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보금자리는 한순간에 페허로 화하고말았다. 유명무실한 회사의 운명은 사장뿐아니라 스무명 남짓한 직원들에게 커다란 아픔을 가져다주었다. 경영난으로 너나없이 못에서 튀여나온 물고기처럼 입만 쩝쩝 다셨다. 오늘과 같은 날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한 그들이였다.

여기저기에서 들어온 사직서들이 고명철의 책상우에 쌓였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제날의 존경과 의리는 사막의 물웅뎅이처럼 말라가고있었다.

《그래, 한달내에 회사가 다시 살아날것 같애? 설사 그렇게 된다 해두 그동안은 뭘루 목구멍의 때를 씻겠는가 말이야?》

《난 안해와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사직하고 아무 일이나 해야겠어.》

《사장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쥐새끼처럼 틀어박혀있으면 일이 된대? …》

면전에서 로골적으로 울리는 불만은 고명철의 뼈를 박박 깎아내리고있었다. 당장 파업이라도 일어날것 같은 공기가 회사안에 무겁게 감돌았다. 다행히도 지난 시기 사장에 대한 좋은 인상들이 남아있었기에 지금까진 볼부은 소리에 국한되였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점이 있다. 인정과 의리도 불룩한 돈주머니앞에서만 머리를 쳐드는 법이다.

고명철은 거의 한시간째 침통한 표정으로 문건철을 들여다보고있었다. 회사의 현 생산실태와 자금상태가 기록된 문건이였다.

《사장님, 이달로임도 주지 못할것 같습니다.》

출근하자마자 가석한 마음으로 문건철을 가져다 놓으며 하는 회계원처녀가 한 말이였다.

원료를 먹지 못한 기대들은 허기져 주린 창자에 거미줄을 휘감고있었다. 이제는 모든 생산이 마지막숨을 톺고있었다.

고명철은 로임이라는 글자에 시름겨운 시선을 주었다. 눈앞은 점점 아뜩해지기만 했다. 좀처럼 눈을 크게 뜰수가 없었다. 어느 발을 어떻게 어디로 내짚어야 할지 앞이 너무도 암울했다.

그동안 안면이 있다는 사람들은 다 찾아다녔다. 마에다 사부로의 도움으로 얻은 시간을 효과적으로 리용해보려고 하였다. 오금이 저리도록 이리저리 뛰여다녔지만 누구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동정의 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다 기울어져가는 집에 뭘 바라고 쓸데없는 인심을 베푼단 말인가.

한숨만이 방안에 가득차있었다. 미찌다로가 놓은 덫에서 벗어나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말려들어가는것을 부인할수 없는 형편이였다. 그는 육신이 찢어지는듯 한 아픔을 느끼며 지그시 두눈을 감았다. 자기가 이 일본에서 기업을 운영하려고 한 자체가 실책이였다는 후회만 맴돌았다. 민족차별이 심한 땅, 저들의 정치적목적과 리익을 위해서라면 타민족을 벌레만큼도 여기지 않는 척박한 이 땅에서 솟아난다는것은 정말 어불성설이라는것을 실감하게 하는 고통스러운 나날이였다. 절망적인 현실앞에 그의 기운은 진할대로 진했다.

이윽고 고명철은 송수화기를 들고 회계를 담당한 처녀를 불렀다.

《사장님, 불렀습니까?》

고명철은 시르죽은 제 꼴을 보이기 싫어 반쯤 돌아앉았다.

《이달세금들은 모두 처리해야겠소. 그리구 밀린 임금은 오늘중으로 다 내주오.》

《네?! … 그런데…》

처녀에게서는 놀라움이 가득 실린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그 많은 돈이 갑자기 어디서 나오겠는가 하는 의문이였다.

고명철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기운없이 말했다.

《회사의 돈을 깡그리 털어쓰오.》

처녀의 까만 두눈은 더욱 올롱해졌다. 이것은 회사의 파산을 의미한다.

《사장님, 그렇게 되면…》

고명철은 단마디로 그의 말을 잘라버렸다.

《지시한대로 하시오.》

《알았습니다.》

처녀는 어깨가 축 늘어져 문밖으로 사라졌다.

고명철은 책상우에 고개를 떨구고 두손으로 머리카락을 꽉 움켜잡았다.

아, 파산! 이것이 과연 내 노력과 정열의 산물이였단 말인가?

이때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뜻밖에도 미찌다로였다.

… 항상 서양의 라태하고 소란스러운 음악으로 벅적대던 료리집은 전에없이 조용했다. 백로가 춤추는 무늬의 기모노에 적갈색오비를 매고 머리를 불룩하니 말아올린 녀가수가 삼미현을 타며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호선녀야 호선녀야

    마음이 현에 어울리고 손이 북채에 어울려

    현과 북소리에 팔소매 날려

    흰눈 날리듯 나풀나풀 춤을 추느나

    외로 돌아도 바로 돌아도 지칠줄 모르고

    천바퀴 만바퀴 돌아도 끝이 없구나

    …

 

고명철은 마주한 식탁앞의 의자에서 풍겨오는 불쾌감으로 심중이 묵직했다. 노래의 선률처럼 그렇게 흥도 나지 않고 짜증만 났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가고싶었다.

그러나 방금전에 하루에에게 전화를 했으니 좋든싫든 앉아서 기다려야 했다.

앞자리에서는 여전히 미찌다로가 앉아 음흉한 표정을 짓는것만 같았다. 그자는 상대를 질시하듯 거만한 태도를 허물지 않고있었다.

《사장, 알고보니 당신도 든든한 세력의 손에 받들려있더구만.》

미찌다로는 손에 든 차잔을 천천히 돌리며 얄미운 웃음으로 이죽거렸다.

고명철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건 무슨 말이요?》

미찌다로는 유럽인들처럼 두손을 쩍 벌려보였다.

《어, 너무 그러지 마오. 난 얼마전에야 당신이 마에다 사부로의원님과 친교가 깊다는것을 알게 됐소. 그래서 내 전례에 없는 일을 벌려 대부금반환기일을 연장해주었던거요.》

미찌다로는 승자라는 쾌감을 못이기며 서떰벌하고있었다.

고명철은 역스러워 골살을 찌프렸다.

《그래, 그게 당신의 비위에 걸린다는거요?》

미찌다로는 황황히 두손을 가로저었다.

《아, 아니요. 내가 오늘 이렇게 만나자고 한건 우리가 서로 협력할수 있지 않는가 하는거요.》

고명철은 쓰겁게 웃었다.

《협력? … 허 거참, 억지로 반가운 소리구만.》

미찌다로는 여전히 얼굴에 능글맞은 웃음을 띠웠다. 목소리 또한 자신심에 넘쳐있었다.

《그러지 마오. 세상은 박해도 인정은 후덥다는데…》

《여보시오, 미찌다로! 은행가는 해가 비칠 때 우산을 빌려주고 비가 오면 그것을 빼앗는 사람이라고 했소.》

《허, 그것 참 명담이로구만. 난 내 기업과 일본의 리익을 위해서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움직일수 있소. 이 일본의 모든 회사들도 말이요.》

미찌다로는 눈꼬리가 치올라간 두눈알에 얄미운 웃음을 떠올리고나서 차잔에 입술을 가져다댔다.

《당신도 아마 이쯤한건 잘 알리라고 생각하는데? …》

그자는 상대의 심중을 떠보려는듯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고명철은 입이 쓰거워났다. 권력과 돈이면 모든것을 다 얻을수 있다고 생각하는것이 참으로 가련하기 그지없었다. 초보적인 량심마저 저버리고 자기 리익만을 추구하는자를 보는것이 매맞는 사람을 보는것보다 더 따분한 법이다.

《이것 보시오. 당신은 아마 자기가 이 일본의 최고권력자라도 되는것처럼 말하는데 그래, 그것으로 자기의 리속을 다 채울수 있다고 생각하오?》

《허, 사장이 잘 보았소. 당신네 조선사람들은 정의요, 량심이요 하면서 남의 리익을 가로채는것을 가장 비렬하게 생각하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구시대의 낡은 사고방식이라는것을 알아야 하오.》

미찌다로는 의기양양한 기세를 보였다.

《솔직히 난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정치무대에 나서려고 했소. 하지만 부친이 그걸 한사코 반대하고 이렇게 금융계에 나서도록 했지. 왜 그런지 아오?》

《…》

《왜냐면 돈이자 정치이고 돈이자 권세이기때문이지. 다시말하면 바보라고 인식한 바보는 바보가 아니다 그 말이요.》

고명철은 피뜩 까마귀둥지에서는 닭알을 못 찾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난 견문과 마음이 좁아서 자기의 상식이 전부인줄 알고 멋없이 거들먹거리는 당신 같은 사람과는 상종해본적도 없소.》

여직껏 기고만장한 자세로 있던 미찌다로의 인상은 대번에 찌그러졌다. 유리처럼 반질반질하던 그의 눈알은 순간적으로 적의를 뿜었다.

고명철은 더이상 그자와 마주서고싶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찌다로가 서리돋힌 목소리로 그를 불러세웠다.

《사장! 당신이 그렇게 나온다고 해서 회사의 운명을 건질수 있다고 생각하오?》

고명철은 그자가 아픈 곳을 찌르고있다는것을 느꼈다. 이자는 지금 자기의 가슴에 박힌 칼을 잡고 그것을 마구 움직이고있었다.

미찌다로의 독설적인 언사가 뒤에서 울렸다.

《내가 보기엔 그 고명하신 마에다의원님도 당신의 숨죽은 <자식>에게 더이상 생명을 불어넣어주지는 못할것 같은데…》

그자의 말은 죄다 사실이였다. 고명철은 다른 길이 없었다. 이제 남은것은 회사를 포기하는 길이다. 그는 이미 결심을 굳혔다. 그래서 이곳으로 오기 전에 로동자들에게 밀린 임금을 내주도록 지시했던것이다. 비록 파산은 당해도 지금까지 함께 일해온 그들의 생활에 피해를 주고싶지 않았던것이다.

이제는 모든것이 명백하였다. 바로 미찌다로는 고명철이가 빠져나갈수 있는 길들에 그물을 쳐놓고 이렇게 그를 만나자고 했던것이다.

그자는 고명철의 앞으로 다가왔다. 제 낯짝을 바투 가져다대며 유순해진 어조로 씨벌거렸다.

《자, 그러지 말고 앉아서 우리 서로 타협안을 생각해보기요.》

미찌다로는 고명철의 어깨를 잡아 자리에 앉혀주었다.

타협?! … 이자가 또 무슨 간교한 술책을 쓰려는가? 그래, 이것이 이자가 지금까지 노린 목적일가? 그렇다면 그 내용은 뭘가?

몇초 안되는 사이에 숱한 생각이 머리속을 스쳐갔다. 이런 생각에 고명철은 사전에 침을 놓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좋소. 그런데 내 미리 말하는데 또 우리 어머니 일을 꺼들인다면 난 아예 마주서지조차 않겠소.》

《아, 알겠소!》

미찌다로는 그제서야 기분이 좋아진듯 접대원을 불러 술 두잔을 청했다.

《그래, 뭐요?》

고명철은 어서 그자의 속심을 알고싶었다.

《좋소. 당신은 에도는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미니 직방 말하겠소.》

미찌다로는 목구멍으로 숨을 크게 들이켰다.

《다른게 아니라 난 사장이 시마네현에 있는 내 회사를 맡아달라는거요.》

《?! …》

너무도 뜻밖이였다. 남의 등가죽을 제 집 개가죽보다 못하게 여기는 미찌다로이다. 그런 파렴치한자에게서 사람목소리가 울려나오다니. 승냥이가 양으로 변했다는 당치않은 말이나 같았다.

《난 듣고도 리해하지 못하겠구만.》

고명철은 지금까지 미찌다로를 금융업자로만 생각하고있었다. 그런데 그에게 회사들까지 있다는것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하긴 애비의 그늘밑에서 돈을 벌수 있다면 그 어떤 수단이나 방법을 다 동원하여 돈구멍을 놓치지 않는 인물이니 수산업만이 아니라 금광 같은것도 몇개씩 손아귀에 쥐고있을만도 하였다.

미찌다로는 얼굴에 엷은 웃음을 담았다.

《나는 당신이 다께시마… 아, 아니… 당신네 조선사람들이야 독도라고 하지… 내가 바라는 협력안이란 바로 그 수역에서 당신이 어업활동을 했으면 하는거요.》

《그거야 남조선과 미리 경제협약을 맺은 조건에서 해야 할 일이 아니요?》

《허, 임자도 그 지역에 대한 어업권을 둘러싸고 량국이 오래동안 뿌리깊은 충돌을 가지고있다는것을 알겠는데 그러는구만.》

미찌다로는 고명철을 민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오래전부터 남조선과 일본사이에는 이 문제를 두고 심각한 론쟁을 벌려왔다. 일본의 어부들은 좋은 어장이라고 말할수 있는 독도일대에 들어가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남조선에서는 이를 묵인하지 않았다. 오늘날 독도를 두고 저들의 령토인 《다께시마》라고 주장하는 일본극우보수세력들의 망발로 그 문제는 더 첨예화되였다.

《난 그런 비법적인 행동은 할수 없소.》

고명철은 두부모 자르듯 거절하였다.

《허, 너무 그러지 마오. 손가락은 안으로 굽어든다구 당신들이야 다 같은 민족이 아니요. 그러니 단속을 당한다 해도 크게 문제시될게 없지 않소.》

고명철은 쓰거운 웃음을 지었다. 미찌다로의 속심이 대충 짐작되였다.

《아무리 그렇다구 해도 그건 힘들것 같소.》

미찌다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게 바투 다가들었다.

《그래서 내 당신에게 부탁하는게 아니겠소. 대신 난 당신네 회사에 전적으로 대부금을 지불하겠소. 해상업에서 나오는 리윤은 절반으로 나누고 말이요. 그래, 어떻소?》

고명철은 선뜻 대답할수 없었다. 이것은 어머니가 하고있는 일을 정면으로 막아서는 비렬한 행위나 다름없었다.

《미안하오. 난 못하겠소.》

미찌다로는 두눈을 크게 떴다. 그가 이렇게 단마디로 거절할줄은 몰랐다.

《이것 보오. 기업은 그때그때의 정황에 재빨리 적응할수 있는 능통성과 민첩성이 없이는 할수 없네. 자, 그러지 말구 잘 생각
해보라구. 이것이 아마 당신에게는 마지막기회가 될수 있소.》

그자는 마지막 말마디에 힘을 덧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홀로 남은 고명철은 머리가 터지는것만 같았다. 오만가지 생각이 마구 뒤엉켜돌아갔다. 회사의 운명이라는 큰 덩어리를 가운데 두고 칡넝쿨같은 수많은 아지들이 사방 엉켜돌아갔다. 꼭 자기가 미찌다로의 낚시에 걸려든것만 같았다.

장애물이란 뛰여넘으라고 생긴것이지 걸려서 엎어지라고 있는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 고명철은 그것을 넘을 힘이 없었다. 오히려 걸려 넘어져야만 한다는 결론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종잡을수 없었다. 괴로운 심정을 누이한테만이라도 터놓고싶었다. 언제나 제 동생의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서 묘한 방책을 내놓군 하던 그였다.

《기다린지 오래니?》

귀익은 목소리에 고명철은 생각에서 깨여나 머리를 쳐들었다. 기다리던 누이가 서있는것이였다. 그는 대답대신 머리를 끄덕였다.

회사일로 속을 썩이느라 훌쭉해진 그를 대하는 하루에의 마음은 괴로웠다.

《그새 퍽 수척해졌구나!》

고명철은 한숨을 길게 내그었다.

《누이! 난 이미 결심했어요. 이젠 회사의 문을 닫는 길밖엔 더는 없을것 같애요.》

그는 기분이 축 처져서 차잔에 입술을 가져다댔다.

동생의 모습을 괴로운 눈길로 바라보며 하루에는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렇다구 너무 극단적인 결심은 하지 말어. 방도란 찾는 사람의 눈에는 뜨이지만 기다리는 사람앞에서는 숨어버린다지 않니.》

《글쎄, 내가 왜 그걸 모르겠소. 하지만 출로가 없는걸 나도 어쩌겠소. 방금전에도 미찌다로가 나에게 왔댔어요.》

《뭐라구?》

고명철은 방금전에 미찌다로와 나눈 대화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래, 누이의 생각엔 어떻게 했으면 좋을것 같소? 혹시 그자의 말대로 하면 모든게 풀릴수 있지 않을가요?》

하루에는 동생의 손을 두손으로 꼭 잡고 간청하듯 말하였다.

《그런 생각은 애당초 하지도 말아. 내 생각에는 미찌다로의 그 선의가 어쩐지 께름직하게 여겨지는구나. 꼭 어머니에게 무서운 올가미를 씌우려는것만 같은게…》

고명철은 고개를 푹 떨구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 난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하루에는 그를 측은한 기색으로 바라보았다. 그 어떤 도움도 줄수 없는 자신이 민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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訪問者 - -- - ISO ul - 2017-09-05
세상에는 책도 많지만 어머니 조국에서 발행한 소설 책이 좋아요!

잘 읽고 갑니다!
감 상 글 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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