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영원한 4 월

5

 

어머니는 석방이 되여 집에 나왔다. 집일은 며느리를 믿기도 했지만 생각했던것보다 더 회동그랗게 꾸리고있었다. 며느리의 야무진 맛이 집안에 돌았다. 어머니가 있을 때는 믿는데가 있어서 돌보지 않던것도 제손으로 돌아가며 다했는지 가난한대로 어디 한군데 허술한 구석이 없었다.

그늘지고 구지레하기 쉬운 판자촌에서 집을 쓸고닦고 해서 땅은 조강했고 거기 봄볕이 아롱거렸다. 부엌앞에는 함박꽃도 어디서 구했는지 한포기 심어놓았다. 제일 걱정했던 유정도 잘 거두어주었고 학교까지 보내고있다. 어머니는 속으로 고맙고 대견할뿐 그동안의 집일을 다 묻지 않았다. 며느리의 피나는 고생으로 되였을것을 구태여 물어 무엇 하랴싶었다. 차복 할머니가 모두 이야기해주었다.

《고생속에서 사람을 알아본다구 마나님없을 때 며느님이 장해요.》

그 한마디가 반년동안의 고생을 위로해주는 제일 반가운 말이였다. 영조도 많이 컸다. 유정이와 남매같았다. 차복 할머니는 하루에도 몇번씩 온다. 어머니없는 동안의 판자촌소식을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하나도 시원한 일은 없었다. 지난 겨울에는 집단자살사건까지 생겼다.

《통일이나 돼야 살지…》

그의 입에서도 통일이란 말이 나온다.

상춘은 바빴다. 어머니는 호송차안에서 태정에게 들었던 민통련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통일이 빨리 오도록 학생들이 일을 한다면서 그동안 한 일과 앞으로 할 일을 자세히 일러주었다. 어머니에게 그렇게 소상히 말해주는것은 전에는 없던 일이였다. 전과 같이 단순히 어머니로서뿐아니라 조언자로서 대한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상춘은 좀체로 집에 있지 않았다. 몸가짐 하나하나에서 무슨 비상한 일을 앞에 두고있다는것을 어머니는 알수 있었다.

어느날 밤 상춘은 종이를 한보따리 가지고 왔다. 삐라를 박는데 준호와 윤도가 등사판을 얻어가지고 올것이라고 하면서 밖에 나가지 않고 기다렸다.

학생들은 통일에 관한 삐라를 서울시내에 련일 뿌리기로 했다.

대학거리의 벽과 전선주에 계속 붙여 학생들의 관심을 끌어 통일과 외세배격의 기운을 조성하고 고조해가자는것이였다.

기다리던 윤도는 혼자서 빈손으로 왔다. 그가 아는 인쇄소가 그 한달사이에 문을 닫았던것이다.

준호가 어디 다른 곳에 가서 등사판을 구해보겠다고 하면서 만약 9시까지 도착하지 못하면 거기서도 안된것으로 알고 손으로라도 쓰라는 부탁을 했다는것이다.

그들이 맡은 삐라는 《양키는 제 집으로!》라는 내용이였다.

그 구호는 아직은 공공연하게 부르는것이 못되여 《라침판》에서 비밀로 삐라인쇄를 담당하기로 되였다. 그날 밤으로 삐라가 되지 않으면 2~3일안에 배포하여 다른 구호들과 함께 붙이는데 지장이 있게 된다.

준호는 9시까지 오지 않았다. 시간관념이 엄격해서 복원의 시계까지 빌려차고 다니는 그가 약속한 시간까지 오지 않는것을 보면 등사판을 구하지 못한게 분명하여 그를 더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손으로 쓰기로 했다. 상춘은 밖으로 나가서 붓과 붉은 잉크를 사가지고 왔다. 늦게 찾아올 사람도 없을 11시가 지나서 그들은 쓰기 시작했다. 종이를 펴놓고 잉크를 접시에 따라놓자 옆에서 보고있던 어머니는 밖으로 나가서 문단속을 해놓고 들어왔다.

《일년만에 다시 또 이짓이로구나.》

어머니는 가만히 한숨을 지으며 한편으로 비켜앉았다.

4. 19 전날밤 그 방에서 삐라를 박던 일이 엊그제같다. 그동안 많은 변동과 진전도 있었다.

학생들은 민통련을 중심으로 많은 투쟁을 했으며 군중들의 대중적투쟁도 활발히 계속되고있다. 특히 로동계급의 진출이 활발하며 그들의 힘을 과시하고있다. 4. 19후에 파업, 시위 등 5백여건의 투쟁에 수십만 로동자들이 참가하고있다.

귀선은 아이들옆에 잠들어있었다. 그는 고단도 하지만 어머니가 나와서 집에 있게 되자 한시름 잊으며 그동안 밀려있던 피로가 한꺼번에 오는지 곤하게 잠들군 했다.

어머니는 자지 않고 둘이서 써나가는 붓끝만 보고있었다. 가끔 바람이 지나가는지 판자문에 달아놓은 방울이 달랑거렸다. 그럴 때마다 두 학생은 바깥기척에 귀를 모았다.

《내가 나가보랴?》

어머니는 가끔 나갔다 들어왔다.

붓으로 쓴다는건 생각보다 몇갑절 더 더디고 힘들었다.

천여장으로 무둑히 쌓아놓은 종이는 시계가 한시를 쳐도 줄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눈은 벌써 빳빳했다. 붉은 잉크가 마르는대로 어머니는 종이봉지 쌓아놓듯 포개놓는데 그것이 마르는 짧지 않은 동안에도 두 학생은 한장씩을 미처 써내지 못했다. 답답해서 볼수가 없었다.

《그러다간 열흘을 써도 못다 쓰겠다.》

《그러게 말입니다. 등사판이 있었으면 잠간 될텐데.》

《이럭험 안되니?》

어머니가 먼저 답답함을 견디지 못했다.

《어떻게요?》

잠이 가득 실린 상춘이 눈이 벌개서 물었다.

《네 형땐 도장을 파서 한것 같은데…》

《도장요?》

《이렇게 널판자에다!》

윤도가 붓을 멈추었다.

《판각말씀이로군.》

《판각?》

상춘도 덩달아 그래보고 《그러나 나무에 글자 새기는게 보통일인가?》하고 실망한 어조로 말했다.

윤도도 그게 쉽지 않다는것을 안다.

《이런 땐 미술대학 판화과 학생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아주 인쇄소직공이 있으면 더 좋지.》

둘은 싱겁게 웃었다. 모처럼 내놓은 어머니의 의견이 허공으로 날아가는것이였다. 잠시 가져보던 흥미가 파흥이 되고말았다.

《아니다. 그렇게 어렵지 않은가보더라. 내가 잘 몰라서 그렇지 아주멈은 잘 알거다. 어디 깨워 물어보랴?》

상춘과 윤도는 자는 귀선을 보았다.

모로 누워 곤히 잠든 그를 깨우기 무엇했다.

《내가 깨우마.》

《그만두세요.》

《그만두다니. 그렇게 밤새겠니? 얘야.》

어머니가 잠든 며느리어깨에 손을 한번 대자 그는 방금 일어나 앉으며 녀자의 본능으로 가슴을 여미고 머리를 매만지며 웃목에서 벌어지고있는 광경을 보았다.

《얘, 전에 아범이 어떻게 했니, 이런걸?》

어머니는 삐라 한장을 들어보이며 물었다.

귀선은 삐라의 내용을 읽어보았다.

《양키는 제 집으로!》

《조국통일은 우리 힘으로!》

귀선의 자던 얼굴에는 웃음이 피여올랐다.

《내용은 좋은데 글씬 엉망이군요.》

《손으로 쓰니까 그렇구나.》

《어머니두, 손으로 써 그런가요 뭐. 재간들이 메주라 그렇죠.》

둘은 그렇게 흉을 잡히면서도 웃었다.

흉허물없는 그 말이 유쾌했고 귀선은 무엇인가 잘 쓰는 방법을 알고있는 눈치여서 그게 반가웠다.

《당장이라도 자전거바퀴의 속고무만 가져와요.》

얇은 고무로 글자를 오려 널판자에 붙이고 그우에 인쇄잉크면 더욱 좋고 그게 없으면 물감이라도 칠한 다음 종이를 그우에 대고 밀면 제창 인쇄가 돼 나온다는 귀선의 설명이였다.

상춘과 윤도는 마주 얼굴을 쳐다보았다. 강렬한 욕망은 발명의 어머니라더니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가?

《아주머닌 용케 기억도 하고계셔요.》

애정은 모든것을 생동하게 기억해두는 힘을 갖는다. 형수가 형을 그리워하는 애정이 바로 그러한것인가? 상춘은 그 말을 하지는 않았다. 몰래 형수의 얼굴을 보았다. 가위로 삐라의 글자를 오려보는 그의 눈은 전일에 남편을 도와 일하던 잊을수 없는 밤들을 추억하는지 글자획과 가위날을 보는게 아니라 더 먼곳을 보고있었다.

윤도는 어머니와 귀선을 무슨 말로 찬양했으면 좋을지 몰라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말해보았다.

그가 그렇게도 기뻐하는 바람에 어머니와 귀선도 따라 기뻐했다.

《이게 다 전에 형님이 하던 솜씨라우.》

귀선은 자기에게 오는 칭찬을 지금은 아마도 북에 있다고 믿는 남편에게 돌렸다.

다음다음날 아침에는 삐라가 천여장이나 되였다. 힘찬 주먹까지 넣었다. 삐라로서는 제격이였다. 어머니와 귀선이 밤을 밝혀가며 찍어낸것이다.

상춘이 삐라뭉치를 가방에 넣어가지고 나가려 할 때 귀선이 《나두 몇장 주구려.》 했다.

마치도 삐라가 무슨 보물이라도 되여 그것을 탐내는 사람의 눈같았다.

《아주머니가 어떻게 할려고?》

《왜 난 그걸 붙이지 못할줄 아우?》

《그래도.》

상춘은 삐라살포가 위험을 동반하는 행동이란것을 구태여 말하고싶지는 않았다. 두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있을수 있는 위험이 그들 가정에 닥쳤을 때의 불행을 상상하는 마음이 그들을 잠시 침묵케 했다.

《좀 두고 가라.》

옆에서 어머니가 명령하듯 말했다.

상춘은 이번에는 어머니를 쳐다보며 무거운 숨을 돌렸다.

《그만들 두세요. 학생들 일인데.》

상춘은 그대로 가방의 고리를 잠그었다. 어머니는 이번에는 더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라는데두.》

상춘은 어머니의 침착해진 목소리로 보아 다시 더 감히 거역 못할줄을 알았다. 어머니는 마음이 단호해질수록 조용한 말로 변하는 습성이였다. 가방을 다시 여는 그의 손이 더디였다.

《조심해야 돼요.》

《우리 걱정을랑 말고 너들이나 조심해라.》

상춘은 알지 못했지만 귀선은 그와 같은 처지의 녀자들끼리 《계》형식의 어떤 모임을 가지고있었다. 어머니는 어머니들대로의 또 그런것이 있었고.

삐라는 대학에서 준호에게 넘겼다. 그것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상춘으로서도 알지 못했으나 그날 오후 강의가 끝난 후에 상춘의 손에도 몇장이 다시 되돌아왔다. 어디어디에 붙이라는 부탁과 함께.

상춘이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에서 채남이 그를 기다렸다.

그 녀자는 조심스레 주위를 살피며 그의 앞에 와서 섰다. 사람은 없었다.

《날 좀 도와줘요.》

기대에 찬 어조였다. 그도 상춘과 같은 책임을 맡았던것이다.

얼마후에 그들은 밤거리에 나섰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큰길을 골라야 했다. 아침이 밝으면 그들이 붙인 삐라의 호소가 되도록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들어가게끔 말이다. 10시가 넘자 거리의 통행인들도 차츰 드물어갔다.

외등의 불빛이 비치지 못하는 어두운 곳 담벽이나 전주대에 상춘이 풀칠을 하고 가면 채남은 한발자국 뒤떨어져 가서 빠른 동작으로 삐라를 붙였다. 가슴은 두근거렸다. 누군가 뒤덜미를 잡는것 같았다. 처음 두서너장은 그렇게 겁이 나서 한번 손으로 밀어붙이기만 했다.

그러나 두세번 붙이는 동안에 담력도 생겼다. 떨어지지 않게 네귀를 꼭꼭 눌러붙일만 한 마음의 여유가 자신으로도 신기할 정도로 생겼다. 거리의 풍경도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해보니까 아무렇지도 않을걸 괜히 지레 겁을 냈어. 인젠 나 혼자도 할것 같아요.》

그 녀자는 상춘과 나란히 서서 자랑스러워했다.

《둘이 하면 더 안전하지. 쉽고.》

《둘이 하면.》

채남은 상춘에게 더 다가갔다. 그들은 좀더 좋은 장소를 가려보는것이였다. 좋은 장소란 사람의 왕래가 많은 네거리같은 곳이여서 아직도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가 어려웠다. 지나가는 사람이 이제는 그만인가 하면 또 나타나고 다시 발자국소리가 들려오고 했다. 주정군이 공연히 이쪽을 노리고 서서 투덜거리는데는 질색이였다.

그들은 밀회를 하다가 헤여지기 어려운 한쌍같이 머뭇거리기도 했다. 사태가 자연 그러한 위장과 꾀를 생각해내도록 했다. 사람의 그림자가 끊기는 짧은 사이에 그들은 전격적으로 행동하며 나갔다.

어느 한군데서는 자리가 좋아서 두장을 붙이기로 했다. T형으로 된 길이였다. 지나가는 사람뿐아니라 마주보이는 골목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눈도 표나게 끌수 있는 곳이였다. 조금 지체되는데 맞은편 골목 어둠에서 발자국소리보다도 먼저 기다란 그림자를 앞세우고 순경이 불쑥 나타나며 이쪽에 눈을 견주고 섰다. 피할길은 없었다. 들켰다 하는 순간 상춘은 채남을 포옹하는 시늉을 했다.

순경은 이쪽으로 더 다가오더니 《길에서 뭐야?》하며 위엄을 세운다.

채남은 부끄러운 장면을 들킨 녀자같이 고개를 폭삭 떨구고 담으로 돌아서며 삐라를 몸으로 가리웠다.

《풍기문란이 아닌가?》

순경은 가자고 했다. 그들은 순경을 따라갔다. 상춘은 뒤로 손짓을 해서 채남이 뒤떨어지도록 했다. 순경과 허튼수작을 해서 되지 않으면 적당한 기회를 노려 밟아버릴 생각이였다.

《젊은 사람들이 길에서 만나는게 례사 아닙니까?》

순경은 걸음을 멈추고 선다. 상춘도 어깨를 으쓱하며 당당하게 버티여섰다. 거리의 부랑자같이 말이다.

《봄인데요.》

혀꼬부라진 소리를 해보았다. 이 땅에서 무제한한 《자유》가 있다면 거리의 부랑자같은 그런 어깨짓과 방종뿐이다. 순경은 조금 기가 죽어보였다.

《해도 보이잖는데서 하란 말야. 가.》

그들은 순경을 날려보냈다.

《어깨패 근사해요.》

채남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세상에 쉬운게 어깨패 안야? 무지와 만용만 있으면 되니까.》

삐라를 다 붙인 그들은 이번에는 그들이 온 로정을 거슬러 걸어가며 그날 밤 전투의 성과를 하나하나 검열하고 갔다.

삐라는 제대로 다 붙어있었다. 밝는 날 아침에 행인들의 주목을 끌고 그들에게 민족의 운명에 대해서 가슴에 손을 얹어볼 계기를 줄것이다.

무엇때문에 양키들은 우리 나라에 머물러있어야 되는가?

맨 처음에 붙인 곳에 와서 채남은 쪼르르 달려가 네귀를 꼭꼭 눌러 밀착시키고 물러나와 상춘의 옆에 바싹 다가섰다. 그의 얇은 옷에서는 따뜻한 체온이 전해왔다. 그렇게 꼭꼭 누르던 그의 손이 몹시 아름다왔다고 상춘은 생각했다. 큰길로 나섰다. 통금예비고동이 길게 울리고 행인들이 걸음을 재촉했다. 전차가 빨간 불을 달고 질주를 했다.

그러나 상춘과 채남은 마냥 천천히 걷고싶었다. 밤새도록 길이 뻗어나갔으면싶었다.

《채남.》

상춘은 그를 불렀다. 채남은 대답을 하지 않고 쳐다만 보았다. 앞에 오는 자동차의 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쳐주었다.

《우린 얼마 안 있어 판문점으로 갈거요.》

《판문점?》

《노오 리턴 브리지(건늘수 없는 다리)란 슬픈 말이 있지만 우린 건너야 해.》

《라침판》에서와 학생운동지도부층에서만 론의되고있을뿐 아직은 구체화되지 않은 문제지만 상춘은 이밤에는 채남이 돋보이며 그 비밀을 말해주고싶은 충동을 참지 못했다.

채남은 상춘의 손을 더듬어 꼭 쥐고 걸었다.

《나도 함께 가요.》

그의 몸이 알맞춤한 중량감으로 느껴왔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