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후더운 바람결에 하느적거리는 나무잎사귀들은 서로 볼을 비비며 정답게 속삭이고있었다.
그러나 두사람은 서로 어성버성한 분위기속에 마주서있었다.
《원장선생님, 늦게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부향녀의 얼굴색은 흐려졌다.
네가 아직도 나를! …
부향녀의 눈빛은 앞에 선 녀자의 모습을 쓰다듬으며 어린시절 진미의 모습을 찾고있었다.
말투는 랭담해도 제발로 찾아오지 않았는가. 나이는 먹었어도 그 시절처럼 내앞에서 응석을 부릴수도 있지 않는가.
조용히 머리를 가로저으며 그는 허거픈 웃음을 지었다.
《웬걸요. 이렇게 오신것만도 이 늙은이에게는 고마운 일이지요.》
리진미는 차거우면서도 불퉁그러진 소리로 말했다.
《원장선생님에게는 어머니라고 부르는 자식들이 많아서 좋겠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품어준대도 일본녀자는 어디까지나 일본
녀자가 아닐가요.》
부향녀는 하루에를 념두에 둔 그의 말에 긴장해졌다.
《지금까지 저의 눈에 비껴온 선생님의 모습은 온몸에서 풍기는 민족의 향기와 체취였습니다. 한켠으로는 하루에와의 혈연적인 관계에 대해 의심스럽기도 하구요. 그렇다구 전 모녀간의 그 어떤 비밀을 파볼 생각은 아니랍니다.》
리진미의 랭담하고 저돌적인 언사에 부향녀는 이마살을 찌프렸다.
《기자선생, 당신도 녀성일진대 그렇게 묻는게 실례라고 생각되지 않는가요?》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이를 안은 어머니만큼 깨끗한것은 없으며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어머니처럼 신성한것은 없다는 말도 알고있구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전 그런 감정을 배제한 녀자이니 별수없지요. 그러나 수수께끼를 안은 녀성은 뭇사람들의 비난에서 벗어날수 없지요. 하긴 무로우 역시 현대일본의 비극적주인공이 아닌지도 모르지요. 내 알기엔 그에게도 자식을 멀리하며 숨어살듯 하는 어머니가 있다더군요. 아마 그들도 원장선생님과 같이 모자간에 그 어떤 비밀이 있는지도 모르지요. 그러구보면 일본은 온통 비밀의 장막에 휩싸여있는 나라인가 봅니다.》
리진미는 지금 나에게 무엇때문에 무로우에 대한 말을 꺼내는가? 일종의 동정? … 아니면 그 어떤 암시? … 어쨌든 녀자의 뜨거운 모성애에 랭정한 침을 뱉는 저애를 스쳐보낼수야 없지 않는가.
부향녀는 진미의 두눈을 바라보았다. 얼음물속에 잠겨있는듯 한 그의 두눈동자는 너무도 엄청난 사실을 요구하고있었다.
정녕 이 사실을 꺼내야 하는가? 하루에가 날 원망하지 않을가?
《원장선생님, 제가 아픈 곳을 찔렀다고 너무 박정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인간생활이란 별의별 일을 다 낳는게 아닙니까.》
심장이 얼어든 리진미의 언사는 너무도 랭혹하였다.
부향녀는 마음을 다잡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말 놀랍군요. 어쩌면 녀자인 당신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지…》
《?! …》
리진미도 주춤 놀라며 후회했다. 자기가 그의 아픈 가슴을 너무 무정하게 헤집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였다. 그렇지만 부향녀는 자신을 위해서도 하루에와의 관계를 공개해야 한다. 그래야만 무로우와 같은 사이비력사학자들앞에서 존엄을 지켜낼수 있다.
부향녀는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직하나 힘있게 울리는 목소리였다.
《그래요. 나는 하루에를 내 친딸처럼 키워왔어요. 왜냐하면 녀성으로서 불행에 빠진 그의 생명을 스쳐보낼수 없었기때문이예요. 그애의 친어머니는 바로 오끼나와에서 돌아오지 못했어요.》
이렇게 말꼭지를 뗀 그는 수십년동안 묻어두었던 사연을 터놓았다.
… 오끼나와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부향녀는 전후에야 도꾜로 돌아왔다. 사랑하는 사람인 고성길의 행처도 알고 또 다미꼬가 남긴 유품을 전해주어야 했던것이다.
지친 걸음으로 옛 하숙집앞에 이른 그는 너무도 억이 막혀 한자리에 굳어지고말았다. 그새 집이 폭격속에 형체도 없이 사라졌던것이다. 인기척이란 도저히 흐르지 않는 주위환경에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혹시 할머니가? …
어린 딸애의 모습을 애타게 그려보며 만날 날만을 학수고대하던 다미꼬는 이미 시신도 없이 저세상으로 갔다. 그런데 그의 딸과 어머니마저…
주위사람들한테서 다미꼬의 어머니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부향녀는 안도의 숨을 내그었다.
그가 그들이 거처하는 곳에 가보니 말이 아니였다. 몇개의 판자로 대충 둘러막아서 지은 오막살이였다.
방안에서는 가슴굽을 긁어내리는듯 한 늙은이의 기침소리가 콜록콜록 울려나왔다.
《어머니,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세요?》
늙은이는 차디찬 땅바닥에 판자쪽을 깔고 누워있었다. 그옆에 어린 하루에가 까만 눈동자를 말똥말똥거리며 부향녀를 주시했다. 그한테는 앞에 있는 녀자가 너무도 낯이 설었다. 하긴 돌도 채 못된 어린 자식을 떨구어두고 군수공장으로 떠난 제 어머니의 얼굴조차 모르는 불쌍한 생명이였다.
《끝내 살아 돌아왔구만!》
늙은이는 오래전부터 앓던 질병이 더해서인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초들초들 말라들어간 앙상한 손만 내밀었다.
《어머니, 병이 더 심한게로군요?》
《아마 이젠 내 명도 다됐는가 보네. 그런데 저 어린것을 두고 죽자니…》
그는 외손녀를 보며 한숨을 내그었다.
《그런데 전쟁도 끝났는데 우리 다미꼬는 왜 아직… 그래, 그때 우리 애를 만나봤겠지?》
부향녀는 자기를 바라보는 늙은이의 흐리터분한 눈길을 마주할수 없었다. 차마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듯 한 예리한 눈초리를 모면할수 없었다.
《어머니, 다미꼬는…》
그는 눈굽을 흐리며 말을 채 맺지 못했다.
저 어린 딸앞에서 어떻게 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말한단 말인가.
모든것을 짐작한 늙은이는 《어이구!》 하며 안타깝게 가슴을 두드렸다. 너무도 억이 막혀 말을 다 못했다. 오히려 그는 자기의 흉벽을 움켜잡았다. 참아오던 병이 딸의 소식으로 다시 심한 동통으로 번져진것이다.
《어머니!-》
부향녀는 급히 늙은이의 가슴을 두드렸다.
《이젠 애비, 에미도 없는 이 어린것이 어떻게 살아갈고? …》
할머니는 겁에 질린 눈길로 자기를 내려다보는 하루에를 꼭 그러안았다. 주름진 눈가에서는 피같은 눈물이 흐르고있었다. 그는 외손녀의 머리를 쓰다듬고나서 그애의 목에 끈으로 해서 매달아놓은 은반지를 쓸어보았다. 다미꼬가 군수공장으로 징집되여가면서 딸애의 목에 매주었다는 반지였다.
《그러니 이젠 이것밖에 남은것이… 고맙네. 내 딸의 소식을 전해주어서 정말 고맙네.》
하루에는 외할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도대체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왜 할머니가 이토록 슬퍼하는지 리해할수 없는 나이였다. 단지 그의 신경은 처음 보는 젊은 아줌마에게만 가있었다. 혹시 이게 우리 엄마가 아닐가 하는 호기심으로 말똥말똥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두려움없이 부향녀의 품에 다가와 안겼다.
살뜰한 정의 갈증에 지친 어린 생명체였다.
부지불식간 그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튀여나왔다.
《엄마!-》
의식적이였는지, 아니면 본능적이였는지 모르나 하루에의 부름은 부향녀의 가슴속에 쩌릿하니 흘러들었다.
이애가 나를 제 엄마로 아는게 아닐가?
처녀의 몸으로 당하게 되는 현실앞에 당황해났다. 그렇다고 손쉽게 뿌리칠수 없는 하루에였다.
어머니의 정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
늙은이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어서 떠나라구. 정에 발목이 잡히면 자신을 잃을수 있다네.》
부향녀는 하루에를 다시 바라보았다.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 걸음이였다. 그렇지만 달리 행동할수 없었다. 고성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은 그때부터 삶에 대한 의식을 잃어버린 그였다. 이미전에 굳힌 결심이 있었지만 다미꼬의 소식을 전하지 않는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이곳에 들렸던 그였다. 그런데 하루에가 발목을 붙잡을줄이야…
부향녀는 뛰쳐나오다싶이 판자집에서 나왔다. 가슴속에서 끓어번지는 오열을 억누르며 몇걸음 옮기는데 뒤에서 하루에의 자지러진 울음소리가 애처롭게 울렸다.
《할머니, 죽지 마! …》
불길한 생각에 그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다.
어린 하루에는 외할머니를 부여잡고 애타게 울고있었다.
부향녀는 늙은이를 불렀다.
《어머니, 어머니… 정신을 차리세요, 예?》
하지만 늙은이는 이미 마지막숨을 넘기고있었다.
이렇게 되여 하루에는 의지할데 없이 사나운 파도에 몸을 맡긴 쪽배신세가 되고말았다.
늙은이의 시신을 안장한 부향녀는 하루에를 옆집아낙네에게 맡기고 무거운 걸음을 떼였다. 그애가 이 세상에서 살아날수 있다는 담보는 전혀 없었다.
인간으로서 차마 할수 없는짓이라는것을 알면서도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 그였다. 이제 그가 가게 될 길은 자그마한 인정이나 동정도 절대로 허용하지 않았기때문이였다.
… 여기까지 말을 한 부향녀는 손수건으로 눈굽을 찍었다.
리진미도 그의 말에 감동이 되여서인지 추연한 마음으로 서있었다.
부향녀는 회심어린 어조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날은 바로 1945년 12월 어느날이였어요. …》
물기없이 누렇게 말라 잎새마저 잃은 갈대들은 애처롭게 떨고있었다. 차겁게 불어오는 바람은 눈에 보이는것을 다 날려보냈다. 나중에는 땅껍데기를 한벌 벗겨버릴 심산같았다.
바다기슭의 높다란 벼랑우에 한점의 형체가 보였다. 바람은 멀리 태평양에서부터 기운을 돋구어 사나운 파도를 몰아가며 육박한다.
솨-아- 철썩- 처절썩-
무섭게 바위를 들이치고는 산산이 흩어져버린다. 바람은 실패의 화풀이를 그에게 하려는듯 횡포하게 휘감아올렸다.
광목천으로 만든 하얀 저고리와 깜장치마는 금시 벗겨져 날아가버릴듯 몸부림치고있었다. 허나 그는 못박힌듯 까딱없이 서있었다. 다만 수심에 잠긴 모습은 찬서리에 시들어버린 락화를 방불케 했다. 예쁘고 까만 눈동자엔 눈물이 고여있었다. 그 어떤 설음을 애써 참아내듯 터갈라진 입술은 꼭 옹다물려있었다.
《어머니!-》
그의 입에서는 짧은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
얼마나 불렀는지… 목은 쉬여졌지만 부모들의 부름소리는 한마디도 없었다. 단지 저승에서 불행한 딸의 모습을 지켜볼뿐이다.
이제는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모진 세월은 어이하여 연약한 이 운명을 이리도 희롱한단 말인가.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가 소란스럽게 들려온다.
발밑에서 사나운 파도들이 계속 절벽을 들이친다. 마치 누가 먼저 떨어지는 꽃송이를 잡을가 하는 내기라도 하듯.
그 녀자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주르르 눈물방울들이 량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림종에 이르면 모든것이 선명해진다는 말이 있다.
흘러간 나날들이 후회되였다. 조국을 떠나 이 일본땅에 발을 들여놓은것자체가 잘못이였다. 그 한걸음이 오늘은 이렇게 자신을 비참한 운명에로 몰아가는것이다.
하지만 어이하랴. 인생이란 그 무엇으로도 조절할수도, 자리바꿈할수도 없지 않는가. 삶이란 너무도 괴롭고 짧은것이다.
부향녀는 후들거리는 걸음을 벼랑턱으로 옮겨짚었다.
하늘가에선 목화송이같은 구름떼가 아름다운 무늬를 새기며 흐르고있었다. 밝은 해빛, 희디흰 구름, 가없이 넓고넓은 저 하늘…
다시는 저것들을 볼수 없겠지…
한겨울에도 자기의 열을 잃지 않는 태양은 멀리 수평선우에서 진을 다해 빛과 열을 뿜고있었다. 마치 시뻘건 불덩어리같은 둥근 해가 떨어지기 아쉬운듯 수면우에 떠서 바다의 심술궂은 행동을 지켜보고있었다. 이윽고 태양이 녹아내리는것인지 아니면 대양이 끓어서 사품쳐오르는것인지 서로 융합되면서 하나의 진하디진한 피의 바다가 수놓아지고있었다. 그것들이 멀리서 피빛갈기를 일으키며 달려오고있었다. 마치 지옥의 령혼들이 자기를 마중오는듯싶었다.
《어머니, 이 딸도 부모님들의 곁으로 가요!》
그런데 뒤에서 분명 자기의것이 아닌 목소리가 울려오는듯싶었다.
《엄마!-》
너무도 귀익은 목소리다.
누구일가? … 아니면 환각? …
뒤엉켜 돌아가는 상념은 그냥 마음을 괴롭히고있다. 빠질길 없는 절망속에 잠겨들자 불현듯 령혼이 깃들어있는 마음속깊이에서 신기루와도 같은 느낌이 살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엄마!-》
이게 뭘가? 혹시 자기 운명에 대한 깨달음이 아닐가. 아니면 죽음에 대한 공포? … 누가, 어디서 울려오는 소리일가? … 그래, 다미꼬의 목소리가 분명해!
그러나 인차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는 이미 저세상에 간 몸이 아닌가. … 그런데 어떻게 그의 목소리가 들릴가? 혹시 그가 저승에서 나를 부르는게 아닐가?
《엄마야!-》
울음섞인 애처로운 목소리가 가까이에서 다시 울려왔다.
아니, 이건 분명 하루에의 목소리야!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뜻밖에도 그의 앞으로 두세살정도 돼보이는 계집애가 달려오고있었다. 그뒤에는 하루에를 맡았던 녀인이 서있었다.
아니, 저애가? …
그의 생각은 착잡했다. 이미 지옥행 차표를 끊은 자기앞에 나타난 하루에… 삶과 죽음의 계선은 종이장차이라지만 이렇게까지 길줄은 몰랐다.
아니, 그럴수 없어. … 난 더이상 이 세상에서 살아갈 힘이 없어. …
부향녀는 다시 바다를 향해 돌아서며 입술을 꼭 깨물었다.
이 땅에서 인정은 곧 함정이나 같다. 이제 한초만 흐르면 난 더이상 그 어떤 마음속 고통과 아픔을 모르고 영원히 편안하게 살거야.
《아야야- 엄-마!-》
금시 숨이 넘어가는듯 한 어린애의 자지러진 비명소리와 울음소리가 울려왔다.
섬찍한 생각에 다시 눈길을 돌렸다.
자기를 향해 달려오던 하루에가 그만 넘어졌던것이다. 그애의 무릎과 두손바닥에서는 빨간 피가 흘러내리고있었다.
《엄마야-》
《하루에야-》
그는 자기가 어떻게 되여 그에게로 달려갔는지 알수 없다.
《엄마야, 죽지 마!》
하염없이 흘러나오는 눈물과 피로 범벅이 된 하루에의 얼굴속에 그려진 까만 눈동자에서는 애절한 빛이 흘러나오고있었다.
《하루에야!》
부향녀는 저도 모르게 어린애를 와락 품에 꼭 껴안았다. 기구한 운명을 안고 불모의 땅에 떨어진 씨앗이나 다름없는 하루에였다.
부향녀의 하얀 저고리는 붉은 피로 서서히 물들여졌다.
《엄마야!-》
하루에는 영영 놓지 않으려는듯 버들가지같은 손으로 그를 꼭 껴안으며 품속으로 기여들었다.
부향녀는 품에 안긴 이 어린 생명이 발목을 잡고있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애처롭게 떨고있는 어린 생명은 그에게 강렬하게 호소하고있었다. 차디찬 날바람으로부터 보호해달라고…
아, 내가 어찌 죽을수 있단 말인가! 다미꼬의 이 어린 딸… 고아가 되여버린 이 하루에를 몰인정하고 황량한 페허에 어떻게 버릴수 있단 말인가.
드디여 싸늘하게 식어들었던 그의 심장은 고동치기 시작했다. 뜨겁고 부드러운것이 온몸에 퍼지고있었다.
《하루에야!》
부향녀는 어린것을 더 꼭 껴안았다.
《엄마!-》
울음섞인 하루에의 목소리가 예리한 칼끝이 되여 그의 심장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세차게 몰아치는 광풍을 맞받아 부향녀는 하루에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무섭게 광란하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그들은 절벽우에 끄떡없이 서있었다.
저 멀리 아득한 바다가에서 다미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듯싶었다.
《향녀! 고마워, 정말 고마워!-》
… 이야기를 마친 부향녀는 진미를 향해 돌아섰다.
《자, 이게 바로 기자선생이 알고싶어하던 비밀이예요.》
리진미는 가슴에 끓어번지는 격정을 다잡으며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정말, 선생님에게서만 들을수 있는 감동적인 이야기이군요. 그렇지만 전 리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 그 사연을 공개하지 않는지…》
부향녀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기자선생은 리해 못할거예요. 왜냐면 인간의 사랑에 대한 무감각으로 그것을 배척하려는 당신이 어떻게 녀성과 고상하고 아름다운 인정세계에 대해서 알수 있겠나요.》
《뭐라구요?! …》
리진미는 반발심이 일었으나 인차 머리를 숙였다.
그래, 나는 바로 저 부향녀의 사랑을 자존심이라는 방패로 뿌리쳤다. 20여년전에도 그러했고 지금 이 시각에도…
《난 말할수 없었어요. 그것은 하루에에게 두번다시 큰 고통을 주기때문이예요. 그는 나를 친어머니처럼 여기고있어요. 그래 나에게 들씌워지는 랭혹한 멸시가 두렵다고 수십년동안 바쳐온 사랑을 끊어버린다면 하루에는 어떻게 되겠나요. 일생에 두번다시 자기의 어머니를 잃게 될거란 말이예요. 그애는 그것을 바라지 않고있어요. 나자신도 그에게 그런 아픔을 줄수 없구요. 그래서 하루에의 어머니가 되였으며 오늘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모든 사연을 숨겨왔던거예요. 같은 녀성으로서 제 친어머니의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고 전쟁의 희생물로 된 하루에에게 더이상 고독과 슬픔을 안겨줄수 없단 말이예요. 그래 기자선생, 이것도 민족성에 어긋나는 반민족적인 행위로 봐야 할가요?》
《! …》
리진미는 굳어진듯 서있었다. 여기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