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새로운 성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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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대로 지방도시와 농촌, 어촌으로 내려갔던 학생들이 서울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준호도 남해지방에서 어촌의 현실을 조사하며 어민들을 계몽하고 왔다. 복원을 데리고 다녔다. 그의 아버지는 준호를 믿고 《버렸던》 딸자식을 사람으로 만들어달라는 부탁도 했었다. 계몽대사업을 다 끝내고 그는 차라리 어촌에 남아 야학선생이라도 하며 윤도가 있는 서울은 슬퍼서 가지 않겠노라 했지만 준호가 데리고 올라왔다.
학교도 마쳐야 했고 아버지의 말대로 그도 참답게 살아가도록 뒤떨어진 사람을 이끌어가는 정신으로 지도해주어야 했다.
계몽대가 보고 온 4. 19후의 현실-그것은 상춘이 장자울에서 체험한 사태들과 대동소이할것이다.
미군부대근처에 위치해있다는 사실이 특수사정으로 될지 모르나 이 땅이 미군주둔하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오히려 장자울이야말로 처참한 《한국》농촌의 전형일지 모른다.
그 전형적인 농촌과 준호가 보고 온 어촌, 윤도가 서울서 본 도시, 그것들을 종합하면 구태여 다른 학생들의 체험을 듣지 않아도 4. 19후의 현실을 파악하는데 부족이 없을것 같았다. 그러나 《라침판》에서는 그들 성원이 아닌 학생들의 광범한 체험을 듣고싶었다. 앞으로 대학운영위원회에서 조직하는 계몽대사업보고회에 일정하게 확고한 견해를 가지고 림하기 위해서도 그것은 필요했다.
《라침판》에서 학생들을 청한 날이였다. 상춘네 집에서였다. 지금까지의 관례대로 거기서 모이게 되나 어머니없는 집은 딴 집같았다. 상춘조차 남의 집같이 서먹서먹한 기분이였다. 귀선이 학생들의 기분을 짐작하고 이것저것 마음을 써주기는 하지만 그는 전이나 다름없는 장사에 바빠서 집을 비우게 되였고 유정이 어머니를 대신한다. 유정은 풍로에 물을 끓이고있었다. 학생들에게 홍차라도 대접할 예정이였다.
홍인표가 제일먼저 왔다.
《너 뭐 하니?》
《멋쟁이오빠, 차 좋아하죠?》
유정도 홍인표를 《멋쟁이》란 이름으로 알고있다. 다방에 잘 다니는것까지도 안다. 선규가 살았을 때부터 가까운 친구들이였다.
홍인표는 허리를 잡고 웃었다.
《상춘아, 이거 제법 살롱(좌담회 비슷한 모임)을 차릴 작정이냐? 이 더위에 찬 해 뭘 하니? 차라리 랭수라도 한그릇씩 놓고 기분을 내지. 난 이제부터 프로레타리아가 됐다.》
그도 계몽대로는 아니였지만 고향에 다녀왔다. 무슨 사정인지 몰라도 가정교사자리를 하나 구해달라고 상춘에게 부탁했다. 지금까지는 집에서 학비를 부쳐서 썼는데 상춘은 다잡아 묻지는 않았다.
《프로레타리안 찰 못 마시니?》
상춘도 집에서 동료들에게 차를 대접할 형편이 아니여서 그야말로 랭수에 과자나 내놓을 생각이였으나 채남이 모임의 간단한 격식이야 어려울게 있느냐고 차도구 일습을 집에서 가지고 온것이다.
《차야 마셔야지. 프로레타리아가 차를 마실수 있는 세상이 우리들의 리상이 아닌가. 찰 마셔야지. 그러나 난 지금까지 우리가 해오던 살롱 그 형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차를 마셔가며 음악도 들으며 자욱한 담배연기속에서 고담준론으로 우리는 지성을 련마해왔다. 희망을 이야기했고 꿈도 그려왔지. 경찰도 군대도 첩보도 법관도 침입 못하는 학생들만의 하루밤 공화국이였다. 거기선 못할 말이 없었다. 차잔속에 온 우주가 잠겨있었어. 그러나 차도 식도 음악도 목쉴 때를 기다려 밖으로 한걸음만 내디디면 거긴 완전히 딴 세계, 금방까지의 고담준론도, 사상의 자유도, 민주주의의 개화도, 청춘의 정열도 죄악으로 되는 현실, 캄캄한 지옥이였다. 4. 19전에 우리들은 그렇게 살롱의 형식으로 청춘을 연소시켰다. 그땐 실로 차 한잔의 값이 우주와 비길만큼 고귀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필요가 어디 있느냐 말이다. 4. 19는 위대했다. 상춘아, 넌 4. 19의 용사, 윤도란 놈은 아직 안 왔니? 그 절름발이 그놈은 날 상아탑이라고 사갈시하지만 난 그놈을 버릴수 없더라. 4. 19의 부상병이기때문에… 너들은 4. 19에서 무엇을 평가할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민주주의의 언론만은 하나 쟁취했다. 전에야 어딜, 제 페부를 털어놓고 말할수 있었나. 그래서 살롱이라는 공개적인 비밀로 울분을 터뜨렸지만 지금이야 종로네거리에선들 우리의 사상을 표명 못할건 없지. 4. 19의 유일한 전취물, 그런데 뭣때메 차를 마시며 얘길 해야 되느냐 말이다. 현실속에서 그걸 피부로 느끼며 손으로 만져보며 얘기해도 좋을걸. 그러나 차는 향기로운거야. 좋아, 너희집에서 차를 마시자꾸나.》
그는 유정이 끓인 주전자를 들고 와서 손수 홍차를 우려마신다.
채남이 우려준다 해도 홍차를 우리는 솜씨에 묘미가 있다고 하면서 자신이 우려냈다.
《이 홍차나 커피의 향취를 빌어서야 내 혀는 흥분하는 습관을 가졌지만 이제는 그것도 흥미없어. 난 이번에 고향에 가서 내가 완전히 무용지물이란걸 알았다. 계몽대는 우리 고향에도 왔더라. 그들은 논두렁에까지 나가서 진실을 줏는데 난 정거장에 나가 차나 마실 렴친 없더군. 이젠 그 밑천을 아버지가 주지도 못하게 됐구. 그래도 찬 이렇게 향기로운데 계절도 가을이 오고있고…》
처서를 얼마 앞둔 계절이였다. 낮에는 마지막더위가 찌는듯 했지만 저녁때부터는 선기가 돌기 시작한다. 음력으로 열흘, 달이 해가 기울자 중천에 희멀건 반달형태를 나타냈다.
《상춘아, 너 집은 너 어머니가 안 계시니까 빈집같구나. 어머닐 감옥에 보내드릴려고 우리가 4. 19를 일으킨건 아닐텐데…》
《멋쟁이오빠, 그렇게 말을 잘하는데 경찰서에 가서 할머닐 좀 내놔달라고 해요.》
유정이 홍인표의 장황한 변설을 놀려주듯 말했다.
《오냐. 우리들도 모두 걱정하고 투쟁한다. 오늘 모이면 할머니가 나오시도록 의논도 더 하겠다.》
아래 내무부 고관네 집 담모퉁이를 돌아 윤도가 쌍지팽이를 짚고 오고있었다. 뒤미처 준호와 복원이 오다가 준호는 윤도의 팔을 껴준다.
《복원씬 이젠 아주 남이 됐습니까?》
홍인표가 그것을 보고 채남에게 물었다.
《언젠 남이 아녜요?》
《슬픈 일입니다. 부상당한 절름발이를 남자가 부축해주는데 녀잔 옆에서 구경만 하고. 어느 나라에 저런 풍속이 있습니까? 4. 19는 풍속까지도 민주주의로 고쳐야 할텐데. 채남씨도 상춘군헌테 그렇게 랭담했습니까?》
《저들은 지금 랭전을 계속하고있어요.》
《여름이니까 랭전이 시원하다는 말인가요. 그러나 랭전에서 발생하는 열도는 백도도 넘을텐데. 가만히 계십쇼. 저건 어딘가 고장이 생긴 풍경입니다.》
인표는 그 고장을 퇴치하려는듯 차를 한번에 마셔버리고 뛰여내려갔다.
그러나 윤도와 복원의 랭전앞에는 어쩔길이 없었던지 윤도를 끼고 올라왔다. 무엇이라고 윤도의 귀에 대고 속삭이면 윤도는 지팽이로 때릴듯 을러멨으나 인표는 부축한 팔만은 놓지 않았다.
준호와 복원은 뒤에서 천천히 따라왔다. 복원 역시 올 맛이 없어하는것을 준호가 억지로 데리고 오는 눈치였다. 정한 시간이 되자 학생들이 모이였다. 허강도 왔다. 돌리다 남은 석간신문을 몇장 학생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신문은 래일로 다가오는 해방 15돐을 맞이하면서 아직도 통일되지 못한 비운을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편집취지인지 세계정치세력분포도를 량면에 걸쳐 크게 도해로 그려놓았다.
《자유세계》, 사회주의진영, 신생국가들, 민족해방투쟁이 전개되고있는 나라, 그러한 구별을 일목료연하게 점으로 혹은 사선으로 흑색, 백색으로 그려놓았다.
벽에 붙여놓고 볼만 한 정치지도였다. 그래서 가지고 왔노라고 허강은 학생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세계는 변한다. 움직이고있다. 지도를 보면 대번에 그것을 느낄수 있었다. 검은 대륙으로 불리우던 아프리카의 나라들은 대부분이 신생국가로 변했다. 식민지로 남아있는 나라가 불과 열손가락을 넘지 못하게 한구석으로 몰아넣고있다. 제국주의판도가 좁혀진다.
아시아에서도 식민지는 거의 없어졌다. 그러면서 광대한 아시아와 유럽지역이 사회주의국가와 같은 색갈로 거의 물들고있었다. 미국의 뒤동산으로 알려오던 라틴아메리카도 그 면모를 달리하고있다. 바로 미국의 코앞에서 꾸바가 사회주의빛갈로 미국을 위협한다. 라틴아메리카의 무수한 나라들에서 유격전이 벌어지고있다.
세계는 격동한다. 변한다. 그러나 우리는 슬프게도 두가지 빛갈로 남북이 량단되였다. 그 같지 않은 빛갈이 학생들의 눈을 강력하게 자극한다.
토론이 시작되였다.
준호가 좌담회의 취지를 설명한 후 《학생들은 무엇을 보고 왔는가?》라는 문제를 제시하고 화제의 중심을 그것에로 집중시켰다.
《난 황소를 도둑질하는 우리 아버질 보았네.》
홍인표가 서슴없이 허두를 떼였다. 심각한 문제들을 내놓고 지식을 교환하는 동안 호상 배우려는 마음의 자세들, 지금까지도 학생들은 대학강당에서보다 그러한 저희끼리의 모임에서 배우고 계발되는것이 많은만치 기발한 발언들이 많기도 하지만 홍인표의 그 말은 너무나도 기발하고 의외였다.
《그러나 안심들 하게. 남의 집 황소가 아니고 우리 집 황소를 끌어냈으니까. 난 도둑의 자식은 아닐세. 어머니가 도둑이라고 몇번 두고두고 하는 바람에 나도 그 말이 입에 옮아서 그렇게 튀여나왔을뿐야. 그런데 도둑이란 그 말은 어머니의 푸념을 들을라침 대학을 다니는 도둑놈, 소를 끌어내게 한 일체가, 사회가 도둑놈으로 되는데 문제가 있거던. 한 스무날쯤 되는가부다. 그때도 저렇게 달이 밝았으니까. 초저녁달이 아니고 새벽달이였다. 그 달빛에 아버지는 소를 도둑같이 끌고 나갔네. 어머니가 날 깨우더라. 저거 보라고. 너 학비때문에 아버지는 황소를 놀음판으로 끌고 간다는거야. 난 모기장속에서 가만히 눈을 뜨고 아버지와 소, 소와 아버지를 보았지. 달빛에 보이는 소는 더 커보이더군. 난 소와 아버지의 멀어져가는 발자국소리와 어머니의 한숨소리를 들으며 그 모든 광경을 프랑스말로 번역해보았다. 내 프랑스말의 실력이 얼마나 되는가 시험해보려고. 또 아버지가 놀음판에서 돈을 많이 따라고 새벽하늘에 성당의 수녀들이 기도드리듯 빌었다고 해야 아마 진실일거다. 또 난 아버지의 희한한 그 결단성에 경탄도 했다. 아버지는 남의 공것을 바라는 일이 없는 근농으로서 자수성가의 모범인물이거던. 놀음이란 그 말조차 몰랐을거야. 그런 아버지가 놀음판으로 소를 끌고 간다는게 문학적이 아닌가. 난 그래서 오히려 자기 생애에 반역하는 아버지에게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보니 아버지는 역시 놀음판으로 갈 용기는 없었다. 내 학비때메 팔만 한건 다 팔아버리고 소 한마리가 남았는데 그것도 빚으로 빼앗아갈 놈들은 많고. 아버지는 생각다 못해 그들의 눈을 피해 새벽달빛에 제 소를 도둑질하듯 끌어내여 장으로 간거다. 어머니에겐 화끝에 팔아서 놀음이라도 할가부다고… 우리들 말로 하면 역설을 한번 던져본거야. 소값을 내가 학비로 가지고 왔느냐 너들은 그게 궁금할테지만 그건 전혀 문학을 모르는 말들이다. 현실은 소설보다는 훨씬 문학적이다. 후일담이 궁금하겠지만 용서들 하게. 그건 내 사유재산일세. 내가 소설로 쓸테니까 원고료가 혹시 생기면 등록금도 물테고 남으면 한턱 쓸테다. 그러나 이 모임의 취지가 그런 소설적이야기는 아니겠지. 우리 집이 대학생아들때메 몰락하는 과정, 농촌의 경제적몰락과정이 필요하겠지? 우울한 얘기다. 특히 수자는 난 손방(아주 할줄 모르는 솜씨)이니까. 그러나 좌담회의 취지로 봐서…》
홍인표는 수자는 손방이라 했지만 역시 자기 집 생활이 돼서 그런지 여간만 상세한 수자를 렬거하지 않았다. 그 수자로 농촌의 몰락하는 과정을 실감있게 설명해나갔다.
《한국》농촌의 몰락상-4. 19도 그것을 막지는 못했다.
홍인표에 뒤이어 경제과, 력사과, 농과대학 학생이 자기들의 본바를 경제학적으로 혹은 농업기술적으로 보충하면서 설명과 분석을 가하자 《한국》농촌의 침체성과 락후성, 식민지적편파성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봉건적토지관계까지 작용하여 옴짝달싹 못하고 피페일로를 걷고있는 농촌의 천식같은 허덕임이 좁은 방에 꽉 차고넘쳤다.
4. 19도 천식을 고쳐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제는 통일에 기대를 걸어보는 농촌, 어디를 가나 통일 그 소리였다.
《통일이 돼야 산다.》
《통일밖에 바랄게 없다.》
학생들은 통일을 위해 발벗고나설 각오들을 다짐하고 올라왔다.
그러나 통일을 가로막는 세력이 있다는것을 생각하면 답답하고 울화가 치밀었다.
학생들은 문지방에 걸터도 앉았으며 닫기였던 뙤창문을 열어서 방의 공기를 뽑기도 했다. 그러나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홍인표는 리상화의 시 한구절을 외웠다.
《다음은 또 누가 내 숨통을 누를 작정이냐?》
시를 외우다말고 홍인표는 다음 토론을 재촉하듯 소리쳤다. 질식할만한 분위기였다.
《유정아, 랭수를 떠오너라. 저기 절에 가서 우물물을 떠와. 시원하게. 다음은 누가 통쾌한 얘길 해라.》
상춘이 장자울이야기를 시작했다.
미군기지밑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의 고생, 통일을 갈망하는 눈먼 할아버지, 머리빠진 경태 처, 어느 하나도 홍인표의 속을 시원하게 추겨줄 이야기는 아니였다.
상춘은 동일의 이야기며 선거개표장습격사건도 들은대로 소개했다. 학생들은 동일이 누군지를 모른다. 홍인표가 감탄을 했다.
《그를 한번 만나야겠다. 소설의 주인공같다. 그래, 그 친구도 습격에 참가를 했나?》
《아니.》
《하, 아깝군. 역시 행동은 못하는 타이프일가. 그 친구가 선두에 나섰더라면 더 좋았을걸. 선두가 아니고 노한 군중들뒤에서나마 습격에 참가했더면 근사했을텐데. 뚜르게네브의 소설 <루진>의 주인공이 혁명에 참가하는 장면이 있는데 사색형의 인간으로 도이췰란드리상주의철학에 심취되여 행동은 못하다가 나중에는 혁명에 참가하는 장면이 있어. 두고봐라. 그 친구가 혁명가가 될테니.》
홍인표가 수선을 떨었으나 소개된 이야기들의 저류에 흐르는 의미들은 모두가 심상한 문제들이 아니였다. 통일, 미군의 주둔, 어느것이나 시급히 해결을 요구하는 과제들이여서 학생들은 침울한 기분에 잠겨갔다.
《미군뿐아니지, 일본은 바다로 온다.》
어촌을 다녀온 준호가 한탄을 했다.
《복원이, 네가 목격한걸 말해보렴. 난 그날 아침 다른데 갔다가 못봤으니.》
윤도때문에 줄곧 주눅이 들어 앉아있는 복원을 채남이 격려하듯 손을 끌어 앞으로 나앉히였다. 윤도는 뒤로 물러나 앉았다.
《바람은 그날 조용했어요. 부두에 서서 보면 산비탈에 매달린 집들의 그림자가 그대로 바다에 거울같이 잠겨있었으니까요. 그런 날은 어촌의 녀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날예요. 풍랑이 없어 바다에 나간 사람들이 걱정없거든요.》
그렇게 바다가 조용한 날은 고기도 잘 잡히는 법이다. 복원이 갔던 어촌의 녀인들은 만선기를 달고 포구에 들어올 고기잡이배들을 기다려 바다가 하얀 모래밭에 모였다. 바다는 락조에 온통 물들었다. 먼 수평선에 그림자를 나타낸 배들도 불타는듯 했다.
그러나 찬란한 빛갈에 얼밋거려 그 모양을 잘 짐작하기 어려웠다.
녀인들은 오랜 경험으로 먼빛으로 봐도 풍어인지, 흉어인지를 알아맞춘다. 해가 넘어가고 바다가 다시 람빛으로 피였을 때 저녁녘에 부는 높새를 안고 배들은 어느 틈엔가 포구가까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떠들던 녀인들은 일시에 조용해지며 갈매기의 울음만이 날카롭다.
배를 바라보는 녀인들의 얼굴들은 굳어진다. 풍랑도 없었는데, 날도 좋았는데, 어떤 배는 돛이 찢기우고 돛대가 동강났다. 열세척으로 선단을 모아 그제 밤에 성황당에 고사를 드리고 떠난 배가 두척은 보이지 않고 열한척만이 더러는 파손된 모양으로 들어오고있다.
여느때 같으면 벌써 배전에 나서서 분주히 하선을 준비할 어부들이 망두석같이 묵묵히 배에 서만 있다. 허야 뒤야 하는 배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배소리없는 배는 흉가와 같다.
불길한 예감이 금방 포구의 모래밭을 짓눌렀다. 복원이와 친해진 할머니는 발에 와서 감기는 강아지를 애무하며 바다에만 눈을 준다. 다른 때는 벼룩이 옮는다고 개가 옆에 와도 마구 차던 할머니는 겁을 먹고있는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나보죠?》
복원이 궁금한대로 할머니에게 물어보았다. 할머니는 별안간 얼굴이 험악해지며 복원을 떠다박질러 모래밭에 쓰러지게 한다. 쓰러진 복원은 어이없어 쓰러진채 할머니를 보았다. 그래도 할머니는 바다에만 여전히 눈을 주고있다. 다른 녀인들도 쓰러진 복원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모두들 바다만 보고있다. 할머니의 말라빠져 살가죽이 늘어진 목이 침을 삼킨다. 복원의 물음이 방정맞았던것이다.
포구는 울음으로 화했다. 보이지 않는 두배는 침몰하고 탔던 사람들가운데 다섯명은 시체도 찾지 못했다.
도미어장에서 일본의 어선단을 만났던것이다. 그들은 백톤급의 기계배들을 몰고 오는게 보통이다. 이쪽의 발동선이나 목선으로는 도저히 대항이 되지 않는다.
바다는 우리의 바다.
물러서서는 안되는 싸움이여서 대항을 해가며 고기를 잡을라치면 그들은 어망을 찢어놓기도 하고 주낙을 끊어놓기가 일쑤다. 그날은 도미가 굉장히 잘 잡혔다. 우리도 욕심이 났지만 그놈들은 도적의 심리로 더 불같은 욕심이 생겼다. 백톤급의 기계배가 시위를 하듯 속력을 놓아 헤갈을 해 싸다니는 통에 풍랑을 만난듯 이쪽 배는 조리질을 했다. 아예 고기잡을 생각을 말고 물러나라는것이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어로를 계속하자 마구 충돌을 해와서 기어이 그같은 참상을 보고말았다.
《다음날 어촌에서는 다섯개 꽃상여가 나갔어요. 시체대신 입던 옷들을 상여에 태워가더군요. 옛날 임진왜란때 바다를 지켜 싸우던 장수들의 무덤이 뒤산에 있어요. 그아래 다섯사람의 옷을 나란히 묻고 무덤을 커다랗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거기서 떠나왔습니다. 계몽대활동이 다 뭐예요. 서울로 오는 전날 인사하려고 갔었어요. 날 떠박지르던 할머니가 날 붙잡고 울었습니다. 할머니의 아들이 죽었거든요. 할머니는 한탄했습니다. 남쪽바다는 왜놈의 등쌀, 서쪽바다는 분계선, 물고기만두 못한 신세랑께, 갈매기만두 못한 팔자랑께 어이하면 살란다우. 휴전선은 왜 생겼당께로. 연평바다 조구도 못 잡구, 이북땅은 살기 좋다든가분데… 바다사람들은 이북의 소식을 잘 알고있었습니다. …》
복원은 할머니를 생각해서인지 목이 메여 말을 더 못했다.
수선을 떨던 홍인표도 이번에는 어촌의 녀인들같이 침묵을 지키며 안경을 닦는다. 눈이 뜨거워지고 안경알이 흐려졌던것이다.
경제과 학생이 침묵의 중하를 밀어내려는듯 입을 열었다.
《슬픈 얘기지만 학생들 누구나 알아야 될 일입니다. 사실 일본은 바다로 들어오고있습니다.》
모두 그 말에 찬동하며 그것을 말하고나서 어촌의 꽃상여를 회상하는지 멍하고 앉아있는 복원에게 치하를 했다.
《왜적은 다시 바다로! 분계선은 막혀있고 갈매기만두 못한 신세랑께…》
홍인표가 안경을 끼며 대사를 외우듯 말하자 윤도가 별안간 소리를 질렀다.
《시시한 소리 하지 말아라. 왜적은 벌써 서울복판에 왔어. 바다는 옛날야.》
방안은 윤도의 느닷없는 격정에 놀랐다. 그들사이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복원의 이야기를 하찮게 여기는것으로 안겨왔다. 채남은 더욱 그렇게 보았다.
《서울도 바다로 해서 왔지 뭐예요?》
《비행기로도 옵니다. 전파로도 오고. 사실은 그게 더 무서운거지만…》
윤도는 엇나가고있었다. 그것을 아는 채남은 차라리 지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해서 입을 다물었다.
윤도는 제풀에 마음이 진정되며 자기가 얼마전에 명동다방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했다. 다방에서는 공공연하게 일본노래가 전축에서 흘러나오고있었다. 접대부는 차를 나르면서, 어떤 청년들은 차를 마시면서 일본노래를 받아 불러보느라고 어항속의 붕어같이 입을 놀리고있었다.
무슨 바람인지는 몰라도 일본의 류행가들이 이 땅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색적이고 퇴페적이며 말초신경을 자극시키는 음악은 그러지 않아도 생활의 희망을 잃고 자극적인 순간순간을 향락하려는 무자각한 대중에게 흡수되는 마력이 있어 염병같은 속도로 급속히 전파되고있다.
아이젠하워가 다녀간 일이 있거니와 《한일》국교정상화를 지시한 일이 있어 《과도정부》는 그 명령에 복종하여 일본이 기여들어올 뒤문을 넓게 열어놓은것이다. 그 뒤문으로 일본은 선전수단의 힘을 빌어 우선 노래와 영화를, 한편으로는 《한국》의 소비성향의 경제를 리용하여 일용품을 들여온다.
뜻있는 사람들은 장차 일본의 재침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손님들가운데서 한 50객의 사람이 접대부를 불렀다.
《저걸 꺼, 일본노랜데.》
《최신류행이래요.》
《왜놈노래라는데.》
《전 몰라요. 마담한테 말씀하세요.》
마담을 불러냈다. 마담은 천만의 말씀을 하신다는 태도로 나왔다. 어디 이렇게 완고한 사람이 있느냐는 식으로 대수롭게도 여기지 않았다.
《영업입니다. 류행을 외면하고 영업이 되는줄 아세요?》
《류행? 류행이 중하오, 나라가 중하오? 왜놈들 노래속에 그놈들의 정신이 들어있는줄 모르오?》
그러나 한사람의 비분강개는 《정부》가 뒤구멍으로 끌어들이는 일본풍을 막을수는 없다. 서울에는 일본가요가 범람한다. 일본음식이 번창했다.
윤도는 그것이 바다로 들어오는 일본세력보다 더 무섭다는것이였다.
일본세력이 또다시 기여든다는 그 말에 학생들은 아찔한 충격을 받았다. 한동안 말들을 못하고있을 때 허강이 좁은 자리에서 조금 앞으로 나앉으며 말했다.
《내우외환이라더니 정말 야단났다. 공장지대도 말이 아니다. 난 봄방학에 고향에 갔을 땐 김주렬 어머니의 아들을 찾는 울음소리를 듣고 그것이 오래도록 귀에서 지잉 하고 떨어지지 않더니 이번엔 부산에 가서 또 그런 울음들을 듣고 온게 역시 지금도 귀에서 떨어지지 않는군. 왜 이렇게 도처에 4. 19전이나 후나 울음뿐인지. …》
《비참한 생활토양에서 웃음의 꽃이 필순 없지. 이번엔 또 무슨 울음인가? 말하게, 실컷 울다보면 거긴 어느 틈엔가 분노가 와서 앉는 법일세.》
홍인표가 허강의 말을 재촉했다.
《부산에선 80여명의 녀직공들이 공장에서 일하다가 불에 타죽었다.》
《어마!》
채남과 복원이 동시에 비탄의 신음소리를 냈다. 녀직공이란 말이 더욱 그들을 놀라게 했다. 다른 학생들도 놀라며 자리를 바로했다. 모두 그 어마어마한 참극에 등허리가 꼿꼿해지는것이였다.
《80여명?》
저마다 그 믿고싶지 않은 수자를 입에 올려보았다.
《판명된 사람만이 그렇고 아직도 얼마가 더 될지… 거기다가 부상자까지 합치면 백여명도 넘어. 지금 그 가족들이 모두 실성한 사람들같이 딸의 이름을 부르며 혹은 어린애들이 엄마를 부르며 공장주변을 헤매기도 하고, 집에서 울기도 하고 부산은 울음의 바다로 돼있는데 그것이 어찌도 처참하던지. 로동자들의 처지가 저런것인가, 지금도 내 귀에는 그 울음이 들리고있다.》
홍인표가 더욱 참지를 못했다. 그는 부르짖었다.
《내 귀는 소라껍데기, 먼바다의 파도소리가 들려옵니다. 한 프랑스시인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더니 우리들의 귀에는 어째 이렇게 도처에서 울음소리만이 들리느냐? 아, 이놈의 세상, 어서 파도쳐라. 다시 4. 19와 같은, 아니 그 몇배의 파도가 밀려오라.》
《아니, 분개할 일은 이제부털세. 들어봐라.》
허강은 팔을 휘두르며 분개하는 홍인표의 팔을 잡았다. 홍인표는 팔을 뿌리쳤다.
《사람이 80여명씩이나 그것도 남의 귀여운 딸들, 소중한 엄마들이 생화장을 당했는데
《그것이 화재의 희생만이 아니고 악덕기업주나 그밑의 감독놈의 고의적인, 재산을 지키기 위한 탐욕이 그들을 불에서 나오지 못하게 막았다면?》
《뭐?》
《불이 났을 때 녀직공들이 살려고 뛰여나오는 비상구를 닫아버렸다면?》
《왜 비상구를 닫아?》
홍인표의 사고로는 그것이 도저히 리해가 가지 않는 일이였다. 비상구란 그러한 위급한 때에 쓰려고 내놓은 시설인데 어째서 그것을 막는단 말인가.
《불길이 다른 작업장으로 옮겨붙으면 기업주는 손해니까. 그는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켜서라도 재물을 지켜야 했던것이다.》
《뭐?》
홍인표는 이번에는 입만 딱 벌린채 한마디도 못하고 머리를 싸쥐였다.
《악마!》
그는 신음하며 힘없이 고개를 떨구고 또 한번 중얼거렸다.
《악마!》
《그렇다, 미국과 결탁하고 돈벌이에 눈이 뒤집힌 매판자본가들은 악마들이다. 그 악마들밑에서 <한국>의 로동계급은 살아왔고 또 지금도 살아간다.》
허강은 그
T화학공장은 고무신과 포화를 만드는 공장이였으나 군인들의 신발을 주로 만드는 군납공장이였다. 천여명의 녀직공을 쓰는 《한국》에서는 큰 기업체로 군납을 빙자하여 《군수공장》이라는 간판밑에 로동자들의 일체 요구를 묵살해왔다.
그 공장 2층에서 불이 났다. 수시로 와서 녀성로동자들에게 란폭한 행악을 하고 다니던 감독이란자가 그날도 현장에 와서 느물거리다가 담배불을 아무데나 던지고 간것이 신나(고무신에 칠하는 화학약품)에 인화되여 화재가 발생했다.
불이 나자 녀성로동자들은 저고리를 벗어 덮어가며 불을 끄려 하였으나 인화력이 강한 신나에 붙은 불은 꺼지지 않고 폭음과 함께 삽시간에 작업장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그러자 녀성로동자들은 출입구로 몰려나오는데 감독이란자들이 뛰여나와서 녀성로동자들에게 신틀을 마구 던지며 《이년들아, 불을 끄지 않고 어딜 나오느냐?》하고 문을 막았다. 녀성로동자들은 서쪽비상구로 몰려갔다. 그러나 그 비상구는 이미 굳게 닫겨있었다. 불길이 다른 작업장으로 옮겨붙지 않도록 하라는 공장주의 불같은 독촉으로 그렇게 된것이다.
화염과 연기속에서 살려고 비상구를 찾아 몰려나오던 녀성로동자들은 나갈 길을 잃고 다시 되돌아 화염을 뚫고 창을 찾아 헤매다가 요행 어떤 녀자들은 뛰여내려 살았고 혹은 상하기도 했으나 미처 찾지 못한 녀자들은 화염에 싸여 죽었다.
홍인표의 말대로 생화장이 된것이다.
다른 학생들이 차례차례로 내놓은 체험들은 돌을 하나하나 쌓아올리는 무게같은 중하로 그들 머리를 짓눌렀다. 여러가지 현실의 보따리를 학생들의 전공에 따라 정치, 경제, 철학, 법학, 력사, 문학, 농업, 음악의 각도에서 분석도 하고 설명도 했으나 귀착되는 곳은 통일이였다. 그것 없이는 해결할 길이 없는 현실이였다.
현실은 답답하다. 4. 19는 짓밟히고있다. 일본은 기여든다. 미국은 마음대로 활개친다.
아, 이 땅은 어디로 갈것이냐?
《그래도 난 조금도 비관하지 않는다.》
준호가 침통한 기분을 쓸어버리려는듯 말했다.
《우린 시야를 넓혀 세계를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있는데 그 하나는 우리 민족이
우리는 페쇄된 이 땅에서 살기때문에 자칫하면 세계추세에 어둡기 쉬운데 외국에 나가면 판판 다르다고 한다. 외국의 선량한 사람들은 우리조선을 남과 북으로 갈라보지 않는대. 하나의 코레아로 보지. 특히 신생독립국가들이 그렇다는거야.
그들은 지금 민족해방을 이룩하기 위하여 자주, 자립, 자위의 기치를 들고 김
북은 지금 신생독립국가들의 등대로 돼있어. 그들은 미국놈들의 오만한 코대를 꺾고 놈들에게 거듭 참패를 안기면서 나가는 당당한 인민들이다.》
준호가 상춘을 보며 말했다.
《상춘아, 넌 왜 침묵만 지키니? 어머니가 안 계셔 그러니? 어머니를 석방시키기 위한 투쟁을 더 강화해야겠다. 법조계도 동원하구.》
그들은 오래도록 의논을 했다. 대학출신 선배변호사에게 의뢰도 하고 그들
상춘은 고마울뿐이였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우리 어머니때문에 그렇게들 걱정해줘서 고맙다. 어머니께 면회가는날 다 전하지. 아무튼 우린 세계의 고아가 될수 없다. 세계의 추세가 역행하는 놈들의 발뒤꿈치에 매달려가다가 사상의 불모의 땅에 뻗어죽을순 없어. 지금 대륙이 불타는 대륙으로 되여가는데. 우린 통일로 불을 태우는거야.》
《그렇지. 세계의 고아가 될순 없지.》
인표는 팔을 휘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