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새로운 성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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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책을 가지고 오기만 기다리던 상춘은 뜻밖의 전보를 받고 무슨 일인지도 모르는채 급히 고향으로 왔다. 어머니가 본 고향도 많이 변했지만 상춘의 눈에도 그것은 사뭇 달라져보였다.

정거장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오는, 전에 달구지길이였던 도로는 넓게 확장되여 아스팔트로 포장되고 그 좌우에는 허술한 림시건물들이 늘어섰으며 양복점, 구두방, 양장점, 사진관, 다방, 려관, 성병진료소, 결혼상담소, 약방, 당구장, 술집, 음식점 따위 간판이 영어로 붙어 서로 비비대고있었다.

미군부대쪽으로 뻗은 길이였다. 그곳은 읍과도 또 다른 지대, 《한국》의 이방지대라는 곳, 상춘이 그곳을 지날 때에는 낮이여서 모두 느른해보였지만 그래도 그앞에는 괴상한 차림의 남녀들이 서성거리였고 백인, 흑인, 황인의 미군들이 꺼덕거리고 다녔으며 야하게 차린 녀자들이 끌신을 끌고 나돌았다.

상춘은 얼른 그곳을 빠져 고개를 하나 넘어 아스팔트길을 버리고 고향으로 들어가는 촌길로 들어섰다.

어머니 마찬가지로 그도 오래간만에 보는 고향이였다. 그의 머리속에 박힌 열두살때 떠난 고향의 표상은 뒤산의 푸른 숲이였다.

거기서 여름이면 산딸기, 가을에는 머루, 다래 같은 산과실과 열매를 따먹었다. 매새끼를 잡으려 벼랑의 높은 바위들도 올라다녔다.

고향의 표상은 그런 기억으로 정착되여왔다.

그러나 그가 마을에 도착해 보는 뒤산은 가난한 《한국》을 그대로 상징해주었다. 누구의 눈에나 먼저 강렬하게 들어오는 나무 한그루 없는 붉은 산과 미군기지의 울창한 숲, 너무나 대조적이였다.

그대신 도로는 포장까지 되여있었다. 영어로 된 리정표와 지명표시, 군데군데 《한국》사람의 출입을 막는 표식, 어느것이나 정말 이방에 오는듯 한 낯선 풍경이였다.

마을중심에 있는 느티나무만은 전과 다름이 없었다. 어릴 때 상춘은 그 나무에 자주 올라갔었다. 그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산너머 먼 신작로가 보인다. 그 신작로에는 소년의 꿈이 달려가고있었다. 자동차가 거부기 기여가듯 보이는것도 재미있었다. 어머니는 그밑에서 내려오라고 애원하듯 상춘을 쳐다보며 달래기도 하고 엄포도 놓았다. 상춘은 그럴 때마다 굳이 더 올라가서 휘청거리는 가지에 붙어 먼 신작로와 애원하는 어머니를 번갈아 내려다보며-

그러한 철없던 소년시절의 추억을 지닌 느티나무에는 벌써 권세환의 이름을 굵게 쓴 현수막이 걸려있다. 권세환의 《국회》의원출마를 소문으로 듣기는 했지만 민족반역자들의 출마가 그뿐만의 현상도 아니여서 별로 개의하지도 않았더니 고향에 들어서는 첫걸음에 그것을 보자 거기서도 배반당한 4. 19를 더욱 느끼게 되였다.

상춘은 경태네 집부터 먼저 가보았다. 그는 거기서 자기를 급히 부른 까닭을 듣고 놀랐다. 그렇게 련행된 어머니말고도 저수지사건으로 세명이나 마을에서 끌려갔다. 태정을 잡으러 왔다가 몸을 피하고 없자 대신 그의 아버지 홍락원을 끌어갔다. 경태는 부상때문에 체포를 면하고 집에 누워있다. 절구통같이 부은 다리에 무슨 상약을 발라서 헝겊으로 칭칭 동이고있었다.

아들이 찾는 진리를 위하여 책을 가지러 왔다가 미군에게 잡혀간 어머니, 상춘은 그렇게 감상적으로 생각해보았으나 본질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

철조망을 《국경》같이 늘어놓고 사는 마을-미군기지밑에 있는 농촌은 남조선현실의 축소판이라 할수 있다.

어머니의 체포도 바로 그 결절점에서 빚어지는 하나의 사건이였으며 결코 책을 가지러 왔다가 우연히 당한 우발적인 사건은 아니였다.

상춘은 경태의 상처를 보았다. 동여맨 깨끗치 못한 헝겊오래기를 풀었다. 시꺼멓게 피마주기름칠을 해놓았다.

《곪지 않는대서…》

그러나 더운 날에 상처는 벌써 화농하고있었다. 여기저기를 꾹꾹 눌러보는 상춘은 농촌의 문화수준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는 오랜 병원생활에서 외과의사들의 하는양을 보아서 얼추 짐작하는게 있었다.

쇄골인것 같았다.

《병신은 안될지 모르지.》

《병신은 왜요?》

상춘은 속으로는 념려를 하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병신은 돼도 물은 터놨네. 물은 막 소리를 치고 보도랑으로 쏟아졌네. 덕분에 논은 살렸어.》

경태는 자랑스러운 모양이였다.

《농사군이 곡식타는걸 보면 어떤지 아나? 어느 자식 죽는게 그렇게 애가 마르겠나. 속에서 바직바직 소리가 나네. 사실 우린 자네들 4. 19덕분에 뭐가 조금 달라지길 바랐네. 아무런 기별도 없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우리가 밤에 나섰네.》

《죄송합니다, 아저씨.》

《아냐, 자네보고 하는 소리가 아닐세. 세상이 그렇단 말이지. 권세환인 또 립후보했다네. 그놈이 요새 또 서울서 내려와 촌으로 다니면서 막걸리사발이나 퍼먹이네. 읍에선 그놈 점포에서 물건을 거저 주는듯이나 나발을 분다네. 그놈헌테도 사정을 해봤어. 선거만 끝나고 새 <정부>가 서면 만사가 다 제대로 된다던가. 미친놈, 그동안 벼 타죽는건 어쩌고. 생각다못해 철조망을 넘어 들어갔지. 내 다린 이렇게 됐어도 논은 살렸어. 농사군이란 제 오금을 써야 먹을게 생기기마련인걸, 괜히… 그런데 자네 어머니말일세. 죄송해서 할 말 없네. 저수지를 그렇게 해서 그놈들이 잔뜩 앙심을 품은 판에 그걸 모르시고 산소엘 가셨거던. 여기 사정을 잘 몰라 그래셨지. 내가 잘못이였네. 한번도 산소를 봐드리지 못했네. 용서하게.》

《그렇게 생각해주시는것만도…》

《생각이 무슨 소용있나. 그건 그렇고 어떻게 하면 좋겠나? 나부터도 못나서 그렇지만 미군이 끌고 갈 때 그뒤를 사람들이 따라가면서도 가만 뒀더라네. 어떻게 하든지 못 모셔가도록 하잖고… 에잇, 이놈의 다리가…》

《지금이라도 제가 미군부대에 가보겠습니다.》

《지금?》

《녜.》

《이렇게 늦은데.》

해는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뻐꾹새 우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그는 늦게 미군부대에 가서 어떻게 할 자신은 없었으나 어머니가 그렇게 된 이상 그밤을 마을에서 그대로 지낼수는 없었다. 부대에 가서 형편이라도 보고 래일의 행동을 생각해도 해야 될 일이였다. 산을 넘어 미군부대쪽으로 가는 지름길로 갔다. 《차돌박이》라는 전에 어머니가 먼산으로 산나물을 뜯으러 갔다가 늦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상백, 상란, 상춘 세 남매가 거기 와서 어머니를 기다리던 고개에 올라서자 미군부대가 환히 내려다보였다.

얼마를 가자 미군보초막이 얼른거렸다. 상춘이 암만 사정을 해도 보초는 무가내로 통과를 시키지 않았다. 낮에는 몰라도 저녁때부터는 절대로 조선사람을 들이지 않는다고 했다.

상춘은 하는수없이 읍으로 되돌아섰다. 읍에는 권세환의 립후보간판이 여기저기 보이고 환평상회에서는 경태가 말한대로 나팔을 불어대며 권세환의 립후보기념할인판매의 유혹으로 사람들을 모으고있었다.

상춘은 약국에 들려서 경태의 부상에 바를 약만 몇가지 사고 채남에게 급히 와달라는 편지를 띄운 다음 밤에 장자울로 돌아왔다. 경태네 집에는 마을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상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였다. 어머니가 온 밤에도 그렇게 모였었지만 그때는 오래간만에 만나는 어머니에 대한 인사들이였고 오늘은 미군에 끌려간 어머니에 대한 걱정겸 상춘에게서 무엇인가 새로운 소식을 듣자는 마음들이였다.

마당에는 모기불이 피여올라 쑥내가 가득차고 연기가 감돌았다.

그들은 상춘이 경태의 상처를 약풀로 씻어내고 마키롬을 칠한 후 페니실린고약을 발라 붕대로 감아주는 동안만 조용히 등잔불을 밝혀주고있었다. 그것이 끝나자 간신히 참았다는듯이 일시에 여러 입이 어머니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말투나 표정은 각인각양으로 모두 달랐으나 그 내용은 한결같이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존경들이였으며 미군에 대한 원한이였다. 상춘이 고마울뿐 그들앞에 무엇을 말할지 모를 때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서며 길을 내는 가운데로 한 로인이 소녀의 손에 이끌리여 더듬거리며 들어왔다.

마을의 좌상 재명로인이였다. 그는 실명해서 앞을 못 보고 지팽이로 더듬거린다.

《상춘이가 왔단 말을 듣고 이걸 몇번 보내봤더니…》

로인은 말을 끊고 숨을 돌렸다.

《어딜 또 갔다고 하길래 밝은 날에나 만나볼가 하는데 이게 또 와서…》

한손은 손녀에게, 한손은 말등바위댁에게 맡긴채 사면을 두리번거렸다.

《상춘이가 어디 있니. 손 좀 잡아보자.》

상춘의 손을 잡은 로인은 도무지 체중을 느낄수 없을만치 갑삭했으나 그 손아귀힘만은 놀랄만큼 강하며 그가 호소하려는 마음은 말보다 먼저 상춘의 심장을 때렸다.

《네가 분명 오원필의 아들이렷다. 너 아버진 옛날 나와 친구였다. 나는 무식한 상일군, 너 아버진 모르는게 없는 사람이였지만 그래도 친구였다. 너 아버진 아는게 많았어. 독립군얘기도 잘했고 김일장군님 축지법도 너 아버지헌테 들었고… 지금도 그 얘기들이 눈에 훤하다.》

그의 아들도 6. 25때 경찰놈들에게 학살되였다. 놈들은 그 시체를 지금 철조망안 미군의 뽀트장으로 되여있는 당시 저수지에 처넣었다. 가을의 궂은비가 내리던 날 저녁때였다. 로인은 궂은비 내리는 날이면, 더우기 가을의 그런 날이면 저수지 바로 그 현장에 가서 비를 맞으며 물속에 그림자를 잠그고 온종일 앉아있기도 했다.

비가 오면 그가 가는지, 그가 가면 비가 오는지- 마을에서는 비를 가리켜 그가 가면 물속의 아들이 원통하게 우는 눈물이라고도 전설같은 말이 퍼지기도 했었다. 세상과 등을 진 사람같이 일체 입을 봉한 그는 한때 마을에서 기인취급을 받더니 몇해전부터 차츰 시력을 잃으며 지금은 아주 앞을 보지 못한다.

《상춘아!》

그는 상춘의 얼굴을 손으로 더듬었다.

《난 꼭 한가지만 묻겠다. 그걸 대답해다오.》

《…》

《언제 미국놈이 우리 땅에서 나가니?》

구새통을 겨우 울리는것 같은 그의 메마른 목소리가 마당을 가득 채운다.

《…》

《왜 대답이 없나?》

그의 손은 상춘의 입언저리를 더듬어본다.

《내 눈이 그놈들 나가는걸 보는 날이면 떠질거다. 재작년에 그놈들이 나간다고 이게 일러줄 때는 내 눈이 훤해지더니 아직도 남아있어서 그런지 다시 앞은 캄캄절벽이다. 상춘아, 그것만 일러다오. 나도 심봉사 눈뜨듯 한번 밝은 세상을 보고 죽자.》

《할아버지, 오래잖아 미군놈들이 나갑니다.》

상춘은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오래잖아?》

《녜.》

《멀지 않고 오래잖아?》

《녜.》

《필녀야, 너 잘 알아둬라.》

로인은 손녀의 손을 흔들며 다짐을 해두었다.

《상춘아, 고맙다. 사람이 기약없이 기다리기란 못할 일이지만 기약만 있은 다음에야 십년인들 못 기다리겠나. 세월은 빠른거다. 고맙다. 오래잖아… 필녀야, 가자.》

로인이 간 다음에는 한참동안은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상춘은 그날 밤 잠들지 못했다. 덤벼드는 모기때문이 아니였다.

흥분했다. 놀랍고 원통한 일들뿐이였다. 어머니의 구금과 로인의 호소는 분하고 원통했으며 경태의 저수지습격은 그럴듯한 일이였다. 그에게 그러한 용기가 어떻게 있었을가. 그중에서도 미군부대로 잡혀간 농민들과 어머니의 석방을 요구해 래일 시위를 하겠다고 입을 모아 의논하던 마을사람들은 지금까지 농민들에게 품어오던 그의 견해를 근본적으로 뒤집어엎는 사건이였다.

농민문제를 두고 그들이 일어나느냐 아니냐 할 때 준호는 일어난다 했고 상춘은 그것을 의심했다. 론쟁자체로 승부를 가릴 문제가 아니고 실제 농민들의 행동여하로 립증될 성질인것만큼 그들의 론쟁은 중단되고말았지만 군용지습격으로 보나 그날 밤 마을의 분위기로 보나 상춘은 농민들을 잘못 보아온것이다. 준호의 말대로 얕은 인정만을 보고 깊은 인간성을 몰랐단 말인가. 세계관탓일가? 사회발전사는 투쟁의 력사라는것을 상춘도 모르지 않는다. 사회가 발전을 멈추지 않기 위해서는 부단히 투쟁해야 되며 지금까지도 투쟁해왔다. 농민들도 사회의 성원인만치 례외로는 될수 없으나 현시점에서 그들은 지치고 무력하다고 상춘은 보았었다.

4. 19에서 승리한 자신들의 힘을 과신하는데서 오는 우월감이 학생이외의 힘을 과소평가한것인가.

상춘은 준호와의 론쟁에서 지고말았다. 론쟁에서 진다는것은 그만큼 자기의 잘못된 견해나 립장을 바로잡고 상대방에게서 배워 진리를 탐구하는 견지에서는 유익한 일이나 역시 론쟁에서 패했을 때에 맛보는 렬등감은 따르기마련이다. 그러나 상춘에게는 그런 씁쓸한 기분은 일체 없고 기쁘기만 했다. 준호가 옳았구나. 그와 지금 한자리에 있지 않는것이 한스러웠다. 농민들은 일어났다.

흥분으로 잠들수가 없었다. 얼른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새벽녘이 되여 무덥던 기온도 떨어지고 모기도 없어지면서 잠이 들었을 때 밖에서는 벌써 말등바위댁이 떠들고 다녔다. 시위에 나서라는 웨침이였다. 상춘도 도랑에 나가 세면을 했다.

새별이 빛을 잃어가는 아래로 시꺼멓고 우람하게만 보이던 동쪽산맥이 차츰 그 형태를 드러내며 허공에 날카로운 선을 긋고 달리자 회색의 흰빛으로, 엷은 자주로, 담홍, 선홍 시시각각 색채를 변해가며 하늘이 찬란하게 밝아온다. 상춘이 고향에 있을 때는 어리기도 했거니와 밝아오는 하늘이 그토록 변화에 풍부하며 장엄하고도 찬란한줄은 몰랐었다. 바야흐로 밝아오는 고향을 보는듯 했다. 선홍으로 하늘이 물들자 천지가 온통 붉은빛이다. 세면을 하는 도랑에도 그 빛은 어리였다.

상춘이 황홀해있을 때 뒤에 태정이 나타났다. 어제 밤에도 피해다니느라고 그는 보이지 않더니.

《놀라운 일야. 우리 마을에서도 데모를 하다니. 역시 네가 온때문이다.》

《난 데모를 하자고는 한마디도 안했는데…》

《안했어도 대학생을 믿는 맘들은 있거던.》

《뭐가 그럴라구. 사실은 나도 놀라고있다만 간밤에 흥분까지 돼서…》

《넌 모른다. 대학생이 얼마나 위신이 있는지…》

상춘은 긍지도 느꼈지만 한편 걱정도 되였다. 상대방이 미군인만치 어떠한 사태가 벌어질지 모르지만 어머니를 위해 하는 시위, 그는 농민들의 선두에 서서 나갈것을 속다짐해보았다.

그러나 시위는 할 필요가 없게 되였다. 선거관계로 K군에 내려와있던 권세환이 농민들의 그 기미를 알고 미군부대로 가서 선수를 썼던것이다.

미군부대에서는 4. 19의 전례도 있어서 되도록 사태를 무마하려들었고 또 어머니가 갇혀서도 계속 단식으로 항의를 하고있어서 석방하려던차에 권세환이 가서 교섭을 했다.

권세환으로서는 어머니를 석방시키는데 목적이 있는것은 물론 아니였고 그러한 일에라도 생색을 내서 4. 19이후 추락된 위신을 되찾아보자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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