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굽이치는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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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사람의 운명이란 이런건가 봅니다. 하필이면 어머니와 내가 이렇게 마주앉게 될건 뭡니까? 나도 좋은건 아닙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상춘군에겐 두번다시 올수 없는 좋은 기회로 될지 모르죠, 어머니.》

어머니는 참다못해 고개를 들었다. 쏘아보는 눈에서는 불이 일었다.

《어머니란 말은 당최 하지두 마오. 아무나 날 보고 어머니라 하진 않소. 상춘인 내 자식이니까 그렇고 그밖에 날 어머니라고 하는 애들은 모두 나라를 위하고 통일을 바라는 학생들이요. 당신 같은 나라를 팔아먹는 사람이 아니였소. 난 그런 사람헌테 어미란 말을 듣고싶지 않소.》

《어머니란 말이 그렇게 싫으면 아주머니라고 해두죠. 아주머니가 날보고 아무런 욕을 한다 해도 난 그건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지금 어머닌, 아니 잘못했습니다. 아주머닌 흥분하고계십니다. 무슨 말인들 안하겠습니까. 더 실컷 욕을 퍼부으세요. 그러면 마음도 후련하실겁니다. 그런 다음에 랭정한 마음으로 돌아가 생각하세요. 상춘군은 별로 큰죄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게 제딴에는 애국으로 생각했으니까요. 그 애국심이야 누가 찬양을 않겠나요? 다만 그런 순진한 학생들을 뒤에서 리용한 놈들이 죽일놈들이죠. 그놈들은 용서없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십분 정상을 참작해서 처리하게 됐습니다. 상춘군도 기껏해야 일년쯤 살거나 집행유예로 나올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가슴을 펴고 살라죠. 세상살기란 생각하기탓 아닙니까? 그때 가서야 언론으로 <정부>를 공격해도 좋고 또 합법적으로 무슨 정당을 조직해도 되는것인데 뭣때문에 숨어서 살얼음판 걷듯 삽니까? 젊은 나이에, 아주머니도 앞으로 산대야 몇해나 더 사신다구. 십년안팎이 아닙니까? 그동안 상춘군이 결혼이나 하고… 채남이 같은 좋은 색시가 있겠다, 고생도 많이 하셨으니 락도 좀 보시다 돌아가셔야죠.》

그는 담배를 꺼내서 한대 피워물며 《아주머닌 담배 피우시지 않던가요?》하고 담배곽을 내밀려 하는것을 어머니는 손을 저었다.

《안 피우세요? 그럼 목도 타실텐데 설탕물이라도…》

그는 심부름군을 불러서 따끈한 홍차를 가져오라고 했다. 심부름군이 홍차를 갖다가 어머니앞에 놓았다.

《찬물보다 이게 좋습니다. 여름철에 이런데서 배탈이라도 나신다면…》

홍차잔에서는 더운 김이 보일락말락 피여올랐다가 선풍기바람에 날려 없어졌다.

《드세요.》

어머니는 정말 목이 탔다. 그까짓 받아마시고도싶었으나 말없이 차잔을 밀어놓았다.

그는 자리를 떠서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왔다.

《그래, 생각하셨습니까?》

《난 아무것도 모르오.》

《누구나 처음부터 안다고야 합니까? 하다못해 도둑의 어미도 자식을 사랑하는 맘은 있어서 모른다고 해보는거죠. 그러나 나중에 보면 그게 자식을 더 망쳐놓는거거던요. 상춘 어머니야 그런 어리석은짓을 하실분도 아니시구.》

그는 권동진이였다. 군사《정권》이 선 며칠후에 그는 중앙정보부에 온것이다.

그는 기민하게도 저의 부친을 설득시켜 군사《정권》과 환평재벌을 유착시켜놓았다. 대부분의 매판자본가들이 부정축재자처벌이니 하는 공갈에 떨면서 접근해보려고 하면서도 줄을 잡지 못해 몸살을 앓고있는 때 권세환은 제1호로 막대한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새로운 리권까지 약속받고있다.

《HKP》도 이제는 군사《정권》의 한 비밀테로단체로 계속 학생들을 감시하기로 되였다. 한왕렬도 직접 권동진의 지휘밑에 암약(몰래 이리저리 활약하는것)을 하고있다.

그는 며칠이내에 상춘의 행방을 알아내겠다고 권동진에게 장담을 했으나 아직도 행적을 알길이 없었다.

성북동꼭대기 어머니네 집을 불의습격도 하고 감시도 했으나 헛일이였다. 아직도 행적을 알길이 없었다. 어머니의 외출을 미행하다가 놓친 일도 있다.

어머니와 상춘은 무슨 련락이 있는게 분명했다.

어머니를 잡아들였다.

권동진은 지금 어머니에게 아들의 행방을 대라는것이다.

《생각해보세요. 내 말이 틀리나. 상춘군이 날개가 달려서 이북으로 날아갈수는 없는거고 아무때 잡혀도 잡힐것 아닙니까. 오래 있다 잡히면 그동안 죄를 하나라도 더 저지를것이니 저에게도 불리할거고 그러니까 애초에 제발로 자수하는게… 난 상춘군보다 아주머닐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내 한마디 하겠소.》

동진은 반가와서 일어섰다 앉으며 책상에 벌려놓은 서류를 한편으로 치워놓았다.

《말씀하세요.》

어머니입에서는 랭소가 날렸다.

《어미라는게 세상에 어떤거란걸 말해주리다. 도둑의 어미도 아들을 잡아주는게 아뇨. 항차 나라를 위해 나선 자식을 잡아주는 어미가 어디 있겠다고 이러오. 난 그놈이 어디 있는질 알지 못하오만… 지금 내 생각은 그것이 잡히질 않길 바랄뿐인데 어서 날 내놔주오.》

동진의 얼굴에는 가느다란 경련이 지나갔다.

《좋습니다. 나도 처음부터 말했습니다만 마나님과 이렇게 앉았는게 유쾌하진 않습니다. 뭐니해도 고향사람끼리니까요. 그러나 한가지 기억해두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날 찾지 말아요.》

《걱정마오.》

동진은 일어서서 누구인가를 불렀다. 곱상스레 미남으로 생겼으나 소름이 끼치도록 피부가 매끄러운자가 앞에 나타났다.

《역시 인정을 베풀건 못되는 사업이군. 그걸 역리용하니까.》

《그러게 내가 처음부터 뭐랬습니까?》

《난 그래도 고향늙은이라구…》

《아직 빨갱이들의 무서운 속을 모르십니다.》

《내가 어리석었지. 적당히 하게.》

동진은 나가버렸다.

《일어낫!》

미남의 목소리는 녀자같이 높았다.

어머니는 허리가 아파서 간신히 의자에서 일어섰다.

《이리 왓!》

기다란 계단을 내려갔다. 또 하나 이번에는 좁은 계단으로 꼬부라지자 어떤 사람의 죽어가는 비명이 들렸다.

《여긴 이런데요. 마누라. 도루 올라가지.》

미남은 어머니의 변심을 재촉했다. 어머니는 란간을 잡고 천천히 대답했다.

《내려갑시다.》

미남은 배신이나 당한듯 매끄러운 얼굴이 더욱 반들거렸다.

《좋아. 그럼 어서 내려와.》

장방형의 콩크리트방, 천정에 십촉짜리 전등이 하나 매달려있을뿐이였다. 의자도 아무것도 없어서 어떻게 몸을 가져야 좋을지 모르는 방이였다. 바닥에는 물이 질벅거렸다. 어머니는 그 물이 무엇인지를 안다. 물고문 아니면 정신잃은 사람을 소생시키느라고 끼얹은 물이였다. 어머니는 다리가 아파서 한쪽벽에 기대섰다가 그래도 마른 곳을 골라앉았다. 들리던 비명이 그치고 지하실은 조용한게 더 기분나빴다.

얼마를 지나서 한놈은 트림을 하고 한놈은 이를 쑤시며 들어왔다. 설렁탕냄새가 훅 끼쳤다.

《뭐야, 난 또 녀자라기에 살이라도 포동포동해서 만질 맛이라도 있는줄 알았더니 늙은 할멈이라. 할멈, 뭣때문에 들어왔어?》

《모릅니다.》

《몰라?》

《네.》

《그럼 할멈은 몰라도 좋으니까 입이 알도록 해주지.》

그자가 팔을 휘젓더니 옆구리에 찔렀던 채찍이 공중으로 날았다.

《얏!》

《엿!》

고문에는 차라리 빨리 기절이라도 하는편이 낫다지만 어머니는 가물거리는 정신을 이를 악물어가며 지탱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아무것도 모르게 되였다.

어느때나 됐는지 어머니는 아까 권동진과 마주앉았던 방으로 들려왔다.

《어때?》

미남이 앞에 앉았다.

《…》

《자식이 어디 있는지 말할테요, 다시 지하실로 갈테요?》

《지하실로 갑시다.》

미남은 제 분에 못이겨 바르르 떨었다.

다음날 어머니는 류치장에서 불리워나왔다. 소지품을 가지고 나오라는 말이였다. 같은 방에 있는 녀자들은 어머니의 석방을 기뻐도 하고 부러워도 했다. 경찰서도 아닌 류치장에서 놓여나온다는것은 지옥에서 살아나오는것이나 다름없기때문이였다.

어머니는 권동진앞에 앉았다. 권동진은 매우 부드러운 얼굴이였다.

《상춘군은 잡혔습니다.》

《뭐요?》

어머니는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정신을 가다듬어본다. 그러한자들의 버릇을 알기때문이다. 거짓말을 해놓고 이쪽의 속심을 뽑아보는수가 많다. 어머니가 남편때나 큰아들때나 여러번 당한 일이였다. 거짓말이기를 바란다.

《잡혔어요. 여기가 어떤덴줄 압니까? 귀신이 숨는 곳도 찾아내는데예요. 상춘이 하나쯤 못 잡을가봐서 아주머니가 그러십니까? 그러나 한번 더 기회를 드리죠. 상춘일 내가 특별히 불러낼테니 아드님한테 권하슈. 모든걸 순순히 내놓으라고요. 그것이 이제 와선 한가지 남은 살길입니다. 이왕 잡힐 놈들인바에야 그렇게 해서 저나 빠져나가는게 현명하죠. 아주머니말이면 저도 생각이 있을게 아닙니까?》

권동진은 제가 하는 말을 다 믿는것은 아니였다. 어머니와 아들이 만날 때에 아파하는 《꼴》을 보자는 악마같은 근성이 하나 있었고 상춘이 저도 사람인바에야 마음이 흔들리리라는것을 바라는 타산에 모자를 만나게 하자는것이였다.

《만나보시겠습니까?》

권동진은 입에 랭소를 머금으며 물었다.

《만나겠소.》

《무슨 말을 하시겠소?》

《좋은 말을 하죠.》

《좋습니다. 잘 생각해보슈.》

어머니는 그가 내여주는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아들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이 무척 긴것 같기도 하고 짧은것 같기도 했다.

복도에 신발끌리는 소리가 나며 문이 열리는 순간 어머니의 심장은 고동이 멎는듯 했다. 포승을 잔뜩 지워 팔이 자유롭지 못한채로 부라질(몸을 좌우로 흔드는 일)을 하며 문에 들어서던 상춘은 흠칠 놀라며 뒤로 물러서다가 뒤에서 떠미는 힘에 문턱을 밟고 우뚝 섰다. 어머니는 일찌기 그렇게 아들이 커보인적은 없었다. 그렇게 름름하고 장부같이 보인적도 없었다.

어머니는 너무나 그 우람한 모습에 조금 주춤하다가 급히 달려갔다. 상춘도 자유롭지 못한 몸으로 달려오며 체소한 어머니에게 몸을 척 싣는다. 어머니는 아들을 안았다. 역시 어렸을 때에 품에 가볍게 안던 그 기분이였다.

《여길 뭣 하러 오셨어요, 어머니가?》

무슨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모르는 어머니를 아들이 핀잔하는것 같아서 어머니는 입을 열었다.

《너 있는 곳을 대라고…》

《나 있는 곳을 어머니가 어떻게 아신다고.》

상춘은 동진을 힐책의 눈으로 본다.

《아주머니, 어서 하실 말씀이나 하세요. 상관이 보면 재미없습니다. 아무나 이렇게 면회시켜주는게 아녜요.》

《상춘아, 저 사람은 내가 네앞에서 실컷 울라고 우리 모자를 만나게 하는 모양이다만 내가 네앞에서 왜 우니? 나라를 위해 장한 일을 하는데 난 울지 않는다. 4. 19때 어떤 어머니들은 아들시체앞에서도 울지 않았다. 나라가 바로잡히는 날 실컷 울겠다고 울지 않았다. 내가 너한테 하고싶은 말은 그거다.》

《어머니, 알았어요. 어서 집으로 돌아가세요. 가서 유정이나 잘 돌봐주세요. 아예 걔한텐 슬픔이란걸 모르게 하세요.》

상춘은 어머니몸에서 떨어지며 동진에게 한마디 했다.

《여보시오. 우리들은 눈물을 원치 않는 사람들입니다. 눈물에 넌덜머리가 난 사람들이요. 눈물없는 세상이 우리의 소원인데 뭣때메 우리가 함부로 눈물을 찔끔거리겠소. 보시오. 우린 이렇게 웃습니다.》

그러나 상춘의 얼굴에는 웃음은 없었다. 분노를 억제하는 지극히 온화한 표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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