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영원한 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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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학생회담을 앞두고 학생들은 준비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생각 같아서는 맨몸으로 림진강을 건느고 장단을 지나서 판문점까지 가고싶다. 서울서 하루의 로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13일 시위에서도 체험한것처럼 《정부》가 그것을 묵인한다는것은 꿈에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온갖 방해를 물리치고 강행하는 길밖에 다른 길은 없었다. 치밀한 행동계획이 필요했다. 그 계획에 따라 전국대학이 일시에 행동하도록 비밀이 보장되여야 한다.

그 최종계획을 토의하기 위한 회의를 15일에 가지였다. 지방에서 온 대표들이 아직 가지 않고있었다. 일부는 지금도 계속 올라오고있다. 이미 올라온 학생들, 올라오는 학생들, 최종계획에 따라 행동을 개시할 지방대학들, 조직과의 련락사업은 복잡하게 진행돼가고있다. 20여명 학생이 회의에 참가했다.

장소는 서울을 멀리 벗어나 북한강류역 양수리강변으로 정했다. 귀선이 믿는 장사군녀자들을 참가시켜 교외의 봄놀이로 가장했다.

차에서 내린 일행은 강변마을앞 보리밭사이길을 지나 강으로 나갔다.

길에서 길짱구를 뜯던 촌아이들이 지나가는 일행에게 비실비실 길을 비켜주었다. 아직 고개를 숙이지 않은 푸른 보리밭과 아이들의 누런 얼굴들을 보면 농촌이 넘어야 할 보리고개의 가파로운 령이 아득하게 생각되였다.

앞에 강이 흘렀다. 뒤산에 꽃이 피였다. 하늘에 종달새가 울었다. 날은 화창했다. 그래도 마을의 풍경이 화려해보이지 않고 배고픈 사람의 얼굴모양 해빛아래 나른하게 늘어져만 있었다.

강물은 좋았다. 시원하게 사람들의 속을 씻어주며 흘렀다. 강심에는 흐르는 물에 배의 운행을 맡기고 키를 느른히 잡은채 사공이 한가로이 이쪽을 보고있다. 학생들이 손을 흔들어보이나 그는 담배연기를 강물에 날리며 화답해주지 않았다.

강건너 나무라고는 별로 없는 벌거벗은 높은 산허리에 탑이 하나 보였다.

수종사라는 지금은 페허로 된 절터였다.

옛날 세조때 왕이 강을 내려오다가 저 높은 산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듣고 절이 있나 사람을 시켜 찾아보았다. 절은 없고 어느 바위아래 고이는 샘물에 바가지가 한짝 엎어져있어 그우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지는 물방울소리가 골짜기에 메아리쳐 종소리로 들리였던것이다. 왕은 그자리에 절을 짓도록 명령했다.

수종사라는 절이름의 유래였다.

지리, 력사에 밝은 학생이 있어서 설명을 해주었다.

산은 라체의 산이였다. 그 아래마을도 산을 닮아 정자나무 한그루 없이 신록의 초여름이건만 메말라만 보이였다.

그래도 교회당은 생겨 례배에 사람들을 부르는지 종소리가 강을 건너 이쪽에까지 뎅그렁뎅그렁 들리였다.

《배고프다아, 배고프다아-》

배고픈 저 마을이 종소리나 들으며 복음서나 읽고있으라고 교회당을 지어준 미국을 좋아하지는 않을텐데…

머지않아 그 종소리가 주리고 압박받는 농민들을 통일에로 부르는 신호의 노한 종소리로 되게 해야 한다.

학생들은 지금 그것을 위하여 여기 와있다.

녀자들은 한편에서 취사준비를 하고 학생들은 한편에서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는 여러가지 행동계획이 론의되였다. 학생들이 북으로 떠나기전에 그들이 작사한 《아리랑》을 부를것도 결정했다. 남북의 학생들이 정한 시간에 일제히 한쪽은 남에서 한쪽은 북에서 《아리랑》을 부른다.

맑은 하늘이 그들의 목소리를 전해준다. 동족이 호흡을 잠시라도 같이함으로써 통일의 의식을 보다 더 많이 조성하자는것이였다.

《아리랑》은 애조를 띠여 적당치 않고 《양산도》가 좋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역시 누구나 부를수 있는 《아리랑》을 선택했다. 5월 20일에 남북학생들이 판문점에서 만날것을 결정했다.

회의가 끝나고 식사도 끝난 다음 녀자들에게 《아리랑》을 부른다는것만은 알려주었다.

녀자들은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했다. 누구의 입에서 먼저 나왔는지 그것은 삽시간에 합창이 되였다.

앞에 흐르는 한강이 마치도 림진강이나 되여 그 강건너가 북녘땅인것같이 강을 향하여 《아리랑》을 불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정든 님 가시고 오지 않는

이북땅 꿈에만 길은 열리네

 

아직 가사는 정해지지 않았다. 녀자들의 입에서 즉흥적으로 나오는대로 마구 불렀으나 심장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생활적인 사연들이였다.

하나하나 가슴을 찢는것 같았다.

홍인표는 넋을 잃고 그들의 노래와 춤을 보고 섰다.

그는 충청도지방 고등학교들에 민통련행동계획을 전달하려고 갔다가 돌아왔다.

《난 역시 공상가였나보다.》

옆에 상춘이 다가서자 그는 시름없이 중얼거렸다.

《왜?》

상춘이 물어보았다. 홍인표는 작년 여름방학에 고향에 다녀온 후부터는 종래의 상아탑속의 공상가적태도를 버리고 현실에 접촉하며 《2대악법반대투쟁》 같은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해 잘 싸웠다.

머리가 좋으니만큼 깨닫는것도 빨랐다. 《라침판》에서는 머지않아 그를 회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으며 이번 지방에 파견한것 역시 상춘이 추천한것이였다.

그런데 그는 자기를 아직도 공상가라고 했다.

《난 말이다. 판문점에 가서 이북학생을 만나면 사상문제도 아니고 정치적인 문제도 아니고 오직 학문의 진리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할 꿈을 꾸어왔다. 특히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해서 이남에서 포만하도록 맛보는 <자유>, 방종도 <자유>로 계산되는 이남, 그러나 실상은 아무것도 아닌 물거품같은 자유, 그 자유에 대해서 난 이야기하고 이북에는 어떠한 자유가 있는가 그것이 알고싶었다. 그래서 내 입에서는 그 정의들과 그에 대한 해석들이 폭포같이 쏟아질것이다. 이북학생들도 내 탐구심에는 경탄할거야. 그러나 난 지금 그게 한갖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는걸 저들의 춤을 보며 깨달았어.》

《어떻게?》

상춘은 흥미를 느끼였다.

《이북학생들을 만나면 학문의 진리도 아니고 더구나 <정부>의 개새끼들이 말하는것 같이 사상론쟁으로 누가 지고 이기고 하는 문제도 아니고 만나면 먼저 울음이 터질것만 같아 온종일 밤새도록 울것 같다. 그리고 내 입에서 맨 처음 무슨 말이 튀여나올지, 또 이북학생의 입에서 무슨 말이 튀여나올지 모르지만 그 말이야말로 소중한것이다. 그것은 학문의 진리보다도,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게 아닐가. 아, 내가 첫마디 말들을 모두 기록할수만 있다면… 그 대화들을 모두 기록해둘수만 있다면… 그건 위대한 문학으로 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가 문제 아니다. <일리아드>는 15 693행의 시구로 되여있지만 우리의 판문점기록은 4천만행으로 될것이다. 우리 나라 인구가 4천만인데 어린애까지 말을 해야 4천만행으로 되지 않느냐는 계산이지만 어린애들까지 하고싶은 말이 있는 우리 민족이 아닌가. …》

홍인표는 스스로 격동되여 흐려지는 눈을 상춘에게 보이기 싫어 하늘로 얼굴을 돌렸다.

상춘도 역시 얼굴이 뜨거워왔다.

《종달새둥지가 저기 있을거야.》

《거기 내리박혔지?》

강변모래밭과 보리밭상공에서는 종달새가 시끄러울만치 울었다.

녀자들은 계속 《아리랑》을 불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꿈길에 다니는 38선

잔디는 봄에도 나지 않았네

 

《그럴거야. 꿈에 밟아도 잔딘 나지 않지. 모두 시인들이다.》

《생활은 시니까…》

《아리랑》은 슬픈 곡이라 하지만 그것을 부르는 녀자들의 춤은 환희로 넘어갔다. 그들은 어깨를 겯고 둘레를 지어 원무같이 강변모래밭을 빙빙 돌았다.

귀선도 그렇게 춤추며 돌아갔다. 상춘은 일찌기 형수가 그토록 쾌활하고 명랑한것을 보지 못했다. 가락에 맞는 동작은 아니였으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팔을 올리며 손을 놀리고 치마바람을 날리면서 돌아가는 그것은 하나의 도취였다. 형식을 초월한 아름다움이였다.

갈망이였다. 황홀경이였다.

긴긴 봄날의 하루해가 넘어갈줄 모르는 강변모래밭에서 그들의 춤도 끝날줄을 몰랐다.

차시간이 되여 그 유쾌한 놀이를 끝낸 녀자들은 이번에는 깊은 생각에 잠긴 행렬로 변하여 묵묵히 정거장으로 나오고있었다. 서울로 돌아가면 여전히 그리운 사람들이 없는 집, 리별도 10년이상을 계속해왔으니 적응성이란것도 있으련만 하루같이 그립기만 한 헤여진 가족들이였다.

《도련님!》

귀선은 상춘을 불렀다.

《나도 학생들을 따라갑시다!》

《…》

《학생들이 가면 형님도 올거유.》

《형님이 지금 학생일가요?》

《그쪽에선 어른들도 대학에 다닌답니다. 또 학생이 아니라도 형님이 어머니나 날 생각해서도 안 오겠수?》

《정말 형님도 올거예요.》

《난 꼭 올것만 같으우.》

《오잖고요.》

《저 녀자들도 모두 따라간다우.》

《모두들 가세요. 갈수만 있으면 전민족이 감 더 좋죠. 가세요. 아주머니.》

상춘은 공연히 목이 메여 형수를 보지 못했다. 그의 눈에도 반드시 눈물이 고였을것 같아 보기가 민망스러웠다.

귀선은 밤에 집에 와서도 어머니에게 그 말을 또 했다.

어머니는 첫마디에 찬동을 해주었다.

《가거라!》

《도련님도 가자고 해요.》

상춘은 학생들과 다른 곳으로 가고 집으로는 오지 않았다.

《가거라. 니가 왜 안 가겠니.》

어머니는 누워서도 혼자 자꾸 그 말을 했다.

학생들이 북으로 가는 그 광경을 그려보는것이였다.

경상도학생들이, 그 많은 학생들이 기차나 자동차는 다 타지 못할것이고 걸어서 들과 산이 하얗게 북으로 북으로 추풍령을 넘고 새재를 넘고, 전라도학생들은 소백산을 넘고 서울서는 북한산을 넘고 그동안 밥들도 먹어야 할것이니 녀자들은 밥을 해주며…

《가거라.》

《가겠어요.》

림진강 이쪽에 수천, 수백만 사람들이 모이고 저쪽에서도 그렇게 모이고 서로 부르고 대답하고, 누가 그 힘을 막을것이냐.

미국놈이 막을것이냐, 《국군》이 막을것이냐, 어머니의 공상은 한이 없었다. 아니 그것은 공상이 아니였다. 아들이 래일이라도 떠나는 길이였다.

《가거라!》

귀선은 잠이 든 모양이였다. 대답이 없었다. 어머니도 잠들어보려고 자리를 펴고 고쳐 누웠으나 잠은 도무지 와주지를 않았다.

새벽 4시가 되였을가. 총소리가 멀리 들리였다.

룡산방면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어미야…》

귀선을 깨웠다. 그는 금방 일어나 앉았다.

귀선은 무슨 총소린지 몰랐다.

《지금 꿈을 꾸었어요. 북으로 막 밀려가는 꿈을. 그런데 미국놈이 총을 쏘겠지요. 그래도 워낙 사람이 많으니까 막 밟고 넘어갔어요. 분계선이라는데가 저만치 보이고 저쪽에서도 사람들이 기발을 들고 오더군요. 전 어머니 손을 끌며 마구 뛰였어요. 어머닌 어떻게 나보다도 눈이 밝으신지 저기 아범이 있다고 하시는데 내 눈엔 안 보이더군요. 그래 나만 먼저 뛰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미국놈이 총을 내대지 않아요. 그냥 그놈한테 덤빌라고 하다가 어머니가 깨우시는 바람에…》

귀선은 자못 분한 모양이였다. 총소리는 조금 멎었다.

《웬 총소릴가?》

어머니는 궁금해마지 않았다.

《꿈에서처럼 학생들이 일어났을가요?》

《글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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