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굽이치는 한강
1
한밤중에 요란하게 울린 총성은 잠자던 서울시민들에게 비상한 충격을 주었다. 총소리는 룡산방면과 도심지대에서 일어났다. 시민들은 초조하게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상춘도 룡산경찰서앞으로 나가보았다. 그는 어제 양수리에서 돌아와 지방에서 오는 대표들을 룡산역에서 만나보고 원효로에 있는 조광래네 집에서 잤던것이다.
거리에는 탄피가 여기저기 널려있고 중무장한 군인들로 삼엄했다. 그들의 표정은 살벌하고 굳었다. 복장조차 엷은 국방색바탕에 주황빛이 점박히여 사막의 징그러운 무슨 보호색동물을 련상시켰다. 접근해보려는 시민들을 그들은 총검으로 위협해 헤치고 쫓았다. 인민들의 편은 아니란것이 첫눈에 알리였다.
상춘은 총검에서 오는 반감이 전류같이 몸에 흐른다. 그는 무의식중에 반항하듯 군인앞으로 바싹 다가서 본다. 역시 총검이 그의 가슴을 막는다. 거의 본능적으로 통일이 꺾인다는 분노가 북받치며 가슴은 터질것 같다.
사태의 진상을 알수 없는 답답함까지 겹친다.
전쟁이 휩쓸고 간듯 한 잔해가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경찰서의 깨여진 유리창, 부서진 문짝들, 아무데나 빼여던진 책상서랍, 바람에 날리는 서류뭉치들, 경찰서안팎에 말없이 두셋씩 모여섰거나 궁금해서 기웃거려보는 시민들을 적의와 위구의 눈초리로 경계하는 경찰관들의 모습은 마치 패잔병 그것이였다.
조광래가 상춘에게로 급히 오며 일러주었다.
《알수 없다. 쿠데타 같기도 하고…》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집에서 나오지 않고 라지오에 매달려있었던것이다.
《삼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군사혁명위원회>가 뭔지 그걸 조직했다는거야. 지금 방송이 나왔다. 반공과 유엔헌장준수라고 저들의 <혁명공약>이란것도 발표하고…》
《반공?》
《…》
조광래의 얼굴은 이른아침의 푸른빛이 어리여 그런지 파래보였다. 그것을 보자 상춘은 방금 느끼던 알지 못할 통분이 더해가며 긴장돼가는 자신을 의심하게 되였다.
《큰일났다.》
네거리에서는 군인이 공포를 쏘아 모여서는 군중을 해산시킨다. 거리는 싸늘해지며 공포가 깔린다. 상춘과 조광래는 걸으면서 대책을 의논했다.
《넌 계속 보도를 듣고 나중에 대학으로 나오너라. 난 준호한텔 들려서 가겠다.》
상춘은 시내로 들어오면서 이것저것 살펴보았다. 어제까지 그렇게도 통일의 기분으로 차있던 거리는 불안으로 바뀌여 차디차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수군거린다.
군인들의 쿠데타라고도 한다.
상춘의 머리에는 최근년간 미국의 조종을 받아가며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몇몇 나라 이름과 그
상춘은 룡산에서 종로까지 오는 동안 대체로 쿠데타의 륜곽을 알게 되였다.
그날 새벽 특수부대와 해병대가 김포서 서울시내로 쳐들어옴으로써 쿠데타는 시작된것이다. 후속부대로 륙군 두개 사단이 시내로 진주해들어와서 중앙방송국을 비롯한 각 기관을 점령했으며 포병부대도 쿠데타에 가담했다. 쿠데타군의 선발대가 한강인도교를 건너 북한강 파출소앞에 육박해와서 졸고있던 순경에게 총끝을 들이밀자 잠에서 깨여난 경찰은 깜짝 놀라며 인민군인줄 알고 《인민군 만세!》를 불렀다. 그것이 조포한 군인들의 노여움을 사게 되여 발사와 수류탄투척이 첫 원인이 되였다고 사람들은 랭소한다.
멋도 모르고 검문하려던 헌병들과 쿠데타군사이에 한강제방에서 잠시동안 공방전이 벌어져서 사상자가 났다고 수군거린다. 사람들은 누구와 누가 싸운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며 적대감정을 표시하는 군인들을 경계와 멸시의 눈으로 본다. 군인들은 그들대로 적의의 눈초리로 사람들을 본다.
시민들과 군인들사이에 오고가는 차디찬 감정이다.
어제까지 들끓던 통일의 기쁨으로 서로 신뢰의 기분에 차있던 거리의 분위기는 그림자도 찾을수 없다. 하루밤사이에 죽은 거리로 화한것이다. 사람들은 갑자기 벙어리가 된듯 했다. 도대체 총소리와 군대출동의 정체를 몰라 어리벙벙해있는것이다. 상춘은 지옥의 거리를 걷는 기분이였다.
교통은 완전히 마비되였다. 뻐스도 없다. 전차도 중간중간 멈춰섰다. 운전사와 차장이 인도로 나와서 전차를 지키기도 하고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내린것이다. 거리에는 소속번호판을 종이로 싸서 정체를 완전히 감춘 군용차량만이 소정된 시속을 무시하고 초속으로 질주한다. 땅크가 육중한 몸으로 아스팔트를 물어뜯으며 시가에 공포분위기의 음향을 뿌리고있다. 거리는 불안과 의혹과 공포로 무거웠다. 밤을 하나 사이에 두고 어제와 오늘이 이렇게도 다를수 있을가?
준호는 상춘을 보자 제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펄펄 뛰였다.
언제나 랭철-그것같이 침착한 그로서는 좀체로 있는 일이 아니였다. 그의 통분을 알수 있었다. 그는 이미 사태를 알고있었다. 허강이 신문 호외를 가지고 왔던것이다.
《비둘기망에 걸렸다.》
준호는 책을 정리하고있었다. 원고 쓰던것은 복원에게 주어 감추게 한다.
주인집에서는 바깥사태는 전혀 모르는듯 부엌에서 도마소리를 내며 여느날과 같이 평화스럽게도 조반을 짓고있다.
준호의 방에는 긴장이 꽉 차있다. 복원은 상춘이 갔건만 별로 인사할 경황도 아닌듯 준호가 주는 책과 서류들을 주인집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례사롭게 저의 방으로 나르고있다.
《너도 빨리 집에 가서 치울게 있으면 치워라. 오늘 행동은 조심하고… 다른 애들한테 비상련락을 띄웠다. 군대들의 쿠데타니까 더 생각할거 없어. 벌써 반공을 국시로 선포도 했고…》
상춘은 급히 준호의 하숙을 나왔다.
《비둘기망에 걸렸다.》
준호의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았다. 통일의 문앞에 절벽이 와서 가로막는것이다. 걸으면서도 정신이 아뜩아뜩했다.
군부에서는 정월부터 《비둘기작전훈련》이란것을 해왔다.
학생들이 4. 19기념일에 침묵시위만 했기때문에 《비둘기훈련》은 대상을 잃은 두견같이 발광을 하다가 그것의 본성으로 보아 아무에게나 함부로 달려드는것인가.
상춘은 집으로 가는 빠른 로정을 잡아 창덕궁뒤 취운정으로 올라갔다. 산에는 아침산보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군인들의 돌발적인 총소리는 시민들의 정상생활까지 하루아침에 여지없이 파괴해버린것이다.
산에서 내려다보이는 시가는 모든 교통이 정지되여 소음 하나 없었다. 죽음의 도시였다. 동물원의 물새들의 울음소리도 불길하게만 들렸다.
집에도 검은 장막이 내린듯 했다.
어머니와 귀선이 상춘의 방에 들어가서 책들을 치우고있었다. 준호가 띄운 련락체계에 의해서 어느 학생인가 벌써 집에 다녀간것이다. 집에 있지 말고 피하라고. 귀선은 시장에 나가다가 길이 막혀 되돌아왔다. 차복할머니가 연방 드나들며 궁금해한다. 무슨 총소리였으며 통일은 어찌되느냐고 묻는다. 상춘은 적당한 대답을 주지 못한다.
어머니는 숫제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몹시 걱정만 하는 얼굴이였다.
《어서 밥을 먹고 나가라. 널 또 집에서 내보내는 시절이 왔나부다.》
어머니의 말은 조용하면서도 원한에 차있었다.
《통일이 또 막히는거 아뉴?》
귀선이 난감한 얼굴로 상춘에게 매달리듯 말했다.
《통일이 어떻게…》
상춘은 되도록 당황한 마음을 내색하려 하지 않았다. 침착한 태도로 책을 정리했다. 별로 감출 책도 없었다. 생각하면 그는 아무러한 음모를 한 일도 없다. 정정당당하게 4천만의 뜻을 받아 학생회담을 제창했을뿐이다. 누구에게도 피해다녀야 할 일은 없다. 그러면서도 감정은 추격당하는 사람의 위험을 느낀다.
채남이 총총히 들어왔다. 역시 핼쑥한 얼굴이였다. 그는 더 말이 필요치 않음을 느끼는지 아무 말도 없다. 어머니네 식구들의 표정과 거동으로 보아 그가 전하려는 내용을 이미 다 알고있는지 유정과 영조조차도 어른들의 얼굴에서 심상치 않은 공기를 감득하고 한편에 비켜서서 눈치만 살피고있다.
《아버지가 가보라고 하셔서 왔어요.》
채남은 상춘이 책을 다 치우고 일어선 다음에야 그 한마디를 하고 걱정을 했다.
《어떻게 될가요?》
어머니와 귀선모두 상춘의 입만 쳐다보았다.
《하선생님이 뭐라시지 않아요?》
상춘은 도리여 채남에게 물었다.
《당분간 몸들을 피하래요. 아버진 벌써 어디로 나가셨어요.》
불안은 더 가증해갔다. 상춘은 급히 조반을 먹었다.
어머니는 어딘가 잠간 다녀들어왔다.
《저아래 수상한 사람들이 보인다.》
아들의 등을 밀다싶이 나가라고 재촉했다.
어머니는 집추녀끝에 수건을 걸었다.
《이게 걸렸을 땐 집에 들어오고 그렇잖으면 아예 가까이도 말아라.》
안전신호였다. 집에 형사가 와있다든지 수상한 그림자가 보일 때는 그것을 치워버리기로 한다.
《너무 걱정마세요.》
상춘은 어머니를 위로하며 채남과 함께 집을 나섰다.
《이 일을 어쩜 좋아요? 통일이 래일로 오고있었는데.》
채남은 어머니앞에서는 걱정을 안하다가 그들 둘만이 되자 발을 동동거렸다.
그러나 상춘으로서도 대책이 있는것은 아니였다. 쿠데타를 일으킨자들에 대한 적개심과 원한밖에는.
《어디로 가요?》
채남이 물었다.
《대학에 나가봐야지. 이럴 땔수록…》
《괜찮을가?》
《미리 겁만 낼건 없어.》
《잡히면 난 싫어.》
《잡히긴. 바보같이…》
《요전 랍치됐을 땐 내가 얼마나 혼났기에…》
《약한 소리 말아요. 무슨 죄가 있다구 기분나쁘게.》
《언젠 죄가 있어 가두는 세상인가요 뭐.》
거리에는 아까보다도 군인들이 더 많이 나타났고 삼엄한 기분도 더했다. 그들은 의과대학앞까지 왔다.
《아무때라도 급하면 여길 가요.》
채남은 상춘에게 종이쪽지 하나를 주었다. 어느 주소가 적혀있었다.
《동무네 집예요. 어머니와만 단둘이 사는… 안전한 곳예요.》
상춘은 주소를 머리에 넣어두고 종이는 입으로 씹어버렸다.
《진상을 파악하기도 전에 이렇게 숨을 생각만…》
실소하듯 웃었다.
《그래도 만일을 념려해서… 아버진 혁명이란 말에 조금도 속지 말라고 하셨대두요…》
《속지 않아.》
대학교정에는 학생들이 여기저기 모여서서 그날 새벽사태에 대하여 여러가지 억측과 해석을 가하고있었다. 비상과 긴장과 불안이 감돌았다.
강의는 휴강이였다. 보이지 않는 교수도 많았고 학생들도 제대로 나와있지 않았다.
박석근이 상춘을 알아보고 달려왔다. 그는 작년 3. 15선거때에 《공명선거》문제로 상춘과 의견이 달라진 후 교섭이 없었고 민주당이 집권한 후로는 모든것에 만족을 느껴 공부에만 열중해왔다. 그의 아버지는 경상북도 어느 군의 군수가 되였다든가.
《형은 오늘 쿠데타를 어떻게 보죠?》
《어떻게라니?》
상춘은 반문했다.
《미국이 이번 쿠데타에 관계했는가 안했는가 말이요.》
《이남의 모든 사태가 미국의 참여없이 되는 일을 한번이라도 우리가 봤나요?》
《그건 대리대사와 매그루더 <유엔군>사령관의 성명이 있는데도 형은 미국이 관계했다고 봐요?》
상춘은 아직 그런 성명을 본 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형은 엉뚱한 억측을 해요.》
상춘은 박석근을 무엇이라고 론박할수가 없었다.
그날 새벽에 쿠데타가 발생하자 《유엔군》사령관 매그루더는 주《한》미국 대리대사와 함께 장면총리의 《한국정부》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던것이다. 그것으로 보면 미국이 쿠데타에 관계했다고 단정하기도 어려웠다.
많은 학생들이 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있었다.
왜냐하면 쿠데타를 일으킨 《군사혁명위원회》에서 내놓은 《혁명공약》을 보면 학생들이 매일같이 판문점으로 가려던 조국통일의 길은 여지없이 막혀버리고말았기때문이다.
군인들은 《조국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수 있는 《실력배양》에 전력을 집중한다는것이다. 그리고 계엄령을 선포해 국민의 손발을 묶어놓았으니 학생들이 계획하는 통일운동과는 조그만 공통성도 없는 리념으로나 실제문제로나 빙탄의 사이로 되고말았다.
이 엄청난 사태에 학생들은 분개했다. 분개는 쿠데타의 원흉이 누구인가 캐보자는데로 기울어지며 미국의 관여여부에 많이 관심을 돌린다.
상춘은 박석근을 반박할 흥미도 없었다. 그럴 때도 아니였다. 모여든 학생들가운데는 한왕렬도 있었다. 그는 흥분한 박석근의 말을 듣고나더니 앙천대소를 했다.
《이 사대주의자야!》
《뭐?》
박석근은 한왕렬에게 덤빌듯 했다. 한왕렬은 완력으로
《사대주의의 전형이다. 미국이 관계를 했건 안했건 그것이 무슨 상관이냐? <혁명위원회>가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첫째로 그것이 문제로 돼야지. 미국이 관계했느냐? 안했느냐?》
그는 박석근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침을 탁 뱉었다.
《그래 그 강도들이 추구하는게 무엇이냐?》
박석근은 왕렬의 주제넘는 태도에 왈칵 화를 냈다.
《말조심해라. 4. 19혁명의 계승이라고 하지 않니. 적어도 <혁명위원회>라고 하는데 강도가 무엇이냐?》
《밤중에 총들고 나선 놈들을 강도라고 안하면 세상에 누굴 강도라고 하며 또 그들이 추구하는 목적이 그래 무엇이냐? 반공과 유엔헌장준수? 그건 장면내각이 견지해오는거야.》
《첫째로 장면<정부>의 무능과 부패를 일소하고 썩은 기성정치인들을 반대한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조금 두고봐야 알 일이지. 너같이 처음부터 미국이 관계하지 않았으니까 강도다, 론리가 너무 빈약하지 않느냐 말이다. 그렇다 해서 난 쿠데타를 지지하는 립장은 아니다. 우리 젊은 지성들은 어떠한 사태에서든지 랭정할줄 알자. 그뿐이다.》
《이 자식아, 어떤 멍텅구리가 그까짓것쯤의 미사려구의 준비도 없이 일국의 <정권>을 잡아보겠다고 할가?》
《그럼, 네 의견 같아선 장면각하의 무능과 부패를 보고도 우린 낮잠이나 자면서 썩은 냄새에 향수처럼 도취해있어야 옳단 말인가?》
《무능, 무능하지만 이제 겨우 <제2공화국>이 탄생한지 반년밖에 안된다. 리승만이 12년동안 망쳐놓은 정치가 하루아침에 바로잡힐줄 알았다면 그놈들이 정치의 ABC도 모르는 무뢰한들이다.》
그들의 대립은 론쟁이랄것도 없었으나 각각
박석근은 민주당《정부》를 옹호하는 립장이였고 왕렬은 4. 19직후에는 형무소로 준호를 맞이하러까지 갔듯이 언제나 격동기를 놓치지 않고 활약하는 밀정이였다.
그들은 아무것도 거리낌없이
어제까지도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로 정열을 불태우던 학생들, 오늘의 사태가 장차 그들의 운동에 무엇을 가져다줄것인가, 그들이 응시하는 곳은 박석근이나 왕렬과 같이 그런 얕은 곳이 아니였다. 깊고 복잡했다. 별로 말들이 없이 많이 들으며 생각을 하고있었다.
학생운영위원회사무실에는 준호를 비롯한 학생간부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그곳 역시 침통한 공기로 무거웠다.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 교정에서 이야기되는 내용들, 박석근과 한왕렬이 싸운 이야기까지 부단히 사태판단의 한 자료로서 들어오고있었다.
시간은 어느덧 정오가 되고도 간단없이 흘러간다. 들어오는 정보는 계속 불길한것뿐이였다. 군대는 시내를 덮었고 한편에서는 혁신계계통의 사람들을 구속하기 시작한다고 했다.
밖은 광풍이 분다. 학생간부들은 그 광풍이 부는 거리에 혼자서 나가기가 싫은듯 언제나 동지들과 운명을 같이하고싶은지 자리를 뜨지 않고있다.
그러한 때에 그들에게 적절한 조언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젊은 학도들의 량심과 지성과 용기를 가지고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밖에 다른 길은 없었다. 오직 그들에게 보내온 하자영교수의 간단한 글이 있을뿐이였다. 준호앞으로 밀봉해온것이다.
《쿠데타는 최근 미국이 각국에서 인민들의 각성에 의하여 일어나는 정치적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정치적도박의 한 형태로 나타나는 추세에 있다.
이번 쿠데타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할것이다. 아무러한 미련도 주저도 없이 반동공세로 판단하고 행동하라.》
준호는 상춘을 불러 슬며시 그것을 보여주었다.
채남을 일부러 집에 보내 전한 말 그대로의 내용이다.
《아까 네 말대로 비둘기망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
준호는 일어났다.
《여러분!》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인젠 더 판단을 지연할수 없습니다. 반공과 유엔헌장준수는 리승만과 장면이 지켜오던 바로 그 정책입니다. 미국이 지시했고 또한 <유엔군>의 탈을 쓴 미군은 우리의 땅을 갈라놓은 장본이요, 지금도 분계선을 막고 있는자들입니다. 진작 우리가 판문점으로 가지 못한것이 죽도록 후회될뿐입니다. 그러나 우린 굴할수 없습니다.
우리의 투쟁을 멈출수는 없습니다. 그걸 위하여 오늘은 새로운 정세에 적응한 투쟁대책을 세우는것이 급선무입니다. 어느때보다도 강한 우리의 조직규률이 요구됩니다. 계속 지시를 줄테니까 어김없이 그것을 리행해야 됩니다. 놈들이 비상사태라면 우리도 비상사탭니다. 놈들은 계엄령을 폈지만 그렇다 해서 우리의 정열과 이 땅을 위하는 불덩어리를 끌수는 없습니다. 우선 놈들의 본색을 밝혀내야 합니다. 최대한으로 정보를 수집합시다. 그리고 쿠데타원흉들의 정체를 낱낱이 폭로해서 국민에게 알려줍시다.》
학생들이 굳게 포옹하고 하나둘씩 운영위원회사무실을 나왔다. 조광래가 벽에 붙은 구호들을 언제 또다시 쓰려는지 떼려들었다.
《떼지 말아.》
준호와 상춘이 동시에 소리친다.
《붙이지 않은게 있으면 오히려 더 붙이라!》
조광래는 잠간 머뭇거리더니 손을 들어 잘못 생각했음을 표시하고 《아리랑을 불러 남북이 소리를 합치자!》라는 구호를 붙인다.
그것은 마치도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수업》에서 마지막으로 프랑스말을 가르치는것 같이 당분간은 마지막구호붙이기로 될지도 몰라서 학생들의 마음을 침통케 했다.
홍인표가 구호밑으로 나가서 웨친다.
《아리랑을 부르자!》
그는 동의를 기다리지도 않고 제가 먼저 부르기 시작했다.
《아리랑》은 어느 틈엔가 우렁찬 합창으로 화한다. 운동장전체가 그것을 부른다. 남북학생들이 부르려던 《아리랑》!
아, 지금 남조선의 학생들이 적의 불의의 습격을 받고서 먼저 그것을 부르게 된다.
노래여! 하늘로 울려퍼지라. 남북조선학생들의 가슴을 파도같이 치도록 울려라.
아, 《아리랑》이 애조라고 하던 생각은 잘못이였다. 이렇게도 비장하게 울리는것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노래소리에는 울음이 섞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