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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는 하네다고속도로를 따라 달리고있었다. 차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녀기자가 던진 그늘이 그대로 흐르는듯싶었다.

부향녀의 눈가에서는 교만방자한 녀인의 모색이 사라지지 않았다.

기자라는 사람의 력사관이 어쩌면 그리도 저렬할수 있을가?

좀전에 당한 모욕이 풀리지 않은듯 마에다가 쓰겁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부인님, 개의치 마십시오.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나는게 세상살이가 아닙니까. 그는 자기를 일명 <보라매>라고 칭하는 탐방기자인데 얼마전에 미국에서 왔다는것 같습니다. 이름처럼 입부리와 발톱이 사나운 녀자이지요.》

《그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요?》

《자세한 경력은 모르지만 세상천지를 돌아치는 조선사람인것만은 분명합니다.》

부향녀의 가슴속에서는 이상야릇한 감정이 움트기 시작했다.

《조선사람! … 이상한 생각이 드는군요. 우연인것 같지 않습니다. 마치 걱정이라도 하는것 같은 말을 흘려듣게 되지 않는군요.》

마에다는 대수롭지 않은듯 한 인상이였다.

《그 기자들이란 족속들은 언제 봐야 사람들을 깜짝 놀래우는 일들만 빚어내군 하지요.》

부향녀는 연한 한숨을 지었다.

《천박한 행동이야 불치의 병이 아니지요. 난 단지 그한테서 조선사람의 넋과 피를 볼수 없는게 안타깝습니다.》

《병든 나무 한대 베여버린다구 산림에 손상을 주는 법은 없지요.》

마에다는 헌헌한 웃음을 지으며 《보라매》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 녀자는 미국에서 사는 조선인기업가의 제자이며 그 연줄로 미국과 일본의 실업계는 물론 고위정객들과도 인연이 깊다는것이다.

운전대를 잡은 고명철이 쓰겁게 내뱉았다.

《그래서 그렇게 유아독존인가? …》

마에다의 얼굴에는 전에 없는 긴장이 비꼈다.

《단지 그것만이 아닌것 같습니다. 그 나이에 벌써 여러 정객들의 추문을 발가놓아 세계언론계에서 주목되는 인물이지요. 그런데 모를 일은 그가 무엇때문에 넓다란 활무대를 버리고 이 좁은 섬나라에 왔는가 하는겁니다. 게다가 첫 대상으로 부인님을 정했다는데 문제가 있단 말입니다.》

부향녀는 《보라매》의 마지막말을 되새겨보았다.

《… 선생님은 오늘 부드러운 언사로 일본의 극우보수세력에 강타를 안겼거든요. 그들이 가만있을가요?》

확실히 무엇인가 암시하는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그와의 만남은 매우 불쾌한 인상을 남겼다.

고명철이 어머니의 눈치를 힐끔 살폈다.

《어머니, 이젠 좀 쉬십시오. 우리 총련에도 젊은 력사학자들이 자라고있지 않습니까.》

마에다도 공감을 표시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늘그막에 심신이 편안해야 고생한 보람도 있는게 아닙니까.》

부향녀도 솔직히 예전처럼 오금이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병원일도 돌보고 력사자료들을 찾으며 쉴새없이 달리고달린 그였다. 단즙이 다 빠진 몸은 스스로 걸머진 짐에 짓눌려 뼈마디가 다 물러앉을 정도였다.

《사실 저도 그런 생각이 없었던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한생에 얼마나 일할수 있는가. 직업이 의사인 내가 남편이 남기고 간 론문을 완성했다. 그 길은 남모르게 흘린 눈물이였고 헤아릴수 없는 고행의 련속이였다. 력사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을 알아야 했고 수많은 사료와 분석이라는 원시림을 헤쳐야 했다. 어찌, 나 혼자서 걸은 길이라고 하겠는가. 조선대학교의 연구사들인 조성호와 지향숙의 방조가 없었다면 오늘이 있었겠는가. 이 에미의 마음을 헤아리며 말없이 뒤를 받쳐준 아들과 며느리의 눈물겨운 정성을 떠나서 어이 생각하랴. 이제는 나도 늙었다. 고목이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평양방문의 나날은 그의 정신을 정화시키는 계기가 되였다. 조국인민들의 정신육체는 너무도 건전하고 생신했다. 그들의 삶은 시작도 끝도 오직 나라와 민족의 번영에 놓여있었다. 그들에 비하면 자신은 너무도 많은 잡균에 오염된것 같았다. 생각할수록 작고 초라한 존재로 여겨졌다.

《전 이번에 사람은 어디서 사는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어떤 정신과 의지로 사는가 하는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던 성옥이 할아버지의 말을 새삼스럽게 되새겨봤어요. 조국이라는 생명체와 숨결을 잇지 못하는 인간은 살아도 죽은 목숨이라고 말이예요.》

《물론 어머니의 말씀이 옳긴 하지만…》

고명철은 무엇인가 더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여직 침묵속에 앉아있는 김성진의 감동은 컸다. 백발은 결코 늙음이 아니였다. 고목에서 피여나는 푸른 잎새를 보는것만 같아 마음은 마냥 설레였다. 마를줄 모르는 자양분으로 꿋꿋이 선 거목을 보는 심정이였다.

작은 사람은 산꼭대기에 세워놓아도 작은 법이고 큰 사람은 웅뎅이안에 세워도 역시 크다더니! …

《참, 성길형님의 묘소에 들려야지요?》

김성진의 물음에 부향녀는 눈굽을 슴벅이였다.

《제 마음을 알아주어 고맙습니다.》

승용차는 시나가와구를 지나 계속 달렸다.

뒤에서는 조성호와 지향숙이 탄 차가 따라오고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지향숙이 앞차를 보며 의문을 표시했다.

《선생님이 왜 집을 지나칠가요?》

《어데 들리시려는거겠지.》

조성호는 처녀의 능란한 운전솜씨에 취해있었다. 26살이라는 나이보다 퍽 어려보였다. 허나 온몸에는 녀성적인 세련미가 짙게 풍기고있었다. 윤기어린 머리태와 쌍까풀 곱게 진 그의 두눈은 정말 매혹적이였다. 누가 뭐라고 하면 생긋이 웃음을 머금다가도 한순간에 상대를 쏘아보는듯 한 시선은 그의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 이 순간도 속눈섭은 나비처럼 가벼이 깜빡이며 자기를 부르는것만 같았다.

그러나 지금 지향숙의 안색은 별스럽게 흐려져있었다.

《성호동무, 도대체 하루에언니는 어떻게 된걸가요?》

제 생각에 옴해있던 조성호는 그제서야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나도 뭐가 뭔지 통 모르겠소. 어떻게 되여 원장선생님이 일본녀자를 친딸처럼 키우고계시는지.》

《그런데 그 녀기자가 선생님의 가정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있는게 참 이상하단 말이예요.》

조성호는 향숙이와는 달리 흔연한 태도를 취했다.

《참, 동무두… 기자들이란 원래 자기가 선정한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파악으로부터 모든 일을 시작하지 않소. 이를테면 동무와 내가 하나의 론문을 위해서 숱한 력사자료들을 연구하는것처럼 말이요.》

지향숙은 여전히 아리숭한 의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었다.

《그렇긴 하지만… 어쨌든 하루에언니에 대한 그 녀자의 차거운 폭설에 내 가슴이 다 싸늘해지더군요.》

조성호도 시무룩한 표정으로 등받이에 기대며 눈길을 차창밖으로 돌렸다.

《참 성호동무, 우리가 조국방문으로 평양에 다녀온지도 이젠 5년세월이 흘렀군요. 그새 많이 변했겠지요?》

조국방문이라는 소리에 조성호는 인상을 밝게 가졌다.

《허, 많이가 다 뭐요. 아예 천지개벽이 되였소.》

그의 대답은 지향숙의 호기심에 불을 달았다.

《그럼, 그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세요.》

《글쎄, 뭐라구 할가? …》

조성호는 깊은 감회를 불러오듯 두눈귀를 접었다. 그러나 신통한 말귀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 이럴 땐 시인이 못된게 한스럽구만. 그들은 풍만한 시어들속에서도 가장 적중한 언어들로 자기의 감정을 표현한다는데…》

그는 자신의 무능력을 질책하는듯 못내 안타까워했다.

《좌우간 모든게 꿈속에서 보는 현실같았소.》

지향숙은 그의 말에 진저리난듯 입을 삐쭉해보였다.

《으-음, 무슨 사람이 그래요. 뭐가 꿈이고 어느것이 현실인지 좀 차근차근 설명해줄수 없나요?》

사실 지향숙이 조급해할만도 했다. 그는 대학생시절에 조국을 다녀온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오늘까지의 나날들은 조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어진 시간이였다. 그래서 이번에 조성호가 돌아오면 그 갈증을 덜고싶었던것이다.

처녀의 뾰로통한 어조에 조성호는 태도를 바꾸었다.

《사실 난 이번에 줄곧 이런 생각을 했소.》

지향숙은 숨소리를 죽이며 그의 감회어린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도 조국에서 살았으면 하고 말이요. 솔직히 난 지금까지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애착은 우리처럼 해외에서 사는 사람들한테서만 분출되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댔소. 이를테면 어머니곁에 있으면 그 사랑의 폭과 깊이를 잘 모르는 자식처럼 말이요. 그러나 조국의 공기와 환경은 나의 그릇된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놓았소.》

조성호는 조국방문기간에 받은 감흥과 열광, 흥분과 격정을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지향숙은 명랑한 모습으로 그의 감정에 호흡을 맞추었다.

《정말 그래요. 나도 조국을 방문하기 전에는 내가 뿌리를 둔 땅이 과연 어떨가,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을가 하는 호기심을 걷잡을수 없었어요. 그런데 정작 그 땅에 발을 붙이고보니 꼭 고향집 아래목처럼 따스하고 포근한게 얼마나 좋던지… 떠나오는 날에는 선생님에게 난 평양에 떨어지겠다고까지 했다니까요.》

처녀는 조성호에게 시선을 주며 물었다.

《성호동무, 우린 언제면 조국에 다시 가볼수 있을가요?》

조성호는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동문 별걱정을 다하는구만. 이제 나와 결혼을 하고 신혼려행으로 가면 될텐데…》

느닷없이 울리는 그의 말에 지향숙은 두눈을 곱게 흘겼다.

《흥, 그런 허황한 꿈은 애초에 꾸지 않는게 좋을거예요.》

조성호는 주눅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빈정거렸다.

《향숙선생, 좋은 꿈은 꿀수록 좋은거랍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남자의 용기는 명령에서 나타나고 녀자의 용기는 복종에서 표현된다고 말했소.》

지향숙은 쓰겁게 웃었다.

《그러나 공자는 소인과 녀자는 다루기가 힘들다고 했어요. 동문 녀자의 가장 훌륭한 승리가 무엇인지 알기나 하세요? 그건 바로 굴복하지 않는거란 말이예요.》

《체, 그것도 남편은 제외한것이겠지!》

《그건 모르는 소리예요. 령리한 녀자는 남편에게 복종하면서 남편을 조종한다고 했어요.》

《그러면 나도 앞으론 동무의 손끝에서 놀아나게 된다는 소리요?》

조성호는 소름이 끼친다는듯 량어깨를 으쓱으쓱 떨었다. 그러나 인차 웃음을 담고 또 이죽거렸다.

《하긴 내가 아니면 누가 동무에게 모성애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겠소.》

지향숙은 두눈을 곱게 흘겼다.

《이 동무가 점점…》

그들의 평범한 대화는 늘 이런 식으로 흘렀다. 장난치는것 같기도 했고 롱담을 하는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한마디한마디에는 언제나 뜨거운 애정이 흐르고있었다.

… 잔풍진 골안에 자리잡은 공동묘지구역에는 고요가 흘렀다. 주변의 침엽수림은 오열을 억제하는 녀인의 흐느낌처럼 간간히 설레였다. 그사이로 마치 묘지기이기라도 한듯 대여섯마리의 까마귀들이 청승맞은 소리를 지르며 부산을 피운다. 흐릿하니 찌뿌둥한 날씨에 거무칙칙한 묘비들은 더욱 처량하게 드러나있었다. 음침한 기운은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자연히 울적하게 만든다.

계단을 톺아오르는 부향녀의 마음은 연추를 매단것 같았다. 수십년간 이렇게 찾는 남편의 묘소이다. 죄스러움과 원망감이 뒤섞인 심중은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아픔으로 저며들었다.

남편의 묘소가까이에 이르던 부향녀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대리석으로 된 묘비앞에 놓인 상돌에서는 생신한 꽃묶음이 잔바람에 바르르 떨고있었던것이다.

《어머니!》

뜻밖의 일에 김경아가 의문이 실린 시선으로 부향녀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있어본적이 없는 일이였다. 누구의 소행일가?

그들의 눈길은 꽃다발을 싼 종이에서 굳어졌다. 분명 무슨 글자가 씌여져있었다.

김경아가 그것을 펼쳐들었다.

 

    십리 모래사장

    언덕우엔 무덤돌

    청상과부 흰옷입고

    노래하듯 울고있네

 

    《오늘 무덤앞에

    부어놓은 이 술도

    님이 농사지은

    그 쌀로 빚었다오》

 

꽃다발과 종이장을 번갈아 보는 부향녀는 의문을 금할수 없었다.

누가 김병연(김삿갓)의 시 《청명날》을 써놓았을가? 꽃다발과 이 시를 과연 어떻게 리해해야 하는가?

시의 내용을 음미하던 마에다 사부로가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허, 어느 천벌받을 놈이 여기까지 와서 부인님을 괴롭히는군요.》

《에익!》

고명철이 울분을 터치며 제돌우에 놓인 꽃다발을 버리려고 집어들었다.

《놔두거라!》

부향녀의 목소리였다.

《어머니, 이건…》

《제자리에 놓으라고 하지 않느냐.》

긴장되고 놀라운 눈빛들이 그를 주시했다.

부향녀는 무릎을 꿇고 앉아 꽃다발을 내려다보았다. 하나와 같이 크고 싱싱한 꽃송이들이였다. 묘비의 돌사진에서는 고성길이 환하게 웃고있었다.

《여보! …》

부향녀의 입가에서 흘러나온 부름이였다. 수십년동안 단 한순간도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은 남편이였다. 힘들고 괴로울 때면 저도 모르게 그를 찾으며 가슴속 고충을 터놓고 눈물도 흘렸다. 의족한 다리를 끌고 하나의 력사자료를 위해 수십리 밤길을 걷던 남편의 모습에서 조국을 알게 되였고 그 귀중함을 간직하게 되였다.

《어머니!》

김경아가 불러서야 부향녀는 현실을 찾았다. 그는 손수건으로 상돌을 말끔히 닦았다. 그리고 꽃다발옆에 박사메달과 증서를 나란히 놓았다.

《여보, 드디여 당신의 소원이 풀렸어요. 조국에서는 당신의 론문에 박사학위를 수여해주었어요.》

눈앞은 뿌옇게 흐려졌다. 얼기설기 주름진 얼굴에는 무엇이라 형언할수 없는 비감이 어려있었다. 오늘을 보지 못하고 생죽음을 당한 남편의 운명이 아프게 찔려왔다.

여보, 당신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을거예요. 내 비록 늙고 지친 몸이지만 우리 자식들을 위해서 꿋꿋이 살아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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訪問者 - -- - ISO ul - 2017-09-05
세상에는 책도 많지만 어머니 조국에서 발행한 소설 책이 좋아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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