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불안한 계절

5

 

장충동 권세환의 집은 그 일대 주택지대에서도 터가 좋았다.

정문에서 정원으로 들어가는 길 좌우로는 괴석이 운치있게 놓이고 키낮은 회양목이 그 길가장자리에 다문다문 늘어선 15°가량의 낮은 경사를 바른쪽으로 굽이돌아 올라서면 넓은 정원이 아담하고 그안으로 2층양옥이 몇그루 로송에 가리워있다.

정원에 서면 왼쪽으로 서울시가의 일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가지 상공에 떠도는 뿌연 먼지와 검은 매연을 볼 때마다 권세환은 새삼스레 정원의 신선하고 맑은 공기를 자랑하게 된다.

그는 오래간만에 관리원을 불러서 그를 앞세우고 정원을 돌아보았다. 송아지만 한 개가 어슬렁거리며 뒤를 따라다녔다.

무슨 용무인지 모르나 자유당 원내총무가 집에서 기다리라고 해서 오후는 외출도 못하고 답답한김에 정원을 돌아보는것이다.

상록수로는 소나무와 전나무, 동백나무 등이 섰다. 향나무가 그 모양과 생김새의 기묘함을 보이며 땅에 깔리기는 했으나 그것은 이웃집 정원들에도 흔히 있는 종류들이라 별로 자랑이 아니였고 몇해전에 경상도에서 수백만환의 돈을 들여 구해온 한그루의 모과나무와 두그루의 목백일홍이 그의 자랑이였다.

그 나무들은 서울이라 해도 기온이 낮아서 겨울이면 얼지 않도록 짚으로 겹겹이 싸고 종려나무껍질의 새끼로 동여매주어야 한다.

《아직도 풀 때가 되지 않았나?》

《네, 아직은…》

그는 얇은 옷이 추워서 그러는지 으시시한 얼굴로 대답을 했다.

《얼지 않았나? 지난 겨울은 날씨도 하도 변덕스러워서…》

권세환은 짚에 싸여 마치도 만화에 나오는 그림같은 나무를 쳐다보았다.

《뭘입쇼, 이렇게 싸줬는뎁쇼.》

그는 맡은 소임을 주인에게 보이고싶은지 짚을 비집고 손을 펴서 찔러보였다. 반기장이나 들어갔다 나오는 손끝에는 흰 솜의 섬유질이 묻어나왔다.

《솜까지 넣었습니다, 나으리.》

《음.》

권세환은 안심된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중얼거렸다.

《나무도 우리 집에 와서 호강하는군.》

《그렇구말굽쇼.》

그는 으시시해서 맞장구를 쳤다. 겨우내 입은 내의가 하도 더러워져서 한벌밖에 없는 그것을 빨게 하고 맨살에 작업복만 걸친채 온실에서 일을 보다가 밖으로 불리워나온 그는 몹시 추웠던것이다.

《자네 이 나무값이 얼만지 알지?》

《압니다.》

《잘못했다간 자네 없어.》

《황송합니다.》

정원관리원은 그 소중한 나무가 죽기라도 한듯이 공연히 사죄를 해보인다.

《이 돌들엔 왜 이끼가 돋지 않는가?》

정원을 꾸밀 때 어느 정원설계가에게 부탁했더니 그는 일본식정원밖에 아는게 없는지 일본식으로 암석을 배렬하고 그 돌들에 이끼가 돋게 하여 《흥취》를 나타내게 한것이다. 그러나 기후풍토가 습하지 않고 더우기 그 일대 화강암질에서는 이끼가 돋을 까닭이 없었다. 돌들만 앙상하게 표층을 드러내고있었다.

《일본식이 여기선 맞지 않습죠.》

《일본식이 맞지 않다니? 자네가 뭘 안다고… 정원술은 일본이 세계에서 제일이야.》

정원을 설계할 때 설계사의 안목도 있었지만 일본심취자인 권세환이 그의 견식대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주문한 끝에 설계된 정원이였던만큼 그는 자기의 일본식을 평하는 말이 몹시 귀에 거슬렸다.

《자네 관리가 잘못된건 생각잖고 일본식이라 안된다니 그럼 우리 나라엔 이끼도 없단 말인가?》

《아니올시다.》

정원관리원도 정원예술에 대하여 깊은 연구와 조예가 있는것은 아니였다. 그가 항상 생각하는 정원은 조선식으로 가장자리에 꽃무늬를 두르고 그가운데 불로장생도의 그림을 그린 아담한 담이 서고 그밑에 괴석이 놓이며 앞으로는 화단이 있어 거기에는 석류, 치자, 옥잠화, 수국 등이 철따라 피는 별로 돈을 들이지 않은 뜰을 생각하는것이였다. 그러나 권세환의 집 정원에는 세멘으로 련못도 만들었고 그우에 꼬부랑다리도 걸쳤으며 석등도 앉히여 그것은 생활의 즐거움이라기보다 돈자랑이였다. 공원이면 몰라도 한 개인이 그토록 넓은 면적에 돈을 뿌려 만든 정원에 아무리 그것때문에 자기가 고용돼있다손치더라도 그의 내심에는 돈지랄이라는 비난이 있어서 일본식이 어쩌고 해본것이였으나 주인이 그렇게 꾸짖는 자리에서는 다만 허리를 굽실거릴뿐이였다. 아무튼 그는 주인과 만나면 잔소리의 대상으로 되는것이다.

권세환의 발길은 동편 담쪽으로 옮겨졌다. 담밖에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렸기때문이다.

《웬 애새끼들야. 도적놈들 아냐?》

《아니올시다. 요새 거기다가 움집들을 지었습니다.》

《움집?》

남의 담밑에다 움집을 짓다니, 자기 집주변 먼발치에 오막살이가 보이는것조차 부스럼딱지같아서 질색인 권세환은 얼굴이 험악해지더니 그를 닦아세우며 급히 발을 옮겨 담밑으로 가서 밖을 넘겨다보았다. 남산에서 흘러내리는 도랑기슭을 끼고 담밖에 벌써 십여채나 두더지같은 움집들이 파고앉았다.

《요새 <대통령>선걸 앞두고 저런 취체가 없어졌대나요. 마구 짓습니다.》

《그래, 자넨 저걸 그냥 짓도록 내버려뒀나?》

《이제 혼들 날거라고 했습죠만 저런 사람들야 앞일을 생각합니까? 오늘이 금방 문젭죠. 모두 전라도에서 못살고 올라온 떼거지들이랍니다.》

《듣기 싫어!》

권세환도 그렇게 화를 내기는 했으나 선거를 앞두고 판자촌철거는 일시 당국의 명령으로 중지한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었다. 자유당과 《정부》는 경찰, 군대, 관공청, 학교, 어용단체 일체의 기관을 총동원하여 선거반대, 리승만반대, 자유당반대에만 탄압을 집중강화하기로 하고 공연한 소란만 야기시킬수 있는 판자집철거는 선거가 끝날 때까지 일시 중지하라고 내무부를 통하여 시달했던것이다. 귀신이 곡할노릇은 그와 같은 기밀에 속하는 정책이 어떻게 루설되는지 그것을 저 《벌레》만도 못한 류랑민들이 알고있으며 《바보》같은 정원관리원의 입에서까지도 그 말이 나오는것이다.

권세환은 입맛이 쓰거울뿐이였다. 누구에게 가는 울화인지 가슴이 부글거리며 눈이 파래지기 시작했다. 그때 만약 정문으로 들어오는 자동차의 경적소리만 아니였더라면 정원관리원은 단단히 혼날것이였지만 재수가 좋았던것이다.

자유당 원내총무가 차에서 내려 이쪽을 바라보고있었다.

《늦어서 안됐소, 환평.》

환평은 권세환이 관계하는 일체 사업체의 상표였으나 사람의 아호로도 좋은편이라 하여 《국회》의원들사이에서는 그를 그렇게 부른다.

권세환은 원내총무에게로 천천히 가서 손을 잡아 반가움을 표시하고 그를 안내하여 정원을 한바퀴 돈 다음 현관으로 들어갔다.

피빛같이 빨간 융단을 깐 양실마루에서는 권세환의 처가 미인에 속하는 하녀를 데리고 손님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기다렸습니다.》

모든 례의범절을 격식에 맞춘다 하여 주부가 직접 손님을 맞이하는것까지는 좋으나 손님의 모자와 코트를 받아서 하녀에게 넘겨주어 걸게 하는것은 하녀를 두고있다는 자랑같기도 하고 어딘지 뜬데가 있어 낯간지러웠으나 그런 수작은 벼락부자들의 과도적풍습이였다.

마루 한가운데 화류탁자우에는 청동향로가 놓여있었다. 향로는 시가 5백만환을 오르내리는 진품으로 그 집에 오는 사람은 누구나 골동품에 대하여 지식이 있거나 없거나 한번 감상하고 찬탄하는것을 일종의 례의로 삼았다.

《골동품은 훔쳐가도 도둑이 아니라면서요?》

총무는 향로를 손바닥으로 쓸어보며 권세환의 처에게 그 물건의 가치를 그렇게 찬양해주었다.

《우리 주인같이 그렇게만 애호해주신다면 가져가신들 무슨 죄가 되겠어요.》

권세환의 처는 교태를 부리며 응대를 하였으나 그들부부는 사실 어디에 5백만환의 가치가 있는지 알지를 못했다. 다만 그것이 위조품이 아니고 진품이기를 바랄뿐이였다. 오히려 그옆의 어항에서 녀인의 치마꼬리끌듯 지느러미를 흐느적거리며 헤염치는 금붕어에 대해서 더 취미를 느끼였다.

그것들도 한마리에 몇만환씩의 값을 지니고있었다. 권세환의 딸 미자가 세계명배우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다섯마리의 금붕어가 물속에서 비로도빛갈보다도 더 고운 비늘빛을 반짝이며 헤염치고있었다.

총무는 권세환의 처와 몇마디 인사삼아 향로와 금붕어에 대하여 찬탄을 련발한 다음 권세환을 따라 응접실로 들어서기 바쁘게 깊숙한 쏘파에 몸을 던졌다.

《아아 피곤하오, 환평.》

그의 본심인것 같았다.

《어제 밤 또 외박을 한게로군.》

《외박이 다 뭐요. 큰일났소.》

총무의 얼굴에는 심려와 초조의 그늘이 깊었다.

《뭐가 그렇게?》

《가만있소.》

권세환을 바라보는 총무의 눈은 교활한 웃음으로 바뀌여가는게 무엇인가 장난기로 연막을 치는 가운데 긴한 요구가 있었다. 권세환은 그것을 눈치채고 총무의 입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한번 빨아봅시다. 이 난국을 타개하자면 에네르기가 필요하단 말이요. 그런데 난 피곤해. 쇠통 외박할 의욕도 안 생기니… 이 나이에.》

그는 나이 오십을 하나, 둘 넘은 권세환과 동년배로서 초로의 정객이였다.

후원에는 양록장이 있다. 여름, 가을, 겨울에는 K군 어느 깊은 산골에서 기르다가 뿔이 돋아날 봄에는 집으로 끌어다가 먹인다. 권세환자신의 몸보신으로도 쓰지만 뢰물을 써야 할 대상을 초청하여 그들이 보는 현장에서 뿔을 잘라 선물로 바치는것이다.

현금이나 귀중품의 뢰물도 필요하지만 눈앞에서 당장 자른 록용은 그 렵기성과 정성으로 하여 녀성들에게 짜릿한 감동을 주어 뢰물로는 그 효과가 그만이다. 총무는 어디서 그 방법을 알아가지고 왔는지 갓 돋아나는 뿔에다 주사바늘로 구멍을 내고 빨아먹으면 약은 약대로 되고 피는 다시 생겨서 록용은 록용대로 자를수 있다는것이였다.

권세환은 자유당의 중요간부인 그의 청을 거절할수도 없고 또 스스로 바라는바이기도 하여 집에 고용되여있는 수의를 불러 사슴의 뿔에 주사침을 놓게 했다.

애처로운 사슴의 울음과 함께 주사침을 뽑자 빨간 피가 솟았다. 수의를 시켜 사슴의 네다리를 잡게 하고 총무는 피를 빨았다. 사슴이 네굽을 바둥거렸다. 목을 끌어안고 뿔을 빠는 총무도 두다리를 바둥거렸다.

그는 필사적이였다. 그러나 목구멍을 넘어가는 피가 시원치 않아서 입술에 묻은 피를 혀바닥으로 핥으며 숨을 헐떡이며 쉬였다가 또다시 사슴의 목을 끌어안았다. 두다리를 바둥거리는 총무나 뒤다리를 잡아주는 권세환이나 옆에서 보면 그 광경은 흡혈귀의 그림을 방불케 했다.

《넘어가는게 있소?》

권세환이 식욕이 당기는듯이 물었다.

《응, 환평도 한번 빨아보오.》

권세환은 저고리를 벗어제끼고 체조하듯 팔을 휘두른 다음 벼락같이 사슴의 목을 안고 입으로 뿔을 물었다.

옆의 사슴들이 그 선량한 눈에 겁을 띠고 그들의 꼴을 물끄러미 보고있었다. 마치 무엇을 아는것처럼.

권세환과 총무가 옷에 묻은 사슴의 털과 흙을 털고 넥타이를 바로잡으며 와이샤쯔 어디에 피라도 튀지 않았나 둘러보며 점잖게 응접실로 다시 돌아오자 권세환의 처가 그들을 안방으로 모시였다. 가장 친근한 손님으로 대하는 표시였다.

《별안간 오셔서 아무것도 없어요.》

주부는 하녀가 날라오는 접시를 받아서 상에 놓으며 말했다. 신선로로부터 조그만 접시에 이르기까지 모두 은으로 된 식기들이였고 세개의 술잔은 금이였다.

《아무것도 없다시면서 이거 산해진미가 나옵니다. 난 아무 생각도 없는데 미리 말씀드릴걸…》

사실 총무는 별로 식욕이 없었던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이걸 어쩌나…》

갈비찜을 비롯한 각종 음식이 조미료의 독특한 냄새를 방에 가득 채우며 상에 올랐다. 은박지, 금박지로 포장된 약주도 3~4종 나왔다.

《드세요.》

총무는 주부가 따라주는 술을 한잔 마시였으나 그 진미의 모든 음식에는 별로 저가락이 가지 않고 참대순과 철 아닌 오이소박이와 신선로에 떠있는 은행에만 어쩌다 가끔 가는것이였다.

《이게 벌써 장에 나왔습니까?》

총무는 주부의 음식솜씨를 칭찬하면서 참대순의 향취를 음미했다.

《아니예요. 경상도에서 누가 부쳐주었어요.》

그러면서 주부는 남편에게 참대순을 부쳐준 사람의 그 문제는 어떻게 되느냐고 묻기도 한다. 리권문제였다. 권세환은 별로 대답을 하지 않으며 총무도 그것은 못 들은체 하고 참대순이야기만 했다.

《봄의 미각으론 이게 제일이죠. 그런데 난 어떻게 된 노릇인지 요새 고기도 영 맛이 없습니다.》

《봄이니까요. 입맛도 젖히실 때예요.》

《봄이라 그렇기도 하지만 요새 그 계속되는 시위때문에… 그래서 오늘은 환평선생과 그걸 가지고 의논을 좀 하자고 왔던건데 이렇게 원…》

총무는 그 많은 음식들이 별로 입에 당기지도 않고 해서 자리도 어울리지 않았지만 주부가 있는 자리가 돼서 화제도 공전을 했다.

《그러게 말씀예요. 그것들이 어쩌자고 그렇게 극성일가요? 봄이 되면 해마다 염병같이…》

권세환의 처는 염병이란 말을 해놓고도 지나쳤다 생각하는데 총무는 그말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였다.

《정말입니다. 염병보다도 더 무섭죠. 야단났습니다.》

《야단났어요. 어떻게나 눌러놔얄텐데, 선거도 림박하고 말씀예요. 어서 천천히 드시면서 의논을 하세요. 우리 주인도 집에서 늘 그 걱정인걸요. 제가 있으면 방해가 되시겠죠?》

그는 남편의 눈치를 살폈다. 권세환은 눈살을 찌프렸다.

《아뇨, 방해될것도 없지만 마담계신데선 유쾌한 이야기를 하는게 례절인데…》

《뭘요, 저도 정치에 흥미가 있답니다. 응접실에들 나가셔서 말씀들 하세요. 그동안 전 주방에 나가서 뭘 좀 장만하도록 료리사를 봐줘야겠어요. 정말 이건 집에 있는 감으로… 허물없는 총무선생님이시니까 들여온거예요. 용서하세요.》

권세환은 처에게 위스키 한병과 안주로는 참대순과 남방야채를 하녀에게 보내라 이르고 응접실로 총무를 데리고 나왔다. 응접실에서는 안방에서 운만 떼다만 학생들의 시위에 대해서 대화가 진행되였다.

《인젠 서울서도 중, 고등학생놈들이 들고일어난단 말요.》

《그래도 대학생들은 일어나지 않소.》

권세환은 《국회》 문교분과 위원이라는 직책과 또 자기가 H대학에 투자하고있는 관계로 해서 대학생들만은 평온하기를 바라는 심리가 작용하여 대학생평온론을 주장하는편이였다.

《그게 암만해도 미덥지가 않거던.》

《나 보기엔 그렇소. 지금 지방에선 대학생과 중, 고등학생놈들이 저 야단이고 요새 와선 서울에까지 파급됐지만 서울 대학생들은 그들에 비기면 리성이 발달돼있단 말요. 그들은 촌놈 대학생들과는 달라 시위를 했다간 졸업후에 취직에도 영향이 있을줄 뻔히 아는데 공연히 경거망동을 하겠소. 속으로야 어찌 생각하든 행동은 안할것이니 학원에 압력이나 일층 강화하고…》

《글쎄, 리성이 발달된건 사실이지만…》

그들은 서울 대학생들의 동태에 대해서 그이상 더 추측할수가 없었다. 대화는 자주 끊어지고 술만 그것도 별로 맛없이 마시였다.

《아까 피를 먹었는데 술이 괜찮을가?》

《몸에 확 퍼지니까 오히려 조금은 좋을거야.》

날은 저물어갔다. 그들은 불을 켤 생각도 없이 마주 앉아있었다. 밖에서는 배달온 식료품차의 전조등불빛이 정원을 쓸고 돌아나갔다.

복도에서는 권세환의 딸 미자가 피아노를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국군》에 있는 아들 동진이 저희 친구들을 차로 싣고 와서 그날 밤 녀자를 걸고 당구를 치고있다. 상아 부딪치는 조용한 음향이 응접실에까지 간간이 들리는가 하면 젊은 놈들의 떠들고 웃는 소리도 들렸다.

권세환은 일어나 불을 켜고 끊어진 대화를 잇는다.

《대학생들은 좀 두고봅시다.》

《두고보다니 무슨 말요? 우린 지금 사면초가요. 민주당도 이번에는 만만치 않아. 민중은 아우성이지, 학생들은 들고일어나지, 민주당이 어째 그걸 리용하려들지 않겠소? 지금도 많이 리용한단 말요. 그래서 까딱 잘못하면 우린 망할판이요.》

총무는 벌떡 일어나며 몸을 떨었다.

사실 지금까지 민주당은 그들의 정치적적수임에는 틀림없으나 민주당의원들가운데 등급에 따라서 리권을 줄 놈은 리권을, 감투를 쓰고싶은자는 귀떨어진 감투를, 돈뭉치나 안길 놈은 돈뭉치로, 계집이 탐나는 놈은 일등미인으로 그들을 매수해왔던것이다.

《뭣때문이요. 학생들때문이란 말요. 그놈들만 아니면 민주당이 다 뭐요?》

권세환은 학생들에 대한 총무의 그 걱정이 꼭 자기를 힐책하는것만 같이 들려서 견딜수가 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실내를 왔다갔다하며 초조함을 참지 못했다. 2층에서는 여전히 아들친구인 젊은 장교들의 떠들어대는 소리와 폭소가 들렸다. 애비의 《국사》에 대한 심려도 모르고말이다. 그는 총무에게도 미안해서 아들을 불러내렸다. 륙군대위의 견장을 단 동진이 내려왔다.

《좀 조용히 놀지 못하니? 선거를 앞두고 모두 소란한 때에.》

무슨 일로 불렀나 해서 궁금해하던 동진은 그 말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아버지도 별걱정을 다하세요. 요새 학생들 시위에 아마 신경쇠약에 걸리셨나 봅니다. 걱정마세요. 우리 <국군>이 건재해있는 이상 그까짓 시위가 다 뭡니까? 애들 장난이죠. <국군>은 벌써 전쟁이 끝난지 7년에 기운이 뻗쳐 죽을 지경입니다. 아저씨, 그렇지 않습니까?》

동진은 저의 아버지는 비켜놓고 총무에게 와서 젊은 기염을 토하며 술을 따로 권했다.

그가 군인의 젊은 조포를 떨어놓고 올라간 다음에 총무와 권세환은 자유당과 《정부》가 선거에 대하여 취하고있는 방략을 이것저것 이야기하고있었다. 학생들의 동태를 가지고 걱정하기 시작하면 한이 없는 일이고 그럴수록 자신들이 용기를 얻기 위해서도 비밀로 되여있는 그 방략들에 매달려보는것이였다.

이미 자유당은 영구집권을 위하여 온갖 물샐틈없는 방략을 짜놓았다.

그 방략은 하도 많아서 일일이 렬거할수 없지만 우선 모든 공무원들을 부정선거의 도구로 훈련시켜놓았다.

세계력사상 대통령선거에 소송이 제기된 일이 있느냐, 법은 나중이니 우선 당선시켜놓고보자.

4할 사전투표- 자연기권표, 유령유권자표, 금전으로 매수한 기권자표 등 전유권자의 4할에 해당하는 표를 사전에 준비하였다가 투표개시전에 투표함에 집어넣을것.

3인조, 9인조, 공개투표- 조장이 기표를 감시하고 조원은 기표된 용지를 자유당측 선거위원에게 제시한 후 투표할것.

완장부대- 자유당 유권자들은 모두 자유당완장을 착용케 하여 투표소 부근의 분위기를 자유당일색으로 할것.

야당 참관인축출- 자유당이 아닌 참관인을 매수하여 참관 못하도록 하거나 그것이 불가능하면 시비를 걸어 함께 퇴장하도록 소동을 일으킬것.

이상 지령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군수와 시장들, 경찰서장, 사찰과장들은 그 직을 물러나야 할터이니 미리 사표를 제출케 하여 보관하라.

그밖에도 투표함수송도중 함을 바꾸고 개표할 때 혼표 또는 환표하고 개표완료후 투표계산서를 허위조작하여 공표할것이며 이에 소용되는 자금을 각 은행 총재들에게 조달시켜 경찰에는 11억 1천만환을 배정했다.

이와 같은 방략을 미리 실험이라도 해보는것처럼 지난 1월에 진행된 민의원 《보궐》선거에서 실시하였는데 그 성공은 예상이상으로 훌륭한것이였다. 총무와 권세환은 앞으로의 방략을 주고받는 동안 자유당 승리는 필지의 사실이라 매우 기분이 즐거워지다가도 학생들의 시위에 이르러서는 목구멍에 가시가 걸리듯 넘어가지를 않았다.

《그것도 너무 념려맙시다. 다 준비가 돼있소.》

《어떻게?》

권세환은 반신반의하며 총무를 보았다.

총무는 인지로 방아쇠를 당기는 시늉을 해보였고 권세환의 얼굴에 약간 희색이 돌자 이번에는 기관총두르는 시늉으로 몸뚱이를 돌리며 반원을 그리다가 별안간 소리를 쳤다.

《피바다를 만들어도 우린 승리해야 되오. 피바다!》

총무의 얼굴은 험악했다. 권세환조차도 감히 말을 걸지 못할 정도였다.

《알았소? 피바다! 서울이 피에 떠내려가도 우리가 승리해놓고 볼일이요. <대통령>에 국부 리승만박사, <부통령>에 리기붕선생!》

그는 방 한가운데 우뚝 서서 씩씩거렸다. 그가 선 자리의 빨간 융단이 온통 피빛으로 보였다. 마치 그들은 피속에 두발을 잠그고있는것 같았다.

《으하하.》

권세환의 걱정은 바람에 안개걷히듯 사라지고말았다. 그는 피에 미친듯 웃었다.

《여보, 해운(총무의 호). 기생년들같이 사람을 죽이지 마오. 진작 그걸 얘기할노릇이지. 남의 속을 말릴게 뭐요. 사실 나도 서울 대학생들의 리성론을 주장은 하지만 그걸 누가 보장하느냐 말요. 생각하면 잠이 안오오. 그런데 여차하면 이거라, 으하하…》

권세환도 기관총두르는 시늉을 해보이며 폭소를 했다. 어쩐지 눈에는 눈물이 맺히고 손가락끝에 노랗게 배인 담배진이 화약냄새같이 느껴져 더할수 없는 쾌감을 주었다.

《틀림없지?》

《만송의 말씀이요.》

《만송?》

권세환은 만송이란 말에 그만 어쩔줄을 모르며 총무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런건 모른체 해두는거요. 환평한테니까 말하지만 105호를 조직한건 짐작하지?》

권세환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경찰의 온갖 기능을 선거에 돌려라!》 하는 지령을 내리고 경찰이 그것을 잘 집행하는가를 감시하기 위하여 105호 독찰대를 조직한것이다.

《그런데 그걸 또 누가 알수 있소. 105호를 감시할 108호를 또 하나 새로 조직했단 말요. 감시하는 놈을 또 감시하고 또 그놈을 감시하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놈은 모가지를 자르고…》

105호까지는 알고있던 권세환도 108호란 말을 듣자 미상불 겁이 나지 않는것이 아니였다. 자신도 누구에게 감시를 당하고있는듯 한 공포감에 싸이고말았다.

총무도 그것을 느끼는지 조금전의 광태(미치광이 같은짓이나 태도)에서 정상으로 돌아와 은근한 목소리로 《환평!》 하고 불렀다.

《그러한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잘 수습하는게 우리들 정치가들의 임무가 아니겠소. 그런데 환평은…》

총무는 말을 잠간 끊었다. 사실 그가 오늘 권세환을 찾아온것은 그것때문이였다. 그런데 그 집에 들어서자 사슴의 뿔생각이 나서 피를 빨아먹었으며 권세환의 처의 후한 대접에 말리워 지금까지 말을 못한것이다. 입을 열기가 좋은것도 아니였다. 자유당 의장 만송의 《꾸지람》을 가지고 온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은 뭐요?》

권세환은 총무의 다음 말을 갑갑한듯 독촉했다.

《환평은 신문에서 두들겨 맞았더군.》

《난 또 뭐라고.》

권세환은 긴장했던 자세를 풀며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어제 어느 신문에서 조간 3면에 영등포 환평제분회사에 대한 기사를 실었던것이다. 기사의 내용은 한 녀성로동자가 기계에 다쳐서 병신이 되자 회사에서는 림시고용이라 하여 《로동법》에 의한 퇴직금도 치료비도 지불하지 않고 내쫓아 마침내는 자살케 했다는 선규 어머니의 사건이였다.

권세환도 비서가 가져다 주는 신문을 읽어보았으나 가렵지도 뜨끔하지도 않았었다. 언제나 있는 일이고 어느 공장에서나 취하는 다반사다. 그런 사건을 일일이 마음에 두었다가는 그야말로 신경쇠약에 걸려 실업가는커녕 구멍가게 주인도 되지 못할 《위인》의 신경이며 더구나 정치가로는 락제다. 그는 신문을 가지고 온 비서에게 핀잔을 주었을뿐이였다.

지금 총무의 말을 듣고도 그는 그 태도를 조금도 바꿀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신문기자들이 뭐 좀 생각이 있었던 모양이야. 그러나 어림도 없소.》

권세환은 마치도 총무가 그 말을 꺼낸 까닭이 그것을 자기의 약점으로 잡아가지고 돈이라도 얻어가려는 저의가 있어 그러는듯이 단마디로 내쏘았다. 총무도 그것을 느끼고 조금 엄격해졌다.

《이건 내 말이 아니오, 환평.》

부드러우면서도 위엄을 보이였다.

《만송의 말씀이야. 리기붕의장의…》

《의장?》

권세환은 의장이란 말에 금방 태도가 달라지며 총무의 다음 말을 황송하게 기다렸다. 의장의 말 한마디면 권세환의 지금의 지위도 권력도 하루아침에 날아날수 있다.

《의장의 말씀이 그런 기사는 사전에 알아가지고 입을 막든지 하잖고 신문에 발표시켜 선거를 앞두고 영등포지구에서 지장을 줄수 있다는거요. 의장은 널리 보는바가 있거던. 그렇지 않소, 환평? 영등포는 로동자들이 많은 구역인데… 환평의 실수요.》

총무는 권세환의 금방 풀죽는 꼴을 보자 내심 잘코사니를 느꼈다. 당내에서는 까맣게 내려다보는 존재에 지나지 않지만 재력으로 보아 어쩔수없이 대등한 대우를 해주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가 총무로서는 불만이였고 또 시기도 하고있었다.

《환평은 언론의 영향력이란걸 너무 과소평가하는것 같아. 정치와 언론같이 적대관계에 놓인것도 없고 불가분리관계에 놓인것도 없는거요. 환평은 아마 요새 S대학 신문에 계속 련재되는 <현실직시>의 론문을 보지 못했을거요. 나도 의장님의 말씀을 듣고서야 얻어봤는데 지금 학생들의 사상이 좋지 않아. 또 그놈들이 글을 어찌 잘 쓰는지 독자를 감동시켜 반<정부>적기분을 갖게 할수 있소. 다행히 교내에 한한 신문이라 일반 독자의 손엔 미치지 못하기에 망정이지. 그런데 어제 그 신문에 발표된 환평회사 기사는 아마 짐작에 S대학 신문에 련재되는 <현실직시>에서 전재를 했거나 아니면 거기서 취재한것 같아.》

총무가 그날 낮에 의장이 보이는대로 훑어본 S대학 신문들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행문이 련재로 실려있었다.

 

강원도 동남단의 심포리와 통리사이는 산골짜기에서 산마루까지 천백메터의 험한 산길에 철로가 끊기여있다. 때문에 묵호에서 영주로 내려오는 승객들은 그만큼의 거리를 차에서 내려 걸어올라가야 한다. 그 얼마 안되는 승객들의 짐을 바라고 백여명의 지게군이 추위에 떨고있다. 지게군들의 나이를 보면 11살의 꼬마로부터 65살의 할아버지까지 3대에 걸친 심한 경쟁률이다.

처음에는 손님에 앞서서 곧잘 걸어올라가던 11살의 어린 지게군은 얼마 안 가서 손님이 접속렬차에 늦을가봐 재촉하는 바람에 가쁜 숨결에 섞어 땀내를 풍기며 할딱거리다가 눈길에 미끄러져 천야만야한 골짜기로 굴러떨어졌다.

《근로기준법》이 소용없는 이 땅의 어린 지게군-

형은 군대에 나가고 아버지는 죽고…

엄마는 보따리장수로 나돌아다니기때문에 내 밥은 내가…

자기의 슬픈 신세를 어린 입으로 하소연같이 하다가 손님의 독촉에 그것도 끝내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한 소년.

 

《한국》의 유일한 철광임을 자랑하는 양양철광에는 6백여명의 광부들이 있지만 그중 반수가 넘는 350여명은 수당도 못 받고 시간외 로동의 보수도 못 받는 《림시용입》의 뜨내기광부들이다. 이들가운데는 십여년 숙련광부도 있건만 림시라는 꼬리표를 달고 2백메터를 두더지처럼 오르내린다.

고용당시의 약속으로는 3개월의 《림시용입》기간이 끝나면 《정식용입》으로 바꾸어주기로 되여있지만 그렇게 되면 수당을 주어야 하기때문에 돈에 린색하고 착취에만 눈이 빨간 회사에서는 3개월마다 서류상으로 해고를 했다가 다시 고용되는 형식으로 하여 몇해를 그대로 하루살이살림을 하고있는 고달픈 이야기.

이처럼 회사 마음대로의 삶에 매여달려 살아가야 하는 로동자들-

 

학생들은 겨울방학이라 하여 고향으로 갔는데 이곳 전라도 영산강류역에는 벌써 봄을 앞당기여 춘궁을 가져왔느냐. 올해는 겨울도 다 가기 전에 춘궁 아닌 동궁이 마을을 휩쓸고있다. 마을에서는 리농을 서두르고있다. 못살고 가는 그들에게조차 세금은 사정이 없어 면소 서기나 수리조합 사무원이 나타나기 전 밤중 시간을 골라 자고 새면 벌써 이웃은 빈집으로 변한다.

주인없는 집에는 찬바람이 돌고 방에는 쥐들만이 낟알을 찾아 헤매였다.

방에는 작년 여름에 쓰고 농사짓던 해진 농립이 걸려있고 그 밑에 면소나 지서, 농협에서 보내는족족 정성스레 밥풀로 포갬포갬 붙여놓은 일백이십 몇가지의 가렴잡세의 고지서가 바람에 날린다.

그 고지서가 주인없는 방을 지키고있는것이다.

 

자유당 의장과 원내총무가 그 글들을 보고 종처를 다치는듯 펄펄 뛰며 대학생들의 사상을 욕했지만 대학생들은 그들을 보이기 위해서 쓴것은 아니였다. 그들이 배우는 학문과 현실과의 배리를 견딜수 없어서 그들의 전공에 따라 보는 현실을 혹은 경제학적으로, 정치학적으로, 철학적으로 특색있게는 민속학적으로 쓴 수기들이다.

총무는 또 한번 뇌까렸다.

《학생들이 걱정이요.》

조금전에 인지로 방아쇠를 당기는 시늉과 기관총을 휘두르는 시늉으로 위안을 얻은 마음은 또다시 얼어들기 시작했다.

《에잇, 술이나 먹소.》

권세환은 처를 불러 암소갈비가 어떻게 되였느냐 물었다.

2층에서는 아들 동진이 저의 누이 미자에게 말하여 그의 동무들을 자동차로 실어다가 연회를 열었고 아래층에서는 권세환과 총무가 술을 마시였다. 그러나 권세환은 의장의 말이 목구멍에 걸려서 술맛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그는 총무가 돌아간 즉시로 자동차차고 옆방에 있는 동일을 불러서 대학신문들을 가져오도록 하고 한왕렬을 부르려고 보냈다. 한편 모경찰서 형사를 전화로 불렀다.

한왕렬은 K군 읍 양조장의 아들로 권세환이 S대학에 넣어준 학생이다. 그를 불러 물어보면 대학신문의 필자가 누구인지 알것이며 그 대학 사찰을 담당하고있는 모경찰서 형사를 통하여 그들의 신분을 밝혀서 적당한 《조치》를 취할 작정이였다.

그것만이 자유당 의장의 노여움을 풀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때문이였다.

형사와 왕렬이 오기를 초조히 기다리는 동안 그는 동일이 가져온 대학신문들을 뒤적거렸다.

《맥분의 비극》이란 표제의 그 론문을 보았다. XYZ란 필명이였다. 권세환의 지식과 비판력으로는 그 론문의 가치를 평가할수 없었을뿐아니라 첫줄부터 적대감정을 가지고 읽기때문에 욕부터 나갔다. 첫째로 XYZ란 익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국물자를 끌어들여 전멸상태에 빠뜨린 《한국》의 농업상태, 잉여농산물이 더욱 가속도적으로 농촌을 파멸로 이끄는 실정, 미국의 원조로 비대해진 매판자본가들의 반민족적정체, 그들의 비인도적흡혈귀성, 그것이 나아가서는 한 녀성로동자의 생명을 빼앗은 사실, 대학생들은 그 녀성로동자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넘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내용이였다.

어제 본 신문 조간에 발표된 기사보다 제분회사의 내막을 더 폭로하지는 않았지만 진지하게 현실의 모순을 파헤치려는 날카로운 론조가 읽는 사람의 사고를 깊이하게 하는것 같았다.

《이게 어떤 놈이 쓴 글이야?》

어느 틈엔지 들어와서 저기압인 권세환에게 인사도 못하고 서있는 한왕렬에게 대학신문을 삿대질하며 그는 소리쳤다.

다혈질인 왕렬은 삿대질에 얼굴만 벌개가지고 한발자국 물러서서 권세환의 푸들거리는 손에 들린 신문제목과 필명을 보았으나 신문에 별로 관심이 없는 그는 XYZ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는 대학내에서 그러그러한 계렬의 학생들을 몇사람 장악하고있었으나 그의 능력과 힘으로는 복잡하게 돌아가는 학생들간의 동태를 다 파악할수는 없었다. 그는 완력으로나 한몫 보자고 요새는 축구로부터 레스링으로 전환하여 그것에만 열중하고있었다.

《누군지 모르느냐?》

권세환은 한번 더 왕렬에게 화를 냈다.

《그런 새끼들은 없애버려야 합니다.》

왕렬은 퉁명스럽게 자기의 결의를 다지듯 왕청같은 대답을 하고 씩씩거렸다.

《누군질 알아야 없애도 없애고 살려도 살리지.》

《조사하면 알수 있습니다.》

《잘한다. 내가 항상 뭐라더냐, 힘만 가지고는 되지 않으니까 대학내에서 돌아가는 공기를 잘 살피라는데도 넌 도무지 내 말은 안 듣고 요새도 레스링만 하느냐? 잘한다, 더구나 신문이란건 중요한거야. 학생들의 사상을 좌우하는것이거던.》

그가 총무에게서 들은 신문의 선전력을 강조하고있을 때 모경찰서 형사도 왔다. 그들 세사람은 S대학내 《불온》학생들을 꼽아보았다.

형사는 이십여명이나 되는 《불온》이라고 지목되는 학생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출신도별, 가정형편, 가족관계, 교우관계, 학업성적, 취미, 성격, 상당히 세밀한 점까지 조사돼있었으나 그들이 일치하게 학업성적이 우수한편이라는것외에는 별로 공통성을 발견할수가 없었다. 농촌출신이 많다는것이 하나의 특징이랄가. 부모들의 직업도 같지 않고 재산정도도 각이했다. 가난한 집자식들이라든가 《부역자》관계의 출신들뿐이라면 공산주의로 몰수도 있겠으나 그렇지도 않았다.

《이놈의 형은 월북했습니다.》

형사는 상춘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특이한 존재로 알리였다.

《머리가 좋고 학생들의 신망이 있어 상당한 영향력을 교내에 갖고있습니다.》

《또?》

《집은 가난해서 고학을 하구요. 주목할건 하자영교수의 총애를 받고있는 점입니다. 실은 그 하교수가 <냄새>나거든요.》

《또?》

권세환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일은 없는가 해서 계속 물었으나 형사의 입에서 새로운 자료는 나오지 않았다.

《이놈의 아비가 8. 15전에 민족주의자였는데…》

《그건 나도 알아.》

《아십니까?》

《안대두.》

권세환은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래 경찰의 방침은 뭐요?》

형사의 설명을 다 듣고나서 그는 물었다.

《계속 학원의 사찰을 강화하고 조그만 일이라도 반공으로 다스리고 또 그외에…》

형사는 말끝을 흐렸다.

《그외에?》

《령감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권세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를 꺼내물었다. 형사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라이터불을 켜댔다.

《알았어. 그건 내 소관은 아니지만 물샘틈없이 해야 되는데 아까 그 상춘이란 놈의 동태에 대해선 말야, 계속 내게 알려달란 말요.》

《알았습니다.》

그들은 밤이 깊도록 S대학 신문을 놓고 대학내 학생들의 동태와 《불온》이라고 볼수 있는 학생들의 사상에 대하여 수군거렸다. 이것은 어머니가 협박장을 받기 일주일쯤 전의 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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