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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향녀가 운영하는 지성병원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있다. 넓지 않은 정원안에는 갖가지 꽃나무들이 푸른 잎새를 펼치고있었다. 어른 손바닥만 한 잎을 흔드는 감나무들과 부채살처럼 아지를 쭉쭉 내뻗친 느티나무들이 사람들의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그중에서도 정원중심에 서있는 세그루의 목란이 주의를 끈다. 여름이면 목란꽃향기가 정원을 찾는 환자들의 후각을 기분좋게 자극하군 한다.
병원두리에는 참대숲이 있었다. 따스한 해빛이 잎사귀짬을 뚫고 땅우에 쪼각쪼각 빛을 뿌려주고있었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정원의 나무들과 참대숲이 솨-아- 하는 소리가 울려 산책나온 환자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마치 인공수림인듯 한 이 한복판에 우리 글로 《지성병원》이라고 쓴 간판을 이마에 붙인 3층으로 된 건물이 있었다.
이 병원은 부향녀에게 있어서 인생의 종합체였고 삶의 지탱점이였다. 일본땅에서 사는 조선동포들이 찾아와 병을 고치고 웃으며 퇴원하는 모습에 그의 가장 큰 행복이 있었다. 의사라는 직분이 아니라 같은 동포들끼리 만나 흉허물없는 이야기판을 펼치는 생활은 그에게 있어서 하나의 젖줄기나 같았다. 그는 병원의 리득금을 제 주머니에 챙기지 않았다. 모든 금액은 동포후대들이 자라는 학교에 기금했다. 누구는 돈을 모으는 재미에 산다고 하지만 그는 동포들을 치료해주고 그 자식들이 구김살없이 총련의 대를 이어가는것을 보는 재미에 살았다.
그야말로 그에게 있어서 이곳은 단순한 병원이 아니였다. 제 민족의 숨결과 맥박을 느끼고 그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생활의 화원이였다. 또 총련과 혈맥을 이어주는 혈관이기도 했다.
병원에 들어서면 현관 맞은켠의 벽화가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당긴다. 대형벽화였는데 조선의 명산 금강산을 형상한것이다. 이곳을 찾은 동포들은 이 벽화를 한동안 바라보군 한다. 바다건너 자기 조국에 대한 그리움에 가슴을 뭉클 적시군 하였다. 그들뿐이 아니였다. 일본인들도 넋을 잃고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어디에 있는 산인가고 묻군 한다.
《우리 조국의 명산 금강산이랍니다.》
《아하, 그렇습니까! 정말 한번 찾아가고싶은 곳입니다.》
1층에는 수술장과 여러개의 입원실이 있다. 그리고 2층에는 치료실들과 의사들의 방이 있다. 특히 이목을 끄는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치료실은 물론 입원실의 벽면에 붙은 자그마한 구호판이다.
《우리 말을 쓰자!》
2층에 있는 부향녀의 방은 명색이 원장방이지 여느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소박하고 검소하게 꾸려져있었다. 그닥 넓지 않은 방 한복판에는 커다란 량수책상과 회전의자가 놓여있고 벽쪽으로 돌아가며 의학서적들이 가득찬 서가, 유리창이 달린 약장, 긴 안락의자, 원탁, 진찰용침상, 소독수대야받침대 같은것이 적당히 차려있었다. 원탁우에는 금붕어들이 꼬리젓는 어항이 놓여있고 그옆에는 방금 꽂아놓은듯 한 생신한 생화를 품은 꽃병이 놓여있었다.
다만 다른것이 있다면 고대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의 초상이 벽면에 걸려있고 아우크스트 로단의 조각상 《사색하는 사나이》가 책상우에 놓여있는것뿐이다.
해부, 림상, 부인질병을 종합한 의학책을 저술한 고대그리스의 의학자인 히포크라테스는 그가 의학자로서 존경하는 사람이였다. 조각상 《사색하는 사나이》는 고성길이 안해에게 결혼선물로 준것이다.
부향녀는 조각상을 볼 때마다 남편의 숨결을 느끼며 자기의 본분을 가다듬군 하였다.
사무실은 그가 력사자료들때문에 자리를 뜰 때면 김경아가 거두군 했다. 아마 오늘 아침도 한발 먼저 출근한 그가 청소를 했을것이다.
늙은 시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운영해가면서 이모저모로 바쁜 그였다. 모든 경영은 그의 손에 의해서 진행되였다. 게다가 제기되는 수술은 전부 맡아하다싶이 했다. 의사가 적은데다가 부향녀가 자리를 뜨는 날이 많으니 자연히 부담은 그에게로 쏠렸다. 하지만 그는 이렇다저렇다 아무런 내색없이 수걱수걱 병원을 경영해나갔다.
그럴수록 며느리에게 미안한 감정을 금할수 없었다. 혼자서 집안일은 물론 병원일까지 도맡아 매일과 같이 팽이돌듯 하는 김경아였다.
《어머니, 그동안 병원의 경영정형을 적은것들입니다.》
김경아가 두툼한 문건철을 책상우에 놓으며 하는 말이였다.
부향녀는 그것을 보지 않고 도로 밀어놓았다.
《난 보지 않겠다. 네가 하는 일인데 어련하겠냐. 참, 오늘 수술이 있다고 했지?》
《예, 3호실 2호침대에 있는 급성담낭염환자예요.》
《보존치료는 했느냐?》
《네.》
급성담낭염의 치료에는 보존치료와 수술치료가 있다. 보존치료는 환자를 절식시키고 진통, 진경대책을 취하는것이다. 여기에 십이지장내용물을 배제하고 수액, 항생제치료를 한다. 이와 함께 초음파유도하에 경피경간담도배액, 경피경간담낭배액을 하며 담도내압을 낮춘다. 감염대책을 세우고 상태가 나아진 다음 근치수술을 하게 되였다.
《환자에게 수술을 한다고 이야기해주었겠지?》
《예, 방금전에도 들렸다가 오는 길입니다. 환자도 그걸 원하고있어요.》
모든 일을 꼼꼼히 해나가는 며느리의 행동에 한시름이 놓였다. 흔히 환자들은 수술에 대해 두려워하고있다. 자기의 장기에서 무엇이 하나 떨어져나간다고 하면 그것을 마치 죽음의 선언처럼 여기기 십상이다. 때문에 의사들은 수술장에 들어가기 전에 그들의 기분상태에 많은 신경을 쓰는것이다.
《어머니, 수술은 오전 11시에 제가 하겠으니 마음놓으십시오.》
부향녀는 김경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피곤이 잔뜩 실린 모습이다. 또 그리 밝지 못한 얼굴색이 마음에 걸렸다. 분명 남편에 대한 문제로 고민이 많은 모양이다. 지금은 그런 내색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그의 눈에는 그것이 헨둥하니 실려있었다.
《됐다. 수술은 내가 하겠으니 넌 오늘 좀 푹 쉬거라!》
김경아는 놀라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일없습니다.》
부향녀는 그에게서 또 다른 말이 나올것만 같아 수술칼로 잘라버리듯 말했다.
《내가 한다고 하지 않느냐.》
김경아는 더 말을 못했다.
이때 한 30대쯤 되여보이는 사내가 자기의 배를 손으로 누른채 들어섰다.
《곤니찌와? 쬬또 센세이가 이랏샤이마시따네.(안녕하십니까? 마침 선생님이 계시는군요.)》
사나이는 구원자라도 만난듯 찌프렸던 얼굴에 애써 희색을 띠웠다.
김경아가 얼른 그를 부축하여 의자에 앉혔다.
《무슨 일이세요?》
《하라오 고와시따요우데스가.(배가 아파서 그럽니다.)》
사나이는 금시 숨이 넘어갈듯 아부재기를 쳤다.
부향녀의 얼굴에는 서리발같은 기운이 돌았다.
처음에는 흔히 찾아오는 일본사람인줄 알았다. 그런데 한참 마주보니 어디선가 꼭 본듯 한 얼굴이였다. 몇해전 아들과 회사합작문제를 의논하려고 집에 왔던 민단소속 한 동포기업가의 아들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한테서는 조선사람이라는 흔적은 전혀 찾아볼수가 없었다.
《내가 알기엔 당신은 일본사람이 아니라 조선사람인것으로 알고있는데요?》
왕청같은 질문에 환자는 찌프린 표정을 펴며 간신히 말했다.
《예, 선생님. 나도 조선사람입니다.》
부향녀의 인상은 역겨운 물건을 본듯 이그러졌다. 환자를 대하는 표정이 언제나 밝아야 한다는것은 초보적인것이지만 그의 얼굴색은 순간적으로 질려있었다. 이어 차겁고 적의어린 시선으로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사나이는 그의 이런 눈찌를 감득하지 못한채 묻지도 않은 말을 해가며 자기의 아픔을 계속 호소했다. 이틀전부터 갑자기 위부위가 불쾌하고 입맛이 없어지더라는것이다. 그러더니 오른쪽 아래배에 아픔이 시작되였고 계속 메스꺼움과 게우기가 생긴다고 했다.
말을 마친 그는 부향녀와 김경아의 얼굴을 위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선생님, 혹시 위암이 아닐가요?》
《그럴수도 있겠지요.》
부향녀의 말투는 역시 매정했다.
사나이는 갑자기 앓던 사람같지 않게 그앞에 무릎을 꿇었다.
《선생님, 제발 사정하는데 제 병을 좀 치료해주십시오.》
그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계속 하소연했다.
《저는 3대독자 외아들이랍니다. 제가 죽으면 우리 집 대는 완전히 끝장나고맙니다.》
부향녀는 그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창문쪽으로 돌아섰다.
《임자의 병상태가 위중하니 나도 별수 없구만.》
너그러움이란 찾아볼수 없는 실무적인 어투에 사나이의 낯색은 금시 공포로 이그러졌다.
《원장선생님! 선생님이야 그래도 정형외과와 복부외과에서는 가장 능한것으로 소문나지 않았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마치 맹금의 날카로운 발톱에 가슴을 긁히우는 사람처럼 가늘게 떨렸다. 몸은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당신은 우선 육체의 아픔보다 스스로 자신을 저버린 고통을 더 느껴야 해요.》
사나이의 두눈은 금시 화등잔만큼이나 커졌다.
《아니, 그건? …》
《젊은이는 지금 보잘것없는 아픔을 놓고서도 불치의 병이 아닌가 걱정하고있네. 그래, 가문의 대가 끊길 근심은 하면서도 왜 민족이 사멸되여가는것은 가슴아파하지 않나?》
《? …》
젊은이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며 부향녀와 김경아를 번갈아 보았다.
《아무리 일본땅에서 산다고 해도 조선사람의 넋이야 굽히지 말고 살아야지. 예로부터 령토를 빼앗긴 민족은 그 땅을 되찾을수는 있지만 언어를 빼앗긴 민족은 스스로 소멸된다고 했어.》
그제서야 사내는 머리를 푹 떨구었다. 자기가 무엇때문에 지금까지 질시의 대상이 되여왔는지 짐작되였던 모양이다.
부향녀는 더 마주서고싶지 않은듯 방에서 나왔다.
등뒤에서는 《서… 선생님!?》 하는 기죽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는 눈길조차 돌리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팠다.
무엇때문에 저 젊은이는 자기가 조선사람이라는것을 인정하면서도 일본말을 하면서 돌아치는가. 그래 저 사람은 언어가 정복당하면 민족이 멸망하고 사멸된다는것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발붙인 땅이 제 령토가 아니라고 해서 자기의 언어와 력사까지 잊고서 배부른 짐승으로 산다면 그게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어째서 저 젊은이와 같은 일부 사람들은 민족의 넋을 제 생명의 한 부분보다 더 하찮게 여기는걸가?
《어머니!》
어느새 김경아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걱정말아. 호소를 들어보니 카타르성충수염이더구나. 그러니 이제 하루이틀 지나면 인차 정상으로 될게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며느리에게 당부했다.
《그 엄살쟁이에게 단단히 일러라. 대가 끊어질 념려는 없으니 부디 자기가 조선사람이라는것이나 잊지 말구 살라구!》
김경아는 방금전 사나이가 하던 행동들이 눈에 떠올라서인지 손으로 입을 가리우며 웃음을 지었다.
멀어져가는 며느리의 뒤모습을 바라보는 부향녀의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아픔!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어원적으로 분석하면 천벌이라는 의미라고도 한다. 그래서 고대에서는 아픔을 숙명적으로 감수하군 했다. 그러나 의학의 발생과 함께 이 개념은 사라지고말았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육체의 아픔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쓴다. 그것은 바로 생명력을 가진 존재이기때문이다. 저 젊은이도 자기의 배아픔을 두고 벌써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있다. 자기의 두뇌가 썩은것은 보지 못하면서…
일찌기 로마의 신경위장병전문가는 사람의 몸에는 두개의 뇌수가 있다고 했다. 그중 하나는 두개골속에 있고 다른 하나는 배속에 있다는것이다. 그는 형태적으로 보면 위는 언제나 뇌수처럼 기쁨과 슬픔, 스트레스 등의 영향을 똑같이 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아마 위는 《마음의 거울》, 《감정의 공명관》이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부향녀의 오랜 의학적경험으로 보아도 위는 주인의 감정정서에 대단히 민감하다. 그렇듯 위는 사람의 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때문에 환자들은 위아픔에 대해 홀시하지 않고있다. 그렇지만 육체의 아픔보다도 정신적아픔 즉 자기 생의 가장 위험한 불치의 병을 보지 못한다. 육체의 병은 의학의 힘에 의해 고칠수 있지만 두뇌속에 앉은 병만은 제힘으로 치료해야만 한다. 그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어도 매우 힘든것이다. 한번 잘못 들어배긴 정신은 쉽게 뿌리를 드러내지 않는 암적존재나 다름없었다.
그는 급성담낭염환자가 있는 3호실에 들어섰다. 이 호실에는 모두 조선동포들이 입원해있었다.
환자는 40대 중반이였는데 호실사람들에 비해 몸집이 좋았다.
침대에서 엉거주춤 일어서는 그를 제지하며 부향녀는 그의 옆에 앉았다.
《원장선생님, 이거 페를 끼쳐서 미안합니다.》
부향녀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괜찮아요. 나야 의사가 아니나요. 그래, 기분은 어때요?》
《솔직히 말하면 좀 두렵습니다.》
몸집과 생김새에 비해 그는 솔직하고 순박해보였다.
부향녀는 환자를 시진하며 계속 말을 이었다.
《수술장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다 그런 생각을 하기마련이예요. 그러나 제 몸에서 병집을 들어낸다고 생각하면 한결 나을거예요.》
《선생님이 이렇듯 친절하게 대해주시니 전 벌써 병이 다 나은것 같습니다.》
부향녀의 눈길은 그의 얼굴색과 행동세부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관찰했다. 오른쪽으로 눕기를 두려워하는것으로 보아 그쪽 계륵부에 선통이 심한것 같았다. 입술이 말라든것은 분명 고열증상이다. 눈동자엔 경한 황달이 끼였다. 이러한 3증상이 심한것으로 보아 환자는 이따금 의식장애, 쇼크까지 겹치는 5증상을 앓을것이다.
분명 담즙이 담도안에 고여 감염되면서 급성화농성페쇄성담관염을 일으켰을것이다. 환자를 위해서라도 빨리 수술을 해야 했다.
《이제 인차 수술을 진행하니 마음을 편안히 가지세요. 의사의 의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환자의 정신이 더 중요한거예요. 참, 무슨 일을 하세요?》
《상공련에서 일을 보는데 상점을 경영하고있습니다.》
《기업이 참 힘들지요?》
부향녀는 문뜩 아들생각이 나서 물었다.
《남의 땅에서야 어디 쉬운게 하나나 있습니까. 그렇지만 이겨내야 하는게 우리가 아닙니까.》
부향녀는 말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아들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이다. 시련과 난관속에서도 주저를 모르는 그였다.
《원장선생님! 전, 오래 살고싶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을 앞세우고 그리운 조국에 돌아가 그 땅에 묻히고싶습니다.》
부향녀는 저도 모르게 코마루가 찡했다.
《걱정마세요. 모든 일이 다 잘될거예요.》
그가 호실문을 나서는데 며느리가 수술간호장을 데리고 나타났다.
《어머니, 수술준비를 하겠어요.》
《그만둬라.》
며느리는 물론 간호장도 어리둥절한 낯색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오늘 수술은 내가 하겠다고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김경아는 무엇때문에 시어머니가 자기의 주장을 계속 고집하는지 그 속내가 짐작되였다. 자기 얼굴에 남편에 대한 근심이 비낀것이 분명했다. 수술장에 들어서는 의사의 머리는 언제나 잡념이 없이 투명해야 한다고 강조하던 시어머니였다. 오직 환자의 호흡과 수술칼에 정신이 집중되여야 한다는것이 부향녀의 론리였다. 이것은 수술의사가 지켜야 할 초보적인 준칙이기도 했다. 하지만 능한 의사들속에서는 이 요구를 왕왕 어기는 현상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자기의 정신적집중보다도 손끝에서 맴도는 감각과 숙련에 더 큰 기대를 거는것이다. 그러다가 혹간 실수하는 일들도 생긴다.
김경아는 더이상 고집할수 없었다.
《알겠어요, 어머니. 그러나 준비만은 제가 하게 해주세요.》
자기 방으로 들어선 부향녀는 위생복을 입으며 이제 있게 될 수술의 전 공정을 곰곰히 되새겨보았다.
평생 손에 수술칼을 들고 숱한 외과수술을 진행한 그였다. 온몸의 모든 세포들과 혈관이 그대로 하나의 메스가 되여버렸다. 일단 수술에 진입하면 개복으로부터 봉합에 이르기까지의 순차들이 고르로운 호흡처럼 흘렀다. 그러나 늘 수술전에는 모든 절차를 하나하나 곱씹어보는데 습관이 된 그였다.
오늘은 여느때없이 더 깐깐히 더듬어보고싶었다. 방금전 환자에게서 받은 인상이 자신을 이렇게 떠밀었는지도 모른다. 자기 생의 연장을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련결시키는 동포의 마음이 그의 습관을 더 촉진시켜준것이다. 말 한마디에 자기의 넋이 이렇듯 빨려들어가는것이 이상스럽기도 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가 병을 털고 일어서게 해야 한다!
30분이 훨씬 지나서 간호원처녀가 문을 두드렸다.
《원장선생님, 수술준비가 다되였습니다.》
부향녀는 의자에서 무겁게 몸을 일으켰다.
수술장에는 이미 마취의사와 수술장 간호원, 갓 입직한 보조의사가 대기하고있었다.
간호원의 도움으로 수술복과 장갑, 마스크를 착용한 그는 수술대에 누운 환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호실에서 아픔을 참으며 웃던 그 인상깊은 표정은 사라지고 마치 죽은 사람처럼 누워있었다.
그는 우선 마취상태를 검사했다. 모든 근육들이 충분히 이완되였다.
《체온은?》
《38도입니다.》
《혈압?》
《정상입니다.》
만족한 표정으로 그는 수술도구들을 둘러보았다. 수술칼과 겸자, 결석예시와 결석존대 등 모든 기구들이 은빛을 번뜩이며 대기하고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쉰 그는 환자에게 다가갔다.
《메스!》
보조의사가 그의 손에 수술칼을 쥐여주었다.
부향녀는 천천히 첫번째 절개를 하였다. 피부는 마치도 승강기의 문이 열리듯 스르르 펼쳐졌다.
《겸자!》
그는 겸자를 받아 배가죽을 꼭 집어놓고 불끈 솟아오르는 허연 비게층을 들여다보았다. 그 다음 근육을 찾아들어가기 위해 비게층을 제꼈다. 손에 쥐여진 메스는 정확했다. 명확한 절개는 감동을 일으켰다.
이어 부향녀는 익숙된 솜씨로 개복된 배안에서 간과 위, 십이지장 및 횡행결장, 취장에 이르기까지 먼저 검사했다. 다른 증상이 없었다.
안도의 숨을 내쉰 다음 그는 담낭 및 십이지장간막을 드러내고 담낭벽의 성상, 팽만도, 결석의 유무를 확인했다. 확실히 담낭이 거의나 썩은 상태였다. 이것을 절개해야 한다는것은 명백했다.
담도담낭은 간장에서 분비되는 담즙을 장으로 흘러보내는 관모양의 길이다. 담관의 일부가 넓어져있는 부분이 바로 담낭이다. 이것은 간장홈에 가지모양으로 위치하고있다. 길이는 6~8㎝정도이며 30~50mL의 내용을 가질수 있으나 담낭벽은 2~3배로 늘어날수 있다.
그런데 이젠 유명무실의 존재가 되고말았다. 사명이 있다면 이 담도담낭질병으로 인해 취장염을 비롯한 취장의 변화를 일으키는 역할이다. 또한 담즙흐름을 막아 페쇄성황달을 일으키기 쉽다. 환자에게 심한 고통을 주고 나아가서는 생명에 위험을 주는것뿐이다.
부향녀는 환자의 오른쪽륵골궁에 복벽구를 가볍게 걸어 바깥웃쪽으로 당기고 담낭간문부령역이 드러나게 했다. 그리고 수술칼로 삼각부를 로출시키고 담낭관과 담낭동맥, 총간관 및 총담관을 명확히 확인했다. 그는 간동맥, 담낭동맥이 판명되자 인차 2중결찰을 했다. 복벽은 3층으로 봉합하여 페쇄했다.
간호원이 그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다.
모든 신경이 손끝에 쏠렸다. 아무리 능란한 숙련과 동작도 실지 수술앞에서는 많이 자제시켜야 했다. 하나하나의 손놀림이 섬세하고 예민해야 하였던것이다.
부향녀는 눈길을 복벽안에 둔채 먼저 십이지장인대를 절개했다. 다음 공정으로 총담관과 담낭관을 유리하고 담낭관의 근부에 바느실로 결찰하여 절리했다. 다음 웃쪽에 있는 담낭동맥과 정맥에도 같은 방법을 취했다.
환자는 시체가 해부당하듯 아무 감각도 없었다. 수술장에는 항상 그러하듯 깊은 정숙만이 흘렀다. 이따금 마스크로 막힌 부향녀의 입에서 수술도구들을 요구하는 소리만이 울릴뿐이다.
그는 담낭을 들면서 박리하여 간과 접한 부착부에서 장막을 조금 남겨놓고 절리하여 벗겨내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러면서도 침착하게 썩은 오물을 떼내는 그의 마음은 저으기 긴장해졌다. 건전한 육체를 좀먹는 병집의 근원이 떨어져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이런것들에 의해 사람의 생명은 짧아지고 진통속에 모대기게 된다. 제때에 박멸하지 못한다면 온 장을 다 제 모양으로 만들고만다. 이 일본사회만 놓고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전반을 흔드는 몇몇의 관료들이 썩게 되면 자연히 백성들은 물론 온 나라가 그대로 오물장으로 되고마는것이다. 머리에 쏟은 물이 발끝으로 흐르는것과 같은 리치이다.
부향녀는 담낭을 간에서 벗겨낸 다음 남아있는 장막을 봉합페쇄하면서 십이지장인대절개창까지 봉합하여 완전히 장막을 페쇄했다. 담낭절개술이 끝난것이다.
그는 다시 허리를 구부리고 일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지혈겸자를 벗겼다. 옆에서는 보조의사가 수술도구들을 기계적으로 세고있었다.
부향녀는 흡수성실인 비크릴로 봉합하기 시작했다. 세밀히, 순차대로, 정확히…
온 정신을 집중하니 아무런 잡념도 없었다. 막은 덮어졌다. 피부는 맨 마지막 바깥것까지 봉합되였다.
모든것이 완전무결하다는것을 확인하고서야 그는 장갑을 벗고 얼굴에서 마스크를 제꼈다. 수술은 생각했던것보다 더 잘된것 같았다.
환자는 밀차에 실려 소리없이 수술실밖으로 미끄러져나갔다.
《이제부터 환자의 상태를 집중적으로 감시하세요. 만일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면 나에게 직접 알려주세요.》
부향녀는 누구에게라 없이 이르고나서 보조의사가 가져다 놓은 의자에 앉았다. 장시간의 수술로 온몸이 나른했고 육신이 쑤셨다. 젊은 시절과는 달랐다. 그러나 기뻤다. 하나의 생명을 또 구원했다는 기쁨, 환자가 자기의 소원을 이루게 해주었다는 긍지가 눈굽을 흐리게 했다.
한 간호원이 그에게 다가와 보자기로 싼 네모반듯한 물건을 내놓았다.
《이건 뭐예요?》
《원장선생님이 수술장에 들어갔을 때 한 남자손님이 선생님께 드리라고 한것입니다.》
《남자손님이? …》
부향녀는 의혹을 풀지 못한채 물건을 펼쳐들었다.
순간적으로 그의 손은 굳어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간호원에게 다우쳐물었다.
《그 사람이 언제 갔나?》
《예, 한 20분정도 됐습니다.》
《그래 다른 말은 없었나? 례하면 이 물건을 준 한 녀자에 대한 이야기같은것 말이예요.》
간호원은 어리둥절해서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런 말은 없었습니다. 그저 이걸 원장선생님에게 주면 다 알거라고 하면서 인차 돌아섰습니다.》
부향녀는 락심한 기색으로 물건을 내려다보았다.
진미… 네가 끝내 나타났구나. 내가 너를 얼마나 기다렸다구. …
지금 그의 마음은 수십년동안을 잃었던 딸자식의 소식을 들은 어머니의 심정이였다.
지금껏 이 일본땅에 있으면서도 왜 내곁에 찾아오지 않는단 말이냐.
… 얼마후 부향녀는 도꾜도 총련지부에 있는 김성진의 방에 들어섰다.
얼굴에 땀주머니가 된 그를 보는 김성진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니,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그는 부향녀에게 의자와 물을 권하며 물었다. 저으기 흥분된 심정을 감추지 못하는 그의 행동이 의문스러웠다.
부향녀는 물고뿌를 받아 책상우에 놓았다.
《드디여 그애를 찾았어요.》
《아니, 누구말입니까?》
부향녀는 손에 들고 온 수묵화를 책상우에 올려놓았다.
《자, 보세요. 진미가 나타났단 말이예요.》
김성진은 수묵화를 내려다보면서도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진미라니요? …》
《아유, 답답도 해라. 이 그림을 보고 그렇게도 모르겠나요? 리민수의 딸말이예요.》
그제서야 김성진이도 희색이 만면해서 그에게 바투 다가왔다.
《아니,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그의 눈길은 벌써 출입문쪽으로 향해져있었다.
《에이구, 성급하기란… 그애는 오지 않았지만 이 그림이 오지 않았나요. 이건 지금 진미가 우리곁에 있다는것을 의미하지 않
나요.》
김성진은 대답대신 묵묵히 수묵화를 들여다보았다. 파도사나운 날바다우에 서있는 섬을 형상한 그림이였다. 비록 오랜 세월속에 색들은 이미 퇴색되였지만 깊은 사연이 담긴 수묵화였다. 한폭의 그림이 담고있는 의미와 거기에 새겨진 아픔과 슬픔의 력사를 되새겨보는 그의 생각은 깊어만졌다.
물을 마시던 부향녀가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런데 왜 심각해서 그럽니까?》
김성진은 상념에서 깨여나며 머리를 들었다.
《너무 뜻밖이여서 그럽니다. 사둔님이 그애를 찾느라고 얼마나 많은 걸음을 했습니까. 그런데 그가 제발로 나타났으니…》
부향녀의 얼굴에서는 여전히 기쁨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도 깜짝 놀랐어요. 내 당장 진미, 그애를 찾겠어요.》
김성진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창가로 다가갔다. 그의 심정은 지금 부향녀의 마음과는 달랐다. 꼭 풀기 어려운 수학문제와 맞다든 기분이였다.
스스로 인정을 차버리고 달아난 그애가 무엇때문에 갑자기 나타났을가? 그리고 되돌려보낸 이 그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기 집안이 저 늙은이의 가슴에 얼마나 큰 못을 박았는가를 안다면 그는 이렇게 그림만 달랑 보내지는 않았을것이다.
부향녀가 그에게로 다가왔다.
《사둔님은 또 옛날 생각을 하는게 아니시우?》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렀다고 그 일을 어떻게 잊겠습니까.》
김성진은 부향녀의 두손을 꼭 부여잡았다.
《내가 왜 아주머니의 그 심정을 모르겠습니까. 저도 당장 진미에게 달려가 그애를 껴안아주고싶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왜 이 수묵화를 도로 보냈겠는가 하는것입니다. 그도 이 그림에 담겨진 의미를 잘 알고있지 않습니까.》
부향녀는 김성진을 바라보았다. 듣고보니 정말 그 말이 맞는것 같았다. 오래동안 찾다가 못 찾은 진미가 나타났다는 기쁨에 현실을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그였다.
김성진은 자기의 생각을 터놓았다.
《나는 그애가 혹시 제 넋을 저버리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그럼?! …》
무서운 일이다. 제 아버지가 잘못 디딘 그 길로 딸까지 간다면…
부향녀는 성진에게 자기의 견해를 피력했다.
《사둔님, 난 절대로 우리 진미가 그렇게까지 변했다고 보고싶지 않아요. 설사 그렇다 해도 난 다시는 그애를 잃을수 없어요.》
사무실문을 나서는 그를 바라보며 김성진은 깊은 감동속에 눈을 슴벅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