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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꾜만에 위치한 하네다비행장의 하늘은 저기압으로 무거웠다. 남태평양에서 밀려드는 재빛구름떼가 소리없이 북쪽방향으로 밀려가고있었다.

비행장은 봄물로 젖어가는 벌판우에 외롭게 자리잡고있었다. 대기를 헤가르며 날아오르고 날아내리는 려객기들의 소음이 이곳의 숨결을 대신한다.

베이징을 출발하여 도꾜에 도착한 려객기가 7호구에 멎어서자 승객들은 수평승강기를 타고 입국장으로 향했다.

맨 나중에 조선치마저고리를 입은 한 늙은 녀성이 비행기의 문을 나섰다. 그는 조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부향녀였다.

《선생님, 인제야 숨구멍이 열리는것 같습니다.》

몇시간동안 비좁은 공간에서 당한 시달림을 원망하는 조성호의 목소리였다. 30대로 보이는 그는 등이 곧고 키가 크며 머리카락이 곱슬곱슬했다. 잘 생긴 형은 아니지만 영채도는 눈동자로 한순간에 주위세계를 포착할줄 아는 젊은이였다.

부향녀는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눈썰미가 있는 그와 다니는것을 좋아했다.

그들은 다른 승객들과 마찬가지로 입국장에서 려권과 사증을 검열받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승강기에 몸을 실었다.

1층에 내려서기 바쁘게 조성호는 짐을 찾아 세관검사를 받고 돌아섰다. 그의 눈길은 벌써 마중나온 사람들에게 가있었다. 숱한 손님들속에서 누구를 보았는지 오른손을 흔들어보이기까지 했다.

《선생님, 저기 부위원장동지랑 나왔습니다.》

비록 도시와 떨어져있는 비행장이지만 각이한 인종과 국적을 가진 사람들로 붐비였다. 봄맞이와 함께 관광지를 찾아 오고가는 사람들로 흥성거렸다. 그들을 바래워주고 마중하는 사람들의 감정표현도 이채로왔다.

한손을 입술에 가져다대며 높이 쳐들어 키스를 보내는 백인사나이, 마치 디스코무용수이기라도 한듯 큰 엉뎅이를 흔들며 선자리춤으로 사람들을 반기는 흑인녀성, 메히꼬산 파나마모를 쓴 한무리의 남자들이 기타를 치며 인디안들의 옛 노래를 부르는 률동적인 모습도 보인다. 그와는 달리 금시 떨어질것만 같은 눈물로 출국장으로 떠나는 사나이를 바래는 동양의 녀인, 입국한 아버지를 부여잡고 통곡하는 어린 소녀, 대형TV전광판을 바라보며 공포영화에 유혹되여있는 젊은이들, 누구인가와 열심히 손전화를 하는 사람들, 두눈을 희번득거리며 손님들의 얼굴을 살피는 사나이들…

역방송은 비행기의 출발과 도착소식을 쉬임없이 알려주고있다. 그 소리에 자리에서 우줄우줄 일어나 짐을 찾아들고 출국장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수평승강기에서 내려선 부향녀는 마중나온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아들과 며느리, 며느리의 아버지이자 도꾜도 총련지부 부위원장인 김성진, 제일먼저 짐을 받아주는 하루에, 조성호와 함께 조선대학교에서 연구사업을 하는 지향숙이 나왔다. 일본국회 중의원 의원인 마에다 사부로의 얼굴도 보였다.

《성옥인 왜 데리고 나오지 않았느냐?》

손녀의 얼굴이 보이지 않자 부향녀는 서운한 기색으로 며느리에게 물었다.

《어머니, 성옥이는 대학입학시험때문에 못 나왔어요.》

하루에가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참, 그애가 시험기간인걸 몰랐구나!》

부향녀는 마에다 사부로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바쁘실텐데 이렇게…》

마에다는 호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성길형님의 론문을 완성하여 모국에서 발표하신 부인님께 감사를 드리는거야 응당한 례의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부향녀는 안스러운 기색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연한 밤빛물이 오른 눈은 부리부리했다. 비록 이마에는 굵은 주름발들이 얼기설기 자리를 잡았으나 몸차림과 거동이 단정하고 무게가 있는 늙은이였다. 그는 부향녀와 동년배이지만 그의 집일에 각근하였다.

《어머니, 저 사람들은? …》

일행과 함께 역사밖으로 걸음을 옮기던 부향녀는 며느리인 김경아의 말에 눈길을 쳐들었다.

뜻밖에도 촬영기와 마이크를 든 사람들이 마주오고있었다. 차림새도 형형색색이였다. 텁석부리도 있고 머리태를 허리까지 길게 드리운 녀자도 있다. 이 세상 모든것에 큰 호기심을 가지는 사람들이다.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조성호와 지향숙이도 그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기자들이? …》

조성호의 말에 지향숙은 얼른 제 생각을 덧붙였다.

《혹시 우리 선생님을 취재하려는게 아닐가요?》

부향녀의 가슴은 이상하게도 두근거렸다. 그들의 시선이 자기에게 집중된듯 한 느낌은 저도 모르게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나이 일흔이 넘도록 아직 기자들앞에 나선 일이 없는 그였다. 또 세상앞에 내놓을만 한 이야기거리도 없었다. 지금껏 신문과 TV에서 흥미있는 기사들이나 보면서 인간생활의 리면을 벗겨내는 그들의 재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군 하던 부향녀였다.

일본땅에서는 한다하는 정객들도 저 사람들의 말재간에 걸려 속옷까지 벗기울 정도로 바보가 되는 경우가 수다하다. 아무리 묵직한 몸값이라도 불륜관계나 잘못 던진 언사가 저들의 손끝에 오르기 시작하면 정계에서 추방당하기가 일쑤였다. 그렇게 놓고보면 그들은 보이지 않는 힘을 가진 존재들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신문과 방송, TV라는 위력한 무기로 정객들이나 재벌들의 추문과 비리를 신랄하게 다루어댈 때면 정치국면이 갈팡질팡하고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진재가 많은 섬나라에 지진보다 더 무서운 흔들림을 일으킬수 있는 존재들이였다.

잘 다듬어진 지팽이에 의지하여 천천히 걸어가던 마에다는 벌써부터 안면근육을 찡그렸다.

《에익, 난 저 무리들만 보면 숨구멍을 열어놓고도 질식되는것만 같은게…》

불만스럽다기보다 증오에 가까운 소리였다.

지향숙의 예언대로 기자들의 상대는 바로 부향녀였다.

하루에와 고명철을 비롯해서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들의 행동만 주시했다.

기자들이란 취재대상에 대한 감각이 예민하고 상대방에 대해 오판하는 경우가 극히 드문 사람들이였다.

《부향녀선생님, 조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온데 대해 환영합니다.》

부향녀는 어쩔수없이 그들과 마주서게 되였다. 꼭 처음으로 구답시험장에 나선 녀학생의 기분이였다. 긴장감에 뒤목이 뻣뻣해지고 갈증으로 입안이 말라들었다. 게다가 가슴은 왜 이리도 진정되지 않는지…

이 사람들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또 어떤 대답을 요구할가?

사전준비도 없는 자신을 가다듬느라 신경을 곱절이나 써야 했다.

《<아사히신붕> 기자입니다. 원장선생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있습니다. 전 선생님의 평양방문소감에 대해 알고싶습니다.》

머리를 시원하게 깎은 젊은 기자는 체격에 어울리지 않는 자그마한 마이크를 내댔다.

그의 질문은 예상외로 부향녀의 마음에 안정감을 주었다. 일본땅을 떠나 40여일, 진정 꿈같이 흘러보낸 날들이였다. 조국의 고마움에 가슴이 뻐근하던 감정을 어찌 한두마디로 대신할수 있단 말인가. 말문이 열리면 장밤이라도 늘어놓고싶은 이야기들이 온몸을 흥분시켰다.

그러나 안타까운것은 직업이 이루어놓은 성격은 어쩔수 없는것이다. 수술칼이란 한번만 잘못 놀리면 만회할수 없는 후과를 초래한다. 직업적의사인 그는 줌안에 드는 자그마한 메스를 쥘 때면 열번 생각하고 한번 움직이는데 습관되였다. 짧게 그리고 명료하게.

그의 사색은 수술장에서처럼 빠르면서도 긴장하게, 목소리는 수술도구를 쥔 손처럼 자신감에 넘쳐 여유작작하게 울렸다.

《감사합니다. 저의 심정을 말씀드린다면 평양방문은 꼭 친정집에 다녀온 기분입니다. … 수십년동안 오매에도 그립던 조국땅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흥분을 어찌 한두마디로 말할수 있겠습니까. … 수천만이 넘는 인구가 사는 이 도꾜의 평범한 녀성이고 한미한 늙은이에 불과한 저에게 이렇듯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는 기자선생 여러분들에게 다시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탄속에 박수소리가 솟구쳐올랐다.

부향녀의 생활적이면서도 진지한 대답에 기자들은 한층 흥미를 가지고 접근했다.

《NHK TV방송 기자 하나꼬입니다.》

남자처럼 머리를 올려깎아서 체육선수같은 인상을 주는 녀기자가 자못 상냥한 어조로 자기소개를 했다.

부향녀는 입가에 미소를 띠운채 고개를 약간 끄덕여보였다.

《TV연단에 자주 나오군 했지요? 녀성문제에 관심을 돌려주셔서 인상이 깊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 부향녀선생님이 곡절많은 한생을 살아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 청춘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은 무엇인지요?》

역시 이들은 기자라는 직분을 능란하게 활용할줄 아는 사람들이였다. 친절하고 부드러운 질문으로 상대방의 기분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주눅이 들게 하는 묘리를 알고있었다. 이것은 순전히 같은 녀성이라는 호기심에서부터 오는것이 아니였다. 또 그렇다고 그 어떤 친절이나 도의도 아니다. 력사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이라도 가지고있을 이 녀기자가 나한테서 행복이라는 문구를 찾으려고 하다니…

생글생글 맑은 웃음을 담은 녀기자의 표정은 대답을 독촉하고있었다.

저 물음에 어떤 대답을 주어야 하는가?

마음은 숙연해졌지만 부향녀의 눈동자에서는 미소가 가셔지지 않았다.

《기자선생, 수난당한 민족의 딸로 청춘시절을 보낸 나에게 그래 아름다운 추억이란 있을수 있을가요? 난 열여섯살 나던 해에 의학공부를 하려고 여기 일본으로 건너왔답니다. 외과의사가 되는것이 나의 희망이였으니까요. 그런데 그 의술을 배운것으로 하여 나는 태평양전쟁시기 강제징집당하여 일본군의 부상병들을 치료하는데 끌려다녔으며 1945년에는 오끼나와에서 수십만의 처참한 죽음도 목격하였습니다. 비록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기는 했지만 난 죽음보다 더 혹심한 고통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답니다. 일본의 야만적인 전쟁희생물이였던 사랑하는 애인의 다리를 이 손으로 자르지 않으면 안되였으니까요. 력사의 진실을 밝히려고 불구의 몸으로 애쓰던 남편의 억울한 죽음앞에 생을 포기할 결심까지 했던 저였습니다. 이러한 나에게 있어서 청춘시절의 추억이 있다면 비애와 절망, 분노와 억울함으로 흘러간 짓밟힌 삶, 행복한 생활을 빼앗긴 고통의 련속이였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의 생활에 나의 비참한 과거가 깃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자기의 젊음을 오늘과 래일이라는 련결점에 세워두고 청춘으로 평화를 가꾸고 력사를 사랑해주십시오. 력사는 오늘에 사는 우리모두의 거울입니다.》

부향녀의 곁에 선 마에다가 두손을 쳐들더니 박수를 쳤다.

조성호가 지향숙의 귀에 대고 속삭이자 처녀의 눈가에서 눈물이 핑 고여났다.

두손을 모아 가슴을 누른 김경아가 남편인 고명철에게 후더운 미소를 보내자 하루에가 속삭였다.

《우리 어머닌 눈물겨운 진실을 말씀하고계셔…》

김성진은 조수처럼 밀려들던 불안이 서서히 가셔지는듯 한감을 느꼈다. 오히려 부향녀에 대한 믿음이 그 자리를 메우고있었다. 한치도 엇날줄 모르는 침착성, 말보다 눈으로 이야기를 많이 하는 녀성이다. 비록 아니하면 되돌려세울수 없는 옹고집을 가졌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사랑이라는 샘이 쉼없이 솟구치기에 사람들은 그를 어머니, 선생님이라고 다정히 찾아주는것이다.

《마이니찌신붕》, 《니홍게이자이신붕》, 도꾜방송 기자들이 련이어 질문을 했다. 어떻게 되여 의사인 녀성이 남편의 력사론문을 완성할 결심을 하였는가, 과거 일본이 체결한 《을사5조약》이 날조라고 오늘에 와서 주장하는 리유는 무엇인가, 비록 인류력사에는 잘못 취급된 구간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과거이기에 다시 정립할 필요를 느끼지 않기도 하는것이다, 우리 일본의 극우보수세력에 경종을 울리자는것이 목적인가? …

부향녀는 자기가 직업적인 력사학자가 아니라는것을 인정하며 대답했다. 나는 력사학자로서 력사를 론하자고 남편의 론문을 완성한것은 아니다, 어머니로서 자식들을 잘 키워야 하겠기에 남편의 뜻을 받들었다, 자기 민족의 과거를 모르는 사람은 오늘의 세계를 옳게 인식할수 없으며 래일의 자신도 책임질수 없지 않는가, 력사가 존재하는 리유가 무엇인가, 어느 시기에 어떤 일들이 있었다는 기록만이 결코 력사로 되는것은 아니다, 사람은 력사속에서 산다고 말한다, 그 뜻은 어데 있는가, 력사를 거울로 삼고 반성도 하고 용기도 얻으며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교훈이라는 단어의 참뜻을 알아야 한다, 교훈이 경험으로 될 때에만 새로운 인식의 론리가 탄생할수 있는것이 아닌가, 페니실린의 발견과 의의를 아는 사람만이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할수 있는것이다, 배고픔을 알아야 씨를 뿌리고 가꾸게 되는것처럼 력사란 과거만이 아니라 오늘이며 래일이라는 인식을 바로가질 때에만 죄악의 전철을 밟지 않을것이다, 다른 민족을 지배하는것은 허장성세이고 결국에는 자기의 종말을 가져오게 된다는 리치를 깨달아야 한다, 력사는 이것을 가르친다, 그것은 고대로마가 남긴 진실이다.

《나는 여러분들이 나를 관심하여주는데 대하여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며 이 자리를 빌어 한마디 하자고 합니다. 오늘 일본은 이전 서도이췰란드 수상이였던 브란트의 반성의지를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는 멀리 앞으로 전진하였습니다. 일본은 우물안의 개구리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파렴치와 후안무치는 구일본의 얼굴입니다. 력사란 위조화페가 될수 없다는데 대한 옳은 리해를 가지는것이 필요합니다. 나는 그 무슨 경종을 울리자는것이 아닙니다. 일본은 어제날의 일본이 아니라 오늘의 일본이 되여 아시아의 이웃들과 화목한 번영을 이룩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면 아시아의 수많은 나라와 민족을 고통속에 몰아넣었던 죄악의 력사를 외곡할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반성하며 응분의 배상을 하는것으로 성의를 보여야 할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고명철은 어머니의 모습을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일찌기 아버지를 잃은 그에게 어머니는 그 자리를 대신해주었다. 다심한 사랑이 아니라 엄격한 교육인것으로 하여 어머니는 집에서도 만나는 선생이나 같았다. 누나인 하루에한테 기울이는 정의 절반도 주지 않는 어머니여서 마음속엔 늘 불만이 그득할 때도 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수술칼을 제일 두려워했다. 어머니의 욕은 그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사정이 없었다. 《숙제는 다하고 자야 한다.》, 《오늘은 나와 병원청소를 하자.》 등의 엄한 요구는 짤막했지만 어기면 안되는 생활이였다. 《명철아, 너한테는 자신에 대한 신심과 이악성이 너무도 없구나.》하며 한숨을 짓던 어머니였다. 그것이 남편의 력사론문을 아들과 함께 완성할수 없다는것을 시름으로 안은 어머니의 고뇌였음을 다는 모르고 살았다.

어머니는 얼마나 훌륭한가. 어머니가 력사와 정치도 수술할줄 안다는것을 나는 처음으로 느끼고있다. 얼마나 당당한가.

조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느끼는 고명철의 심중은 놀라웠다.

《저는 몸을 담을데가 없는 불행한 방랑기자랍니다.》

자기의 신분을 자랑이나 하는듯 한 소리에 고명철은 눈길을 돌렸다.

기자들속에서 한 녀기자가 조선말을 류창하게 번지며 한발 나섰다. 량어깨로 물결처럼 흘러내린 머리카락의 색갈은 뭐라고 딱히 짚기 어려웠다. 종려나무처럼 검은밤색인데 한손으로 뒤번질 때마다 바다처럼 일렁인다. 옷차림은 빠리의 양복점들에 세워놓은 마네킨같은 차림새였다. 짙은 색안경이 얼굴 절반을 가리웠다. 경망한 코마루는 당실 들리웠는데 조소를 머금은 작은 입술과 미묘한 조화를 이루며 한층 거만을 돋구어준다. 작을사한 귀에는 광채도는 청옥으로 만든 별에 커다란 진주를 쪼아박은 귀걸이가 반짝이며 흔들거렸다. 주옥목걸이가 깊고 넓게 드러내놓은 가슴우에 드리워있으며 그끝에는 큼직한 청옥이 매달려있었다. 허벅다리까지 드러나게 깡충한 치마와 상체에 꼭 들어붙은 검은색옷차림은 꼭 녀자마피아를 련상시켰다.

저 손에 권총이나 비수를 쥐여주면 영낙없는 공포영화의 주인공이 틀림없겠는데…

고명철은 이렇게 생각하며 어머니에게 초조한 눈길을 돌렸다.

부향녀는 조선치마저고리의 고름을 쥔채 의아해진 시선으로 녀기자를 바라보았다.

저렇게 조선말을 류창하게 하는 외국인도 있는가? 혹시 조선사람?! …

반가움보다 두려운 생각이 앞섰다. 차림새는 어느 나라 사람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해괴망측한 몰골에 불쾌감만 살아났다.

정말 조선사람이 맞긴 맞는가, 아니면 어디서 배운 능란한 조선말로 조선사람의 흉내를 내는걸가?

오만한 자세로 앞에 서있는 상대가 녀자인것으로 하여 더욱 혐오스러웠다.

그 녀자의 목소리 또한 독특하면서도 차디찬 랭기가 배여있었다.

《원장선생님의 고향은 서울이지요?》

그의 경망스러운 언행이 부향녀의 화를 은근히 돋구었다.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요?》

녀기자는 두눈으로 부향녀를 빤히 바라보며 앞가슴을 쭉 내밀었다.

《불쾌하게 여기지 말아주십시오. 오늘의 세계에서는 각자가 민족도, 나라도 선택할수 있지요. 나는 유럽인에 가까운 아시아인이 되기를 희망하는 녀자랍니다. 민족론, 국가론자들은 모두가 전쟁을 일으켰거나 일으킬수 있는 위험한 인자를 가진 존재들이랍니다. 리해가 되십니까?》

상대에게 자기의 견해를 내리먹이려는듯 한 어조였다.

《그렇다면 당신은 하느님의 사도인가요?》

부향녀의 날카로운 질문에 녀기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량손을 펼쳐보였다.

자기를 하느님의 열두제자로 변장할 힘은 없었던 모양이다. 대신 처음보다 높이 쳐들어올린 턱을 내민채 한걸음 나섰다.

《난 하느님을 믿지 않는답니다.》

부향녀의 수술칼은 병적인 이 녀자의 상처부위를 정확히 찾으려고 하였다. 청진기가 필요없다. 암을 품었으니 스스로 알고 자기 병을 치료하게 해야 한다.

《자식은 부모를 골라서 태여나지는 못한다고 했어요. 헌데 당신은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도 얼마든지 바꿀수 있다 그 말인가요?》

부향녀의 목소리는 나직했으나 경멸감이 배여있었다.

녀기자는 속이 찔리운듯 두눈시울을 내리접었다. 피부로 감돌던 밝은 기색은 일순간 흐려졌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역시 선생님은…》

그는 촬영기의 초점을 부향녀에게로 돌렸다.

티 한점 없는 은발을 떠인 녀인, 그 백설폭포를 다듬어 소박하게 가꾼 머리치장,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이 서글픈 안개로 감도는 기름한 얼굴, 노여움이 흐르는 주름진 눈가… 육체는 늙어가고있었지만 눈동자에서는 정열의 빛이 조용히 불타고있었다. 가볍게 다문 입술과 선이 바른 코마루가 젊은 시절의 매력을 련상하게 해준다.

부향녀의 모습을 포착한 녀기자는 어째서인지 샤타를 누르지 못한채 카메라를 내리웠다. 그것은 그 누구도 가려보지 못한 한순간이였다.

그는 재치있게 자기의 감정을 바꾸었다.

《원장선생님은 행복하십니까?》

부향녀의 심중은 자기도 알수 없는 곳으로 흐르고있었다. 마주선 사람은 저으기 혐오스럽지만 행복이라는 말이 그의 마음을 조용히 흔들어준것이다.

엄마의 잔등에 업혀 솔곳이 잠든 아기의 얼굴에 어린 웃음, 그것이 행복일가? 행복이란 어떤것인지 어렴풋이 깨달을무렵부터 사람은 행복을 갈망하는것이리라. 행복을 바라지 않는자 누구이랴.

그지없이 따스하고 넓기만 하던 품, 그 품에서는 만시름도 봄눈처럼 녹아내렸다. 깊은 밤 굳잠이 든 아들 명철이와 딸 하루에의 모습을 볼 때 사랑하는 사람의 품은 달콤하고 신비한 노래로 충만되여있었다. 자기로서는 알수도 없는 먼길을 의족을 한 다리로 끝없이 걷고 또 걷는 남편이였다. 그렇게 외지에서 고생을 하고 돌아온 날이면 안해의 손을 잡고 말했다.

《당신이 나를 만나 고생이 많소. 집안일은 조금도 도와주지 못하니 말이요.》

《그런건 바라지 않으니 제발 자기 몸만 잘 돌보세요. 부탁이예요.》

《걱정마오. 당신이 언제나 지금처럼 기다려주기에 난 행복하오.》

《나도 행복해요. 기다릴수 있으니까요.》

《우리의 리상이 행복이지! …》

부향녀는 지금 생각하고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리상을 리해했던가. 그것을 알았을 때에는 영원히 체온을 느껴보지 못할 사람이 되였다. 자기의 심장만 홀랑 남겨두고 영영 내곁에서 떠나지 않았던가.

《나의 청춘시절은 불행했어요. 그 불행이 어떤것인지 당신은 말해주어도 알수 없을거예요. 그러나 나의 오늘은 행복해요. 래일도 행복할겁니다. 왜냐하면 나는 자신을 알았으며 무엇을 위해 여생을 살아야 하는가를 알고있기때문입니다. 인간이 자기를 확신할수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말을 들어보았어요?》

질문은 자기의것이라고 여겼던 녀기자가 의외의 반격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부향녀의 조용한 미소는 그지없이 깨끗했다. 그것은 어머니만이 지을수 있고 줄수 있는 사랑이 담긴 아름다운 감정이였다.

부향녀의 앞에 선 녀자는 자기의 감정을 시시각각 변화시킬수 있는 카멜레온과 같은 재간을 가지고있었다. 뻔뻔스러움이 일상교제의 추파처럼 되여버린 녀자의 모습은 재빨리 다른 형태로 변하는것이였다. 자못 정중한 자세로 사교춤을 추려고 나설 때처럼 앞으로 손을 내밀며 우아한 미소를 입가에 담고 자기의 동료들을 둘러보았다.

《역시 원장선생님에게는 자기의 철학이 있군요. 그러나 나에게도 철학은 있답니다. 자기에게 리로운것은 다 진리이다. 어떻습니까?》

부향녀는 씁쓰레한 웃음을 지었다.

《나에게 리로운것만이 리롭다! 그런 실용주의적설교는 자기 성당에 가서나 외우는게 좋을거예요.》

녀기자는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두손을 량옆으로 갈라보였다.

《나의 그 성당에는 우리가 산답니다. 우리는 오늘을 사는 존재들이며 자기의 생존을 위해서는 남을 격파해야 하는 랭정한 인간들입니다. 존재의 리유란 이렇듯 가혹하답니다. 하여 사람들은 력사를 론합니다. 어느 민족에게나 한은 있습니다. 과거 일본에게 침략당했던 민족이나 세계제패의 길에 나섰다가 패망한 도이췰란드나 이딸리아, 일본에게도 한은 맺혀있는게 아닙니까. 오늘날 그 한을 들춰 과거를 되새겨보려 한다면 력사를 추구하는 원인을 달리 해석해야 하지 않을가요?》

부향녀는 오만하기 이를데없는 녀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궤변을 듣고있었다.

결코 보도감이나 얻자고 나타난 인물이 아니다. 이와 같은 입부리를 앞에 내세우는 사람들은 분명 뒤에 있을것이다. 그들은 무엇을 노리는가. 력사의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을 시대를 역행하는 인간으로 만들려 하는것이다.

그는 시종 웃음을 담고있었지만 앞에 선 녀자를 시진하듯 똑바로 보고있었다.

진정한 언론의 대변자가 되려거든 마음을 바로가지고 나서라.

《기자선생, 몸이 불편할 땐 우리 병원에 오세요. 당신이 꾀병을 쓰며 여기저기 아프다고 할테지만 난 틀림없이 흉부속에서 심장을 찾아 수술칼을 댈거예요. 인류의 력사를 모독하는 심장은 버려야 합니다. 신성한 언론을 자기의 깨끗치 못한 구좌를 채우는데 람용하려 한다면 수치를 면치 못할겁니다. 알아두세요. 력사는 어느 민족의 한풀이나 하려고 씌여지는게 아닙니다. 력사는 전쟁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속에 사는 매 민족들의 평등과 자유, 번영과 발전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 또 존재할것입니다. 기자선생 여러분, 공정한 언론의 기치를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만납시다. 감사합니다.》

부향녀는 자기의 결심을 알려 기자회견을 끝내면서 걸음을 옮겼다.

검질기고 부리가 사나운 무리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가는것 같은 무력감을 느끼며 비칠거리자 김경아와 하루에가 그를 부축했다.

《어머니…》

《일없다. 허허… 너희들이 곁에 없었다면 난… 힘들었을게다. …》

고명철은 도저히 리해되지 않았다. 기자회견장에서 어머니는 시종 얼굴에서 미소를 지워버리지 않았다. 지어 경망스럽게 행동하는 탐방기자에게도… 수술칼처럼 랭정한 어머니에게서는 도저히 보지 못하던 모습이였다.

조성호가 달려가 승용차를 몰아왔다. 부축을 받으며 차에 오르려는 찰나였다.

《원장선생님, 안녕히 가십시오.》

부향녀는 고개를 돌렸다. 다른 기자들보다 몇배나 시달림을 준 녀자가 딴 사람처럼 서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지 않는가.

《아직 더 할 말이 있소?》

그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섞여있었다.

《걱정이 돼서 그럽니다. 여기는 일본땅이거든요. 일본사람들은 못하는 일이 없답니다. 선생님은 오늘 부드러운 언사로 일본의 극우보수세력에 강타를 안겼거든요. 그들이 가만있을가요? 이제 두고보세요!》

여직껏 못마땅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던 마에다 사부로가 참지 못하고 상아자루가 달린 지팽이를 굴러대며 고함을 지르고야 말았다.

《물러가라! 주둥이만 까먹은 년같으니, 너한테는 어미도 없냐? …》

된욕이였다. 하건만 녀기자는 끄떡없이 이죽거렸다.

《의원님, 년세도 많으신분이 너무 분별을 모르시는군요. 국회에서도 그런 본새를 보이신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군요.》

《음음, 너 언제 대서양을 건너왔느냐? 미국에는 먹이감이 모자라더냐? 언론의 매문행위에 치를 떠는 나다. 썩 사라져!》

기염을 뿜어대는 마에다를 그 녀자는 재미있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진정하십시오. 나로 말하면 자유로운 철새랍니다. 바라는건 돈이예요. 하지만 각하의 고결한 돈이야 어떻게 바라겠습니까. 혹시 저의 도움은 필요없으신지요?》

마에다는 너무 기가 막혀 온몸을 푸들푸들 떨기만 하였다.

하루에가 참지 못하고 한걸음 나섰다.

《너무 무례한것 같아요. 지성인의 체모를 잃지 말았으면 해요.》

하루에의 소심한 권고가 녀기자의 모양새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두손으로 색안경을 꽉 쥔채 바라보더니 금시 사나운 소리를 내질렀다.

《하루에! … 네가 감히 오늘까지 부향녀를 어머니라고 부른단 말이지! 너는 닥쳐올 불행의 화근일수 있다. 너야말로 조선사람의 집안에 기여든 일본의 뱀이다! …》

회오리바람처럼 모두에게 먼지를 들씌우고 사라져버린 랭혹한 말이였다. 누구도 그 말을 새겨듣지 못했지만 금시 얼어붙은듯 움직이지 않았다.

하루에가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자 부향녀는 한손을 내밀었다.

《하루에야…》

《어머니! …》

부향녀의 품에 안긴 하루에는 소리조차 내지 못하며 울었다.

《울지 말아, 내 딸아. 네가 울면 이 가슴이 무너진다. …》

고명철이 분을 삭이지 못하며 그에게 쏘아붙였다.

《여보시오. 당신도 조선사람이 분명한것 같은데 어디서 이런 무례한 언행을 배웠소?》

그 녀자는 랭소를 지었다. 안경속에 감춰진 그의 눈빛은 무섭게 번뜩이였다.

《조선사람! … 흥, 그럴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당신들이 제창하는 그 례의와 도덕이 과연 무엇을 가져다주었는가요? 자존심과 욕망을 가다들게 하는 그것이 과거 망국의 슬픔을 빚어내게 했고 한민족을 피눈물의 바다에 침몰시키지 않았는가요. 바로 당신의 어머니도 그 운명의 비극적주인공이 아니였는가 말이예요. 례의와 도덕이란 강자도 약자로 만들고 약자는 더한 약자로 만드는 백해무익한것이 아닐가요!》

모두가 아연감을 금치 못했다.

어쩌면 젊은 녀자가 저렇듯 저렬하고 유치한 의식에 물젖을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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訪問者 - -- - ISO ul - 2017-09-05
세상에는 책도 많지만 어머니 조국에서 발행한 소설 책이 좋아요!

잘 읽고 갑니다!
감 상 글 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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