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영원한 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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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9의 한돐이 되였다.
학생들은 통일의 문을 두드리며 그날까지 왔다.
《정부》와 반동들의 공세를 무찌르며 거기까지 왔다.
S대학에서는 그날 4월학생의거탑의 제막식을 거행하고 침묵시위를 하기로 했다.
상춘은 오래간만에 마음놓고 대학으로 나갔다. 지난 2월 2대악법반대투쟁에서 그는 지명수배를 받아 대학에 나오지 못했다.
일부 체포됐던 학생들이 어제 전원 불기소처분으로 석방돼 나왔다. 상춘과 다른 학생들에 대한 지명수배도 자연해소되였다.
통일운동이 고조돼가는 기세에 검찰도 어쩌는수가 없었다.
대학마당 한편에는 기념탑이 높이 솟고 그것을 백포로 씌워놓았다. 백포가 바람에 흔들린다. 4. 19 한돐에 제막식을 하자고 공사를 서둘러 해온것이였다.
운동장에는 정향꽃이 피기 시작하여 그윽한 향기를 뿌리고있다. 교정에는 학생들이 여기저기 무리를 지어 작년 그날 4월의 광장으로 뛰여나가던 그때의 광경을 련상시키게 하나 흥분하지 않고 침통한 기분에 잠겨있다. 대학전체가 그런 분위기였다. 희생된 학생들의 어머니들이 입고 나온 흰빛의 소복이 눈을 아프게 찌른다.
아들의 사진들을 들고있다. 자식들을 잃은것만도 슬픈 일인데 4. 19는 짓밟혀 그들의 뜻은 아무데서도 찾아볼수가 없다. 분하고 원통한 마음이 속에서 탄다. 그래서 학생들은 흥분하지 않고 침통한 기분인것이다.
정향꽃의 화려한 그림자도 오히려 침통해보인다.
지난번 졸업식때에도 그러했었다. 졸업반이였던 희생된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면 그 어머니가 대신 대답을 하고 나가서 아들의 졸업장을 받기로 했으나 어머니들은 목이 메여 대답을 못했고 식장은 그만 울음판으로 되고말았었다.
상춘은 학생운영위원회로 가보았다. 체포됐던 학생들까지 나와서 그날행사를 준비하고있었다.
조광래는 리발도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와서 그날 행사에 빠진게 없나 찬찬스레 돌보고있으며 홍인표는 형무소에서 나온 그대로인지 수염이 더부룩했다.
《수염과 함께 증오를 길러가지고 나왔다. 증오야 불타라, 분노야 폭발하라. 오늘은 우리가 그런 심정이 아닌가?》
조광래는 상춘을 한쪽으로 끌고 와서 말했다.
《너 고향농민과 같은 방에 있었다. 홍태정이라고…》
상춘은 반갑기보다 4. 19 한돐이 되는 그날에 어머니와 고향사람들을 형무소에 두고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느껴졌고 가슴에 서리고있는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은 그의 입을 더욱 무겁게 했다.
《쉬 공판이 있다더라.》
《…》
제막식의 시간이 되였다.
백포가 걷히고 학생들의 뜻과 같이 화강암기둥의 첨탑이 하늘을 가리킨다. 대석에는 작년 그날그대로 두팔을 치켜들고 교문을 박차며 뛰여나가는 4월용사들의 모습, 노한 얼굴, 노한 눈의 군상이 부각되여 기념탑앞에 늘어선 학생들에게 달려나온다. 오늘도 바로 그렇게 거리로 나가자는듯.
비에는 《나는 오늘도 정의를 위하여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련다.》하는 비문을 새겨넣었다.
어머니를 부르고 숨진 선규의 일기에서 따온 한구절이였다.
학생들은 기념탑앞에서 무겁게 말이 없었다. 작년의 그 분노, 4. 19가 짓밟힌데 대한 오늘의 분노가 한데 집결되여 가슴은 터지는데 희생된 학생들의 사진을 들고 가족들이 기념탑앞에 나가 서자 학생들의 비분은 더해간다.
유정도 선규의 사진을 안고 섰다. 유정은 울지 않았다. 1년동안에 슬픔을 잊어버린것은 아니다.
소녀는 저의 오빠가 남긴 그 말을 평소에 노래같이 외우고있어서 지금도 그것을 속으로 외우자 어린 마음은 대추씨같이 단단해지는것이였다. 소녀는 눈을 깜박거리며 상춘의 얼굴을 찾는다. 상춘이 오히려 울것 같아 그애를 보지 않으려 했다.
제막식이 끝난 다음 준호가 그날을 기념하는 선언문을 랑독했다.
《오늘 우리는 가시지 않은 1년전의 통분과 분노를 지닌채 우리의 선혈로 물들여진 4월의 광장에 다시 모였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싸우는 그 민족, 젊은이들.
우리는 그 싸움으로써 특권과 <단독정부>, 사욕우에 세워진 리승만체제가 무너지라고 육박했다. 그러나 안팎으로 뿌리깊게 박혀진 리승만적반민족체제는 모습을 달리했을뿐 본질에 있어서는 그대로 지속되고 또는 더욱더 나빠지기만 할뿐이다.
보다 더 많아지는 절량민과 사회악은 이것을 말한다. 그 거룩한 3, 4월의 항쟁을 정치지도조직의 허약성과 전환기리론의 빈곤성 등이 중지시켰다. 뿐만아니라 특권의식에 찬 그들에게 <정권>을 되돌려주는 실패를 가져왔다. 하나에서 열까지 통분하지 않을수 없으며 거기서 지내온 이 1년간의 시간은 치욕과 울분밖에 갖다준것이 없다.
우리는 3, 4월항쟁을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 지금 이 땅의 력사적사실을 전진적으로 변혁시키기 위해서는 반외압세력, 반매판세력우에 세워지는 민족혁명을 이룩하는 길뿐이다. 이 민주, 민족혁명수행의 앞길에는 깨여진 민족의 통일이라는 커다란 숙제가 놓여있다.
이를 이룩하기 위해서 우리들, 젊은 대렬은 정비하고 전진한다.
이러한 리론적 및 조직적체제를 가지고있지 못했던 우리들은 끝없는 모색과 키없는 항해와 같은 전투로써 지난 1년간을 지내왔다.
우리들은 이러한 모든 실패를 거울삼아 여기 전망하는 새로운 국면을 어떻게 하더라도 특권이 아니고 민주, 민족 량단이 아니고 통일, 외세의존이 아니고 민족자립의 방향을 쟁취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영광스러운 통일조국을 가질수 있다.
우리들은 이를 위하여 나아간다. 의롭게 가신 3, 4월의 영웅과 전체 선렬의 무덤에 승리의 꽃다발을 드릴 그날까지.》
침묵시위가 시작되였다.
1년전 그들이 피흘리며 달려가 민주주의와 자유를 부르짖던 거리의 그 로정을 말없는 무언으로 밟아나가는 시위였다.
입을 열어 말을 하면 먼저 통곡이 나올듯 하여 무언으로 그들의 결의를 반영한 프랑카드를 들고 국민의 넋에 호소하는 시위였다.
시위선두에는 한껏 크게 쓴 《민족자주통일》이라는 프랑카드를 상춘과 준호 그리고 또 두 학생이 팔이 아프게 소중히 들고나간다. 거리를 꽉 덮는 기분이였다.
그뒤로 《침묵시위》의 네 글자가 한자씩 따로따로 높이 떠서 나가며 사이사이에 여러 구호판들을 들었다. 희생된 학생들의 사진을 화환으로 장식해 앞에 서서 나가게 했다.
그것은 장면《정권》과 친미보수세력에 대한 무서운 항의였다. 4. 19를 짓밟는자들에 대한 단죄였다.
시위학생들은 한발자국한발자국을 항의와 분노로 밟아 거리를 나간다.
경찰의 곤봉세례와 최루탄과 탄환을 맞받아 한치한치 땅을 점령해나가던 길이다. 어느 지점에나 피의 자국은 있으며 치렬했던 투쟁의 기록은 스며있다.
리화동도로교차점을 지나 종로5가로 나갔다가 다시 되돌아섰다. 경찰의 저지선을 피해서 원남동으로 방향을 바꾸던 로정이였다.
시민들은 앞에 나가는 희생된 학생들의 사진에 모자벗어 조의를 표시하고 학생들에게는 박수를 보냈다.
학생들은 묵묵히 걷기만 했다. 그들이 들고나가는 구호가 시민들과의 대화로 된다.
《이 땅이 뉘 땅인데 오도가도 못하느냐》
《남북서신거래》
《학원에 경찰은 간섭말라!》
시민들은 열광했다. 15년동안 그들의 가슴속에 원한같이 서리고있는 열원을 학생들이 비로소 대변해 들고나온것이다. 시민들의 환호도 차츰 침묵으로 변하며 학생들을 따라온다. 마냥 환호와 박수만을 보내기에는 너무나 절실한 요구들이여서 생각은 속으로 파고들며 침묵으로 변하고 환호보다도, 박수보다도 더한 공감이 몸을 뜨겁게 하여 침묵시위의 대렬을 따라오는것이다.
지난해 4. 19부터 만 1년이 지나갔다. 바로 어제 같으면서도 무척 긴 세월처럼 여러가지 사건들이 중첩한 365일이 흐르는 사이에 바로잡힌것과 좋아진것이 무엇이냐?
백화점으로부터 구멍가게에 이르기까지 외국상품이 꽉 차있는 거리, 이땅은 외국독점자본의 상품시장으로 전락했다. 그래도 또 부족해서 일본독점자본을 끌어들이려고 획책하는 《정부》, 또다시 듣게 될 게다짝소리, 식민지적예속경제, 외국원면, 원모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방적공업과 모방직공장, 외국잉여농산물에 매달리는 제분공장, 거기서 생기는 수십억대의 매판자본가들과 친미보수정당과의 유착, 과연 이 땅의 이름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
학생들은 무겁게 땅을 밟아나갔다. 이 거리와 광장에서 열풍을 휘몰아오던 4월의 사자들, 울분에 찬 눈동자, 꾹 다문 입, 높이 쳐든 구호판-침묵시위의 침묵은 침묵이 아니다. 그들이 달려가는 길을 가로막는 원쑤들에 대한 증오와 통분의 함성이며 무자비한 선전포고다. 조만간 터지고야말 활화산이다.
시위대렬이 파고다공원앞에 이르렀을 때 공원에서는 지게군들과 실업자들이 몰려나왔다. 그들은 대렬로 뛰여든다.
《실업자의 일터는 통일에 있다》는 구호로 바꿔든 상춘에게로 몇사람이 달려들었다.
《이건 우리가 듭시다.》
상춘은 그들을 보았다.
《학생들이 우리의 맘을 꼭 알아맞혔소. 정말이요. 장면이도 우리한테 일자리를 주지 않아요. 인제 바랄게 통일밖에 없소. 그거 아니곤 이놈의 실업의 길은 천리를 가도, 만리를 가도 끝날 날이 없소.》
상춘은 그들에게 구호판을 내주었다.
그것은 그들로의 시위가 되며 학생들의 뒤를 따라오다가 서울시청앞으로 방향을 바꿔갔다.
침묵시위의 대렬을 따르는 시민들의 수는 점점 늘어간다. 박수를 보낸다. 환호를 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계속 침묵으로 종로를 지나 의사당앞으로 갔다.
서울거리에 폭발성이 강한 시한탄을 발자국마다 묻어가며 땅을 무겁게 밟아나간다.
서울거리에 통일의 불씨를 뿌리며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