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영원한 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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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리묘지-4월용사들의 무덤,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하여 가족과 학원, 우정, 청춘, 사랑 모든것을 버리고 간 용사들, 공동묘지에는 그들의 무덤들이 그들이 못다 이루고 간 광장으로 뛰여나올듯 시위의 대렬같이 줄을 지어 늘어서있다.
그러나 그들의 무덤에는 발구르는 먼지가 아니라 봄풀의 속잎이 파랗게 돋아나 봄빛이 아롱거릴뿐 그들의 어머니나 누나들, 학우들이 목메여 부르는 이름에도 대답할줄을 몰랐다.
묘지는 울음의 바다로 화하고있다.
침묵시위가 끝난 후 시위의 연장같이 학생들과 유가족들이 무리를 지어 묘지로 왔고 지금도 묘밖에는 사람들이 늘어서있다.
상춘과 준호, 인표일행이 묘지에 도착했을 때는 윤도, 채남, 유정, 귀선의 일행이 먼저 뻐스로 와서 있었으며 유정이 소녀의 울음으로 엉엉 울었다. 오빠를 부르지 않고 엄마를 불렀다. 그것이 더 애처로왔다.
《엄마야, 엄마야.》
하기는 어머니가 살아있으면 유정은 아직 슬픔이 무엇인지 모를 나이였다.
귀선과 채남이 번갈아가며 달래고 안아 일으켜보았으나 그럴수록 유정은 더욱 몸부림쳤다. 시위행렬에서 거기까지 안고 온 선규의 사진이 동생을 보고있다. 윤도는 쌍지팽이에 의지해서 금방 앞으로 꼬꾸라질듯 삐딱하니 서있다.
《에잇, 에잇!》
그의 입에서는 그런 울분의 탄식만이 새여나왔다. 그의 어머니 홍씨가 무덤의 잡초를 뽑다가 달래보나 그래도 유정은 목이 잠겨 딸꾹질같이 흐느끼기만 했다.
《유정아, 너 멋쟁이오빠 말은 들어야지.》
홍인표가 나서서 달래본다.
《너 오빠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래서 너두 아까 제막식때에 울지 않았지. 모두 널 칭찬했다. 그런데 이렇게 울면 쓰나. 나하구 산새울음을 들으러 가자. 너 오빠는 산새울음을 좋아했단다. 내가 너 오빠 부르던 노랠 불러주마. 산수야 아름답고 좋지, 철따라 꽃피고 꽃지는 동산, 산새의 노래, 아 산수야 정말 아름답고 좋지, 저기 산새도 울고 꽃도 피였다.》
유정은 겨우 울음을 진정하고 한손은 인표의 손을 잡고 한손으로는 상춘의 부축을 받고 일어섰다. 준호는 유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셋은 비로소 선규무덤앞에 머리를 숙여섰다.
상춘의 가슴에는 바다의 거센 파도같이 무거운 부피의 그 무엇이 왈칵 밀려왔다. 슬픔만은 아니였다. 경무대앞에서 그와 함께 어깨를 겯고 총탄을 맞받아나갈 때에 가슴을 채우던 그 격정의 무거운 부피.
오직 증오의 불길 하나만이 있었다. 그들의 머리우에는 맑고 푸른 하늘이 있었다. 그것을 위해서 모든것을 바칠수 있었다.
지금도 머리우의 하늘은 푸르고 높다. 푸른 하늘밑에 사방으로 바라보이는 봄은 아름다왔다. 여기저기 낮은 산을 끼고 산재해있는 마을들에는 살구꽃이 한창이다.
선규는 고학때문에 일요일에도 들놀이 한번 변변히 할수 없었던 처지가 산과 계곡에 마음이 더 끌렸던지 서울교외의 산수를 찬탄해마지 않았다. 서울을 몹시 사랑했다.
그의 소원은 북쪽은 백두산으로부터 남쪽은 다도해에 이르기까지의 편답에 있었다. 이 땅의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외세에 짓밟히는 현실을 참을수가 없었으며 그렇기때문에 용감하게 싸웠는지 모른다.
묘지에는 각 대학들에서 4. 19에 들고나갔던 교기들을 앞세우고 왔으며 병원에서도 왔다. 모교희생자학생들의 무덤, 병원에서 절명한 학생들의 무덤에 꽃을 바치러 온것이다.
묘지에는 비석에 이름을 새겨넣지 못한 무명의 묘도 있었다. 끝내 신원이 판명되지 않은 청년들의 무덤이였다. 그 무명전사의 묘들도 꽃들로 묻혔다. 애끓게 울어주는 사람은 없는 대신 만인의 존경과 애도를 받았다.
무수한 시민들과 학생들이 그앞에 와서 꽃을 놓고 혹은 고개숙여 묵상을 올리고 간다.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거니와 그 형식도 자기류대로 여러가지였다. 단아한 자세로 오래도록 섰다가 나중에는 눈물을 떨구고 가는 녀학생, 손을 들어 전투적인 인사를 드리는 고등학교 학생, 무릎까지 꿇어 절을 하는 중년사나이, 흰수염을 날리며 헉 느낄뿐 말이 없는 할아버지, 이름없는 비석을 쓰다듬으며 그속에서 이름을 기어이 찾아보려는 촌사람-
추도식은 야전에서처럼 파격으로 집행했다. 무덤마다 사람들이 그앞에 선자리에서 일제히 묵도를 하고 분향은 묘지 한복판에 향나무를 장작같이 쪼개 불을 피웠다. 술은 무덤마다 몇패로 나누어 돌아가며 잔디에 부었다. 묘지에 향내가 진동하는 가운데 대학합주단이 용사들을 위하여 새로 작곡한 장중한 곡을 취주했다.
슬픔에만 잠기였던 묘지는 비로소 용사들의 무덤답게, 그들의 추도식답게 장중한 분위기로 덮였다. 뻐꾹새의 울음도 이제는 슬프지 않았다.
상춘을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한왕렬이였다.
《너무 슬퍼말게, 몸에 병되네. 용길 내야지. 난 그만 늦었네.》
그는 사진기를 어깨에 메고 꽃을 한아름 안고 왔다. 무명 묘지들에 꽃을 바치고 오더니 상춘의 손을 잡으려들었다. 상춘은 손을 주지 않았다. 그래도 왕렬은 태연했다.
《사람은 죽음의 장소를 가릴줄 알아야 된다는걸 이젠 나도 알았네. 날 용서하고 축복해주게.》
상춘은 왕렬에 대하여 주목을 돌려온다. 놈은 종잡을수가 없는 존재다. 어제는 이런 행동을 하다가 래일은 극반대의 행동에로 넘어간다. 보통사람이 가지는 자그마한 모순의 그림자도 론리의 당착도 주저의 빛도 없이 이쪽이 오히려 당황할만큼 안하무인격으로 천연덕스럽다. 한때는 반공기분을 가진 학생들끼리 무슨 《동지회》를 조직하는가 했더니 그들사이에는 칼부림의 류혈극까지 연출했다는 소문이였다. 권세환의 선거운동원노릇을 공공연히 한 그로서는 4. 19침묵행렬에는 그림자도 비치지 말아야 정상일텐데 오늘은 남달리 팔에 검은 조장까지를 끼고 그 육덕이 커다란 체구가 제법 슬픔에 잠긴듯 땅을 밟더니 지금은 또 묘지에까지 나왔다.
상춘은 그의 뺨이라도 갈기고싶었다. 그러나 준호에게서 들은 말- 적이나 수상한자와의 관계에서 결정적인 순간 이외에는 되도록 마찰을 피하라던 말이 떠올랐다.
《죄를 짓고있는게지.》
말을 안할수도 없어서 비꼬아주었다.
《죄야 졌지. 권세환의 선거운동을 해줬으니, 그러나 과거의 일일세.》
《과거?》
《7월달은 과거지, 이 초속시대에.》
《멀지 않은 과걸세.》
《사람을 그렇게 간단하게 보지 말게. 인간이란 복잡미묘한거야. 자네가 아는것처럼 그렇게 단순하고 고정불변하고 일직선이라면 작히나 좋으련만 인생행로는 고등수학이야. 나도 깨달은바가 많네. 그러나 그 얘긴 그만두세. 묘지에 와서 지금은 애도의 뜻만 가지세.》
왕렬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상춘에게 권했다.
《난 담밸 끊었네.》
《오래 계속되길 바라네.》
왕렬은 몸을 돌려 부는 바람을 피해 저 혼자 담배를 붙여물고 말했다.
《권세환인 그런자야. 나도 속았네. 속았다기보다 나도 돈에 매였었네. 오직 타도가 있을뿐이지.》
왕렬은 늦게 온 어느 가족들이 하늘에 호소하는듯 땅을 치고 우는 모양을 보고 사진기를 내려 샤타를 눌렀다.
《민중의 표정일세.》
그는 또 무슨 소용에 닿는지 고운 녀학생의 뒤모양도 찍고나더니 《자네도 채남씨와 기념으로 선규군 무덤앞에서 한카트를 찍어줄가?》하고 상춘에게 렌즈를 들이댔다.
상춘은 손을 들어 엄하게 거절했다.
왕렬은 《HKP》활동으로 그곳에 온것이다. 그
상춘이 그것을 알리 없었다. 다만 아버지는 비밀활동을 했기때문에 경찰에 얼굴을 알리지 않으려고 사진찍기를 싫어했다고 언제인가 어머니가 하던 말이 머리에 강하게 남아 그도 되도록 그것을 피해왔다. 그는 홍인표에게 왕렬의 행동이 수상하다고 귀띔해주어 그를 감시하고 방해하도록 일러놓았다. 왕렬의 유들유들한 성격도 인표의 예리한 풍자에는 꼼짝을 못한다.
아들의 무덤에 왔던 로부인이 어떻게 됐다고 채남이 급히 와서 알려주었다. 듣고보니 뻐스를 같이 타고 온 할머니가 아까부터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와 상춘의 집과는 지난 1년동안 자별한 사이로 되였다. 수도병원에서 어머니와 처음 만난 후 어머니와 계속 왕래했다. 어머니가 구속된 후에도 한달에 한두번은 소식을 들으러 오군 했다.
묘지옆 골짜기에 사람들이 모여섰다. 할머니는 바위를 안고 울고있었다. 로인은 소리도 내지 않고 울었다. 오랜 인생의 체념으로 참으려드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북받치는 슬픔은 그 체념으로도 막을길이 없어 남이 보지 않는 곳으로 피해 와서 바위를 안고 우는것이다. 로인의 여윈 어깨가 고목이 떨듯 흔들리였다. 검버섯이 거뭇거뭇한 앙상한 손이 터실터실한 바위를 긁는다. 바위는 감동이 없고 바위버럭만이 세월의 파편같이 부스러져 떨어졌다.
아무도 할머니를 위로할 생각을 못했다. 귀선도 서서만 보고 홍씨는 옷고름만 연방 눈으로 가져갔다. 보다 못해서 수도병원 의사가 할머니의 어깨를 안았다.
《할머니, 어쩐 일이세요. 1년동안에 맘이 약해지셨나요? 작년 그날도 우시지 않던분이…》
《그땐 울지 않았소. 지금도 자식 죽은걸론 울지 않아요. 자식이 바라던 세상이 안된게 원통해 우오. 그땐 자식은 죽었어도 그게 바라던 세상이 온다고 생각하니 슬픔도 참을수 있었수. 오늘은 세상은 그대루 있구 자식만 없다구 생각하니 분하고 원통해서.》
상춘은 다시 묘지로 와서 선규의 무덤앞에 섰다.
《선규야, 네가 바란것은 화환이나 술잔이 아니였다. 4. 19정신의 완전한 개화였다. 너의 어머니같이 슬픈 생을 마치는 사람이 없는 사회제도였다. 통일된 강토이였다. 그러나 아직 그것이 해결되지 못한채 우리는 너에게 왔다. 너와 함께 맹세하러 온것이다. 우리는 이미 새로운 전투를 시작했다. 통일의 기발을 높이 들었다. 4. 19의 그날같이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우리의 기세는 충천해있다. 그 기세를 안고 너를 불러일으키자고 온것이다. 선규야, 너는 또 우리의 앞장에 서다오. 비록 너는 죽었으나 네가 갈망하던것을 이 세상의 누구도 빼앗을수는 없다. 네가 가려던 길을 누구도 막지는 못한다. 원쑤들은 우리에게서 영원히 너를 빼앗았다. 그러나 너는 지금 우리와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