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무로우의 장인이였던 참의원 의원 히사즈네가 심장발작으로 급사했다. 비록 정객이기는 하지만 살만큼 다 산 늙은이의 죽음인것으로 하여 그의 마지막길을 수많은 눈길들이 무심히 바래웠다.
그러나 구일본군 장교였던 그의 죽음에 류다른 관심을 돌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바로 《보라매》와 야마모도였고 또 무로우자신이기도 했다. 그는 자기의 후견인이 히사즈네와 류다른 친교를 맺고 살았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가 가정을 이룬것도 이 두 늙은이들의 교섭이 성사시킨 사상루각이였고 리혼도 어찌 보면 후견인의 변덕스러운 질투가 빚어낸 결과이기도 했다.
무로우는 신문을 통하여 히사즈네가 급사했다는 소식을 알았을 때 공포에 가까운 전률을 느꼈다.
얼마나 건강한 늙은이였던가.
후견인과 차이가 있었다면 인생의 과거를 안고 후회를 할줄 아는 인간다운 측면이 있었다. 무엇을 두고 자신을 참회하였는지는 그만이 아는 비밀이였을것이다.
그들이 리혼하기 전에 안해는 이렇게 말한적이 있었다.
《나의 아버진 아마 회의주의자로 인생을 마감지으려는가 봐요.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지나간 일들에 대한 류다른 향수를 느끼며 회상록 같은것을 집필하고있거든요.》
히사즈네는 끝내 그 회상록이라는것을 세상에 내놓지 못한채 저승에 갔다.
후견인의 권고로 장례식에서 돌아오는데 한 젊은 녀인이 그를 조용히 불렀다.
요염한 교태를 남실남실 날리며 서있는 그 녀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무로우는 이마살을 찌프렸다. 그는 히사즈네가 생전에 그토록 사랑해주던 애첩이였다.
《난 당신이 우리 령감님의 명복을 빌어주니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도리를 지키는데 감사가 무슨 필요가 있겠소.》
남들의 눈길도 있고 해서 무로우는 인차 자리를 뜨려고 했다.
《잠간 계세요.》
녀인은 눈웃음을 지으며 바투 다가들었다.
《이건 내 육감이예요. 우리 늙은이는 무엇인가 남기려다 죽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긴 나한테 손해를 준것은 하나도 없어요. 난 이미 필요한 재산상속을 다 받았으니까요.》
무로우는 불쾌한 인상으로 그 녀자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보세요. 당신도 요즘은 홀로 밤을 보내기가 쓸쓸할텐데 생각이 있으면 저를 찾아오세요.》
《그만하시오.》
녀인은 코웃음을 쳤다.
《흥, 곧은 막대기인체 하지 말아요. 우리 세상은 음모와 파멸, 횡재로 이루어져있는게 아닌가요. 그래도 제일 순결한건 이성에 대한 본능밖엔 없어요.》
물론 무로우는 그의 희떠운 소리에 침을 뱉았다. 그렇지만 한마디만은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두 녀자의 말은 모두 하나의 시점에 모여들었다. 그것은 히사즈네가 쓰고있었다는 글이였다.
장례식장에서 돌아온 후견인은 서글픈 탄식을 하였다.
《또 한사람이 련꽃바다를 찾아갔군. 히사즈네는 구새먹은 우리 일본의 남아였어. 량심에 미쳐버린 정신병자이지.》
무로우는 그 말이 무심하게 들리지 않았다.
후견인은 항상 저런 식으로 량심에 대한 견해를 밝히군 했다.
《인간이 량심에 병들면 대의를 저버리게 되는거야. 량심이란 어디까지나 무기력한 작자의 허울에 불과한것이거던.》
히사즈네의 량심이란 과연 어떤것인가? 혹시 후견인은 그의 죽음을 다른것에 결부해보는게 아닐가?
무로우는 그 무슨 곡절이 숨어있는것 같은 예감에 신경이 예민해졌다. …
그는 야마모도를 조용히 불렀다.
《이보라구, 내 임자에게 친구로서 부탁을 하자구.》
《무슨 일이기에 그렇게 긴장해서 그러나?》
《난 어쩐지 히사즈네선생의 죽음이 여의치 않게 여겨지는구만. 어떻게 건강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심장발작으로 죽을수 있는가 말이네.》
야마모도는 무심한 태도를 취했다.
《이보게, 꼭 론리적인 관찰로만 인간생활을 들여다보려고 해서는 안되네.》
《야마모도, 우선 내 말부터 듣게.》
무로우는 자기의 이전 안해와 히사즈네의 애첩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했다.
《난 그들의 말을 무심히 넘길수 없어서 부탁하는거네.》
《그렇다면 내 그 회상록을 찾아보지.》
… 무로우는 지금 지루한 기분에 잠겨 탁상시계에 눈길을 주었다.
야마모도가 왜 늦어질가?
어떤 소식을 가지고 오겠는가 하는것이 궁금했다. 때로는 조바심이 나기도 했고 또 그 어떤 공포 같은것이 생기기도 했다.
술을 벌써 몇잔째 마셨는지 모른다.
약속된 시간보다 30분이나 늦어 야마모도가 나타났다.
《허, 오래 기다렸겠구만.》
《인제야 오나?》
야마모도는 식탁우에 있는 물을 꿀꺽꿀꺽 마셨다.
《허, 이 더운 날에 위스키라… 하긴 불은 불로 끄랬던가.》
《그래, 알아봤나?》
야마모도는 새 잔에 위스키를 붓고 조금 들이켰다.
《노력은 해봤지만…》
그는 한숨을 내긋고나서 말을 이었다.
《히사즈네의 방에 새여들어가 찾아봤는데 자네가 말하던 물건은 그림자도 없더구만.》
《?! …》
무로우는 랑패한 기색을 지었다.
《혹시 잘못 본게 아닌가?》
《원,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자네 이 야마모도의 솜씨를 잊은게로구만.》
《아니, 그래서가 아니네. 분명 두 녀자의 말을 들어보면 꼭 그게 있어야 하네. 그들은 다 히사즈네와 제일 많이 접촉한 사람들이네.》
야마모도는 무로우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
《그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네. 단지 그것은 회상록이 아니라 참회록이라는거네.》
무로우는 놀라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참회록이라니… 그게 확실한가?》
야마모도는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담은채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네. 그런데 참회록은 이미전에 자취를 감추었다는거네.》
《뭐라구? … 그럼 그게 누구의 손에 들어갔다는건가?》
야마모도는 담배를 붙여물고 연기를 뿜어댔다.
《내가 알기에는 고인과 제일 가까운 사람의 손에 들어갔다는거네. 혹시 자네 짐작되는 사람이 없나?》
무로우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히사즈네와 제일 가까운 사람? …
피뜩 후견인이 장례식장에서 돌아와 하던 말이 떠올랐다.
《또 한사람이 련꽃바다를 찾아갔군. 히사즈네는 구새먹은 우리 일본의 남아였어. 량심에 미쳐버린 정신병자이지.》
혹시 선생님이! … 그렇다면 그한테 왜 참회록이 필요했을가? 아니, 잘 생각해보자. 만일 야마모도의 말이 사실이라면 히사즈네선생과 제일 막역한 사람은 나의 후견인밖엔 없지 않는가.
무로우는 인차 머리를 가로저었다.
두달전 히사즈네의 부름을 받고 그의 집에 갔던적이 있었다. 비록 제 딸과 리혼한 이전 사위이지만 무로우에게 애틋한 정을 품고있는 늙은이였다.
그날 히사즈네는 자기가 직접 차를 끓여 무로우에게 내놓았다. 그는 원래 이렇게 제손으로 차를 끓여 남에게 대접하기를 좋아했다. 그가 끓이는 차는 다른것에 비해 향기도 생신하고 맛도 독특했다.
《선생님의 차끓이는 재간은 여전하십니다.》
히사즈네는 그의 귀맛좋은 칭찬에 못내 흡족해했다.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닐세. 이를테면 인간의 정신적여유를 조절해주는 필수적인것이라고도 할수 있지.》
《그건 정말 처음 듣는 소리입니다.》
히사즈네는 히죽하니 웃었다.
《그럴테지… 이미 오래전에 우리 일본에 넘어와 차도를 보급한 조선사람들은 이 차가 인간이 본래 지니고있던 깨끗한 마음, 어진 마음으로 돌아가게 해준다는 의미를 담아 여기에 아홉가지의 덕이 있다고 했다네.》
《그 아홉가지 덕이란 뭡니까?》
히사즈네는 차잔을 들어 그 향기를 들이켰다.
《우선 머리를 맑게 하고 다음은 귀와 눈을 밝게 하며 입맛을 돋군다고 했지. 다음은 피로를 풀어주고 목마름을 멈추어주며 추위를 막게 하고 더위를 물리친다고 했다네.》
듣고보니 정말 신통하다는 생각에 무로우는 탄복을 금치 못했다.
《그렇게 놓고보니 정말 꼭 맞는것 같습니다.》
《우린 이 좋은 차를 우리 일본인들에게 보급해준 조선사람들에게 머리를 숙여 감사를 드려야 할거네.》
《옳은 말씀입니다. 솔직히 그들이 우리 선조들에게 문화를 전파해주지 않았다면 오늘의 일본은 생각할수 없었을겁니다.》
히사즈네는 괴로운 숨을 내그으며 탄식조로 말했다.
《헌데, 대대로 내려오는 가문의 비법을 넘겨줄 자식이 없으니 정말 한스럽네.》
그는 지금 자기의 딸을 원망하고있었다.
《정말이지 임자에게 면목이 없네. 제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는게 자식들인 모양이야. 하긴 우리 세대와 자네 세대의 숨결이 같을수야 없지.》
그의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비감에 젖어있었다.
《선생님! 생활관은 다르지만 피줄이야 어디에 가겠습니까.》
늙은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임자도 그새 처세술이 꽤 늘었구만.》
뜻밖의 질책에 무로우는 머리를 숙였다.
《제가 기분을 불쾌하게 만들었다면 용서하십시오.》
히사즈네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무로우의 주변을 거닐었다.
《똑바로 명심하라구. 인간은 태여날 때부터 좋고나쁨을 가지고 난게 아닐세. 그러면 무엇이 사람들을 두 부류로 갈라놓겠나? 그건 바로 교육일세. 누구에게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가에 따라 선자와 후자로 갈라지게 되지. 그렇듯 사람에게 있어서 생활환경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
무로우는 그가 오늘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리해할수 없었다. 무엇인가 자신에게 암시하려는것 같기도 하고 또 일깨워주려는것 같은감이 들었다.
《야마또민족의 피줄이라?! … 그래, 우리야 그걸 이어받으며 살아왔지. 그러나 그 민족이 무엇때문에 아직도 세계면전에서 치욕의 대명사로 불리우게 되는가를 임잔 생각해본적이 있나?》
《제 좁은 소견에는 우리 일본이 전패국이라는 수치를 걸머진 때부터 시작되였다고 생각됩니다.》
《전패국의 수치때문이란 말이지…》
히사즈네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 괴롭게 한숨을 내쉬였다.
《그래, 우리가 자네들에게 그렇게 가르쳤지… 허나 실은 그것만이 아닐세.》
무로우는 머리를 쳐들고 히사즈네를 바라보았다.
《? …》
《우리는 세계앞에 너무도 큰죄를 지었어. 대를 두고서도 씻을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거던. …》
《선생님,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 일본이 대륙평정의 꿈을 품은거야 아시아의 민족들을 무지와 몽매에서 구원하기 위한 의로운 행동이 아니였습니까.》
히사즈네는 허연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자네는 아는것보다 모르는것이 너무도 많네. 그것은 바로 독재자들이 자기들의 정치적야심을 가리우기 위한 한갖 면사포에 불과한것이네.》
《?! …》
히사즈네는 자기 말을 계속해나갔다.
《사람이 남에게 죄를 지었으면 응당 사죄를 하고 배상을 하는게 도리야. 그렇지 않으면 그 죄에서 영영 벗어날수 없거던. …》
무로우는 히사즈네의 급작스러운 변화가 이상했다. 언제나 자기에게 일본인으로 태여났으면 나라의 리익을 위해 그 어떤짓도 다해야 한다고 설교하던 그였다. 더우기 구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은 언제든지 실현해야 할 력사적과제라고 력설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있었다. …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근래에 와서 히사즈네의 심신에 보이지 않는 파도가 일고있었다는것은 사실이였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죽은 그와 참회록만이 알수 있었다. 그럴수록 그것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동했다.
분명 어떤 력사적인 자료가 기록되여있을것이다.
한참동안 무로우의 표정을 살피던 야마모도가 입을 열었다.
《이보게, 내 생각에는 그게 혹시 자네의 후견인에게 들어가지 않았는가 하는거네.》
《후견인에게? … 나도 방금 그렇게 생각해봤네. 그렇지만 그한테 그게 무슨 필요가 있겠나?》
야마모도는 자기의 말뜻을 리해하지 못하는 그가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그걸 이 자리에서 꼭 밝히고 넘어갈 필요는 없었다.
《좌우간 자네 생각도 그렇다니 그건 참회록을 손에 넣으면 알게 아닌가.》
《임자의 말도 그럴듯하네. 그렇지만 그건 후견인에게 죄되는 일일세.》
야마모도는 그의 내심을 넘겨짚은듯 바투 다가앉았다.
《자네가 딱하면 내가 알아보겠네.》
《임자가? …》
《왜, 그래도 그런 측면에서야 글뒤주인 자네보다 내가 낫겠지. 후견인의 이름만 알려달라구.》
무로우는 선뜻 대답을 못했다. 아직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이름이였다.
《아, 걱정말라니까. 그 사람은 아무런 눈치도 차리지 못할테니까.》
무로우는 어떻게 해서든 그 참회록의 행처를 찾아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좋네. 그럼 자네에게 맡기겠네.》
무로우는 조용히 후견인의 이름을 말했다.
《아니, 그럼?! …》
야마모도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넨 정말 행운아일세. 그렇게 권위높은 인물의 후원속에서 사니 말일세.》
그러나 야마모도의 탄복은 다른데 있었다.
어쩌면 《보라매》가 짚은 이름과 신통히도 같을수 있단 말인가. 역시 그 녀자는 보통인물이 아니다.
사실 야마모도는 이곳에 오기 전에 《보라매》와 만났다. 그때 그 녀자는 그에게 히사즈네의 참회록이 그와 제일 가까운 인물인 한 고위정객의 손에 들어갔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그 정객이 무로우의 후견인이 아닌가를 확인해줄것을 부탁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