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굽이치는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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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춘은 열흘도 더 넘게 집에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자나깨나 아들의 신변이 걱정되였다. 형사들이 무시로 집에 뛰여들기도 하고 수상한자들이 집근처를 노상 배회한다.

추녀밑에는 위험하다는 신호로 흰 수건을 걸지 않았다. 어머니네 집은 외계와 차단상태에 놓여있었다. 귀선도 처음 며칠은 집에 감금되다싶이 발을 묶여있다가 생활문제로 장사만은 겨우 나가다닌다.

국민의 기본권리는 문제로도 되지 않았다. 계엄령하의 비상사태라고도 하고 《군사혁명》이라고도 위협했다. 군복을 입은자들의 말 한마디면 세상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되였다.

상춘은 채남이 소개한 어느 집에 있다가 어제부터는 또 다른데로 옮겨앉아 일을 한다. 집과 련락은 채남이 맡아서 해주기로 했으나 그의 뒤에도 미행이 따를 념려가 없지 않았다.

하루 한번씩 다녀가기로 했던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있다. 하루하루가 궁금하고 불안한 날들이였다.

그러한 어느날 학교에 갔던 유정이 글쪽지를 가지고 와서 어머니에게 주었다. 복원이 학교로 찾아와서 주고 갔다 한다.

준호가 잡혀갔다는 놀라운 소식이였다. 계속 학생들이 잡힌다. 며칠전에는 허강도 잡혔다. 《라침판》 성원만도 벌써 다섯사람째다.

하자영교수도 구속되였다. 《라침판》 성원들은 비상사고가 생기면 서로 집에까지 련락을 한다. 형사들이 잠복해있는줄 모르고 찾아갔다가 잡힌 학생이 있기때문이였다.

어머니는 상춘을 찾아갔지만 나가고 없었다. 눈에 익은 옷만이 벽에 걸려있었다. 그 집 주인녀자가 어머니인줄 알고 상춘의 행방을 가리켜주었다.

당인리로 갔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곳으로 또 찾아갔다. 아들에 대한 수사망이 점점 좁혀지는 느낌이였다. 준호의 체포로 그런 불안이 더해왔다.

4. 19가 그를 겨우 감옥에서 빼냈더니 5. 16은 또다시 그를 잡아간것이다. 준호는 감옥에서 얻은 병이 아직 완치되지 않았는데 또 그 어둡고 불결한 곳으로 끌려갔다. 무서운 고문을 또 어떻게 견디여내나. 어머니는 길을 걸으면서 줄곧 준호의 걱정뿐이였다.

거리는 어디나 총칼이였다. 무시무시하다. 사람들은 입에 자갈을 물린듯 말을 조심한다.

《깡패두목들속죄행진》이라는 행렬이 지나간다. 군사《정권》은 《공약》이라는것으로 많은것을 약속했다. 시민들의 등을 쳐먹는 깡패들도 소탕해서 거리를 명랑하게 한다는것도 그것의 하나다.

《나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겠습니다.》라는 프랑카드를 들고 그들은 가슴에 이름과 혹은 《까까》, 《개고개》 등 명패를 걸고 큰길 한복판을 행진한다. 총을 멘 군인들이 그들을 호송하고 간다.

지난 선거때 리승만의 선전물을 찢는 일로 어머니에게 행패를 부리던자도 가슴에 《족제비》라는 명패를 걸고 행렬에 끼여간다.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는 일도 없다. 보라는듯 머리를 추겨들고 어깨를 세우면서 간다. 마치도 군사《정권》을 비웃는듯 한 태도였다. 군사《정권》은 생긴지 며칠동안에 시작한 일이 여러가지였다. 명랑한 수도로 만든다고 《과감한 행정》을 다짐하면서 《춤바람》에 녹아난 《딴스족》들을 잡아다가 군복을 입은 군정재판관이 추상같이 단죄를 한다.

부정축재자들을 처벌한다고 검속을 한다. 뢰물받은 공무원을 군정재판에 끌어내여 마이크를 통한 공개재판을 한다. 그것이 당장에 효과를 발생하는지 관공청에 가면 공무원들이 시민들을 친절하게 맞이한다.

전에 없던 《풍속》이 생긴다. 그러한중에서도 교통정리만은 눈에 불이 나게 잘한다.

총을 멘 교통정리군인앞에 고급차들이 설설 긴다. 군인의 《과단성》이 거리를 지배하며 무엇인가 새로운 바람을 느끼게 하는것 같다.

양담배가 총검바람에 일시에 거리에서 자취를 감춘다. 백화점 사치품진렬장앞에는 손님이 얼씬도 안하게 되였다. 무엇인가 기강이 서고 세상이 달라지는것 같다. 깊은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장면내각의 우유부단에 지쳤던 나머지 총검에 떨면서도 군정담당자들의 돼지곧은목 같은 저돌성(앞일을 헤아리지 않고 일을 마구 처리하는것)에 무엇인가 현혹도 되고 환상도 가져본다.

그러나 사려있는 사람들은 눈살을 찌프린다. 통일만이 살길이라고 그것만을 기다렸는데 군사《정권》은 《반공제일》이라고 한다.

북을 반대한다는 말인데 거기를 반대해서 누구와 통일을 하자는거냐. 도대체 그 총칼이 싫었다. 총밖에 모르는 무식한것들이 같지않게 정치를 한다고 《혁명》이니 뭐니 하고 날뛰는데 그밑에서 자존심이 꺾여서 어떻게 벌어먹겠느냐. 시골로 내려가는 사람도 있다. 민중은 통일을 바라는데 통일의 길을 가로막으면서 강도같이 밤중에 뛰여나와 《정권》을 가로챘으니 그 나가는 끝도 좋지 않으리라. 놈들 하는짓이 보기 싫어 눈뜨고 못 본체 되는 꼴만 지켜보기도 한다. 대학교수들은 자진사표를 내고 서재에 들어박힌다. 《국회》가 해산되고 정당, 사회단체들의 활동이 금지되고 언론기관들이 페쇄를 당한다.

진보적인 인사들과 학생들에 대한 구금은 점점 더 그 범위가 확대된다. 이러저러한 명목으로 구금된 사람이 벌써 2천명이라고도 하고 3천명이라고도 한다.

상춘은 어머니가 가지고 간 소식에 놀랐다. 어머니앞에 당황한 빛을 감추느라고 앉은자리에서 담배를 연거퍼 두대나 피운다. 전에는 어쩌다 피우던 풋담배인데… 무엇인가 깨알같이 수첩에 적어넣는다.

그날 《라침판》에서는 회의를 하기로 되여있었다. 안전한 교외로 나와서 금후 《라침판》의 행동방침을 세우자는 계획이였다.

준호가 보고를 하기로 되여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준호의 체포다. 준호와 상춘은 지명수배를 받고있어서 언제든지 각오하고는 있어야 되였지만 회의를 앞두고 그가 체포된것은 적지 않은 타격이였다.

이제는 상춘이 준호를 대신해서 총회를 집행해야 된다. 준호의 체포에 대한 분함과 《라침판》을 끌고갈 책임감이 겹쳐서 상춘은 어머니앞에서도 화난 사람처럼 입이 너부죽해서 말없이 수첩에 보고내용을 적어넣기만 한다.

윤도와 복원이 왔다. 복원은 아버지편지대로 이제는 4. 19용사에게 마음껏 사랑을 쏟고있는것이다. 윤도의 비틀렸던 감정도 풀려 같은 목적을 가지고 싸우는 길에서 본래의 깨끗한 애정에다 동지애까지 겹치였다.

《전 처음부터 감옥을 부시고 준호를 빼내지 못한게 한이였습니다. 그놈들이 내줄 때를 기다려 나왔으니까 그놈들이 또 잡아가면 잡혀갑니다. 어머니.》

4. 19직후 그가 세브란스병원에 누워서 준호가 순조롭게 출옥하지 못하는것을 보고 절름발이혁명이라고 개탄하던 그 말을 또 하게 된다.

《그러나 걱정마세요. 우리가 감옥을 부시고 빼낼 날이 올겁니다. 그때가 정말로 <한국>이 혁명하는 날예요. 념려마세요. 그때까지 우리가 시련을 겪는거죠. 쇠는 불에서 강해지는거예요. 어머니같은 늙으신 몸이 거기서 견디셨는데… 준호헌테는 복원이 책이나 많이 넣어줘요. 공부나 또 많이 하고 나오게시리. 사실 <라침판>은 그의 발기도 발기였지만 많이 배웠습니다.》

윤도는 상춘이 내미는 수첩을 골똘히 보고나서 몇가지 의견을 첨부했다.

상춘은 어머니를 밖으로 모시고 나왔다. 학생들이 다 모일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어서 그동안 어머니에게 점심이라도 사서 드릴 생각이였다.

근처는 남산지대의 면모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배추꽃이 보이였다. 그우를 나비들이 가볍게 날았다.

강뚝으로 나가서 한강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감회가 깊었다.

옛날에 와본 곳이였다. 어머니가 젊었을 때 남편의 부탁으로 땔나무를 배에 싣고 고향을 떠나 배길로 한강을 내려와 서울이라고 닿던 곳이 여기 삼개동막, 서강무시막일대였다.

지금은 제방을 높이 쌓고 집도 가득 들어앉아서 첫눈에 몰라보게 많이 변모되였지만 강뚝에 나서자 건너편 변하지 않은 풍경으로 보아 옛날 그곳이였다.

강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가슴이 뿌듯해진다. 강은 밀물이 들어 강폭이 넓고 바람까지 불어 물결도 사납다. 강을 거슬러 물길로 이백리를 가면 고향이다.

남편은 서울출입을 하면서 이 강을 많이 리용했다. 아직 경춘철도가 놓이지 않은 때였다. 자동차운임은 비싸서 남편은 배를 타고 많이 다녔다. 중간중간 일제경찰의 눈을 피하는데도 배길은 십상 좋았다.

옷보따리를 고향선창에서 아는 사공에게 부탁하면 그것이 어떻게 서울에 있는 남편의 손에 들어가기도 하고 또 그렇게 어머니손에 빨래할 헌옷이 부쳐오기도 했다.

어머니가 이곳 서강을 와본것도 남편의 뒤바라지때문이였다.

초가을이 되면 산에서 가다귀를 베여 그것을 겨울이 되기 전에 배에 싣고 오면 남편이 기다리고있다가 그것을 팔아가지고 어디론가 표표히 가군 했다.

무슨 독립운동에 쓰는 돈으로만 알고 어머니는 그 돈이 남편손에 들어가는것만을 또 무사히 심부름을 한것만을 기뻐했다.

남편은 그 돈에서 일부를 떼여 가용에 쓰라고 주고 의례히 장국밥집에 가서 어북장국을 한그릇 사주는것이 하나의 약속으로 되여있었다. 마치도 그것이 수고에 대한 보상의 전부인듯이. 그때 돈 15전이였지만 그것도 아까와서 어머니담으로는 사먹지 못한다 하여 남편은 반드시 자기손으로 사서 주고 먹는것도 보지 않고 잘 가라는 말만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지군 했었다.

그 어북장국이 얼마나 남편의 정같이 따끈하고 후추씹히는 맛이 있었는지 어머니는 가끔 아들에게 그것을 남편의 이야기는 빼고 했던것이다.

상춘이는 지금 그것을 기억하고 어머니에게 어북장국을 사주러 강변음식점으로 찾아가는것이다.

아들이 대견하다.

그러나 어머니의 쓰라린 추억까지 상춘이 알리는 없을것이다.

가다귀를 싣고 오다가 배는 순풍대신에 맞바람을 만나 중간나루들에서 이틀이나 지체를 했다. 동지가 가까와 강은 얼기 시작했다. 배전에 엉키는 얼음을 겨우 꺼가며 이곳 서강에 왔을 때 남편은 선창에서 얼어붙은 강을 바라보며 이틀씩이나 헛되이 기다리다가 경찰에 잡히고말았다는 그곳 사공의 이야기, 절망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머니는 지명수배를 받고있는 아들과 함께 이곳 강변에 서자 그 생각이 불현듯 났으나 구태여 아들에게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사주는 어북장국을 반이나 덜어 아들에게 주었다.

강은 점점 더 물이 불고 물결이 거칠었다. 어머니는 강을 바라보며 과거를 생각한다. 강은 어머니에게 기쁜 추억도, 슬픈 추억도 말해주듯 여러가지 소리로 철썩거렸다.

《어머니, 어머닌 지금도 내가 그저 대학선생이나 되길 바라세요?》

상춘은 강변 흰모래사장에 나와서 오래간만에 막내아들의 응석의 버릇이 나온듯 어머니의 무릎을 베다싶이 비스듬히 누워 뼈만 앙상한 어머니의 손을 모래묻은 손으로 쥐여보며 물었다. 어머니는 흠칠 놀랐다.

《넌 지금두 그게 맘에 걸리는거로구나.》

《그런건 아니래두,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구요.》

다분히 그는 체포를 념두에 두고 물었다.

《그땐 네가 아직 어리고 어디로 갈지 맘을 정하지 못한 때니까 내가 그런 말을 했지만 인젠 니가 그 길에 나섰는데 내가 너한테 바랄게 더 뭐냐? 니가 지금 가는 길을 세상에 뭣에다 대겠니? 난 니가 대견하기만 하다. 내 걱정을랑 말아라. 걱정이 속에 있음 맘이 흐려진다. 난 지금 저강을 보며 생각한다. 니가 모르는 사연도 저 강엔 많다. 지금도 저 물은 고향사람들의 억울한 눈물을 싣고 흐른다. 수유리에 누워있는 선규의 부탁도 함께 말이다. 네가 그 소원을 풀어주는 길에 나섰는데 내가 너한테 뭘 더 바라겠니. 내 걱정을랑 아예 말고 네 길을 맘껏 가라. 어떤 경우를 당해도 난 울지 않는다. 울지 않기두 하지만 네뒤에 내가 언제든지 있어주마. 넌 언제나 맘에 어머니를 안고 가라. 그러면 마음이 든든할거다.》

《어머니, 오늘 정말 잘 오셨어요. 오늘 밤 난 대구에 가요.》

《거긴 왜?》

《<라침판>일은 오늘 회의를 하고 다 결속지어요. 대구와 부산에 가서 학생운동의 방향을 새로 세워야겠어요.》

《니가?》

《네.》

《니가 할만 하겠니? 그렇게 중한 일을.》

상춘은 웃었다.

《왜 내가 못할것 같아요?》

《아니다. 니가 왜 못하겠니? 너무 중한 일이 돼서 아무쪼록 잘하라고 하는 소리다.》

《준호가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황소가 나가면 송아지가 큰소노릇을 한단다. 맘을 크게 먹고 잘해라. 넌 조금 데면데면한데가 있어. 준호같이 차근차근스레 일을 해라.》

《어머니, 우린 이번에 시련을 겪지만 많은걸 배웠어요. 이젠 어떤 난관도 이기고 뭐든지 할것 같아요.》

상춘은 어머니앞에 모든것을 이야기하고싶은 충동을 느꼈다. 세상에 어머니같이 자식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기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 우리를 도와주는줄 알지만 실상 미국놈은 우리 원쑤예요. 생각하면 미국놈과 우리가 어떻게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요. 이번 통일운동만 봐도 놈들의 작간으로 실현되지 못했거든요. 미국놈들은 우리가 진짜 판문점으로 밀고 올라가서 이북형제들과 만나면 걷잡을수 없게 되리라는걸 알았거든요. 그렇게 되면 <한국>에서 미국의 리권이란 끝장이 나고말게고 우리 나라에서 주인노릇을 하기는 고사하고 쫓겨나지 않으면 안되게 될테니까요. 그러니까 급해맞은 놈들이 망할바에야 무슨짓을 못하겠니 하고 군대내에 박아넣었던 특무들을 시켜 일으킨거예요. 그놈들은 우리들의 철천지원쑤예요. 권세환이 같은 매판자본가나 지주들, 반동관료들도 원쑤지만 그것들은 미국놈만 없어봐요. 그게 한줌이나 되는 놈들인가요?》

상춘은 어머니에게 많은것을 이야기도 하고 또 일제때에 민간에 널리 퍼졌던 일성장군님의 전설같은 이야기를 어머니 아는대로 들려달래기도 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심중을 알수 있었다.

어머니가 아는 모든것을 이야기해주었다.

이제는 아들이 용감하고 침착하기만을 바란다. 이야기도 끝났을 때 어머니는 길에서 오다가 본 이야기를 했다.

《날 때릴려던 그놈 있지 않았니?》

《누구요?》

상춘은 금방 뛰여일어날것 같다.

어머니는 종로에서 본 깡패행렬을 이야기했다.

《어머닌 그걸 정말 깡패잡는 놀음으로 아세요?》

상춘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 듣고나서 물었다.

《넌 이제껏 그런 얘길 나한테 해주구두 그러니? 깡패 아니라 설사 권세환일 잡아서 그렇게 종로바닥으로 몰고 간다고 해도 준호나 허강이를 잡아가고 널 또 잡아가려는 그놈들 하는짓을 내가 어떻게 곧이 믿니? 다 시답지 않다.》

《어머닌 모두 나하고만 생각해서 세상을 보세요? 지금 장도영이라는자가 최고회의의장이니 뭐니 하지만 실상은 쿠데타를 직접 지휘헌 놈은 박정희예요. 쿠데타를 일으킨 바로 그놈이 깡패란걸 아셔야 해요. 그놈이 얼마나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게요. 깡패치고도 흉악한 놈예요.》

상춘은 그동안 《라침판》에서 알아본 군사《정권》의 실지 두목이라는 박정희의 정체를 이야기했다.

박정희는 나올 때부터 인민의 원쑤로 태여났다. 그의 애비 박성빈은 동학란때 농민봉기를 반대해서 싸운 《공로》로 군수를 지냈으니 말이다. 세상이 다 아는바와 같이 갑오농민폭동이라면 이 나라의 농민들이 외래침략자를 반대하고 부패한 봉건지배층을 반대해서 손에 무기를 들고일어나 용감하게 싸운 애국적인 인민투쟁의 하나였다.

이 애국투쟁을 반대해서 박정희의 애비가 당시 우리 나라를 삼키려고 기여들었던 일본병정들과 한편이 되여 칼을 들고 싸웠으니 그 민족적반역행위는 릉지처참을 해도 시원치 않는것이다.

박정희가 장성해서 일본왜왕에게 충성을 다하겠다는 혈서탄원으로 일제가 만든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갔고 또 일본사관학교를 거쳐 《황군의 중대장》으로서 무고한 백성들을 죽인 《살인업적》을 쌓아올렸으니 그를 두고 그의 애비였던 친일역적의 피를 받아 인민의 원쑤로 태여났다고 말하는것이다.

그는 만주군관학교 재학당시부터 《일본정신》을 체득하고 훈련하기 위해서 검도가 제일 좋다고 하면서 하학후에는 의례 검도장에 나타나 사람찌르는 련습을 했으며 일본시낑(사무라이들이 광신적으로 부르는 노래)을 좋아해서 일본인교관들의 총애를 독차지했고 졸업당시에는 만주국 괴뢰황제의 표창까지 받은자이다.

그는 일본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제6군관구 보병제8련대에 배치되여 일본군장교로 된 다음 이발이 온통 피로 물젖은 승냥이로 되였다.

20성상 간고한 항일혁명투쟁을 전개하면서 피흘려 싸운 우리의 애국자들에 대하여 그는 일본군도를 휘두르며 발악해나섰다.

소위 《비적토벌》의 명목아래 그가 감행한 이러한 죄악적전투만도 무려 20회에 달한다.

한마디로 말하여 그는 무고한 인민을 많이도 학살한 인간백정이다. 매국노들이란 언제나 그러하듯이 돈과 권세에 따르는 변절무쌍한 매춘부들이다.

박정희는 해방이 되자 국내에 들어와 시세를 관망하다가 세월이 미국사람세월로 되는것 같자 곧 미국인에게 가붙었다. 미국인의 특무로 변신한 그는 《국군》의 군복을 입고 려수, 순천사건때에는 수많은 애국자들을 밀고해서 학살케 했으며 항상 미국의 시중을 들며 그것을 출세의 비결로 삼아왔다.

그는 1949년부터 륙군정보국 제1과장, 특무대장자리에서 미국인들이 따라주는 위스키를 들이키면서 새 상전의 비위에 맞게 눈에 색안경을 걸고 두더지처럼 사람들의 뒤를 파며 동료를 밀고하는 밀정이 되여 미국인의 신용을 얻었고 륙군소장으로까지 올라가 이번에 쿠데타를 지휘했다.

쿠데타음모에서 그의 왼팔노릇을 한 김종필은 그의 조카사위로서 1949년 《국군》입대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국정보기관에 복무하면서 륙군본부정보국에 앉아 애국자들을 무수히 검거학살한자다.

이러한 그들의 과거경력으로 봐서 장차 《한국》에는 도죠나 히틀러와 같은 파쑈가 퍼질것이고 왜놈들이 기여들것이다.

그러잖아도 미국은 《한국》을 일본과 분담해서 통치해보려던 참이였는데 일제가 길러놓은 일본장교가 군사《정권》의 최고《실력자》로 들어앉았으니 말이다.

아, 나라가 망해도(그것이 물론 한때라 하자.) 이렇게까지 망할수가 있느냐?

한강아, 너는 무심히 그대로만 흐르느냐?

오늘 이 꼴이 될줄 알았더라면 무엇때문에 아버지는 너의 물결을 타고 서울출입을 했으며 어머니는 무엇때문에 가다귀를 싣고 동지가 가까운 강상을 열어가며 오르내렸더란 말이냐?

한강은 철썩거리며 흐르고만 있다.

상춘은 시계를 보고 일어났다. 그의 몸에서는 모래가 떨어진다.

《어머니, 난 어머니헌테 다 얘길 했더니 왜 그런지 인젠 날것 같아요.》

어머니는 상춘의 몸에 묻은 모래를 모두 털어주었다.

회의는 결석이 여러명 있었다. 다섯사람의 피검을 내였고 추적때문에 오지 못한 성원도 있다.

준호의 갑작스런 피검으로 회의의 지도자를 잃은 격이였다. 실망들도 했으나 곧 그것은 격분으로 바뀌여 회의는 긴장한 가운데 열의로써 진행되였다.

상춘이 보고를 했다.

《<라침판>이 조직된이래 오늘처럼 엄혹한 환경속에서 회의를 해보기는 처음이다. 우리앞에는 지금 시련이 닥쳐왔다. 력사는 우리를 검열하고있다. 우리의 의지, 우리의 량심, 우리의 지성 그리고 우리의 청춘과 정열은 바야흐로 어려운 시험대에 올라서있다. 그러나 우리는 4. 19투사들이다. 우리는 4. 19의 그 높은 정신을 조국통일의 거창한 위업에까지 끌어올릴 이 나라의 량심의 대변자들이다. 우리는 이 시련을 이겨야 한다. 우리는 어떠한 폭풍앞에서도 굴할 권리가 없다. 돌이켜보자. 우리는 새 제도, 새 정치, 새 생활을 요구하는 대중의 절규를 안고 4월의 광장으로 뛰여나갔다. 그날부터 오늘까지 1년이 남짓하다. 그 기간 우리가 한 일은 무엇이며 우리가 찾아야 할 교훈은 무엇이냐. 오늘 이 회의에서는 모든것에 대한 대답을 얻어야 한다. 우리 어머니도 말씀했지만 저 한강은 4. 19희생자들의 무덤앞을 굽이쳐 예까지 흘러오고있다. 물소리는 높다. 엄숙하게 1년을 돌이켜보자. 피를 흘렸다. 벗들을 잃었다. 리승만을 몰아냈다. 그러나 승리의 열매는 횡취당하고말았다. 우리가 그렇게도 갈구하여 서슴없이 목숨바친 삶의 자유도, 민주주의도, 권리도, 새 제도도 우리는 맞이할수 없었다. 횡취당한 4. 19의 열매를 찾으려고 분노한 우리 젊은 세대들은 국토통일의 길에 과감히 나섰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라는 절규는 이 땅에 메아리쳤다.

남북의 젊은 학도들이 서로 안고 갈라져 살고있는 민족의 비분을 터뜨리며 웃고 울며 노래부를 꿈을 꾸었다. 꿈은 현실직전에 있었다.

그러나 5. 16의 총소리가 한강강변에 흘렀다. 열매를 횡취당한 4. 19는 또다시 군화에 짓밟혔다.

이 엄혹한 사태는 무엇을 말하는가? 원통한 일이지만 사태를 직시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이 반혁명세력을 맞받아 무찔러나갈 조직된 힘이 없었다. 쿠데타가 있은 그날부터 줄곧 반혁명에 대한 반격의 꿈을 꾸어보았다. 로동자들이 일어나고 농민이 나서고 시민들이 뛰여나오고 병사들이 총부리를 돌리고… 그러나 그것은 한낱 꿈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반격할 조직된 힘이 없었다. 우리들의 투쟁이 삶의 밑바닥에서 허덕이는 무산대중 다시말해서 가난한 이 땅의 로동자, 농민들을 비롯한 근로하는 민중들과 손을 잡고있지 못한 바로 거기에 반혁명의 공세를 물리치지 못한 원인이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응당 커다란 교훈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조금 더 각성했더라면 4. 19의 피자국우에 더러운 군화의 자국은 남기지 못하게 했을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이다. 군화는 지금도 짓밟고있다.》

방안에는 분노와 침묵이 무겁게 짓누르고있다. 홍인표는 안경을 벗어 안경알을 닦고있다.

채남은 눈을 감았다. 체포되여 어디에 가있는지도 모르는 아버지를 생각하는것이다. 모두다 군화에 짓밟힌 상처를 가지고있다.

《5. 16은 미국이 지휘조종하고있으며 비호하고있다는 사실은 우리모두가 알고있다. 미국은 자기들의 충실한 괴뢰들인 리승만도, 장면도 무용지물이 되자 헌신짝처럼 버리고 위기에 처한 식민지통치를 수습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쿠데타라는 음모로 새로운 하수인을 무대에 올려놓았다. 미국의 평론가 리프맨은 말하기를 <한국은 미국의 무력에 의해서 꾸며졌으며 미국의 원조에 의해서 보호되고있으며 미국의 보조금에 의하여 유지되고있다. >고 했다. 이처럼 이남의 실질적통치자는 미국이다. 이 땅의 정치는 청와대에서가 아니라 백악관에서 흘러나오는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4. 19를 두번씩이나 짓밟는자가 누구냐는 질문을 제기할 때 대답은 스스로 명확하다. 따라서 과업도 명백해진다. 우리들의 지향, 4. 19정신을 진정으로 구현하는것-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통일을 성취하려면 미군을 철거시키고 이남에 수립된 미국의 식민지통치제도를 전복해야 하며 그의 하수인들의 <정권>을 타도하고 그 페허우에 인민대중의 민주주의정권을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미군이 이 땅에 있는 한 어떤자가 <정권>을 잡든 그 이름이 다를뿐 그놈이 그놈 유복자요, 이복형제인것이다. 또 미국이 있는 한 조국통일도, 4. 19의 정신도 구현될수 없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반외세, 반매판, 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해야 한다. 이 혁명은 우리 민중의 영예로운 과업이다. 이 일은 물론 어려운 과업이다. 우리의 적은 간악하다. 지구상에서 가장 흉악하다는 미제국주의와의 대결이다. 특히 그들은 과거 일제와 달리 신식민주의수법을 쓰기때문에 우리 인민들이 아직 그 정체를 명확히 간파하지 못하고있다. 간악한 적이 천사의 베일을 쓰고 우리의 오장륙부를 파먹고있다. 거기에 매판세력, 관료세력들이 기생하고있다. 그들은 굳게 유착되고있다. 그러나 겁날것은 없다. 만일 대중이 각성되고 유일한 참모부의 지도아래 단합되여 궐기만 한다면 우리는 능히 우리의 적을 타승할수 있다.

우리는 이 땅의 청춘들이다. 우리는 자신의 임무를 자각해야 한다. 그 누구도 우리의 임무를 대신해줄수 없다. 문제는 조직이다. 참모부가 있어야 한다. 조그만 일을 하나 하는데도 주관하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데 어찌 간악한 적과 싸우는데 그 참모부가 없어서 될 말이냐? 우리는 4. 19의 열매를 횡취당한 사실에 대하여 한두번만 통분한게 아니지만 4. 19당시에도 만약 조직적인 지도밑에 목적의식적으로 투쟁이 진행되였더라면 그 열매를 그렇게 횡취당하지 않았을것이다.

지금 우리의 투쟁은 어려운 시련을 겪고있다. 반혁명세력은 시간이 갈수록 더 극악해질것이다. 검거선풍은 불고있다. 하자영교수는 행방불명이다. 준호, 허강 우리 성원들이 다섯이나 잡혔다. 모든것이 걸식당하고있다. 숨통이 터질듯 우리를 사방에서 압착한다. 민중은 침묵을 지키고있다. 그러나 이 침묵은 폭약을 안은 침묵이다. 력사가 그것을 가르친다. 파쑈가 오래가는 력사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총검의 세례를 받고있는 우리의 투쟁이지만 우리는 이러한 력사의 경험에서 앞을 전망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되는가? 4월의 그날처럼 거리로 뛰여나갈것인가?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우선 력량을 수습해야 하며 무모한 희생을 피해야 한다. 앞으로 도래할 투쟁을 준비하기 위해서 힘을 보존하고 축적해야 된다. 미군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켰지만 그것은 허물어져가는 그들의 신식민지통치제도를 총칼로 지탱해보려는 마지막발악이다. 미국의 취약성을 자체로 폭로하는것이다. 그러나 적은 어느때도 스스로 물러앉지 않는다. 그것을 무너뜨려야 한다. 새로 조성된 환경에 맞게 우리의 조직을 개편해야 할것이다. 나는 <라침판>의 발전적해산을 제의한다. 그리고 비합법조직으로서 <민족해방동맹>을 조직할것을 제의한다. 여기에는 우리들, 학생들뿐아니라 로동자, 농민, 지식인 등 각계각층의 혁명적청년핵심들이 망라되여야 한다. 현시점에서 우리는 파쑈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광범한 대중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이제부터 우리들은 저마다 투쟁의 작은 불씨로 되여 민중들속에 깊이 들어가서 그들 심장에 투쟁의 불씨를 지펴주어야 한다. 로동자, 농민들속에 들어가서 계몽사업을 통해서 그들을 각성시켜야 한다. 이 땅의 지성인들이 해야 할 력사적사명이다. 우리가 나갈 길, 우리가 승리할 길이 여기에 있다. 대중의 각성 특히 로동자, 농민의 각성이 없이는 승리를 기대할수 없다. 우리들의 새 전투는 시작되였다. 우리의 앞길에는 교수대도 있을것이고 감방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두렵지 않다. 이북은 우리에게 무한한 힘을 주고있다. 또 승리의 담보로 된다. 우리에게 어찌 힘이 없으며 승리할수 없겠느냐? 우리의 앞길은 험난하지만 광활하고 영광에 차있다.》

상춘의 보고는 끝났다. 보고를 하는 동안 그는 줄곧 흥분해있었다. 다른 학생들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1년동안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언제나 그것은 가슴이 벅차지 않을수 없는 일이였다. 성공도 있었고 실패도 있었지만 청춘을 바쳐 헌신한 일이였기때문에 감격과 분격이 없이는 회상할수 없었다. 그런데 또 그들이 나아갈 길을 제시해놓은것이다.

쿠데타로 어찌할바를 모르다가 이제 또 길을 열어놓았으니 빨리 그 길로 뛰여나가고싶은 욕망들이 준마의 조급성같이 체내에 차고넘치는것이였다.

홍인표는 안경을 번뜩이며 환성을 올렸다.

《혁명적리론없이는 혁명적실천이 없다고 했지만 오늘 우린 이 회의에서 리론을 세웠다. 리론도 머리에서 짜낸게 아니라 우리가 1년동안 피로 싸운 실천행동을 총화한 결론으로 얻은 리론이다. 봐라. 이제 우리의 한걸음한걸음은 모두 원쑤들의 가슴을 전률케 할거다. 내가 요새 며칠 아파하던 가슴의 보복으로 놈들의 가슴을 백배천배로 찢어놓을것이다.》

학생들은 자기들의 불타는 청춘을 투쟁에 바칠 들끓는 결의들을 토로했다.

이 민족수난의 시기에 통일을 위해, 민족을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바치는것보다 더 영예로운것이 어디 있으랴.

저 굽이치는 한강에 물이 마르지 않는 한 이날의 결의는 변치 않을것이며 이 땅과 더불어 길이 살리라.

《난 벌써 작년 여름에 고향에 떨어질 운명이였다. 우리 집 황소가 나가는 날 동시에 말이다. 그후 학비는 오지 않고 어차피 고향으로 가려던 참이였어. 농촌에 가서 농민들과 함께 일을 하며 그들을 깨우치겠다. 나의 생은 새로 시작된다.》

홍인표는 벌써부터 고향으로 갈 생각이다.

《넌 대학에 남아라.》

상춘이 그에게 권고했다.

《왜?》

《넌 대학에서 할 일이 많다.》

학생들앞에는 많은 일이 가로놓여있다.

민족문제연구도 앞으로 많은 과제를 가지고있다. 박정희는 일본이 길러놓은 주구니만치 그러지 않아도 장면이 이미 일본사람들에게 문을 열어놓았고 미국이 그것을 바라는 이상 일본과의 문제는 복잡하게 될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대학에서 학생들이 투쟁할 일이 얼마든지 있다. 그 예견들을 가지고 학생들은 날이 저물고 밤이 깊어가도록 토론을 했다.

어머니는 밖에서 망을 봐주었다. 회의가 시작될 때 먼저 집으로 가시라고 상춘도 그랬고 채남도 권했으나 어머니는 그날 경상도로 떠난다는 아들을 바래주고싶었다.

회의는 끝나고 학생들도 하나, 둘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상춘과 어머니와 채남은 강뚝에서 나루배를 기다렸다. 경상도로 떠나는 차를 서울역에서 타지 않고 로량진에서 배를 탈 예정이였다. 형사들의 눈을 피해서였다.

강은 어둡고 물소리는 잔잔했다. 낮에 불던 바람이 잦아든것이다. 건너편에 있는 나루배는 좀체로 오지 않고 손님이 차기만 기다렸다. 두런두런 강건너 말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 모시고 그만 가요.》

상춘은 채남에게 부탁하나 채남은 듣지 않는다. 그도 떠나는 상춘을 어머니와 같이 보고싶은것이다. 보통때 같으면 경상도에 다녀오는것이 아무 일도 아니지만 상춘은 지금 피해다니는 몸이기때문에 안전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떠나가는것을 기어이 보고싶었다.

나루배는 건너오고 다시 건너가는편에 상춘은 껑충 뛰여올랐다.

《인제들 가세요.》

사공이 노대를 찔러 배를 떼려 한다. 어머니는 별안간 생각이 난다.

로량진까지라도 채남과 가면 더 안전할것 같았다. 사공을 불러 배를 잠간 멈추게 하고 채남의 등을 밀어 배에 오르게 했다. 그제서야 어머니는 마음이 한결 놓인다.

《난 아까 다 얘길 했다.》

어머니는 떠나는 배에 대고 그런 말을 해주었다. 일성장군님의 뒤를 따르며 그이를 항상 마음에 모시고 일을 하라고.

《알았어요.》

미끄러져가는 배에서 벌써 아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고 굵은 목소리만 들려왔다. 다음은 노젓는 소리만이 들렸다. 가끔 상춘과 채남이 뭐라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삐걱거리며 가는 배소리에 놀라 물오리가 난다. 북쪽으로 날아간다.

배는 건너편에 닿았는지 사공의 조심해 내리라는 말소리가 들리고 이어 《어머니!》 하고 부르는 상춘의 목소리가 들린다.

《가세요.》

《오냐.》

어머니는 그래놓고도 얼른 강변을 떠날수가 없었다. 허리를 굽혀 물갈피를 스쳐 건너편을 본다. 상춘과 채남이 나란히 가는 그림자가 모래밭에 희끄무레하게 보인다.

어머니는 부디 성공하라고 마음속으로 빈다. 폭압이 휘몰아치는 속에 아들은 밤길을 타서 경상도로 떠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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