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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뜨락에 들어서던 김경아의 시선은 2층창가에서 멎어섰다. 자정이 지났는데도 아직 불빛이 흘러나오고있다. 그의 입가에선 가느다란 한숨이 흘러나왔다.

오늘도 쉬지 못하시는구나.

《성옥이옆에는 내가 있을테니 어서 집에 들어가봐.》

방금전 병원에서 하루에가 한 말이였다.

《저애가 깨나지 못했는데 내가 어떻게…》

김경아는 실망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하루에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를 달랬다.

《그렇다구 며칠이구 여기서 밤을 팰수야 없지 않아. 더우기 어머니도 무척 마음고생을 하시는데… 어제도 밥을 한숟가락도
안 드시였어.》

그는 쩌릿해오는 눈굽을 찍으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성옥이 엄마도 집에 들어오지 않으니 오죽 마음이 괴롭겠어?》

김경아는 속이 띠끔했다. 시어머니를 위한다는 일이 오히려 더 부담이 되였다는 죄책이 갈마들었다.

그는 무거운 마음으로 늦은 밤에 집에 돌아오고있었다.

딸애가 없는 집안의 공기는 몹시 썰렁했다. 모두들 울적한 침묵속에 천정만 바라볼뿐이다. 단지 부향녀의 방에서만 사르륵사르륵 재봉기소리가 울렸다.

고명철은 물론 경아조차도 차마 방문을 열지 못했다. 비록 가슴속에 너무도 큰 아픔을 안고있지만 조금도 주저없이 일어선 어머니앞에 나설 면목이 없는 그들이였다. 민족의 어버이께서 안겨주신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안고 조선민족의 참된 성원으로 살려는 어머니의 모습앞에 자기들은 너무도 보잘것없는 존재들이였다. 오히려 짐이 되였다는 죄스러움으로 머리를 쳐들수 없었다.

다행히도 눈썰미빠른 하루에가 어머니의 일을 도와주고있었다.

그새 퍽 수척해진 시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경아의 마음은 괴로웠다. 용케도 자신을 이겨내며 수술을 끝낸 어머니의 모습은 너무도 엄숙했다.

《성옥이는 그렇게 쉽게 죽을 애가 아니다!》

기적이였다. 아니 시어머니는 이미 그것을 내다보았는지도 모른다. 비록 아직 의식은 없었지만 몸상태가 좋아진것이 알렸다.

이젠 살았구나!

이것은 수십년동안 의사로 일해온 김경아의 육감이였다. 어린 자식의 병엔 어머니만 한 의사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성옥이를 낳은 어머니이고 의사인 자신은 어떠했던가. 자식의 운명에 서뿔리 그늘을 던지려 하지 않았는가. 의학으로서는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딸앞에 눈물만 흘렸다.

부향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로 온 처녀시절의 김경아에게 남다른 왼심으로 잔소리를 많이 하였다.

《명심해라. 의사의 손에 잡힌 수술칼에는 자그마한 동정이나 인정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그 눅거리감정때문에 환자는 생명을 잃게 된다. 오직 자기의 몸에 칼을 대는 심정으로 모든 수술을 해야만 생명을 구원할수 있는거다.》

언제나 수술장에 들어서면 보조의사로 김경아를 선택하고 그에게 의학자의 넋을 심어주군 했다. 때로는 엄한 질책과 요구성으로 김경아가 잡은 수술칼의 지지점이 되여주기도 했다. 첫 수술에 들어간 그의 옆에 붙어서 힘을 주고 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가르쳐준 부향녀였다.

《경아야, 이제부터 너는 자기가 생명을 다루는 의사라는것을 자각해야 한다. 닭알이라고 해서 다 병아리가 되는것이 아닌것처럼 의학공부를 했다고 해서 다 의사가 되는것은 아니다. 심장이 떨리면 네 손에 쥐여진 메스가 떨리게 되며 나중에는 어떻게 되겠니.》

항상 어머니의 다심한 손길이 되여 외과의사로서의 첫걸음마를 떼여준 부향녀였다. 그 길에서 그는 항상 엄격한 선생님이였다. 오늘날 김경아가 유능한 의사로 될수 있은것은 다 부향녀의 고심어린 요구가 있었기때문이였다. 모든 문제를 대하는데서 두리뭉실한것보다 네모반듯한것을 좋아하는 부향녀여서 따라서기가 숨찰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을 이끌어주는 그의 뜨거운 진정은 엄한 요구성에 있다는것을 한치두치 페부에 새길 때 김경아는 고마움의 눈물을 흘리군 했다. 그는 시어머니이기 전에 스승이였고 훌륭한 의사였다. 세월의 년륜으로 새겨진 주름발속에 옛 모습은 사라졌지만 의사로서의 본태만은 더욱더 뚜렷했다. 그러한 그였기에 사랑하는 손녀를 수술할수 있었던것이다.

김경아는 부향녀의 강인한 의지에 감복할수록 시어머니는 너무도 강하다고 생각했다. 심장병으로 자신도 지탱하기 어려운 처지에서 스스로 두벌자식의 몸에 수술칼을 대지 않았는가.

그런 용기와 힘이 어디에서 분출되는것일가?

이것은 모성애도 무색하게 하는 사랑이였고 믿음이였다. 살려야 한다는 각오와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확고한 의지였다.

언제면 우린 시어머니를 닮을수 있을가?

어머니에게 엇나가는 남편의 행동을 두고도 그것이 부모와 가정을 위하는데서부터 나오는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이 집안은 시어머니에 의해 유지되고있었다. 아무리 자식을 가진 자기들이라고 해도 그가 바치는 심혈과 로고의 절반도 따라서지 못하고있었다.

자식이 생겼다고 해서 자기도 어머니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럽게 생각되였다. 강하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어머니라고 불리울수 있겠는가. 인생의 세파를 다 겪어온 시어머니는 자기보다 몇배로 강했다.

아득한 차이를 둔 부향녀의 세계는 경아로 하여금 절로 머리를 숙이게 했다. …

부향녀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새벽 1시가 되여오고있었다.

이애가 왜 아직 들어오지 않을가?

지꿎게 떨어지지 않는 걱정으로 그는 다리미를 세워놓았다. 한켠에 놓여있는 밥상이 눈에 미쳐왔다.

저녁밥도 먹지 못했겠는데…

딸을 생사기로에 맡겨놓은 며느리의 걱정으로 마음이 놓이지 않는 그였다. 그래서 몇시간전에 하루에를 병원에 보냈던것이다.

《아무래도 네가 성옥이의 곁에 있어야 할가보구나.》

하루에는 선뜻 응했다.

《저도 그 생각이였어요. 그러니 어머니, 오늘은 꼭 식사를 해야 해요.》

《성옥이 엄마가 오면 같이하겠다. 오늘은 아무래도 그애가 밥먹는걸 옆에서 지켜봐야겠다.》

의식을 잃은 자식을 놓고 목구멍으로 밥을 넘기는 어머니가 어데 있으련만 부향녀는 오늘 단단히 마음먹었다. 남의 집 귀한 자식을 데려다놓고 혹독하게 마음고생을 시키는 자신에 대한 질책이기도 했다.

사실 그가 성옥이의 몸에 수술칼을 못 대겠다고 할 때도 며느리의 심정을 리해했다.

웬만큼 마음이 모질지 않고서야 누가 그 일을 하겠는가.

한켠으로는 자기가 자식들에게 너무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진미의 말대로 내가 이 집안에 불행을 다시 안아오는게 아닐가? 늘그막의 로망이 집안을 망하게 한다는 말도 있는데… 남의 집 귀한 외동딸을 데려다놓고 좋은 소리, 나쁜 소리 가리지 않은 내가 아닌가. 예로부터 남의 자식 결함은 제 자식의 결함보다 항상 커보인다고 했는데… 며느리의 고생을 알면서도 언제 한번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한적이 있나, 따끈한 밥 온전히 해먹인적이 있나… 시에미로서 대접이나 받으려고 한 내가 아닌가. 제 일만 일이라고 하면서 병원과 집안일을 그애의 어깨우에 떼맡기다싶이 하였다. 따뜻한 웃음 한번 지어주지 못하고 불만에 가득찬 눈빛으로 요구만 하지 않았는가. 그애가 이 시에미를 얼마나 원망하겠는가. 며느리들이란 시부모들의 몸짓, 말 한마디에도 먹은 살이 내린다고 하지 않는가.

이러한 생각은 부향녀로 하여금 걸음을 주춤거리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편의 엄한 모습이 그를 깨우쳐주었다.

《여보, 가정이라는 울타리밖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정은 자신은 물론 자식들의 눈도 멀게 한다는것을 명심하오.》

《할머니, 절대로 력사자료들을 넘겨주어서는 안돼요! 제발 부탁이예요.》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부향녀의 걸음을 부추겨준 손녀였다. 그래서 그는 성옥이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자기의 결심을 바꾸지 않은것이다.

부향녀는 지금 새로 지은 성옥이의 조선치마저고리를 손질하고있었다. 갈기갈기 찢어지고 피로 얼룩진 손녀의 치마저고리를 놓고 심장의 고통을 참아온 그에게 있어서 손녀의 다른 모습은 생각할수 없었다. 제 민족의 옷을 입고 이 일본땅을 힘차게 활보하는 성옥이밖에는…

하얀 비단천으로 지은 저고리에 동정을 달아가는 그의 눈굽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한뜸두뜸의 바늘뜸이 손녀가 첫걸음마를 떼던 그날부터 오늘까지 걸어온 길처럼 여겨졌다. 랑만과 기쁨, 래일에 대한 락관으로 동포들에게 웃음을 안겨주던 손녀, 이 일본땅에서 조국의 노래를 높이높이 울리겠다던 성옥이다.

그는 저고리를 들고 동정이 달린 맵시를 다시 찬찬히 살펴보았다.

성옥이의 마음에 들어야겠는데…

부향녀는 실을 끊고 다리미로 저고리고름을 다리기 시작했다.

칙, 칙-

뽀얀 증기발을 뿜어대며 다리미는 주름발들과 구김살들을 펴나갔다. 그의 손은 자그마한 흠도 남길세라 혼솔사이로 다리미를 밀어갔다.

김경아는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섰다. 시어머니가 방바닥에 펴놓은 저고리에 눈길이 닿았다.

아니?! …

가슴이 쿵하니 울렸다. 너무도 큰 충격에 눈굽이 저릿했다.

시어머니는 지금 성옥의 조선치마저고리를 다리고있지 않는가. 그런데 나는 그애의 곁에서 어서 눈을 뜨라고 빌기만 하지 않았는가. 너무도 큰 정신적차이를 두고있었다.

《어머니!?》

그의 부름은 가늘게 떨렸다.

인기척에 얼굴을 돌린 부향녀의 얼굴에선 웃음이 피여났다.

《인제야 오느냐?》

그는 다리미를 놓고 밥상에 다가갔다.

《밥이야 제때에 먹어야지. 수척해진 네 모습을 보고 성옥이가 얼마나 가슴아파하겠느냐.》

김경아는 끓어오르는 오열을 겨우 참았다.

《병원에서 먹었습니다.》

《그런 소린 말아. 아무렴 내가 네 심정을 모르겠냐?》

부향녀는 수저를 경아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럼, 어머니도 같이…》

《난 기다리다 못해 먼저 먹었구나. 늙으면 먹을 궁냥만 생긴다더니…》

부향녀는 어줍게 웃었다.

하지만 김경아는 그 말을 믿을수 없었다. 자기를 두고 홀로 식사를 할 시어머니가 아니였다. 분명 괴로움에 지쳐 끼니를 번지고있을것이다.

《자, 여기 네가 좋아하는 도라지무침도 있으니 어서…》

김경아는 왈칵 눈물을 쏟으며 그의 품에 안겼다.

《어머니!?》

부향녀는 갑작스러운 그의 눈물에 속이 덜컹했다.

《왜 그러느냐? 혹시 성옥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니냐?》

《아니예요.》

그제서야 부향녀는 그의 행동이 리해되였다.

《그러면 됐다. 어서 밥을…》

김경아는 얼굴을 쳐들었다. 그의 눈가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 절 콱 욕해주세요.》

부향녀는 며느리의 손에 숟가락을 꼭 쥐여주었다.

《아니다. 네가 성미괴벽한 이 시에미의 마음을 맞추느라 속썩이는걸 모르는게 아니다. 난 너 같은 며느리를 만난걸 참 다행스럽게 여긴다.》

김경아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예요. 제가 어머니의 진정을 리해하지 못하고있었어요.》

부향녀는 며느리앞에 찬그릇을 밀어놓았다.

《그러지 말아. 예로부터 딸자식 칭찬에는 가식이 있어도 며느리의 칭찬에는 진실만 있다고 했다.》

《어머니!》

김경아는 부향녀의 품에 안겼다.

얼마나 정깊고 다심한 어머니인가. 모진 고통과 아픔을 홀로 이기면서도 언제 한번 자식들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은 어머니였다. 자식들의 걸음이 탈선될세라 언제나 마음써오고 눈물도 많이 흘려온 어머니가 아닌가.

부향녀는 그의 잔등을 어루만졌다. 그 부모에 그 딸이라고 김경아는 그야말로 나무랄데 없는 며느리였다. 성미가 괴벽스러운 남편의 성격도 맞출래, 시어머니를 대신해서 병원일을 돌볼래… 집안에 들이닥치는 위기를 두고서도 아무런 내색없이 묵묵히 홀로 이겨내는 그였다.

이윽고 김경아는 몸을 일으켰다.

《어머니, 그동안 저희들이 어머니의 속을…》

그는 다리미로 옷을 다리기 시작했다.

부향녀는 그를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성옥이가 퇴원하면 입히려고 내 손으로 만들었는데 네 마음에 들겠는지 모르겠구나.》

김경아는 애써 미소를 띠우며 눈굽을 훔쳤다.

《아이참, 어머니두… 지금까지 크도록 성옥이 옷이야 어머니가 지어주고 사준것이 아니나요!》

《그렇긴 하지만 요즘은 그애가 아침마다 거울앞에 서서 몸차림을 볼 때면 속이 조마조마해지군 했단다. 혹시 옷이 마음에 없다고 투정질할것만 같은게…》

부향녀는 선웃음을 지었다.

머리를 숙이고 다리미를 쥔 경아는 자주 헛손질을 했다. 이렇게 자기를 위해주는 부향녀가 더없이 고마웠다. 시어머니의 마음속엔 지금 건장한 성옥이가 자리잡고있었다.

하얀 저고리우에는 김경아가 흘리는 뜨거운 눈물자욱들이 점점이 새겨졌다.

다음날 고성옥의 머리맡에는 반듯하게 다린 조선치마저고리가 걸려있었다.

부향녀는 손녀의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바로잡으며 속삭였다.

《성옥아, 어서 일어나야 한다. 이 할머닌 네가 저 옷을 입고 우리의 노래를 부르며 대학으로 가는 모습을 보고싶구나.》

그는 한동안 손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이때 김경아가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어머니, 진미가 왔어요.》

《뭐, 진미가?! …》

부향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반가운 기색으로 돌아섰다.

문앞에는 약꾸레미를 든 리진미가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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訪問者 - -- - ISO ul - 2017-09-05
세상에는 책도 많지만 어머니 조국에서 발행한 소설 책이 좋아요!

잘 읽고 갑니다!
감 상 글 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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