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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췰란드의 북동부에 위치하고있는 베를린은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었다. 고대슬라브어로 《습지의 뿌리》라는 뜻을 가지고있는 베를린은 수림이 우거지고 작은 호수가 많은 곳에 위치하고있었다. 1237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여 1307년부터 베를린으로 불리우게 되였다. 중세상업도시들중의 하나였던 이 도시는 1701년부터 프로씨아왕국의 수도로, 1871년부터 도이췰란드제국의 수도로 되였다. 그때부터 이곳은 19세기말, 20세기초 여러차례의 혁명을 거쳐 로동운동의 중심지로 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도이췰란드의 패망과 1990년 10월 도이췰란드의 통일까지 수많은 력사기록을 남긴 땅이기도 했다.
베를린은 그리스도교의 옛 사원들과 현대건물들로 뒤섞여있었다. 그야말로 력사발전의 모습을 그대로 안고있었다.
부향녀와 한스 베르메트는 브란덴부르그통로를 따라 뻗은 쎄게 싸울기념비가 서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티에르카텐공원이 량옆으로 펼쳐져있었다. 시원한 숲의 설레임이 그들의 가슴을 식혀주고있었다.
《교수선생님! 이렇게 도와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한스는 오히려 미안한감을 금치 못했다.
《부인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인차 소식을 전해주었어야 했는데 내가 몸이 불편하다나니… 그렇지만 사실은…》
그는 무엇인가 더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건 저의 솔직한 심정이니 사양하지 마세요. 남의 일에 이렇게 발벗고 나선다는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이게 어찌 남의 일이겠습니까. 력사를 지키는 일이야 저와 같은 력사가들은 물론 모든 사람들의 마땅한 본분이 아닙니까.》
부향녀는 가슴이 뭉클 젖어들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흘러간 력사를 소중히 여기고 지켜주려는 그의 웅심에 머리가 숙어졌다.
베를린에서 그는 한스의 도움을 받아 미국 서부지역의 한 대학에서 수집보관하였다가 공개한 옛 지도들의 사본을 얻게 되였다. 대학의 180여개 지도들중 무려 132개의 지도에는 조선반도와 일본사이의 바다를 《조선해》로 표기하고있었다. 그밖에도 그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내놓은 옛 지도들중에서 독도를 조선의 령토로 표시한 지도들의 사본도 구할수 있었다. 모든 사실로 미루어보아 일본인들은 물론 유럽과 서방의 력사학자들도 모두 독도를 조선의 고유한 령토로 인정하고있었다는것을 말해주고있었다.
《정말이지 한스선생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지도들을 손에 넣기가 몇갑절 힘들었을겁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모든 력사적자료들이 이렇게 충분하게 독도가 어느 나라의 령토인가를 실증해주고있는데도 계속 저들의 <다께시마>라고 고집하는 일본의 심통은 그야말로 간특하기 그지없습니다.》
《이제 이 지도들을 공개하고 <독도령유권>주장의 부당성을 발가놓는다면 그들에게는 심대한 타격으로 될겁니다. 전 도꾜에 도착하는 즉시 그자들의 진상에 대해 까밝힐 결심입니다.》
《정말 탄복하게 됩니다. 불편하신 몸으로 먼길을 오시였는데 휴식도 하지 않으시고 떠나시겠다니… 전 정말이지 부인님의 그 불타는 애국의지에 매혹되였습니다.》
《사람의 정신은 육체가 주는것이 아니라 마음을 어디에 의지하고있는가 하는데서 생겨나는게 아니겠습니까.》
《정말, 좋은 말씀이십니다.》
한스는 공원에 피뜩 눈길을 돌리고나서 말을 이었다.
《누구나 자기의 력사를 모르게 되면 무분별해지는 법이지요. 나치스의 고향이라고 할수 있는 이딸리아와 우리 도이췰란드의 과거사를 놓고봐도 그렇지요.》
《그래서 어느 한 정치가는 세계란 한 인간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도 광활하지만 자기의 욕망을 실현하기에는 너무 협소하다고 말한게 아니겠습니까.》
한스는 의미심장하게 울리는 부향녀의 말에 공감을 표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상엔 자기의 욕망만을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적지 않지요. 그래서 오늘날에도 이렇듯 어지럽고 저돌적인 사고방식을 가진자들이 남아있는게 아니겠습니까.》
한스는 역겨운 모습들을 눈앞에 방불하게 그려보기라도 하듯 랭소를 지었다.
《허, 내가 제 말만 제 말이라고 한게 아닙니까?》
《아니예요. 전 이번에 와서 많은것을 배웠어요.》
한스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아닙니다. 난 오히려 부인님한테서 인간의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 뜨거운 열정을 지닌 사람은 한생 그것에 대한 자기의 장편소설을 안고있는 법이지요. 부인님은 남편을 잃고 20여년세월 그에 대한 정을 변함없이 간직한 사랑의 모델입니다. 비록 의학자이지만 제 민족의 력사를 위해 이렇듯 자신을 바쳐가니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한스의 과찬에 부향녀는 웃음을 지었다. 가볍게 불어오는 바람이 옷자락을 스쳤다.
《아무리 깨끗하고 진실한 사랑을 지닌 인간이라고 해도 그것을 바치는 대상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는게 아닐가요.》
한스는 그 무슨 신비스러움을 느끼는듯 진지한 태도를 취했다.
《그럼 부인은 그게 어떤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부향녀는 멀리 앞쪽에 시선을 둔채 말을 이었다.
《사실 저도 인생의 말년에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중하고 아름다운 사랑은 바로 제 민족과 제 조국에 바치는 티없는 인간의 량심이라는것을 말입니다.》
한스는 탄복의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듣고보니 정말 그렇군요. 오늘에야 비로소 성길이 그 친구가 왜 자기 조국의 력사에 대해 그렇듯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는지 리해됩니다. 정말 부럽습니다. 비록 이국에서 살아도 한생을 바쳐 지키고싶은 품을 가지고있는 부인님이 말입니다.》
한스는 허연 눈섭이 짙은 두눈을 슴벅이며 깊은 추억에 잠기는듯 한 표정으로 멀리 하늘가를 바라보았다. 파아란 창공으로 흰구름들이 뭉게뭉게 떠가고있었다.
《나는 지난번에 부인님의 조국인 평양을 방문하면서 많은것을 체험하고 느꼈습니다. 동방의 오랜 전통과 력사가 바로 당신네 조선민족에게서 숨쉬고 새롭게 발전하는 참모습은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자기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를 고수하고 빛내이는 조선인민에게 절로 머리가 숙어지더란 말입니다.》
부향녀의 눈가에도 잊을수 없었던 평양방문의 나날들이 흘러갔다. 우리 민족의 원시조가 묻힌 대박산기슭의 단군릉, 대성산성, 대동강기슭에 자리잡은 력사박물관, 강서벽화무덤 등 민족문화유산이 원존의 모습대로 보존되여있는것을 보고 얼마나 감탄을 금치 못했던가. 침략자들에 의해 뜯기울대로 뜯기웠지만 오늘날에는 그것이 조금도 자기의 빛을 잃지 않고 후대들에게 전해지고있었다.
《그렇습니다, 한스선생! 바로 그 땅을 어머니조국으로 여기고 사는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어찌 우리 민족의 넋을 앗아가고 침탈하려는 행위를 보고만 있겠습니까.》
한스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자기의 심정을 토로했다.
《난, 일본이 그렇게 파렴치하고 너절한짓을 하고있다는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아마 그네들은 한명의 바보가 백명의 바보를 키워낸다는 리치를 모르고있는것 같습니다.》
부향녀는 그의 말에 동감했다.
《현재를 과거보다 중시하지 않고 미래를 현재보다 중시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력사란 하나의 재더미나 같은것으로 생각되는 법이 아니나요. 바로 그런자들은 그 자리에 제나름대로의 설계로 새로운 력사의 집을 지으려 하거든요.》
한스는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참으로 한줌도 못되는 극악한 위정자들에 의해 신성한 력사가 외곡되고있으니 정말 참을수 없었다. 과거가 없는 현재란 있을수 없듯이 력사가 없는 나라와 민족은 더욱 없다는 정의를 그자들은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의 력사에 흠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채색하고 마음내키는대로 고치려 하는자의 눈에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법이다. 단 한치의 앞도 가려볼줄 모르는자들을 어떻게 정치인이라고 할수 있겠는가.
《승자는 실패를 거울로 삼는다는 말이 있지요. 패전이라는 쓴맛을 안고있는 일본이 아직도 저들의 호전적인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있으니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자들의 두뇌에는 오직 세계제패뿐인걸요. 패권주의병에 걸린 광신자들의 무리나 다름없답니다. 지금 일본의 집권계층은 옛 죄악의 력사와 교훈을 망각하고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군국주의길로 줄달음치고있습니다.》
한스는 너무도 억이 막힌 사실앞에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이 땅에 새로운 파쑈의 무리가 등장해서 평화로운 공기를 어지럽히려 하고있으니 통탄하지 않을수 없는 일이다.
부향녀는 일본반동들의 재침야망을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버섯은 애초에 짓뭉개버려야 한다. 하나의 독소가 수많은 생명들을 앗아갈수 있다. 독재의 총칼이 또다시 새로운 침략전쟁의 분화점에 불을 단다면 그 참화는 여지없이 제 나라 인민들의 머리우에 들씌워지기마련이다. 바로 그 화근이 지금 일본땅에서 우후죽순처럼 자라고있다.
일본의 극우보수세력은 얼마전에도 주변나라들과의 령토분쟁과 력사교과서외곡, 《야스구니진쟈》참배를 통하여 제 나라 국민들에게 군국주의를 고취하여 《평화와 중립》에 관한 현행헌법을 뜯어고치려고 하고있었다. 더우기는 유엔상임리사국으로 진출하여 전패국의 루명을 벗고 세계정치대국, 군사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려는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혈안이 되여 날뛰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목적밑에 그자들은 《독도령유권》을 계속 고집하고있는것이다.
《이번에 부인님이 우리 세계력사학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일본의 극우보수세력들의 극악한 력사외곡책동과 재침야망을 까밝힌것은 참으로 잘하신 일입니다. 모두들 일본의 행위가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잘 모르고있었으니까요.》
잠시 동안을 두었던 한스가 부향녀에게로 돌아섰다.
《참, 래일 꼭 돌아가셔야 하겠습니까?》
느닷없이 묻는 한스의 목소리였다.
《예.》
부향녀의 대답에 늙은 교수는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교수선생님?》
부향녀의 물음앞에 한스는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이마살을 쪼프렸다.
《꼭 가시겠다니 뭘 숨기겠습니까.》
무겁게 말꼭지를 떼는 그의 두툼한 입술을 바라보는 부향녀의 눈가에는 의문이 짙어갔다.
《사실 오늘 아침 도꾜에서 전화가 왔댔습니다.》
부향녀의 머리속으로 오만가지 생각들이 스쳐갔다.
혹시 성옥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닐가. 아니면 조성호에게… 분명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것이 분명하다.
부향녀는 불안과 호기심이 엇갈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다음말을 기다렸다.
《솔직히 이야기한다면 난 부인님이 일본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지체시켜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놀라웠다.
누가 무엇때문에 나의 입국을 방해한단 말인가? 이것은 분명 일본반동세력들일것이다.
《그래, 누가 교수선생님을 강박하던가요?》
저도 모르게 그의 얼굴은 심각해지고 언성이 높아졌다.
한스는 느슨한 인상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흥분하지 말고 내 말을 잘 들어주십시오. 난 강박을 당한것이 아니라 그 누구의 간절한 청탁을 받았습니다.》
《청탁! … 그게 누구입니까?》
《부인님도 잘 알고계시는 리민수의 딸입니다.》
《아니 그럼, 진미가? …》
놀라운 일이였다. 무엇때문에 리진미가 자기의 입국을 연장시켜달라고 한스에게 부탁하였는지 리해할수 없었다.
《부인님은 진미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동안 생각깊은 침묵속에 잠겨있던 부향녀는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스선생, 내가 진미에게서 바라는것이 있다면 단지 그가 조선민족의 넋을 잊지 말고 살았으면 하는거예요.》
한스는 그의 말을 긍정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민족의 넋이라! … 바로 그게 인간에게 제일 귀중한 생명이 아니겠습니까. 내 오늘 부인님께 진실을 말씀드린다면 그애는 요즘에 와서 리민수와 자기가 지은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치고있다는것입니다.》
부향녀는 그의 말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한스는 주름진 얼굴에 연한 미소를 머금었다.
《부인님이 여기 베를린으로 오기 전에 저는 그의 눈물겨운 편지를 받았습니다. 거기에 그는 이렇게 썼더군요. 자기 아버지는 바로 <동양의 사꾸라>라는 일본놈에게 속히워 안해의 병을 치료할 돈을 마련하느라고 성길군이 수집한 자료들을 팔았다고 말입니다.》
놀라웠다. 《동양의 사꾸라》라는 이름이 머리에 짚이웠다. 얼마나 찾고찾던자인가. 다미꼬를 죽인 일기장의 주인, 수많은 조선녀성들에게 천추에 용서받지 못할 죄악을 저지른자이다. 그런데 리민수가 바로 그놈에게 속히우다니…
《그러면서 그애는 부인님의 남편과 자기의 아버지를 죽인 놈이 바로 그 <동양의 사꾸라>인 마에다 사부로라고 썼더군요.》
너무 뜻밖의 소식이여서 부향녀는 선뜻 믿을수 없었다.
《예? … 아니, 그럴수 없어요. 마에다 사부로는 절대로 그런 비렬한짓을 할 사람이 아니예요.》
그럴수 없다. 어떻게 그가 악착스럽기 그지없는 《동양의 사꾸라》일수 있단 말인가. 남편의 은혜를 오늘날까지 못 잊어하던 사람이였다.
한스는 난처한 기색을 지었다.
《물론 부인님의 립장에 서서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며칠동안 제가 그 말을 꺼내지 않은것입니다. 하지만 부인님은 누구인가 자기의 콤퓨터 전자우편주소로 <나까이리력서>를 보내왔다는데 대해서는 인정하시겠지요?》
《네, 교수선생님은 설마 그것을 보낸 사람이 진미라고 말하시려는것은 아니겠지요?》
한스는 헌헌한 웃음을 지으며 부향녀의 두손을 꼭 잡았다.
《그렇답니다. 그 주인공이 바로 그애랍니다. 제가 부인님께 드린 지도들도 사실은 그애가 보낸것이랍니다.》
《아니, 그애가요? …》
《이번에 리민수의 딸이 정말 큰일을 했습니다. 제가 부인님께 드린 우리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내놓은 옛 지도들중에도 독도가 조선의 령토로 표시되여있지만 실은 그가 보낸 지도는 력사가 더 오랜것들입니다.》
《그런걸 난! …》
《사실 진미는 력사문제때문에 부인님에게 피해를 주고 파괴된 제 집안과 그로 하여 자기가 겪은 불행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부인님의 앞길을 그토록 막아나섰던것입니다.》
《! …》
《그렇지만 자신은 물론 병원까지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일본의 력사외곡책동을 반대해나서는 부인님의 모습앞에 깊은 감명을 받은 모양입니다.》
한스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모든 사연을 설명해주었다.
리진미는 부향녀네가 작성하는 론문에서 제일 걸린 고리가 바로 《나까이리력서》와 미국의 어느 한 대학에서 공개했던 력사지도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자기에게 아버지의 고향을 되찾아주고 조선사람의 넋을 심어주기 위해 애쓰는 그 고마움에 자신이 무엇이라도 보태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스승과 자기가 알고있는 미국과 일본의 고위인물들에 선을 놓았던것이다. 이렇게 되여 얻은 《나까이리력서》를 지향숙의 콤퓨터 전자주소록으로 발송했던것이다. 그와 함께 미국에서 공개했었다는 력사지도를 구해 한스 베르메트를 통해 오늘 이렇게 부향녀의 손에 들어가게 했다. 자기의 죄많은 행동으로 부향녀앞에 나설수 없는 그였다.
《부인님, 난 사실 이번에 조선사람들에 대해서 다시금 알게 되였습니다. 비록 북과 남으로 갈라졌지만 자기의 력사와 령토를 지켜나선 그 민족의 뜨거운 열정과 힘을 말입니다.》
부향녀는 깊은 감명에 젖어있는 한스를 바라보았다.
《령토가 갈라졌다고 해서 조선민족의 얼과 피도 갈라지겠습니까.》
《옳은 말씀입니다. 비록 조국과 멀리 떨어져 해외에서 살고있지만 주저와 동요를 모르고 힘을 합쳐 자기 민족을 지켜가는 그 모습이 정말 부럽습니다.》
부향녀는 한스 베르메트가 이토록 흥분에 젖어있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이윽고 한스는 긴장된 어조로 말했다.
《사실 오늘 아침 리진미가 전화로 마에다 사부로가 지금 일본으로 입국하는 부인님을 하네다비행장에서 체포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던지 부인님이 도꾜로 돌아오는 시간을 지체시켜달라고 신신당부하더군요.》
부향녀는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어둠속에 묻혀있던 두 인물의 실체가 서서히 자기의 자태를 드러내놓는것 같았다. 살얼음장처럼 엷고 쌀쌀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드는 마에다 사부로, 어지럽게 채색된 정신과 육신을 버리고 자기의 본태를 찾아가는 리진미의 얼굴이다.
마에다 사부로! 네놈이 그렇듯 간특하고 교활한 놈일줄은 몰랐구나. 그대의 벗인체 하는자가 훨씬 더 위험하다는 말의 의미를 내가 망각하고 살았구나. 만날적마다 흘리는 그 눈물속에 칼이 숨겨있을줄은…
《그래도 래일 떠나실 결심입니까?》
한스의 물음이였다.
부향녀는 자기의 목소리에 힘을 실으며 또박또박 대답했다.
《전 가야 합니다. 설사 마에다 사부로가 그물을 치고 기다린다고 해도 전 그속으로 뛰여들어가야 합니다. 그들이 아무리 교활하고 음흉한 술책을 쓴다고 해도 전 이 모든것을 일본사람들앞에, 세계인민앞에 공개하고 폭로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내 조국의 력사를 지키고 그 살점을 수호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한스는 부향녀를 바라보았다. 척 보기에는 어디서나 볼수 있는 아시아의 평범한 늙은 녀인에 불과했다. 백발을 인 얼굴에 얼기설기 고랑을 지은 주름발들, 단아한 몸가짐… 유럽인에 비해 너무도 체소한 그의 늙은 몸에서 어떻게 그렇듯 불의와 타협을 모르고 강인하게 맞받아나가는 힘이 분출되는지 알수 없었다. 이제는 인생을 마무리할 나이지만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지구상에 드리운 검은구름을 밀어내려고 자신을 초불처럼 깡그리 불태우고있는 그의 모습앞에 머리가 숙어졌다.
《그럴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래일 저와 함께 도꾜로 갑시다.》
《교수선생님! 그건? …》
한스의 얼굴에는 자그마한 가식도 엿볼수 없는 웃음이 피여있었다.
《제 언제인가 내 인생의 토막이 어린 그 땅에 한번 가고싶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마 이번 길이 내 일생에서 마지막으로 도꾜를 밟아보는 걸음으로 될겁니다. 죽기 전에 그곳에 가서 옛 친지들의 묘소도 찾아보고 그들의 자손들을 한번 만나보는게 제 소원입니다. 그리구 부인님과 함께 한 이번 걸음에 력사를 마음대로 수정하는 일본의 력사학자들에게 동방력사를 전문으로 해온 이 한스 베르메트의 솔직한 견해에 대해 밝히고싶단 말입니다.》
한스는 비록 년로한 몸이지만 부향녀를 마에다 사부로의 마수에서 구원하고싶었다.
그들이 호텔에 이르니 뜻밖에도 김경아가 기다리고있었다.
《아니, 네가 어찌된 일이냐?》
며느리는 사연을 터놓았다.
《어머님의 병이 걱정된다고 하면서 아버지가…》
눈굽이 쩌릿해났다. 언제나 매사에 심중하게 자기 일에 남모르게 관심을 돌리고 떠밀어준 김성진이였다.
《원 참, 부위원장동지두…》
부향녀는 김경아에게 한스를 소개했다.
《참, 인사해라. 내가 말하던 한스 베르메트선생님이시다.》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어머님을 통해 많이 들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존경해온 선생님을 이렇게 뵈오니 정말 기쁩니다.》
《제 며느리랍니다. 한스선생도 알고계시겠지만 우리 도꾜도 총련지부 부위원장동지의 따님이예요.》
얼떠름해있던 한스는 그제서야 얼굴에 반가운 기색을 지으며 김경아의 두손을 잡았다.
《아, 김성진! … 그 사람에게 이렇듯 동양의 녀신같은 아름다운 따님이 있었단 말입니까. 이거 정말 반갑습니다.》
그는 이윽토록 그를 바라보다가 부향녀에게 눈길을 돌렸다.
《래일 떠나시겠다니 오늘은 편히 쉬십시오. 제 아침 첫 시간에 호텔로 오겠습니다.》
한스와 헤여진 부향녀는 호텔방에서 김경아가 이곳으로 오게 된 경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었다.
무로우 고이찌로는 부향녀가 위험을 무릅쓰고 베를린으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기의 어머니를 위해서도 또 자신을 위해서도 선뜻 결심을 못 내리던 일에 발을 들여놓았다. 하여 그는 자기가 지금까지 벌려온 일본의 력사외곡과 그 위험성에 대해서, 마에다 사부로의 죄행이 서술된 일기장을 언론계에 공개하는 량심선언을 발표하였던것이다. 인간의 량심과 진정한 애국심이 반영된 그의 글은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무로우가 인제야 제모습을 찾았구나.》
부향녀의 눈가에는 다미꼬와 유끼오의 얼굴이 떠올랐다.
김경아가 창가를 내다보는 부향녀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어머님이 이곳으로 떠난 이틀후에 미국에서 살고있는 재미동포 한분이 찾아왔댔어요.》
《재미동포가?! …》
《예, 그는 자기는 진미의 부탁을 받았다고 하면서…》
부향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며느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일본에 도착한 재미동포는 고명철을 찾아왔다.
《그러니 우리 회사와의 합작을 원하신다는겁니까?》
《그렇습니다. 전 사장님의 어머니가 년로하신 몸으로 조국의 력사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고계신다는 진미의 말을 듣고 감동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아니, 그럼?! …》
고명철은 무슨 말인지 도무지 리해되지 않았다. 너무도 쌀쌀한 태도에 무슨 녀자가 저렇게 되여먹었을가 하고 경멸해왔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이런 의로운 행동을 할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 그렇게도 달라지는가…
재미동포는 의혹에 감겨있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사장선생, 설사 성격과 생김새는 서로 달라도 종당에는 조국이라는 그 이름앞에는 한마음을 가지게 되는게 우리 조선사람들이 아닙니까. 비록 해외에 흩어져 산다고 해도 서로 제 민족끼리 정과 뜻을 합쳐나가려는게 바로 우리들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도 이 걸음을 한거구요.》
고명철은 격정에 겨워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고맙습니다. 저도 이번에 우리 동포들의 힘이 얼마나 큰가 하는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였습니다.》
《그거야 바로 자기의 진정한 조국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만 분출될수 있는것이지요.》
부향녀는 멀리 밤하늘가를 바라보았다. 크고작은 별들이 빛을 발산하고있었다. 그속에 리진미의 얼굴이 떠올랐다.
진미야, 네가 끝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