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사장방에서 나오는 하루에는 두눈에서 금시 눈물이 왈칵 쏟아질것만 같았다. 도무지 리해할수 없는 일이였다. 사장의 요구는 지내 가혹하고 당치않은것이였다.

《난 당신이 우리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될 실무가라고 인정하오. 하지만 나로서는 도저히 이 일을 뒤집을수 없으니 제발 량해해주오.》

사장은 진심으로 사과하며 난색한 표정을 지었다.

하루에는 자기의 눈아래에 놓인 해고장을 내려다보았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눈앞은 뿌옇게 흐려지기만 했다. 애써 마음을 가다듬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 폴싹 주저앉았을는지도 모른다.

다른 원인으로 해고를 당한다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아프지는 않을것이다. 단지 조선녀성을 어머니로 모시고있다는 리유였다.

물론 사장도 이것은 타당치 않는 처사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러나 머리를 내려누르는 힘앞에는 어쩔수 없었다. 그렇다고 하루에를 위해 그렇듯 큰 돈을 내놓을 사람도 못되였다. 권세와 돈이 서로 보조를 맞추며 살아가는것이 이 나라이다. 여기서 주도권은 항상 권세의 편에 있었다. 권세의 낯색이 달라지는데 따라 사람들의 운명도 락엽으로, 청엽으로 될수 있다.

하루에는 바로 그 마수가 제 목에 닿았다는것이 두려웠다. 부당한 요구로 모녀간의 정을 끊어버릴것을 강요하는 비렬한들에게 침을 뱉고싶었다.

나는 절대로 어머니를 배반할수 없어. 한푼의 돈을 그리며 말라 죽어간대도 절대로 짐승짓은 할수 없어. 천만금으로도 살수 없는 인간의 모성애를 흐리게 할수 없단 말이야.

그 녀자는 쓸쓸한 마음을 달래며 거리로 나섰다. 어머니에게 모든 사연을 터놓고 저주로운 이 땅에 울분을 터치고싶었다. 그러나 그렇게는 할수 없었다. 마음속 부담에 지쳐 늙어가는 어머니에게 덧짐을 지우고싶지 않았다.

하루에의 걸음은 지성병원쪽으로 옮겨졌다. 김경아를 만나 모든걸 터놓고 앞일을 의논해야 했다.

지친 내 모습을 보면 어머니는 더이상 견디지 못해…

발밑에 시선을 주며 걸어가던 그는 흠칫 놀라며 멈춰섰다. 눈앞에 웬 사나이의 구두가 보였던것이다. 얼굴을 들어보니 뜻밖에도 무로우 고이찌로였다.

하루에는 그를 피해 옆으로 비켜섰다.

《하루에!》

무로우가 그의 손을 잡았다.

《이걸 놓으세요.》

손을 뽑으려고 했으나 상대는 억척같았다.

《무슨 일이 있었소?》

하루에는 그의 물음에 얼굴을 들었다. 그는 앞에 선 사나이를 적의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원망과 분함이 그득하니 실려있었다.

《그걸 당신이 나한테 묻나요?》

무로우는 어리둥절해졌다. 녀인의 눈가에 마르지 않은 눈물과 빛을 잃고 거무칙칙한 흙빛으로 된 얼굴…

《도대체 웬 일이요?》

무로우는 심상치 않은 예감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합시다.》

… 머리가 갈라지는듯 한 괴로움에 무로우는 연방 술을 들이켰다. 번뇌와 고민은 왕성하게 아지를 치며 온몸을 휘여감았다. 지금껏 한층, 두층 쌓아올렸던 건물은 스스로 몰아온 지진에 먼지만 풀풀 날린다.

《난 당신들이 이렇게까지 옹졸하고 유치한 무리들인줄은 정말 몰랐어요. 어제는 당신이 무근거한 론거로 우리 어머니를 모욕했고 오늘은 또 내가 조선녀성을 어머니로 부른다고 날 회사에서 내쫓게 했어요. 그래, 이게 당신들, 우리 일본사나이들의 심보인가요?》

《아니 그건?! …》

뇌리를 치는 생각에 무로우의 입은 굳어졌다.

이건 분명 후견인이 생각한 일이다. 아, 내가 여직껏 존경하고 숭배해온 그가 어쩌면…

《무로우씨, 사랑과 애국심이란 결코 개인의 욕망을 가리우는 비단보자기가 아니예요. 그런데 당신들은 바로 그 신성하고 고상한 이름을 모독하며 제 목적을 추구하고있어요.》

너무도 매섭고 야멸찬 지탄이였다.

《하루에, 사실…》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허나 똑바로 눈을 뜨고 바라보는 녀인의 시선에 기가 질렸다. 언제나 부드러움이 그득히 흐르던 그 눈빛이 아니였다. 모욕과 배신감으로 칼날처럼 날카로워진 눈길이였다.

무로우는 길게 한숨을 내그었다.

《하루에, 제발 좀 진정해주오. 당신 일은 내가 알아보겠소.》

하루에는 무로우의 말을 쌀쌀하게 가로막았다.

《그만두세요. 난 당신에게서 자그마한 동정도 바라지 않아요. 당신들은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서는 제 부모의 가슴에도 칼을 박을 무서운 악한들이예요.》

그 녀자는 숨을 거칠게 내쉬며 말을 이었다.

《설사 당신들이 이 하루에를 죽인다고 해도 내 심장속에 새겨진 조선사람인 우리 어머니의 모습만은 지울수 없을거예요. 새겨두세요. 사람이 야수로 변하기는 쉬워도 선인이 되기는 힘든 법이예요.》

하루에는 힝하니 찬바람을 남기며 사라졌다.

《하루에!?》

무로우는 일이 이렇게까지 번질줄은 생각 못했다. 지금까지 후견인에 대해 공경했고 거울로 삼아온 그였다. 그래서 력사가의 량심을 《애국》이라는 보자기에 감싸고 일본의 력사를 외곡하고 그것을 진실로 묘사해왔다.

아니, 하루에의 해고는 결코 후견인에게만 국한된것이 아니다. 나도 알게 모르게 이 일에 동조했다. 내스스로가 누워서 침을 뱉는것과 같은 망녕된짓을 했어. 아, 어째서 요즘은 가까웠던 사람이 멀어지고 멀어졌던 사람이 가까워지기만 하는걸가?

그는 위스키가 들어있는 술병을 잡았다. 육체는 알콜을 갈망하고있었다. 이젠 모든것이 영영 끝장나고말았다.

무력한 손끝에서 사랑은 색이 날고 인생은 재빛이 된다더니 내가 꼭 그 꼴로 되여가고있지 않는가.

지금까지 자신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자부해온 무로우였다. 산간마을에서 홀어머니의 손에 자라 대학에 입학했지만 앞날에 대한 희망이란 전혀 없었던 그다. 그런데 귀인을 만나 이렇듯 당국의 관심속에 있는 인물이 되였다. 그속에서 그는 일본력사계에서 자기의 이름을 뚜렷이 새겼으며 총리의 눈에까지 들게 되였다. 하지만 사회계에서는 성공했어도 가정 즉 개인생활에서는 실패의 고배를 마셔온 그였다. 가장 고상하고 아름답게 여겨온 첫사랑은 바로 부향녀로 하여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여파가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있다. 후견인의 소개로 일본국회 참의원 의원의 딸을 얻긴 했지만 명색상 결혼이였지 행복이란 맛볼수 없는 고독한 생활이였다. 달콤하고 단란한 가정적인 단즙을 갈망하며 중년에 이른 무로우였다. 그의 가슴속에는 인생의 첫 련인에 대한 그리움과 첫사랑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그런 속에서 남편을 잃은 하루에를 만났을 때 생활은 그의 생을 20여년전으로 돌려놓았다. 채 사그라지지 않은 옛사랑의 불찌가 자신의 풍구질에 세차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것이 난데없는 폭설로 싸늘하고 거무칙칙한 재로 화하고말았다. 생각해보면 세월이란 너무도 불공평한것 같았다. 바라는것은 기어코 앗아가고 두려운것은 기어이 안겨주는 심술군같았다.

《아유, 왜 이렇게 쓸쓸하게 고독을 맛보시는가요?》

귀간지러운 소리에 무로우는 흐릿한 시선을 들었다. 속에서 《매춘부로군!》 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눈길을 접고 손에 술잔을 잡았다. 성적매력으로 충만되여 오직 성욕과 돈을 추구하는 이런것들과는 대상하고싶지 않았다.

허나 그 녀자는 벌써 그의 옆에 앉았다.

《오늘 저녁을 저와 함께 즐기지 않겠어요? 당신의 그 괴로움을 제가 털어드리지요.》

무로우는 녀자의 가벼운 숨결을 느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박동은 지금 그를 향해 맹렬하게 떨고있었다. 부드럽고 아무런 무게도 없는 금시라도 응할 믿음에 찬 떨림이였다. 뒤따라 괴여오르고 또 오르는 피, 그것은 그저 피가 아니였다. 아마 이성을 대하는 욕정이 용암같이 끓어번지며 분출구를 찾는것인지도 모른다.

무로우는 역스러운 물건짝을 대하듯 이마살을 찌프렸다.

《미안하지만 아가씨, 난 좀 혼자 있고싶소.》

《흥… 이 술집엔 당신과 같이 실련당한 사내들이 많이 찾아와요.》

녀자는 그를 조롱하듯 깔깔 웃어대며 다른 식탁으로 걸어갔다.

무로우는 수치와 모멸감을 금할수 없었다. 그럴수록 어느해 섣달그믐날의 일이 떠올라 괴로움을 더해주고있었다.

… 12월 중순부터 설분위기에 들어선 거리와 집집마다에는 년말분위기로 휩싸였다. 웬만한 건물앞에는 대나무에 소나무가 꽂힌 모습을 한 《가도마쯔》가 놓여있다.

어데 가나 설분위기로 들끓는 거리의 환경에 심취된 무로우의 심정도 이들과 다를바가 없었다. 그는 지금 하루에와 약속한 지점으로 가고있다. 사랑하는 애인을 만나는 기쁨도 컸다. 그보다는 새해부터 자기 인생에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할수 있다는 확신이 그를 흥분된 격정에로 오르게 했다.

그는 오늘 아침 어떤 고위정객의 호출을 받았었다. 그가 바로 대학기간 보이지 않는 은사로 자기의 생활을 돌봐준 고마운 사람
이였다.

그는 무로우의 가정사에 대해 알아보더니 앞으로 국가의 리익을 위해 좋은 일을 하게 될것이라고 약속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시에 나타난 행운앞에 그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도무지 무슨 뜻인지 리해하지 못하고 서있는 무로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군이야말로 오늘 우리 일본에 절실히 필요한 인재일세.》

그제서야 무로우는 그가 무엇을 념두하고 하는 말인지 짐작했다.

《저는 단지 내 조국의 명예가 손상되는것이 두려워서 그 글을 썼을따름입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요. 바로 그것이 매우 중요한거지. … 누구나 민족의 존엄과 리익을 위해서는 자신을 바칠줄 알아야 하네.》

무로우는 며칠전 신문에 지성병원 원장인 조선녀성이 쓴 력사글을 반박하는 기사를 발표하였다.

당시 《을사5조약》을 놓고 력사학자들은 서로가 엇갈린 주장들을 세우고있었다. 그 중점이 바로 이 조약이 비법적인것이냐, 합법적인것이냐 하는것이였다.

이러한 때에 그 녀성이 《파렴치하고 비법적으로 날조된 <을사5조약>》이라는 짤막한 글을 써서 총련기관지인 《조선신보》에 발표했다. 그는 구일본당국이 폭력으로 조선봉건정부를 위협하고 강압적으로 조약을 날조하였다는데 대해 력사적사실자료들을 가지고 증명하였다.

이것은 일본력사계에 큰 파동을 일으켰다. 누구도 론리적인 사실과 자료앞에 입만 다시고있었다.

이때 대학에서 동방력사학을 전공하던 무로우가 이에 반발해나섰다. 그는 당시 구일본이 조선에 취한 《보호국》정책에 의하여 이 조약이 체결되였다고 했다. 또한 조약이 어떤 경로를 거쳐 조인되였던간에 외무대신인 박제순의 서명이 있는것으로 하여 이것은 비법이 아니라 적법적인것이라고 했다. 이것을 계기로 무로우는 이렇게 정객들의 눈에 들게 되였던것이다.

휘황한 앞날에 대한 기쁨을 하루에와 함께 나누고싶어 발걸음도 나는듯싶었다. 들뜬 마음으로 걷던 그는 어느 한 꽃방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저저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꽃묶음들을 사고있었던것이다.

무로우는 릉소꽃, 부자, 앵초, 금전화와 사철나무로 엮은 꽃다발을 샀다.

일본사람들은 이 꽃묶음을 《어머니의 사랑은 아이들에게 청춘, 환락과 천진성을 준다.》는 뜻으로 여기고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명절날이나 어머니의 생일날에 이런 꽃을 선물로 안겨주는것을 도리로 생각하고있었다.

꽃묶음의 향기를 길게 들이쉬던 그는 제풀에 웃음을 지었다. 하루에가 이 꽃처럼 아름다운 미소를 보낼 모습을 생각하니 절로 마음이 흐뭇해졌다.

《아니, 내가 뭐 아이엄마라구 이런 꽃을 주는거예요?》 하며 새파래지겠지. …

그러면 난 《이 꽃을 하루에를 낳아 이렇듯 아름답게 키워 내앞에 내세워준 당신의 어머니에게 드리고싶었소.》라고 말해야지. …

이 말을 듣고 하루에는 너무 기뻐서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을거야. …

이런 생각에 그의 마음은 벌써 하늘을 날고있었다.

앞으로 하루에를 기쁘게 할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다할테야.

그가 우에노공원에 이르니 하루에가 웬 낯선 녀인과 함께 앉아있었다. 웬 일인지 하루에의 얼굴은 심각해져있었다.

무슨 일일가?

무로우는 의혹감을 안고 그들앞에 나섰다.

《하루에!》

처녀는 무엇에 놀란듯 와뜰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서 옆에 앉아있는 녀인의 눈치를 힐끔 살폈다.

《우리 어머니예요!》

무로우의 가슴속엔 당혹감과 반가움이 엇갈려돌았다. 마음이 절로 긴장해졌다.

몸가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물음에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

녀인은 무로우의 겉모습을 순간적으로 훑어보았다. 소박하면서도 인상좋은 청년이였다. 처녀들처럼 쌍까풀진 눈과 긴 속눈섭이 인상적이였다.

《학생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하루에한테서 많이 들었어요.》

무로우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며 인사했다.

《처음 뵙습니다.》

《이렇게 만나니 정말 반갑군요.》

녀인의 입가에는 연한 미소가 흐르고있었다.

무로우의 마음은 마냥 설레였다.

녀인의 목소리는 언제나와 같이 부드럽고 인정미가 넘쳐있었다.

《참, 내가 제 소개를 안했구만. 내가 바로 지성병원 원장 부향녀예요.》

무로우의 온몸은 흠칫하더니 막대기처럼 굳어졌다.

《아… 아니 그럼?! …》

무로우의 모든 감각세포들이 마비된듯싶었다. 온몸은 금시 찬물벼락을 뒤집어쓴것만 같았다.

그는 하루에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처녀는 아름드리나무에 기대여 머리를 숙이고 신발끝으로 바닥만 허비고있었다.

부향녀는 긴장해서 서있는 무로우의 어깨를 가볍게 잡아 의자에 앉혔다.

《우리 앉아서 이야기를 하자요.》

그의 눈빛은 여전히 그윽하고 부드러웠다.

《난, 무로우군이 내가 쓴 글에 대해 반박했다고 해서 그걸 해명하려고 온건 아니예요. 솔직히 난 의사여서 력사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 …》

무로우는 얼굴을 쳐들고 녀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두려웠다. 당장 하루에와의 관계를 단절하라는 선고를 내릴것만 같았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는 불길한 예감을 느끼면서 녀인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무로우군도 력사연구를 희망한다는데 내 한가지 물어도 좋을가요?》

그의 목소리는 예상외로 차분하게 가라앉아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잘 절제하고있는듯 한 음성이였다.

무로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서 물으십시오.》

부향녀는 여전히 푸근한 미소를 담은채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앉아서 대답하세요.》

《괜찮습니다.》

무로우는 여전히 마음속 탕개를 풀수 없었다. 앞에 앉아있는 녀인이 하루에의 어머니, 더우기는 조선녀성이라는데 더 신경이 갔다. 꼭 구답시험장에 선 기분이였다. 사랑하는 애인의 부모앞에서 모든것을 다해서라도 자기의 허점들을 가리우고싶었다. 더우기 하루에를 실망시키고싶지 않았다. 부디 이 녀인이 사업과 생활을 한고리에 매여놓지 않기를 바랄뿐이였다.

부향녀는 두손을 한데 모아쥐고 그를 바라보았다.

《임자는 력사는 어떻게 씌여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무로우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대답했다.

《전 당시의 자료들에 근거해서 사실그대로 그려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향녀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지금 자기의 마음속 한구석에 이 젊은이에 대한 호감이 자라는것을 느꼈다. 체격과 인물은 둘째이다. 신문에 실린 무로우의 글을 보면서 그는 필자의 실력과 전도에 대한 기대를 품었었다. 문제는 자기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부심을 가지고있다는것이다. 이런 형의 사람들은 생의 목표가 정확하다. 실천력에 있어서도 완강하다. 아는것이 많을수록 자존심도 강한것이다. 다만 길을 잘못든것이 안타까울뿐이다.

《물론 그래요. 하지만 난 그보다 더 중요한게 있다고 봐요.》

무로우는 머리를 들고 부향녀를 바라보았다.

《그건 바로 량심이예요. 깨끗한 량심에 의해서 씌여진 력사만이 자그마한 꾸밈도 없는게 아닐가요?》

무로우는 입속말로 그것을 받아외웠다.

《량심! …》

너무 간단했다. 허나 그 말속에 담겨진 의미의 폭은 너무도 방대했다.

량심이란 사심을 가장 철저히 배척한다. 그렇다면 이 녀인은 내가 그 어떤 리기적목적을 추구하고 글을 썼다고 보는가?

저도 모르는 반발심이 생겨났다. 그러나 불가사의한 감정에 주눅이 들었다.

그게 무엇일가? …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수 없었다. 그때 무로우는 일본땅에 와서 사는 조선사람이 뭐길래 이렇듯 야마또민족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가 하는 반발심이 동했었다. 그것으로 하여 그는 며칠밤을 꼬박 새우며 최근 일본에서 출판한 력사교재와 자료들을 뒤져보고 글을 썼던것이다.

부향녀는 사리정연하게 이야기를 펴나갔다.

《우리는 지나간 력사를 눈으로 보지도 체험하지도 못한 사람들이예요. 오직 고문서들에 수록된 자료와 력사유적, 유물에 근거하지요. 때문에 난 력사학자라면 마땅히 력사를 론하기 전에 먼저 자기의 량심을 론해야 한다고 봐요. 왜냐면 우리의 글은 지금사람들이 보고 또 후대들에게 이어지기때문이예요. 력사는 그 어떤 수정이나 보충을 철저히 배격하는 순결무구한거예요.》

《아니 그럼, 선생님은 내가…》

부향녀가 오른손을 들어 그의 말을 제지시켰다.

《진정하세요. 아마 이 자료들을 보면 모든것을 알게 될거예요.》

부향녀는 그의 손에 서류봉투를 쥐여주었다.

무로우는 얼결에 그것을 받아들었다.

이게 뭘가? …

부향녀는 다시금 상냥한 웃음을 보냈다.

《의사가 메스를 한번 잘못 놀리면 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지만 력사학자가 펜을 한번 잘못 놀리면 숱한 사람들의 의식을 병들게 하는 법이예요. 자 그럼…》

무로우는 지금 자기가 그 어떤 환각속에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저리도 너그러울수 있단 말인가? 자기의 소론문을 부정하는 글을 쓴 사람, 그것도 자기의 아들벌 되는 나에게 언성 한번 높이지 않았다.

무엇때문에? … 자기 딸을 사랑하는 사람이여서… 아니면 속에 품은 칼을 선량한 겉모습으로 가리워보려는걸가?

그는 자기의 생각을 일축해버렸다. 그의 언행에는 꾸밈이 없었다. 그렇지만 속은 몹시 언짢았다.

이랬든저랬든 저 사람은 조선녀자가 아닌가.

하루에가 그에게로 다가왔다.

무로우는 처녀를 바라보았다.

《하루에, 어째서 나한테 어머니가 조선사람이라는걸 한마디도 안했소?》

하루에는 머리를 외로 돌렸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가요?》

무로우의 목소리는 자연히 투박하게 변했다.

《일본사람이 어떻게 조선사람과 같이 살수 있는가 말이요?》

《뭐예요?!》

하루에는 몸을 돌려 무로우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눈가에는 벌써 실망감이 어려있었다.

《그러니 무로우상은…》

이어 그 녀자의 눈에는 물기가 어렸다.

《좋아요. 나도 조선사람인 우리 어머니를 모욕하는 사람과는 더는 대상하고싶지 않아요.》

하루에는 랭담한 기색으로 힝하니 돌아서 걸음을 옮겼다.

《하루에!》

무로우는 달려가 그의 손을 잡았다.

《진정하고 내 말을 마저 듣소. 나에게 있어서 하루에는 해빛과 같은 존재요. 우린 이미 사랑을 언약한 사이란 말이요. 그런데 그 깨끗하고 아름다운 우리사이를 조선녀자때문에 흐려놓을수야 없지 않는가 말이요.》

하지만 하루에는 랭정했다.

《아니예요. 어머니의 모성애를 모르는 사람은 결코 진정한 사랑을 할수 없어요. 난 내가 영원히 시집을 못 간다고 해도 우리 어머니의 사랑만은 배반할수 없어요. 그분은 내 생명의 전부예요. 그러니…》

말로는 결코 설복할수 없는 그 무엇이 처녀의 가슴에 스며있었다. 이렇게 하루에는 무로우 고이찌로의 곁에서 떠나갔다.

의자우에 풀썩 주저앉은 무로우는 발밑에 떨어진 꽃묶음을 쓸쓸하게 내려다보았다. 세상에 한번 피여서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 환희의 감정을 안겨주고는 인차 사라지는 꽃이다. 하루에도 무로우의 가슴속에 사랑의 감정을 심어주고는 바람처럼 사라지고말았다. 너무도 빨리…

그는 발을 들어 꽃묶음을 내리밟았다. 하루에가 자기의 품에서 완전히 달아나버렸다는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어떤 방법으로도 그를 돌려세울수는 없다.

무로우의 눈에 비낀 하루에의 모습은 완전무결한것을 좋아하는 그런 성미가 있다는것이다. 무엇이나 일단 접어들면 그것이 남들의 건덕지에 걸려들수 없이 네모반듯하게 해놓는것이다. 비록 하찮은 놀음이나 장난이래도 누가 와서 시비를 걸거나 혹은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도중에 집어던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성미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방이 아무런 말도 못하게 만들고야마는 형이였다. 아마 자기가 구축하고있는 왕국, 그것이 현실적이건 비현실적이건 타인에 의해 침범을 당하거나 파괴되는것을 제일 싫어하는 성격이였다.

하루에에게 있어서 부향녀는 그가 스스로 자기의 마음속에 구축한 최고의 왕국이였고 절대로 함락되지 않는 성곽이였을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 침범을 당하고있었다. 그 녀자는 바로 그 성을 사수하기 위해 모든것을 불사할 의지에 넘쳐있는것이다. 바로 그것을 위해 오늘 하루에는 무로우에게 자그마한 타협의 여지도 주지 않고 랭정하게 자기 이성을 끊어버렸다. 다잡으면 다잡을수록 왜 그런지 마음이 더 괴로웠다.

이해의 마지막날인 섣달그믐날은 무로우에게 있어서 너무도 잔혹한 날이였다. 108개의 마귀를 쫓아버리기 위해 이날에 108번을 친다는 사찰의 종소리도 더없이 쓸쓸하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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訪問者 - -- - ISO ul - 2017-09-05
세상에는 책도 많지만 어머니 조국에서 발행한 소설 책이 좋아요!

잘 읽고 갑니다!
감 상 글 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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