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새로운 성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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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대학에서 민족통일학생련맹을 발기하는 날이였다.

회의는 오후 2시에 열리였다. 력사적인 회의였다. 대회도 아니고 비록 발기회의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것은 민족력사의 한페지를 장식하는 날이였다. 북에서는 그동안 조국통일을 위한 크고작은 회의가 정부의 이름으로 혹은 사회단체의 명의로 무수히 열렸다는 소식이 들어왔지만 이 땅에서는 《정부》나 정치인들이 한번도 통일에 대해서 일언반구 언급한 일을 국민들은 듣지 못했다.

국민들사이에서는 4. 19직후부터 통일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으며 특히 8. 15해방 15돐을 맞으며 일성장군님께서 통일방안을 제시하신 후 그것은 료원의 불길로 남녘땅전체를 휩쓸고있다. 4. 19가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해서 학생들이 일어난 봉기였던만큼 4. 19정신을 지켜나가는 학생들은 응당 또 국민들의 념원을 안고 통일의 기발을 들어야 할 사명이 있는것이다.

4. 19후에 학생들의 각종 모임들, 단체들로 되는 무수한 성좌들이 모두 조국통일에 대한 모색과 연구를 해왔다.

《라침판》도 그 하나였다. 준호와 상춘은 대학내에서 많은 동지들을 얻었다.

《라침판》을 중심으로 S대학 민족통일전선결성을 준비해왔다. 2월 1일 대학강당에서 발기할것을 합의하고 대학당국에 알리였다.

당국에서는 《전선》이라는 명칭을 문제삼았다. 원익홍박사가 까다롭게 굴었다. 사회의 의혹을 사지 않을가 두렵다는것이며 그렇게 되면 장차 학생들의 활동에도 저해를 받을것이라는 말이였다. 민족통일추진학생회로 할것을 지시했다.

상춘은 그 지시에 복종하지 않았다. 명칭은 곧 활동의 내용을 규정하기때문이였다. 그는 통일문제를 S대학 학생들의 힘만으로 풀수 있다고는 보지 않았다. 또 그것을 연구하는것만으로도 만족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4. 19의 정신그대로 전투와 같은 투쟁이 필요하다. 《전선》이라는 명칭이 바로 그 활동에 부합되는것이였다.

서로 주장한 끝에 《련맹》으로 락착을 보고 그날 발기를 하게 되였다. 명칭부터 하나의 시련을 겪은것이다.

발기인 260여명과 방청인 150명이 모였다.

강당에는 가을의 엷은 해빛이 비치였다. 주최측의 학생들은 별로 강당을 장식할 준비까지는 하지 않았으나 참가하는 학생들의 열의로 회의장은 화려하게 장식되여갔다. 책상보를 가지고 온 녀학생, 휴대용마이크를 구해온 학생, 각 대학 학생회에서는 화환을 보내주어 강당은 꽃으로 덮였다.

신문기자들도 여러명 왔다. 신문사에서 보냈다기보다 졸업생기자들이 사회에 나가서도 모교학생들의 움직임에 관심을 가지고있은것이며 무엇보다도 통일문제가 가지는 뉴스의 값에 민감했던것이다.

뜻하지 않은 성황에 주최측 학생들은 회의장을 정돈하느라고 시간을 약간 끌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다가 집행부에 자리가 잡히고 상춘이 선규의 사진을 들고 들어오자 강당은 일시에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모두들 4. 19 그날로 돌아가 보는것이였다.

준호가 사회를 했다.

《지금부터 S대학 민족통일학생련맹 발기회를 열어 우리들의 지상과업인 통일의 성스러운 홰불을 올리겠습니다.》

발을 구르며 오래도록 박수가 그치지 않았다. 일어나서 저절로 교가가 합창된다.

회의순서에 따라서 상춘이 개회사를 했다. 그도 흥분해서 연단에 올라 한참은 말문을 열지 못했다.

《여러분! 우리들은 이 회의를 4월 26일 리승만을 내쫓던 그날 광화문 네거리에서 이미 가졌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선규의 장례날 우리들 가슴속으로 이 회의를 가졌던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들이 그날 기발을 들었던것이 아닙니까.》

《사회!》

발기인 자리에서 허강이 손을 들고 일어났다.

《선규군을 오늘 이 회의의 명예의장으로 추대할것을 제의합니다.》

모든 사람의 찬동을 받아 선규의 사진을 앞으로 내다놓은 다음 상춘은 개회사를 계속했다.

《… 4. 19때에 우리들은 전 강토가 못살겠다는 아우성을 들으면서 이 강당 저 교실들에서 일어날것을 론의했습니다. 오늘은 전 강토가 통일을 해야겠다는 아우성을 들으면서 이 회의를 하고있습니다. 들어보십시오. 우리의 귀는 통일이라는 그 소리에 메여옵니다. 우리들의 뒤에는 4천만의 민중이 있다는것을 나는 서슴없이 말할수 있으며 우리가 그들의 맨 앞장에 서서 거인같이 손에 돌을 들고 섰다는 의식을 나는 <한국>학생의 최대의 영광으로 압니다. 우리 민족은 둘이 아니며 틀림없이 하나입니다. 오랜 세월을 거쳐 형성된 뗄래야 뗄수 없는 단일민족입니다. 이 민족이 우리 세대에 와서 갈라진다면 이것은 우리 세대가 후손만대에 죄를 짓는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한가정속에서 단란하게 살수 있으며 단합할수 있고 오붓하고 평화롭고 행복할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미국이란 나라가 지구우에 나타난 시기보다도 훨씬 오랜 그 옛날부터 수천년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전통을 가지고있습니다. 이 민족이 우리 세대에 와서 갈라져 살아야 합니까?

우리 민족은 자기의 운명을 어떤 외세의 간섭이 없이 자주적으로 훌륭히 해결해나갈수 있는 능력과 소질을 갖고있습니다. 그러나 지배층의 무능과 매국배족적정책으로 각종 형태의 외세의 간섭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한번도 굴하지 않았으며 죽지 않았습니다. 일제 40여년의 통치만 보더라도 국내 도처에서 애국운동은 료원의 불길로 일어났습니다. 애국투사들의 불멸의 피자국과 그들이 전개한 민족해방투쟁의 세찬 불길의 영향하에 길러진 애국심은 우리들 체내에 흐르고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민족분렬의 비극을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지금 분계선철조망은 녹이 쓸고 말뚝은 썩어가고있습니다. 뭇새들이 자유로이 남북을 날아다니고, 동서바다의 물고기들이 자유로이 남북을 회유하고, 강물도 예나 지금이나 남북을 흘러내리고있는데 오직 이 강산의 주인인 우리들만이 갈라져 살며 우리의 젊은 청춘이 이 슬픈 사실앞에 말뚝같이 서서만 있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지금 우리들은 일어났습니다.》

학생들은 모두 일어서서 통일만세를 불렀다. 박수를 치고 발을 굴렀다. 그들은 다시 4. 19의 기발을 들고 통일에로 나가고있다.

토론과 강령규약의 초안결의문을 채택해가는 동안 강당은 조국통일의 산실로 화해갔다.

무수한 성좌들이 지금 저 하늘에서 찬연한 빛을 던지고있는것이다. 모든 별들은 부단히 자리를 옮기며 밤의 하늘을 영위해간다. 그러나 북극성만은 자리를 옮기지 않으며 방위를 가리킨다. 조국통일을 우리는 북극성이라 하자. 우리의 변치 않는 목표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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