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도시에 비해 산골바람은 한결 서늘했다. 시원한 바람은 참억새밭을 휘여누르며 잔잔한 파도를 일으키고있었다. 그 파도를 넘어 길게 뻗어간 산맥이 바라보였다. 고마당산, 호고사끼산, 우시마시산 등이 높다랗게 머리를 쳐들고있다.

맑게 개인 하늘아래에 저마끔 키돋움으로 솟은 산들의 높고낮은 릉선이 뚜렷이 안겨들었다. 사방에 둘러싸인 높은 산들은 어느것이나 다 해발 천메터를 넘었고 골짜기는 칼로 깊숙이 베여놓은것처럼 패여들어갔다. 그사이로 맑은 산골물이 흘러내렸다.

조성호는 기묘한 산천의 전경에 매혹되여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선생님, 여기는 옛날부터 <스님들의 나라>라고 했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부향녀는 손채양을 하고 산발들을 훑어보았다.

《나도 처음 듣는 소리네만 산세들이 묘해서 사찰들이 많이 있었을것 같은 느낌이 드는구만.》

이윽고 그들은 언덕아래에 있는 마을어구에 들어섰다.

시내와 멀리 떨어진 궁벽한 산골이라 살림집들의 형편은 말이 아니였다. 양철판으로 지붕을 올린 집들이 대부분이였다.

리진미가 써준 주소가 적힌 종이장을 들고 어느 한 늙은이를 만나 본 조성호가 달려왔다.

《선생님, 이 마을이 맞답니다. 우리가 찾는 집은 저기 세번째 집이구요.》목적지에 도착하고보니 그도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였다.

《에- 에! 산골은 역시 산골이야.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산다는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데…》

그는 손부채질을 하며 마을을 휘둘러보았다.

《산세가 아무리 험하고 땅이 척박해도 정이 들면 다 살게 되는 법일세.》

《하긴 그런것 같기도 합니다. 여하튼 여긴 시내와 멀리 떨어져서 사람단련을 받지 않아서 좋긴 좋을것 같은데… 하지만 나한테는…》

《임자 같은 젊은이들이야 이런 곳에 마음붙이기 힘들지.》

부향녀는 조성호가 가리킨 집마당에 들어섰다.

첫눈에 일손이 모자라는 집이라는것이 알렸다. 진흙으로 대충 땜질한 토방, 코김에도 훌 날려갈것 같은 낡은 판자울타리…

그래도 사람이 사는 집이라 터밭에는 갓 옮겨진 배추들이 한창 독을 쓰고있었다. 바짝 마른 강냉이이삭들이 서로 오사리로 얽혀져 처마에 매달려있었다. 두엄더미를 헤집던 닭들이 가래맺힌 소리를 내며 흩어졌다.

《계십니까?》

대답이 없었다. 자물쇠고리가 비여있는것으로 보아 분명 주인이 있을것 같았다.

사람이 살고있다는감은 들었지만 왜 그런지 마음은 썰렁했다.

조성호가 좀 큰소리로 웨쳤다.

《저어, 주인님 계십니까?》

그제서야 방안에서 콜록콜록하는 녀인의 기침소리가 들렸다.

《게 누구시우?》

이윽고 방안문이 열리더니 머리가 희슥희슥한 늙은 녀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밭고랑같은 주름발들이 자리잡은 그의 얼굴에서는 피기를 찾아볼수 없었다. 잠자리는 그냥 펴져있었다. 아마 철바뀌는 시기라 감기에 든 모양이다.

부향녀가 나직한 음성으로 물었다.

《여기가 력사학자인 무로우 고이찌로선생의 어머니가 사시는…》

문뜩 그의 표정은 굳어졌다. 어디선가 꼭 본듯 한 얼굴이였다.

늙은이는 주름진 이마살을 찌프리며 랭담한 기색을 보이고는 문을 닫았다.

《여기에는 그런 사람이 없수다.》

《유끼오!-》

부지불식중에 부향녀의 입에서 튀여나간 말이였다.

그 소리에 늙은이는 닫았던 문을 다시 열었다. 몹시 놀란 표정이다. 주름발들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그의 눈빛에는 의혹이 잔뜩 실려있었다.

《유끼오! 나, 부향녀예요.》

늙은이는 입속말로 《부향녀? …》 하며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이마살이 펴졌다.

《아니, 이게 향녀! … 그래, 맞아… 부향녀가 맞구만.》

두 늙은이는 서로 손목을 부여잡은채 방안에 한동안 앉아있었다.

밖에서는 울바자를 수리하는 조성호의 망치질소리가 울렸다.

《그러니 무로우가 바로 유끼오의 아들이였군요!》

유끼오는 수건으로 눈굽을 찍었다.

《그래, 에미야 에미지. 그렇지만… 그런데 임자가 어떻게 우리 고이찌로를 알고있나?》

부향녀는 모든 사연을 다 터놓았다. 지금까지 하루에를 키워온데 대해서, 무로우와 하루에의 관계에 대해서…

유끼오의 눈빛은 놀라움과 감동으로 반쯤 커졌다.

《그러니 아직까지 다미꼬의 딸을 키워왔단 말인가? 어쩌면! …》

그는 아들로부터 하루에라는 녀자에 대해 들은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바로 다미꼬의 딸이라고까지는 생각 못했다.

《사실 나도 불행하게 죽은 다미꼬에게 의지할데 없는 어린 딸이 있다는것은 알고있었지만 그애를 돌볼 생각은 못했어. 더우기 전후 향녀가 어린 하루에를 키우는 모습을 보면서도 단지 일시적인 동정심에서 오는것으로만 여겼지. 그런데 일본사람도 아닌 조선사람이 그애를 키웠다니…》

유끼오의 눈굽은 흐릿해졌다.

부향녀는 가책에 잠긴듯싶은 그를 부드러운 어조로 어루만져주었다.

《제 몸도 건사하기 힘든 그 시절에 어디 남의 자식을 돌볼 경황이나 있었나요. 더우기 유끼오야 전선에서 돌아온 남편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다가 이 시골로 돌아오지 않았나요.》

유끼오는 씁쓰레한 미소를 지었다.

《그 사람은 내가 이곳에 온 다음에도 얼굴 한번 내밀지 않았어. 그후 술에 취해서 돌아다니다가 매맞아 죽었다는 소식만…》

이윽고 그는 괴롭게 한숨을 톺았다.

《난, 지금도 그 악몽같은 세월이 꿈에 나타나 밤을 눈물속에 새우군 한다네. 사실 그때 향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이 유끼오의 운명이 어떻게 되였겠나.》

그는 수십년전의 날을 되새기듯 미간을 쪼프렸다.

6월에 들어서면서 일본군은 미군에 의해 오끼나와를 서서히 점령당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군부당국에서는 주민들과 병사들에게 할복자살을 강요하였다.

유끼오도 그 비참한 죽음을 면할수 없는 신세가 되였다. 하지만 도꾜의 시집에 맡기고 온 어린 아들 생각에 목숨을 함부로 던질수 없는 그였다. 파괴된 공장에서 뛰쳐나온 그는 본토로 향하는 배들이 몰켜있는 부두가에서 기회만을 노리고있었다. 그러나 운명은 그에게 도저히 삶이라는 바줄을 쥐여주려고 하지 않았다.

이때 부상당한 장교들을 후송하려고 부두가에 나왔던 부향녀가 그를 발견하였다.

유끼오로부터 모든 사연을 들은 부향녀는 주저없이 그에게 의사복을 한벌 입혀주었다. 그리하여 그는 의사로 가장하고 부향녀와 함께 죽음의 섬에서 벗어날수 있었던것이다. …

《그러니 그때 도꾜에서 떠난 후 지금까지 이 산골에서 살았군요?》

유끼오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렇지 않으면 별수 있나. 아들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그게 마음이 편하네. 더우기 나는 그 도꾜라면…》

그는 마치 소름이 끼친다는듯 몸을 떨었다.

그의 언행을 여겨보는 부향녀의 생각은 깊었다. 꼭 말 못할 사연이 있는것 같았다.

혹시 다미꼬의 죽음과 련관된것이 아닐가?

하지만 유끼오는 도저히 부향녀의 이 의문을 풀어줄념을 하지 않았다.

《향녀, 난 임자가 우리 무로우와 하루에의 문제때문에 이렇게 먼길을 걸을줄은 몰랐어. 안착된 가정이 없이 외롭게 사는 자식을 걱정하면서도 어쩌지 못하는게 이 에미인데…》

《유끼오, 우리 세대야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살겠나요. 그렇지만 자식들이야 우리처럼 살게 할수는 없지 않나요.》

《하긴 향녀한테 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어떻게 하루에를 키웠겠나. 악한 일은 쉽게 할수 있지만 좋은 일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구 했어. 하물며 제 민족이 아닌 일본녀자를 키우자니 마음고생이 오죽했겠나.》

부향녀는 허리를 숙이는 유끼오를 부축했다.

《이러지 말아요. 난 하루에가 다시는 제 부모들처럼 불행한 운명을 겪지 않기를 바랄뿐이예요.》

《고맙네, 고마워… 난 하루에가 내 집 며느리로 된다면 마음편히 죽을것 같네.》

산천의 저녁은 빨리도 찾아왔다.

멀고 뿌연 깊은 하늘에는 방금 별들이 나타났다. 소란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허위단심 달음쳐온 둥근달은 이젠 기진한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그러다가 푸른 잎사귀들이 번창한 나무에 일시 얼굴을 가리웠다. 나무들은 음울한 거인들같이 서있었는데 숭숭하게 트인 잎의 짬들은 마치 수백수천개의 눈망울같기도 하고 무덕무덕 덧쌓인 검은 그림자같기도 했다. 나무잎새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다른 집들의 창문가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불빛들은 불그스름한 점들을 이루고있었다. 이 저녁은 유하고 고요하였다.

조성호는 늙은이들에게 아래목을 내여주고 건너방에서 코를 골고있었다.

잠자리에 나란히 누운 두 늙은이는 도저히 잠에 들수 없었다. 비록 오가는 말은 없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수많은 언어들이 흐르고있었다.

유끼오는 창가로 흘러드는 달빛이 어린 천정을 바라보고있었다. 비록 눈길은 그곳에 주고있었지만 마음은 심란하기만 했다.

옆자리에 누운 부향녀가 자기에게 강렬하게 요구하는것만 같았다.

《나는 지금도 하루에에게 자기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정확한 대답을 주지 못하고있어요. 난 유끼오가 가슴속에 말 못할 사연을 안고있다는것을 알고있어. 그래 언제까지 그것을 숨기고 살겠나요?》

유끼오는 길게 한숨을 내그었다.

잊어버리려고, 깨끗이 지워버리려고 해도 자꾸만 되살아나는 마음속 상처가 머리를 쳐들었다.

세월의 흐름은 사람들의 기억에 망각의 안개를 씌우기마련이다.

그러나 지금 유끼오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상처는 그의 육신에서 멀어지지도, 사라지지도 않으면서 인체를 서서히 말리워가는 병원체나 같았다.

다미꼬, 이젠 더이상 숨길수 없구나!

유끼오는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맡에 있는 사발의 물을 꿀꺽꿀꺽 들이켰다.

《몸이 몹시 불편한게 아니예요?》

부향녀가 묻는 말이였다.

《잠이 오지 않아서…》

유끼오는 자리에 앉아 멍하니 창가에 비낀 달빛을 바라보았다.

《향녀, 우리 잠간 밖에 나가자구.》

두 늙은이는 토방에 나와앉았다.

멀리서 밤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밤에 우는 새들이라 모두 한모양으로 처량하고 청승맞은 소리를 내는듯 했다.

《유끼오, 무슨 일이예요?》

부향녀를 바라보는 유끼오의 눈빛은 정기없이 흐리터분했다. 그러다가 불쑥 그의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부향녀는 놀라운 목소리로 그를 위안했다.

《이러지 말아요. 무슨 일인지 어서 말해요.》

《향녀, 난 지금까지 다미꼬의 죽음에 대해 숨겨왔어…》

부향녀는 그를 일으키며 진정시켰다.

《다미꼬야 폭격에 잘못되지 않았나요. 그런데? …》

《그래, 폭격에 시신도 남기지 않았지. 그렇지만…》

한동안 마음을 가다듬은 유끼오는 50여년전의 일을 터놓기 시작했다.

… 1945년 3월말, 오끼나와섬에는 패망을 앞둔 일본군장졸들의 무리가 본토방위라는 미명하에 떼를 지어 밀려들었다. 그 무리들은 인간의 리성을 상실한 야수들이였다. 대륙침략에 나섰다 제땅으로 쫓겨온 그들에게는 오로지 탐욕만 남아있었다. 민가에 달려들어 강탈로 배를 불리였으며 녀자라고 눈에 뜨이면 떼를 지어 집단륜간을 거리낌없이 감행하였다. 오끼나와주민들은 미군의 무차별적인 공습으로 죽음의 공포속에서 살아야 했고 제 나라 군대라고 하는 야수들에게 짓밟히우는 2중굴욕으로 허덕이였다.

나하의 주변에 위치한 군수피복공장도 매일과 같이 공습과 포격으로 하여 안도의 숨을 내쉴 여지조차 없었다. 게다가 군부의 지시로 군복생산에 피눈이 되였다.

5월 중순 어느날 밤이였다.

유끼오는 밤교대시간이 되여온다는 의식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옆자리에 누워있던 다미꼬가 벌써 일어나 무엇인가 들여다보고있었다.

《벌써 일어났구나!》

유끼오는 그의 어깨너머로 들여다보았다.

다미꼬는 자기 사품궤짝을 열어놓고 그속에 들어있는 어린 처녀애의 옷들을 들여다보고있었다.

《넌, 또 딸생각을 하는구나!》

다미꼬는 길게 한숨을 지었다.

《벌써 2년째 그애의 얼굴을 보지 못했어. 살아나있는지…》

그의 말에 유끼오도 낯색을 흐렸다. 자기도 도꾜에 두고 온 아들 무로우 고이찌로의 생각이 났던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매일같이 자식들을 그리며 눈물을 흘리고있었다.

다미꼬의 경우는 더했다. 남편은 그가 이곳 군수공장으로 오기 전에 필리핀전선에서 전사했다. 게다가 친정어머니는 고질병으로 늘 침상을 떠나지 못하고있는 형편이였다. 그러니 집생각이 오죽하겠는가.

《다미꼬, 이제 며칠전에 너를 찾아온 조선처녀가 돌아오면 좋은 소식이 있을지 알겠니?》

유끼오는 그를 위안해주었다.

그러나 다미꼬의 안색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맥없는 숨만 내그었다.

《좋은 소식?! …》

그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니, 난 무서운 생각만 들어. 성한 사람도 살아가기 어려운 이 전쟁판에서 병든 어머니와 철없는 내 딸한테 무슨 좋은 소식이 있겠니.》

유끼오는 조심스레 다미꼬의 옆에 앉았다.

《다미꼬, 솔직히 난 요즘 막 무서워 죽겠어. 매일같이 숱한 사람들이 미군의 폭격과 포격으로 죽어가고있지 않니. 과연 우리가 살아날수 있을가?》

다미꼬는 괴로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도 그게 제일 두려워. 설사 내가 죽는다고 해도 이 옷가지들만은 꼭 우리 하루에한테 전해져야겠는데…》

그는 무릎우에 놓인 아이옷들을 쓸어만졌다. 그것들은 그가 이 군수공장에 끌려와서부터 지금까지 딸애를 만날 날을 그리면서 짬짬이 만든것들이였다.

《유끼오,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걸 꼭 그 부향녀라는 조선녀자에게 전해줘. 그는 도꾜에서 의학공부를 할 때 우리 집에 하숙하고있었단다.》

《됐다, 그런 말은 그만두자. 듣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누나. 난 산골에서 나서 살다가 도꾜에 시집온 촌녀자야. 그렇지만 사람은 다 제 팔자대로 산다는것은 잘 알고있어. 아무렴 우리한테 그런 불행한 신세가 태웠겠니…》

《그렇다면 오죽이나 좋겠니.》

이때 출입문이 벌컥 열렸다.

뜻밖에도 두명의 일본군장교들이 들어섰다. 소좌와 중위의 계급장을 단 장교들이였다. 그중 키가 좀 작아보이는 소좌는 그들에게서 몇번 군복을 접수해간 낯익은 장교였다.

다미꼬는 궤짝을 닫지도 못한채 옆으로 밀어놓으며 두손으로 앞가슴을 가리웠다. 잠옷은 그의 가슴을 반쯤이나 드러내놓고있었
던것이다.

《장교님이 이 밤중에 어떻게? …》

녀자침실에 무례하게 뛰여든 사내들로 하여 속은 왈랑거리기만 했다.

소좌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다가왔다.

《우리는 바로 당신들의 육체를 접수하려고 왔소. 그래, 거절하지는 않을테지?》

《그… 그건?! …》

유끼오는 그자의 말뜻을 음미하며 놀랐다.

상전과 함께 들어선 중위도 문을 안으로 걸며 걸탐스러운 눈길로 유끼오를 바라보고있었다.

다미꼬는 그들앞에 나섰다.

《황군의 장교에게 있어서 이건 너무도 무례한짓이 아닐가요?》

소좌의 안면근육은 무섭게 이그러졌다.

《뭐야!?》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주먹이 다미꼬의 얼굴로 날아갔다.

다미꼬는 《아!-》 하는 소리와 함께 침대우에 쓰러졌다. 그의 입귀에서는 선지피가 흘러나오고있었다.

《일본의 녀자라면 응당 제 나라를 위해 싸우는 황군에게 몸을 바칠 각오를 해야지. 우리가 무엇때문에 태평양에서 고전을 했는지 모르는가. 네년들의 엉덩짝이나 살지우자고 피를 흘린것이 아니다. 혀바닥을 놀리지 말고 옷을 벗으라!》

그자의 눈빛은 벌써 광기로 번뜩이고있었다. 군도와 메고 온 군용지도가방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던졌다. 그 서슬에 가방이 열리면서 안에 있던 책이 튀여나와 저쯤으로 밀려갔다. 이어 그자는 자기의 군복상의와 바지를 벗어버리며 중위에게 소리쳤다.

《중위, 넌 그년을 붙잡고있어. 다음 네 차례다.》

무서운 색욕에 미쳐날뛰며 다미꼬를 덮쳐드는 그자의 행위에 유끼오는 문쪽으로 뛰여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중위가 그의 몸을 후려잡고 비틀었다.

《순순히 가만있는게 좋아.》

유끼오는 몸부림을 쳤지만 사나이의 힘을 당할수 없었다. 그렇다고 소리를 칠수도 없었다. 오동나무잎처럼 넓고 큰 중위의 손이 그의 입을 우악스럽게 움켜잡고있었던것이다.

다미꼬는 자기의 옷을 벗기려고 날뛰는 소좌와 싱갱이질을 벌리고있었다.

침대앞에 놓여있던 나무궤짝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안에 있던 옷가지들이 마구 흩어졌다.

《안된다. 이 악마같은 놈아!》

그렇지만 그자는 성욕에 갈증이 든 색마처럼 마구 그의 옷을 벗겨내며 헤덤비고있었다.

다미꼬는 자기의 정조를 위해 손으로 소좌의 얼굴을 마구 허벼댔다.

《이 쌍년이!-》

장교놈은 악에 받쳐 두손으로 다미꼬의 목을 조이기 시작했다.

발버둥을 치며 항거하던 다미꼬의 힘은 점차 진해갔다.

변태적인 성욕으로 미친 소좌놈은 숨이 끊어져가는 다미꼬를 대상으로 자기의 수욕을 채우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중위놈에게 잡혀있는 유끼오에게로 다가왔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누워있는 다미꼬를 보는 유끼오는 금시 기절할것만 같았다.

《다미꼬!-》

소좌놈은 눈물을 흘리며 서있는 유끼오의 얼굴을 한손으로 움켜잡고 씨벌댔다.

《그래, 너도 저년처럼 죽는게 소원인가? 죽지 않으려면 어서 옷을 벗어, 벗으란 말이야.》

유끼오는 항거할수 없었다. 자기가 목격한 다미꼬의 처참한 죽음앞에 온몸은 풍을 만난듯 떨리기만 했다. 그는 무섭게 덮쳐드는 소좌의 상통에 질겁하여 두눈을 감았다. 차례진 숙명앞에 순종해야 한다는 공포감에 그의 낯색은 백지장처럼 질려있었다.

이때 아츠러우면서도 다급하게 울리는 공습경보의 싸이렌소리가 울렸다. 밖에서는 미군비행기들의 동음과 폭탄이 작렬하는 소리가 무섭게 울려왔다.

가까운 곳에서 쿵- 하는 폭발소리에 유끼오는 간신히 눈을 떴다. 그런데 조금전까지 자기의 옷을 벗기며 날뛰던 두 장교들의 모습은 간 곳이 없었다. 아마 폭격에 겁을 먹고 쥐새끼처럼 제 살구멍을 찾아 달아난 모양이였다.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이 흘러나왔다. 수개같은 놈들에게 자기의 정조를 더럽히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온몸이 나른해졌다.

또다시 울리는 폭발소리에 정신을 가다듬은 그는 어서 방공호로 대피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찢어진 옷섶을 바로잡았다.

다미꼬!

불현듯 솟구치는 생각에 유끼오는 침대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소좌놈에게 무참하게 강간당한 그에게로 기다싶이 다가갔다.

《다미꼬, 정신차려라, 정신을…》

허나 그는 이미 숨이 없이 서서히 식어가고있었다.

유끼오의 가슴은 발기발기 찢어지는것만 같았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딸애를 그리며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던 다미꼬였다.

《죽지 마, 이렇게 죽으면 너의 하루에는 어떻게 한단 말이냐?》

이때 폭탄이 튀는 소리와 함께 건물의 한쪽이 뭉청 내려앉는듯 한 소리가 울렸다. 이어 매캐한 연기냄새가 흘러들기 시작했다. 판자로 지은 그들의 합숙 한쪽이 폭격에 무너지고 화염에 휩싸였던것이다.

제정신을 차린 유끼오는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살수 있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다미꼬의 시신우에 그의 옷가지들을 덮어놓았다.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기는데 문뜩 발에 걸채는것이 있었다. 다름아닌 다미꼬의 사품궤짝이였다.

《유끼오,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걸 꼭 그 부향녀라는 조선녀자에게 전해줘.》

다미꼬의 부탁이 뇌리를 치자 그는 허둥지둥 널려진 옷가지들을 궤짝속에 마구 쓸어넣었다. 그러다 손끝에 묵직한것이 닿아 내려다보았다. 책이였다.

다미꼬에게 이런 책도 있었는가?

연기는 방안을 가득 채웠고 벌써 바짝 마른 나무들이 불에 탁탁 튀는 소리가 그에게로 접근하고있었다.

더 다른 생각을 할새없이 그는 책을 궤짝에 넣고 문밖을 나섰다. 그러다 다시 돌아섰다.

다미꼬, 네 시신도 처리하지 못하는 나를 용서해!

유끼오는 피눈물을 삼키며 방공호로 달려갔다.

폭격이 멎은 뒤 밖으로 나와보니 그들의 합숙은 통채로 무너져내려 불길속에 휩싸여있었다. 이렇게 다미꼬는 다른 사람도 아닌 일본장교의 손에 의해 학살되였으며 시신도 남기지 못했다.

생각할수록 날벼락을 맞은듯 하여 유끼오는 얼이 없었다. 일을 하면서도 자기가 뭘 하는지 가늠을 못했고 불길속에서 마구 걷어넣은 다미꼬의 사품을 정리할 생각도 못했다.

다행히도 다음날 아침 부향녀가 다미꼬를 찾아왔다. 그의 집소식을 가지고 왔던것이다.

《다미꼬, 그애는 어제 밤 공습때 그만…》

무엇인가 자꾸만 캐여묻는 그의 말에 대충 얼버무리며 유끼오는 그에게 다미꼬의 사품이 든 궤짝을 쥐여주고는 황황히 자리를 떴다. 더이상 마주했다가는 다미꼬가 당한 치욕을 제입으로 토설할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불행은 유끼오에게로 이어지고있었다.

그날 저녁 다미꼬를 죽인 소좌가 나타나 두눈을 부릅뜨고 다그어댔다.

《네년이 내 일기장을 건사했지?》

유끼오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얼떠름했다.

《장교님, 무… 무슨 일기장을 말입니까? 전, 정말… 아무것도…》

유끼오가 한동안이나 설명했지만 그자는 막무가내였다. 오히려 권총까지 빼들고 위협해나섰다.

《그 책을 내놓지 않다가는 너도 네 애새끼를 만나보지 못하고 죽을수 있다는것을 명심해!》

그 소리에 유끼오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변했다. 다미꼬의 비참한 죽음이 눈에 떠올랐다.

소좌는 재무지가 된 건물의 주변을 한참동안이나 돌아보다가 제풀에 지쳐 돌아가고말았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든 유끼오는 도저히 잠을 이룰수 없었다.

그 장교가 요구하는 일기장이란 과연 뭘가? 혹시?! …

다미꼬의 방에서 그의 사품을 나무궤짝에 넣을 때 피뜩 보았던 책이 생각났다. 그때 그는 그것이 다미꼬의 물건일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아침에 공장으로 찾아온 부향녀에게 넘겨주었다.

온몸이 오싹하니 젖어들었다. 입안은 말라들었고 손발이 가다드는것 같았다.

《그래, 네년이 내 일기장을 그년의 궤짝속에 넣어서 남에게 넘겨주고도 모른다고 해.》

금시 군도를 빼들고 달려들 장교놈의 상통이 유끼오를 괴롭혔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 사실을 말한다는것은 스스로 독주를 마시는 행위나 같았다. 사연을 알게 되면 그 미친 승냥이는 더 게거품을 물고 달려들것이다.

유끼오는 일체 그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른다고 시치미를 뗄 생각이였다. 그러면 그자도 자기의 물건이 다미꼬와 함께 재가 되였다고 믿을것이다.

아닌게아니라 이틀후 소좌놈은 또다시 유끼오의 침실에 나타났다. 처음에는 자기의 군용가방에 대해서 묻다가 나중에는 그에게 달려들어 변태적인 성행위로 자기의 수욕을 채웠다. 마치 먹이를 덮치는 승냥이처럼 연약한 녀인에게 달려들어 강제로 옷을 벗기고 마음대로 그의 육체를 롱락하였다.

비극적인 자기 운명에 한탄하면서도 유끼오는 딴 도리가 없었다. 인생의 지나친 처사에 엇서기를 단념한듯 한 체념의 그림자가 그의 육신에 서서히 깃들기 시작했던것이다. 항거는 너무도 무의미한것이라고 생각했다. 칼을 빼들며 미쳐날뛰는자앞에서 자신은 너무도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오직 살아서 아들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였다. 남편은 물론 아들에게 죄되는 일인줄 알면서도 묵묵히 그자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후 그자는 더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때의 치욕이 전후 도꾜에서 되살아날줄이야 어떻게 알았는가.

전쟁마당에서 살아돌아와 술미치광이로 되여버린 남편을 저주하며 간신히 살아가는데 거리바닥에서 그놈의 얼굴을 보았던것이다.

눈앞이 아뜩했다. 잠자리에 누우면 금시 그자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것만 같았다. 이름은 알수 없고 오직 자기를 《동양의 사꾸라》라고만 자칭해나선자였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남편의 횡포와 그자에 대한 공포심은 유끼오로 하여금 귀향길을 택하게 했던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도꾜를 멀리했으며 지금까지 단 한번도 걸음을 하지 않았다. 지어 무로우가 이전 안해와 결혼식을 할 때조차 몸이 불편하다는 구실로 걸음걸이를 회피한 그였다. 아들이 도꾜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을적에도 기쁨보다도 속으로 눈물을 흘린 그였다. 그렇지만 아들의 날개만은 꺾어버릴수 없었다.

남편과 아들에게 진 죄를 무엇이라고 변명할수도 없는 억울한 처지에 놓인 그였다. 그리하여 그는 누구에게도 자기의 깨끗치 못한 과거사를 꺼내놓지 못했다.

… 유끼오의 이야기를 듣고난 부향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원한 밤공기가 그를 휘감았다. 그렇지만 그의 마음은 도저히 진정할수 없었다. 눈앞에는 《동양의 사꾸라》의 일기장이 떠올랐다.

참혹한 성학대로 수많은 우리 조선처녀들을 학살한 네놈이! …

분노로 치를 떠는 그에게 유끼오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향녀, 그래 내가 이 수치스러운 과거를 어떻게 내 아들에게 말할수 있단 말인가, 응?》

부향녀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는 절절한 어조로 말했다.

《말해야 해요. 당신들이 당한 치욕은 성욕에 미쳐버린 그 <동양의 사꾸라>라는자와 그 졸개에 의해 감행된것이지만 20만에 달하는 우리 조선녀성들은 강제로 랍치당하여 일본군의 집단적인 성폭행대상으로 자기의 육체를 짓밟히고 무참히 학살되였어요. 바로 구일본당국이 조직한 반인륜적인 행위였단 말이예요. 그런데 당신의 아들인 무로우 고이찌로는 이른바 〈애국〉이라는 미명하에 자기의 량심을 속이며 흘러간 력사를 외곡하고있어요. 바로 구 일본에 의해 유린당한 수많은 나라 인민들뿐만아니라 제 부모들의 피눈물나는 과거에 대해서도 다 부정하고있단 말이예요.》

《뭐라구?! …》

유끼오는 두눈을 멍하니 뜬채 아무 말도 못했다.

부향녀는 무로우가 감행하고있는 력사외곡책동과 그 위험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었다.

《그래, 유끼오는 이 땅에서 또다시 자기들이 겪은 참화가 되풀이 될것을 바라지는 않겠지요. 알아야 해요. 바로 일본의 후대들은 자기의 선대들이 어떤 치떨리는 만행과 략탈정책을 벌려왔는가를 똑똑히 알아야 한단 말이예요. 그릇된 교육과 의식으로 자란 세대가 주인이 될 일본의 앞날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단 말이예요.》

유끼오는 풀썩 주저앉았다. 산골에서 살면서 오직 자식의 앞날만을 축복하여 기도를 드려온 그였다. 그런데 그렇듯 위험천만한짓을 하고있다니… 하늘이 통채로 무너져내려앉는것만 같았다. 그의 생각은 갈수록 깊어만졌다.

그래, 향녀의 말이 옳다. 상처가 아프다고 들어낼 생각은 하지 않고 품고있다면 그것이 무로우에게 전염될수 있다. 더우기 오끼나와에서 돌아오지 못한 다미꼬가 이 사실을 안다면 내 얼굴에 침을 뱉을것이다.

유끼오는 날이 새도록 잠들지 못했다. 그는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피눈물로 얼룩진 자기의 과거를 써넣고있었다.

부향녀는 하루에에게 제 친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말할것인가 하는 근심으로 잠을 이룰수 없었다.

… 렬차에서 내린 부향녀와 조성호는 곧장 역홈으로 나갔다.

조성호가 느닷없이 생각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전 이번길에 력사를 지키는 문제는 단순히 한 민족의 력사만이 아니라 한 인간의 운명을 지켜주는 중요한 문제라는것을 깨달았습니다.》

《새삼스럽게 그런 말은 왜 또…》

《아닙니다. 심장이 뜨겁지 못한 사람은 결코 력사라는 거대한 학문을 껴안을수 없다는것을 전 선생님에게서 다시금 느끼게 되였습니다.》

부향녀는 엷은 웃음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난 지금까지 그렇게 살지 못했네. 그렇지만 임자들은 꼭 그러리라고 믿네.》

역건물의 모퉁이에서 무로우 고이찌로가 다가왔다.

《원장선생님!》

부향녀는 놀란 눈빛을 인차 거두었다.

《당신이군요.》

《원장선생님이 저의 어머니를 찾아가셨다는게 사실입니까?》

그의 기분은 몹시 울적해있었다. 그는 오늘 아침 《보라매》라는 녀기자에게서 이 소식을 전달받았던것이다.

《그래요. 우리 저쪽에 가서 이야기를 좀 나눌가요?》

그들은 역전공원에서 마주섰다.

어머니인 유끼오의 편지를 든 무로우의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과연 이것이 사실이란 말인가?

부향녀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래, 선생은 다미꼬와 당신의 어머니가 왜서 그놈들에게 치욕을 당했다고 생각하세요?》

《? …》

《그자들을 부추긴것은 바로 당신네 구일본당국이였어요. 수십만의 조선녀성들을 강제로 유인, 랍치하여 끌고 다니며 갖은 악랄한 방법으로 성폭행을 가하도록 부추기고 조직하였기때문이란 말이예요. 그래 당신은 아직도 력사외곡이라는 비렬하고 너절한 방법으로 피에 굶주린 야수들이 감행한 죄악의 력사를 부정하고 가리울수 있다고 생각하는가요?》

무로우는 아무말없이 후줄근하게 서있었다.

《박사선생, 나로 말하면 일본땅에서 의학공부를 한것으로 하여 강제로 구일본군의 부상자치료에 내몰렸던 사람이예요. 그 까닭에 나는 당신의 아버지였을수도 있는 일본의 전쟁미치광이들이 저지른 치떨리는 죄악을 목격한 사람이기도 해요. 바로 그런것으로 하여 나는 인류앞에 력사의 진실을 밝힐 의무가 있는거예요.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당신은 내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할만큼 백치는 아니고 일본의 력사를 위조할수 있을만큼 <천재>는 못된다는것을 알아두세요.》

부향녀는 자리를 떠났다.

무로우는 한동안 망연한 자세로 서있었다. 편지를 움켜잡은 손으로 버드나무를 들이쳤다.

이 괴로움과 고통을 무엇으로 표현할수 있단 말인가? 나처럼 불행한 녀성의 몸에서 태여난 하루에! 그가 그처럼 존경하고 따르는 저 조선녀성, 부향녀의 증언을 내 무엇으로 부정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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訪問者 - -- - ISO ul - 2017-09-05
세상에는 책도 많지만 어머니 조국에서 발행한 소설 책이 좋아요!

잘 읽고 갑니다!
감 상 글 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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