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비행장을 나선 부향녀와 조성호는 택시들이 서있는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이때 그들옆에 빨간 승용차가 다가왔다.

《원장선생님!》

차문이 열리더니 뜻밖에도 《보라매》가 내렸다.

《아니, 기자선생이 어떻게? …》

《안녕하십니까?》

《보라매》는 인사를 하며 차문을 열었다.

《시마네현에서 예까지 먼길을 비행하셨겠는데 제가 모셔다드리지요.》

부향녀는 놀라웠다.

이 녀자가 어떻게 그것을 알가? 우연일가? 아니, 분명 《보라매》는 나의 행동을 이미전부터 주시하고있었을것이다. 그러면 무엇때문에? …

조성호가 한발 나서며 시답지 않은 투로 말했다.

《부인의 성의는 고맙지만 우린 택시를 타고 가겠습니다.》

《보라매》는 마뜩지 않은 시선으로 그를 흘겼다.

《아, 이렇게 알게 되여 정말 반갑군요. 하지만 전 초면인 당신에게 한가지 충고를 해주어야겠군요. 다시는 저를 부인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조성호는 그의 랭담한 표정을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아하, 이거 실례했습니다. 제가 원래 덜퉁해서 유부녀와 미혼자를 잘 가려보지 못했으니 용서하십시오.》

《보라매》는 그를 아니꼽게 쏘아보고는 부향녀에게 돌아섰다.

《선생님, 저의 성의를 거절하지는 않겠지요? 단 둘이서 조용히 할 말이 있습니다.》

《저한테요? 그럼, 그렇게 하지요.》

《보라매》는 승용차를 바다기슭으로 몰았다.

서쪽 저너머로 떨어지는 석양의 여광이 거치른 날바다를 포근하게 감싸면서 감홍빛으로 수면을 물들이고있었다. 여느때없이 온순해진 대양은 붉게 물든 옷자락을 너울너울거린다. 저녁노을에 한껏 물든 바다는 조용히 출렁이며 소중한 추억을 퍼내듯 끝없이 달려온다. 멀리서부터 굼닐굼닐 밀려드는 잔파도는 잠든 어린 자식을 쓰다듬는 어머니의 손길인양 모래불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고있었다.

《보라매》는 무연한 백사장의 끝점인 도래굽이벼랑밑에서 멈춰섰다.

부향녀는 그의 이상스러운 행동을 점지했다. 아마 전번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계속할 심산이 분명했다.

《그래, 무엇때문에 나를 만나자는거예요?》

그는 온화한 목소리로 물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기가 서있는 위치가 별스럽게 눈에 익었다. 높이 솟은 벼랑우에는 소나무 한그루가 서있었다. 바다기슭에는 큰 너럭바위가 놓여있었다. 어디서 꼭 본것 같기도 했고 이곳에 왔던적이 있는것 같기도 했다.

그의 생각은 랭정하면서도 선언적인 《보라매》의 말에 중단 되였다.

《전 원장선생님이 자신을 위해서도 그 력사문제에서 손을 떼라는것입니다.》

부향녀는 놀라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난 도무지 리해할수 없군요. 왜 기자선생이 그 일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지. …》

《보라매》는 랭담한 표정을 허물지 않았다.

《그건 바로 선생님의 행복한 가정에 불행이 없기를 바래서랍니다.》

부향녀는 씁쓰레한 웃음을 지었다.

《나를 생각해준다니 정말 고마워요. 그러나 그건 괜한 걱정이예요.》

《그런가요?》

《보라매》의 입가에서는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선생님은 그래 몇장의 낡은 지도나 <나까이리력서>와 같은 고문서들을 가지고 일본인들의 그릇된 인식을 돌려세울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한갖 모래로 뚝을 쌓아 물을 막아보겠다는 망상이 아닌가 말입니다.》

부향녀는 어지간히 흥분한 《보라매》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이 녀자한테는 제 민족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이 큼직하게 들어앉아있었다.

《물론 쉽지는 않을거예요. 그러나 독도가 우리 민족의 령토라는것만은 명백한 사실이예요. 그래서 수천만의 우리 조선민족이 그 땅을  지켜가고있는것이예요. 당신은 결코 제 민족을 모래라고 모독하지는 않겠지요?》

《보라매》는 자기의 의사를 거침없이 내뱉았다.

《아니요, 난 주저하지 않는답니다. 반세기동안 국토가 량단되고 지구상에 수많은 제 민족 성원들을 뿌려놓은 그 조국이 그래, 제 력사를 지키고 민족의 흥망을 담보할수 있다고 생각하시는가요? 흩어지는 물체는 언제나 약한 법이지요. 인간의 운명은 그 어떤 민족이나 력사에 의해 규정되는게 아니라 현실의 변화에 어떻게 능동적으로 적응되는가 하는데 있답니다.》

《그러니 기자선생은 력사란 자기의 손에 쥐여진 돈쪼각보다 못하다는건가요?》

《보라매》는 부향녀의 말을 비웃음으로 대했다.

《그래요. 바로 여기에 선생님과 저와의 견해차이가 있답니다. 그래, 오늘날 과거 일본이 조선봉건정부와 맺은 조약이 적법이든 비법이든 그게 무슨 가치가 있는가 하는겁니다. 그리구 일본의 극우보수세력들이 지나간 력사를 외곡한다고 해서, 또 선생이 그것을 바로 인식시키려고 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말입니다. 그렇다구 파렴치하기 그지없는 일본인들이 어떤 사죄나 배상을 할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

《현명한 사람과 미련한 사람의 차이가 뭔지 아십니까? 그것은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승산여부를 잘 타진하는거랍니다. 전 선생님이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과거를 떠나서는 현재와 미래가 없다는것을 모르지는 않겠는데요.》

《보라매》는 심술궂고 쌀쌀한 눈길로 부향녀를 바라보았다.

《물론 그 말은 옳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세대는 해묵은 세월보다 현실에 대한 감각과 미래에 대한 공상에 취하는것을 더 좋아한답니다.》

부향녀의 가슴은 칼로 허비는듯 저려왔다.

한 인간이 어쩌면 이리도 그릇된 의식에 란취되여있을수 있단 말인가. 민족의 한 성원으로서 자기 민족에 대한 배타적인 관점과 미래에 대한 그릇된 사고와 견해, 현실에 대한 모독… 이것은 그 어떤 주입이나 강요에 의해서 이루어진것이 아니다. 떠돌이생활과 고통스러운 체험속에서 다져진것이 분명했다.

부향녀는 그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난 도저히 리해할수 없군요. 무엇때문에 기자선생에게 제 민족에 대한 허무주의와 력사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이 꽉 차있는지 말이예요?》

《보라매》는 부향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걸 꼭 알고싶은가요? 그렇다면 말하지요. 난 바로 그 력사라는 무덤속에 우리 가정을 묻어버리고 고아가 된 사람이예요.》

《?! …》

《보라매》는 실눈을 잔조롬하게 뜨고 멀리 해빛을 반사시키는 수면을 바라보았다. 시들한 기색이 비낀 그의 얼굴은 괴롭게 이그러졌다.

《그래요. 이제는 오래전의 일이지요. 바로 여기 너럭바위우에는 두 가정이 자주 모여앉군 했답니다. 그들은 여기서 멀리 고국을 그리며 눈물도 짓고 웃음도 나누었어요. 그렇듯 자별하던 두 집에 바로 력사론문이라는 종이장이 파멸의 불구름을 몰아올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나요. 잘못은 제 아버지에게 있었답니다. 그가 몸이 불편한 친구가 천신만고하면서 얻어온 력사자료를 몽땅 일본놈에게 팔아버렸던거예요.》

부향녀는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어쩌면 이리도 신통할수 있단 말인가. 혹시…

상념깊은 《보라매》의 목소리는 가볍게 떨리고있었다.

《그런데 그날 그 친구는 우리 집에서 차를 마시고 그만…》

그의 목소리는 도중에서 뚝 끊겼다. 목이 콱 메였던것이다.

부향녀는 현기증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아니, 그럼 네가?! …》

얼마나 애타게 찾고찾았던가. 수십년세월 단 한순간도 잊은적 없이 도꾜바닥을 헤매며 찾은 그였다.

그런데 어디에 가있다가 이렇게 불쑥 나타났느냐? 어디… 어서 안아보자꾸나. 응 진미야!?

《진미야!-》

부향녀는 두팔을 벌리고 다가갔다. 그러나 차마 그를 부여안을수 없었다.

색안경을 벗은 《보라매》의 눈가에는 랭기가 어려있었다. 그는 거칠어진 목소리로 띠염띠염 웨쳤다.

《그래요. 제가 진미예요. 바로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자신을 타매하며 용서를 빌다가 숨진 리민수의 딸이예요.》

부향녀는 다시금 진미의 모습을 더듬었다.

그래, 분명 리민수의 딸이다. 왼쪽눈귀에 붙은 기미, 언제인가 저애는 그것이 《눈물기미》라고 제 입으로 말한적이 있었지.…

허나 그는 어제날의 그 소녀가 아니였다. 있다면 고집스럽고 당돌하던 성격뿐이였다. 그의 온몸은 하나의 얼음덩이로 되여있었다.

부향녀의 입술은 파들파들 떨리고있었다. 무엇이라고 형언할수 없는 놀라움앞에 그의 몸은 순간적으로 휘청거렸다.

싸늘하게 얼어든 리진미의 목소리가 부향녀의 아픈 상처를 잡아비틀고있었다.

《그때 당신들이 우리 아버지를 미궁과도 같은 력사연구에 끌어들이지 않았더라면 난 오늘과 같은 불행한 운명을 강요당하지 않았을거예요.》

부향녀는 그의 말에 뭐라고 대꾸할수 없었다. 지금 진미는 그의 아픈 가슴을 마구 란도질하고있었던것이다.

《그래, 어째서 이국에서 사는 우리가 아직까지 민족이요, 피요 하는 추상적인 의식에 매달려야 하는가 말입니다.》

《그만하지 못하겠니!》

부향녀는 저도 모르게 큰소리를 쳤다. 그러나 인차 자신을 후회했다.

내가 무슨 권한으로 저애한테… 큰엄마라고 부르며 품속에서 감겨돌던 저 진미를 20여년동안 단 한번도 따뜻하게 대해준적이 없는 몰인정한 내가…

리진미는 차거운 눈빛으로 부향녀를 바라보았다.

《그래요. 나야 이랬든저랬든 당신의 가정에 죄를 진 사람의 자식일테지요. 하지만 이 말만은 하지 않을수 없어요. 자기 세대가 바라는것이라고 해서 꼭 후세대가 이어받아야 한다는 법은 없는거예요. 난, 성옥이가 제 할머니때문에 나 같은 운명을 당하지 않기를 바랄뿐이예요.》

리진미는 인사말도 없이 승용차가 서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진미야!-》

부향녀는 그의 뒤모습을 아프게 바라보며 소리쳤다.

허나 리진미는 돌아보지도 않고 걸어갔다.

순간적으로 온몸에서 기운이 쭉 빠졌다. 모든것이 감각을 잃어버린것만 같았다. 부향녀는 속빈 풀단처럼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속은 텅 빈것 같았다.

진미야, 너는 또 내곁을 떠나는구나. 아무리 아픈 상처를 품었기로서니 그래 너에겐 이 늙은이를 큰엄마라고 불러줄 그런 인정
도 없단 말이냐? 어쩌면 네가 그렇게 모질게 변할수 있단 말이냐?

수십년동안 마음속 한구석에 고이 간직하고 찾고찾아온 리진미였다. 꿈속에서조차 그의 행처를 알려주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잠을 못 이룬 밤은 그 얼마였으며 행인들의 얼굴에서 그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정을 주어도 가장 깨끗한것을 주고싶었고 사랑을 주어도 변함없이 주고싶었다. 그렇게 보석처럼 귀중하게 여긴 진미여서 오늘 그의 행동이 믿어지지 않았고 꼭 자기가 악몽속에서 헤매이는것만 같았다.

저애가 분명 진미란 말인가?

《선생님! …》

조성호가 찾아서야 그는 제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물끄러미 그를 쳐다볼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머리속에는 온통 진미에 대한 생각뿐이다.

아,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다른 사람도 아닌 진미가 제 아버지가 걸은 길을 가다니…

방금전 리진미가 가리켰던 바위가 눈에 밟혀왔다.

그래서 그애가 날 여기로 데리고 왔구나!

귀전에는 그가 방금전에 한 말이 맴돌고있었다.

《그때 당신들이 우리 아버지를 미궁과도 같은 력사연구에 끌어들이지 않았더라면 난 오늘과 같은 불행한 운명을 강요당하지 않았을거예요.》

그러니 진미는 아직까지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있었구나!

눈가에는 20여년전의 일이 피여오르고있었다. …

삼복의 무더위는 모래불을 불판처럼 만들었다. 시원한 해수욕으로 화독을 뽑는 사람들로 백사장은 들끓었다.

부향녀는 14살인 하루에와 10살인 고명철을 앞세우고 한발 늦게 이곳에 나왔다. 남편은 미리 자리를 잡아놓겠노라고 하면서 먼저 이곳에 나왔었다.

부향녀는 자식들과 함께 고성길을 찾았다. 그러나 사람바다속에서 그를 찾는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모래밭에 떨어진 바늘을 찾는 격이였다.

《큰엄마!》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치마자락에 매달렸다. 어린 리진미였다.

《아니, 진미로구나! 그래 아버지랑, 어머닌 어데 있니?》

《엄만 아파서 못 나왔어. 아버지는 저기…》

영채어린 눈을 반짝이며 그는 도래굽이쪽을 가리켰다. 드넓은 백사장에 유독 우뚝하니 솟은 바위우에는 소나무가 서있었다.

《큰엄마, 나 업어줘요.》

부향녀는 리진미를 내려다보았다.

《우리 진미, 지금 몇살이지?》

리진미는 오른손의 손가락을 펴보였다.

《5살!》

《그러니 너도 이젠 어린애가 아니다. 힘들어도 제발로 걸어버릇해야지.》

리진미는 입술을 삐죽하니 내밀며 타박타박 걸었다. 여느때 같으면 선참으로 안아주군 하던 큰어머니였다. 그런데 오늘은 별스럽게 엄한 인상을 보이니 마음이 썰렁했다.

하루에가 얼른 그를 껴안았다.

《어머니, 제가 업구 가겠어요.》

리진미는 뾰로통해서 뿌리쳤다.

《싫어.》

《놔두거라.》

부향녀는 리진미앞에 다가갔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앞으로는 네 힘으로 걸어야 한다. 알겠니?》

《응.》

하루에가 부향녀에게 다가왔다.

《어머니, 힘들겠는데 배낭을 제게 주세요.》

《일없다.》

부향녀는 잔등에 진 짐을 추슬리고 그를 안았다. 친자식처럼 항상 잔등에 업고 안아준 리진미였다. 그런데 이제는 버릇이 되여버린것이다.

부향녀는 머리태를 제비꼬리처럼 달싹거리는 리진미에게서 정깊은 눈길을 떼지 못했다.

《우리 진미가 그새 더 예뻐졌구나.》

리진미도 이제는 앵돌아진 마음이 펴졌는지 고집스럽게 생긴 작은 입에 봉오리같은 웃음을 담았다.

《그런데 애들은 날 보구 자꾸 울보라구 놀려줘요.》

《으-음, 네가 자꾸 우는게로구나?》

《체, 아니예요.》

리진미는 손가락으로 자기의 왼쪽눈귀에 있는 팥알만 한 기미를 가리켰다.

《그애들은 이게 눈물기미래요. 큰엄마, 맞나요?》

부향녀는 허거픈 웃음을 지었다.

《진미야, 그건 거짓말이란다. 그애들의 말을 믿지 말아.》

《알겠어요.》

두눈을 반짝이던 리진미가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부향녀의 얼굴에서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다.

어린것의 소행이 하도 기특해서 부향녀는 송골송골 땀이 내밴 그의 볼에 입을 쪽 맞추었다.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진미인가.

《오빠두 손수건 달란?》

뒤에서 배부른 배낭가방을 메고 따라오는 고명철에게 하는 소리였다.

고명철은 제 어머니에게 힘들게 매달려가는 리진미가 아니꼬운듯 《네 수건은 안 쓴다.》 하고는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리진미는 입을 삐쭉거렸다.

옆에서 작은 구럭지만 달랑 들고 따라오던 하루에가 고명철에게 일렀다.

《명철아, 그 배낭가방을 인 줘.》

고명철은 잔등에 매달린 자그마한 짐이 무거웠던지라 인차 벗었다.

이때 부향녀의 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철아, 사내가 녀자인 누나한테 짐을 넘겨주어서야 되겠니. 어서 네가 마지막까지 지고 가거라. 무겁지도 않은데…》

고명철은 말없이 제가 잔등에 다시 짐을 졌다. 시무룩해서 발치만 내려다보며 걸었다.

하루에는 바빠난듯 부향녀에게 매달렸다.

《어머니! …》

부향녀는 살뜰한 어조로 말했다.

《녀자라구 무거운 짐만 져야 한다는 법은 없다. 걱정말구 어서 가자.》

리진미는 큰어머니의 행동이 이상했다. 어쨌든 하루에는 고명철이보다 크고 또 일본애가 아닌가. 그런데 무엇때문에 그를 그토록 아끼는걸가?

그는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났는지 부향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큰엄마, 내가 명철오빠 색시가 된 다음에도 이렇게 안아줄래요?》

부향녀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네게 그런 소리를 하던?》

《큰아버지랑, 우리 아버지랑 내가 크면 명철오빠 색시가 된다고 했는데 뭐.》

부향녀는 허허 웃고말았다. 아들을 낳던 해에 이제 리민수가 딸을 낳으면 사둔을 맺자고 두집사이에 약조했었다. 그런데 그게 어느새 리진미의 귀에까지 들어간 모양이다.

《그땐 오빠보구 안아달라구 하렴.》

리진미는 고명철을 보며 입을 삐쭉거렸다.

《체, 명철오빤 심술바우가 돼서 날 안아줄게 뭐나요.》

고명철이 두눈을 부라리며 주먹을 흔들어보였다.

그들이 도착하니 너럭바위우에 고성길과 리민수가 마주앉아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모두들 열이 올라 론쟁을 하고있었다.

고성길은 의족한 한쪽다리를 쭉 펴고 언성을 높이고있었다.

《그래, 돈이 그리워서 모든 일을 포기할셈인가?》

리민수는 딱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납득시키려고 변명했다.

《나라구 왜 우리가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것을 모르겠나. 그렇지만 그게 승산이 있는가 말이네. 솔직히 말해서 난 살아가기가 정말 힘이 드네. 안해라는건 산후탈로 일년 열두달 바깥출입을 힘들어하지, 게다가 진미는 저렇게 커만 가니…》

그는 길게 한숨을 내그으며 고성길에게 따지고들듯 말했다.

《이보라구, 우리가 그렇게 먼지만 풀풀 나는 력사문서를 뒤진다구 누가 알아주기나 하나? 살림은 갈수록 말라가고 쪽발이들의 횡포는 더해지지 않는가 말이네. 이 일본에선 돈이 없으면 살아도 죽은 목숨이라는걸 자네도 잘 알지 않나.》

리민수는 자기의 두손가락으로 돈을 세여보는 흉내까지 냈다.

고성길은 안타까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보게 민수, 우리가 언제 돈이 있어서 오늘까지 살아왔나? 조국에서 교육원조비를 보내주었기에 우리 자식들이 공부를 하게 되지 않았는가 말이네. 생각해보라구. 나라없던 그 시절에 우리가 어떻게 공부를 했나? 그런데 지금은 우리에게도 조국이 있단 말일세. 제 나라, 제땅이 있는데 뭐가 두려워서 그러나… 섭섭하네. 모두 자네처럼 생각한다면 누가 왜놈들에게 롱락된 우리의 력사를 되찾을수 있는가 말이야. 그래, 그렇게 사는게 우리의 량심이고 도리인가 말이네.》

그 말에 리민수는 더 다른 말을 고르지 못했다.

고성길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내가 왜 자네의 심정을 모르겠나. 그렇지만 우리야 수난의 시기에 제 민족의 력사가 어떻게 유린당하는가를 체험한 사람들이 아닌가. 우리가 이 길을 중도반단한다면 후대들앞에 무슨 면목이 있겠나. 민족의 피와 넋은 바로 제 민족의 력사에서부터 시작된다는것을 자네도 잘 알지 않나.》

침침한 공기를 흐트리며 부향녀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유, 그저 모여앉기만 하면 력사이야기뿐이군요.》

그제서야 그들은 굳어진 표정들을 풀었다.

《당신이 인제야 왔구만. 자, 우선 시원한 맥주부터 꺼내놓소.》

고성길은 우선 제손으로 맥주를 리민수의 고뿌에 부었다.

《자, 어서 들자구.》

《좋네.》

그들은 잔을 찧으며 밝은 웃음을 지었다. 그와 함께 좌석에는 화기로운 분위기가 넘쳐흘렀다.

리진미는 항상 부향녀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제 부모들보다도 그를 더 따르는 진미였다.

부향녀는 리민수의 앞에 음식그릇들을 밀어놓으며 일렀다.

《래일 진미 어머니를 우리 병원에 보내세요.》

리민수는 안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매번 신세만 지는게 너무 미안해서…》

《우리사이에 무슨 그런 말을 다하세요. 그러지 말구 꼭 보내야 해요.》

고성길은 리민수의 잔에 맥주를 부었다.

《자넨 언제 봐야 소심한게 탈이거던. … 우리야 함께 죽을고비도 넘어온 사이가 아닌가. 그리구 앞으론 서로 사둔이 될 사람들이지. 그렇지, 진미야?》

모두가 웃으며 리진미를 바라보았다.

자기에게 눈길들이 쏠리자 리진미는 뾰로통하니 내쏘았다.

《명철오빠는 싫어요.》

고성길이 큰일이라도 난듯 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허… 싫단 말이냐. 그럼 우리 명철인 어떻게 한다? …》

고명철은 얼굴이 새빨갛게 익어서 아버지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다.

리진미는 영채도는 눈을 반짝이며 대꾸했다.

《난 큰엄마하구 살겠어요.》

좌중에는 다시 폭소가 터졌다.

부향녀는 진미를 꼭 껴안았다.

… 감미로웠던 그 시절을 돌이켜보며 부향녀는 너럭바위로 다가갔다. 그날의 그 흥겹고 행복스러운 날들은 이미 아득한 옛일로 되여버렸다. 대신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하던 리진미는 전혀 생소한 인물로 그앞에 나타났다.

아, 세월이란 정녕 이렇게 무심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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訪問者 - -- - ISO ul - 2017-09-05
세상에는 책도 많지만 어머니 조국에서 발행한 소설 책이 좋아요!

잘 읽고 갑니다!
감 상 글 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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