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영원한 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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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대학 민통련에서는 대의원총회를 다방에서 열었다.

오후 5시 강의가 끝난 뒤여서 각 대학에서는 대의원 아닌 학생들도 많이 모여왔다.

예정으로는 민족통일전국학생련맹결성 준비대회를 열기로 했었다.

지방대학들에서도 대표들이 올라와있기는 했으나 도착하지 못한 곳도 있어서 대회는 아직 미정이였다.

그러나 지금의 정세는 대회를 기다릴 사이없이 학생들의 즉각적인 행동을 요구했다.

《제2공화국》에 걸어보았던 국민들의 기대는 하나하나 휴지같이 구겨져버렸다. 이제는 대중적운동으로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길 하나만이 오직 살길로 남았다. 국민들의 그 기대에 대하여 학생들은 하루도 더 지연시킬 권리가 없었다.

S대학 민통련 대의원총회에서 결의문을 채택하고 그것으로 전국학생들의 행동강령으로 삼자고 《라침판》에서도 의논이 되였다. 민통련 대의원들사이에도 그렇게 합의를 보았던것이다. 총회에서는 통일의 전제로서 남북학생회담을 열자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국내의 정세는 어느때보다도 성숙하였다고 지적한 성명서에서는 민족력사의 전진을 위하여 력사는 학생들의 궐기를 요망한다고 전국 백만 학도들에게 호소했다.

상춘은 그날로 성명서와 결정서를 신문사와 통신사에 배포했다.

그것은 비상한 반향을 일으켰다. 성명서와 결정서는 각 신문에 게재되였다. 전파를 통해서 국내외에 널리 소개되였다.

세계의 이목은 또다시 남조선학생들에게 집중되였다.

그것은 어느 의미에서는 4. 19, 그것보다 더 커다란 사변이였다. 왜냐하면 4. 19정신이 그 실재를 밝혀 민족의 념원인 조국통일의 문을 직접 두드리는데까지 이르렀기때문이였다.

그 남북학생회담제의와 관련하여 다음날 지체없이 공화국북반부의 조선학생위원회와 민청중앙위원회의 서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담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무성 성명이 발표되였다.

즉 공화국북반부에서는 당과 정부, 학생단체가 일제히 남북학생회담을 환영한것이다.

거리에는 삐라가 나붙었다. 호외가 날았다. 신문사 게시판에는 사람들이 운집했다. 거리, 다방, 학원, 사무실, 가정 어디를 가나 그 이야기로 들끓었다.

5월은 진정 젊은이들의 계절인가. 푸른 록음이 5월과 더불어 찾아온다.

눈부신 해빛, 푸른 신록, 맑은 바람, 그모두가 청춘을 상징했다.

5월은 진정 힘찬 계절이다. 남북학생회담을 제의한 그 5월의 자연과 하늘까지도 한껏 찬양하고싶은 사람들의 심정들이였다.

지난해 2월에 S대학에서 처음 민통련을 결성했을 때에도 정계와 《국회》에서는 당황하여 《맨스필드의 중립화론》이니, 《유엔이 보내는 통일결의안》이니 하며 친미보수정당들이 반동적본성을 드러내는 반면에 애국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단체와 인사들은 학생들을 적극 지지해나선 일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때보다도 더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들의 론의는 구구했다. 《정부》, 여당에서는 더욱 당황망조했다.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친미보수정객들속에서도 종래의 유엔외교를 통한 통일방안모색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으로 대하는측이 나타나기도 했다. 정계일각에서는 통일방안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한다는데로 기울어갔다.

통일을 지향하는 여러 사회단체들에서는 S대학 민통련의 남북학생회담성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 이틀동안에 조국통일의 기운은 고조될대로 고조되여 전국을 풍미했다.

차복 할머니가 어머니한테 와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이제는 부지깽이가 쓰러져도 분계선쪽으로 쓰러진다는것이다.

그러나 어찌 그것을 이틀동안으로 계산할수 있으랴. 조선근세의 모든 애국운동들이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서 싸웠으며 8. 15후 나라가 분렬된 조건에서는 통일을 위해서 싸운 투쟁까지 합해서 반세기가 넘도록 면면하게 계승해온 정신이 그 이틀동안에 학생들의 힘에 의하여 표면화된것이다.

이제 와서 통일에 대한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한 학생들은 5일 또다시 민족통일전국학생련맹결성 준비대회를 S대학 강당에서 열었다. 처음에 구내 다방에서 열기로 했으나 밀려드는 학생들때문에 강당으로 장소를 바꾸었다.

강당에는 《이북학생 및 당국의 적극적인 호응을 환영한다!》라는 글발이 가로붙었다. 그 글발 하나로도 장내에는 통일의 기운이 가득찼다.

아무러한 장식도 필요치 않았다. 연탁에는 보 하나 씌우지 못했다. 마이크도 심지어 물병도 놓이지 않았다. 오후의 해빛만이 밝게 쏟아져들어왔다.

어느 녀학생이 어디서 구해왔는지 희귀한 꽃화분 하나를 들어다가 연탁에 올려놓았다가 너무 키가 커서 휘청거리기때문에 연단의 적당한 자리를 골라서 자기의 취미대로 모양을 보아가며 놓자 강당은 훨씬 더 밝아지며 국화같이 청신해보이기까지 했다.

모인 학생들은 흥분하고있었다. 회의의 력사적사명을 십분 인식하고있는 얼굴들이였다. 자신의 사명을 인식했을 때 더구나 그것이 험난하고 때로는 생명까지도 바쳐서 해야 할만큼 막중한 사업, 그앞에 각오를 다지고 림할 때 범할수 없는 기품이 얼굴과 동작에 나타나기마련이다. 학생들의 대화와 동작은 짧고 민첩하나 무게가 있었다.

각 대학대표들과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앞에 앉았으며 방청들이 복도에까지 밀려나와 초만원을 이루었다.

상춘이 회의집행을 담당했다. 개회사를 했다.

《개회벽두에 나 개인이 당한 수난을 잠간 소개하게 되는것을 용서하십시오. 지금도 아직 그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어느 테로단은 나를 지하땅굴속에 감금해놓고 학생들의 배후가 무엇이며 장차 학생들이 취하려는 행동이 무엇이냐 대라고, 내가 그걸 거절하자 놈들은 나를 죽이려고 했고 나는 구사일생으로 탈출해나왔습니다마는 사태는 바로 이러합니다. 아직도 학원에 대한 사찰은 종식되지 않았으며 당국은 학생운동의 탄압에 대한 수사를 회피하고있습니다. 나는 그놈들에게 국민의 목소리가 바로 네놈들이 알고싶어하는 우리의 행동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제그저께 우리들은 우리들의 행동을 세상에 공포했습니다. 우리들은 대지에 입맞추고 귀를 기울여봅시다. 남에는 제주도 한나산으로부터 북에는 백두산천지에 이르기까지 거기서 어떠한 목소리가 울리는가, 너무나 그것은 장엄하고 명백합니다. 원래 우리들은 이 대회를 우리의 4월의 광장, 피의 광장인 세종로나 경무대앞에서 열기로 했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못해서 이 강당에서 합니다만 저 글발이 보여주는바와 같이 회의의 기운은 분계선을 넘어 이북에까지 뻗치였습니다. 즉 우리들뒤에 4천만민족이 있다는것을 나는 서슴없이 말할수 있습니다.》

박수가 쏟아졌다. 발들을 굴렀다. 그것은 복도를 거쳐 운동장에까지 파급되였다.

방청석에서 긴급동의를 부르고 일어서는 학생이 있었다. 홍인표였다. 방청석에서는 언권을 얻을수 없었지만 그러한 회의의 절차는 안중에 없이 흥분하는대로 발언해버리는데 홍인표다운데가 있었다.

상춘은 그에게 언권을 주었다.

《사회자의 말대로 대지에 입을 맞추고 자기 귀를 대지 않아도 이남전체가 지금 무엇을 갈망하고있는지 고의로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이상 그것은 명백합니다.

저 통일의 교향악을 들어보십시오. 거리에서 울리고 농촌, 어촌, 공장, 광산 도처에서 울리고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북에서 우리의 제의에 긍정적으로 호응할줄로 압니다. 그런데 이북학생 및 당국의 적극적인 호응을 환영한다고 써붙이기까지 했으나 나는 그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 못합니다. 만약 주최자측에서 그걸 안다면 지금 발표해서 남북의 목소리를 함께 이 회의장에 모아 대회를 시작하는게 어떨가, 나는 대표는 아니지만 방청자로서 제의합니다.》

방청석에서 동의를 표시하는 박수가 울렸다. 전날 북에서 남북학생회담을 환영하는 성명이나 담화들이 발표됐지만 사실 그 내용을 다 아는것은 아니여서 홍인표의 제의는 많은 찬동을 받은것이다.

회의집행부에서는 홍인표의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상춘이 개회사를 중단하고 북에서 발표된 성명서들가운데서 조선학생위원회와 민청중앙위원회의 공동명의로 된 서한을 소개하기로 했다.

조광래가 그것을 랑독했다.

《오늘 남조선인민들속에서 조국의 자주적인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거족적인 투쟁이 그 어느때보다도 고조되고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서울대학교 민족통일련맹은 민족의 살길은 통일뿐이라고 지적하고 통일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빠른 시일안에 남북학생들의 회담을 개최하며 남북학생간의 교류, 학생토론대회, 예술학문의 교류, 체육대회 등을 진행할것을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귀련맹의 이러한 주장은 우리의 시종일관한 주장과 완전히 합치된다.

우리는 귀련맹의 이 정당한 주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환영한다.

조선학생위원회와 조선민주청년동맹 중앙위원회는 이러한 남북학생들의 회담을 평양에서 개최할것을 제의한다.

우리는 남조선학생대표들을 언제든지 반갑게 맞이할것이며 우리앞에 제기된 모든 문제들을 허심하게 협상할것이다.

우리는 남북학생회담에 필요한 충분한 준비를 갖추고 귀련맹의 대표를 평양에 초청한다.

만일 귀련맹이 우리의 대표를 서울에 초청하는 때에는 우리는 당신들의 초청에 기꺼이 응할것이다.

우리는 귀련맹으로부터 우리의 제의에 대하여 긍정적인 회답이 있으리라는것을 확신한다.

                                    형제적인사를 보내면서》

랑독이 끝나자 방청석에서는 만세소리가 터졌다.

조광래는 팔을 들어 잠간 조용해달라는 부탁으로 겨우 장내를 정돈시키고 말을 시작했다.

《이 서한말고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무성의 성명도 있습니다. 그것을 소개할 시간은 없습니다만 요지만 말한다면 북조선에 들어가는 남조선대표들과 개별인사들의 일체 활동의 자유와 신변의 안전을 보장한다는것이고 또 통일협의체의 구성도 환영한다는것입니다. 즉 통일을 위한 행동과 구상은 그 어떤것을 막론하고 일체 환영하고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들의 행동여하에 달려있습니다.》

조광래는 성명과 담화내용을 기록한 수첩을 높이 흔들어보이며 연단에서 내려왔다.

다시 방청석에서는 만세소리가 터졌다. 그들은 지금 학생들이 대거해서 평양으로 가거나 혹은 공화국북반부학생들이 서울로 오는것을 환영하는 기분들이였다.

《평양으로 가자!》 혹은 《서울로 오라고 하자!》하는 소리들이 한참 엇갈리며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장내를 상춘이 겨우 진정시키고 끝나지 않은 개회사를 계속했다.

《옳습니다. 우리들이 평양으로 갑시다. 혹은 서울로 초청합시다. 몇번이고 오고가고 합시다. 이러는 동안에 우리들의 민족적량심과 지성은 반드시 통일의 방법을 탐색해낼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우리들의 이 행동을 위험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냐?》

사면에서 규탄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뭐가 위험하단 말이요?》

《리유를 밝히라고 하자!》

상춘은 흥분하는 학생들을 또다시 진정시켰다.

《그 리유는 학생들이 사상과 신념에 대한 리론이 서있지 않기때문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어리다는것입니다. 어리기때문에 민족통일과 같은 중대사를 론의할 자격이 없다는것입니다.》

장내에는 폭소가 쏟아졌다.

《어리지 않다는자들이 한것이 무엇이냐?》

《바로 그자들이 어리다고 하라.》

상춘은 그들을 또 제지하였다.

《그렇습니다. 우린 어리지도 않고 신념이 없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신념에 불타고있습니다. 신념이 무엇인가. 4천만민족의 정직한 목소리에 충실하게 산다는 그것입니다. 이이상 더 힘찬것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남의 목소리도 들었고 이북의 목소리도 들었습니다. 다시한번 말한다면 제주도 한나산서부터 백두산에 이르기까지 어디서나 우리의 제기를 환영하는 현시점에서 이 회의를 시작한다는것을 밝히며 오늘의 회의가 거대한 성과를 거두기를 바랍니다.》

회의순서에 따라서 준호가 4. 19이후 1년동안의 학생운동을 개괄하는 보고를 했다. 남북학생회담은 민족의 감정일뿐아니라 민중의 삶을 위해서도 그 길밖에 없다는것을 론증했다.

각 대표들이 한결같이 그것을 지지했으며 《제2공화국》이 수립된지 반년이 넘도록 통일에 대한 아무러한 대책도 없는 《정부》에 공격의 화살이 집중되였다.

통일에 대한 새로운 구상이 없는 《정부》는 낡고 썩어버렸다. 장면《정부》는 리승만《정권》의 호전적이고 범죄적이였던 《북진통일론》을 포기했다고 명시한바도 없거니와 학생회담에 대하여 학생들의 사상과 신념이 확립되지 못했다는 리유로 비난하는것을 보면 통일문제에 대한 기본정신과 자세는 리승만때나 조금도 다를게 없다는것을 스스로 밝힌것이다.

회의에서는 다시 정식대회를 열기로 하고 결의문과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결의문에는 S대학 민통련의 남북학생회담제의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다음 회담장소를 판문점으로 하고 5월이내로 그것을 실행하자고 밝혔다.

민족통일전국학생련맹에서는 또 《학우들에게 보내는 글》을 발표했다.

《더이상 민족의 비극을 연장시킬수 없다. 이는 피에 맺힌 우리 남북동포들의 부르짖음이다. 우리는 우리 민족끼리 우리 땅에서 우리 문제를 론의할것을 촉망한다. 그러나 이루어지지 않고있다.

기다림에 지친 우리들 민족의 아들딸들은 이제는 모든것을 뿌리치고 한자리에서 만나려 한다.

우리가 무엇때문에 굴욕적인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을수 있을것인가?

우리들의 정당한 학생회담의 제의는 비과학적신념에 사로잡힌 기성세대와 <정부> 그리고 반공브로카집단들의 반박이나 반민족적선동을 듣기 위하여 제의한것도 아니요, 무능하고 훈련되지 못한 새 세대라는 어처구니 없는 론평을 받기 위하여 제의한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의 주장이 민족적량심과 국제정치의 현실요청에 비추어 정당하기때문에 제의한것이다.

<정부>는 이미 녹쓸고 낡은 사고방식을 포기하고 우리 학도에게 회담의 문호를 개방하라!

개방할 용기와 력량이 없다면 우리들의 애국적행동을 막지 말라!

어느 외세이건, 어느 당이건, 어느 <정부>이건, 어느 개인을 막론하고 남북학생회담의 권리를 빼앗지 못할것이다.

이 학생회담의 길을 막는자는 래일의 력사적심판을 면치 못하리라. 복된 래일의 삶은 구호나 호소나 탁상공론으로써 이룩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행동과 투쟁으로만 가능하다. 왈가왈부의 시기는 지나갔다. 우리는 기어이 이북학생들을 만나고야말것이다.

이북학생들은 정부가 말하는 소위 공산당원이기 전에 우리의 민족이다.

우리는 만나서 부둥켜안고 울고웃으며 분렬된 설음과 기쁨을 서로 나눌것이다.

사상론쟁이나 정책을 담판하기 위하여 만나지 않는다. 다만 비정치적인 학생기자교류, 학생예술단교류, 체육단상호교류 등을 론의하여 십여년간 얼어붙은 장벽을 녹이고 <통일의 광장>을 확보하기 위하여 즐겁게 회동하려는것이다.

이는 이남의 최초의 통일을 위한 세력의 표기가 될것이다.

형제여, 학우여, 이곳으로 오라!

그리고 다같이 행군하자!

북쪽의 형제들과 한자리에 모여 남북학생축제를 갖자!》

 

5월에 들어서면서부터 매일 련속적으로 발표되는 민통련의 결정서, 호소문, 성명서, 선언문, 격문 등 여러 형식의 글들이 신문에 전문이 발표되거나 《정부》계통의 신문에서조차 그 일부만이라도 보도하지 않을수 없을만큼 남북학생회담은 남조선의 중요한 정치적사건으로 등장했다.

이에 따라서 《대통령》이 거의 매일같이 유엔을 통한 통일이 있을뿐이라는 견해를 발표하는 한편 경찰에서는 민통련 학생간부들의 성분을 내사하겠다고 위협을 했으며 각 대학 총장들을 모아 학생들의 정치활동을 엄금하는 방침을 협의하는 등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계속 굴함이 없이 싸웠다. 5월 13일에는 《민족자주통일만이 민족이 살길이다.》, 《지금까지 위정자들이 쌓아놓은 남북민족간의 적개심을 풀기 위해서도 정치적으로 순진한 학생들로 하여금 한피받은 한겨레의 감회를 풀수 있도록 <정부>는 판문점회담을 알선하라!》고 주장했다.

《정부》와 경찰은 두번씩이나 고의로 정전을 시켜 마이크를 쓰지 못하도록 비렬한 방해를 했으며 여러 반공단체를 동원시켜 폭행을 가하게도 했다.

그러나 대회에 모인 학생들과 군중들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의 프랑카드를 앞세우고 시가행진을 했다.

이것으로 그 구호는 풍요같이 남조선전역을 휩쓸었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

《민족자주통일!》

《외세는 물러가라!》

《남북인민이 오고가는데 미국의 허락이 무슨 필요냐?》

 

매일 밤, 매일 낮 《국회》와 시청앞에서는 통일의 길을 열라고 련대시위를 벌린다. 학생들이 목이 터지게 연설을 한다. 시민들은 구름같이 모인다. 신문사 속보판앞에도 통일의 새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통일은 다되여가는 느낌이였다. 누구의 가슴에나 활화산의 불줄기같이 타고있는 감정이기때문에 한번 《가자, 오라!》 하는 첫소리가 들리자 전국은 그에 호응해나선것이다.

그러나 친미보수세력은 통일을 반대해서 최후로 발악한다. 일인당 8백환씩 주고 사람들을 사서 맞시위를 벌린다. 그 발악을 사람들은 무찌르며 회담반대의 론거를 분노와 조소로 무시하면서 통일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정부》와 친미보수정객들은 《통일시기상조론》을 내놓고 통일을 반대한다. 그렇지 않고는 남조선이 적화될 념려가 있다는것이다. 늙은 기성친미보수정객들인 그들은 배가 부르고 수백수천만환씩의 월수입을 가졌으니 그런 소리도 할수 있을지 모르나 우리는 배가 고파 그것을 기다릴수도 없으며 또 그 《건설》이란 잠꼬대를 믿지도 않는다.

그래 종이장도 맞들면 가볍다고 《선통일 후건설》이면 건설이 백배나 더 빨리 되리라는것은 삼척동자에게도 명백한 일인데 어째서 하필 《선건설》이래야 하며 또 이렇게 못살게 만드는 《건설》, 극소수 매판세력만 벼락부자가 되는 그따위 《건설》을 누가 원한다더냐.

우리는 남북삼천리가 한울타리안에 들어서고 남북 4천만이 한덩어리가 되여 한마음한뜻으로 민족의 백년대계를 설계할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식으로 언론보다도 거리의 여론이 통일을 반대하는 세력을 압도하면서 통일의 분위기는 고조되여가고있었다.

통일은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희망과 빛을 가져다준다. 크고작은 온갖 희망이 거기에만 달려있다.

무던히도 우리는 슬프게 살아왔다. 자식이 아버지의 소식을 모르고, 안해가 남편의 생사를 모르고, 형제가 갈라져 살고, 모든 천륜을 끊고… 그것은 생이 아니였다. 눈물이였다. 한숨이였다. 슬픔이였다.

그 모든것이 이제는 끝나간다. 우리는 분계선을 넘나드는 날짐승만도 못한 신세들이였다. 이제는 만물의 령장이라는 사람의 권위를 찾게 되였다. 한두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천과 만으로 헤아리는 수도 아니다. 수백만 사람의 가족, 일가친척이 그렇게 그리움에 허덕이며 살아왔다. 생각하면 남조선전체를 털어놓고 그러한 사정이 없이 살아온 사람이 누구겠는가? 4천만이 울었고 3천리강산이 통곡했다. 그 울음과 슬픔이 이제는 끝나간다.

북쪽에 있는 아버지, 어머니의 성묘를 첫째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수 있다. 좋지 않느냐? 봄, 가을 청명과 한가위에 부모묘에 가서 조상과 대화를 해보는것은 우리의 미풍량속이다. 그것을 십오년이 지나도록 못했으니 어찌 자식의 도리이겠느냐? 아름다운 일이다.

통일의 분위기가 가져다주는 향연이였다.

경제문화적으로 보아도 통일만이 살길이다. 배산림수란 말이 있다. 우리 관습에는 마을이 앉기를 뒤에 산을 지고 앞에 물이 흘러 그 물의 류역이 넓은 들을 이루는 곳을 리상적인 터라 하거니와 우리 나라가 바로 그러한 형국이 아니냐? 북쪽의 산악지대에 자연부원은 얼마나 풍부하냐?

남들은 말하기를 우리 나라를 세계광물의 표본실이라고 한다. 거기 자리잡은 발전된 공업지대와 남쪽의 기름진 땅, 그리울것이 없는 나라, 여기서 사는 우리 민족은 행복해야 한다. 축복받은 민족이여야 한다.

이것이 반으로 두동강이 나서 십오년을 살았으니 우리의 살림이 제대로 될 까닭이 없었다. 이것이 오늘래일로 다시 이어진다.

8. 15해방보다도 더 기쁜 날이 오고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전문과 취미에 따라 마음껏 희망의 날개를 편다. 고고학자들은 북쪽에 가서 고구려의 유물을 연구할것이다. 혹은 북쪽의 학자들은 신라, 백제의 유적을 찾아 삼남지방을 편력할것이다. 지질학자들은 전국에 걸쳐 지질탐사를 할것이며 민속학을 전공하는 학도들 역시 전국으로 널려 민간에 파묻혀있는 민속과 민요를 발굴하여 우리 민족이 살아온 발자취를 연구할것이다.

어느 하나 상상만 해도 그러하다. 옛날에는 경평축구시합이 굉장했다. 다시 그것이 부활되여 평양의 젊은이들과 서울의 우리들이 승부를 다투어 묘기를 발휘하는 과정에 우리 나라 축구는 세계적으로 유명하여 올림픽에 나가서 우승을 한다. 그러한 전망이 눈앞에 펼쳐진다.

여름방학에 아이들을 원산 송도원으로 해수욕을 보내자. 명사십리 해당화도 구경시키자. 북쪽의 어린이들에게 남해바다를 구경시켜 조국산천의 아름다움을 알게 하자. 경상도와 전라도사람들을 백두산에 오르게 해서 이 땅의 웅장함을 맛보게 하자.

아, 통일이여!

통일된 땅에서 살기란 그렇게도 활기가 넘치고 자랑스럽고 기쁘기만 하고 자유롭구나.

수천년의 력사를 지닌 민족의 긍지가 거기 있구나.

그 긍지를 오늘래일로 되찾는것이다. 통일은 온다.

지금까지의 생활은 림시였고 진정한 생활은 이제부터 시작되는것이다.

사람들은 흥분하며 서로 얼싸안고 오래도록 오래도록 통일을 이야기하고싶다.

그대 학생들 장하구나. 진정 민족의 아들딸들이며 민족의 지성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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