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새로운 성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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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며칠동안의 단식에 극도로 쇠약했다. 몸을 잘 가누지조차 못했다. 병은 아니였다. 안정하면 회복될것 같았다. 말등바위댁집에 누워계시도록 하고 상춘은 읍으로 갔다. 말등바위댁은 좁쌀을 구해다가 미음을 끓여서 대접하고있으나 상춘은 졸인젖 같은 영양제라도 사올 생각이였다.

읍에서 동일과 채남을 만났다. 채남은 상춘이 보낸 편지를 받고 내려오는 길이였다. 동일이 함께 가자고 해서 오후 4시차로 읍에 내려와 장자울로 가려던 참이였다.

동일은 4월 19일이후 권세환의 집에서 더욱 거북한 존재로 되였다. 마음 같아서는 그 집을 당장 나오고싶었으나 그럴수도 없고 권세환의 거취만 관망하면서 남과 같은 방관자적태도를 취해왔다.

그로서는 달리 별수도 없었다. 권세환의 한달도 못되는 출옥과 출마에 쓴웃음을 지을뿐이였다.

동일도 상춘이 채남에게 보낸 편지를 보았다. 고향에서는 심상치 않은 사건들이 벌어지고있는 모양이다. 이제는 자기도 명백한 태도를 취할 때가 되였다. 괴롭더라도 권세환의 집에서 밥을 얻어먹으며 대학을 다니느냐, 집을 나오느냐, 고향에 와서 사정도 알아보고 아버지와 의논도 할겸 채남이 동행하자는대로 따라 내려왔다.

《우리 아버지 너보고 뭐래지 않던?》

동일이 상춘에게 물었다. 그들은 길에서 잠간 서서 마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사람(권세환)과 맞서지 말라고 두번이나 말씀하시더라. 내가 뭐 그 사람과 싸움이라도 하는줄 아시는 모양이야…》

《데모엔 참가할 생각도 안하셨을거고.》

《큰일난다고만 하고 들로 나가시던데.》

동일은 허공을 쳐다보며 쓰겁게 입맛을 다시였다.

《원래 그런분이니까. 모두 나때문일거야.》

《종형제끼리 옳은 립장을 취하기가 그리 쉬운건 아니지. 씨족관념이 심한 농촌에선 더구나…》

《나때문에 더하셔.》

동일은 읍에 사는 친구들이라도 찾아서 여론이라도 들으려는지 딴 곳으로 가고 상춘과 채남은 둘이서 해질녘의 촌길을 걸어 장자울로 갔다.

길은 호젓하고 다정했다. 키큰 호밀밭이 나란히 걸어가는 그들을 가리워주기도 했다. 밀익는 냄새가 저녁이슬이 내리기 시작하는 공기의 습기를 받아 더 진하게 풍기였다. 채남은 4. 19 그날 메고 다니던 위생가방을 파란보자기로 싸서 어깨에 멨다. 경태의 부상당한 다리에 소용될듯 한 약품과 또 상춘의 부탁대로 촌에서 필요한 몇가지 약들을 가지고 왔다. 무거운지 채남의 코등에 송글거리는 땀을 보고 상춘은 가방을 달래서 멨다.

《경태아저씨가 반가와할거야. 어머니도 그렇고…》

상춘은 너무나 호젓하고 밀과 쑥내가 풍기는 길을 둘이서만 가기가 주체스러워 그런 말이라도 해야 되였다.

《반가원 하겠지만 내가 뭘 알아야죠.》

 《소독이나 잘하고 약이나 발라주기야 뭐. 치료란 정성이 첫째니까. 나부상당했을 때만큼만 정성을 들여주면…》

《그건 정성이 아니였어요.》

《그럼?》

《나도 모르는 어떤 힘!》

상춘은 걸음을 멈추며 채남의 얼굴을 보았다. 상기한 그의 얼굴은 넘어가는 붉은 해살에 더욱 타는듯 했다.

《힘이라고 하면 이제 경태아저씰 만나봐. 정말 힘을 느낄거야.》

채남은 자력의 뜻으로 힘이란 말을 썼다. 상춘은 그 뜻을 알면서도 보통 《힘》이란 뜻으로 말했다.

《어떤 힘을?》

《학생들의 사명이랄가. 남을 위해서 몸바칠 자리를 찾았을 때에 생기는 자신이겠지.》

그들은 경태의 치료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끝에 자연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며 길을 걸었다.

그의 장래를 두고 생활의 설계도도 꾸며보았다. 무의촌에 가서 사업해보는것도 의의가 있으리라. 그러나 채남 혼자만의 이야기는 아니였다. 상춘이 장차 어디서 무엇을 하겠느냐에 따라서 그의 생활설계도 이렇게저렇게 변경될수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장래를 한장의 설계도에 그려보는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부터 약속한다는 속기를 띄울수 있다. 다만 젊은 사람들이 공상의 하나로 꿈을 그려보는데 지나지 않은 그자체가 하나의 기쁨이였다.

그들의 대화는 자주 중단되였다. 너무나 호젓하고 그들만의 길이기때문이였다. 채남은 길가에 핀 찔레꽃을 손길로 쓸어 손끝에 묻는 냄새를 코에 대보며 간다.

그들은 한참 들길을 걸어서 건널목을 지났다. 거기서 장자울로 가는 등외도로를 버리고 산을 넘으면 오리길을 당기는 지름길이 된다. 낮에는 그렇지 않지만 저녁때부터는 후미진 곳이다. 옛날에는 호랑이도 나왔다는 로인들의 이야기였다.

그 갈림목에 와서 그들은 망설이였다. 산밑으로 보이는 마을에는 저녁연기가 낮게 띠를 이루어 가지런히 감돌고 푸새때는 냄새가 싱그럽게 풍기여왔다.

《어디로 갈가?》

상춘이 채남에게 물었다.

《마음대로요.》

《무섭지 않아?》

《둘이 가는데 뭐…》

그들은 산길로 접어들었다. 나무는 람벌되여 그들의 어린시절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울창한 숲은 없었지만 해넘어간 뒤의 산길은 우중충했다. 랭기까지 피부에 감기여왔다. 산새들도 울음을 그치고 소쩍새가 혼자 울기 시작했다.

《소쩍새가 아녜요?》

《피나게 울어 남의 애를 끊는…》

상춘은 생각나는대로 어느 시조의 구절을 외웠다.

《누구의 시조죠?》

《책에서 봤는데 누구더라, 가만있자.》

상춘은 삭막한 기억을 더듬었다.

《정충신이 아니였던가?》

《잘도 아네요.》

채남은 입안의 웃음을 참지 못했다.

《왜?》

《아니.》

《다른 사람의거던가?》

《그의거예요.》

《그런데 왜?》

《남의 시조는 알아도 아들로서 어머니의 시조는 모르니 우습지 않아요.》

《무슨 소리야?》

앞서 걷던 상춘은 돌아서서 뒤에 숨차하며 따라오는 채남을 꽉 안을듯 한 시늉을 해보였다. 그는 《어서 가요. 내가 얘기할게.》 하고 몸을 피하며 말하였다.

그들의 앞에는 가파로운 산길이 급한 경사로 일어섰다. 채남은 상춘에게 손을 주며 끌게 했다.

《옛날에 어떤 처녀가 있었대요. 저렇게 밤이면 밤나무에 소쩍새가 우는 마을에… 의병의 딸이였대요. …》

채남은 숨이 차서 토막토막 이야기를 이어가며 손을 끌리여갔다.

고불고불 숨찬 길도 이야기를 반주삼아 올라가면 힘이 들지 않는것 같기도 했다. 령마루에 다 올라갔을 때는 채남이 하는 어머니의 소녀때 그 이야기도 끝이 났다.

상춘은 줄곧 경건한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들었다.

령마루에는 시원한 바람이 골짜기로부터 불어올라왔다. 그들은 거기 바위에 걸터앉아 다리쉼을 했다.

멀리 동쪽으로 어두워가는 속에 북한강상류의 물줄기가 굵은 띠같이 흘렀다. 장마철에 들어 물이 많이 불었다.

《어머니헌테도 그런 추억이 있어 반갑군. 어머닌 일생을 두고 쓰라린 일만이 있는줄 알았는데.》

《난 그 얘길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감동이랄가…》

《순전히 어머니, 아버지의 애정만이라면 난 좀 듣기 거북했을거야. 그러나 애정만이 아니고 나라를 위하는 사람들의 사랑얘기니까. 고마와.》

골짜기는 차츰 어둠에 잠기나 멀리 보이는 강줄기는 아직 어스름에 빛나며 그우에 안개가 천천히 내리였다. 미묘한 색조로 변화하는 원경은 그대로 그림이였다.

《저 강녘으로 자갈주러 가던 일 생각나?》

상춘과 채남이 어릴 때의 기억들이였다.

《어렴풋해요.》

《경태아저씰 찾아갔었지.》

하자영교수가 일제말기에 장자울로 소개해와서 살던 때 일이였다. 상춘의 나이 예닐곱, 채남은 대여섯 철없는 소년, 소녀들이였다. 경태는 부역으로 강에 자갈을 모으러 다녔다. 강에는 곱게 생긴 자갈이 얼마든지 있다는 동화같은 이야기였다.

어린 채남은 그것이 갖고싶었다. 서울서 내려온 소녀의 시골아이들과 다른 섬세한 취미였다. 상춘은 채남의 그 귀여운 욕망을 채워주고싶었다. 그들은 부모들 몰래 경태를 따라 강에 갔다. 봄이였다. 강에는 고운 돌이 정말 얼마든지 깔렸다. 소년, 소녀는 강변에서 돌도 줏고 얕은 물에서 강조개도 건지며 마냥 놀았으나 해는 아직도 높은데 배도 고프고 집에 별안간 오고싶었다. 더우기 채남이 갑자기 무서운 마음이 생겨서 울었다. 상춘은 제법 어른이 되여 채남을 데리고 그들끼리 집이 어딘지 방향도 모르고 강변을 떠났다.

경태는 두 어린아이만 보내기가 안심찮았던지 아직 일도 끝나지 않았는데 감독의 눈을 피해 빠져나오다가 그만 들키고말았다.

감독은 아이들 보는 앞에서 경태의 이 뺨, 저 뺨 때리고 발길로 찼다. 그는 한마디 항변도 없이 맞기만 했다. 채남이 발을 동동거리며 울었다.

채남은 어렴풋이 그것을 기억하고있었다.

《우리들때문에 그 아저씨가 혼났었어.》

《어쩌면 난 그걸 까맣게 잊고있을가. 상춘씬 기억력이 좋아요.》

《채남과 관계되는건 이상스레 머리에 남아있군. 어쩌면 그 기억들을 키워왔는지도 모르고…》

채남은 자라목으로 움츠리고 몸을 바르르 떨었다. 행복감에 겨웠던것이다. 그러면서도 말로는 딴전을 부렸다.

《그 아저씨헌테 미안했어요.》

《상한 다리가 잘 나얄텐데.》

산정에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소쩍새가 이번에는 쌍으로 울었다.

마을로 향한 도로쪽에 웬 자동차불빛이 공중을 휘저으며 들어가는것을 보고 그들은 일어나 어둡고 험한 비탈길을 내려왔다. 발에 밟히는 돌들이 자꾸 굴러서 채남은 자주 상춘의 손을 잡기도 하고 때로는 아주 그에게 몸이 실리기도 했다. 그에게서는 인동꽃같은 싱그러운 기운이 풍기였다.

마을에 들어간 그들은 경태네 집으로 먼저 갔다. 마당에는 어둠속에서도 알아볼수 있는 자동차가 한대 놓여있었다. 뒤신호등이 빨갛게 반짝이고 차체에는 별빛이 번들거렸다. 그들이 산정에서 본 자동차불빛이 그 집으로 찾아온 모양이다.

말등바위댁이 떠드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렸다.

《자넨 속도 없네. 그놈이 자네넬 위해 자동차까지 보내 앓는 사람 모시러 왔겠군. 어서 그만두라고 하게.》

《그래도 당장 병신이 된다니까 이래도저래도 못하고 답답치 않아요?》

경태 처의 난처해하는 목소리였다.

《팔자에 없는 자동차타고 병원에 간다고 병신될 사람이 병신 안되겠나.》

말등바위댁은 역설로 나오고있었다.

《병원에만 가면 고칠수 있습니다.》

어떤 점잖은 목소리가 들리는 그편에서 담배불이 빨갛게 한점으로 보였다. 상춘은 무슨 일인지 짐작이 가지 않아서 선뜻 들어서기가 서먹했다.

《저렇게 병원에만 가면 낫는다는데 가서 고치고 볼일이지. 병신돼가지고서 자식새끼들서껀 어떻게 살자고…》

경태 처의 울가망이 되는 푸념이 집안에 가득찬다.

그의 말에는 말등바위댁도 대꾸를 못하고있는데 경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절뚝발이가 돼도 너를 살려먹일테니 걱정말아.》

《이 사람 다 쓸데없는 소리야.》

장남술이 훈계조로 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옥분 어머니 말대로 고치고 볼일이지. 그 량반도 인젠 옛날과 달라. 남의 호의도 알아줘야지. 그와 척이 져서 우리 마을이 리로울게 뭔가? 난 알다가도 모르겠네. 사람이란 감길 땐 감기고 휠 땐 휘야지. 그렇잖음 끊어지고 꺾어지는 법이야. 상춘인가 그애 말이 그럴듯은 하지. 그러나 한번 다녀가면 그는 나그네야. 자넨 자네 안속을 차리게. 오늘 나온 사람들도 그분이 아니였덤… 두달 구류할걸 나왔다네. 그런걸 알고 말을 해야지. 까놓고 말하면 자네한테도 인심쓰자는거네. 자네 그 인심 받아서 해로울것 있나? 별생각 말고 어서 타고 가세. 병원가서 푹신한 자리에 누워 다리 고치고 나오면 그래 자네 손해겠나? 나원!》

상춘은 자동차가 거기까지 온 까닭을 알게 되였다.

권세환이 보낸것이다. 경태를 입원시켜 사람들의 인심을 얻어보자는 수작이였다. 장자울사람들이 그의 속심을 꿰뚫어봐도 좋다. 그의 선거구가 장자울뿐이 아니다. K군전체에 선전할 좋은 자료로는 된다. 당장 환자가 병원에 와있는데야 약간의 비방이 있은들 상관이 있으랴. 의사를 보내서 입원하지 않으면 병신이 된다고 엄포를 놓아 강제로라도 데리고 오도록 그의 심복 장남술을 안동시켜 보낸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족히 있음직한 일이였다. 서울서도 생전에 빈민굴에는 와보지도 못한 립후보들이 선거때만은 그곳에 나타나(어떤자는 일부러 로동복에 로동화까지 신고) 하나하나 호별방문을 하며 그들 눈에는 사람으로도 보이지 않는 람루를 걸친 부녀자들에게까지 허리를 깊이 꺾어 《부탁합니다.》 하고 절을 하는 진풍경을 얼마든지 본다. 그것에 비하면 권세환의 수법은 근대적이라고도 할수 있다.

장남술의 이야기는 솔직해서 좋기도 하고-

상춘은 헛기침을 하여 인기척을 내고 천천히 봉당앞으로 들어섰다. 말등바위댁이 대번에 그를 알아보고 손벽을 한번 치며 내달아 나왔다.

《상춘아, 이것 좀 봐라. 권세환이가 별안간 부처님이 돼서 이 집 대주를 굽어살피신다는구나. 이렇게 고마울데가 어디 있니? 자동차로 모시러왔다. 여긴 의사선생님도 오시고 여긴 파발군도 오시고…》

그는 의사와 장남술을 하나하나 끌어다가 상춘에게 대면시킬듯 설치였으나 의사와 장남술이 소매를 뿌리치는것이 어둠속에서도 알리였다. 말등바위댁은 그렇게 법석을 떨다가 상춘의 뒤에 희미한 그림자로 붙어서있는 채남을 보고 《누가 왔니?》 하고 상춘에게 물었다.

《채남이 왔습니다.》

《채남이가?》

말등바위댁도 채남이 누구인가를 알고있었다.

《이걸 어쩌나, 난 그런줄도 모르고 떠들었댔구나. 어서 와요.》

채남의 손을 더듬어 이끌었다.

경태도 반겨 놀랐고 그의 처도 어쩔줄을 몰랐다.

《불을 좀 밝히지 못할가?》

경태는 뛰여나가지 못하는 자기에게 화를 내듯 애꿎은 안해에게만 소리를 친다.

경태 처가 등잔불을 바람에 꺼지지 않도록 손으로 가리며 높이 치켜들었으나 도리여 그림자만 길게 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채남의 목소리는 그 수선들에 눌리워 겨우 들릴락말락했다.

《채남이가 우리 집엘 다 이렇게…》

《아저씨, 그런 말씀하시면 제가 부끄러워요. 지금도 저기 오다가 옛날에 아저씨따라 강에 갔던 얘길 하고 왔는데요.》

《강에 갔던 얘길? 내가 십장놈헌테 맞던 얘기?》

《아저씨두 뭐 하필 그런 얘길 했겠어요.》

《하면 대순가. 그땐 내가 맞기만 했지만 사람이 그렇게만 살아선 안되겠기에 인젠 맞서도 보려니까 다리도 이렇군. 그래도 맞구서 분한것보담 덤비다가 이렇게 된게…》

의사와 장남술은 그사이 자동차가 있는데로 물러가있다가 장남술이 다시 들어와서 물었다.

《경태, 그래 갈텐가 안 갈텐가?》

그는 말테면 말라고 이제는 배부른 흥정으로 뻣뻣이 나왔다.

《상춘이.》

경태가 자동차가 온 까닭을 설명하려들었다.

《밖에서 들었습니다. 가고 안 가는건 아저씨 마음대로시죠.》

《내야 갈 생각 아예 없네만 저 녀편네가 나 병신될가봐 저러는통에…》

경태는 봉당에 쭈그리고 앉아서 들기름등잔에 쌍심지를 하려고 솜을 비비고있는 처를 턱으로 가리켰다.

《인젠 나도 모르겠소. 이녁 맘대로 하우.》

《내 맘대로라. 여보 장주사, 인젠 나도 내 맘대로 살아보겠소. 권세환이 입원시켜주는 병원엔 안 갈라오.》

장남술은 혀를 차며 나갔다. 자동차 발동걸리는 소리가 밖에서 들리고 조금후에는 동구밖으로 그 소리가 멀리 사라졌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있던 경태는 감개무량한듯 중얼거렸다.

《우리 집에 자동차가 다 올 날이 있네그려.》

《자동차 반갑잖소.》

경태 처가 시름에 잠기며 남편을 타박했다.

《정월에 걔들 잔치때도 미군자동차가 마당에 들이닥치더니 그 야단이 났잖았소?》

《나도 반가와서 하는 소리가 아냐. 권세환이가 죽지가 부러졌단 소리지.》

채남은 경태의 상처를 보았다. 암만해도 쇄골이 된것 같았다. 래일이라도 읍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사진을 찍어봐야 할가, 아니면 아주 서울로 데리고 갈가. 의논을 하고있을 때 동일의 아버지 영환이 왔다.

《나 좀 보세.》

상춘을 밖으로 불렀다.

집모퉁이를 지나 터밭머리에 가서 영환은 쭈그리고 앉고 상춘은 섰다.

《우리 그놈이 그 집에서 나온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자네 아나?》

조금전에 채남이 왔다는 말을 듣고 왔던 어머니도 뒤미처 그들을 따라 나왔다.

《글쎄 우리 동일이가 그 집에서 나온다고 합니다그려.》

《저도 그런 말은 들었습니다.》

동일이 가끔 버릇처럼 입으로 하던 말을 그날 집에 와서 한 모양이였다.

《자네도 들었나?》

《녜.》

《그래 자네 생각은 어떤가?》

《…》

《우린 인젠 망했네. 우린 인젠 굶어죽게 되네.》

영환의 목소리는 금방 잠기여가며 갈렸다.

《집에선 고생을 해도 저 하나만 그 집에서 얻어먹으며 대학이나 마치면 된다고 믿는데 그놈이 저래니 무슨노릇인지 모르겠네. 아주머니, 정말 좀 들어보세요. 우리 집 엿마지기 논이란것도 그 집건데 말로만 준다고 하고 영 땅문서는 옮겨주질 않습니다.》

《농지개혁》때에 영환의 이름으로 돌려놓은 엿마지기 땅이다. 그후 상환곡이며 무슨 형식으로 소출을 바쳐왔으나 이다음 보자고 명의는 바꾸어주지 않는다. 영환은 한탄을 하다가 한숨을 내뿜고 상춘의 손을 잡을듯 앉은걸음으로 바싹 다가온다.

《상춘이, 자네 날 살려주는셈 치고 그놈을 서울로 데려가주게. 아주머니, 그렇지 않습니까. 저도 집사정을 모르지 않으련만 무슨 생각이 있어 저러는지 걱정입니다. 아주머니께서 지금이라도 우리 집에 가셔서 그놈을 좀 타일러주세요. 내나 저 어미 말보다 아주머니 말이램 들을겁니다. 난 이때껏 저한테 빌다싶이 했는데도 무가냅니다.》

어머니나 상춘은 그의 심정은 알수 있었으나 무엇이라고 그에게 말할지를 몰라 입을 열지 못했다.

《상춘이, 아주머니!》

그는 와서 상춘의 무릎을 안았다. 그리고 어머니의 손을 더듬어 잡았다.

그때 동일이 그곳으로 와서 그들뒤에 우뚝 섰다.

《아버진 뭘 또 이러세요?》

영환은 상춘의 무릎을 놓고 물러앉으며 아들에게 애원했다.

《넌 제발 이러지 말아. 어서 들어가 자기나 해라. 상춘이도 지금 네가 잘못이라고 한다. 아주머니도 그러시고… 아주머니, 그렇습죠?》

영환은 상춘과 어머니를 바로 앞에 앉혀놓고 사뭇 거짓말을 하는것이나 어머니는 그것을 탓할 마음은 없었다. 리해되는 일이였다.

그로서는 목숨에 관한 문제였다.

《상춘이도 내 괴로운 속은 몰라요. 아버지도 동네사람들이 모두 그를 원망하고 욕할 때 얼굴을 못 든다고 하셨죠? 난 더해요. 뭣때문에 아버진 동네서, 난 그 집에서 얼굴을 땅에 처박고 주눅이 들어서 살아요. 난 싫어요. 어머니나 아버지가 그 집에 와서 거지쫓기듯 괄세를 받고 오는날 난 그 집 밥이 가시가 돼서 목구멍을 찌르는걸 아시기나 해요? 그런날 나는 몇번이나 상춘 어머니헌테 가서 주시는 밥을 먹었는지 몰라요.》

《이놈아, 말말아. 그까짓 맘고생은 배고픈 설음에 대면 약과다. 네가 그 집에서 나와 너도 굶게 되고 집에서도 배곯아봐라. 그 설음이 진짜 설음이야. 동네사람들도 그렇다. 네 5촌을 욕은 하지만 속으론 딴맘들야. 그 팔자를 부러워도 하고 그 세도와 돈에 설설긴다. 벌써 이번 선건가 뭔가 한다면서 돈을 얼마나 뿌렸는지 네가 아니? 모두 막걸리에 코를 꿰였어.》

장남술이 이미 보름전부터 동네사람들을 청해놓고 베푸는 막걸리잔치를 두고 하는 말이였다.

영환은 이번에는 상춘을 보고 말했다.

《학생들이 듣자니까 그 사람(권세환)선걸 반대하러 온다니 그런가?》

학생계몽대의 소식은 K군에도 널리 퍼지였다.

《선거에 매수되지 말라는거죠.》

《자네들은 모르는 소릴세. 그는 돈이 있어. 요새 읍에 나가보게. 왼통 그 사람판이여. 아주머니, 정말 그렇습니다.》

그는 세상물정은 아무래로 늙은 사람이라야 안다고 생각하는지 어머니에게 호소했다.

《아주머니, 제발 이애를 타일러주세요.》

어머니는 더 무언을 지킬수는 없었다.

《동일 아버지.》

《녜.》

《난 자식이 옳다고 하면 저 갈데로 가라고 내버려두는 사람예요. 동일이 어른같이 그러다간 자식을 못쓰게 만들어요.》

《저도 그렇게는 알지만 그놈의 땅때문에 이러지 않습니까. 땅문서만 해가졌어도 내가 이러진 않겠어요.》

《땅문설 해줄 사람 같으면 지금껏 안해줬겠나요?》

《누가 아니랩니까? 생각하면 그놈도 도적같은 놈이지만 어쩝니까. 참아야죠. 동일아, 제발 너한테 빈다. 그 땅문서를 우리 집 명의로 고쳐받을 동안만이라도 참고 견뎌라. 상춘이, 아주머니, 제발 이놈에게 알아듣도록 말씀해주세요.》

영환은 그렇게 같은 말을 몇번이고 되풀이하다가 어머니나 상춘이에게서 아무 말을 들을수 없자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고 중얼거렸다.

《땅없인 못산다. 미국놈들한테 땅뺏기고 고생하는 사람들을 너들 눈으로 한번 봐라.》

영환의 《권고》는 아니지만 상춘은 어머니의 건강회복을 기다려 며칠동안을 미군철조망밑에 있는 문제의 그곳, 경태네 논에 가서 일도 해보았다. 열세살때까지 고향에서 어머니를 도와 농사일도 해보았지만 오래간만에 농민들의 고역을 몸으로 체험할수 있었다. 육체적으로 고단하다거나 불리한 기후(가물)와의 싸움으로 고생한다는 뜻이 아니다. 미군의 행패를 받아가며 농사를 짓지 않으면 안되는 사정과 거기서 오는 공포감이 못 견딜노릇이였다. 마치 이 땅의 농민들이 미국본토에 숨어들어가서 《략탈농업》에라도 종사하는듯 한 긴장과 피로가 동반하는 농사, 그것은 농사가 아니라 민족의 굴욕이며 수명의 단축이였다.

《여기가 뉘 땅이냐?》

상춘은 자주 그런 질문을 스스로 되풀이해보았다. 처음에는 철조망안의 울창한 숲과 무성한 《초원지대》 그대로의 10년 묵은 논밭과 대조적으로 철조망밖의 벌거벗은 산들, 산세와 지형은 옛날 그대로건만 거기서 벌어지는 사태들은 사뭇 같지 않아 계속 어느 이방에 온듯 한 착각에 괴로왔다.

《여기가 뉘 땅입니까? 아버지!》

그는 어머니가 봉변을 당한 아버지의 산소를 마을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사초를 하던 날도 지하에 누워있는 아버지에게 그렇게 물어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미군이 총신을 해빛에 번쩍거리며 이쪽을 보고는 있었으나 오지는 않았다. 아마도 농민들의 저수지습격이 있은 다음 미군부대에서는 당분간 폭행을 《완화》시킨 모양이였다.

 

상춘이 떠나려 하는 날 아침, 그가 까맣게 잊고있던 형의 책을 어머니는 잊지 않고있었다. 여러가지 사건들때문에 그것은 상춘의 관심밖으로 밀려났던것이다.

면서기의 젊은 안해의 량해를 얻어 백도라지옆을 어머니가 가리켜주는대로 상춘은 호미로 팠다.

진리를 파내는 기분이였다. 4. 19후에 상춘이 느끼는 모든 불합리한 현상의 본질을 파헤치고 진로를 제시하는 열쇠가 그속에 있기나 하듯 흙을 팠다. 넙적한 돌이 나오고 그밑에 또 돌로 네모나게 함을 짰다. 정성을 들여서 만든 솜씨가 호미자루를 통해 전류같이 몸에 전해진다.

《네 형수가 이렇게 했다.》

형이 와서 이것을 팠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며 상춘은 호미를 놓았다. 돌함에는 흙이 가득찼다. 오랜 세월에 돌틈으로 흙이 새여들어간 모양이다.

어머니가 손으로 흙을 파내고 보자기를 꺼냈다. 어머니의 손은 가늘게 떨렸다. 보자기에는 곰팡이가 파랗게 함빡 덮였으며 강한 해빛을 받자 곱던 빛은 삽시간에 거무틱틱한 색으로 변해갔다. 어머니는 보자기를 끌렀다. 십여권의 책이 나왔다. 어머니는 책을 펴보는것은 너의 소관이라는듯이 상춘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상춘도 웬 일인지 얼른 손이 가지 않았다.

큰아들을 생각하며 작은아들이 그 책에서 많은것을 배우라고 기도라도 드리는듯이 앉아있는 어머니의 긴장한 모습에 상춘은 몸이 굳어지는것이였다.

《펴봐라.》

상춘은 책을 들었다. 젖어있었다. 습기가 심했던것이다. 책장을 넘기였다. 활자가 모두 판독하기가 어려웠다. 기대가 몸에서 쭈욱 빠져나가는것을 느꼈다. 기대가 컸던만큼 실망도 컸다.

《볼만 하냐?》

상춘은 다른 책을 또 펴보았다. 마찬가지로 활자들은 범벅이 되였다.

《알아보겠니?》

어머니는 대답을 재촉했다.

《해빛에 말려보면 어떨지, 지금은…》

어머니는 한숨을 쉬였다.

《10년이 적으냐?》

《…》

《조금도 못 알아보겠니?》

《괜찮아요. 책으로만 배우려던걸 여기 며칠 와있는 동안에 많이 알았어요. 학생들이 뭘 해야 되는지도 알았고요.》

상춘은 정말 많이 알았다. 그가 직접 겪은 일도 일이려니와 여름곡식수매로 농촌에 대한 수탈이 얼마나 심한가도 보았다. 미국비료의 피해가 어떤가도 들었다. 미국의 잉여농산물이 남조선의 농업을 얼마나 파멸에로 이끄는가도 실지로 보았다. 옛날에 마을에서 목화적재지로 이름났던 밭들에 지금은 한포기의 목화도 볼수 없다.

《눈으로 보느니밖에 더 있니. 모두 고생들 한다. 네가 고향을 위해 뭔가 할수만 있다면 나도 이렇게 다녀가는 걸음이 가볍겠다.》

상춘은 소용에 닿지 않는 책이지만 한권한권 해빛에 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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