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새로운 성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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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호는 형무소에서 많은것을 배워가지고 나왔다. 상춘의 눈에는 적어도 그렇게 보이였다.
형무소는 《대학》이라는 말도 있다. 가령 도적질로 들어간자는 온갖 형의 도적들이 거기 모여있어서 그 방면의 모든 방법과 지혜를 배우는 최고의 곳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것은 감옥제도를 야유하는 하나의 역설이지만 사상범들에게 있어서야말로 그곳은 진실로 《대학》인것이다.
상춘이 보기에 놀랄만큼 준호가 4. 19에 대해서 옳게 평가하는것도 사실은 형무소에서 배운 지식이였다.
4. 19가 혁명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한것은 혁명적령도세력이 없었고 명확한 투쟁강령이 없었으며 따라서 기본군중인 로동자, 농민이 항쟁에 광범히 참가하지 못한 자연발생적인 운동에 그쳤기때문이라고 형무소에서 그는 생각해보았다. 사상범들은 4. 19를 찬양하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러한 약점도 동시에 지적했다. 피는 학생들과 시민들이 흘리고 열매는 다른 친미보수세력이 따먹고있는 사실을 원통하게 보았다. 출옥한 준호도 그러한 눈으로 사회와 학생들을 보았다.
4. 19직후에 학생들사이에 벌어졌던 《학원으로 돌아가자.》, 《농촌계몽을 하자.》, 《신생활운동을 전개하자.》 하던 주장들은 리론적분석과 생활적세례를 받음이 없이 그대로 지속해오다가 여름방학을 앞두고 실천단계로 들어갔다.
때마침 7. 29선거까지 겹쳐서 재경학생회 혹은 일부 대학단위로 지방에 내려가 국민들의 주권의식을 계몽하고 고취한다는 선거계몽운동도 일어나고있었다.
S대학에서는 신생활운동의 하나로 농촌계몽운동을 계획하고있다. 4. 19후에 사회는 달라진것이 없으나 앞으로 달라지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조건에서 《제2공화국》의 민주주의사회에서 농민들의 생활을 개선해보자는 운동이다. 학생들의 눈에는 농민들의 생활이 너무나 비참하기때문에 우물을 위생적으로 개조하자, 부뚜막을 고치자, 생활풍습을 개선하자, 글을 배우자… 한마디로 문명을 하자는것이다. 물론 그 동기와 의욕은 좋으나 사회와 정치에 대한 학생들의 지식의 단순성도 말하는것이였다.
준호는 출옥한 후 계속 4. 19 그날 학생들이 발휘한 용감성과 희생성과 량심, 그런것에 감동한다. 그것은 암만 들어도 다함이 없었다. 무궁무진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기고있다. 착하다고만 보아온 선규가 그렇게까지 영웅적으로…
한편 4. 19가 짓밟히고있다는 사실에 그는 놀라고 분개한다. 그러나 모든 학생들이 이것을 다 파악하고있는것은 아니였다. 그는 4. 19정신이 어쨌건 구현되리라고 믿으면서 이러저러한 운동에 정열을 쏟고있는것이다.
준호는 그래서 생각한다. 량심이 가리키는대로 행동한다 하더라도 옳은 세계관을 가지고 사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투시하지 못할 때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수 없다는것을 모든 학생이 다 아는것은 아니라고 4. 19의 그 높은 정신을 가지고 학생들은 계속 움직이고있으나 뒤에서는 그들의 열매를 횡취할 음모가 꾸며지고있는것을 생각할 때 분노를 금할수가 없었다.
준호는 량심적인 학생들이 옳은 세계관인 김
준호는 상춘과 토론하고 우선 친한 학생들끼리 소조를 하나 만들었다. 민족의 운명을 옳은 길로 이끌고나간다는 의미에서 소조의 명칭을 《라침판》이라고 했다. 아무리 넓고 거칠고 어두운 바다에서도 정확히 방향을 가리키는 바늘.
상춘, 윤도, 허강, 조광래, 채남 그런 학생들이 회원으로 되였다.
학생들 체내에 들끓고있는 정열과 지성을 민족의 운명과 직결해 연소시켜보자는것이다. 4. 19정신을 한계단 높이 발양하자는것이였다. 한편 그러한 학생들이 비단 그들 《라침판》 성원들뿐만은 아니였다. 소조들이 여기저기에 나타났다. 범위를 넓혀서 4. 19의 명칭을 단 무수한 학생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고있다. 심지어 한왕렬조차 저희끼리 무엇인가 만들고있는 눈치가 아닌가. 물론 그가 《HKP》라는 비밀테로단에 가입하고있는줄은 몰랐지만.
만약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면 그 소조들, 단체들, 개인학생들은 모두 이 땅의 별들로 보일것이다. 그중에는 별무리들도 있고 왕별도 있으며 깜빡이는 작은 별도 있어 찬란한 성좌를 이룬다. 때로 류성도 흐른다. 한왕렬은 이미 류성으로 떨어졌고 경상도 어느 모직공장주의 아들 박석근은 흔들거리고있으나 성좌는 의연히 찬란한 밤을 영위해가고있다.
학생들은 지금 그러한 존재들이였다. 4. 19라는 불길천리행군에서 그들은 낡은 옷을 불태워버렸다. 몸의 가장 강인한것만을 남기고있다. 비겁, 타산, 공명심, 허영, 우유부단, 향락, 개인주의 그런것은 불살라버렸다. 용감성, 영웅심, 우정, 희생성, 자유, 민주주의, 통일, 진리, 탐구정신, 사랑, 그런것만을 소유하고있다.
그들은
《라침판》 성원들도 4. 19용사들이 다 그러하듯 모두 씩씩하고 미더운 존재들이다. 상춘은 어머니의 엄격하고 인자한 감화력과 아버지의 가르침, 형의 길을 어김없이 가려는 결심이 신중한 태도로 나타나지만, 선규의 죽음을 잊지 못하는 슬픔이 얼굴에 그늘지여 지금은 침울한 표정을 띠고있다. 친구들앞에 책임지려는 마음과 강한 자부심은 그의 얼굴을 나이보다 조숙해보이게 한다.
준호는 감옥에 가기 전 그 날카롭고 신경질적이던 표정이 겉으로 보기에는 많이 없어지고 너그러운 태도가 일종의 세련을 보인다. 감옥에서의 고생은 그를 다면적인 사고형으로 단련시킨 모양이였다. 직접 4. 19에 참가할수 없었던 조건이 4. 19용사들을 아무리 찬양해도 부족하다고 느껴서인지 윤도의 과격성과 그의 예리성이 대번에 대립되는 경우에 있어서도 그는 너그러운 태도를 보인다.
윤도는 복원에 대한 태도에서처럼 너무 편협한것 같다. 4. 19의 절대주의자, 4. 19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배척한다. 그는 그것을 4. 19의 정신을 끝까지 지켜나갈 바탕으로 착각하고있는것 같다.
《라침판》의 첫 회합을 가졌다. 대학에서 가까운 상춘의 집에 모였다. 앞에서의 비유대로 말한다면 시골의 작은 물이 처음으로 흐르는것이다.
물이여! 장강으로 흘러라. 소리높이 웨치고싶은 첫 회합이였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석유불을 내주었다. 조그마한 불빛은 학생들의 얼굴에 깊은 음영을 던져서 심각한 표정을 만들고있다. 준호가 회의를 집행하기로 되여있으나 그는 좀처럼 말문을 열지 못했다. 일동을 둘러보고만 있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회의도 여러번 해봤지만 그날 밤처럼 민족의 운명이라는 높은 목적을 내세우고 회의를 해보기는 처음이였다. 자기들의 두어깨에 민족의 운명을 스스로 걸머지고나서는 회의라는데서 오는 진지성과 긴장성이 처음부터 조성되였다. 그들은 열길은 키가 더 커진것 같았다.
《시작하세.》
준호는 시계를 보았다.
윤도는 의족이 거북해서 끼우고 앉았던 다리의 의족을 떼여놓고 반듯이 앉았으며 조광래는 귀에서 레시바를 떼여놓았다.
《4. 19는 지금 짓밟히고있다.》
준호는 더 말을 하지 못하고 또 한번 시계를 보았다. 마치 중대한 선언을 하기 위해 시간을 정확히 기억해두자는것 같기도 했다.
《우린 이것을 허용할수 없다. 4. 19이후 달라지고있는것이 무엇이야? 지금 민주당이 움안에서 떡을 받으려는 그것뿐이야. 사회는 여전히 질식상태에 있고 혼탁과 부패는 계속되고있다.》
혼탁해있는 사실을 준호가 렬거하지 않더라도 그들에게는 누데기같은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 실업자들의 홍수, 모순에 충만되고 흑백이 전도된 사회 그런것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미 선규와 희생된 많은 학생들마다 4월 19일 그날 찌프린 하늘에 빛나는 앞날을 그리면서 눈감았지만 우리의 하늘은 아직도 청명하지
못하고 흐려만 있어 가난하고 쪼들린 사람들은 4. 19도 하루의 꿈으로만 알도록 현실은 더 암담해가고만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준호는 공책을 한권 내놓았다. 《라침판》에서 앞으로 쓸 교재의 초고였다. 그는 그것을 만들기 위하여 여러가지 책을 읽고 발취도 하였으며 토론한 일도 있었다.
《
그러니까 이북의 소식을 그렇게도 무서워하고 국민의 입에다 자갈을 물리며 귀에다 못을 치지만 진리는
이북땅을 락원으로 전변시키시면서 우리 민족이 나갈 길을 밝혀주셨다. 4. 19 그날 아침 너들은
준호는 그들뒤에 조용히 앉아있는 어머니에게 머리를 숙여보였다.
《별소릴 다하는구려. 난 맘뿐이고 학생같이 그렇게 말을 할줄 아나? 김
학생들은 준호의 말을 들으면서
《
준호는 공책을 들어보였다.
《지금 국내정세는 복잡하다. 그걸 잘 분석하고 우리의 갈길을 찾아내는것도 이 사상을 잘 연구하는데서만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유감인것은
김
준호는 공책을 학생들앞에 내놓았다. 학생들은 그것의 목차도 훑어보고 혹은 내용도 띠염띠염 읽어보면서 회의를 진행했다.
준호가 지적한대로 국내정세는 복잡하게 조성되여간다. 친미보수세력들은 얼마전에 미국대통령 아이젠하워가 다녀간 다음부터 더 활기를 띠고있다. 아이젠하워가 남조선에 온 정치적목적은 두가지였다.
4. 19는 미국이 수십년 길러놓은 리승만을 쫓아냈을뿐아니라 국제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있다. 4. 19후에 일본에서도 반미적인 색채를 띤 학생운동이 일어나고있다. 뛰르끼예에서도 학생들이 선봉에 나서서 독재정권을 전복했다.
허정《과도정권》은 지금 그러한 학생세력을 앞에 놓고있을뿐아니라 미국이 믿는 보수세력전체가 그 학생들앞에서 불안한것이다. 그 위축되고 불안에 빠진 친미보수세력을 고무하기 위해서 아이젠하워가 다녀갔다.
다른 하나는 필리핀, 대만, 일본, 《한국》 등 미국을 믿는 허수아비들의 여명을 유지해주며 그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그 나라들을 미국의 군사침략기지로 얽어매며 아시아에서 사회주의국가들을 반대하기 위하여 동북아시아군사동맹조작을 추진시킬 목적으로 그 로구가 유령같은 그림자를 끌고 기여왔던것이다. 만약 그 동맹이 성립되는 날에는 조선은 북남으로 점점 더 굳어지고 조국통일은 그만큼 늦어질수 있다.
4. 19후에 국내에서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통일을 갈망하는 목소리다. 4. 19는 통일의 기운을 열어놓은것이였다. 아이젠하워의 입국은 4. 19의 정신을 유린하러 온것이였으며 통일의 길을 가로막기 위한것이였다. 과연 그가 다녀간 후 친미보수세력들은 활기를 띠고있었다.
《라침판》이 첫 항해를 떠나는 회합에서 그들이 간과할수 없는 또 한가지 문제가 있다.
7. 29선거였다. 그 선거에서 민주당이 《정권》을 잡을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민주당은 자유당과 똑같은 친미보수세력의 정당-매판자본가와 반동관료배와 지주계급의 쌍생아다. 과연 그 《정권》하에서 4. 19의 정신이 구현될수 있겠는가, 대답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그런데 학생들이 이 모든것이 내포하고있는 위험을 다 알고있는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4. 19의 흥분에 아직도 도취하고있다고 할가.
《농촌계몽, 선거계몽, 계몽이나 한다고 쌀밥이 저절로 나오진 않을거고 에잇, 절름발이라니까…》
회의도중에 윤도는 화를 내며 답답한듯 일어서려다가 몸의 중심을 잃고 핑그르르 돌며 방바닥에 쓰러졌다. 옆에 있던 허강이 그를 잡아주었다. 그의 입에서는 절름발이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정말 혁명은 절름발이로 되여가기도 하기때문에 그 표현이 적절하나 윤도
《윤도.》
어머니가 윤도를 불렀다.
《그런 말하면 못써. 윤도가 어떻게 절름발이야. 집에서도 그러나? 어머니가 들으시면 마음 언짢아하셔. 복원일 싫어하는것도 제 다리가 저러니까 자격지심에 그런다며…》
나중 말은 혼자 중얼거리듯 하면서 어머니는 웃었다.
《어머니도…》
윤도는 어이없다는듯 따라 웃어넘기나 얼굴은 붉어진다.
모두들 웃으며 다시 회의를 계속했다.
《윤도, 네 말은 계몽대로 나가는 학생들을 생각케 할수 있는 문제다. 그걸 가지고 글을 써봐라. 대학신문에 싣자.》
준호가 윤도에게 권고했다.
《싫다. 난 그럴 생각이 없어.》
준호는 그 말을 듣고 윤도의 독선적인 기분을 느꼈다.
《4. 19의 선두에서 목숨을 바치고 부상당한 학생들의 자부심과 자랑은 충분히 리해도 할만 하지만 4. 19라는것이 대중을 위한 민주주의사회를 쟁취하는 싸움이였는데 자기 맘에 안 맞는다고 해서 모두 배척하는건 자기모순이고 협소한 태도야. 그보다는 계몽대나 신생활운동에 나가는 학생들이 무엇을 해야 할것인가를 정확히 인식시키는것이 백배나 더 중요하고 긴급한 일이며 현실적인 과제다. 계몽대로 나가는 학생들을 깨우쳐주자. 우리 힘이 미치는데까지 선전하고 계몽하자. 계몽대의 계몽, 그들이 돌아올 땐 선거브로카로 돼오지도 않을것이고 부뚜막기술자가 돼서 오진 않는다.》
《그러면?》
윤도가 대들듯 물었다.
《부분적으로 대중에게 진리를 전파도 하고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을 밝혀도 주겠지만 그보다 더 많이 현실의 모순을 한보따리씩 지고올거야.》
《현실의 모순이라면 4. 19후 오늘까지 서울바닥에 딩구는것만도 산더미같다. 농촌이나 지방에까지 가서 일부러 땀을 흘려가며 지고와야만 맛인가? 락천가들야. 준호, 넌 또 그 보따릴 무엇에 쓸려고 그러니?》
《그 보따릴 잘 정리험 거긴 보배들이 있어.》
그들은 4. 19가 짓밟히는 현실을 두고 오래동안 론의들을 했다.
대학에서 배운 력사지식으로도 모순에 찼던 과거사회를 많이 알고있지만 이즈음과 같은 모순은 일찌기 보지 못했다. 피는 그들이 흘리고 열매는 다른자들이 횡취하고, 모순도 심한 모순이였다.
그러나 모순이 절정에 달한 시대에는 반드시
학생들은 상춘이 《계몽대에 나가는 학생들에게》라는 글을 쓰기로 결정하고서도 무엇인가 부족하고 미흡한것 같아서 헤여지지 못하고있을 때 한쪽에서 자고있던 유정이 잠꼬대를 했다.
《오빠! 오빠!》
유정은 가끔 죽은 선규를 그렇게 부르는 버릇이 있다. 어머니는 유정의 베개를 반듯하게 고쳐 베워주었다.
상춘은 공부에 열중했다. 준호와 토론을 해보면 그는 일정한 세계관이 확립된데 비해서 자기는 정의 하나만으로 사회를 보려는 부족을 느꼈다.
대학에서 정치학, 경제학, 철학, 사회심리학, 국가계약설, 사회계약설 등 여러가지 배우는 과목이 많다. 그에 따라서 저명한 학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저서내용이나 주장에 대해서도 많은 강의를 들었다.
《공산당선언》을 읽어보았다.
자본주의사회의 본질을 예리하게 분석한 과학과 탐구력에 놀라고 경탄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이 부닥치고있는 현실에 대하여 그같이 탐구하고 분석할 능력이 자기에게는 아직 없는게 안타까왔다.
그동안은 손에 잡히는대로 아무 책이나 붙들고 그는 밤을 새우다싶이 읽고 또 읽었다.
새로운 진리를 목마르게 찾는 갈증이였다.
어머니가 일어나 부엌뒤 그의 방에 가보면 아직도 앉아있거나 책을 편채 잠들어있어서 석유불만 혼자 깜빡거리고있었다. 어머니가 불을 끄려고 들어가면 그는 놀라서 일어나앉았다.
《어머니, 전에 형이 보던 책이 뭐 없을가요?》
상춘은 형이 전에 읽던 책가운데에 농촌에 관한 실태자료들과 그밖에도 현 사회구조를 분석하는데 도움이 될만 한 책이 없는가 생각되여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조금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주멈헌테 물어봐라.》
상춘은 어머니를 따라 안방으로 갔다.
귀선은 졸지에 책이란 말을 듣게 되자 미처 그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듯 했다. 어머니와 상춘을 번갈아보기만 한다.
《그때 왜 애비가 보던 책을 니가…》
《네에.》
귀선은 알아들었다. 알았으나 속에 북받치는 감회때문에 얼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언제고 와서 제손으로 파내게 했으면 하는…》
말끝을 흐리는 귀선의 얼굴은 꿈을 꾸는듯 했다. 어머니도 생각에 잠긴다. 형이 그 책을 파내고 형수가 옆에서 그것을 보는 장면, 상춘도 그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뭉클하며 치받치는게 있었다. 형을 생각하는 형수의 마음은 너무나 숭엄하여 아무도 감히 침범할 세계가 아니였다.
《괜찮다. 저애가 그걸로 뭘 배운다면 제 형은 안 좋아하겠니?》
《하긴 그래요.》
귀선의 꿈꾸듯 굳어져있던 얼굴에는 미소가 어리였다.
《성하게 남아있기나 한지 모르겠다.》
《썩지 말라고 명주로 쌌으니까요. 지금같은 비닐보자기로나 쌀걸, 그땐 어디 그게 있었어요?》
상백이 집을 떠날 때 자기가 보던 책들, 일제때부터 경찰의 눈을 피해가며 간직해온 책을 잘 보관해두라고 해서 귀선이 장자울 고향집 울뒤에 파묻어둔것이다. 벌써 10년전 일이다. 귀선이 남편을 생각할 때면 의례히 생각하게 되는 책들이였다. 남편의 물건이 처음에는 몇가지 있었으나 여기저기 쫓겨다니며 이사하는 동안에 다 없어지고 지금은 그 책이 남았을뿐이다.
《무슨 책이 소용되우?》
귀선이 상춘에게 물었다.
《아무거나 있는대로 봄 돼요.》
《그래도 볼만 한게 있을지…》
《몇권이나 되죠?》
《한 열댓권 될가…》
《책이름도 아세요?》
《그걸 어떻게 내가 다 아우? 감춰만 뒀지.》
《됐어요. … 형님은 이담에 내가 사드려요. 새 책으로.》
《그만두우. 새 책이 그만한줄 아우?》
그들은 몹시 기뻤다.
어머니는 다음날 고향으로 떠났다. 상춘은 되도록 빨리 돌아오시라고 몇번이나 당부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사흘이 지나고 나흘이 돼도 돌아오지 않더니 닷새되는 날에 상춘이 빨리 오라는 전보가 왔다.