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영원한 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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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후에 녀자간수가 복도로 지나가며 재판이나 검사심문을 받으러나갈 피고들의 번호를 불렀다.

어머니의 번호도 불렀다. 철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복도에 나가섰을 때는 머리가 잡아둘리며 어둠침침한 복도가 배를 탄듯 흔들리였다.

《모두 아니라고만 잡아떼세요.》

재판소쯤을 우습게 아는 절도상습범의 녀자가 어머니의 번호가 불리워졌을 때부터 연방 대주는 그 녀자나름의 친절이였다.

《내 말대로 꼭 그렇게 하세요. 그렇찮음 걸립니다. 판사놈의 새끼들도 다 한통속놈예요. 검사는 독사구 판산 능구렁이예요.》

그 녀자는 배식구멍에 머리를 내밀듯 하고 신신당부를 했다. 어머니가 그 친절이 고마와서 알았노라 눈짓을 해보일 때 녀자간수의 곤봉이 날아 배식구멍을 때렸다. 감방에서는 비명이 울리며 녀자간수를 저주하는 상스러운 욕설이 쏟아져나왔다.

여러 감방이 그 걸죽한 욕설에 웃음판으로 된다.

《이년들, 나중에 보자.》

녀자간수와 잡범들과의 사이는 언제나 그러했다.

좌우감방들에서 무수한 눈들이 바깥에 나가는 어머니를 부러운 시선으로 내다보았다. 바깥공기가 그렇게도 그리운것이다. 녀자간수는 그들 입에서 나오는 야유와 상스러운 말을 미리 봉쇄해버리려는듯 곤봉을 휘둘러보이며 빠르지 못한 어머니의 걸음을 재촉했다. 무슨 사상운동을 하다가 잡혀와서 사형언도를 받고 이감돼왔다는 녀자가 들어있는 25호감방앞에서는 더욱 빨리 걸으라고 등을 밀었다. 어머니는 그럴수록 그 녀자의 얼굴이 보고싶었다. 어지러움을 참지 못하는체 걸음을 멈추며 감시구로 감방안을 훔쳐보았다. 단정하게 앉아서 책을 보다가 이쪽으로 눈을 들어보는 30살가량의 젊은 녀자, 그 녀자의 얼굴에는 절망이나 슬픔의 그늘은 조금도 없고 온화한 빛이 감돌았다. 무엇인가 따뜻하고 굳센 힘이 몸에 와서 감기였다.

어머니가 기다란 복도를 다 왔을 때 앞의 철문사이로 보이는 중앙복도에서 얼밋거리는 마을사람들의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한지붕밑에 있으면서도 좀체로 소식들을 서로 모르고 지내는 고향사람들, 어머니의 걸음은 녀자간수의 독촉이 아니래도 빨라졌다.

《앉앗!》

중앙복도에서는 간수가 마을사람들에게 호령했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은 앉지를 않고 가까와오는 어머니에게로 달려갈듯 자유롭지 못한 몸들이 엉거주춤들해있었다.

《앉으란데두.》

마지못해 모두들 일렬종대로 앉은 중간쯤에서 태정의 얼굴을 발견하자 어머니의 걸음은 저절로 그리로 끌리였다. 어머니가 무슨 죄가 있어 기소를 하느냐고 검사와 싸우다가 몹시 맞고 한때는 위독까지 하던 그였다.

《태정아!》

그의 손을 잡아볼새도 없이 간수의 우악스러운 손이 먼저 와서 어머니를 끌어다가 맨앞에 앉히였다.

전원을 앉힌 다음 간수는 명단과 대조를 해가며 호명을 하고 인원수를 확인한 끝에 구령을 내렸다.

《일어섯!》

옆에 섰던 간수가 차례차례 짝을 맞추어 서라 하고 수갑 한쪽고리씩에 각각 다른 사람의 한팔씩을 채워 짝을 지어나갔다.

태정이 슬며시 앞의 사람과 자리를 바꾸고 앞으로 나와 어머니와 짝이 되였다.

《왜 앞으로 나오는거야?》

간수가 도로 제자리로 끌어갈듯 눈을 부라렸다.

《우리 어머니요.》

태정이 어찌도 당당하게 대들며 《어머니》라고 했던지 간수도 주춤해서 저희들끼리 쳐다보며 침묵의 의논을 했다.

《감옥에서 어머니와 자식이라. 집안 자알되겠다. 눈감아준다. 그대신 얘길하면 안돼.》

간수는 한쪽고리에는 어머니의 손목을, 다른 고리에는 태정의 손목을 채워주고 그로서도 동정심이 생기는지 어머니를 딱한 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또 한번 주의를 주었다.

《얘길 하면 안됩니다.》

어머니는 알았노라 고개를 끄덕여보이고 간수가 뒤로 가는 순간 태정의 손을 더듬었다. 태정도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의 손은 차거웠다.

《몸들은 모두 성하냐?》

《아버진 병감에 계세요.》

듣고보니 홍락원의 털보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수염이 더부룩하고 얼굴들은 여위였다. 창으로 보이는 면회실앞의 버드나무를 신기한 눈으로 보고들 있다. 버드나무에는 햇잎이 야들거리여 봄이 함뿍 실렸다. 고향논밭의 파종들을 생각하고있는 모양이였다.

태정은 자기의 따스한 손으로 어머니의 싸늘한 손을 싸쥐고 녹여주려는듯이 손에 힘을 주었다 늦추었다 하면서 간수의 눈치를 살피며 속삭였다.

《내가 옮긴 방은 아마 전에 상춘아버지가 계시던 방인가 봐요.》

어머니는 죽은 남편이 그 방에 있다는 소리만큼이나 반색을 하며 놀랐다.

《어떻게 그걸?》

《말하면 안된다는데두요.》

간수가 점잖게 나무란다. 그러나 그것은 직무상 한번 해보는 하나의 버릇에 지나지 않았다. 고향사람들을 하나의 수갑으로 채워놓고 어찌 말이 없기를 바라겠는가. 4. 19후 간수들의 횡포도 얼마쯤은 완화된것이 사실이지만.

《오선생님이름이 있어요.》

《이름이?》

감방에는 실로 많은 락서들이 있다. 마루바닥에는 꼬니판이 여기저기 그려져있고 벽에는 무수한 구호들 《조선독립 만세!》,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라!》, 《양키는 물러가라!》, 《미국신식민주의를 배격한다!》가 힘있는 필치로 씌여있다.

기적적으로 들어오는 쇠붙이로 혹은 손톱으로 그들이 심혈을 기울여 파놓은 글자들이다. 그 구호들사이에는 간혹 동지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짧은 글들도 있다. 그것들은 감방선행자들의 피나는 생활기록이며 강한 의지의 자국들이다. 처음 감방에 들어온 사람들은 우선 그 무수한 락서들을 하나하나 판별해 읽는것으로써 선행자들의 뜻을 물려받고 자신들이 선 자리가 어떠한 곳인가를 새로운 각오와 의지로 다짐하게 된다.

태정도 최근 새로 이감돼간 감방의 그 락서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어보는 동안에 -고 오원필- 하는 조그만, 지금은 《죄수》들의 등에 닳고닳아서 거의 획을 알아볼수 없는 글자를 발견했다.

오원필은 거의 죽게 되였을 때 보석이 되여 세상을 떠났다. 운명할 때에 감옥에 있는 어떤 사람에게 자기의 죽음을 꼭 통지해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감옥에서 오원필의 부고를 받은 어떤 《죄수》가 슬프고 분한 나머지 그 넉자를 파놓았을것이다. 그는 자신의 슬픔과 원한을 달래기 위하여 그 글자를 판것이였지 20년후에 오원필의 고향청년들을 위해서 그 작업을 한것은 아니리라. 그러나 때로 운명은 기이한것이여서 태정이 그것을 보고 어머니에게 전하는것이다.

어머니는 다리에 힘이 없어 비틀거리며 똑바로 걷지를 못했다. 태정은 그것이 보기에 민망스러웠다. 무엇인가 위로해주고싶었다.

《통일이 가까울것 같아요.》

《무슨 소식을 들었니?》

《학생들이 많이 다녀나갔어요.》

그때 악법반대투쟁으로 구속되였다가 불기소로 며칠전에 나간 학생들을 두고 하는 말이였다.

《상춘일 아는 학생이 우리 방에 있었어요.》

《누구라던?》

《조광래 아세요?》

《안다. 몸이 가늘지?》

《네.》

태정은 조광래에게서 민통련의 이야기를 이것저것 들었다.

《빨리빨리, 무슨 얘기야? 인정이 그렇지 않아 한데 묶어준거도 모르고.》

어머니의 귀전에는 곤봉이 공간을 가르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미결수들을 실은 호송차는 형무소를 나와 독립문을 지나고 서대문네거리를 돌았다. 어머니는 초조했다. 전혀 듣지 못했으면 몰라라 운만 떼놓고 내용은 모르고있으니 조바심이 나도록 마음만 궁금했다.

어머니는 죄수의 신분이고, 호송중의 규률이고 다 모르는체 해버렸다.

《통일이 가까와온다죠?》

태정에게가 아니라 간수에게 물었다. 혹시 태정이 말할 기회가 생길가 해서 한 말이다. 간수는 뜻하지 않았던 물음에 어리둥절해서 《통일요?》하고 반문을 했다.

《간수는 모르슈? 모르면 애한테 들읍시다. 간수님도 통일은 바라실테니까.》

어머니는 수갑을 절렁거리며 태정을 가리켰다. 태정은 민첩하게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학생들이 판문점에서 만난대요.》

《입다물어!》

간수는 불에 덴 사람같이 놀라며 껑충 뛰여일어나는 바람에 자동차의 낮은 천정을 머리로 받았다. 묵은 먼지가 차에 가득찼다.

차안은 그의 위협에 눌리우기보다 웃음이 터졌다.

《호송중에 형사상 비밀이 루설되면 난 이거다. 그땐 우리 집 여섯식굴 네가 먹여주겠나?》

간수는 손바닥으로 자기 목을 자르는 시늉을 하며 자기가 목격한 친구간수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짐작에 제가 이야기를 꺼냄으로써 미결수들의 사담을 봉쇄해버리자는 그로서의 전술이였다. 과연 더 말해볼 틈도 없이 호송차는 정동골목을 지나 재판소구내로 들어섰다.

어머니는 민통련이라는 새로운 한마디, 조광래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상춘이 반드시 관계하고있을 그 한마디를 들었을뿐 내용은 궁금한 숙제로 남긴채 비둘기장(구류장)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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