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영원한 4 월

7

 

권세환은 아침에 눈이 뜨이는대로 머리맡에 식모가 가져다 놓은 신문에 팔을 뻗쳤다. 서울서 발행되는 대소신문 십여종이 손에 잡히였다.

그는 정치인의 일과로서 언제나 1면 제목부터 더듬어보는 습관이였으나 그날은 하단 광고란부터 훑었다.

어제 《반공사상계몽전국련합회》의 이름으로 학생들의 통일운동을 반박하는 대문짝같은 광고를 일곱 신문사에 일제히 신청해놓았던것이다.

그러나 광고는 겨우 한 신문에만 게재되였을뿐 다른 신문에는 나있지 않았다.

그대신 신문마다 1면과 3면에는 민족통일전국학생련맹결성 준비위원회의 성명서, 담화발표 같은것이 크게 취급되여 독자들의 눈을 끌게 했다.

그는 신문을 집어던졌다. 광고는 신청순차에 따라서 하루이틀 늦어질 경우도 있으련만 그에게는 신문들까지 통일을 반대하는 광고는 외면한다고만 생각되여 격분이 속에서 울컥 치밀었다. 창가림을 잡아젖혔다. 5월의 아침은 신선하고 맑았으나 그의 마음은 흐렸다.

입맛도 쓰거워 커피와 닭알로만 조반을 때고 다시 신문을 들었다. 래일 《국회》에 나가서 학생운동의 《용공적》색채와 경향을 론증하여 학생운동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태도를 통렬히 추궁할 예정이였다. 그러자면 학생들의 기사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학생들의 성명서가운데서 사회주의나라들이 강대해간다는것과 아시아, 아프리카지역에서 외세를 배격하고 독립한다는 내용에서 《용공적》정신을 찾아냈다. 체계를 세우고 론리를 가다듬어서 연설초고를 작성했다.

그의 머리에 고정관념으로 박혀있는 리론도 아닌, 덮어놓고 이북은 자유와 민주주의가 없으니 《반공통일》이 있을뿐이라는, 십년이 여일한 광고의 내용과 꼭같은것이 되고말았다. 그는 다시 읽어보고 표현을 과격하게 첨부해가는 과정에 가히 자기로서도 《반공투사》의 기백을 체득해보는것이였다.

권세환이 초고를 훑어보며 혼자서 열을 올리고있을 때 전화종이 울리고 패틀리의 개인사무실로 쓰는 호텔로 곧 와달라는 부탁이 왔다.

패틀리는 언제나와 같이 친절하게 그를 대해주었다. 뭐 재미있는 일이 없느냐고 물었다.

《화나는 일뿐입니다. 경찰이 무능해요. 먹여주는 밥도 제대로 받아먹지 못하는 멍텅구리들이라니까요. 이런 법도 있습니까?》

권세환은 가방을 열고 삐라를 한장 꺼내놓았다. 경찰서 형사부장이 상춘앞에 내놓고 추궁하던것과 꼭같은 삐라였다.

《당신의 부탁도 있었고 또 부탁이 아니더라도 <HKP>에서는 요새 학생운동의 배후를 탐지해내려고 이런 삐라를 만들어 경찰에 보냈습니다. 이북서 쓰는 구호와 같이 말씀예요. 그래서 경찰서에서는 S대학 민통련의 선전부장으로 있는 상춘이란 놈을 호출을 했는데…》

《호출요?》

패틀리는 가소롭다는듯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렇습니다. 체포를 않고 호출을 했어요. 호출을 해서도 닥달을 해서 그놈들의 배후만 알아냈으면야 왜 내가 이러겠습니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하루밤 재워만 내보냈으니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래일은 <국회>에 나가 불온한 학생운동에 속수무책인 <정부>에 대해 일대 질문전을 펴려고 초고를 써가지고 왔습니다. 도대체 장면<정부>는 우유부단합니다. 비둘기작전도 그렇지 않습니까? 어째서 4. 19침묵시위에 그걸 발동시키지 않았느냐? 그날 큰 시위가 없었기때문에 소란을 피하느라고 그랬다는 구실인 모양인데 청맹과니도 그런 청맹과니가 있습니까? 그래 침묵시위가 큰 데모가 아니더란 말입니까? 그 시위끝에 서울시내가, 아니 전국이 돌아가는 기운을 보십시오. 무섭습니다. 통일이 금방 될듯이 야단입니다. 왜 비둘기작전부대의 일부라도 풀어서 침묵시위하는 놈들을 몽땅 잡아넣지 못했느냐 그말입니다.》

비둘기작전이란 만약에 작년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면(그것은 넉넉히 예상할수 있는 사태였다.) 남산에 신호를 올리고 사방에서 군대가 서울로 달려들어 시위대를 진압하는 동시에 《정부》기관과 중요건물을 보위하며 경비하기로 된 작전이였다.

《권선생님의 정치적감각에는 경탄할뿐입니다. 나도 선생님과 동감입니다. 침묵시위끝에 통일에 대한 기운이 더욱 팽배해가는건 외국인인 나의 눈에도 력연합니다. 그건 4. 19보다도 더 무서운거죠. 내가 보기엔 통일기운은 지금 민중의 힘에 떠받들려 나가고있어요. 그들이 들고 나온 구호를 보세요. 어느것이나 민중의 지지를 받도록 돼있거던요. 내 의견같아서는, 아니 권선생님의 의견입니다만 민통련의 배후세력을 후려서 잡아야 합니다. <HKP>가 활동할 때가 바로 왔습니다. 나는 그래서 선생님을 오시라고 한건데 선생님이 먼저 그런 활동을 하셨다니 뛰는 말에 채찍질이라고나 할가요. 훌륭하십니다.》

권세환과 패틀리는 통일의 분위기로 위기에 직면하고있는 《한국》의 사태를 앞에 놓고 그날같이 의기투합한 일은 없었다. 권세환은 패틀리를 위하여 견마의 노력을 아끼지 않기로 《신사적》약속을 다시한번 굳게 다지였다.

권세환은 일반적의미에서 정보의 중요성을 알고는 있으나 패틀리같이 정보가 어떠한 체계로 수집되여 미국대통령의 책상에까지 올라가며 그것이 또 어떻게 미국대외정책에 작용하는지 그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였다.

패틀리도 미국정부의 정보기구를 있는 그대로 다 아는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기의 정보가 귀중하기만 하면 대통령책상에까지 올라갈수 있다는 《가능성》, 그것이 그를 극도로 흥분케 만드는것이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그의 영달을 의미하는것이기때문이다.

패틀리의 꿈은 항상 미국본토의 CIA본부에 가있었다. 지금은 비록 대사관 서기관이며 CIA 《한국》주재 요원으로 있어도 말이다. 거기 어느 한 과장자리에 앉아서 전세계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하는 패틀리자신.

매주 목요일에는 넓은 워싱톤에서도 미국정부의 최고간부 몇사람만이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출석하려고 백악관에 모인다. 그 선발된 극히 소수의 인원들이 대통령집무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미원의 기다란 책상에 자리를 잡는다.

시간이 되면 대통령이나 혹은 국가안전보장문제를 담당한 대통령특별보좌관이 준비된 의안을 제출한다. 만약 토의내용이 미국이 해외에서 추구하는 목적과 상반되는 경우라면 중앙정보국장이 여러가지 방대한 자료중에서 작성된 해당 문제에 관한 외국정보의 요약을 보고하게 되여있다.

패틀리는 작년 4월 25일과 26일에 자기가 밤새워가며 손톱이 닳도록 타전한 《한국》정세가 바로 그 백악관의 장미원에 면한 그 기다란 책상 어느 한 귀퉁이에 오르기를 바라고 또 그렇다 믿고있으며 최근 자기가 보내는 정보도 그러리라고 희망하는데서 살아가는 보람을 느끼는것이다. 그것은 곧 그의 CIA본부진출을 약속하는것이기때문이였었다.

국무성을 비롯한 미국의 각 성이 저마다 해외에 정보망을 가지고 활동하지만 그 방대하고도 복잡한 정보들을 비교하고 판단하며 평가하는것은 CIA의 최종적권한이다.

그것을 위하여 20만명의 정보원을 해외에 풀어 거미줄같이 늘어놓고 년간 수십억딸라를 써가며 문헌조사로부터 현지에서 관찰, 간첩활동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패틀리도 그중의 한 작은 존재에 지나지 않지만 인간의 허영과 자부심으로 하여 그는 자기를 《한국》에서 학생운동파괴의 전문가로 자처한다.

작년에 학생들의 기세에 압도되여 리승만을 갈아치우고 《한국》에서의 미국의 위기를 모면케 한 리면에는 자기의 공로가 적지 않다고 자부해오는 그가 최근 학생들의 배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있는 실정은 그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권세환을 시켜 《HKP》의 비밀테로단을 조직한것까지는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하겠으나 그들이 물어오는 정보라는것이 별로 가치있는것은 아니였다. 학생운동의 지도자라고 지목되는 학생들의 사진을 수집해오는데 지나지 않았다.

그가 가장 알고싶은 일은 각 대학에 민통련이 조직됐으며 그들이 공개적으로 혹은 비공개적으로 맹렬한 활동을 하고있은즉 그 배후세력이 무엇이며 장차 어떠한 행동으로 나오느냐 바로 그것인데 권세환은 신통한 정보는 제공해주지 못하고 《국회》에서 연설을 한다고 한다.

《미스터 권.》

패틀리는 지금까지 한껏 치켜올렸던 권세환을 새삼스레 《미스터 권》으로 불러놓고 쇠쪼각같은 차거운 눈길로 보았다. 그리고 왼쪽팔꿈치를 책상에 붙인채 손을 낮게 들었다.

그들사이에 엄숙한 약속을 할 때에 일종의 선서같이 하는 습관이였다. 권세환은 자기의 생사여탈의 권한이 완전히 패틀리에게 달려있다는것을 전률로써 느꼈다. 그러면서 어떤 음모속에 참여하고있는 심리의 쾌감도 동시에 맛본다.

《당신과 나와의 우정은 정치도 아니고 상업도 아닙니다.》

《알고있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안전을 위한 량심입니다.》

《영광으로 생각하고있습니다.》

《난 백방으로 당신을 도와왔소.》

《당신께서 생각하시는것 이상으로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위급한 시기에(패틀리는 신문을 권세환앞으로 밀어놓았다.) 당신은 미국을 위해서 하는 일이 능력에 비해서 많지 않습니다. <HKP>는 경찰이 못하는 일을 하자고 조직한겁니다.》

《바로 때가 이제 왔습니다.》

《때는 이제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왔고 또 지나가고있소. 난 오늘쯤은 선생이 무슨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올걸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선생은 이런거나 가지고 왔습니다.》

패틀리는 권세환이 내놓은 거액의 은행수표를 시들한듯 밀어놓았다.

환평제분회사의 리익금의 일부를 바치는것이다.

권세환은 학생들에 대해서 탐지해내는것이 적은 《HKP》활동에 스스로도 위축감을 느끼고 예상되는 패틀리의 점잖은 추궁을 모면할가 해서 그것을 가지고 왔던것이다.

패틀리는 수표를 시들한듯 밀어는 놓았지만 액수는 정확히 보고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권선생은 머리를 쓰십시오.》

《밤을 새워 궁리를 합니다.》

《권선생, 재판에서 그거 무슨 망신이요. 형님이라는 농민 하나를 삶지 못했어요. 그놈의 아들만 해도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감정으로 행동했어요. 그놈을 왜 경찰에서 빼내다가 집에 두고 회유하지 못하오?》

《아니올시다. 그놈은…》

《천만에.》

패틀리는 손을 들어 권세환의 말을 막았다.

《당신은 그놈의 사상이 어떻다고 변명하고싶을거요. 그러나 난 사상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봅니다. 여러번 내가 선생께 하는 충고입니다. 그놈을 회유하고 회유가 안되면 왜 역리용 못한단 말입니까? 미행을 달아서 여러가지 정보를 알아낼수도 있을텐데 선생은 그렇게 하지 않았소.》

동일은 경찰서에서 권세환의 조카라는 사실이 결국 탄로되고말았다. 권세환에게 조회가 왔을 때 그는 동일이 조카애는 틀림없으나 그렇기때문에 더욱 엄중하게 처리해달라고 일부러 경찰서장에게 부탁까지 해서 구류를 시키고있다.

《미스터 권은 돈의 위력을 왜 믿지 않습니까? 조카를 빼내오시오.》

패틀리는 일어나서 굳게 닫긴 문을 한번 더 열었다 닫아놓고 자리로 왔다.

《경찰만을 믿고있을건 못되오. 장면내각은 떨고있소. 무능해요.》

그는 먼저 한 말을 또 한번 되뇌고 권세환을 바싹 더 다가오게 했다.

패틀리의 지시를 받으며 권세환의 입에 회심의 미소가 번지여갈 때 전화종이 울렸다. 수화기를 든 패틀리는 손짓을 하여 전화가 끝날 때까지 밖에 나가있으라고 했다.

권세환은 비밀사업에서 그럴수도 있다고, 아니 그래야 된다고 자신에게 납득시키며 호텔로대에 나왔으나 한편 모욕감도 지울수는 없었다.

얼마후에 패틀리는 친절하게도 방에 두고 나왔던 모자까지 들고나와서 오늘은 그만 가도 좋다고 축객하듯 쫓아버리는데 악수만은 그래도 잊지 않았다. 권세환은 한마디의 인사도 못하고 호텔에서 나와버렸다.

가까운 료정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오후 《국회》에 출석해볼가 했으나 불빛을 떠날수 없는 부나비같이 그는 패틀리의 숙소가 있는 호텔주변을 떠날수가 없었다. 자동차로 《국회》앞 세종로를 객적게 일주한 다음 다시 그 근방에 와서 배회하다가 호텔앞으로 가보았다. 암만해도 패틀리의 줄을 놓치는것만 같은 불안을 씻을수가 없었다. 누구를 맞이하기에 자기 같은 사람은 쫓아내는것인가. 호기심과 시기심이 한데 얽히여 대담해지는것이였다.

호텔앞에는 뜻밖에도 그의 아들 동진이 군용승용차앞에서 어떤 녀자와 시시덕거리고있었다.

《너 여기 어쩐 일이냐?》

권세환은 무슨 비밀을 들킨것 같이 당황해서 물었다.

《볼일보러 왔어요.》

《누구와 같이 왔니?》

《아실것 없어요.》

권세환은 승용차의 번호를 보았다. 꼴이 어느 장교인것 같았다.

《어딜 왔니?》

《몰라요. 5층 어느 외국사람이니까요.》

권세환은 5층 패틀리의 방을 쳐다보았다. 록색창가림이 무겁게 드리워있었다.

아까 자기가 있을 때도 창가림이 드리워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무슨 일로 왔니?》

《그건 알아 뭘 하세요.》

《애비한테두 비밀이냐?》

《아버지한테 무슨 비밀이 있겠어요.》

권세환은 아들한테서 물러서고말았다.

그럴수록 패틀리의 방에서 벌어지고있는 밀담이 궁금했다.

《국군》의 장교가 경쟁자로 나타나 패틀리와 밀담을 하고있는 모양이다. 그것과 자기와 장차 어떠한 운명의 매듭이 지어질것인가?

《오늘 밤 집에 오지 않겠니?》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시간이 있을죠.》

《다녀가라.》

《뭐 일이 있어요?》

《넌 저 소리 들리지 않니?》

큰 거리에서 학생들이 시위를 하며 웨치는 구호소리가 가깝게 들렸다.

《시국은 작년보다 더 긴박하다. 전국이 그놈의 통일인가 하는 그걸로 들끓고있어. 개새끼들.》

《아마 무슨 대책이 있겠죠 뭐. 미군이 있는데.》

팽창해가는 통일기운, 학생들의 움직임, 무능한 장면《정부》, 비둘기작전의 공전, 《HKP》의 음모, 미국대사관과 미국첩보기관들의 활동-5월은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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