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지향숙은 출근하는 길로 조성호의 사무실에 들렸다. 그는 며칠째 퇴근도 못하고 일에 열중하고있었다. 지향숙이 함께 하겠다고 나서면 《너무 걱정마오. 동무도 요즘 피곤하겠는데… 이 곰같이 든든한 조성호에게 다 맡기오.》 하며 웃음으로 처녀의 등을 떠밀군 했다. 그러나 바치는 노력에 비해 성과는 매우 적었다. 이미 확보한 자료로는 론문을 완성할수 없는 그들이였다. 부향녀의 모습에 자신들을 비쳐보며 완벽한 론문을 쓰려는것이 이들의 마음이였다.

문제는 《나까이리력서》를 찾아내는것이였다. 부향녀가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안면있는 일본의 력사학자들을 찾아다녔다. 그들은 그들대로 그를 도와 여러 국가문서고들을 뒤졌다. 하지만 일본보수당국에서 철저히 장악하고 비밀로 규정한 자료인지라 사본조차 보기 힘들었다. 게다가 도이췰란드의 한스 베르메트에게서도 감감무소식이였다.

일이 이렇게 되고보니 그들의 일은 자연히 기운을 잃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성호는 락심하지 않았다. 새 자료를 찾아내기 위해 밤을 패워가며 인터네트망의 가입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자료들을 교환했다. 더우기 오늘 아침까지 시마네현의 로교수에게서 얻은 자료들을 다시 연구하여 지향숙에게 넘겨주게 되였다.

《밤새 수고가 많으셨어요.》

조성호는 아직 세면도 못해 푸시시한 머리를 손빗질해가며 어색한 인상을 지었다.

《수고야 뭘… 그런데 아직…》

그의 주밋거리는 행동에 지향숙은 락심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니 다 못했다는 소리예요?》

《미안하오. 깜박 잠드는통에…》

지향숙은 어처구니가 없어 말이 나가지 않았다.

《원장선생님은 우리 일때문에 애를 쓰고있는데… 동문 참…》

조성호는 새침해서 서있는 처녀를 대하기가 면구스러웠다. 그는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손을 잡아 자리에 앉혔다.

《그래서 내 미안하다고 하질 않소. 자, 아침부터 성을 내면 종일 성을 내야 한다는데 기분을 좀 돌리오.》

그는 의자를 권한다, 차를 가져다 부어준다 하며 부산을 피웠다.

흥, 그래도 제 잘못은 인정하는 모양이지.

지향숙은 가시돋힌 말로 콱 쏘아주고싶었지만 참았다. 밤을 패며 수고한 그의 기분을 더 흐리고싶지 않았다.

처녀는 가방에서 아침밥곽을 꺼내 책상우에 올려놓았다.

《잘못을 알았으면 아침식사를 하고 오전중에 그걸 제게 보내주세요.》

밥곽을 보고난 조성호는 히벌쭉 웃으며 허리를 굽석거렸다.

《예잇, 꼭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버릇이 되살아난듯 노죽을 부리고난 그는 손으로 배를 슬슬 쓸었다.

《으-음! 미운 사람에게 떡 한개 더 주는줄이나 아세요.》

《고맙소이다. 공주님의 은총에 망극이오이다.》

지향숙은 그의 익살궂은 행동에 입술을 삐쭉해보였다. 이어 속으로 웃음을 지으며 방을 나섰다.

《걱정마오. 내 꼭 제시간에 가져가겠소.》

조성호는 복도에까지 따라나오며 재삼 강조했다.

10시 30분쯤에 조성호가 조용히 문을 열고 지향숙의 방에 들어섰다.

콤퓨터에 앉아 그간 수집한 자료들로 론문의 구성안을 작성하던 처녀의 해맑은 얼굴에는 방실 웃음이 피여났다.

《아이, 벌써 다했어요?》

《음, 단숨에 삼켜버렸소. 인제 보니 동무의 료리솜씨가 상당하더구만. 아마 긴쟈거리에서 식당마담을 해도 손색이 없을거요.》

능글능글거리며 동문서답을 하는 그의 행동에 지향숙은 어처구니없어 쓴웃음을 지었다. 처음부터 말하는품이 또 무슨 오그랑수
를 쓰려는게 틀림없었다.

《흥, 고작 생각했다는게 마담이예요?》

조성호는 넉살좋게 연신 수다를 떨었다.

《이건 롱담이 아니요. 동무한테 장가드는 사람은 정말 행복자일게요. 음식 잘하지, 게다가 남을 위해주는 인정미는 또 얼마나 깊다구.》

《성호선생! 갑자기 말이 많군요.》

지향숙은 표표한 눈빛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당초에 매정스럽게 끊어놓지 않으면 언제 입을 다물지 모를것만 같았다. 여느때처럼 앉아서 서로 롱담을 주고받으며 간이 뒤집히도록 웃고싶었지만 오늘은 사정이 달랐다. 한시바삐 론문의 개요를 작성해야 다음 공정이 드티지 않을수 있었다.

《아, 인상을 좀 펼수 없소? 녀자라면 살뜰하고 너그러운 면이 많아야지.》

총각은 넌들거리며 뒤에 감추었던 자료철을 처녀의 책상앞에 내놓았다.

반가운 눈매로 총각을 흘긴 지향숙은 깐깐한 눈빛으로 인쇄한 자료들을 번졌다.

조성호는 급한 일이라도 있는듯 안절부절 못하며 손목시계에 눈길을 자주 가져다댔다.

한동안 자료들을 읽어가던 지향숙은 만족한 시선을 성호에게 보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지적하십시오.》

총각은 어깨 으쓱 가슴을 쭉 내밀었다.

《으-음! 롱은 그만하구 이젠 좀 쉬세요. 점심시간에 제가 한턱 내겠어요.》

《허, 이거 오늘 내 배가 명절을 쇠게 됐구만.》

조성호는 싱글벙글거리더니 생각난듯 손목시계에 다시 눈길을 주었다.

《그런데 잠간 나갔다와도 일없겠소?》

《아니, 지금이 몇시인데 외출한다는거예요?》

총각은 딱한 기색으로 사정하듯 이야기했다.

《사실은 친구를 만나게 되여서 그러오.》

잠시 뭔가 생각하던 지향숙은 그에게 다짐을 받았다.

《점심식사전엔 꼭 돌아와야 해요.》

《아, 그야 응당 그래야지. 모처럼 우리 향숙선생님의 초대를 받는 영광을 지녔는데 소인이 어찌 어길수 있겠나이까.》

《음, 보기 싫어요.》

조성호의 얼굴색은 형광등빛처럼 환해졌다.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제법 군대식으로 오른손을 관자노리에 가져다 붙이기까지 했다.

《알았습니다.》

조성호가 밖에 나간 후 지향숙은 그가 작성한 자료들을 다시 종합하면서 속으로 탄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모든것들이 정연했고 일목료연했다. 속이 덜렁덜렁한 그의 손에서 작성된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동안 일에 심취되여있던 그는 《향숙선생, 어서 식사하러 가자요.》 하는 소리에 눈길을 들었다. 옆방에 있는 처녀교원이였다. 시계를 보니 벌써 식사시간이 넘었다. 그런데 조성호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의 방에 가보니 문이 걸려있었다.

에이, 또 허풍쳤구나!

그토록 신신당부했는데 또 어디에 풀썩하니 주저앉아 시간을 보내는 모양이였다.

제가 무슨 외교관이라구 이렇게 무사분주하담. …

생각할수록 부아가 치민 지향숙은 방에 들어가 콤퓨터에 마주앉았다. 하지만 도저히 정신이 집중되지 않았다. 처녀와의 약속을 담배연기처럼 훌 날려보내며 어디선가 배포가 유하게 있을 생각을 하니 약이 올라 견딜수 없었다. 그래도 아량있게 몇분만 더 기다려보자고 했지만 도저히 밉살스러운 얼굴은 나타나지 않았다.

창문밖에 조급한 눈길을 주던 지향숙은 더는 기다릴수가 없어 방을 나섰다.

흥, 그 싱검둥이를 기다리다가는 내가 굶겠네. …

항시 떠나지 않는 야속한 마음으로 그는 대학 맞은켠에 있는 백산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포들이 운영하는 민족식당인 이곳에서는 불고기와 랭면을 전문으로 하고있었다. 대학앞에 위치하고있어 교원들과 학생들이 많이 리용한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식당안을 둘러보았지만 조성호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향숙선생, 여기로 오세요.》

같은 연구소에 있는 처녀였다. 그옆에 여러명의 교원들이 앉아 랭면을 하고있었다. 그들도 저마끔 의자를 내여주며 그를 청했다.

지향숙은 그들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량해를 구했다.

《아이, 전 괜찮습니다. 어서 맛있게 드십시오.》

나이가 지숙한 사나이가 그에게 악의없는 롱말을 던졌다.

《허, 오늘은 외기러기가 되였구만. 혹시 성호선생이 향숙선생을 피해서 딴장을 보는게 아니요?》

처녀의 얼굴은 앵두처럼 빨갛게 익었다.

《아이참, 선생님두…》

《자, 그러지 말구 어서 여기에 와서 함께 식사하기요. 그래야 우리안에서 뛰쳐나간 망아지를 잡을 힘도 생길게 아니요.》

지향숙은 더 난처해졌다.

《제 걱정을 마시고 어서 식사를 하십시오.》

그는 나붓하니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향숙선생, 다음부터는 성호 그 친구가 달아나지 못하게 아예 코를 꿰가지고 다니오.》

백산식당에서 나오니 조성호가 더없이 원망스러웠다. 한편으로는 그를 기다리는 자신이 맹랑하게만 여겨졌다. 처녀의 심정을 이렇게도 몰라주는 그가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기분이 잡쳐 점심식사생각이 싹 사라졌다.

대학쪽으로 무겁게 걸음을 옮기던 처녀는 되돌아서고말았다. 방에 들어가야 마음만 더 심란해질것 같았다. 차라리 거리를 한바퀴 돌면서 신경을 돌리고싶었다.

골목길을 따라 터벅터벅 걸으며 눈길을 향방없이 주던 지향숙은 이상한 감촉에 걸음을 멈추었다. 본능적인 육감으로 한 건물의 창문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순간 그의 눈빛은 대번에 흐려졌다. 못 볼것을 본듯 한 기분에 눈길을 돌렸다.

허나 그것도 한순간이였다. 혹시 잘못 보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에 다시 여겨보니 창문 맞은켠 식탁에 조성호가 앉아있었다. 그는 서양옷차림을 한 일본처녀와 나란히 앉아 맥주를 마시고있었다. 그들의 행동거지를 보아 매우 자별한 사이같았다.

조성호와 몸이 거의 맞닿을듯 바투 앉아 입김을 뿜어대고있는 처녀는 어딘가 모르게 퍽 낯이 익어보였다.

어데서 봤더라?

느닷없이 떠오르는 호기심에 기억을 더듬던 지향숙은 얼음물을 뒤집어쓴듯 소스라쳐 놀랐다. 언제인가 이 식당에서 젊은 망나니들과 함께 술을 마시던 처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추잡한 몸차림과 행동으로 사나이들의 혼을 뽑으며 교태를 부리던 그가 분명했다. 매혹적인 육체미로 남자들의 돈주머니를 털어내는 녀자였다. 그때 저 처녀는 사나이들에게 로골적인 추파를 던지며 듣기에도 거북한 말을 마구 해댔다.

《흥, 아무리 사내의 물건짝이 굵고 단단하다 해도 내 치마밑에만 들어와보지요. 불판에 놓인 초대처럼 흐물흐물 녹아서 나오지 않나.》

그런데 오늘은 그가 조성호를 녹이려고 하는것이다. 아니, 조성호 그자신이 청한 일인지도 모른다.

건물에는 아사히음식점이라는 간판이 걸려있었다. 바로 이 음식점으로 도꾜의 망나니패들과 범죄자집단의 우두머리들이 자주 드나든다는것은 지향숙이도 잘 알고있었다. 그런데 조성호가 이런 음침한 곳에서 기생년과 나란히 앉아있지 않는가. 저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마치 그에게서 배신당한 기분이였다. 당장 뛰여들어가 그를 끌어내오고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물에 빠진 사람은 구원할수 있어도 녀자에게 빠진 사람에게는 구명대가 필요없지 않는가.

그냥 스쳐버릴가 했지만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음식점에 들어가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정했다.

엷은 여름철옷에 비치는 녀자의 감빛도는 부드러운 살빛은 같은 녀성이래도 무색케 할 정도였다. 목깃이 아래로 푹 패여 팽팽한 가슴은 거의나 드러나있었다. 하나하나의 동작들은 사내들을 꼬이기에 익숙되여 모든것이 세련되였고 요염했다. 품을 들여 가공한 그의 눈섭과 눈언저리는 한순간도 조성호의 얼굴에서 떨어질줄 몰랐다. 진하게 연지를 바른 입술은 거의나 남자의 얼굴에 닿을듯말듯 하면서 뭐라고 계속 속살거리고있었다.

조성호는 감시의 눈초리를 알아보지 못한듯 자기의 상대와 정열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지향숙은 더이상 보고싶지 않았다. 이대로 앉아있는것이 고문을 당하는것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조성호에 대한 환멸과 그에게 속히워 살아온것만 같은 수치감이 괴여오르기만 했다.

조성호는 처녀의 이야기에 퍽 흥미를 느끼는듯싶었다. 이따금 눈총을 쏘며 질책하기도 하고 큰소리로 웃어대기도 했다.

그들사이는 어제와 오늘의 인연같지 않았다.

《오빠! 자꾸만 그렇게 절 몰아대지 말아요. 내가 배운 재간이란 이게 단걸 어떻게 해요. 이 일본에서 정조란 코풀고 버린 휴지장이나 같은거예요.》

조성호는 처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뭐라고 더 말할 기분이 나지 않아 맥주잔을 기울였다.

《스미에, 이제는 네 나이도 어지간한데 언제까지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살겠니.》

스미에는 코웃음을 쳤다.

《흥, 누가 날 비웃는다는거예요? 난 그래도 내 몸에 달린것을 가지고 부모가 준 목숨을 유지하고있어요. 하지만 그들은 남의 피로 제 몸뚱아리에 비게층을 덮지 않나요.》

스미에는 도저히 그의 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조성호는 간절한 어조로 그를 타일렀다.

《어지러운 감탕속에 산다고 스스로 마음까지 더럽혀서야 안되지. 이제는 우리가 어릴 때 고아의 설음을 안고 이리저리로 굴러다니던 때의 습관을 버려야 해. 타락한 생활은 인생을 망치는 길이야. 그러니 가정도 어서 꾸리고…》

스미에는 깔깔 소리내여 웃었다. 그는 한팔을 들어 조성호의 어깨우에 껴안듯 올려놓고 그에게 기댔다.

조성호는 그의 행동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럼, 오빠가 나와 살아주겠어요? 난 오빠라면 일생 제일 값진 써비스로 모시겠어.》

그러다가 갑자기 가느다란 숨을 내그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일본엔 오빠와 같은 사내는 없단 말이예요. 오직 계집의 몸뚱이에 욕심을 들이는 색마들뿐이지 우리 같은건 사람으로 보는 놈은 하나도 없어요. 악덕으로 치장된 이 땅에선 진정한 사랑이란 말도 되지 않는거예요.》

스미에는 괴롭게 울분을 토하고는 맥주를 들이켰다. 그의 눈가에는 물기가 일렁이였다.

《나도 녀자예요. 왜 가정을 꾸리고 제 자식을 품에 안고싶지 않겠나요. 그렇지만 난 유치하고 좀상스러운자들의 씨는 받고싶지 않단 말이예요.》

처녀는 조성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떨었다.

《내 말을 명심해라. 자기가 역스러운 오물들속에 묻혀있다고 생각하는것자체가 바로 거기서 벗어날수 있다는것을 의미한다. 너는 더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돼. 또 동생들에게 다시는 그런 일을 시키지 말아. 너희가 아무리 그런 방법으로 이 사회에 도전한다고 해도 얻을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범죄는 어데까지나 사회의 암이야.》

스미에는 무겁게 얼굴을 떨구었다. 식탁에는 그의 눈물이 고이고있었다.

조성호가 손수건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눈물을 닦아라. 남들이 보면 뭐라겠니?》

처녀는 눈굽을 찍어갔다.

《아, 나도 일본계집이 아니라 오빠처럼 조선사람으로 태여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가요. 이 땅에서 기여다니는것들은 사람의 육체를 갉아먹으며 기생하는 좀벌레들에 불과해.》

이윽고 처녀는 울었던 모양같지 않게 얼굴에 웃음을 피여올렸다.

《정말 고마워요. 오빠가 아니면 이 땅에서 누가 나를 사람으로 여겨주겠어. 난 내 일생에서 제일 행복한 시절은 어릴적에 오빠랑 함께 여기저기로 헤매던 때였다고 생각해. 아무리 고아래도 우리에게도 우정과 의리가 있지 않았나요.》

《그래서 고생속에서 맺은 우정이 제일 값비싼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니.》

《그때문에 오빤 의젓한 학자님이 된 오늘날에도 우릴 잊지 않고있는게 아니나요. 아무리 두터운 의리도 돈과 권세앞에서는 물로 되기싶다고 했지만 오빠만은 변함없이…》

《됐다. 그만해라.》

조성호는 가방에서 얼마간의 돈을 꺼내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자, 얼마 되지는 않지만 받아둬라.》

처녀는 무슨 큰일이라도 난듯 아부재기를 쳤다.

《이거, 날 어떻게 보고 이래요? 나한테 돈이 없을것 같아서 그러나요.》

하지만 조성호는 막무가내로 처녀의 손에 쥐여주었다.

《오빠가 받으라면 받아야지. 많지는 못하지만 새 생활을 꾸리는데 보태거라.》

처녀의 눈귀에는 다시금 뜨거운것이 고이였다.

《고마워요. 오빠도 홀몸으로 살아가기 힘들겠는데…》

《나야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지 않니. 그런데 너희들이야 어디…》

스미에는 뜨거운것이 목구멍에 꽉 메여 그냥 눈굽만 훔쳤다. 그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오빠, 다시한번 부탁하는데 제발 몸조심하세요. 이제 지성병원 원장선생에게 무슨 일이 꼭 생길거예요.》

조성호의 숱진 눈섭은 긴장해서 굳어졌다.

《왜, 무슨 소릴 들은게 있니?》

《원장선생 아들의 회사가 파산에 직면한것이랑, 하루에가 회사에서 해고당한것이랑 다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거예요.》

조성호는 스미에가 너무도 심각한 문제를 알고있다는것을 짐작했다. 그가 일반 폭력배들이나 대상해서는 이렇게까지 자상히 알수 없을것이다.

《그건 어디서 들은 소리니?》

스미에는 허리를 펴며 얼굴에 웃음을 지었다.

《아이참, 이 스미에가 어제날처럼 좀것들하구만 대상하는줄 아세요.》

처녀는 다시 허리를 수그리고 소곤거렸다.

《오빠만 알고있어요. 난 지금 몇주일째 주문봉사를 하고있어요.》

《주문봉사?! …》

《그래요, 늙은이인데 아직 성욕은 젊었더군요.》

《그러니 그한테서 들었다는거냐?》

《예, 내가 샤와를 하고 나오는데 누구와 전화로 그렇게 말하더군요.》

조성호는 스미에에게 그 늙은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고싶었다. 하지만 그만두었다. 이런 일을 하는 녀자들은 대체로 자기 대방의 이름을 말하는것을 싫어하기때문이였다. 앞으로 요긴한 도움을 받을수 있다는것만은 확신할수 있었다.

스미에는 조성호의 손을 꼭 잡았다.

《난 걱정돼요. 그 불찌가 오빠한테도 떨어질것만 같은게…》

《너무 걱정말아.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또 전화를 하거라.》

《알겠어요.》

물론 지향숙은 그들의 대화를 들을수 없었다. 단지 그들사이의 관계가 의심되였다. 왜 조성호가 저렇듯 각별한지, 안개속에 묻혀있는 그의 실체는 과연 어떤 모습일가 하는 의문이 피여올랐다.

사무실로 돌아온 지향숙은 너무도 분해 책상우에 얼굴을 묻었다. 자신이 속히워 살아온것만 같았다. 진실한 사랑은 찾기가 어렵다는 말이 사실인듯싶었다. 지워버리고싶었다. 처녀의 맑은 순정에 먹물을 뿌려놓은 민망스러운 사나이의 모습을…

이때 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지향숙은 응대를 하지 않았다. 분명 그 역스러운 사내가 왔을것이다.

조성호는 이상한 생각에 문을 빠금히 열었다. 순간 그의 눈은 휘둥그래졌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어데가 아프오?》

처녀는 여전히 감각을 잃은듯 움직이지 않았다.

속이 더욱 안달아난 조성호는 그의 이마에 손바닥을 대보았다. 열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지향숙이 얼굴을 발딱 쳐들었다.

《손을 대지 말아요!》

매섭게 내쏘는듯 한 처녀의 목소리에 총각은 뒤로 흠칫 물러났다. 그의 두눈은 금시 퀭해졌다. 향숙의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여있었던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요?》

《다시는 내앞에 얼씬도 말아요.》

지향숙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손으로 성호를 문밖으로 내밀었다.

총각은 뒤로 밀리다가 문을 등에 대고 떡 버티고 섰다. 명치끝을 한대 얻어맞은것 같은 기분이였다. 첫 순간에는 무슨 일인지 모르고 그저 충격을 느꼈을뿐이였다. 그토록 애틋하고 부드럽던 얼굴이 왜 이리도 얼음장처럼 차거워졌는지 알수 없었다.

《향숙이! 무슨 일이 있었소?》

화등잔만 해진 사나이의 두눈에 처녀는 랭기를 뿜었다.

《무슨 일이냐구요? 그래, 몇시간동안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게 해놓고서도 그걸 나한테 물어요?》

그제서야 조성호는 처녀의 변덕이 짐작되여 웃음을 지었다.

《아, 내가 잘못했소. 인차 온다는게 그만…》

그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지향숙의 눈물을 닦아주려고 하였다.

처녀는 쌀쌀하게 뿌리쳤다.

《그만하세요. 속에 없는 동정은 바라고싶지 않아요. 그래, 그 요사스럽게 생긴 일본처녀가 심장을 통채로 걷어가진 않던가요?》

지향숙이 모든것을 알고있다는 사실앞에 조성호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사실, 그는 그런 녀자가 아니요.》

《아니라구요?》

지향숙의 눈가에는 여전히 차거운 경멸의 빛이 어렸다.

《그래, 숱한 사내들을 치마폭으로 휘여잡고 다닌다는 그 녀자에게 동무라고 빠져들지 않겠어요?》

처녀는 성난 표정으로 의자에 가앉더니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였다.

조성호는 참으로 난처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처녀는 자기를 원망하고있다. 한번 앵돌아진 녀자의 마음은 좀처럼 펴기가 힘든 법이다. 아무리 뒤가 없는 지향숙이래도 오늘 일은 쉽게 리해하고 넘어가려 하지 않을것 같았다.

그는 의자를 들고 지향숙의 옆에 앉았다.

《노여움을 푸오. 내 모든걸 다 이야기하겠소.》

조성호의 목소리는 진눈을 실은 소나무아지처럼 축 처져있었다.

《그만하세요. 소팔아 소고기 사먹는짓을 할 필요가 있겠어요.》

《제발 그러지 마오. 동무야 날 잘 알지 않소.》

《그래요.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하지요. 화려한 언사로 상대의 마음을 나꾸어챘다가는 씹던 껌처럼 뱉아버리는 너절한 인간이라는것을 말이예요.》

총각은 랑패한 웃음을 지었다. 상대가 이렇게 철갑을 내두르니 입이 열이래도 할 말이 없었다.

지향숙이도 자기가 왜 이렇게 그를 박정하게 대하는지 알수 없었다. 스쳐본 한가지의 사실을 놓고 가혹하게 평가하는 자신이 너무 야박스러운건 아닌가싶었다. 하지만 안 보면 보고싶어지고 보면 꼬집어주고싶은 존재로 되여버린 조성호를 때를 놓치지 않고 수술대우에서 란도질하고싶었다.

아, 정과 원망이 얽힌 명주실처럼 복잡하게 돌아가는게 인생이라고 나같이 신경이 엷은 녀자는 무엇으로 감당한단 말인가.

《오늘 보니 미인앞에 자존심있는 사내 없다는 말이 꼭 맞는것 같더군요.》

《동무의 심정은 충분히 리해되오. 하지만 날 아무리 죽이고싶어도 우선 사연부터 듣고 칼질을 하오.》

《흥, 제 입 가지고 자기를 변명할줄 모르는 사람 없더군요.》

《난 그렇게 방종에 란취될 놈은 아니요.》

조성호는 처녀를 납득시키느라 무진 애를 썼다. 허나 지향숙은 철대문처럼 쉽사리 틈을 내주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고슴도치처럼 더 옹송그리고있었다.

《그만해요. 더 듣고싶지 않아요. 어서 제 방에서 나가요.》

그는 조성호를 떠밀며 밖으로 내쫓고 문을 안으로 걸었다.

《향숙동무… 향숙이…》

조성호가 문을 두드리며 안타깝게 그를 찾았다.

문가에 기댄 지향숙의 눈가에서는 계속 눈물이 샘솟았다. 배반당한듯 한 감정에서 도저히 벗어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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訪問者 - -- - ISO ul - 2017-09-05
세상에는 책도 많지만 어머니 조국에서 발행한 소설 책이 좋아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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