽을 쑤어먹는것을 전통적인 민족적풍습으로 여겨왔다고 하시면서 동지날에 동지죽을 먹으면 한살을 더 먹는다는데 이렇게 마주앉아 지난 한해를 돌이켜보는것도 좋은 일이라고 말씀하시였다. …

이렇듯 몇해전 동지날에 있었던 일을 돌이켜보는 일군들을 바라보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지난날 어떤 사람들은 외국에 갔다와서 우리도 생활방식에서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가야 한다고 하면서 밥대신 마까로니를 먹고 점차 숟가락이나 저가락대신 나이프나 포크 같은것을 쓰도록 해야 한다고 한데 대하여 심각하게 지적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우리 선조들이 창조하고 대를 이어오면서 지켜온 민속전통에는 우리 인민의 고상한 사상감정과 례의도덕, 조선사람의 독특한 생활양식과 우리 민족의 고유한 기호와 특성이 반영되여있다고, 민속을 버리면 민족을 잃어버릴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민속명절에 깊은 관심을 돌리신것은 이때만이 아니였다.

주체91(2002)년 2월 어느날 선군령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느 한 인민군부대 지휘관들을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현지지도일정을 마치고 평양으로 가던 도중 동무들이 보고싶어 불렀다고 하시면서 오늘이 정월대보름이라고, 민속명절에 식사라도 함께 하자고 하시며 그들을 식탁으로 이끄시였다.

식탁우에는 갖가지 나물반찬을 곁들인 검소한 음식들이 차려져있었다. 그런데 신통히도 매 사람앞에 말린 나물 반찬이 9가지씩이였다.

장군님께서는 별로 차린것은 없지만 어서들 들라고 권하시며 음력 1월 15일을 정월대보름이라고 하는것은 새해 첫달에 맞는 보름이라는 뜻에서 유래된것이라고, 예로부터 정월대보름날에는 9가지의 말린 나물을 먹는다고 하였다고, 우리 나라에 동지날에는 작은 설날이라고 하면서 팥죽을 쑤어먹고 추석날에는 햇곡식으로 송편을 비롯한 여러가지 음식을 해먹는 풍습이 있다고,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이런 민족적인 풍습을 잘 모르고있다고, 새로 자라나는 새 세대들은 오곡백과라는 말은 하면서도 오곡에 어떤것들이 포함되는지 제대로 모른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성을 귀중히 여길줄 모르는 사람은 참다운 공산주의자가 될수 없다고 하시였다.

결코 여담으로 하시는 말씀이 아니였다.

조상대대로 전해져오는 우리 민족고유의 풍습에 대한 상식을 통하여 민속을 중히 여기고 살려나가는것이 곧 민족애의 표현이며 자기 민족에 대한 사랑과 민족성고수를 떠난 참다운 혁명가에 대해 말할수 없다는 심오한 리치를 깨우쳐주시는 말씀이였다.

민속을 버리면 민족이 자기 본태를 잃어버릴수 있다고 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옷차림에서도 민족성이 구현되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주체66(1977)년 9월 중순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무대의상도안을 보아주실 때였다.

화려하고 현대적이며 민족적색채가 진하게 안겨오는 무용배우들의 의상도안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의상도안들을 하나하나 보아주시던 장군님께서는 저고리에 고름을 단 도안과 달지 않은 조선옷도안앞에서 눈길을 멈추시였다.

한동안 도안을 주의깊게 보아주신 그이께서는 조선녀성들의 저고리형태를 달리한다는것이 간단치 않다고, 치마는 여러가지 형태로 할수 있지만 저고리는 형태를 다르게 하기 힘들다고, 몇천년을 내려오는 조선저고리형태를 어떻게 하루이틀에 혁명할수 있겠는가고 하시였다.

잠시 동안을 두시였던 장군님께서는 조선저고리는 고름을 다는것이 고유한것이며 고름을 달지 않으면 관중들에게 혼란을 주게 된다고 심중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조선저고리는 고름을 다는것이 고유한것이다.

이것은 조선옷의 기본특징을 규정짓는 말씀이시였다.

사실 조선옷의 아름답고 맵시있는 기본특징은 저고리에 우아하고 길다란 두가닥의 고름을 단것이며 바로 그것이 다른 나라 민족의상들과도 구별되고 돋보이게 하는것이다.

그런데 무대의상을 현대맛이 나게 발전시키고 다양하게 한다고 하면서 조선옷의 전통적인 의복제도의 가장 우수한 기본특징을 없애버리려고 하였으니…

조선저고리에서 고름을 없애는것은 한갖 형식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곧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더욱 빛내여나가려는 애국심이 부족한 현상의 표현이라는 생각으로 도안가들과 일군들은 얼굴을 들수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그러는 일군들에게 녀성들의 조선옷을 다양하게 만들 방도에 대하여서도 세세히 가르쳐주시였다.

그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민족성을 고수하자면 민족옷을 입는것을 장려해야 한다고 하시며 조선옷의 고유한 색갈에 이르기까지 가르쳐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녀성들에게 더 좋은 치마저고리감을 마련해주기 위하여서도 깊이 마음쓰시였다.

주체89(2000)년 6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낮기온이 34°C를 기록하는 무더운 날씨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녕변견직공장을 찾으시였다.

흐르는 땀방울을 연방 손수건으로 훔쳐내시며 공장의 생산공정들을 일일이 다 돌아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문득 공장의 책임일군에게 우리 녀성들이 비단치마저고리를 좋아하는가고 물으시였다.

일군은 좋아한다고, 이번에 평양견학을 갔었는데 다색단치마저고리를 입은 공장의 직포공들의 차림새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고 자랑스럽게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나직한 음성으로 이번에 평양에 왔던 남조선의 김대중은 연도에 환영나온 녀성들이 치마저고리를 입고있는것을 보고 그것만 보아도 북조선에서는 전통적인 민속문화가 고수되고있다는것을 알수 있다고 하면서 감탄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력사적인 6. 15북남공동선언이 채택된지 며칠밖에 안되는 무더운 날 비단공장을 찾으신 그이의 웅심깊은 의도가 그대로 안겨오는 말씀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북과 남의 수뇌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민족의 통일성업을 론하는 그 중대한 시각에도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환영군중 특히는 녀성들이 입고있는 민족전통의상인 조선치마저고리를 유심히 보고 또 보시였다.

하나의 의상이기 전에 민족적인 얼이고 향취인 조선치마저고리를 떨쳐입고 연도환영에 나선 녀성들의 모습을 보시며 장군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우리 녀성들의 저 아름다운 모습에 민족적인 색채를 진하게 더해줄수 없을가, 온 나라를 민족의 우수한 향기로 단장시킬수 없겠는가 하는데 대하여 생각하고 또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치마저고리를 해입혀도 우리 녀성들모두에게 부드럽고 색갈고운 비단으로 만든 치마저고리를 해입히고싶으시였다. 그러면 아마 조선녀성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녀성들로 보일것이고 우리 나라는 민족의 향취가 진하게 풍기는 나라로 될것이라는 생각에서 이 공장을 찾아 먼길을 오시였던것이다.

이처럼 치마저고리 하나에서도 민족의 넋을 읽으시고 민족의 장래발전을 위한 정신적원동력을 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민족의 넋을 살리고 민족의 우수한 전통을 대대손손 이어가도록 하기 위하여 민속놀이도 적극 장려하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예로부터 우리 나라에는 씨름과 같이 남자들이 하는 민속놀이도 있었고 연띄우기와 제기차기, 팽이치기, 썰매타기, 줄넘기, 숨박곡질, 메뚜기치기를 비롯하여 어린이들이 하는 민속놀이도 있었으며 윷놀이와 같이 남자나 녀자, 어른이나 아이 할것없이 누구나 다 할수 있는 민속놀이도 있다.

민속놀이에는 우리 인민의 감정과 취미, 민족적정서가 반영되여있다. 민속놀이를 적극 장려하고 많이 하게 하여야 우리 인민들로 하여금 민족성을 더욱 깊이 간직하게 할수 있다.

이로부터 장군님께서는 우리 인민의 민족성을 고수하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민족체육발전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그를 장려하도록 온갖 조치를 다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50(1961)년 8월말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씨름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먼저 우리 나라 씨름의 유구한 력사에 대하여 이야기하시면서 우리 인민의 전통적인 씨름은 고구려시기에 이미 널리 보급되여있었다고, 고구려무덤의 벽화들에는 웃동을 벗어제낀 씨름군들이 승부를 겨루는 재미있는 장면이 그려져있는데 이것은 당시 고구려사람들이 씨름을 즐겨하였으며 고구려에 씨름이 널리 보급되여있었다는것을 증명해주고있다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지난날 일부 사람들은 우리 나라 씨름이 마치 몽골씨름에서 유래된것처럼 말하였는데 그것은 력사적사실과 맞지 않는다고, 씨름은 고려이전시기에 벌써 우리 나라에서 생겨난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이처럼 우리 나라 씨름의 력사를 새롭게 해명해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씨름의 우수성에 대하여서도 뜻깊은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 씨름은 장수힘을 키울뿐아니라 때와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누구나 할수 있는 체육종목이라고, 우리 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씨름을 즐겨하였다고, 예로부터 어린이들은 강가나 들판에서 놀 때에는 씨름을 많이 하였고 두레군들은 쉴참이면 밭머리에서 씨름을 즐겨하였다고 하시면서 뿐만아니라 우리 인민들은 민속명절을 계기로 마을마다 여러가지 놀이와 함께 반드시 씨름을 한 경기종목으로 정해놓고 경기에서 이긴 씨름군에게는 꽃목걸이장식을 한 황소를 상으로 주는것을 풍습으로 여겨왔다고 하시였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씨름은 조선사람들이 좋아하는 전통적인 민족경기라고, 우리 인민의 자랑인 민족씨름을 널리 장려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우리 민족의 슬기와 용맹의 상징으로 되고있는 씨름에 대한 해박한 식견을 지니시고 그 발전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려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것을 더욱 장려하여 온 사회에 민족의 향기가 한껏 흘러넘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91(2002)년 1월말 전국적규모의 민족씨름경기를 특색있게 조직하도록 하시고 경기형식과 방법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으며 시상품은 송암명기소목장의 대황소로 하도록 하는 조치까지 취해주시였다.

그로부터 몇달후 평양에서는 대황소상 전국근로자들의 민족씨름경기가 성황리에 진행되여 유서깊은 모란봉기슭에서는 대황소의 금소방울소리가 랑랑하게 울려퍼졌다.

그날 저녁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신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오늘 모란봉에서 진행된 씨름경기가 어떻게 되였는가, 황소는 얼마나 큰것이였는가고 물으시였다.

900㎏짜리 대황소라는 일군들의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흐뭇한 시선으로 말그대로 대황소라고, 잘되였다고 거듭 말씀하시면서 이런 경기를 전통화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그때부터 해마다 추석을 계기로 온 나라 인민들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속에 대황소상 전국근로자들의 민족씨름경기가 이채를 띠고 성황리에 진행되고있다. 이것은 절세의 위인의 뜨거운 민족애가 이 땅에 펼쳐놓은 또 하나의 민속풍경이다.

씨름만이 아니다. 언제인가는 윷놀이를 장려할데 대한 문제와 관련하여 지금 윷놀이방법이 단위마다 서로 다른데 윷놀이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방법을 살리면서도 재미있게 놀수 있는 윷놀이방법도 알려주도록 하시고 그네뛰기와 널뛰기같은 민속놀이를 장려하도록 가르쳐주시였으며 평안도지방에서는 팽이를 세리라고 불렀다는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팽이치기에 대하여 가르쳐주기도 하시였다.

또한 그처럼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에도 최근에는 어린이들의 유희에 대한 책도 별로 나오는것이 없는것 같다고 하시면서 어린이들속에서 민속놀이를 적극 장려하여야 자라나는 새 세대들이 조선민족의 우수한 민족성을 살려나갈수 있다고 가르쳐주시였고 새 세기 첫해의 어느날에는 아이들이 봉선화꽃으로 손톱을 빨갛게 물들이면서 노는 민속적인것을 적극 장려하여야 하며 참빗과 동백기름도 많이 만들어쓰고 수세미오이도 많이 심을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민속전통을 적극 살려나가도록 온갖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우리 민족의 고유한 민속전통을 대를 이어 살려나가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신 절세의 위인의 이렇듯 깊은 관심이 있어 오늘도 전통적인 생활문화, 례절문화를 인식시키기 위한 사업이 널리 진행되고있으며 전사회적인 관심속에 윷놀이를 비롯한 민속놀이들이 성황리에 진행되고있을뿐아니라 어린이들의 쌍태머리, 색동저고리 등이 적극 장려되여 온 나라에는 민족의 고유한 향취가 함뿍 넘쳐나고있다.

11

조선료리가 제일이라고 하시며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한평생 우리의것을 제일로 여기시였을뿐아니라 그것을 빛내이기 위하여 모든것을 다하시였다.

자기의것이란 자기 인민, 자기 민족이 력사적으로 내려오면서 창조하고 발전시켜온 재부이다. 자기의것이 남의것보다 못하다고 여기면서 남의것에 대하여 환상적으로 대하면 다른 나라를 쳐다볼수 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애국을 하려면 자기 나라를 세계의 앞선 수준으로 끊임없이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자기의것을 아끼고 사랑할뿐아니라 그것을 새롭게 발전시켜 남의것을 앞서겠다는 각오, 자기의것을 세계에 더욱 빛내이고 떨쳐나가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헌신적으로 투쟁하는데 참다운 애국의 길이 있으며 바로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이다.

우리 민족의 모든것을 제일로 여기고 사랑하며 그것을 세계에 빛내여주시기 위하여 바쳐오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로고는 민족음식발전에도 뜨겁게 어려있다.

주체53(1964)년 3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저녁 옥류관에서는 어느 한 나라 대표단을 환영하는 연회를 준비하고있었는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 준비정형을 알아보기 위하여 몸소 이곳으로 나오시였다.

그때 옥류관에서는 외국손님들을 위해 여러가지 서양료리들을 준비하였었다.

준비한 료리들을 일일이 살펴보신 장군님께서는 무엇인가 생각하시다가 료리차림표를 좀 보자고 하시였다.

료리차림표를 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신중한 어조로 왜 우리 민족료리비중이 적은가고 물으시였다.

한 일군이 상대측이 다른 나라 사람들이고 또 유럽사람들이므로 그들이 좋아하는 료리를 많이 내놓으려 했다고 말씀드렸다.

장군님께서는 그 일군에게 우리 집에 온 손님에게 우리 집 음식을 대접하는것은 우리 인민의 미풍량속의 하나라고 하시면서 오늘 연회에서는 조선료리를 많이 내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조선료리가 제일이라고, 조선료리는 력사가 매우 오래다고, 조선료리는 먹음직하고 깨끗하다고, 우리 나라에 온 다른 나라 사람들도 조선료리를 아주 좋아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준비탁에 있는 신선로를 가리키시며 신선로는 우리 나라의 독특한 료리라고, 다른 나라 사람들속에서도 인기가 대단하다고 하시고나서 오늘 연회에는 신선로를 내놓아야 한다고 이르시였다.

이날 연회에 참가하였던 외국손님들은 아름다운 조선치마저고리를 차려입은 접대원들이 들고 온 황금빛 번쩍이는 신선로를 황홀하여 쳐다보았다. 그들은 신선로에서 파아란 불길이 피여오르는것을 무척 신기하게 여겨보다가 음식의 맛을 보고는 저마다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말그대로 《신선의 맛》이라며 엄지손가락을 흔들기도 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민족고유의 모든것을 제일로 여기고 사랑하시였기에 일군들과 식사를 같이하는 어느 기회에도 조선음식이 제일이라는 강의를 해주기도 하시였다.

주체74(1985)년 3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저녁식사에 몇몇 일군들을 불러주시였다.

조선음식에 대한 화제를 올리신 장군님께서는 조선음식은 기름기가 많지 않아서 느끼하지도 않고 또 슴슴하지도 않다, 조선음식은 생신하고 감칠맛이 있으며 먹음직하고 향기로와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게 한다, 조선음식은 색갈이 아름답고 모양도 곱다, 조선음식은 그것을 만드는데서 높은 과학성과 문화성이 보장될뿐아니라 그것을 담는데서도 높은 문화성과 위생성이 보장된다, 조선음식은 종류도 많고 다양하다, 때문에 우리 인민은 결코 자기 음식에서 지루한것을 모르고 불만을 모르며 그런 의미에서도 행복한 인민이라고 우리 나라 음식에 대하여 오래도록 말씀하시고나서 참으로 우리 음식이 제일이라고 끝을 맺으시였다.

그날 일군들에게 주신 우리 민족의 고유한 음식에 대한 그이의 가르치심에는 우리 인민의 식생활풍습, 음식문화를 두고도 우리의것이 제일이라는 고귀한 넋을 심어주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의도가 깃들어있었다.

우리의것을 제일로 내세우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민족음식을 발전시키기 위한 사업과 지방별 토배기료리의 특성을 잘 살려나갈데 대하여서도 깊은 주의를 돌리시였다.

이 땅에 의연히 준엄한 시련의 날과 달이 흐르던 주체88(1999)년 11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사회급양부문에서 인민들에게 민족음식을 잘 만들어 봉사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다가 문득 어북쟁반국수를 화제에 올리시였다.

어북쟁반국수라는것은 소 한마리에서 몇㎏밖에 나오지 않는 어북살로 꾸미를 친 쟁반국수였는데 옛날 궁중에서 왕족들이나 먹던 음식이였다.

나라의 국방력강화에 모든것을 복종시켜야 할 때에 소 한마리에서 얼마 나오지 않는 어북살을 가지고 국수를 만들어 대중봉사를 한다는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였다.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어북대신 닭고기를 가지고 쟁반국수를 만드는것이 좋겠다고, 옥류관에서 닭고기를 가지고 어북쟁반국수처럼 쟁반국수를 만들어 인민들에게 봉사해주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그 이름을 《고기쟁반국수》라고 부르도록 해주시였다.

그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고기쟁반국수를 만드는데 필요한 고기와 조미료를 원만히 보장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주시였을뿐아니라 인민들에게 궁중음식인 어북쟁반국수에 못지 않는 고기쟁반국수를 먹이려고 결심한것만큼 그릇도 보통그릇이 아니라 놋그릇을 쓰게 하자고 하시면서 놋집기류를 일식으로 다 갖추어주시였다.

이렇듯 우리의것을 귀중히 여기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은정속에 고기쟁반국수라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민족음식이 태여나게 되였다.

예로부터 우리 나라에는 어느 지방, 어느곳에 가도 그 지방 인민들이 자랑으로 여기는 토배기음식들이 있다. 이러한 지방음식들은 우리 인민이 창조한 우수한 민족음식의 한 부분으로서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해당 지방의 자연기후조건과 경제적조건, 그 지방 사람들의 식생활풍습 등을 반영하고있는것으로 하여 자기의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있다.

이 특성을 잘 살려야 우리 민족음식의 유구성과 우수성을 고수하고 더욱 빛내여나갈수 있다.

주체88(1999)년 3월 어느날이였다.

그때 함경남도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신흥관국수맛을 보아주겠다고 하시면서 도토리농마국수라는 말은 처음 들어보는데 아마 대용식료품일것이라고 하시였다.

사실이였다. 그것은 고난의 행군시기에 태여난 대용식료품의 하나였다.

신흥관에서는 주원자재인 감자농마가루가 부족되자 자체로 도토리를 비롯한 산열매를 가지고 전분을 내는 방법과 국수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던 끝에 도토리농마국수를 만들었다. 당시 국수를 먹어본 사람들은 그 국수가 감자농마국수 못지 않다고 하였다.

한 일군으로부터 그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그래도 도토리는 어디까지나 대용식료품이라고, 인민들이 즐겨 찾아오는 신흥관에 이런 음식을 내놓아서는 안된다고 하시였다.

함경남도사람들은 예로부터 감자농마국수를 특별히 일러주고 귀한 손님이 왔을 때도 농마국수를 대접하는것을 하나의 관례로 여겨왔다.

신흥관이 이름나게 된것도 감자농마국수의 독특한 맛때문이였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앞으로 신흥관의 감자농마국수의 질을 높여 계속 소문을 내라고 하시며 신흥관국수맛이 별맛이라고 치하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국수를 만든 봉사일군들에게 감사를 전해달라고 하시면서 몸소 국수값까지 치러주시였다.

장군님께서 치러주신 국수값, 거기에는 지방의 토배기음식을 더욱 발전시켜나가기를 바라시는 그이의 말없는 당부가 어려있었다.

그때로부터 몇해가 지난 주체93(2004)년 2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도별로 자기 지방 토배기료리의 특성을 잘 살려나갈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그전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안도료리에서는 건뎅이나 새우를 삭혀서 만든 젓갈이 유명하고 함경도료리에서는 단고기장이나 명태매운탕이 특색이 있다고 하시면서 도별로 자기 지방 토배기료리를 장려하는것이 좋다고 여러차례 말씀하시였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지금은 일군들자체가 민족료리를 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에 관심을 돌리지 않고있다고, 어떤 일군은 지방의 토배기료리가 어떤것인가 알지도 못하고있다고 하시면서 지방의 고유한 토배기료리가 점점 없어지고 혼탕되여가고있는데 대하여 지적하시였다.

사람들이 자기가 나서자란 고장의 특색있는 음식이 어떤것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선조들이 창조한 우수한 지방음식유산을 옳게 계승발전시켜나갈수 없는것은 물론 나아가서 민족성을 잃게 되는 엄중한 후과가 초래될수 있었다.

하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지방토배기료리의 특성을 잘 살려나가기 위한 사업에 그토록 깊은 관심을 돌리시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지방토배기료리의 특성을 잘 살려나가자면 해당 지방에서 오래동안 살아온 늙은이들을 적극 계발시킬데 대한 문제와 각 도 특산물식당들의 운영을 잘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그 대책적문제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우수성이 깃들어있는 민족음식을 장려하도록 하시는 한편 음식문화에서 민족성을 고수해나가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주체93(2004)년 2월 어느날 우리 인민의 식생활을 두고 언제나 깊이 마음쓰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식생활을 우리 식으로 개선할데 대하여 가르치시면서 빵과 밥 그리고 엿문제도 화제에 올리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밀가루로 만든 빵은 건강에도 좋다고, 빵은 유럽사람들이 만드는 흰 빵이나 검은 빵보다 우리 사람들이 만드는 누런 빵이 더 맛있다고 하시면서 빵은 우리 식으로 밀가루를 반죽하여 쉬워가지고 만들어야 구수하고 맛이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밥은 현미밥이 더 맛있다고, 우리 사람들은 10분도요 뭐요 하면서 흰쌀밥만 먹으려 하는데 사실 흰쌀밥은 현미밥보다 영양가가 낮다고, 현미밥에는 여러가지 비타민도 있으므로 그것을 먹으면 건강에 아주 좋다고 일깨워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이어 인민들에게 엿을 많이 만들어 공급할데 대해서도 이런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예로부터 조선사람들은 사탕보다 엿을 더 좋아하였다. 엿은 감자엿이 좋다. 내가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답사로정을 개척하기 위하여 평양제1중학교 학생들로 혁명전적지답사단을 무어가지고 갔을 때 리명수에 들린 일이 있는데 그때 집주인이 자기 집에서 만든 감자엿을 내놓으며 맛보라고 하여 먹어보니 별맛이였다. 그래서 감자엿을 한판대기 가져다 수령님께 드렸댔는데 수령님께서는 감자엿이 좋다고 하시였다. 엿은 한가지로 만들지 말고 물엿도 만들고 강엿도 만들고 가락엿도 만들어야 한다. …

다른 나라것보다 우리의 민족음식을 적극 내세우고 많이 만들데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은 일군들을 크게 각성시켰다.

한때 일부 식당들에서는 초밥을 만들어 봉사한적이 있었다. 전에 없던 일이였으나 그에 대하여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 문제를 스쳐버리지 않으시였다.

주체95(2006)년 6월 어느날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식당들에서 초밥을 봉사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심중한 말씀을 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요즘 평양시안의 식당들에서 일본음식인 초밥을 많이 만들어 봉사한다고 하는데 잘못되였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식생활에서도 주체성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일군들은 자책감으로 머리를 수그렸다.

그들도 식당들에서 초밥을 봉사하고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식당들에서 초밥을 봉사하게 된것은 그것이 특별히 맛있거나 인민들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였다.

처음 보는 음식이라는 호기심과 흥미, 관심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봉사망들에까지 퍼져 이제는 초밥이 특별한 음식처럼 되였던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초밥이 일본에서 장려되고있는 음식이라는것을 몰랐다. 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우리 민족음식의 하나로 생각하고있었다.

자칫하면 음식의 민족성까지 혼돈할수 있는 심각한 문제였다.

장군님께서는 자책감에 잠겨있는 일군들을 바라보시며 민족음식가운데서는 온반이 좋다고, 온반은 평안도지방에서 만드는것이 다르고 해주지방에서 만드는것이 다르다고 하시면서 지방별로 온반을 어떻게 만드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깨우쳐주시였다.

그후 봉사부문 일군들은 지방들에 나가 온반만드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아가지고 민족의 향취가 짙은 온반을 지방의 특색을 살려 만들어서 봉사하기 시작하였다.

조상전래로 즐겨 먹던 온반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그것을 찾았다.

정녕 혁명과 건설을 령도하여오시는 전기간 주체성과 민족성을 견지하여오시여 민족적인것이 온 나라에 차넘치도록 하여주신 절세의 애국자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비범한 령도와 민족사적공적은 력사와 더불어 불멸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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