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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다 사부로는 2층으로 된 양옥집에서 살고있었다. 그는 집위치를 꼭 대학주변으로 정했다. 대학교수들이 많이 살고있는 이곳에서 사는것은
그대로의 속셈이 있어서였다. 대체로 정계의 인물들이란 사람들의 눈앞에 많이 나서야 하므로 항상 그들의 관심
사에서 살게 된다.
마에다는 남들의 눈앞에 나서는것이 딱 질색이였다. 그래서 남의 일에는 무관심하고 오직 자기 일에만 신경을 쓰는 학자들속에 끼워있는것이 편했던것이다.
마에다 사부로는 머리에 《하찌마끼》(좁고 긴 천으로 이마를 싸매는 남자수건의 일종)를 두르고 다비(일본사람의 버선)를 신은 발로 주단우를 규칙적이면서도 힘있게 짚어갔다. 그는 얼굴에서 흐르는 땀줄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격검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젊은 시절부터 가라데 3단소유자에 훌륭한 격검명수였다. 버릇처럼 굳혀진 이 훈련은 일흔이 넘은 오늘날까지 변함없는 일과로 지속되였다.
일기쓰기와 격검훈련은 그의 고질적인 습관이였다. 오늘 훈련은 여느때와 그 의미가 달랐다. 요즘 모든 생활이 키를 잃은 돛배처럼 갈팡질팡 흘러가는것만 같았다. 낮이나 밤이나 잠자리에 눕기만 하면 같은 악몽이 반복되군 한다.
하얀 옷을 입고 머리태를 길게 풀어헤친 녀인들이 나타나 그의 손을 막무가내로 잡아 끌어당기는가 하면 히사즈네까지 제 잔등을 밀어간다.
《이봐! 마에다 사부로, 넌 자기의 죄악을 숨기기 위해 옛 부하이며 친구인 나를 독살했어. 그러니 너는 더이상 이승에 있을 존재가 못되는 너절한 놈이야! 어서 이 지옥의 기름가마에 들어와.》
그때마다 그는 《아니야, 안돼! …》 하며 잠자리에서 소스라쳐 일어나군 했다. 그러면 온몸은 땀으로 화락 젖어있었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켜 악몽을 잊으려고 하면 불현듯 일기장 생각이 떠오르군 한다. 생각할수록 무서운 일이다. 일기장! 그때 오끼나와에서 한줌의 재로 되여 흩날렸다고 아직 누구도 장담할수 없었다. 잊을수 없는 그날 밤, 다미꼬라는 년을 강간하다가 그의 방에 흘려 폭격에 타버린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것이 누구의 손에라도 들어가는 날에는 모든것이 끝장이다.
항상 꿈속에서 나타나는 그 일기장으로 마음이 불안했다.
불미스러운 잡생각을 털어버리려고 오늘 이렇게 칼을 들고 나섰다.
《획- 획-》
허공을 헤가르는 은빛검에는 마에다의 기백이 흐르고있었다. 몸에 푹 배인 격검동작들을 해나가던 그의 눈가에는 무엇이라 이름할수 없는 분노가 번뜩이였다. 눈동자에선 푸른 섬광이 일었다.
부향녀, 네년이 그렇게 독할줄은 몰랐구나!
마에다는 다 죽은것이나 다름없는 손녀앞에서 그가 다시는 영영 일어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제 남편의 다리를 자르던 그때처럼 변함없이 독한 녀자였다.
《야앗!-》
그는 칼을 직선으로 들고 앞으로 돌진했다. 이번에는 방안의 공기를 토막내듯 여러번 내리쳤다. 이어 그는 지친듯 주단우에 풀썩 주저앉았다. 가슴은 후두둑거리며 가쁘게 오르내렸고 목구멍에선 겨불내가 나는듯 했다.
허, 이젠 늙긴 늙었구나! 이 《동양의 사꾸라》도 이젠 사그러질 때가 되였는가?
벌렁 드러누워 천정을 바라보며 한동안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의 입가에서는 노래소리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이미 구일본군에서 널리 불리워진 《일본륙군나까노학교교가》였다.
이윽고 어정어정 일어나 쏘파에 기댄 그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쓰거운 웃음이 흘러나왔다. 자신에 대한 참담한 비양조이기도 했다. 이어 그는 버릇처럼 하오리의 팔소매주머니에서 하얀 비로도천을 꺼내 검을 천천히 닦았다. 반쯤 열어놓은 차광막사이로 흘러드는 빛에 검은 푸른빛을 발산했다.
그 검은 사무라이출신인 할아버지가 쓰던것이였다. 마에다가문의 둘도 없는 가보이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1866년 명치유신후 이 칼을 들고 1872년과 1873년에 걸쳐 류뀨왕국에 대한 강탈에 적극 참가하여 그곳을 지배하는데 앞장섰다. 1874년 여름에는 대륙침략을 위한 명치정부의 첫 일환으로 광신적인 《정한론》자인 사이고 다까모리의 동생인 사이고 쯔구미찌의 지휘밑에 진행된 대만침략에서 사무라이의 정신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할아버지는 타민족의 피가 스민 이 검을 자기 가문의 《가보》로 마에다 사부로의 아버지에게 넘겨주었다.
아버지 역시 할아버지의 유언대로 10대의 나이에 벌써 가문의 명성을 이 칼에 피로 새겨넣었다. 그는 조선에 건너와 일본정부의 지시로 1895년 8월 서울주재 일본공사인 륙군중장 미우라가 직접 지휘한 조선봉건국가의 명성황후살해작전에 뛰여들었다. 그는 자기 가문의 《가보》엔 응당 조선황후의 피도 묻어야 한다고 하면서 미친듯이 명성황후의 몸에 칼을 휘둘렀다. 그후에도 아버지는 이 검에 수많은 조선사람들의 피를 묻혔다.
그후 막내아들인 마에다 사부로가 라남 제19사단에 파견되여 조선으로 떠나갈 때 이 《가보》를 넘겨주었다.
《이 검은 너의 할아버지가 나에게 넘겨준 가문의 가보이다. 여기엔 우리 야마또민족의 정신이 흐르고있다. 그가 누구이든간에 일본의 리익과 부흥에 저촉되는자들은 모조리 이 검으로 쓸어버려야 한다. 이 정신은 너뿐만이 아니라 너의 자손들에게까지도 그대로 넘겨주어야 한다. 우리 일본은 기어이 아시아의 맹주, 아니 세계의 맹주로 되여야 한다. 알겠느냐?》
마에다 사부로는 가문의 이 《가보》에 먹칠을 하지 않았다. 그는 조선에 도착한 그날부터 반일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가 설사 늙은이건, 젊은이건, 어린이건 사정을 보지 않았다.
그후 마에다는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의 발발과 함께 대륙을 떠나 서남태평양의 마이아나제도의 어느 한 섬에 주둔한 《사꾸라》부대에 포병참모로 승격되여갔다.
그는 그때까지만 하여도 야마또민족의 운명과 대일본제국의 《대동아공영권》을 위한 길에서 자기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지를 지켜 가문의 이 《가보》를 빛내여왔다고 자부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본토사수를 위해 오끼나와에로의 철수와 그에 따르는 일본의 패망과 함께 빛을 잃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마에다 사부로는 단념하지 않았다. 언제이든 일본이 다시금 《부활의 시대》를 맞이할것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하여 그는 자기의 자식들과 손자, 손녀에게까지도 언제나 일본의 정신을 잊지 않도록 엄하게 교육해왔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승리한자에게는 과거를 묻지 않으며 설사 묻는다고 해도 아름답게 채색되여 전해
진다고…
문두드리는 소리가 울리더니 운전사가 나타났다.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그간 부향녀가 한스 베르메트와 가진 련계자료들을 다 종합했습니다.》
마에다는 부향녀가 력사자료들때문에 동방의 력사학계에서 명성이 있는 도이췰란드의 한스 베르메트와 련계를 가질것이라고 타산했다. 그래서 이미전부터 그들의 국제전화, 인터네트망을 통한 교신관계, 사적용무로 그 나라에 다녀온 인물들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
《그동안 별로 특별한것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운전사는 말꼬리를 흐리며 불안해했다.
《계속하게.》
《어제 부향녀가 한스한테서 온 초청장이란걸 받았다는겁니다.》
마에다의 두눈은 화등잔만 해졌다.
《뭐라구, 무슨 초청장이래? …》
《예, 이제 며칠후에 베를린에서 진행되는 세계력사학자들의 모임에 초청된것 같습니다.》
《뭐야?! 그게 어떻게 그년의 손에 들어갔어, 엉?》
마에다는 책상을 쾅하니 내리쳤다. 그 서슬에 물고뿌가 바닥에 떨어졌다. 숱많은 눈섭이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그만큼 두사람사이의 련계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돌리라고 강조했는데 이렇게 빈틈이 생기게 하다니…
《저, 알아보니 도이췰란드의 한 휴양객이 가져왔다고 합니다.》
마에다는 분을 누르지 못하고 계속 큰소리를 쳤다.
《너희들은 언제 봐야 눈을 뜨고도 제 코를 떼울 밥통들이야. 밥통! …》
운전사는 얼굴이 새까맣게 죽어 허리를 연신 굽신거렸다.
《예, 예… 정말 죄송합니다.》
마에다는 괴로운 숨을 내쉬며 눈귀를 접었다.
이제는 자기의 운명이 경각에 이르렀다는데서 오는 고통이였다.
부향녀는 분명 베를린에 가서 우리 일본의 력사외곡에 대해 말할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년이 이 일본바닥에서 우리의 국책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더는 울리지 못하게 하라는 당국의 지령을 어긴 나는 뭐가 되고마는가? 갈데 없는 히사즈네의 운명이지…
이러한 생각에 그는 온몸을 으스스 떨었다.
쏘파에 기대앉은 그의 정기없는 눈가에는 예수가 선언한 불화살이 날아오고있다.
준엄한 철추를 내리며 무자비하게 육박해오고있었다. 그것은 결코 예수의 심판이 아니였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다가서는 부향녀였고 리진미였다.
네년들이 이 《동양의 사꾸라》를 찍어 넘겨보겠다구!
마에다는 어금이에 힘을 주었다. 흘러간 날들이 떠올랐다.
오끼나와에서의 패전은 그에게 생의 호흡을 앗아가기 시작했다. 부하병졸들에게 《천황》페하를 위해서 사무라이의 정신으로 할복할것을 강요했다.
그도 가문의 《가보》에 자기의 피를 묻힐 결심으로 날벼랑우에 서있었다.
아, 우리 일본이 이렇게 숨진단 말인가?
절망과 탄식속에 군도를 꺼내던 그는 다시 두눈을 흡떴다. 조상들의 령혼이 나타나 엄하게 꾸짖고있었던것이다.
《마에다 사부로! 너는 지금 사무라이의 얼에 먹칠을 하고있다. 그렇게 쉽사리 목숨을 끊어버리는게 우리의 가풍이 아니다. 열번 쓰러지면 백번을 다시 일어나서라도 이 일본의 꿈을 실현해야 한다. 그게 바로 야마또민족의 기질이라는것을 잊었는가?》
살아야 한다. 살아서 기어이 저 대륙을 사꾸라꽃으로 뒤덮게 해야 한다!
이를 사려물고 마에다는 병졸의 옷을 입고 자그마한 쪽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사나운 파도는 배를 산산이 부셔놓았고 그는 판자쪽에 매달려 운명의 경각에서 헤염치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오끼나와의 자그마한 무인도에 있던 고성길과 리민수가 그를 구원해주었다. 하지만 은인이라는 그들은 하나로 융합될수 없는 조선사람들이였다. 전후 저들의 력사를 지킨다고 하면서 다리 하나 없는 몸으로 뛰여다니는 고성길이 눈에 든 가시처럼 여겨졌다.
그리하여 마에다는 그들사이에 쐐기를 박을것을 결심했다. 다른 놈을 내세워 속대가 약한 리민수가 력사자료를 팔게 했다. 그 대가로 많은 량의 돈과 약, 차를 보냈다. 차에는 항주제라는 독약을 타서 포장하게 했다. 분명 고성길이 그 집에 나타날것이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던것이다.
다리를 자른 후 심장이 나빠져 고생하는 그가 항주제의 타격을 이겨내지 못할것이라 타산한것이다. 설사 예측할수 없는 일이 일어나 그것을 남이 마신다고 해도 무방했다. 이랬든저랬든 죽는것은 조선사람일테니까.
그런데 하늘이 그를 도왔다. 자기가 바라던대로 고성길이 그 차를 마시고 리민수의 집에서 죽은것이다. 드디여 두집사이에는 불신이 두터운 얼음벽처럼 쌓이는듯싶었다.
고성길에 대한 모살이 성공하자 그는 경찰의 수사가 적극적으로 진행될수 없게 방해했으며 리민수가 불안하여 그까지 독살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수십년동안을 《동양의 사꾸라》라는 정체를 숨겨온 그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 삭은 바자틈에 노란개 주둥이내밀듯 생뚱같이 자기의 옛 부하인 히사즈네가 로망하기 시작했다. 죄많은 한생을 참회한답시고 글을 쓴다는것이다. 그것이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피로 얼룩진 자기의 모색이 고발된다는 생각에 히사즈네도 항주제를 리용해서 죽여버린 그였다.
용서하라구! 자넨 인생말년에 우리 일본의 번영에 암초로밖엔 되지 않네. 그러니 나도 별수 없구만. …
이제는 자기의 정체를 영원한 흑막속에 묻어버렸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데 리진미가 문뜩 히사즈네의 참회록을 훔쳐갈줄이야… 게다가 또 부향녀까지…
그렇지만 그렇게는 절대로 안될거다. 이 마에다 사부로가 두눈을 뜨고있는 이상 네년들에게 가면을 쓴 승냥이보다 그것을 벗어버린 승냥이가 더 사납다는걸 알게 해줄테다!
마에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에 잡은 지팽이로 바닥을 탕탕 두드리며 지시했다.
《부향녀가 절대로 도이췰란드에 날아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알겠는가?》
《알았습니다.》
《그리구 아직 리진미의 행처는 찾지 못했겠지?》
《예, 제 생각에는 그년이 혹시 미국으로…》
마에다는 운전사에게 몸을 돌리고 쏘아보았다.
《아니다. 그년은 내가 살아있는 한 절대로 일본을 떠나지 않을것이다. 난 그년이 세계언론계에 내 이름을 올리는것을 절대로 바라지 않는다.》
《예, 선생님의 뜻을 알겠습니다.》
마에다 사부로의 두눈에는 살기가 번뜩이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