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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에서 내린 리진미는 어둠속에 잠긴 바다를 마주해 걸었다.

세찬 바람결에 그의 머리카락은 마구 흩날렸다. 추억깊은 도래굽이벼랑은 산악같은 파도의 시달림에 정신을 못 차리고있었다. 파도는 검푸른 갈기로 사납게 바위를 후려친다. 그리고는 잠시 숨을 고르다가 다시 몸싸움에 나선다. 누가 승자이고 패자인가 하는 승부는 뒤전에 밀어놓은 치렬한 싸움이였다.

아, 내가 성옥이를 죽였어. 내가…

부향녀의 집을 뛰쳐나간 리진미의 생활은 그야말로 갈래없는 방랑인의 행적이였다. 처음에는 도꾜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목숨을 유지하려고 모지름썼다. 연약한 어린 소녀의 몸으로 도저히 구복을 채울수 없어 나중엔 망나니들의 패에도 들어갔다. 다행히도 그의 미츨한 몸매와 싸늘한 랭기를 뿜는듯 한 두눈은 사내들의 눈길을 모았다.

몇달의 생활기간 이 무리속에서 자신을 보호할수 없다는 생각에 죽음을 각오하고 달아났다. 도꾜와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옮겨 배워둔 소매치기로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어느날 렬차칸에서 한 귀부인의 돈가방을 챈적이 있었다. 값비싼 가죽으로 깜찍하면서도 맵시있게 만든 최신류행의 가방이였다. 약차한 량의 돈이 들어있었다. 이젠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그의 입에 미소가 피여올랐다. 량부모를 잃고 처음으로 변화를 일으킨 그의 얼굴이였다.

다음역에 내리는데 양장을 한 중키의 녀성이 앞을 막아섰다. 순간적으로 돈가방의 주인이다는 생각에 몸을 빼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뛰지 말아!》

귀부인의 입에서는 뜻밖에도 조선말이 흘러나왔다.

리진미는 그 녀자의 손에 잡힌 팔목도 팔목이지만 같은 조선사람이라는 의식에 얼어붙은듯 굳어졌다.

그 귀부인은 한때 일본에서 공부하고 나중에는 미국으로 간 조선사람이였다. 지금은 제 고향이 있는 남조선을 떠나 미국국적을 가지고 캘리포니아주에서 기업을 하는 녀자였다. 그러한 그가 일본에 있는 옛 동창생을 만나려고 왔다가 이렇게 진미와 부딪친것이다.

그때부터 리진미의 생활에서는 변화가 일어났다. 다같이 조국과 떨어져 해외에서 사는 처지인지라 그 녀자는 불쌍하고 어린 생명의 보호자로 나섰던것이다.

운명의 희롱으로 하여 진미는 미국으로 가게 되였으며 또 그곳에서 공부했다. 그러나 사춘기시절에 형성된 그의 야생적인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동양의 사꾸라> 그놈이…》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말을 뼈에 새겨안고 살아온 그였다. 두 가문의 원쑤인 그놈을 찾아내여 부향녀앞에 아버지를 증명하고싶었다. 그래서 그는 실업계로 나갈것을 권고하는 스승의 요구를 거절하고 탐방기자로 직업을 선택하였다. 그 명분으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동양의 사꾸라》의 행처를 탐문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일은 그렇게 쉽게 흐르지 않았다. 나이 마흔이 되여오도록 미혼인 그는 자기의 기구한 운명은 바로 자신이 조선사람이라는데서부터 오는것이라고 생각했다. 살인자를 찾아내면 스승처럼 안착된 생활을 찾고싶었다.

그렇게 되여 그는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처음으로 부닥친것이 다름아닌 부향녀였다. 그 녀자는 남편의 뒤를 이어 일본보수당국의 력사정책을 반대해나서고있었다.

리진미는 그를 경멸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들이 아버지를 력사라는 길에 끌어들였고 그것으로 하여 나중에는 자기의 가정을 파산이라는 서리속에 묻히게 했다. 그런데 오늘도 부향녀는 말만 들어도 신물이 나는 력사를 그러안고 늙어가고있지 않는가. 지난날의 아픔에 대해서, 자기 가정의 운명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한 그였다.

무엇때문에 아직도 토끼가 황소를 쫓는것 같은 부질없는짓을 한단 말인가? 그래, 제 남편과 우리 아버지의 피가 모자란단 말인가. 또다시 이 땅에 이 진미와 같은 불행아가 태여나기를 바라는가.

리진미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의 걸음을 멈춰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앞에서 매몰스럽고 경망스러운 행동도 해보았으며 그의 아픈 가슴을 찌르기도 했다. 하지만 도저히 막을수 없는 부향녀의 걸음이였다. 오히려 자신이 그에게 끌려들어가는듯 한 심정이였다.

그 과정에 리진미는 일본극우보수세력들의 사촉밑에 부향녀를 암살하기 위한 음모를 꾸민자가 다름아닌 마에다 사부로, 《동양의 사꾸라》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돌려세우지 못할바엔 그를 야수들의 촉수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이런 결심은 그를 분발하게 하였다. 그러나 오늘 고성옥이를 보호하지 못했다. 사람들을 보내긴 했지만 그만 때늦은 걸음이였다.

《저, 미국에서 소식이 왔습니다.》

허우대가 큰 사나이가 다가와 조심히 말했다.

리진미는 돌아서서 종이장을 받아들었다. 스승에게서 온것이였다.

사나이가 비쳐주는 전지불빛에 그는 글줄들을 읽어갔다.

《… 진미야, 네 소식을 받고 늦게야 이 글을 쓰는 나를 리해해다오. 나는 얼마전 미국에서 사는 우리 동포와 함께 조국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리진미는 차거운 물방울에 정수리를 맞은듯 흠칫 놀랐다.

선생님이야 이미 오래전에 남조선에 침을 뱉고 떠난분이 아닌가. 그런데…

그는 미덥지 않은 시선을 사나이에게 보냈다.

《이게 사실이예요?》

사나이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너무 조급해말고 마저 읽으십시오.》

리진미는 종이에 다시 눈길을 주었다.

《바로 평양에 말이다. 네가 곁에 없는게 정말 아쉽더구나. 바로 너에게 진정한 조국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것이 말이다. … 이 글에 어찌 하많은 이야기를 다 담겠니. 그렇지만 명백히 말할것은 나도 인생말년에야 내가 조선사람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느꼈다는것이다. …》

조선사람! … 남조선에서 배척을 당하고 민족적수치와 울분을 금치 못하던 선생님이 아니였던가. 미국시민권을 받던 그날 태묻은 땅의 버림을 받은 설음으로 밤새도록 피눈물을 흘린 그가 아니였던가. 다시는 조선사람으로 살지 않겠노라고 눈물속에 굳힌 그 결심을 이렇듯 한순간에 허물수 있단 말인가?

알길없는 의문은 그를 다시 글줄에로 끌어당겼다.

《태를 묻은 땅이라고 해서 어찌 조국이라고 하겠느냐. 인생의 삶이 있고 미래가 맥박치는 땅이 진짜 제 조국이 아닐가? 외세를 반대하고 전체 인민이 령도자의 주위에 하나로 굳게 뭉쳐 사회주의기치를 추켜들고 나아가는 모습에서 나는 우리 조선민족의 얼과 넋이 맥박치는것을 절감했다.

그래서 네가 말한 그 부향녀원장선생도 조국의 력사, 민족의 력사를 지켜싸운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아마 손자의 손목을 잡고 철이 든다는 말이 맞는것 같다. 참, 네가 부탁한것은 구해서 이미 베를린으로 보냈다. 그리구 이쪽 문제는 내 동생에게 말했더니 대찬성이더구나. 그도 평양을 다녀온 뒤 아예 딴 사람이 되였단다. 제 민족의 력사를 지키는 장한 일을 하는 동포를 보호하고 그 자식들의 운명을 구원하는 일인데 같은 조선사람으로서 어떻게 가만 있겠는가고 하면서 자기 회사와의 합작을 승낙했단다. 지금 와서 보면 내가 아무리 실업계의 당당한 인물로 사람들의 각광속에 산다고 해도 그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알게 되는것 같다. 황금은 결코 사람에게 인생의 행복을 가져다주는게 아니다. 제 민족, 제 조국을 잃고 사는 부유한 생활은 뿌리없는 나무와도 같은것이란다. 자기의 피와 넋을 잃지 않고 사는게 인생의 가장 큰 재부이며 락이라는것을 오늘에야 깨닫게 되는것이 정말 한스럽구나. 이제 이달말엔 내 동생이 일본으로 갈게다. 그때쯤이면 너도 일을 끝내고 돌아오리라고 본다. 그때 우리 밤이 지새도록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당부하고싶은것은 난 네가 나처럼 미국시민이 되는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 말뜻을 깊이 생각해봐라. …》

리진미는 스승의 글을 리해할수 없었다. 평양! 그 땅은 과연 어떤 세계이기에 한생 반공으로 살아온 선생님이 자기의 신념을 달리하게 만들었을가? 미국과 서방의 출판언론들은 북조선은 인간의 자유와 권리가 무참히 유린되는 불모의 땅이라고 평하지 않았는가. 그러면 그 모든것이 다 허위였단 말인가?

문뜩 병원침상에서 간호원이 하던 말이 기억났다.

《… 우리 원장선생님은 조국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안고있답니다. 몇달전에 평양에서 가져온 수예품을 집에 걸어놓고 매일 들여다본다나요. … 다들 그 수예품이 원장선생님의 정신이구 육체라고들 말한답니다.》

리진미의 생각은 더욱 짙어갔다.

누구나 그 평양에서 정신적기둥을 받아안고 돌아오지 않는가. 그것은 무엇일가? 무슨 힘이 부향녀나 우리 선생님에게 그렇듯 참다운 민족애와 조국애를 심어주는것일가?

도저히 헤여나올수 없는 번민속에 리진미는 바다기슭으로 걸어들어갔다.

사나운 파도는 연약한 그를 대번에 쓰러뜨릴듯 덮쳐들었다.

온몸이 휘청거렸다. 그렇지만 그는 넘어지지 않았다. 몸은 짠물에 화락하니 젖어들었다.

리진미는 그래도 그냥 서있었다. 파도에 심신을 통채로 맡기고싶은 심정이였다. 무엇인가 희미하게 떠오르는 불꽃을 맑은 정신으로 보고싶었다.

밤하늘가에서는 별들이 반짝이고있었다. 그것들은 새로운 불길을 갈망하며 빛을 내는 자그마한 불찌와도 같았다.

한동안 파도에 몸을 내맡겼던 그는 승용차로 돌아왔다.

이제 마에다 사부로는 더 미쳐날칠것이다. 손녀를 죽여 부향녀를 넘어뜨리려던 계획이 수포로 되였으니 가만있지 않을것이다.

어떻게 하나 그를 죽이려고 할것이다.

그렇다면 언제, 어떤 방법으로… 또 전번과 같이 무로우를 내세워 사회적인 여론으로 그를 매장하려고 할가? 그래, 부향녀에게는 지금 제일 약한 고리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하루에이다. 하루에! 과연 그는 어떻게 되여 아직까지 그를 어머니라고 부르고있으며 부향녀는 왜 그 일본녀자를 품에서 떼놓으려 하지 않는가. … 언제나 제 아들보다 더 위해주고 아껴주지 않았는가.

문뜩 하루에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옛시절의 추억이 밀려들었다.

리진미는 어릴적에 부향녀의 집에 자주 가군 했었다. 그때마다 그는 아무런 근심도 없이 자라는 하루에를 못마땅한 눈으로 보군 했다.

일본애가 어떻게 우리 조선사람들과 한집에서 살가?

그렇듯 부향녀와 고성길의 정은 하루에에게 더없이 각별하였다.

그날은 아버지와 고성길이 력사자료때문에 멀리 떠났을 때였다. 어머니는 지성병원에 입원해있었다. 자기 병은 고질병으로 고치기 어렵다고 했지만 부향녀가 끝내 자기 병원 침대에 눕혀놓았던것이다. 그리하여 리진미는 고명철의 집에서 얼마간을 지내게 되였다.

밤이 퍽 깊어서야 부향녀가 돌아왔다.

《아이구, 너희들 배가 고프겠구나.》

그는 들어서는 길로 오면서 사온 눅거리초밥을 꺼내놓았다. 모두 살림이 어려운지라 한끼한끼를 대충 에우는 판이였다.

하루에가 얼른 그것을 받아 그릇에 담았다.

밥상에 둘러앉은 그들에게로 다가오던 부향녀의 눈길은 하루에의 밥그릇에서 멎어섰다.

동생이나 리진미에 비해 초밥의 개수가 퍽 작았던것이다. 자기는 나이가 먹었다고 동생들을 생각하는 그 마음에 코마루가 찡했다.

《하루에야, 넌 왜 고것밖엔 먹지 않느냐?》

《어머니, 일없어요. 난 요거면 돼요.》

부향녀는 두말없이 자기 몫을 그에게 덜어주었다.

어느새 그릇을 바닥낸 고명철과 리진미가 그를 바라보았다.

《엄마, 나 좀더…》

《큰엄마, 나두요…》

자기의 그릇들을 내들며 간청하는 그들을 보는 부향녀의 눈길은 엄했다.

《제 몫을 먹었으면 됐지… 누나는 너희들을 생각해서 제 밥을 덜어주지 않았느냐.》

고명철은 눈을 할깃하더니 주눅이 들어 그릇을 놓았다.

부향녀는 하루에가 초밥을 다 먹는것을 보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정말 리해되지 않았다.

무엇때문에 하루에에게 그리도 극진한지… 혹시 무로우의 말대로 하루에가 부향녀의 몸에서 태여난 일본녀자가 아닐가?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마에다 사부로는 이 점을 놓치지 않으려고 할것이다. 그렇다면…

리진미는 불안한 생각을 안은채 승용차의 발동을 걸어 도로쪽으로 몰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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訪問者 - -- - ISO ul - 2017-09-05
세상에는 책도 많지만 어머니 조국에서 발행한 소설 책이 좋아요!

잘 읽고 갑니다!
감 상 글 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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