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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네현의 신지호는 쥬고꾸산지에서 시작되여 요꼬따, 니따 등 여러 지역을 지나는 히이강으로 형성된듯싶었다. 호수의 주변에는 록음이 우거져 사람들의 즐거운 휴식터로 되였다. 또한 산새들의 아늑한 서식장이기도 했다.
택시에서 내린 부향녀와 조성호는 침엽수림이 우거진 좁은 길을 따라 걸었다.
《선생님, 정말 이번에 <나까이리력서>를 얻게 될가요?》
조성호는 바라던 열매를 얻게 되였다는 생각에 좀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부향녀도 그의 심정과 다를바없었다. 이틀전 이곳에 있는 일본인 력사학자와 이미 전화련락을 한 그였다. 남편과 인연이 깊은 그는 쾌히 응하면서 벌써 그 자료를 서재에서 찾아 따로 건사하고있으니 마음놓으라고 전화했던것이다.
침엽수들과 잡관목이 우거진 숲속에서는 꿩들의 울음소리가 기분좋게 울렸다. 그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이름모를 산새들이 이 나무, 저 나무로 날아예며 지저귀고있었다. 시원한 공기는 그들의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신지호의 기슭인 다미유쪽에는 살림집이라고는 거의 없다싶이 했다. 이따금 고기잡이군들의 림시초막이 보일뿐이다.
《선생님, 이런 곳에서 그 로교수선생님이 살고계십니까?》
번잡한 도꾜의 한복판에서 나서자란 조성호는 신비한 자연의 경치에 취해있었다.
《나도 그 선생님이 20여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이런 인적이 드문 곳에서 사는것이 믿어지지 않네.》
한마리의 청서가 삼송나무가지를 타고 잽싸게 몸을 움직였다. 그 덕에 노랗고 달콤한 향내가 나는 송화가루가 그들의 머리와 어깨우에 차분하게 내려앉는다.
조성호는 청서를 올려다보며 안면근육을 찌프려보였다.
《하긴 늘그막에 이런 곳에서 사는것도 하나의 복이라고 봐야 할겁니다. 이게 얼마나 좋습니까.》
한동안 걸어가니 호수가로부터 이십메터쯤 떨어진 곳에 한채의 독립가옥이 보였다. 단층이였는데 현대문명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일본의 재래식민족주택이였다. 옛 건물치고 외형상 다른것이 있다면 나무기와를 올려놓던 지붕에 파란 양철판을 씌운것이였다. 그리고 나무벽에 바른 흙대신 세멘트로 미장을 한것이다.
블로크를 쌓아 둘러친 담벽안에서는 송아지만 한 개들이 집의 네 귀퉁이에서 주먹만 한 앞발통으로 땅을 허비며 컹컹거렸다.
조성호는 철대문옆에 달린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후 안에서 인기척소리가 나더니 백발의 한 늙은이가 안해의 부축을 받으며 나왔다. 로교수는 자주색줄무늬가 간 편직명주천으로 지은 기모노를 입고있었다. 모두 게다를 신었는데 안해는 기모노에 오비(일본녀자옷에 두르는 띠)까지 두르고있었다.
《원장선생님이 이렇게 먼길을 직접 오실줄은…》
로교수는 두손을 내밀며 반가움을 숨기지 않았다.
《자, 어서… 어서 들어가십시다.》
마당은 그리 넓지 않았지만 늙은 내외의 알뜰한 잔손질이 미쳐있었다. 그들이 일구어놓은듯 한 꽃밭에서는 봄꽃들이 활짝 피여있었다. 한쪽구석에 놓여있는 세개의 벌통에서는 꿀벌들이 분주히 날아들고있었다.
《교수선생님의 정서는 참 독특하십니다.》
부향녀의 칭찬에 로교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늘그막에 이런 생활도 없으면 무슨 락이 있겠습니까.》
조성호가 자기가 품었던 의문을 드러내보였다.
《선생님, 그런데 이렇게 인적이 적은 곳에서 사는게 불편하지 않습니까?》
《허, 임자는 리해하기 힘들걸세. 속세와 떨어져 어지러워진 세상살이를 보지 않고 사는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로교수의 내외는 그들을 서재로 안내했다. 서재의 두 벽체는 책들로 꽉 차있었다. 창가옆에 세워진 도꼬노마(장식벽장)에는 석가모니의 동불상과 옛 도자기가 몇개 놓여있었다.
력사유적이라는 호기심에 조성호는 도자기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교수선생님, 이 도자기의 나이가 퍽 오래된것 같은데 혹시? …》
로교수는 조용히 웃음을 담고 다가왔다.
《역시 임자는 볼줄 아는구만. 이건 다름아닌 5세기경 조선에서 넘어온 이주민들이 생산한것일세. 우리 일본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제사를 지내는 례식용이라고 하여 이와이베이와이베야끼라고도 부르고 조선에서 넘어온것이라고 하여 죠센야끼(조선도기)라고도 부르지. 가와찌지방과 북규슈지방의 무덤들에서 많이 발굴된 이 질그릇을 우리 일본의 력사학자들은 스에끼라고 부른다네. 지금은 너무 오래된것이지만 이 스에끼는 재색 또는 푸른 재색이 나며 굳고 이렇게 두드리면 쇠소리가 나는 도기로서 우리 일본에서 생산된 야요이질그릇인 하지끼와는 질적으로 구별되네. 스에끼는 처음에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도기전문기술자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져 우리 나라에 전습되였지.》
도자기를 제자리에 놓은 로교수는 옛 병풍이 세워진 벽면에 걸려있는 그림을 가리켰다. 오래된 그림이였는데 일본녀인의 초상이 그려져있었다.
《임자 저 그림을 보고 생각되는 점이 있으면 말해보라구.》
조성호는 한동안 녀인의 초상이 그려진 그림을 유심히 뜯어보았다.
《이건 일본의 에도시대 평민계층들속에서부터 시작되여 발전되여온 풍속화 우끼요에가 아닙니까.》
로교수는 그를 믿음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바로 맞혔네. 그래 임잔 우끼요에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있나?》
《솔직히 전 그에 대한 지식이 깊지 못합니다. 단지 알고있는것이라면 우끼요에라는것은 1682년에 나온 히시가와 모로노부의 그림책 <부세속회풍>에서부터 나온 말이라는것입니다. 다시말하여 거리와 마을의 다양한 현실세계를 반영하여 평민, 관리, 미인 등과 그 생활을 중심으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뜻으로 말입니다. 대체로 우끼요에는 17세기 후반기 히시가와 모로노부가 도꾜(에도)에서 발전된 출판업에 토대하여 소설삽화를 판화적인 수법으로 형상한 때부터 시작되였다는것입니다. 특징적인것은 처음에는 먹색으로 되여있다가 그후 단필로 선명하게 채색한 홍회, 먹에 금분까지 칠한 칠회가 나오고 붉은색과 푸른색을 위주로 조화시킨 채색목판화로 발전되였습니다. 그후 1765년 스스끼 하루노부 등에 의해 다색목판화기법이 개발됨으로써 그 발전이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이 우끼요에는 일본사람들이 좋아하고 근대서양화 특히는 인상파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는것입니다.》
로교수는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네는 우리 일본의 력사문화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있구만.》
그러면서 그는 부향녀를 바라보았다.
《부인님, 정말 부럽습니다. 이렇듯 훌륭한 력사학자가 있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때 로교수의 늙은 안해가 사기주전자와 고뿌들이 놓인 다반을 들고 들어왔다. 그는 부향녀에게 미안한듯 한 표정을 지으며 가볍게 인사했다.
《사실 차를 대접하려고 했는데 우리 령감님이 조선사람들은 꿀물을 더 좋아한다고 하기에…》
로교수는 안해를 불러앉혔다.
《내가 말한 고성길선생님의 부인이시오. 그 <나까이리력서>때문에 도꾜에서 예까지 힘든 걸음을 하셨단 말이요. 그런데 당신의 불찰로…》
불만과 질책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고뿌를 든 부향녀의 손은 한자리에서 굳어졌다.
늙은 안해는 자리에서 일어서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용서해주십시오. 제가 그만…》
부향녀의 입가에서는 실망어린 목소리가 새여나갔다.
《아니, 그럼…》
조성호도 어리둥절해서 늙은 내외의 얼굴을 살폈다.
로교수는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그리고는 꿀물이 담긴 고뿌를 손에서 빙빙 돌렸다.
분명 무슨 일이 있은것 같았다.
《원장선생님이 절 어떻게 생각하시겠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이야 터놓아야지요. 부인님이 이곳으로 떠나시겠다고 전화를 한 그날 저녁 제 집에서 그 <나까이리력서>가 분실되는 일이…》
부향녀의 온몸은 힘이 없이 나른해졌다. 손에 들었던 고뿌를 맥없이 책상우에 내려놓았다.
《교수선생님, 그게 사실입니까?》
로교수는 거멓게 죽은 얼굴을 내리접었다.
《허, 내 인생에 이런 실책을 범할줄이야.》
늙은 안해가 죄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모든 일은 저때문에 빚어진 일입니다. …》
그날 로교수는 《나까이리력서》를 찾아놓고 몇십리 떨어진 주택구역으로 갔다. 그와 함께 교편을 잡고있던 력사학자의 병이 심하다는 련락을 받았던것이다.
이렇게 되여 집에는 그의 늙은 안해만이 홀로 있게 되였다. 오후 4시경 한 학자풍의 젊은이가 나타났다. 그는 자기는 미야기현 이시노마끼에서 온 력사연구사이며 로교수의 제자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그러면서 《제자》는 교수가 밤늦게야 도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기의 딱한 사정을 말했다. 론문발표가 박두했는데 교수선생에게서 필요한 도서를 빌릴수 없는가 하는것이였다.
늙은 안해는 그가 한시간후에 비행기를 타고 다시 이시노마끼에 가야 한다는것을 알고 서재의 문을 열어주었다.
날이 어두워 집에 도착한 로교수는 사연을 듣고 서재에 들어갔다. 정말 《제자》라는 사람이 요구한 책 두권이 있던 자리가 비여있었다. 책상에 다가가 무심결에 서랍을 열던 그의 눈은 퀭해졌다. 《나까이 리력서》가 없어졌던것이다. 안사람에게 물어봐도 서재에 들어온 사람이라고는 이시노마끼에서 온 《제자》뿐이였다는것이다. 까마귀가 날자 배 떨어진 격이 아닐수 없었다. 그가 남기고 갔다는 명함장에 씌여진 전화번호를 눌렀지만 그런 번호는 없었다.
로교수는 락심천만한 기색을 지었다.
《지금껏 숱한 제자들이 찾아와 책을 빌려가군 했지만 그렇게 남의 물건을 도적질해가는 사람은 없었지요.》
조성호는 조급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교수선생님, 혹시 그자가 <나까이리력서>를 노리고 나타난게 아닐가요?》
로교수는 머리를 주억거렸다.
《저도 그렇게 생각됩니다. 그런데 무엇때문에 꼭 그 자료가 필요했겠는가 하는거지요. 그것도 원장선생님이 도착하기 전에 말입니다.》
그는 부향녀를 바라보았다.
《원장선생님, 그간 선생님의 주위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것은 없습니까?》
부향녀는 속에 짚이는바가 있었지만 선뜻 말하지 못했다.
조성호가 그를 대신하여 사연을 이야기해주었다. 비행장에서 만난 《보라매》라는 탐방기자의 언행, TV에서 한 무로우 고이찌로의 발언, 고명철의 회사에 대한 자금동결…
로교수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혹시 저한테 <나까이리력서>를 얻으려고 온다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한적은 없었습니까?》
부향녀는 조성호를 바라보았다.
조성호는 아리숭한 기색으로 머리를 가로저었다.
《전혀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참 이상하군요.》
조성호가 무슨 생각이 난듯 말했다.
《혹시 교수선생님에게 한 우리의 전화를 누가 도청한게 아닐가요?》
로교수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충분히 그럴수 있습니다. 부인님이 지금 하고있는 의로운 일을 막아나선 그자들이 무슨짓인들 못하겠습니까. 문제는 누가 이런 비렬하고 유치한 일을 벌리는가 하는겁니다. 내가 정말 부인님께 큰 죄를 졌는가 봅니다.》
부향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굳어진 로교수를 위안했다.
《너무 그 일로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선생님은 제 남편의 론문때도 많은 도움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로교수는 온화한 목소리로 겸양스럽게 말했다.
《아닙니다. 부인님이나 성길선생님은 제 눈을 가지고도 흑백을 가려보지 못하는 우리 일본인들의 눈을 틔워주었습니다. 제 나라 력사를 모르고서야 어찌 한 민족의 성원이라 하겠습니까.》
그는 안색을 흐리며 실망이 어린 표정을 지었다.
《지금 우리 일본의 일부 력사학자들의 그릇된 사고때문에 신성한 인류의 력사가 외곡되고있지요. 또 력사의 진실이 공개되는것이 두려워 이렇듯 비렬한 행위들을 하고있지요. 정말이지 오래동안 교단에서 력사를 가르쳐온 자신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부향녀는 상냥하고 숙부드러운 그를 진심으로 공경했다.
《교수선생님도 력사의 진실을 지켜 보수적인 학자들과 맞서고있지 않습니까.》
늙은이는 더 옹색한 기색을 지었다.
《허, 그렇긴 하지만 그건 한갖 늙은 사슴의 헛뿔질에 불과하지요.》
그는 탄식조로 말을 이었다.
《장차 이 나라의 미래가 걱정됩니다.》
조성호가 그를 위안했다.
《선생님, 너무 걱정마십시오. 아무리 불의가 머리를 쳐든다고 해도 결코 정의를 이길수야 없지 않습니까?》
《모든게 다 그렇게 세상리치를 따른다면 얼마나 좋겠나.》
부향녀가 실망에 젖어든 로교수를 위안했다.
《좀벌레가 아무리 천을 쏠아도 사람에게서 옷을 다 벗겨버릴수야 없지 않습니까. 인류의 진실한 량심이 있는 한 력사는 영원히 자기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할겁니다.》
늙은이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하긴 의사인 원장선생님도 이렇게 제 나라의 력사를 지키기 위한 길에 나섰는데 어련하겠습니까. 그리구 그 자료가 없어졌다고 너무 실망하진 마십시오. 아무리 두터운 구름이래도 빛을 가리우기에는 너무도 보잘것없는 존재이지요.》
그는 책상서랍에서 두툼한 자료철들을 꺼내놓았다.
《부인님, 이걸 받아두십시오. 여기에는 우리 조상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독도를 <다께시마>가 아니라 철저히 조선의 령토로 여겼다는것을 실증하는 자료들이 적혀있습니다.》
조성호는 너무 좋아 입을 다물지 못하며 자료들에 눈길을 주었다. 갈증을 만난 사람이 샘줄기를 발견했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교수선생님, 그럼 이게 다…》
《그렇습니다. 솔직히 전 이번에 부인님께 이 자료들과 함께 <나까이리력서>도 함께 드리고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다나니…》
《교수선생님, 이렇게 진심으로 저희들을 도와주시니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로교수는 두손을 황황히 내흔들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솔직히 이 자료들은 우리 일본의 력사계에서는 큰 환영을 받지 못하고있답니다. 우익이 판을 치고 사이비력사가들이 머리를 쳐들고있는 곳이니 그야 응당한것이지요. 난 부인님이 년로하신 몸으로 험한 사지판에 나선것을 보고 진심으로 감동했습니다.》
《교수선생님, 제가 이제 길을 걸으면 얼마나 걷겠습니까. 난 단지 이 젊은 세대들이 력사의 진실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지켜가기를 바랄뿐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선생님을 찾아온거구요.》
로교수는 부러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그게 얼마나 좋습니까. 락엽은 비록 땅에 떨어져 묻혀도 뿌리와 새싹을 위해 썩지요. 하지만 우리 일본엔 그렇게 키울 미래가 없는것이 안타깝습니다. 력사라는것은 한두세대에 이어지는것이 아니라 인류의 존재와 함께 영원한게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의 력사는 지금 그 대가 끊어지고있습니다.》
로교수는 이어 콤퓨터의 스위치를 넣었다. 화면이 펼쳐지자 그는 마우스로 어느 한 자료기지를 찾아들어가 열었다. 여러장의 지도들이 나타났다.
조성호는 호기심어린 눈길로 들여다보았다.
《교수선생님, 이건 무슨 지도들입니까?》
로교수는 마우스의 유표로 지도들을 일일이 짚어가며 설명했다.
《여기에 들어있는것들은 대체로 우리 선대력사학자들이 독도가 조선의 령해안에 있는 섬임을 증명하여 그린 지도들이네. 특히 여기 <조선8도지도>와 <삼국통람여지로정전도>는 18세기 우리 나라의 이름난 지리 및 지도학자인 하야시 시헤이가 1785년에 집필한 <삼국통람도설>이라는 도서에 첨부하였던 5개의 지도들중의 일부지. … 자, 자세히 보라구.》
조성호는 지도를 확대하여 로교수가 가리키는 곳을 들여다보았다. 지도에는 조선동해에 큰 섬 하나를 그리고 그속에 울릉도, 천산국 등 여러 표기들을 하였다. 여기서 천산국이란 우산 즉 독도를 가리킨것이였다.
당시 에도(도꾜)출신으로 학식이 높고 정세에 민감하며 변방과 국내의 지리에 밝은 하야시 시헤이가 제작한 지도들은 비교적 객관성과 공정성, 과학성을 띠고있는것으로 력사계에 널리 알려져있었다. 이러한 그가 독도를 울릉도와 따로 가르지 않고 한개 섬속에 표시하였지만 독도를 천산으로 표기한것은 이 섬을 조선의 섬으로 여긴 당시 일본인들의 보편화된 견해를 알수 있게 하였다.
《삼국통람여지로정전도》도 마찬가지였다. 일명 《삼국통람도》라고도 하는 이 지도에는 조선과 류꾸(오끼나와), 하이국(북해도이북의 아이누족이 사는 지역)을 말하고 일본과 이 세 나라들과의 경계를 밝힌 지도로서 나라별로 색갈을 달리하고있었다. 지도에는 조선동해의 가운데 크고작은 두개의 섬이 가까이 그려져있었는데 조선반도와 같은 색갈로 되여있었다. 두 섬은 이름이 표기되지 않았지만 옛 조선 및 일본지도들에서 볼수 있는 울릉도와 독도의 형태와 위치가 비슷하며 특히 그 좌측에 《조선의 소유》라고 씌여져있고 아래에 《여기서(울릉도, 독도) 고려를 보는것은 운슈(일본본토의 한 지역)에서 온슈(오끼섬)를 보는것과 같이 가깝다.》라고 기록되여있어 독도가 울릉도와 함께 조선의 섬이였다는것을 명백히 하였다.
로교수는 다음 지도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이 지도는 <팔도총도>인데 우리 일본의 전국시대 대봉건령주였던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1592년 조선을 병탄할 목적으로 내린 명령에 의해 군부의 우두머리들이 제작한것을 1802년에 다시 옮겨 그린것입니다. 지도는 조선의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를 거의 그대로 모방한것이지요. 여기에도 조선의 강원도 동해안에 울릉도를 그리고 그옆에 우산도를 같은 크기로 표기하였답니다.》
조성호는 탄성을 올리며 로교수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교수선생님, 이건 정말 귀중한 사료들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저희들의 론문에 큰 도움이 될수 있습니다.》
《물론 그럴수 있지요. 그렇지만 내 생각에는 최근에 새롭게 발견된 력사자료들을 더 첨부하는것이 좋을것 같군요. 부인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부향녀는 자기의 의향을 넌지시 묻는 로교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저도 얼마전에 미국의 서부지역의 한 대학에서 그동안 수집하여 보관하고있던 180여개의 옛 지도들을 공개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로교수는 머리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예, 제가 말하는게 바로 그겁니다. 저도 미국에 가서 그 지도들을 봤습니다. 그것들은 1626년부터 19세기까지 제작된것들인데 무려 132개의 지도에서 조선과 일본사이의 바다를 <조선해>로 표기하고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그 지도들을 복사하였다면 오늘 부인님께 드리는건데…》
그는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너무 섭섭하게 생각지 마십시오. 제가 알기에는 몇달후에 도이췰란드의 베를린에서 세계력사학자들의 모임이 있다고 합니다. 아마 거기에 그 지도들이 나타날수 있을겁니다.》
부향녀의 얼굴색은 금시 밝아졌다.
《그럼 선생님도 참가하십니까?》
로교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미안하지만 저는 거절하고말았습니다. 제 나라의 력사도 바로잡지 못하는 내가 어떻게 그런 자리에 참석하겠습니까. 그리구 이젠 몸도 예전같지 않아서… 하지만 걱정하실것은 없습니다. 부인님도 잘 아시는 한스 베르메트선생이 그곳에 있으니 그에게 부탁하면 얼마든지 그 자료들을 얻을수 있을겁니다.》
《정말 그렇군요!》
조성호는 벌써 흥분해서 한발 나섰다.
《원장선생님, 제가 베를린에 가서 한스선생님을 만나겠습니다.》
부향녀는 웃음을 머금고 그를 가볍게 나무랬다.
《원, 콩밭에 서슬을 치겠구만.》
조성호는 자기의 행동에 얼굴을 붉히며 오른손으로 뒤덜미를 쓸었다.
로교수가 그의 행동을 지지해주었다.
《좋은 일이야 당기면 당길수록 더 좋은게 아닙니까. 력사의 훌륭한 한페지가 몇천마디의 언쟁보다 더 귀중한게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그 귀중한것을 위해 자신을 바친다는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지요.》
부향녀는 로교수의 두손을 꼭 잡았다. 그의 눈가에는 그에 대한 고마움이 흐르고있었다.
《교수선생님은 저에게 오늘 큰 힘을 주었습니다.》
《아닙니다. 저의 도움이 동강난것이 전 아직도 가슴아픕니다. 그러나 념려마십시오. 제 힘자라는껏 그 <나까이리력서>를 다시 구해보겠습니다. 전 단지 앞으로 부인님의 일이 걱정될뿐입니다. 원래 우리 일본인들속에는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작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는 동안을 두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난, <나까이리력서>를 훔쳐간자들이 앞으로도 계속 부인님을 괴롭힐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향녀는 얼굴에 웃음을 지어보였다.
《너무 근심마십시오. 저도 각오없이 이 길에 나선것은 아닙니다.》
도꾜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앉은 부향녀의 마음속에서는 《나까이 리력서》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과연 누가 그 자료를 훔쳤을가? 구리시마 다께시가? … 혹시 《보라매》가 아닐가? … 그자들은 분명 우리의 일거일동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을것이다.
부향녀는 저도 모르게 가느다란 실숨을 내그었다. 미국에서 공개했다는 력사지도는 한스 베르메트를 통해서 얻는다고 해도 《나까이 리력서》는 어디에서 구하겠는가 하는 걱정이였다. 일본보수당국이 겨드랑이에 끼고 내놓지 않는 그 자료를 얻는다는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조성호 역시 제나름의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번 일은 앞으로 부딪치게 될 새로운 모략을 암시하는것 같았다.
《선생님, 전 그 력사자료를 훔친자들이 앞으로 또 무슨짓을 하겠는지 우려됩니다.》
부향녀는 말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피할수 없는 길이였다. 정의와 부정의, 진리와 거짓의 교차점은 언제나 불꽃튀는 격렬을 일으키게 되는것이다. 그렇다고 중도반단할수 없는 이 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