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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곤히 잠들었던 부향녀는 약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눈을 떴다. 창너머 밤하늘에서는 별무리가 자글자글 끓어대고있다. 손더듬으로 침대머리에 있는 약을 찾아 입에 넣었다. 혀끝이 짜릿해났다. 수술칼을 처음 들었던 시절에 만난 협심증이 로년기에 이르러 한층 더 사납게 육체를 허물려고 달려드는것이다.
오래전부터 자기 손으로 자기 몸에 정맥주사도 놓고 혈압을 재보는것이 습관으로 된 그였다. 그럴 때면 남편이 간호원도 있는데 주사를 제손으로 맞을건 뭔가고 가볍게 나무라군 했다.
《이렇게 하는게 더 좋아요.》
부향녀의 이러한 말에 남편은 어쩔수 없다는 인상을 짓군 했다.
《역시 왕고집이라니까!》
침대에서 일어난 부향녀는 탁상등을 켜고 생각에 잠겼다. 인생은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세월의 갈피속에 묻힌 자기의 모습이 창가에 비치는것 같았다.
철부지시절에는 부모들과 집안사람들이 《고집쟁이 울레미》라는 고운 이름으로 불러주었다. 그것이 소학교시절부터 《난 몰라.》 하면 다여서 《땅고집》이라는 미운 별명으로 변했다.
남편도 날 왕고집쟁이라고 했으니 고집은 아마 내 성미일테지. 정말 그랬어. 16살에 의학공부를 하겠다고 현해탄을 건늘 때 부모들이 얼마나 말렸던가. 사내도 아닌 계집이 무슨 큰일을 치겠다구 홀몸으로 남의 나라 지경으로 찾아가는가고 어머니는 야단을 쳤지만 종시 내 고집을 꺾지 못하지 않았는가. 그렇게 떠나온 고향이고 시작한 인생살이가 나에게 안겨준것은 무엇이였던가.
식민지청년이 종주국에서 공부한다는것은 매일 매 시각 굴욕을 감수해야 하는 고통이였다. 그마저도 대학과정을 마치지 못하고 태평양전쟁이라는 참혹한 회오리속에 운명을 맡기지 않을수 없었다.
세상천지가 피의 바다에 잠기던 때였다. 떠오르는 아침해도 피빛노을을 헤쳐야 했고 저무는 해도 피빛구름속으로 쫓기우며 사라졌다.
일본본토는 야수들의 괴성으로 광증을 일으키고있었다. 어데 가나 《천황》페하를 위해 옥쇄하겠다는 부르짖음이 히스테리발작을 일으켰다. 나중에는 젊은 녀자들과 아이들까지도 군가를 불러대며 《반자이》를 열뜬 기세로 웨쳐댔다. 일본은 그야말로 태평양전쟁이라는 도살장으로 미친듯이 내닫는 전쟁미치광이로 변했다.
거리와 병원들에는 전상자들로 차넘쳤다. 일본의 《충군애국》과 《야마또다마시》(일본정신)로 일색화되고 강다짐으로 통일한 군국주의이데올로기가 빚어낸 자살과 같은 죽음의 울부짖음이 그칠줄 모르던 도꾜였다.
부향녀는 대학실습을 죽어가는 일본군장졸들을 대상으로 하게 되였다. 의학공부를 한 대학생들은 학년에 관계없이 부상자치료에 내몰리웠다. 말이 치료이지 사정없이 절개하고 잘라내는 의학상의 전무후무한 인체해부실험장이나 다름없었다.
사지를 잘리운 군인들이 의사와 간호부들에게 달려들어 또 한차례의 살인행위를 감행하는 일도 빈번히 일어났다.
바로 이러한 살인무리들의 혼잡속에서 부향녀는 매일 시달림을 당했다. 의약품마저 모자라 육체의 한 부분을 빼앗긴 사람들에게 마취조차 변변히 시키지 못해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소리가 한순간도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대체로 병졸들이였는데 침대 아닌 침대에 결박되여 아픔을 호소하다가 숨지기도 했다. 차라리 죽는편이 낫다면서 의사나 간호원들에게 간청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피할수 없는 운명의 강요로 지칠대로 지쳐버린 부향녀는 빨리 교대를 마치고 알콜을 탄 물을 마시고싶었다. 유일하게 정신을 안정시킬수 있는 기회는 그 시간뿐이였던것이다.
어느날 반나마 정신을 잃고 비칠걸음으로 환자들사이를 걸어가던 그는 우악스러운 손이 위생복자락을 잡아당기기에 소스라치며 멈춰섰다.
몇사람의 죽음을 날랐을지 모를 피와 때국물로 얼룩진 백포 아닌 백포를 덮은 사나이가 구멍이 펑 뚫린듯 한 두눈으로 애절한 빛을 보내고있었다.
《이걸 놓지 못해요?》
《선생은 조선… 조선사람이지요? …》
《뭐라구요?》
《다 압니다. 나도 조선에서 <학도병>으로…》
《?! …》
저도 모르는 동정심이 머리를 쳐들었다. 상대가 다름아닌 자기와 같은 조선사람이라는데서 오는것이였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서 우리 조선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죽어가고있는가. 민족이 당하는 이 억울한 불행은 언제면 끝난단 말
인가.
부향녀는 주위를 둘러보고나서 무릎을 꿇고 그의 옆에 앉았다.
《상처가 심한가요?》
부상자는 미간을 쪼프리며 한숨을 내쉬였다.
《다리에 파편이 박혔는데 아마 뼈를 약간 다친것 같습니다.》
부향녀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걱정마세요. 다리를 자르지 않도록 내가 수술을 하겠어요.》
부상자는 괴로운 표정으로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아닙니다, 의사선생. 제발 내 다리를 잘라주시우. …》
부향녀는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부상자가 자기 육신의 한 부분을 서슴없이 잘라달라는 말은 처음이다. 썩어들어가는 사지를 두고도 안된다고 울부짖는 까닭은 살아도 병신은 되지 않겠다는 욕심이 남아있기때문이다.
환자는 계속 애원했다.
《선생, 나도 내 상처가 심하지 않다는것을 알고있습니다. 그러니 치료를 받으면 또 전쟁판에 끌려나가야 하지요. 내 나라, 내 강토를 강탈한 저 왜놈들을 대신해서 말입니다. 아무리 식민지민족이기로서니 어찌 저놈들의 대포밥이 되겠는가 말입니다. 난 차라리 그렇게 죽기보다는 다리를 자르고 병신으로 사는게 더 마음이 편합니다. 선생은 싸움마당에서 우리 조선사람들이 어떻게 억울한 죽음을 강요당하는지 다는 모를거우다. … 난 한다리가 없어도 고향에 돌아가 부모처자를 만나고싶수다. … 제발 부탁이요. …》
얼마나 가혹한 진실인가. 인간이 살수 있는 생존공간이 지금처럼 좁아진 때는 없었을것이다.
더는 이렇게 살고싶지 않았다. 차디찬 랭혈적인 동물로 존재한다는것은 인간에 대한 참을수 없는 모독이라고 자신을 끝없이 저주했다.
그날 밤에는 알콜이 아니라 료정에서 술을 마셨다. 마시고마셔도 정신은 사형수처럼 잠들려 하지 않았다. 그것은 죽음을 맞이하는 생명의 몸부림이였다. 그 다음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미 모든것을 결심하였기에 넋은 령혼마냥 어데론가 실려가고있었다.
눈앞에 얼기설기한 형체들이 비껴들 때 그는 여기가 지옥일것이라고 여겼다. 분명 집이였다. 저승에도 인간세상과 같은 이런 집이 있는가. 여기서는 어떤 망령들이 살것이라는 생각에 무섬증이 생겨 눈정기를 모으며 둘러보았다.
자그마한 뙤창으로 해살이 스며들고있었다. 벽에는 고려시기 재능있는 시인인 정지상의 7언절구시가 자리잡은 족자가 걸려있다.
비멎은 언덕에 풀빛 더욱 짙었는데
남포에서 님보내니 노래도 구슬퍼라
…
더듬거리며 시구를 읽던 그는 놀란 토끼처럼 솟구쳐 일어났다.
여기가 어딘가? 내가 죽지 않았는가? 저주로운 수술칼로 나는 분명 목부위의 정맥을 찌르지 않았는가.
취한 속에서 자기가 한 마지막행동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나는 분명 살아있다. 그렇다면 누가 내 앞길을 막았는가?
《허, 인제야 깼군요. 어서 이 토장국을 마시오.》
남자의 목소리였다. 물낡은 교복차림의 청년이 그지없이 선량한 웃음으로 김이 물물 피여오르는 사발을 내밀었다.
부향녀는 모든것을 다 리해해줄수 있는 눈동자를 보았다.
《내가 어떻게 여기에… 나를… 난…》
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며 떠듬거렸다.
《술에 취해서 한 행동을 새길 필요가 있을가요.》
《난 알아야겠어요. 당신이…》
《허허, 마음이 약해지면 안됩니다. 가장 쉬운게 죽음이지요. …》
부향녀는 온몸을 품어주는듯 한 그 말에 고개를 푹 숙이며 오열을 터쳤다.
그 사람이 고성길이였다.
이어 리민수와 한스 베르메트도 찾아왔다.
한스는 부향녀에게 주려고 도이췰란드에서 가져온 커피까지 내놓았다.
어리둥절해있는 부향녀에게 고성길이 그를 소개했다.
그의 아버지는 학자이고 반파쑈투사였다. 아들을 히틀러도당들이 일으키는 전쟁터에 내보내지 않으려고 일본에 보냈던것이다. 그는 고성길보다 젊은 나이지만 력사학 박사였다.
부향녀는 이들 세사람이 지닌 남다른 우정에서 류다른 감동을 받았다. 그후 그는 세평이 되나마나한 고성길의 하숙방을 즐겨 찾았다. 그가 올 때면 리민수는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듯 구실을 대며 자리를 비웠다.
부향녀는 순박하고 고지식해보이는 고성길의 얼굴을 볼 때면 무엇인가 다가오는듯 한감을 느끼군 했다. 앞에 앉은 사나이의 몸가까이에서 한줄기의 빛이 흘러나오고있었다. 그것은 생에 대한 희망이였다. 지금까지 느껴본적도, 누려본적도 없는 따스한 느낌, 친근한 감정이였다.
이것은 절대로 내 운명에 드리운 음영이 아니야. 도리여 그것을 말끔히 가셔줄 해빛이야.
남에게 드러내보이기 서슴어하는 감정은 처녀의 가슴속에서 이미 타오르고있었다. 그것은 세차게 타번졌으며 뜨거운 열기는 드디여 사내에게로 이어졌다.
부향녀는 징병에 걸려 태평양전쟁터로 끌려가는 고성길과 이 집에서 마지막밤을 보냈다. 앞날을 기약할수 없는 운명의 밤은 너무도 짧았다.
부향녀는 가져온 음식감을 제손으로 끓여서 차려놓았다. 살아서 꼭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또 했다. 가야 했다. 밤이 퍼그나 깊었던것이다. 하지만 고지식한 고성길에게서 이젠 가야 하지 않느냐 하는 말이 나올가봐 두려웠다. 시간이 흐르지 않기만을 마음속으로 바랬다. 지구가 멎고 밤만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였다.
아, 어찌하여 우리의 청춘은 이처럼 가혹한 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망국의 수난으로 마침내는 침략자들이 일으킨 전쟁마당에까지 끌려나가야 하는 운명을 강요당한 우리들이 아닌가.
두 젊은이의 심경은 실로 비감을 지울수 없었다.
마침내 고성길의 입에서 바라지 않던 말이 흘러나왔다.
《향녀, 늦었구만. 내가 데려다주지.》
《난, 분명 가고가다가 다시 돌아오고말거예요.》
《그럼, 밤새 걷자구.》
《난 여기가 좋아요. 여기서 알았고 여기서 우린 약속하지 않았나요. …》
《살아서 돌아오면 우리 모든걸 다시 시작하기요.》
부향녀는 머리를 설레설레 가로저었다.
《모든건 이미 시작됐어요. 오늘은 그걸 확인하면 되는거예요.》
고성길은 부향녀의 눈빛을 읽고있었다.
불우한 두 청춘의 사품치는 피는 리별의 아픔을 이겨내려고 몸부림쳤다. 그것은 사랑의 피눈물이였다.
부향녀는 사나이의 넓은 품에 매달렸다. 그리고는 꼭 껴안았다.
《기어이 제 품으로 돌아와야 해요. … 제가 있다는것을… 기다리다 오지 않으면 나도 없다는것을…》
고성길도 그를 꼭 그러안았다.
《향녀! …》
열정의 흐느낌은 한데 엉키여 순결한 사랑의 맹세로 이어졌다. …
잊을수 없는 그밤, 부향녀는 사랑이 결합되는 순간을 마련한 자신이 믿어지지 않았다. 허나 달리할수 없는 그였다. 그에게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수 있는 힘은 오직 그것 하나뿐이였다. 그토록 열렬히 사랑한 사람이 고성길이였던것이다. …
자리에서 일어난 부향녀는 천천히 벽장쪽으로 걸었다. 그곳에서 작은 함을 꺼내들고 책상으로 다가갔다.
주름진 손으로 더듬어 쓸어보고난 그는 뚜껑을 열었다. 하얀 명주천을 펼치니 길이가 짧은 수술칼 한개가 불빛에 니켈광택을 발산한다.
운명의 칼이였다. 이 작고 예리한 물건으로 고통스러운 생명을 끊어버리려 했으며 이 무정한 쇠쪼박으로 사랑하는 남편의 다리를 잘랐다.
묵묵히 들여다보던 그는 흠칫 놀라며 몸을 떨었다. 귀전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던것이다. 문두드리는 소리, 마치 베토벤의 선률처럼 울렸다. 운명의 문을.
… 밤이였다. 달도 없고 별도 보이지 않던 암흑천지였다. 전쟁은 끝났다지만 인간들의 고행은 끊임없이 이어지던 날들중의 어느 밤이였다.
《똥벌레》라는 천한 욕설을 들어가며 돈을 벌어 세운 자그마한 사립병원의 문을 한밤중의 불청객이 사정없이 두드려대고있었다.
동아의 맹주를 꿈꾸다 전패국으로 굴러떨어진 일본의 형편은 전쟁보다 더한 란장판으로 되여가고있었다. 거리에는 강도무리들이 살판쳤다. 한덩이의 밥을 손에 넣기 위해 사람도 서슴지 않고 죽이는 참사는 매일 매 시간 벌어지고있었다. 그들은 대다수가 살아남은 군속들이였다. 싸움마당에서 발휘하지 못한 용맹을 생존을 위해 떨치고있었던것이다.
초불을 켜든 부향녀는 문가로 다가갔다. 병원인것으로 하여 려염집처럼 모르쇠를 할수 없었다. 그러나 불안한 생각으로 심장 방망이질을 해댔다. 말이 병원이지 입원실도 없었으며 낮에나 환자치료를 하는게 고작이다. 밤에는 하루에와 둘이서 지키는 집이기에 더욱 무서웠다.
밖에서는 주인이 듣지 못하는줄 알고 극성을 부려 들부시기라도 할듯 문을 두드려댔다.
바싹 마른 목으로 침을 넘기며 부향녀는 가슴을 붙들고 물었다.
《누구예요? …》
《급한 환자요. … 빨리 문을 여시오! 어서 열란 말이요.》
발까지 굴러대며 위협조로 소리치는게 그냥 놔두면 문짝이 떨어져나갈 판이다.
부향녀는 어쩔수없이 문을 열었다.
막힌 물목이 터진듯 환자를 업고 부축한 두사람이 밀려들어오기에 그는 뒤걸음을 치다 벽에 부딪쳤다.
《이건 무슨짓들이예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부향녀인지라 마음을 다잡고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공포가 어려있었다. 안쪽에서는 다급한 말마디와 신음소리가 들려오지만 그는 선자리에서 움직일줄 몰랐다.
마루를 밟아대는 발자국소리가 어둠속으로 마주오더니 검은 형체의 사람이 초불앞에 나타났다. 언제 수염을 깎았는지 모를 험한 얼굴이 실룩이더니 절도있게 고개를 푹 꺾었다.
《마에다 사부로라고 합니다. 밤중에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친구의 상처가 너무 위독하여… 선생님, 사정을 봐주십시오.》
군인다운 례절과 함께 그 어떤 요구가 어린 거친 목소리였다.
《마에다군, 뭘 하나? 빨리 의사를 데려오라구.》
안쪽에서 화가 동한 소리가 울려나오자 마에다는 일본인고유의 비굴성을 드러냈다.
《부탁합니다. 선생님…》
초불을 든 부향녀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는 자기가 어떤 알수 없는 운명을 향해 흘러가는 느낌을 받고있었다.
소리치던 사나이가 그를 향해 돌아섰다.
《저, 선생님. 이 친구…》
갑자기 그의 입은 굳어졌다. 대신 의혹과 반가움으로 얼굴엔 격정이 흘렀다.
《아… 아니, 이게 향녀씨가 아니요?》
부향녀는 흠칫 놀랐다. 두눈으로 상대를 똑바로 살펴보았다. 낡고 꿰진 군복을 입고있었는데 얼굴은 때국물로 얼룩져 누구인지 선뜻 알수 없었다.
누구이기에 내 이름을 부를가?
상대는 안타까운듯 모자를 벗어들고 바투 다가섰다.
《아, 나요. 나, 리민수요!》
아니, 그럼?! …
이름을 듣고 여겨봐서야 그의 모습을 가려볼수 있었다.
《어마나, 민수씨…》
너무나 뜻밖이고 너무도 반가운 사람이여서 그는 초불을 떨구었다.
이어 전등불이 켜졌다.
허나 기쁨은 한순간이였다.
어깨가 축 처진 리민수는 긴 나무의자에 누워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향녀씨, 용서하오. 저 친구가 바로 성길…》
그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뭐예요?!》
부향녀는 한순간 얼떠름했다. 머리속으로 집요하게 밀려드는 오만가지 생각에 뭐가 뭔지 영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아니 그럴수 없어. 그이는 이미…
죽음의 란무장인 오끼나와에서 살아나 일본의 패망과 함께 도꾜로 돌아오니 맞아주는 소식이란 고성길이 《가미가제》비행기를 타고 출격하였다가 《천황》페하께 충성을 다하고 옥쇄하였다는 군의 통지서였다. 그가 다니던 대학에 보내왔던것이다.
믿을래야 믿을수 없는 소식앞에 부향녀는 몸부림을 쳤다. 그 무엇에도 빼앗길수 없고 나누어 가질수도 없는 사람이 바로 고성길이였다. 때문에 제눈으로 보기 전에는 도저히 인정할수 없었다. 그러나 사망통지서는 엄연한 현실로 되여 그의 손에 쥐여져있었다.
그런데 죽었다던 사람이 이렇게 나타날수 있을가? 그이가 정말 저승에서 이승으로 이렇게 환생한걸가? 그리운 사람은 죽으면 저 하늘의 별로 떠있다는 말은 어릴적에 많이 들어왔다. 그러나 이렇게 다시 살아돌아왔다는 이야기는 전설에서나 들어오지 않았던가.
《무슨 소리를 하는거예요? 그이는…》
그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한걸음한걸음 환자의 곁에 다가갔다. 심장은 이미 달리기를 끝마쳤을 때처럼 세차게 고동치고있었다. 피줄의 흐름은 격동되여 종잡을수 없었고 관자노리의 맥박은 세차게 요동쳤다.
얼빠진 사람처럼 흐리멍텅한 눈길로 조심스럽게 환자의 얼굴을 더듬던 그의 입가에서는 《아!-》 하는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
뒤통수에 강한 타격을 받은듯 몸이 휘청거렸다. 세차던 박동도 운동을 멈추었다. 육신의 모든 세포들이 감각을 잃고 정지되여버린것 같았다. 죽은듯 꾹 다물려진 두툼한 입술, 금시 두눈을 뜨고 반길것만 같은 억실억실한 눈섭…
《아, 성길씨!-》
부향녀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그의 품에 쓰러지듯 안겼다.
《너무해요. 어데 갔다가 이런 모습으로 나타났어요. …》
그는 금시 숨이 넘어갈듯 꺼이꺼이 울었다.
어쩌면 이리도 무정할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살아있으면서도 여직껏 소식 한장 없다가 불쑥 나타날수 있단 말인가? 어이하여 이런 모습으로 나타났는가요?
수천수만의 말들이 방울방울 눈물로 화하여 고성길의 가슴으로 흘러들었다. 숨막힐듯 한 정적속에 처녀의 흐느낌소리만이 울렸다.
《향녀씨, 성길군은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할 몸이요.》
리민수의 말에 부향녀는 정신을 차렸다.
고성길의 다리를 가리키며 한참동안 설명하는 리민수의 말에 머리가 아찔했다. 살아서 돌아올수 없는 사람이 이렇게 눈앞에 누워있다는 의식으로 그는 절망에 가까운 한숨을 내쉬며 수술가위를 찾아들었다. 팽팽해진 마음을 억제하며 상처에 손을 뻗쳤다.
상한 다리의 바지가랭이가 뭉청 잘리워나갔다. 피고름에 푹 젖은 붕대가 보였다. 그것도 잘라버리고 상처를 보는 부향녀의 얼굴은 해쓱하니 질렸다.
예상했던것보다 더 심했다. 허벅다리는 완전히 부어있었고 슬관절은 고름샘처럼 되여버렸다. 개방성골절이였다. 그것도 제때에 치료받지 못해 상처가 몹시 악성된 상태였다. 이미 수술을 받은 흔적은 있었지만 대충 급한 대목만 메꾸는 식으로 해버리고말았다.
부향녀는 저도 모르게 손에 들었던 수술가위를 뚤렁 떨구었다. 눈앞이 아뜩했다. 지금까지 이런 상처는 손으로는 꼽지 못할 정도로 보아온 그였다. 그에 따르는 수술이 어떠한것인지도 잘 알고있었다.
《어떻습니까?》
리민수의 물음이였지만 부향녀는 망연자실한듯 우두커니 서있었다. 금시 울음이 터져나올듯 그의 입술은 파들파들 떨고있었다.
그는 지금 제 눈앞에 애인의 령혼이 아닌 실체가 있다는 감각은 영 잊고있었다. 다만 고추가루를 삼킨것 같은 고통만이 되살아났다. 무서운 철퇴가 그의 머리를 세차게 내려치고있다. 꽉 다문 입술사이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절단!》
야전환경에서 이와 같은 부상자를 수없이 치료한 림상경험에 의해서 해석되고 판단된 진단이였다.
두손으로 얼굴을 감싼 그는 너무도 억이 막혀 아무 생각도 할수 없었다. 환자의 입에서는 간간이 무슨 말인가 흘러나왔다.
《민수… 잘라주게. … 난 살아야 하네. … 향녀가 나를 기다린단 말이네. …》
부향녀는 떨리는 한손으로 고성길의 입을 막았다.
이봐요, 내가 이 손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불구로 만들었는지 당신은 알지 않나요. 내가 왜 제손으로 죽으려 했던가요. 그걸 당신은 잊었어요? 당신의 육체를 파괴하여 병신으로 만들자고 내 수술칼을 잡았는가 말이예요. 차라리 함께 죽어요. 내 손에는 그때 그 칼이 지금도 들려있어요. …
마음속으로 전하는 이 말과 함께 두볼로는 피같은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렸다.
감성은 부정하지만 리성의 요구는 엄격했다.
살아야 한다. 구천에 사무친 이 원한을 풀어야 하기에 살아서 벋디디고 일어나야 한다. 너는 사랑의 억센 다리가 되여야 한다. 한평생 업고 다니면서라도 이 사나이가 그려온 조국의 품에 데리고 가야 한다. 그것이 언약을 지키는 길이다.
부향녀는 드디여 결심했다. 고성길을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그는 수술칼을 잡았다.
수술준비가 언제 어떻게 끝났는지 알수 없었다. 환자에게 마취제를 주사했지만 속은 여전히 떨리기만 했다. 수술칼을 대는 순간 그가 두눈을 부릅뜨며 꾸짖을것만 같았다.
《향녀! 당신이 정녕 내 다리를 자르는거요? 무엇때문에 나를 병신으로 만드는거요. 그래 여직껏 나를 기다렸다는 본심이 바로 이런것이였소?》
손에서는 경련이 일어나는듯싶었고 모든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실력이 무의미해졌다. 꼭 처음으로 수술장에 나선것처럼 겁만 살아났다. 속으로 그 몇번 수술의 공정을 외워왔건만 손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향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어서 수술칼을 대오. 그것이 바로 이 고성길이라는 인간을 재생시키는 길이요.》
애인의 절절한 당부가 자신을 후려치고있었다.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무엇이라고 말할수 없는 견인력에 그는 불수강으로 만든 수술칼을 다시 움켜잡았다.
부향녀는 대퇴부위절단위치를 앞으로의 의족상태를 고려하여 정했다. 그 다음 대퇴상단부에 감은 지혈대의 상태를 다시 확인했
다. 이어 계단식으로 절단하는 환상절단법이 진행되였다. 시작부터 너무 긴장해서인지 온몸은 땀주머니로 되고말았다.
마에다가 수건으로 얼굴에서 흐르는 땀을 닦아주군 했다.
그래, 너무 긴장하지 말자. 딴 생각은 말고 오직 수술에만 집중하자.
또 다른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을 벌리며 그는 절단톱을 뼈에 가져다댔다. 그러나 차마 손을 움직일수 없었다.
이제 이것으로 뼈를 자르면 성길씨는 영영 병신이 되고만다.
부향녀는 애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제 육체의 란도질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히려 편안히 잠든것만 같았다.
부향녀는 눈물을 머금으며 톱질을 했다. 한치두치 뼈는 잘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는 지금 제 심장을 두동강내고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수 없다. 다만 가물가물 꺼져가는 애인의 박동처럼 그 흐름이 더딘것만 같았다.
뼈절단면의 예리한 부분을 줄칼로 다듬은 부향녀의 손은 기계적으로 중요동맥을 결찰했다. 이어 지혈대를 천천히 풀어 출혈의 유무를 확인했다. 다음 그는 신경을 분리하여 당겨 절단면보다 4~5㎝우를 예리한 칼로 잘랐다. 출혈부위가 없다는것을 다시 확인하고서야 근육으로 절단단을 싸고 꿰맸다. 시간이 좀 걸려서야 신근근막과 굴근막, 피부가 봉합되였다.
드디여 수술이 끝난것이다.
육체에서 분리된 다리가 수술대의 한켠에 외롭게 놓여있는것을 보고서야 그는 참고참아왔던 눈물을 쏟고말았다. 하염없는 눈물, 수년동안 쌓이고쌓였던 설음과 울분이 진득진득한 피가 되여 흘러나왔다.
이렇게 되여 부향녀는 애인의 동의도 없이 그의 다리를 잘랐다.
고성길은 한주일만에야 의식을 회복했다. 침상에서 한시도 자리를 뜨지 않은 녀인이 죽음터에서도 넋을 불러준 사랑하는 사람임을 확인한 그는 놀라움과 반가움이 엇갈린 격정을 금치 못했다.
《향녀가 이 세상에 없었더라면 난 죽었을거요. 돌아오지 않으면 나도 없어요 하던 당신의 그 목소리가 한시도 내곁을 떠난적 없었소.》
애인의 손을 꼭 잡은 부향녀의 두볼로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마워요. 하지만 이 미련한 녀자는 성길씨에게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어요. 어쩌면 좋아요. … 내가 내 손으로…》
《울지 마오. 죽음터에서 살아남아 우리 이렇게 만나지 않았소. … 고맙소, 향녀! …》
고성길은 한손으로 부향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봐요. 우리 결혼하자요. 한생토록 당신곁에서 떠나지 않고 내 손으로 자른 이 다리를 대신하겠어요. 승인하지요?》
《향녀가 고생할가봐 그러오.》
《싫어요. 그런 말 다시는 하지 말아요.》
부향녀는 고성길의 품에 안기며 그가 말을 못하게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어느날 리민수가 한스를 데리고 나타났다. 한스는 그동안 남아메리카에 가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곳의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있다가 귀국하는 길에 친우들의 생사여부를 알자고 왔던것이다.
《한스선생, 이게 얼마만이요?》
고성길과 포옹한 한스는 감격에 겨워 말했다.
《백년만이요. 암흑의 시대는 지나갔소. 동서방의 파시즘은 종식되고 인류는 광명을 찾았소.》
한스는 가져온 사진기로 부향녀와 고성길을 찍어주며 이것이 결혼기념사진이라고 말했다.
자그마한 방 식탁우에는 소박한 음식이 차려졌다. 부향녀의 정성이 깃든것이라 한스도, 리민수도 새 가정의 향기를 맛보며 축배를 들었다.
《나의 친근한 벗들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려오?》
한스가 의미를 담아 물었다.
《우리야 력사를 전공하지 않았나. 그 일을 해야지. 후대들이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아무렴.》
리민수도 기꺼이 응하며 술잔을 쳐들었다.
《인류의 아름다운 미래를 위하여! 력사의 동업자들 만세!》
한스의 격동에 맞춰 술잔들이 경쾌한 음향을 날리였다.
노래하자, 새 노래, 더 좋은 노래를
오, 벗들이여! 내 그대들을 위해 노래를 엮으리니
여기 이 땅우에 우리의 락원을 이룩해보자
고성길이 하이네의 시를 읊어가자 모두들 목소리를 합쳤다.
이 땅우에 행복한 삶을 누려보자
더는 넘겨주지 말자
부지런한 손길이 애써 벌어들인것으로
게으른 배를 더는 불리우지 말도록
…
노래하자, 새 노래, 더 좋은 노래를!
그 노래, 피리와 양금인양 울려오리!
불행은 간데 없고
만종도 침묵했네
시를 마친 그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이마를 마주 비비며 한껏 웃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새 생활의 길에 나선 부부였다. 총련결성을 위해 남편도 부향녀도 온갖 열정을 다 바쳤다.
사랑은 행복한 삶을 그렸지만 엄혹한 세월은 그들의 요구를 배척했다. 그렇게도 정열에 넘쳐 력사연구에 심혈을 바치던 남편이 비명횡사하였다. 그것마저 친구의 집에서 차 한잔을 마시고 숨졌다. 의사인 부향녀는 차잔을 가져다 검증했으나 아무것도 발견할수 없었다. 다만 죽을수 없는 사람이 죽었다는 의혹만은 짙게 남았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풀수 없었다. 뒤늦게 경찰기관이 알고 조사라는것을 하였지만 결과는 부향녀가 예견한 그대로였다. …
그때로부터 세월은 스무해가 넘게 흘러갔다. 사람들의 가슴속에 의혹과 불신, 죄책과 원망의 상처를 깊숙이 남긴채 남편의 죽음은 오늘도 비밀의 장막속에 숨어있었다.
부향녀는 함속에서 누렇게 변색된 책을 꺼냈다. 뚜껑마저도 피빛을 띤 책의 네 모서리는 황이 든 가랑잎처럼 만지면 부서질것만 같았다.
수십년전 오끼나와의 일본군피복공장에서 일하던 다미꼬의 사품에 들어있던 일기장이다. 함께 일하던 일본녀자인 유끼오는 부향녀에게 이 사품을 넘겨주며 그가 미군의 폭격에 시신도 없이 불타죽었다고 했다.
믿어지지 않았다. 반항공체계가 철통이라고 장담하던 군수공장에 있던 다미꼬가 공습경보를 듣지 못하고 합숙에 그냥 남아있었다는것이…
숱한 의문을 가지게 하는 다미꼬의 죽음이였지만 구체적인 대답을 회피하는 유끼오를 다잡고 캐물을수도 없었다.
다미꼬는 무엇때문에 일본군장교의 일기장을 자기 사품속에 간수했을가? 혹시 이것이 그의 죽음과 무슨 인연이라도 있는게 아닐가?
수십년이 지난 오늘까지 풀지 못한 수수께끼였다.
부향녀는 일기장의 갈피를 한장두장 번져갔다. 혹시 다미꼬의 죽음과 관련된것이 서술되지 않았을가 하고 몇번이나 들여다본 책이였다.
하지만 그속에는 한 일본군장교의 죄악에 찬 력사만 씌여져있었다. 본인도 천인공노할 만행에 대한 벌이 두려웠던지 이름마저 숨기였다. 다만 《동양의 사꾸라》라는 이름아닌 닉명을 써놓았다. 이놈이 무슨 마음을 먹고 자기의 반인륜적인 범죄행위의 일부분을 글로 남겼는지 알수 없다. 일본야수들의 죄행을 폭로하는데 가치있는 자료이기에 오늘까지 간수하고있지만 본인을 적발하지 못하는 이상 증거로 되기 어려웠다.
일기장을 덮은 부향녀는 다시 착잡한 심중을 안고 모대기고있었다. 무로우가 TV에까지 나서서 자기를 지명공격한것은 결코 무심히 대할수 없었던것이다. 하루에가 순수한 일본혈통이라는것을 밝혀야 했다.
그것은 40년이 넘도록 어머니라고 부르는 그애한테 나는 너의 어머니가 아니라고 말하는것이나 같지 않는가. 세상에는 낳은 정보다 키운 정이
더 크다는 말이 있다. 피줄이 다르다는 단 하나의 리유로 인간의 성정을 버린다면 어찌 옳은 처사라고 하랴. …
부향녀는 괴로움을 짓씹으며 깊은 한숨을 쉬였다.
아니, 절대로 그렇게 할수는 없어. …
조용히 머리를 가로저은 부향녀는 함을 제자리에 놓고나서 창가로 다가갔다. 그의 귀전으로는 비행장에서 만났던 녀기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너야말로 조선사람의 집안에 기여든 일본뱀이다! …》
부향녀의 가슴속에는 무거운 돌덩이가 자리잡는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