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부향녀는 간신히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퍽 눈에 익은 방이라 안도의 숨이 나왔다. 언제 어떻게 되여 입원실에 누워있는지 알수 없다.

혹시, 진미 그애가? …

어쨌든 그는 죽음의 고비에서 구원되였다. 아마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영영 깨여나지 못했을것이다. 두려웠다. 언제이건 한번은 갈길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느닷없이 다가올것만 같아 무서웠다.

나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지 않는가. 그것을 못다하고 죽는다면… 그래, 일어서야 한다.

그는 몸을 일으켜 침대에 기대앉았다.

이때 문이 열리더니 하얀 위생복을 입은 김경아가 들어섰다.

《어머니, 어쩌자고 이러세요?》

《난 일없다.》

《아니예요. 며칠 좀 안정하셔야 해요. 어머닌 그동안 병이 더 악화되였어요.》

부향녀는 고집스레 침대에서 일어났다.

《내 몸은 내가 더 잘 안다.》

김경아는 너무 안타까워 울상이 되였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여기서 푹 쉬세요. 예?》

《날 생각해주는 네 마음은 고맙다. 허나…》

그는 문밖으로 나가려고 걸음을 옮겼다.

이때 문이 열리며 김성진이 들어섰다.

《허, 이거 벌써 산보를 하시렵니까?》

《움직이지 않는 몸이야 벌써 죽은 목숨이지요.》

김성진은 그를 침대우에 도로 앉혀주었다.

《그러지 말구 숨이나 고르고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그는 옆에 서있는 딸에게 힐난하듯 말했다.

《의사인 네가 있으면서도 환자가 병원규률을 어기게 하느냐?》

부향녀가 황황히 그의 말을 가로챘다.

《아니우다. 실은…》

《허, 이 병원규정이야 사둔님이 정하신건데 앞장에서 지켜야지요.》

김성진은 넉넉한 웃음을 지었다.

《사실 성호동무가 아니였다면 정말 큰일이 날번 했습니다.》

부향녀는 놀라운 기색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럼! …》

《예, 어제 그 동무가 선생님을 따라갔다가 거기서 그냥 기다린 모양입니다. 그러니 더 고집부리지 마십시오. 이젠 자기가 늙었다는것도 아셔야지요.》

부향녀는 난색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늙었어도 심장이야 뛰고있지 않나요. 더우기 지금이야…》

《허, 너무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성옥이 아버지 회사때문에 총련본부는 물론 동포기업가들도 노력하고있으니 이제 좋은 소식이 있을겁니다.》

부향녀는 감동에 젖은 눈빛으로 김성진을 바라보았다. 말없이 뒤에서 자기를 받쳐주는 그 마음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자기의 가정을 위해주고 도와주는 동포들의 그 뜨거운 성의에 머리가 숙어졌다.

《부위원장동지가 또 저때문에… 하지만 그들도 지금 몹시 힘든 형편이겠는데…》

부향녀는 미찌다로가 아들에게 독도주변에서의 비법적인 어업활동을 조건부로 내세웠다는 말을 듣고 격분을 금할수 없었다. 이것은 순전히 일개인에 의해서 발단된 행위가 아니라 독도에 대한 저들의 야망을 실현하려는 극우보수세력들의 책동이라는것은 삼척동자에게도 뻔한 일이였다.

그래서 그날 저녁으로 마에다 사부로에게 전화를 걸어 사연을 물었다.

그때 마에다는 울분에 찬 어조로 말했다.

《늙은 여우일수록 더 교활한게 아닙니까. 난 구리시마 다께시가 그렇듯 무서운 음모를 꾸밀줄은 몰랐습니다. 정말이지 내가 성길형님과 부인님께 또 죄를 범하는것 같습니다.》

《그게 어찌 의원님의 잘못이겠나요. 그래도 의원님이야 우리 집안을 위기에서 건져주느라고 노력하지 않았나요.》

부향녀는 이 모든것의 중심에는 구리시마 다께시가 서있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스스로 포기하기를 바래서…

그런데 오늘은 김성진을 비롯한 모든 동포들이 자신을 힘껏 떠밀어주고있다.

부향녀는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성진과 며느리가 그를 제지시켰다.

《아니, 왜 이러십니까?》

《어머니, 제발 오늘만이라도…》

부향녀는 간절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자기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리해해주기를 바랬다.

《부위원장동지! 전 침대에 누워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제가 그 고마운 사람들을 무슨 낯으로 대하겠습니까.》

김성진은 더는 그의 결심을 막을수 없다는것을 알았다.

이때 땀주머니가 된 조성호가 막 뛰여들었다.

《선생님, 나타났습니다.》

워낙 덤비기 잘하는 그인지라 방에 들어서면서 무작정 흥분을 터쳤다.

모두가 의아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부향녀가 《도대체 무엇이 나타났다는건가?》 하고 물었다.

그제서야 그는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정색한 태도를 취했다.

《우리가 그렇게 애타게 찾던 <나까이리력서>가 제발로 찾아왔습니다.》

그제서야 모두 긴장감을 가셔버렸다.

부향녀는 모든 감각을 잃어버린듯 무표정으로 서있기만 했다. 그렇게도 애를 태우던 자료가 이렇게 불쑥 나타날줄은 몰랐다.

모두들 어떻게 되여 조선대학교까지 달려왔는지 모른다.

지향숙은 이미 콤퓨터의 전자우편주소로 들어온 《나까이리력서》를 복사한 상태였다.

《그래, 자료를 보낸 사람이 누구더냐?》

부향녀의 물음에 향숙은 고개를 살며시 숙였다.

《원장선생님, 알아보려고 했지만 봉사기지에서 그런 주소는 없다고 나왔습니다.》

《그럼? …》

《예, 상대방은 문서만 보내고 인차 자기의 주소를 삭제해버린것 같습니다.》

김성진은 심중한 기색으로 아래턱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혹시 그 자료가 가짜일수 있지 않을가?》

지향숙이 그의 의심을 덜어주었다.

《부위원장동지, 저도 그런 생각이 들어 전번에 원장선생님이 알려준 전화번호에 전화를 했댔습니다.》

부향녀는 향숙을 쳐다보았다.

《시마네현에 있는 그 일본인로교수에게 말이냐?》

《예, 교수선생님은 저의 설명을 듣더니 자료가 정확하다는것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타자를 치지 않은 문건인데 자기가 밑줄을 그어놓은 부분이 없는것으로 보아 집에서 잃어버린것이 아니라고 했을뿐입니다.》

부향녀는 향숙이가 인쇄한 자료를 들여다보았다. 정말 그의 말대로 사진으로 찍은것인데 밑줄표식들이 없었다. 원본을 찍어서 그대로 보낸것이 분명했다.

일전에 로교수는 독도가 일본의 시마네현에 속해있다는 주장이 바로 이 《나까이리력서》에 씌여져있는 《독도임대청원서》에서부터 시작되였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매우 귀중한 자료였다. 지금까지 나까이의 《독도임대청원서》에 대해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보기는 처음이였다.

부향녀의 뇌리에는 시마네현에서 로교수가 들려주던 이야기가 생생히 떠올랐다.

20세기초에 와서도 일본정부와 민간인들은 모두가 독도가 조선의 령토임을 잘 알고있었다. 1903년부터 독도수역에서 물개잡이로 돈벌이를 한 나까이는 1904년에 어기를 마치고 도꾜로 올라오게 되였다. 그에게는 큰 목적이 있었던것이다. 후날 그는 자기의 리력서에서 당시 자기가 수도로 올라오게 된것은 독도가 울릉도에 소속된 령토이므로 일본정부가 조선봉건정부에 물개잡이독점권을 교섭해줄것을 청탁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즉 독도를 일본의 령토에 편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명백히 임대를 청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일본은 1905년 1월 28일 내각회의에서 시마네현 어업가 나까이가 제출한 《리양꼬섬(독도)령토편입 및 임대청원》에 기초하여 독도가 주인이 없는 땅이라는 전제하에 《오끼도사의 관할로 한다.》는것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2월 22일부로 《시마네현고시》 제40호라는것을 조작하였다. 이들은 《… 오끼섬으로부터 서북 85마일에 있는 섬을 죽도(다께시마)라고 칭하고 오늘부터 본 현소속 오끼도사의 관할로 정하였다.》고 공포하였던것이다.

이것은 당시 독도를 일본의 령토에 편입하려는 당국자들의 억지주장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독도가 무인도이기는 하였지만 결코 주인이 없는 땅은 아니며 조선의 섬이라는데 대해서는 그 이전시기는 물론 《편입》당시에도 일본정부와 민간인들은 모두 잘 알고있었다.

《나까이리력서》의 부속문건들에는 이런 사실자료들이 씌여져있었다.

《… 명치정부는 1877년 3월 전국적인 지적조사(땅을 조사하여 등록하는것)와 관련하여 제기된 울릉도와 독도의 령토소속에 대하여 저들과 관계없다는 공식지령문을 내무성과 시마네현에 하달하였었다. 내무성도 1904년 나까이의 임대청원이 <편입청원>으로 와전되여 제기되였을 때 초기에는 <이 시국(로일전쟁)에 조선령토로 의심되는 황막한 일개 불모의 암초를 거두어 주변의 다른 나라들에게 우리 나라(일본)가 조선병탄의 야심이 있다는 의문을 크게 하는것은 리익이 적다.> 하여 그것을 기각시키려고 하였다.》

그때 조성호는 《교수선생님, 그렇지만 일본정부는 로일전쟁의 승패를 위한 목적에서 다시금 이 문제를 꺼들이고 본격적으로 추진하지 않았습니까?》라고 자기의 견해를 밝혔다.

《젊은이의 말이 옳네.》

로교수는 조성호를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고나서 책갈피에서 여러건의 문서들을 꺼내보였다.

《이건 명치정부가 외무성관리들을 부산에 파견하면서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에 속하게 된 경위를 알아올데 대한 지령을 주었다는 사실을 기록한 <일본외교문서> 3권에 실린 자료이네. 그리구 이것은 극비문건인 <명치 37, 38년 해전사> 4부의 4권에서 복사한것이구…》

부향녀는 그 문건을 집어들었다. 자료들은 하나와 같이 일본의 침략시도가 1904년-1905년 로일전쟁을 계기로 적극적인 단계에 들어서게 되였다는것을 시사해주고있었다.

조선에 대한 식민지지배권을 놓고 벌어진 침략전쟁인 로일전쟁당시 조선동해지역은 그 중요한 작전수역으로 되고있었다. 남하하는 짜리로씨야함대를 감시함에 있어서 바다 한가운데 있는 독도는 그야말로 최적지였다.

이로부터 출발하여 일본은 조선과 울릉도, 독도, 일본본토를 련결하는 감시체계를 계획적으로 추진하였던것이다. 바로 이러한 때에 나까이가 제출한 임대청원은 독도강탈의 꿈으로 밤을 패우던 당국자들에게 절호의 기회를 안겨주었다. 이리하여 일본해군성은 지체없이 독도가 무소속이라는 《판단》을 주었다.

일본외무성도 이에 박자를 맞추어 지금이야말로 독도를 저들의 령토에 편입시킬 적절한 시기라는것을 생각하고 이를 요구했다. 망루를 건축하고 무선 또는 해저전신을 설치하면 적함감시에 극히 좋지 않겠는가, 빨리 청원서를 회부하라고 나까이를 충동했다.
이렇게 되여 나까이의 초기목적이였던 임대청원은 《령토편입 및 임대청원》으로 확대되였고 그에 기초하여 독도의 《시마네현편입》이 이루어지게 되였다고 기록되여있었다. …

부향녀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자료를 책상우에 놓았다. 력사는 절대로 외곡할수도 수정할수도 없는것이다. 모든 사실과 자료들은 독도는 바로 조선의 령토이라는것을 여실히 증명해주고있었다.

이를 뻔히 알면서도 일본은 한 어부의 청원을 외곡하고 저들의 침략적야망실현을 위한 기초로 삼아왔던것이다. 그 본성은 변하지 않고 오늘에로 이어져 더욱 로골화되고있으며 나중에는 력사를 외곡하는데까지 이르렀던것이다.

조성호가 부향녀에게 물었다.

《선생님, 이 자료를 우리에게 보내준 사람이 누구인지 짚이는데가 없습니까?》

과연 누구일가?

부향녀는 자기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주인공을 상상해보듯 미간을 쪼프렸다. 자기가 알고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생각해보았다. 끝내 이렇다할 표상을 그려내지 못했다. 총련계의 력사학자들은 모두 조선대학교와 직접 련결되여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일본의 력사계에서? …

부향녀는 인차 머리를 가로저었다. 물론 그는 일본의 진보적인 력사학자들을 몇명 알고있었다.

하지만 무엇때문에 그들이 이렇게 자신을 숨길 필요가 있겠는가. 혹시 극우보수세력들의 탄압때문에…

그는 누군인가 자기들의 일을 남모르게 도와주고있다는 생각만은 지워버릴수 없었다.

《아무튼 력사의 진실을 지키고싶어하는 귀중한 마음일테니 이걸 잘 참고해라. 력사란 결코 몇몇의 력사가들에 의해서만 지켜지고 전해지는게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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訪問者 - -- - ISO ul - 2017-09-05
세상에는 책도 많지만 어머니 조국에서 발행한 소설 책이 좋아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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