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새로운 성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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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말등바위댁의 며칠만 더 묵고 가라는 부탁도 있고 또 오래간만에 찾아볼데도 여러곳이였다. 이종사촌의 자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산다. 처녀때 어머니를 키워주던 이모는 이미 고인이 되였고 이종들이 아직 살아있다. 모두 환갑을 바라보는 늙은이들, 자주 다니는 길도 아닌것을 이왕 온김에 만나보고싶었다.
다녀보는 촌에는 어디나 선거바람이 불었다. 립후보자들의 이름을 광고하는 현수막이 걸렸고 각종 삐라를 도배라도 하는 기분인지 붙일수 있는곳이면 어디나 개천방뚝으로 쌓은 돌에 이르기까지 몇장씩이고 같은 이름을 겹쳐 발라놓았다. 그중에서도 돈을 자랑하듯 권세환의 이름이 제일 많았다. 머리를 이리 돌려도 《권세환》, 저리 돌려도 《권세환》, 어머니가 하도 그 이름이 역겨워 머리를 쳐들면 보이는 나무가지에도 또 그 이름, 어느 양조장 술배달이 자전거에 싣고 달리는 술통에까지 그의 이름은 붙어다녔다.
어머니가 찾아간 마을에서도 그가 자유당출신이라는 사실은 망각되고 돈이 많아 막걸리를 제일 잘 낸다는 소문이 먼저 떠돌았다.
《4. 19가 짓밟힌다.》는 아들한테서 자주 듣던 말의 현실을 한적한 촌에까지 와서 목격하는것도 한심스럽지만 어머니가 놀란것은 권세환의 경력을 인쇄한 삐라였다. 사십여가지 항목도 넘는 그의 명사같은 경력, 그는 벌써 8. 15전부터 민족운동자금제공으로 인하여 두차례에 걸쳐 일제경찰에 피검된것으로 되여있다.
어머니가 알기에는 남편 오원필을 밀고하고 그 범죄를 눈가림하기 위해서 경찰에 피검된것처럼 연극을 꾸며놓은 사실이 이제 와서 《애국》행위로 둔갑을 하는것이다.
다른 항목에는 《오원필선생추모비 건립위원회 위원장력임》이라고 남편의 이름까지 버젓하게 내걸었다.
사실에는 틀림이 없으나 어머니는 심한 모욕을 당하는듯 당장 권세환이 앞에 있으면 멱살을 잡고싶었다.
말은 해서 무엇 하랴. 이번에 어머니를 미군영창에서 빼낸것도 권세환이였다는 소문도 퍼지고있다. 권세환의 선거선전원들이 돌리고 다니는 선전이였다.
어머니가 찾아볼데를 찾아보고 하루라도 빨리 서울로 가려던 어느날 장자울에 무슨 일이 생겼으니 급히 오라는 누구의 기별이란것도 없이 그런 소식을 받았다.
장자울로 되돌아온 어머니는 말등바위댁네 빈집에서 날기멍석을 봐주며 주인을 기다렸다. 말등바위댁은 머리에 풋나물을 한짐 이고 와서 마당에 팽개치고 《그래서 오셨수, 성님?》하고 무엇인가 어머니가 와야 될 일이 있는듯이 떠들었다.
《그래서라니?》
《아이구, 성님은 그걸 모르구 오셨구려, 저걸 어쩌나?》
그의 성질대로 손벽을 치며 변괴라는듯 놀랐다.
어머니는 궁금한 마음을 참지 못했다.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이 다 뭐유. 권세환이가 옛날에 성님네 선생님을 왜놈이 잡아가라고 일러바쳤다우. 그게 인제서 영환이 입에서 터져나왔지 뭐유?》
어머니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뙤약볕이 가뜩이나 작열하는 정오의 공기가 더욱 희게 보이며 아지랑이같이 눈앞에서 흔들렸다. 방금 들은 말이 어딘가 먼곳에서 들려온 아득한 울림같았다. 머리속이 징 하고 울리며 가슴이 답답해올랐다. 어머니가 밀고를 이제 알아서가 아니였다. 이미 짐작하는 일이였다. 짐작하면서도 그 당시에는 어쩔수도 없이 지나는동안 이미 시효가 지난 일로 되였거니와 이제 새삼스레 남의 입을 통해 그것이 확증되자 권세환의 경력에서 받은 분한 마음과 겹쳐서 어머니의 마음은 떨리는것이였다.
또 하나 분한 마음은 영환의 입에서 그것이 터져나왔다는 사실이다. 영환은 며칠전에도 어머니앞에서 자식을 걱정한 사람이다. 어머니가 믿던 사람인데 믿는 그가 그 일에 관여되였다는 말인가. 《불신시대》라 하여 아무도 믿지 못할 세상이라 하지만 그도 믿지 못할 사람인가. 동일이를 봐서도 그에게 속을 주어온 어머니가 어리석었던가.
말등바위댁은 어머니에게서 아무러한 반응도 보지 못하자 《성님, 원쑤지 뭐유?》하고 부추기듯 무엇이라고 더 떠들었으나 어머니는
《나 물 좀 주게.》
바가지에 떠다주는 물을 한모금 마시였다. 목이 꽉 메인듯 답답한 가슴은 조금도 시원하게 트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평소에 누구를 그렇게 시키는 습관도 아니였다. 하지만 어쩐지 손맥이 없어 물바가지를 말등바위댁에게 내주자 그는 바가지를 받아 물을 마당에 홱 끼얹어버렸다. 자기처럼 펄펄 뛰지 않는 어머니의 태도가 성에 차지 않는것이다.
《나 같음 그놈을 저 죽고 나 죽기로 가만 놔두잖겠수.》
전에 어머니도 남편을 밀고했다는 소문을 처음 들었을 때는 지금 말등바위댁과 같은 그런 극한 마음이였다. 나이도 마흔을 갓 넘은 한창때였다. 그러나 소문은 어디서 불어와 어디로 흘러가다가 나중에야 어머니 귀에까지 들어왔는지 아무리 캐보아도 오리무중이였다. 소문이란 항상 본인을 비켜놓고 그렇게 떠돌기마련이다. 바람과 같은 뜬소문으로 끝나고말았었다. 겨눈 비수의 날을 어디다가 꽂아야 좋을지 과녁을 잃고 비수의 푸른 날만 공중에서 떨었던것이다.
감옥에서 나온 남편은 유언같이 말했다. 권세환은 이미 개(경방단장)노릇을 하는자니 물리지나 말도록 조심을 하라고, 그에 대한 단죄는 민족의 심판의 날을 기다리라고.
응당 권세환은 8. 15직후에 민족의 심판을 받아야 할자였다. 그러나 그는 출세의 줄을 잡았다. 4. 19도 그를 어쩌지 못했을뿐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짓밟히고있다.
어머니는 그것이 모두 자기가 나서지 않기때문인것 같이 느낀다.
《영환이가 뭐라던가?》
어머니는 지극히 조용한 말로 물었다.
《왜놈순사헌테 지가 편질 갖다 줬다고, 술을 먹고 동네가 다 떠나도록 떠들었지 뭐유?》
《언제?》
《그저께 밤요.》
《밤에?》
《그날 아침 권세환이헌테 가서 땅문설 내라고 졸랐나 봅니다. 동일이가 인젠 그 집에서 나온대나요. 그래 갔는데 해줄게 뭐요. 개몰리듯 핀잔만 받고 나와 화김에 이놈저놈 퍼먹이는 선거막걸릴 먹고 와서 주정을 쏟아놨죠. 가관이였어요.》
말등바위댁은 그가 주정하던 꼴을 몸짓, 팔짓 시늉까지 섞어가며 흉내냈다.
《네 이놈! 아무때고 내 입이 한번 터지는 날이면 네가 망할줄 모르고… 네가 오원필선생님을 잡아가라는 편질 했지 뭐냐, 이놈! 난 그런줄은 모르고 네놈이 시키는대로 갖다 줬지만 알고보니까 그게 그런 편지였지. 이놈! 난 죄없어. 이놈! 난 그래도 네가 내 사촌이라고 팔이 안으로 굽는대로 이날이때까지 묻어왔다. 뭐야? 애낳는데 가서 내가 뭘 달랜다? 개자식, 넌 이놈, 오입질로 네 계집을 둘암컷으로 만들어놨지만 난 남의 녀자 한번 바로 못 보는 나야. 애낳는데 내가 뭘 달랬니, 아앙? 언제 달랬어? 내가 땅문서를 해달랬지 언제 그런 더러운걸 달랬느냐? 줘도 안 갖는다. 동일이 너 이놈의 자식, 그 집엘 다시 갔다간 넌 내 자식이 아니다. 투엣, 더럽다!》
그는 동네가 잠을 자지 못하도록 밤새껏 떠들어대다가 막걸리기운이 없어진 새벽녘에야 잠들었다.
어머니는 남편이 잡히게 되던 경위가 이제는 명백해졌다. 미리 경찰과 련락을 해놓고 그렇지 않은체 함께 잡히는 수법-비렬하고도 악랄했다. 어머니는 그 말을 직접 영환의 입에서 듣고싶었다.
영환이 부치는 그 여섯마지기 논은 누구나 욕심낼만 한 땅이였다.
논을 적시던 저수지가 지금은 미군군용지안의 뽀트장으로 되여서 그렇지만 물길이 닿기만 하면 한마지기 두섬 반은 바라볼수 있는 마을에서도 상답에 속하는 논이였다. 남들은 철조망밑에서 목숨을 걸다싶이 농사를 짓는 판에 그는 그것도 모르고 밤낮으로 논에 나와서 화초가꾸듯 논을 다룬다. 논에서 피사리(돌피를 뽑는 일)를 하는 그를 어머니는 논두렁으로 불러냈다.
《그 얘길 다시한번 좀 들어봅시다.》
《그 얘기라뇨. 뭐 말입니까?》
영환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깜깜하다는듯이 눈이 둥그래서 반문을 했다.
《권세환이 왜놈순사헌테 편질 했다는 그것말예요. 내 속이 시원하게 얘길 좀 해봐요. 지나간 일이지만 20년동안 가슴에 뭉친 일이니.》
《언제 내 사촌이 왜놈순사헌테 편지를 했나요?》
금시초문인듯 영환은 딴전을 부려 어머니에게 물었다.
《그걸 나헌테 물음 어떡하우. 동일 아버지가 아는 일을…》
《아, 아뇨. 난 몰라요. 그때 왜 우리 사촌도 같이 잡혀가잖았습니까?》
《접때 술자시고 한 말을 동네가 다 들었다는데 난 동일 아버지가 섭섭해서 묻는게 아녜요. 알지 못하고 심부름했는데 뭐 잘못이겠나요? 그때 권세환이 뭐라고 했으며 편질 갖다가 누굴 줬는지 그거나 말해달라는데 이렇게 시치밀 떼니 어디 믿는 사이가…》
《네에, 술먹고 한 소리요. 아, 그놈들이 싫대도 빈속에다 어떻게 퍼먹이는지 그만 정신을 잃고 아마 무슨 소린지 입에서 나오는대로 한 모양인데 술먹고 한걸 낸들 알수가 있나요. 술먹는 개망나니라지 않아요. 인젠 다시 술을 안 먹을랍니다. 그리구 내가 무슨 편지심부름을 했습니까. 난 그런 일 도무지 없어요. 아, 그러먼요. 내가 그 집 심부름이야 오죽 많이 했나요. 별별 심부름을 다했죠. 하지만 지금 말씀하시는 그런 편진 난 모른다니까요. 아, 했음 했다죠. 그럼요. 심부름한 내게 무슨 죄가 있다고 점잖은 어른께 거짓말을 해요.》
어머니가 영환이한테서 진실을 듣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던것이다. 어머니는 알지 못하고있지만 그날 밤 영환이 그런 주정을 했다는 정보가 장남술의 입을 통해서 다음날 아침에는 권세환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권세환은 그 정보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는 코웃음을 쳤다.
《좀스런 인생이로군.》
그러나 이것이 지금 류포된다면 선거전에서 불리할것만은 틀림없었다. 아마 그가 이번 선거에서 락선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이 원인으로 될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없지 않았다.
그는 장남술을 시켜서 영환을 불렀다. 선거가 끝나는대로 토지명의 이동을 해준다는 각서를 한장 써주었다. 그리고 한마디 영환에게 침을 놓았다.
《형님이 언제 내 편질 주재소에 갖다 줬다고 그러오? 난 그런 기억이 없는데 만약 있다면 그건 형님과 나와 공모로 되는 일이요. 뭐 알기나 하고 주정이요?》
영환은 공모라는 말에 놀랐다. 사실이 공모가 틀림없는 일같기도 했다.
《그래, 형님 량심대로 말해보우. 그런 일이 있소, 없소?》
영환은 기억을 더듬는체 눈을 감아도 보고 머리도 기웃거려본 다음 말했다.
《없어.》
영환은 그 당시 권세환이 만년필로 편지를 쓰다가 잉크가 나오지 않아서 그것을 뿌린다는게 하얗게 빨아다린 모시에 잉크가 튀던 일까지를 선명히 기억하고있었지만 공모라는 말에 그만 질려서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가 그 내막을 그대로 아는건 아니였으나 영환의 입이 왜 굳게 닫기는가는 충분히 짐작되였다.
《그만둡시다. 말을 들으나마나 난 알건 다 알았수. 생시에 먹은 맘이 취중에 나온다고 없는 말을 술먹고 했겠어요. 경찰서에서도 죄인을 다룰때 무슨 마취약을 먹여 정신을 잃게 하고 헛소리하는걸로 사실을 알아낸답디다. 술먹고 하는 소리가 바로 그런것 아뇨? 지금 나헌테 바른대로 말 못하는 속을 내가 모르지 않아요. 이 땅때문인줄 나도 알아요. 난 고생한 사람이우. 그러나 사람의 도리는 아니죠. 가난하고 없을수록 대바르게 살고 할 말은 하고 그래야지 지금같이 그래봐요. 밤낮 남헌테 업신여김만 받지 않나. 세상에 굽실거리는 사람은 자꾸 밟아만 주기마련이라우. 동일 아버지도 사촌헌테 얼마나 밟혀왔어요? 그러고도 속에 있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시는구려.》
영환은 볕에 탄 얼굴이 더 벌개서 대추빛이 되여갔다. 어머니는 그가 측은해보였다.
《아무쪼록 농살 잘 지으슈. 벼가 무던히 됐군요. 열둬섬 날가?》
영환은 한숨을 돌렸다. 보이지 않은 매질에서 겨우 놓여난것이다. 영환에 대한 어머니의 관용은 반대로 권세환에 대해서는 극도의 미움으로 응결돼갔다.
그 응결이 명치끝에 걸린듯 어머니는 저녁먹은것이 소화가 되지 않아서 고생을 했다. 소금을 먹어보았다. 그래도 속은 거북했다.
《성님, 분한 맘은 소금이나 엿기름물이 소용없습니다. 전에 나도 보니까.》
말등바위댁의 말이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나?》
《시원하게 그놈의 사등뼈를 꺾어놔요.》
어머니는 웃었다.
《웃으시네. 나 같음 그렇게 해요.》
그는 씩씩거리더니 어느 틈에 잠들어버리고말았다. 어머니는 잠들지 못했다. 말등바위댁이 타준 엿기름물이 들어가서인지 속도 너누룩해지면서 정신도 새로왔다.
어머니는 자기모순에 빠졌다. 낮에 영환을 보고 할 말은 해야 된다고 했지만 과연 지금 어머니는 할 말이 없겠는가? 권세환이 선전삐라에 남편의 이름을 도용하고있는 그것도 모른체 침묵을 지켜야 옳은가. 죽은 남편이 권세환의 출마에 한몫 드는것을. 어머니는 그러한 자문자답에 맴돌고있었지만 그 심리를 캔다면 아들한테서 자주 듣는 4. 19에 대한 통분에서 오는 감정이였다. 만약 4. 19후에 《한국》사회가 제대로 되여간다면 오늘 그 일을 알았다 하더라도 이미 지나간 사실을 가지고 그다지 심한 충격은 받지 않았을것이다.
다음날 아침에는 동일이 와서 군내로 돌아다니며 보고 느낀바를 이야기했다. 선거는 암만해도 권세환에게 승산이 있을것 같다는 예측이였다. 그는 첫째로 돈이 많았다. 선거지반이 여전히 공고했다.
4. 19후라고는 하지만 말단행정기관이 자유당시기의 그 사람들그대로 건재해있어서 그것이 모두 그의 지반으로 되고있다. 또한 례의 그 경력이 의외로 선거인들속에 영향력을 가지고있다. 그럴것이 그 사기적인 경력의 간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번 선거에서도 그 경력으로 행세해왔기때문에 지금은 하나의 그의 《력사》로 공인돼버렸다. 거기다가 그는 4. 19도 교묘하게 리용하고있다. 그가 관계하고있는 H대학 학생들이 4. 19에 적극적으로 참가한것, 그의 조카 동일이 4월 18일 부상당한것, K군출신의 학생들 심지어 상춘의 부상까지를 렬거하면서 모두 그것은 K군의 영광이라고.
《악독하기도!》
어머니 입에서는 저절로 그 말이 새여나왔다.
《그런 사람들이 또 <국회>의원으로 되면 앞으로 설 <제2공화국>도 바랄게 없습니다. 4. 19도 없고요.》
동일이 개탄하는 말이였다.
어머니는 읍으로 권세환의 선거사무소를 찾아갔다. 다른것은 몰라도 오원필의 이름에 대한 도용만은 참을수 없었다. 그 이름이 권세환에게 리용되여 4. 19를 유린한다. 아버지가 자식이 피흘려 쌓은 업적을 짓밟는것이다. 뜻하지 않게도 지꿎은 운명이였다.
읍은 장날도 아닌데 벅적거렸다. 취해서 비틀거리는 사람도 눈에 띄였다. 듣는 말그대로 권세환의 왕국인듯 했다. 환평상회에서 불어대는 갖은 곡조의 음악이 그러했고 하늘에 차일치듯 전주대사이가 멀다하게 늘어놓은 크고작은 현수막이 그러했다.
어머니는 환평상회 2층사무실로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조금도 만나보고싶은 사람이 아니지만 만나야 했다. 여름이라 창을 모두 열어놓은 방에서는 귀에 익은 카랑카랑한 권세환의 목소리가 들렸다.
《질서를 지키란 말요. 우격다짐으로만 되는 일인가? 저번 장자울사람들의 그것 봤지. 내가 이렇게 내려와있겠다, 오죽 좋아, 날 앞세우고… <국회>의원이란 그런 일하는 민중의 선량이니까. 날 앞세우고 가서 교섭을 하면 될 일을 뭣때문에 남의 감정을 사도록 기발을 들고 가야만 맛인가. 광목도 흔하지.》
무슨 《진정》이라도 하려고 온 농민들을 설유하고있는 모양이였다.
《그것도 저들속에서 우러나온짓이라면 혹 몰라라 하겠지만 이건 생판 사회경험도 없는 애들의 부추김을 받아서… 나도 4. 19에 학생들이 잘했다고 봐. 그렇지만 사회경륜에 들어선 애들이지 뭐요. 이십안팎의 애들야. 자네 그때 나일 생각을 해보게. 그만때 뭐 알았어. 하늘이 높은것만 알았지 땅이 낮은건 모를 때거든…》
분명 상춘을 두고 비난하는것이다. 어머니가 사무소문턱을 넘어섰을 때의 얼굴은 분노에 북받쳐 거기 있던 사람들은 어머니를 보자 랑패와 당황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깊숙한 안락의자에 앉았던 권세환만이 《사모님!》하며 언제나 어머니를 속여넘겨보려는 거짓웃음을 지어보이며 의자에서 발딱 일어나 손을 잡을듯 앞으로 나왔다.
《사모님이 어떻게 여기까지 어려우신 길을… 앉으세요. 날이 덥습니다.》
그는 껐던 선풍기의 스위치를 넣으며 앞에 앉아있는 농민에게는 어느 술집에 가서 점심이나 먹고 오라고 했다.
《앉으세요, 사모님.》
어머니는 말끝마다 《사모님》으로 괴이는 그 말이 간사스럽고 역겨웠다.
《여보시오. 내가, 사모님이 맞소? 낯간지럽소.》
《녜?》
《낯간지러워요.》
《어떻게 하시는 말씀입니까?》
《몰라서 묻소? 사모님이란 그 말도 그만두고 옛날에 오원필이와 뭐 어떻고 하는 그것도 그만두오. 내가 아직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곤 가만있을수 없소.》
《아, 사모님이 무슨 헛소문을 들으셨군요?》
《헛소문을 들은게 아니라 옛날부터 내가 다 아는 일이요.》
《아시다니요. 뭘 아신단 말입니까?》
《난 당신과 긴말을 하기 싫어요. 오원필의 이름을 다시 또 팔고 다니겠소, 안 다니겠소? 그거나 말하오.》
어머니는 권세환의 시선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건 사모님이 몰라서 그러시지 오원필선생님과 나와 관계는 크나작으나 하나의 지나간 력산데 그걸 어떻게 사모님이 그만두라마라 하십니까?》
《력사가 난 뭔지 모르지만 당신이 력살 그렇게 대감모시듯 떠받들고싶걸랑 오원필을 왜놈들헌테 찔러넣은 력사도 광고하구려.》
《헛소문이라고 내가 몇번씩 말하는데도 사모님이 정 이렇게 날 모해하시면 나중에 재미없습니다.》
권세환은 지금까지의 저자세에서 별안간 역습의 태도로 나왔다.
《그때 오원필선생과 내가 한 일을 사모님이 어떻게 다 안다고서 이제 와서 헛소문을 듣고 찔러넣으니 뭐니 강박해가며 날 모욕하니 이건 뭐 위협이요, 공갈이요? 그렇다면 나도 할 말이 있어요. 어디까지나 옛날 선생님의 낯을 봐서 좋게만 대해주니까 못할 말이 없구려. 나가오!》
순간 어머니의 손이 올라가 권세환의 뺨을 소리나게 갈겼다.
그 한대의 뺨으로 어머니는 민족의 반역자를 응징한것이다. 다시 그와 할 말도 없었고 거기 더 지체해있을 까닭도 없었다. 나와버리려들었다.
만약에 권세환이 지금까지는 죄를 회피해보려고 된 소리, 안된 소리와 심지어 대들기까지 했지만 뺨을 맞는 순간 정신이 들어서 머리를 떨구며 감히 어머니를 보지도 못했으면 말이다. 그러나 권세환의 강파른 전신이 그대로 대가리를 치켜든 독사처럼 빳빳해지며 살기가 튀는 눈으로 어깨를 달막거리며 어머니를 노려보다가 소리쳤다.
《이 늙은일 끌어내라!》
거기 섰던 왕렬과 다른자들이 어머니에게 와서 《이거 무슨짓입니까. 점잖은분헌테… 나가요!》하며 권세환의 명령대로 감히 끌어내지는 못하고 어머니가 나가기를 독촉했다.
《난 이 사람헌테 다짐을 받기 전엔 못 나가겠소.》
어머니는 그들을 엄한 눈으로 보았다. 그들은 권세환과 어머니를 번갈아보았다. 권세환은 소리쳤다.
《끌어내지 못할가!》
그들은 어머니에게로 달려들었다. 어머니는 그들을 뿌리쳤으나 힘을 당할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격노에 떨며 앞뒤를 가리지 못했다. 닥치는대로 거기에 있는 의자, 책상 등 기물들을 둘러엎었다. 창에 붙인 현수막을 잡아떼였다. 그래도 어머니의 분은 풀리지 않았다.
그길로 신문사지국을 찾아갔다.
어머니가 신문기자에게 폭로하는 권세환과 어머니네 일가와의 엉킨 복잡한 관계는 신문의 특종기사감으로 훌륭한 자료가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