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불안한 계절

 7

 

《어머니.》

며칠전에 다녀간 영등포 딸 상란이 문을 밀고 들어섰다. 어슬어슬한 때였다.

어린애를 둘러업고 손에는 기저귀가방을 들었다.

딸은 어머니에게 인사도 않고 다짜고짜 《상춘이 들어왔어요?》 하고 물었다.

말끝을 채는 그의 목소리에는 확실히 불안이 풍기였다. 가뜩이나 상춘때문에 마음을 쓰고있던 어머니는 금방 어떤 불길한 예감에 저절로 말이 조심스러워진다.

《무슨 일이 생겼니?》

《무슨 일이 뭐예요. 어머닌 그러시지 말래도 걜 왜 그렇게 제 맘대로 나다니게 내버려두세요?》

《내버려두잖음 어떡허니, 이젠 지각도 날만치 난 앨.》

《요새 바깥이 어떤줄 아세요? 집에도 당분간은 걔 동무들이 오지 않도록 하세요.》

상란은 상춘의 방쪽을 기웃해보았다.

《뭔지 조용히 얘길 못하고 왜 그렇게 부산을 떠니?》

《영등포선 학생들이 테로를 당하고 여러명 잡혀갔어요. S대학 걔네 대학 학생도 끼웠대요. 걔 간밤에 집에서 잤어요?》

《아침에 나갔다.》

《난 꼭 만나서 다짐을 받아둬야겠어요. 어머닐 봐서도 그런 일엔 아예 관곌 말라구.》

상란은 제가 온 사연을 그렇게 말하고나서야 부엌을 들여다보았다. 그가 들어설 때부터 궁금한 얼굴로 서있는 귀선의 손을 잡았다.

《오늘은 일찍 들어왔구려. 뭘 그렇게 맛있는걸 하우?》

귀선은 오래간만에 만나는 시누이의, 어찌 보면 자기 남편의 모습 그대로인 맑고 해사한 얼굴을 정답게 보며 눈이 감길듯 반가와했다.

《잘 왔수. 오늘은 어쩌다 일찍 들어오게 돼서 찬거릴 좀 사갖고 왔다우. 그래 도련님을 기다리는데 이렇게 늦지 뭐유.》

《내가 발이 기네. 난 안 기다렸수?》

《누이야 뭐 집에서 잘 먹을텐데.》

《말말아요. 공장에서 돈을 줘야지. 그런데다 걔 걱정때문에 먹는게 살로도 안 가우.》

상란은 어린애를 내려서 어머니에게 안겼다가 다시 받아 수채로 가서 오줌을 거두어주었다. 어머니는 다른 때 같으면 외손자의 시중은 일체 자신이 맡아하는것을 하나의 락으로 여겼지만 아들걱정에 미처 거기까지 마음이 돌아가지 않았다. 딸의 말을 듣고보니 아들에 대한 걱정은 자꾸 현실감으로 번지여갔다.

《학생들이 왜 잡혀갔다던?》

《뻔하죠. 협잡선걸 반대하는거예요. 반대 안할수도 없지만 그래도 참고 공부나 하라고 해야 돼요.》

협박장의 내용과 너무나 부합되는 딸의 말이였다. 어머니는 협박장이야기를 할가 하다가 지그시 참았다. 며느리에게는 놀라는게 가엾어 들려주지 않았지만 딸은 금방 오두방정을 떨것이 걱정스러웠다. 자기 속에서 어찌 그런 딸이 나왔는지.

아들은 오지 않는다. 혹시 밖에서 영등포의 학생들이 당했듯 그렇게 되지나 않았는지.

차복 할머니가 저녁마실을 왔다.

《이 댁이 오늘은 웬 일이슈. 따님도 오고 며느님도 일찌감치 들어오고, 맛있는 내만 나고, 통장이 마나님보고 구인조 조장을 하란다더니 뭐 잔칠 차리는거로군요.》

차복 할머니는 상란의 인사도 받으며 부엌도 기웃해보며 롱담비슷이 넘겨짚었다. 그 말에는 통장에 대한 야유가 더 강한지 모른다.

조장이란 그 말에 어머니는 흠칠했다.

《조장요?》

아니나다를가 며느리와 딸이 동시에 묻는 말들이였다. 딸은 그 해사한 얼굴에 놀라는 기색이 어리여 눈이 커지며 입까지 벌렸고 며느리는 작을사한 눈을 약간 찡그리며 의아한 빛을 얼굴에 감추지 못했다.

《왜 인제들 아우?》

차복 할머니는 두 젊은 녀자들의 각각 다른 표정들을 번갈아보며 물었다.

《전 지금 막 왔으니까요.》

상란은 믿어지지 않는 눈으로 어머니를 보았다. 정말예요 하고 묻는 눈이였다. 어머니는 딸의 눈을 피해 며느리를 보았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시선을 피해 눈을 깔고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상란은 그런저런 눈치를 몰랐다.

《우리 어머니한테 조장차례가 어떻게 올가?》

상란의 의심하는 말에 끌리여 차복 할머니도 그 수다스러운 말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집의 어머니인품이 어떠하시게. 사실 우리 이웃서야 집의 어머니말이면 그만이지. 인정있으시겠다, 경우 밝으시겠다, 어머니말이램 다들 팥으로 메줄 쑨대도 곧이들을 판이유. 그래서 그 여우같은 통장도 어머닐 조장을 시키는거요. 집이 고와서 시키는줄 아우? 가난한 집들이 관청에 고우면 얼마나 곱겠소.》

저녁을 먹고 단골로 오는 마실군녀자들이 하나둘 모였다.

좁은 방에 7~8명 녀인들이 둘러앉고 한가운데 뚱뚱한 차복 할머니가 앉아서 이야기가 오고가면 그것은 완전히 신문 3면이였다. 나오지 않는 이야기가 없었다. 마치 이 땅의 축도같기도 했다. 거기다가 비평까지 가하게 된다.

그날 밤은 경찰서 서장의 집 도난사건으로 한바탕 웃고나서 방세를 아니 낸다고 세방든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여 장도리로 정수리를 까서 죽인 어느 부자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였다.

군산부두에서는 《정부》의 쌀을 만여가마나 횡취해먹은 군인이 있고 헌병이 무임승차를 거절하고 떠나는 뻐스에 총을 란사하여 두명이 중상을 입었다는 이야기.

그러한 야화들에 그날 낮에 있은 가죽잠바족속들의 폭행도 화제에 올랐다.

《누가요?》

마실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반쯤 누워 아이에게 젖을 빨리고있던 상란이 몸을 일으키며 궁금해했다.

《집의 어머니가 오늘 큰일날번 했다니까.》

차복 할머니는 낮의 그 사건을 간추려 이야기하며 어머니가 넘어지던 시늉을 그 커다란 궁둥이로 방아까지 찧어가며 재연해보였다.

상란은 변이란듯 깜짝 놀라며 일어나 앉았다. 젖꼭지를 빼앗긴 어린애가 울었다.

《뭐라고 그런 일에 참견을 하세요? 아이참, 상춘이 걱정을 하고 왔더니 어머니가…》

어머니를 쳐다보며 포달인지 하소연인지 상란은 울가망이 되여갔다.

《언내(젖먹이) 젖이나 물려라.》

어머니는 따갑게 딸을 책망했다.

《글쎄, 그렇잖아요, 어머니?》

딸은 말대답을 한다.

방 웃목에서 어머니가 낮에 한쪽으로 밀어놓았던 종이봉지를 잠자코 앉아 붙이고있던 귀선이 중얼거렸다.

《말씀할건 해야지, 설마 그것들이 로인을 치겠수?》

《치다니, 침 우리가 가만있어?》

차복 할머니의 당치않다는 말이였다. 그 말들에 상란은 더 발끈했다.

《언닌 딱하우.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치면 쳤지 어디 대고 호소할데나 있는줄 아우? 언니가 지금이 어떤 살얼음판인줄 몰라 그래, 영등포엘 와봐요.》

《나도 허구한 날 당하고 보는 일이라우. 죽은체만 하고있어봐요, 점점 더하지 않나. 대드느니밖에 없어요. 호손 어디다 대고 호소유, 제힘밖에 없지.》

모멸과 박해속에서 살아오는 동안 얻은 생활의 신념이였다.

《아이유, 어째 이 집은 저렇게 딱딱하게들만 살아갈가. 가난한 살림에 조금 굽힐줄도 알아야 꺾어지질 않지.》

귀선은 다시 더 대척하지 않고 봉지붙이는 손만 재게 놀렸다.

시누이 오레미간의 그 짧은 언쟁이 지나가자 방안의 공기는 별안간 무거워졌다. 차복 할머니가 그것을 눙쳐보려들었다.

《모두 착한 자손들이지. 딸은 어머니 다칠가봐 걱정이구, 며느린 시어머니 하신 일이람 모두 잘돼보이구, 마나님이 자손복이 있어요. 이담에 편안히 살게 될거예요. 내 눈이 틀림없지.》

여러가지 이야기가 오고가는 동안 통금예비고동이 울었다. 마실군들도 집으로 돌아갔다.

상춘은 오지 않았다.

《얘가 정말 오지 않네, 사고야.》

상란은 친정을 두고 품어오는 걱정이 동생이 돌아오지 않는 그 한가지 일로만 봐도 까닭없는게 아니라는듯 새삼스레 화를 내며 귀선에게로 돌아앉았다.

《그래, 언닌 어머니가 다치기라도 험 어쩔라구 그러우?》

《어머니가 그런것 저런것 모르고 하실줄 아우? 누이나 나보다 더 생각도 걱정도 많고 깊으셔요.》

귀선은 마치도 시어머니의 말없는 속을 다 아는것 같았다.

《언니가 그렇게 말험 난 할 말이 없수. 마치 난 어머니속을 조금도 모르는것 같구려. 정말 나도 집엘 이렇게 뛰여오는 내 맘을 알수 없어.》

상란의 말끝은 흐려진다.

《어머니, 인젠 그런일, 저런 일 안 보시고 마음이나 편히 가지고 삽시다. … 오빠라두 오게 되는 날…》

귀선은 상란이가 어머니를 걱정해서 하는 말속에서조차 남편없이 고생하는 자기를 끔찍이도 생각해주는 정이 느껴져서 울고싶도록 고마왔다.

《그만해두우. 누이맘을 하루이틀이라고 모르겠수.》

그 말은 간단하나 그들사이에 지난날의 눈물없이는 회상할수 없는 일들로만 차있는 말이다.

후퇴때 귀선이 경찰에 갇혀있을 때는 상란이 얼마나 울었으며 귀선이가 산중에서 앓으며 입맛없어할 때 산골물얼음을 깨가며 물고기를 잡아다가 먹이느라고 손에 얼음까지 박혔고 그걸로 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귀선은 되도록 부드럽게 말했으나 상란은 고깝게만 들었다.

《그만둬요. 이 집에선 날 그만해도 벌써 남으로 치는가봐.》

상란의 목소리는 젖어왔다.

《그렇게 험 친정이 잘된대서 미신인줄 알면서도 뜨물을 버리잖고 가시물통에다 하나씩 찰찰 넘게 가득 받아놓고 사는 내 맘도 어머닌 모르고… 이녀석이 왜 이렇게 안 올가. 정말 잡혀갔나? 억지로라도 끌고 우리 집으로 가서 발목을 단단히 매놔야지. 제가 뭔데 공부는 않고 밤늦도록 나다닌담.》

《걔 말 니가 언제 들어봤나? 괜히 넌 방정을 떠는구나.》

어머니는 참다 못해서 엄격한 어조로 딸을 나무랬다.

《들어보나마나예요. 이 살얼음판같은 시국에 밖으로 나다니면서 무슨 짓을 하는지 알게 뭐야요.》

상란은 한참 푸념을 하다가 기저귀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찍어내고 기분전환을 하려는듯 귀선이 봉지붙이는데로 다가앉았다.

《인 주, 언닌 고단할텐데 내가 붙일게. 혹시 늦게 오더라도 문을 열어줘야지.》

《누이나 애허고 자요.》

《인 달래두.》

상란은 귀선을 밀어내고 전에 붙이던 솜씨가 있어서 잽싸게 종이봉지에 풀칠을 해나갔다. 어머니는 며느리와 딸이 함께 일하는것을 보고 말했다.

《너들은 상춘이 걱정을랑 말아라. 아침에 내가 그애 말을 들어봤다. 제 생각이 있어 하는 일이라면 그걸 어쩌겠니.》

《어머닌 그러니까 안돼요. 대관절 제 생각이란게 뭐래요?》

《옳은 일이라고 하더라.》

어머니는 그날 아침 상춘이한테서 그가 하는 일이란 리승만독재가 무너지고, 조국통일이 되고, 학원의 자유가 오고, 사람들이 마음편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 학생들이 공부도 하고 글도 쓰는것이라고 들었지만 그것을 모두 옳은 일이라고 한마디로 말했던것이다.

《그게 걱정이래두요. 옳은 일하게 내버려두는 세상이래요?》

《걱정이래두 하는수 없다. 래일이 공일이니까 아마 어디서 자구 오나부다. 그런데 내가 너들헌테 한가지 꼭 할 말이 있다.》

어머니의 새삼스러운 말에 며느리와 딸은 동시에 어머니를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범접할수 없는 빛이 떠돌았다. 그러한 때의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매운지는 며느리보다 오히려 딸이 더 잘 알고있다.

만약 그러한 때에 상란이 한마디라도 거역해볼라치면 전에 어머니는 매질도 사양치 않았다. 혹은 어머니가 식음을 끊고 딸의 마음이 돌아서기를 기다리는수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딸은 어머니앞에 제 잘못을 빌어야 했다. 애정과 함께 그만치 엄한 교육이 있었기때문에 아버지없는 자기들 세 남매가 고향에서도 남의 손가락질을 받지 않고 자랐다는것을 상란이자신도 잘 알면서도 때로 어머니에게 거역해보는것은 응석이라고 생각해본다. 어머니는 말을 이었다.

《…맘에 없는걸 구복때문에 해선 안된다는 너희들 아버지말도 있었고, 또 하나는 너희들을 일성장군님을 따르게 하라던 그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한가지 지켜온게 있담 구복때문에 맘을 굽히지 않은 그거다. 그건 오늘까지도 내가 지켜간다. 그리고 한가지 장군님을 따르게 하라던 그건 아직 내가 못하고있다. 큰애는 북에 갔으니까 장군님을 받들어 일할거라고 믿는다만 너희들한텐 내가 그렇게 하도록 특별히 한게 없다. 그건 나도 너희들 아버지앞에 죄를 짓고있는셈이다. 그러니까 구인조 조장이 내 맘에 들면 할거고 안 들면 누가 뭐래도 안한다.》

어머니가 그 말을 한것은 딸에게보다 며느리에게 들려준 말이였다. 초저녁에 차복 할머니가 그 말을 했을 때 발끝만 내려다보고 딱해하던 며느리의 그 말없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였다.

《난 어머닐 위해 하는 말이예요.》

상란이 어머니의 말을 듣고나서 한숨과 함께 말했다.

《네 맘도 모르지 않는다.》

그들이 자리에 누우려 할 때 문이 열리더니 상춘이 들어섰다. 통금시간이 조금 지난 뒤였다.

어머니는 반갑고도 겁이 났다. 만나려고 대학에까지 찾아갔던 아들이니 반가왔지만 반면에 이밤에라도 집에 있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 동시에 겁도 났다. 험한 세상의 압박감이 어둠과 함께 느껴졌다. 무엇이라 말할지 모르는데 상란이 벌써 동생을 나무랬다.

《어딜 늦도록 그렇게 다니니? 집에선 걱정하는줄도 모르고…》

《매부 또 찾아오지 않겠수?》

상춘은 보나마나 예상되는 누이의 잔소리를 방패삼아 롱담으로 받았으나 상란은 그럴 때가 아니였다.

《너 요새 어떤 땐지 알고나 있니? 영등포선 학생들이 잡혀갔어.》

《그래서 왔수?》

《그래 니가 잡혀가봐라, 어머닌 어떻고 언닌 어떻겠니?》

《잡히긴 뭣때문에 잡힌다고 그래요. 아침엔 어머니도 그러시더니.》

《네 속을 모르니까 그렇지.》

《내 속을 뭘 몰라요?》

《그럼 니가 공부만 하고있다는걸 내게 맹세해라. 그럼 난 아무 걱정도 안하겠다. 난 사실은 너 매부걱정만 하재도 힘에 겨워.》

《맹세해요.》

귀선은 그동안 부엌으로 나가서 상을 차려가지고 들어왔다. 솥에 넣어두었건만 밥은 식었다.

《일찍 들어오잖고… 식었수.》

《먹고 왔어요.》

《어디서 잡수셨수?》

《동무네 집에 갔다가…》

《언제 먹었는지 이때까지 돌아다녔으면 배도 안 고프겠다. 언니가 오늘은 널 위해서 반찬을 장만했어. 언니생각도 해.》

《누인 뭘 자꾸 그런 말을 다… 잡숫구려.》

상춘은 귀선이 권하는 바람에 상을 대하고 앉았다.

그제서야 어머니는 조용히 물어보게 되였다.

《너 오늘 조광래나 허강이 만났니?》

《아까 대학도서실에서 헤여졌어요, 왜요?》

《글쎄 말이다. 밤엔 못 만나고?》

《아뇨, 왜 그러세요?》

《아니, 네가 걔들 집에서 놀다 왔나해서.》

《아네요. 어디 다른데 책을 빌리러 갔다가 그애도 보는 책이 돼서 거기서 함께 보다 오느라고 늦었어요. 이렇게 난 공부만 하는데 누님은 저러지 뭐예요.》

상춘은 누이의 걱정을 빌어서 어머니에게 또 형수에게까지 안심을 시키는것이였다.

《누이가 괜히 걱정이다.》

《에이구, 어머닌 상춘이 말이램 곧이듣지만 속고계셔요.》

상란은 어디 한군데 미덥지가 않았지만 그래도 동생의 맹세한다는 말을 믿고 마음을 조금 놓아보려 한다.

《네가 채남이 허구 다닌다면 밤새도록 나가있어도 아무 걱정 안하겠다.》

상춘은 누이를 흘겨보았다.

《왜 싫으냐? 내가 다 알아.》

《정말, 나도 어저껜가 그 학생 길에서 지나가는걸 봤수. 인젠 색시티가 나는게 아주 곱습디다.》

귀선도 한마디 하며 그들 시누이와 오레미가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상춘과 채남과의 사랑을 두고 그를 놀려주자 방안의 공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분위기에 싸여볼 기분이 아니였다.

《방에다 불을 좀 넣긴 했다만 차지 않겠는지 모르겠다.》

추운 방을 걱정하는체 하면서 어머니는 아들과 둘이 앉을 기회를 만든다.

《어머닌 계세요. 저애보고 하라고.》

상란이 그랬으나 어머니는 밖으로 나와서 아들의 방으로 갔다.

상춘이 뒤따라 들어왔다.

《오늘은 밤을 새워야겠어요. 공부가 밀렸거든요.》

등잔불을 돋구고 책을 폈다.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어머니는 차마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놈들이 온다 하더라도 이날 밤으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것을 아들의 마음만 뒤숭숭하게 만들어놓는 결과로 될지 모른다. 놈들의 협박장이라는 목적이 바로 그런것이 아닌가. 공포분위기를 만들어놓아 겁에 떨게 하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못하게 하는 그런 수법이 아닌가싶었다.

어머니는 그대로 일어서 나오려 했다.

《어머니!》

상춘이 어머니를 불렀다.

《저- 말예요. …》

상춘은 말을 더듬었다.

《…》

《혹시 우리 집에도 협박장이 올지 몰라요.》

어머니는 아찔했다. 아이로만 알았던 아들이 별안간 방이 가득하게 커보이며 자신의 걱정이 공연한것이였던가 허망하기도 했다.

《다른 학생들 집에 그게 왔어요. 그래서 혹시 우리 집에도 오지 않을가 해서요. 와도 놀라지 마세요. 난 어머니만 걱정 안하시면 아무 념려없어요. 원래 협박장이란 말그대로 협박이니까요. 거기 놀라면 그건 벌써 그놈들한테 진거예요.》

그렇다면 어머니는 그것을 봤던 순간부터 이미 지고말았는가. 어머니는 다시 더 할 말이 없었다. 사실을 래일 알리더라도 늦지 않을것 같았다. 역시 협박장이 온줄을 알면 상춘이 말은 그렇게 하지만 마음은 평온치 않고 공부에도 방해가 될지 모른다.

어머니는 방으로 돌아와 귀선을 재촉해 자리에 누웠다.

통금시간이 넘어서 인적이 끊어진 골목에 이따금 지나가는 가벼운 발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어떤 때는 집앞에 와서 별안간 끊어지는것 같기도 했다. 서울의 밤은 갖은 음모와 공포와 불안속에 깊어갔다.

어머니는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궁리가 많았다. 걱정도 많았다. 아들은 앞으로 무사할가, 무엇으로 아들의 일을 도와줄가.

이웃집 시계가 1시를 쳤다.

《어머니.》

자는줄만 알았던 귀선이 어머니를 불렀다.

《통장이 우리 집 래력을 알고 하는 소리 아녜요?》

어머니는 며느리가 너무나 정확히 알아맞히는 바람에 가슴이 선뜩했다. 며느리는 항상 긴장속에 사는구나. 그렇게 사는 사람만이 가질수 있는 예리한 직감력이였다. 어머니는 그럴수록 며느리에겐 그것을 말하지 말아야 했다.

《쓸데없는 걱정 너더러 하라니? 그동안은 그들(형사)도 온 일이 별로 없다.》

《그래도 어쩐지 그런거 같아요.》

《걱정말래두, 그런 일이 있어도 내가 당한다.》

《어머니가 왜 당한다고 그러세요, 제가 당해요. 형사들이나 또 다른 그런것들이 와서 뭐라거든 죄다 저한테 미세요. 어머닌 늙으셔서 모르신다고만 하세요.》

《어서 자라.》

골목으로 또 구두발소리가 뚜벅뚜벅 지나간다. 권총찬 족속들일게다. 멀리서 급히 달리는 자동차소리가 불안을 조성한다.

이웃집 시계가 2시를 쳤다.

가볍게 비뿌리는 소리가 들렸다. 봄을 재촉하는 비다. 어머니는 고향의 봄을 생각도 해본다.

귀선이도 연방 몸을 뒤채이며 잠들지 못한다. 상란은 깊이 잠들었다. 상춘은 졸음을 쫓느라고 그러는지 마당에 나와서 푸푸하고 찬물에 세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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